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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수의 세상이야기     【오문수의 지식창고】 2019.05.14. 18:48 (2019.05.14. 18:48)

김대건 신부 동생이 숨어 살다 숨진 곳

 
전북 임실군, 천주교 박해로 숨어살던 두 분의 흔적을 찾아서
▲ 전북 임실군 용수2리 깊숙한 산골에 있는 묘소 2기로 "병인박해" 당시 이곳까지 피난해와 숨어살던 김대건 신부 동생 김난식(위쪽)과 조카 김현채 묘소가 보인다. ⓒ 오문수
 
11일(목) 지인들과 함께 전북 임실군 용수2리를 방문했다. 마을 산속 깊은 곳에 '병인박해'를 피해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다 숨진 김대건 신부 동생과 조카의 묘가 있기 때문이다.
 
'병인박해(1866년)'란 대원군을 위시한 조선지배층이 천주교도들을 박해한 사건을 말한다. 대원군은 조선인 천주교도들이 제사를 거부하는 등 봉건적 이데올로기와 통치 질서를 무너뜨린다고 판단해 이들을 잡아들였다. 이 사건으로 9명의 프랑스 신부와 수많은 천주교도들이 처형당했다.
 
지인들과 함께 임실군 문화원을 떠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30분(24㎞)을 달려 용수2리로 올라가는 길 도로변에는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임실군 용수2리. 참 외진 마을이다. 마을이 외진 곳이라는 걸 짐작케 하는 건 차를 운전하는 임실전문가도 마을 입구를 찾기 위해 3번이나 헤매다 진입로를 찾았기 때문이다.
 
차량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은 시멘트 길을 한참 올라가니 계곡사이에 마을 하나가 나왔다. 가리점 마을이다. 임실군 문화해설사인 강명자씨가 마을에 대해 설명해줬다.
 
▲ 가리점 마을 모습 ⓒ 오문수
 
"마을 지명에 '점', '사기'라는 명칭이 들어가면 옹기를 굽거나 숯을 굽는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가리점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 옹기를 구워 인근 갈담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천주교 성지를 발굴했던 조종래 덕치면장(전)의 안내를 따라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승용차가 밑 부분이 솟아나온 자갈과 바위에 자꾸 닿는다. 하는 수 없어 산 중턱에 주차하고 계곡을 따라 올라가도 방해꾼(?)이 많다. 어제 내린 비가 불어 이낀 낀 바위를 조심히 밟아 건너편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85세의 조종래 면장은 임실의 산 증인이다. 박학다식할 뿐만 아니라 임실군의 역사를 훤히 꿰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행여 도랑을 건너다 미끄러지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작년에는 필자를 위해 회문산 정상인 장군봉(830m)을 올라 회문산의 아픈 역사를 증언해주기도 하셨다.
 
"이곳까지 온 것도 이제는 마지막일 것 같아요. 힘들어요. 해가 갈수록 달라져요."
"에이! 면장님도. 제가 매년 찾아와 임실 안내해 달라고 조를 겁니다. 그래야 높은 산에 올라 건강해질 것 아닙니까?"
"허허허!"
 
조종래씨가 천주교 성지를 발굴하게 된 경위를 설명해줬다. 1977년 7월경 천주교 수녀 두 명이 소식을 듣고 당시 부면장이던 조종래씨를 찾아왔다. 천주교인인 조종래씨는 수녀들과 함께 가리점 마을을 방문했다. 마을에는 돌아가신 두 분에 대해 증언해줄 사람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 김난식 김현채 두 분이 살았던 곳을 가리키는 조종래씨 모습. 돌을 인공적으로 쌓았던 흔적이 보인다. 뒤에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 오문수
 
"수녀님들한테 어떻게 이곳까지 오셨느냐고 물었더니 '당시 전주 성심여고 교장선생님이 천주교도들이 보는 월간지 <생활성서>에 김대건 신부 동생과 조카가 이곳에 숨어살다 돌아가셨다는 글을 기고하셨기에 확인하기 위해 방문했다'고 하셨어요. 가리점 마을에는 김대건 신부 동생 김난식과 조카인 김현채와 함께 숯을 구워 아랫마을인 갈담에 내다 팔던 송씨 아들이 살고 있었거든요. 두 분을 모시고 숯을 굽던 송씨는 본인이 죽더라도 자식들에게 두 분의 묘지를 벌초해라고 당부하셨다고 합니다."
 
김대건 신부 동생인 김난식(세례명 - 프란치스코)과 조카인 김현채(세례명 - 토마스)가 움막을 짓고 살았던 개울가에 도착하니 깊은 계곡에 20여평쯤 되는 평지가 나왔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인 돌무더기와 함께 감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그들은 이곳에 움막을 지어 화전을 이루고 숯을 구워 생계를 유지했다. 조종래씨가 송씨 아들이 증언한 내용을 전해줬다.
 
▲ 천주교 신자로 전임 면장이었던 조종래씨가 김난식 김현채 두 분의 묘소앞에서 절하고 있다 ⓒ 오문수
 
▲ 병인뱍해를 피해 임실 회문산에 숨어살던 김난식 김현채 두 분의 묘소가 있는 곳을 가리키는 안내판 모습 ⓒ 오문수
 
"'3대를 멸족시켜라'는 명령을 들은 이들이 충청도 어느 절에 들어가 피신하고 있는 데 스님이 전라도 회문산이 명산이니까 그곳에 숨어 숯을 구워 팔면 살 수 있다고 해서 이곳까지 숨어들었다고 합니다. 김난식이 죽기 전 조카인 김현채에게 '내가 죽으면 너는 내 무덤 아래에 묘지를 써라'고 유언을 했대요."
 
그들이 살았던 곳에서 70m쯤 떨어진 산등성에는 두 기의 묘가 있었다. 안내판에 써진 글자가 떨어지고 희미해진 걸 보니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기록을 보니 김난식(1827-1873) 김현채(1825-1888)라는 글자가 보이지만 세례명은 잘 보이지 않아 희미하다.
 
▲ 김난식 김현채 두 분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길은 45도 정도 경사진 험한 곳에 있었다. 동행했던 임실군문화해설사 강명자씨와 조종래, 신익재씨가 뒤따르고 있다. ⓒ 오문수
 
가리점 마을 송씨 아들과 두 수녀의 대화는 1977년에 발간된 천주교 잡지 <생활성서 7월호>에 수록됐다고 한다. 천주교인으로 전국의 천주교 성지를 찾아다니며 기록을 남기기 위해 동행한 신익재씨한테 당시의 기록물을 찾아 송부해줄 것을 당부했는데 아직 찾지 못했다는 연락이 왔다.
 
박해를 피해 첩첩산중에 숨어살며 신앙에 매진하며 살았을 두 분의 삶을 반추해보며 신앙의 의미를 되돌아보았다.
【작성】 오문수 oms114kr@daum.net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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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