[1876 ~ 1959]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로 본관(本貫)은 경주(慶州)이고, 자(字)는 율재(栗齋)이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으로 참가하였던 김홍규는 천도교 신자로, 당시 천도교가 월보 인쇄 등을 위해 직영하던 보성사(普成社)의 공장 감독이었다.
보성사 사장
이종일의 지시에 따라 종로구 수송동에 위치한 인쇄소 공장에서 인쇄공 신영구로 하여금
기미독립선언서와 《
독립신문》를 인쇄하도록 했다.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