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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을 찾으러 ◈
◇ 3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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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01~10
방정환
1
동생을 찾으러
2
(3)
 
 
3
캄캄한 깊은 밤, 청국 사람의 집 담 위에서 뜻밖의 사람의 발자취 소리에 엎드린 창호는 촛불을 껐으나 두 눈이 샛별같이 빛났습니다. 그리고 점점 가까이 오는 발자취 소리가 담 밖에서 나는지 또는 담 안에서 나는지, 그것을 알려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4
발자취 소리는 분명히 담 안에서 나는 것이었습니다. 2층 윗방에서는 무슨 일로 지금까지 없던 불이 켜지고 저 발소리는 어떤 놈의 발자취 소리인지, 창호의 어린 가슴은 불안해 못 견디었습니다. 이윽고 좁고 어두운 뒷마당에 시꺼먼 키 큰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담 위에 있다가 들키면 큰일 나련마는, 창호는 어두운 밤이니까 저쪽에서는 이쪽이 잘 보이지 아니할 것을 앎으로, 태평으로 엎드려 눈을 비비면서 주의해 내려다보았습니다. 뒷마당이래야 가까스로 사람하나 다닐 만하게 좁은 터이니, 자칫하면 창호의 숨쉬는 소리라도 그에게 들릴 것만 같은 판이었습니다.
 
5
그래 창호는 담 위에서도 몸을 바깥 편으로 휘어붙이고 숨을 죽이고 보고 있었습니다. 그 청국 사람은 바로 자기의 손이 닿을 듯한 머리 위에서 창호가 숨어 있는 줄은 알지 못하고, 담 모퉁이 조그만 헛간으로 들어가더니 오줌을 누는 모양이었습니다.
 
6
‘아하 순희가 편지를 써서 내던졌던 곳이 바로 저 뒷간인가 보구나…….’
 
7
생각하고, 창호는 분명히 순희가 이 집에 있는 것을 믿게 되어 뛰어 들어가서 순희를 구해내고 싶은 생각이 불같이 타올랐습니다. 그때 변소에 있던 키 큰사람이 나오자, 집 속에서는 또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면서 두어 사람의 뒤꼍으로 나왔습니다.
 
8
“고 계집애가 악지가 아주 무서운데…….”
 
9
하는 것이 분명히 변소에서 나온 키큰 놈이 서투르게 조선말로 하는 소리였습니다.
 
10
“그저 밥을 굶기고 흠뻑 두들겨 주어야 해요. 배가 고프면 별수가 있나요. 어른도 배가 고프면 항복을 하는데…….”
 
11
하는 것은, 분명히 여편네 목소리인데, 청국 여편네도 아니고 분명히 조선 여편네의 말소리였습니다.
 
12
창호는 순희에게서 왔던 편지를 생각하고, 지금 저 여편네가 처음 정동에서 순희를 꼬여 들어간 여편네로구나 생각하고, 그 길로 쫓아 내려가서 물고 뜯고 발길로 차고 흠씬 두들겨 주고 싶었으나, 그러나 지금은 아무래도 하는 수가 없어서 벌떡벌떡하는 가슴을 억지로 참아가면서 그냥 엎드린 채로 듣고 있었습니다.
 
13
“그럴 것이 없이 이제 저리로 보낼 날이 사흘 남았으니, 듣든지 안 듣든지 보내 버려요. 보내기만 하면 그만이지……. 그리고 어서 또 다른 아이를 얻어 와야지…….”
 
14
“얻어들이는 것이야 걱정 말고 저리로 보낼 때 돈이나 잘 받아 올 생각이나 하시오.”
 
15
“아무렴, 잘 받고말고. 이번 애는 아주 예쁘게 생겼으니까, 돈을 더 받아야지…….”
 
16
이렇게 놀라운 의논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그들은 다시 안으로 기어들어갔습니다.
 
17
창호는 지금 담 위에서 들은 여러 가지 말 중에도,
 
18
‘사흘만 있으면 저리로 보내야한다’는 말이 제일 가슴이 성큼하였습니다. 저리로 보낸다는 말은 청국으로 팔아 넘겨 버린다는 말이 확실하였습니다.
 
