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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수의 세상이야기     【오문수의 지식창고】 2019.01.26. 10:52 (2019.01.26. 10:52)

칠레 산티아고에서 만난 여성 시위대, 이유 묻자...

 
[남미여행기 16] 남미에서 정치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된 칠레
▲ 산티아고 시내 모습. 유럽의 시가지 못지 않게 발달된 모습이다. ⓒ 오문수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 칠레. 길이가 자그마치 4300㎞에 이른다. 세로로 길고 가로로 좁은 지형을 갖고 있는 칠레는 남북 위도의 차이가 38°30´이나 되기 때문에 하루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맛볼 수 있는 나라다.
 
얼마나 길까에 대한 가늠이 안 되면 남한의 10배나 길다고 생각하면 된다. 서쪽에서 동쪽으로는 고도 약 6000m의 안데스 산맥이 자리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페루, 동쪽으로는 볼리비아, 남쪽으로는 아르헨티나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 길거리에서 춤추는 무희 모습 ⓒ 오문수
 
▲ 칠레 수도 산티아고 길거리 모습 ⓒ 오문수
 
국토의 길이가 길어 아열대 사막, 지중해성 기후, 온대 기후 등 다양한 기후가 있다. 눈에 띄는 건 칠레가 일명 '불의 고리'인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해 크고 작은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칠레 북부사막도시 아타까마 인근의 깔라마 공항을 떠난 비행기가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하자 지금껏 느꼈던 남미의 분위기와 사뭇 달라졌다. 페루, 볼리바아와 달리 잘 다음어진 도로와 건물들. 무엇보다 크게 달라진 건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 모습이다.
 
페루와 볼리비아의 주민 대부분은 우리와 비슷한 잉카족 출신이지만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주민의 얼굴을 보면 유럽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시민들의 얼굴뿐만 아니다. 산티아고 중심가를 돌아보면 중세 유럽의 어느 도시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 칠레는 수산물이 풍부한 나라다. 수산물 시장 모습 ⓒ 오문수
 
▲ 산티아고 길거리에는 무수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 오문수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 칠레는 다양한 자연환경을 가진 나라답게 물산이 풍부하다. 풍부한 강수량 덕분에 과일과 채소가 잘 자라고 긴 태평양 연안에서 난 수산물 역시 넉넉하다. 수도 산티아고에서는 개방적이고 활달한 칠레노를 만날 수 있다. 군부 쿠데타와 급격한 경제성장 등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 '숙이네'에서 입맛을 찾다
 
일행이 남미여행을 떠난 지 보름째다. 일행 중 상당수는 남미 음식을 먹는 데 커다란 불편을 못 느꼈다. 해외 여행 경험이 많고 여행 기간 한국 음식을 아예 포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그럴까? 김치와 된장국이 생각나는 건 당연지사다. 한국음식이 그리운 일행은 길잡이의 안내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이네' 식당으로 갔다.
 
불고기와 삼겹살을 시켰는데 주인은 고기를 엄청나게 줬다. 고기가 싸기 때문이란다. 식탁에는 고추장, 김치, 김, 두부, 단무지, 동그랑땡, 멸치볶음이 나왔다. 특별한 음식도 나왔다. 한국인들이 온 걸 안 주방 아주머니가 파저리에 참기름을 듬뿍 뿌려준다. 카운터를 담당하는 분에게 칠레에서 장사하는 일이 힘들지 않는지를 물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 산티아고 시내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인 "숙이네" 모습으로 푸짐한 음식과 인심으로 오랜만에 잃었던 한국음식에 대한 입맛을 찾았다 ⓒ 오문수
 
"33년 전 칠레에 이민 온 누나가게를 돕고 있어요. 멸치, 김, 고추장과 소주는 한국에서 배로 수입합니다. 칠레 식당에서는 반찬을 추가하면 추가로 돈을 받지만 우리는 반찬이 떨어지면 무료로 제공해줍니다. 칠레 사람들은 30~40분 정도 앉아 기다리면서도 별로 말이 없어요. 이 사람들은 깐깐하게 따지지를 않아요. 이런 사람들 처음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실컷 먹은 일행들은 "꿀맛이다!" "한국에서 먹은 것보다 맛이 더 좋다. 특히 파저리가 일품이다"라며 흡족해 했다. 맥주를 마신 후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는 퇴근시간이어서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그런데 숙소 가까운 곳에 도달한 순간, 주변이 시끄러워지더니 더 이상 길을 건널 수 없었다. 대로변에는 데모대 1천여명이 행진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다.
 
