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순흥 안씨의 시조(始祖) 안자미(安子美)는 고려 신종(1197년~1204년) 때 흥위위 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역임하고 신호위 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되었고, 순흥현(順興縣)에 정착 세거(定着世居)하여 관향(貫鄕)을 순흥(順興)으로 삼게 되었다.
시조 안자미에게는 세 아들 안영유(安永儒), 안영린(安永麟), 안영화(安永和)이 있었다. 안영유의 손자
안향(珦)은 1260년(고려 원종 1년) 문과에 급제,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을 역임했는데 중국에서 쓰는 서적을 도입하여 후진을 양성하는 등 유학의 진흥에 힘썼다. 안향이 크게 현달하여 생활 근거지가 개성으로 나뉘어 살게 되었다.
조선조에 들어와 생활 관련 근거지가 파주 금촌으로 옮겨졌는데, 여러 사화를 겪으면서 전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으며, 종가는 서울 도동에 있다가 다시 황해도 연백군으로 옮겨졌다. 특히 관향지 순흥에 살던 종족들은 단종복위사건에 연루되어 화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