19
‘사흘, 사흘, 사흘, 사흘!’
 
20
하고, 창호는 자꾸 되풀이해 중얼거렸습니다. 아무리 애를 쓴대도 사흘만 지나면 순희는 그만 청국을 팔려가 버리겠구나 생각하니 머리가 아뜩할 뿐이었습니다.
 
21
‘오냐 사흘이 무어야? 오늘 지금 당장에 들어가자! 지금 당장에 구해내자.’
 
22
창호는 두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 마음속을 부르짖었습니다.
 
 
23
청국 사람들도 잠이 들었는지 위층 방에도 불이 꺼진지 오래고, 집이란 집, 창이란 창에는 불빛이 조금도 없이 다만 땅 속같이 캄캄할 뿐이어서 그야말로 무서운 악마의 굴 속 같았습니다.
 
24
그러니, 그러게 무섭고 고요한 속에서도 이따금 이따금 들려오는 것은 어린 소녀의 신음하는 소리였습니다. 무서운 병든 이의 앓는 소리같이 끙끙 앓는 소리였습니다. 그 불쌍한 소리가 이따금 들려 와서 담 위에 엎드려 있는 창호의 귀에 들릴 때 창호는 온몸에 소름이 쪽쪽 끼쳤습니다.
 
25
창호는 그만 앞뒤 생각을 할 새도 없이 쿵 소리도 안 내고 사뿐히 안으로 뛰어내렸습니다. 내려서는 담 밑에 몸을 움츠리고 귀를 기울여 누가 깨어 나오지나 않는가 주의하였습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것을 보고 창호는 뻗치는 기운에 우적우적 걸어서 아까 그들이 들어가던 문을 열고 양옥으로 지은 집 속으로 들어섰습니다.
 
26
집에서는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흉한 냄새만 코를 찌르는데, 어두워서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으니까, 창호는 다시 촛불을 꺼내 켜 들었습니다. 보니까, 저 앞에 이층으로 가는 층계가 있고, 층계 밑은 광으로 쓰는 모양이고 층계 이쪽에는 부엌간이 있는데, 신음하는 불쌍한 소리는 더욱 똑똑히 바로 귀 옆에서 나는 것 같았습니다.
 
27
창호는 한 손으로 불빛을 가리고 아래층 여러 곳을 이 구석 저 구석 돌아 다니면서 살펴보았습니다. 층계 저쪽 복도로 들어서서 이 방 저 방 기웃기웃하니까 어느 방에는 밀가루 부대만 가득 쌓였고, 또 어느 방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커다란 궤짝만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그리로 복도가 꺾인 데로 휘어 돌아가니까, 다시 그곳은 부엌 뒤로 통하였고 부엌 뒤에 조그만 방이 있는데, 신음하는 소리는 그 방 속에서 나오는 모양이었습니다
 
28
창호는 그냥 달려들어 방문을 열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방문은 꼭 잠겨서 까딱도 아니하였습니다. 창호는 안타깝게 굴면서,
 
29
“순희야, 순희야!”
 
30
하고, 나직이 부르며 문을 똑똑 두들겨 보았습니다.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 대답도 없이 아주 죽게 된 사람의 신음같이 낑낑 앓는 소리만이 슬프게 날뿐이었습니다. 창호는 견디다 못하여 조금 큰소리로,
 
31
“순희야, 순희야, 나 왔다! 창호다, 창호야!”
 
32
하고, 연거푸 소리쳤습니다.
 
33
그러니까, 안에서는 앓는 소리가 뚝 그치고,
 
34
“오빠요? 정말 오빠요?”
 
35
하였습니다.
 
36
“정말 나다, 네 편지 보고 찾아왔다!”
 
37
하면서, 창호는 기뻐서 뛰고 싶었으나, 그러나 큰일 났습니다. 문을 열수는 없는데 별안간에 온 집안에 불이 환히 켜지면서, 저쪽 어디서인지 방문 열리는 소리와 사람이 지껄이는 소리가 나더니 복도로 달려오는 발자취 소리가 크게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38
-《어린이》 3권3호 (1925년3월호).
【원문】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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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정환(方定煥) [저자]
 
  어린이(-) [출처]
 
  1925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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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1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