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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10 ~
윤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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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예 잡감 (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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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11.4 (발표:『조선지광』, 1927년 12월)
 
 
 

특수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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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있어서 무산계급 문예운동이 자연생장기를 지나서 목적의식기에 도달하였다. 이와 같은 말은 곧 반드시 과정해야만 할 과정을 과정하여 왔다는 의미이다. 또 다른 한 옆으로는 문예운동이 시작된 지극히 짧은 시일에 급격히 질적 전환을 하였다는 의미이다. 투쟁기에 있어서는 모든 문화작용이 양적으로 쌓이는 것보다는 단시일에 질적 변동을 계속하여 나갈 뿐이다. 그래서 문예운동에 있어서도 양적으로 모여 있는 것보다 운동 자체의 진전 상태가 순간 순간 비약을 거듭하여 질적으로 전환하는 편이 더 한층 많은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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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객관적 조건에 의하여 발전과정을 과정하여 온 문예운동 진영 내에서는 맑스주의적 방법론 인식하에 일원적으로 전체성을 통한 부분운동인 문예의 기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무산계급 문예운동을 일원론적 인식하에 움직여 나가고자 우리는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아래와 같은 다원론적 인식 방법의 이론답지 못한 이론을 간혹 듣게 된다. 이것도 또한 ××전기가 무엇인지, 현 단계란 어떻게 과정해야만 하는 단계인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 태도이다. 여기에 인식부족과 인식착오의 오류를 우리로서 인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분석하고, 검토하고, 폭로하고, 구명하여 근본적 오류를 바로 잡지 아니하면 아니 될 임무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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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부터 우리가 간혹 듣게 되는 비맑스주의적 이론인 다원론의 본질적 근거를 지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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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법률, 철학, 예술 등은 경제조직의 상부구조로써 형식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으로써 하층구조의 근본적 토대, 곧 경제조직이 이때에 모든 상부구조도 함께 ××된다는 사실은 우리 - 아나 문예상 자유주의자, 상띠칼리스트 등 - 도 인증한다. 그러나 정치, 법률, 철학, 예술 등이 다같이 경제조직을 기초로 한 의식형태라 하여 각자의 특수한 독립체계를 무시하고 이것을 혼동하여서는 절대로 아니 된다. 예술에는 예술로서의 독립된 특수체계가 있으며 정치로서는 정치로서의 독립적 특수체계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각자의 구별은 엄밀히 존재해 있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 까닭에 예술이론으로써 정치를 규범할 수 없다. 동시에 정치이론으로는 또한 예술을 규범할 수 없는 것이 명확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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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정치는 정치로서의 특수체계가 있고, 경제는 경제로서의 특수체계가 있고 문예는 문예로서의 특수체계가 있다고 각자의 특수성만을 고취하고 주장하는 다원론적 이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절대로 문예가 정치영역 내에서 그 기능을 발휘할 뿐이고 문예는 문예영역 내에서만 그 기능을 발휘할 뿐이지 절대로 문예가 정치영역 내에 침입할 수 없는 동시에 정치가 또한 문예영역 내에 들어갈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문예운동으로서의 정치적 진출을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객관적 정열은 훌륭히 무산계급 문예운동으로 하여금 정치적 진출을 하게 하였다. 전기에 예술운동은 그 기능이 예술영역에만 그치고 말기를 객관적 정세와 일반 대중이 요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 필연의 과정을 과정하고 있는 조선의 대세가 다원론적 이론을 요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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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운동에 있어서 예술의 독립적 특수체계를 주장하는 이유는 전무산계급운동과 문예운동을 의식적으로 분리하고자 하는 행동이다. 소위 프롤레타리아의 예술이라고 운운하면서 전 무산계급운동과 합류되어 진전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프로예술이 될 것인가? 예술의 특수체계만을 고취하고 주장하는 태도는 반드시 새로운 예술지상주의자의 행동이다. 적색 상아탑 속에서 소위 영속성 있는 사이비적 프로예술품을 제작하기에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정반대로 한 개의 작품, 한 개의 평론이라고 현단계에 적합한 목적의식적 내용을 주입하여 문예운동자로서의 임무를 다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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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 계급이 대립해있는 이원사회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존재할 수 없다. 예술품다운 예술품만을 위하여 작품을 제작할 수 없다. 여기에 특수체계를 고취하여 정치, 경제, 법률, 철학, 예술 등의 각자의 특수성을 주장한다는 것은 확실히 인식부족이거나 인식착오에 기인된 오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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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정치, 경제, 예술 등이 각각 다른 점은 안다. 각자의 특수체계 내지 특수성을 인증하기도 한다. 그러나 맑스주의적 방법론 인식하에 진전되어 나아가는 문예운동이 특수성만을 인증하고 움직여 나간다면 이것은 반드시 예술상에 있어서 분파운동인 것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의 운동은 문예상에 있어서 분파운동이라거나 주의(이즘)운동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이 까닭에 무산계 ×××××× 전체성을 통한특수성만을 인증할 뿐이다. 전기에 있어서 모든 문화작용은 특수체계를 세우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문화작용은 특수체계를 세우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문화작용이 한군데로 집중되어 진행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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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문예운동으로서의 손쉽게 방향전환을 한 이유도 이곳에 있다.
 
