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2 ~ 1772] 조선 후기의 학자이다. 호는 미호(渼湖)이고 본관은 (신)안동이다. 몽와
김창집의 손자이고 죽취 김제겸의 셋째 아들이다. 5촌 종숙인 김숭겸의 양자로 입적했다.
이재의 제자였으며, 담헌
홍대용의 스승이다.
경종 초기(1722년~1723년)에 발생한
신임옥사로 조부
김창집과 생부
김제겸이 유배되었다가 처형되었고, 친형 김성행과 친아우 김탄행이 경종의 독살을 꾀한 죄목으로 처형, 그 외에도 일족이 처형되거나 유배되는 등 멸문의 고비를 겪었다. 이후 영조가 즉위하여 가문이 다시 크게 부흥하였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시골에 은거하며 성리학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 저술 활동에만 전념하였다.
그가 길러낸 제자들 중에는 노론계 초기 실학자의 한사람인
황윤석과
홍대용이 있다. 사후 이조판서에 증직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