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 ~ 1550] 자는 성지(成之), 호는 진락당(眞樂堂) 또는 서산(西山). 아버지는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 김광좌(金匡佐)이다.
일찍이
박영(朴英)의 문하에 들어가서 《중용》과 《대학》을 배워 존심양성(存心養性)의 방법과 관물성찰(觀物省察)의 오묘한 뜻을 터득하고, 무극(無極)과 태극(太極)의 묘용(妙用)을 배워 그 이치를 깨달았다. 한평생을 학문 탐구에 몰두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만년에 당시의
김정국(金正國)과
이언적(李彦迪)의 추천으로 네 차례나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직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의학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함으로써 약성(藥性)과 경락(經絡)에 대한 지식이 깊어 병든 사람을 많이 치료하였다.
저서로는 『진락당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