 
칠레 인권운동의 상징적 존재 '아나 곤잘레스' 여사의 후예들을 만나다
 
정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남미국가들 가운데서도 비교적 탄탄한 경제력을 갖추고 민주주의가 정착한 칠레는 우리와 비슷한 아픔을 겪은 나라다. 그 중심에 소아과 의사 출신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아옌데와 피노체트 장군이 있다.
 
지긋지긋한 남미병을 치유하기 위해 발벗고 나선 아옌데는 1970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가 권좌에 앉자마자 진작부터 구상해왔던 급진적 변화를 추구했다. 최대 부존자원인 구리와 석탄, 철강회사와 일반은행 60%를 국유화했다. 지방에서도 농장국유화 정책을 강행했다.
 
2년도 채 안 되어 반대파의 조직적 반발은 물론 자영농민과 중소기업인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변호사와 학자, 건축가들을 비롯한 중산층까지 가세해 시위에 나서면서 칠레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1973년 9월 11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궁을 압박했다. 아옌데 대통령은 쿠데타 진압을 시도하던 중 공군장성들로부터 망명을 권유받았지만 거절하며 최후까지 총을 들고 싸우다 자결했다. 반란군은 대통령궁을 공습해 불바다로 만들기까지 했었다.
 
아옌데는 칠레에 만연된 남미병인 정치부패와 경제파탄,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급진정책을 시행했지만 3년만에 좌절됐다. 아옌데의 실험이 좌절된 중요한 원인은 보수 엘리트와 군부의 지지를 얻지 못한 데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미국 닉슨 정부의 배후 조종과 간섭이다. 2000년 12월 빌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개입했다는 보고서를 공개하고 유감을 표명했다.
 
군사독재의 폐해는 컸다. 17년간의 피노체트 군사독재 통치기간 동안 강제 연행돼 고문당하거나 살해 실종된 이는 4만 18명(2011년 집계)에 달했다. 확인된 희생자는 90년대 민주화 이후 유골 발굴과 DNA대조를 통해 확인된 숫자이지만 아직도 1천여 명이 실종 상태다.
 
▲ 칠레 인권운동의 상징인 아나 곤잘레스 여사의 생전 모습.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시절 남편과 두 아들, 며느리까지 당국에 끌려가 살해당했다. 그녀가 거리에 나설때면 늘 단단한 꽁지머리에 빨간 매니큐어를 발랐다. 활동하기 편한 풍성한 옷차림에 마푸체 풍의 장신구도 갖췄다 ⓒ Wikimedia Commons
 
혹독한 군부독재 통치에 반기를 들어 국가폭력을 고발하고 조직적으로 집단적 저항운동에 앞장선 이는 '아나 곤잘레스' 여사다. 그녀의 남편과 두 아들, 며느리까지 끌려가 살해됐다. 그녀는 칠레의 '실종구금자 가족연대(AFDD)'를 조직해 전 세계에 알리는 등 칠레 인권운동의 상징적 존재가 됐다. '칠레의 실종구금자 가족연대(AFDD)' 회원 대부분은 여성들이었다.
 
1975년에 설립된 칠레 '실종구금자가족연대(AFDD)'는 피노체트 정권의 국가폭력, 특히 '강제실종'의 진실을 묻고 국제사회에 진상을 알린 단체로 2년 뒤 아르헨티나 '오월광장 어머니회' 등 남미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여성들이 대부분인 데모대..."더 이상 폭력은 안돼", "진실과 정의' 외쳐!
 
