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군호는 계림군(鷄林君),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360년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하여 과거를 준비하다가
조준(趙浚)을 알게 되었는데, 이 덕분에 조준이 국정을 맡을 때 여러 번 천거되었고, 전법판서(典法判書)까지 지냈다. 1392년 조준의 설득으로 7월 17일 조선 개국에 참여하여 개국 3등공신에 책록되고,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에 가자되었다.
1398년 졸했고, 아들은 김맹성(金孟誠)·김중성(金仲誠)·김계성(金季誠) 셋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