▲ 칠레 원주민인 마푸체족에 대한 경찰의 폭력행위를 중단하라며 시위하는 여성들 모습. 2018년 11월 22일 밤 산티아고 호텔에 방영된 TV뉴스에서 주요뉴스로 보도됐었다. ⓒ 오문수
 
▲ 마푸체족에 대한 경찰의 폭력행위를 규탄하는 칠레여성들의 시위 모습. ⓒ 오문수
 
호텔로 돌아가던 중 길거리에서 만난 1천 여명의 시위대는 대부분 여성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필자와 일행이 사진을 찍자 한 젊은이가 종이를 주며 설명을 했다. 종이 속에는 수염이 난 사람과 스페인어가 적혀 있었다. 시위대들이 든 플래카드에는 영어로 '진실과 정의(Truth and Justice)'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필자는 심상치 않은 사건이 숨어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이가 영어로 사진 속 젊은이를 가리키며 데모하는 이유를 설명했지만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데모대에 휩쓸렸다가 혹시 낭패를 당할까 우려한 일행은 호텔로 돌아왔다. 궁금해진 필자가 호텔 프런트에 있는 여성 직원에게 데모대 사진과 종이를 보여주며 "데모의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자 스페인어로 된 글자를 영어로 번역해 주며 신문까지 다운받아 줬다.
 
 
칠레 원주민 마푸체족은?
 
원주민인 마푸체족은 칠레 남부 아라우카니아 지역을 근거로 약 60만명이 살고 있다.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은 이들이 살고 있는 땅을 압수했다. 강제로 땅을 빼앗긴 마푸체족들은 땅을 되돌려 달라고 저항했다. 피노체트 정권은 반테러법을 선포해 이들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반테러법에 저촉되는 행위는 방화나 타인에게 재산피해를 입혔을 때, 또는 무장공격, 살인미수까지 광범위하다. 반정부 시위를 벌이다 경찰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체포돼도 적용된다. 마푸체족들은 칠레가 민주화된 이후 군사독재시절에 압수당한 조상들의 땅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땅에는 거대 벌목회사와 대형농장들이 들어와 있다.
 
호텔 여직원이 영어로 번역해 핸드폰에 보내준 문안에는 마푸체족들에 대한 정보와 인권탄압에 반대하는 내용이 적혀있다. 핸드폰 아랫줄에는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사망한 마푸체 원주민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맨 마지막 줄에는 이날 데모대들이 주변행인들에게 나눠준 전단지 속 인물인 '카밀로 카트리란카'의 이름도 보였다.
 
귀국해 마푸체족들에 관한 검색을 한 결과, <울산저널> '원영수 국제포럼'에 나온 기사가 데모대에 관한 내용과 비슷했다. 아래는 2018.11.28.일에 게재된 <울산저널> "칠레 마푸체 인디오 살해 항의시위 확대" 기사의 주요내용이다.
 
▲ 칠레 원주민인 마푸체 족 청년 "카밀로 카트리란카"로 경찰에 의해 살해당했다. 산티아고 시내에서 "진실과 정의"라는 플래카드를 든 시위대들이 경찰폭력에 항의하며 종이에 인쇄된 전단지를 필자에게 주었다. 뒤에는 카밀로 카트리란카에 대한 글이 적혀있었다 ⓒ 오문수
 
▲ 호텔 프런트에 있는 여직원이 마푸체족 원주민 탄압에 항의하는 글이 적혀있는 내용을 영어로 번역해 보내 준 내용이다. 맨 마지막 줄에는 경찰의 총격에 사망한 "카밀로 카트리란카(Camilo Catrillanca) "의 이름이 보인다. ⓒ 오문수
 
 
"11월 13일 카트리란카 사건이후에도 101건의 폭력사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 폭력에 분노하는 여론이 칠레를 강타했다. 보통사람에 대한 경찰폭력의 잔인함이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동안 칠레 경찰은 마푸체 인디오 공동체에 가한 탄압과 폭력성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칠레인들은 남부 칠레의 인디오 공동체를 감시하는 경찰 특공부대인 정글사령부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이 악명 높은 특수경찰은 콜롬비아 정글에서 훈련받아 붙여진 이름이다"
 
 
일행 중 몇 명은 밤에 산티아고 중심가인 아르마스 광장인근으로 나갔다가 경찰이 데모대에 쏜 최루탄을 맞아 눈물 콧물을 흘렸다고 한다.
 
칠레는 남미에서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안정되어 있는 나라다. 그러나 그 힘의 원천은 아픔을 극복하려는 선각자들의 노력이 낳은 결과다. 불의에 굴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맞서는 강인한 여성의 힘을 보고 감동했다.
【작성】 오문수 oms114kr@daum.net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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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