 
 

연극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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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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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계급 예술운동 진영 내에 있어 연극운동이란 한 중요한 부분행동인 것은 물론이다 연극이 . 어느 시대, 어느 장소, 어느 민중을 보든지 중대한 의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민중교화 상으로 관찰하든지 직접 ×××× 어떠한 사상을 ××××는데 가장 유효한 점으로 보아 ×××××하여 ×××××임무를 가일층 효과 있게 감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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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선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연극다운 연극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반드시 있어야만 할 연극을 감상할 수 없는 까닭에 어느 곳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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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제일은 경제문제가 앞설 것이다. 그 다음에는 경제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하고자 하는 연극운동은 조선이라 특수사정하에 흐르고 있는 객관적 정세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반드시 해야만 할 연극운동을 그대로 묻어둘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해야만 할 운동은 어떠한 형태를 띠든지 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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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전 종합예술협회 제1회 공연을 보았다. 그때에 상연한 각본으로 말하면 현재에 우리가 요구하는 각본이 아니었던 것은 사실이다. 외국 작품 중에서도 우리 요구에 응할 만한 각본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조선의 객관적 정세가 허락지 않을 것도 잘 안다. 외국 작품 중에서도「뺨맞는 자식」같은 신비주의에 가까운, 우리 생활과의 거리가 먼 작품을 상연하려거든 차라리 우리의 손으로 된 작품을 상연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의 생활상, 우리의 고민상, 우리들의 ×××××××××××××××××으로라도 표현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우리가 요구하는 연극은 향락적 기분을 띠는 오락품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또한 신비를 찾는다거나 철학적 사색을 하기 위하여 연극을 감상하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연극운동에 있어서 일체의 행동 등(각본으로부터 무대감독, 등장배우, 무대장치 등)이 계급적으로 운전되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가까운 일본만 보더라도 프롤레타리아 연극운동이 전체성을 통한 부분행동의 상당한 역할을 수행하고자 진출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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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プロレタリア예술동맹〉동경지부 연극부인〈プロレタリア극장〉과 노농예술가연합직계인 〈전술좌〉의 활동은 가장 맹렬하였다고 아니 볼 수 없다. 전기 〈프롤레타리아 극장〉이 북해도 지방순회공연을 하고자한 제1일에 공연금지를 당하였고 〈전술좌〉는 대판에서 공연을 하려다가 이것마저 금지를 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4,5개월이 지난 오늘날까지 연극운동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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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재래의 연극운동과 새로운 연극운동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표명하는 것이다. 〈전술좌〉에 있어서 2, 3회의 공연을 거듭하여 상당한 효과를 나타낸 일이 있다. 이 앞으로라도 반드시 프롤레타리아가 요구하는 연극행동이 일본 무산계급 예술운동 진영내에 감행되리라 확언한다. 일본 동지에 ×××대한 ××운동이 ××××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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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도 바야흐로 넘어가려 한다. 신년! 우리도 신년을 새롭데 맞기 위하여 연극운동에 새로운 유의를 하고 동지 간에 연극행동을 감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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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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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조선은 영화시대라고 할만큼 외국명화와 조선영화가 상당히 유입이 되고 제작도 된다. 그래서 영화계에 있어서 황금시대, 홍수시대라고 할 만큼 전성을 극하고 있는 것이 사실적 현상이다. 이와 함께 다수한 관중을 포용하고 있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여기에 외국영화는 논의하기를 피하고 조선영화만을 개념적으로 간단히 써보겠다. 외국영화를 의논삼아 봤자 러시아 영화 같은 것은 일본에서도 상연을 못하고 퇴출을 당하는 터이니까, 러시아 것은 염두에도 두지 못한다. 다만 대부분이 결혼으로 끝을 막는 미국영화가 논제에 오를 것이다. 이것이 우리 생활과의 얼마만한 밀접한 관계가 있겠는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바의 얼마만한 도움이 될 것인가? 오히려 반동이요, 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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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조선영화란 어떻게 제작되어나가는가? 나는 최근에 조선 영화 세개를 보게 되었으니 순서를 따라서 적으면「먼동이 틀 때」,「뿔빠진 황소」,「잘 있거라」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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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세 개 영화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또한 대중은 그와 같은 영화를 요구하고 있는가「먼동이 틀 때」로 말하면 ××운동이 있은 이후로 허다한 젊은 사람들이 혹은 영어의 몸, 혹은 부랑인, 혹은 아편쟁이, 혹은 책을 팔아가면서도 정조를 지키며 살아가는 여인 …… 이와같은 현상을 보여주는 한 옆에 마지막으로는 두 젊은이에게 앞날의 희망을 붙여 먼동이 트이는 때에 새로 뜨는 해를 안고 걸어가게 하였다. 그 두 젊은이는 이 앞으로 장차 무엇을 할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원작자의 의도는 계급으로 투쟁하게 만든 인물이 아니라「먼동이 틀 때」라는 제목부터 보더라도 막연한 여명운동인 것이 틀림없다 . 이 까닭에 이 영화도 우리가 정히 요구하는 것은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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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 빠진 황소」로 말하면 노동자의 맨 밑바닥 생활을 어느 정도까지 표현한 점으로 보아 다소 수긍은 하나 그 표현방식이 너무나 야비하여 불쾌한 감을 일반 관중에게 일으키게 하였다. 원작자는 무엇을 표현하려고 애를 쓰기는 썼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또한 목적의식이 움직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노동자로 하여금 그저 벌기만 하면 그 돈을 가지고 내외 주점으로 인도한 것을 대실책이다. 노동자 생활 속에서 주색에 대한 문제도 적지 않은 문제이지만 더 커다란 것은 먹는다는 것이다. 일반 영화 작자는 이 점에 가일층 유의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리고 영화에 있어서도 이 앞으로는 우리가 요구하는 목적의식의 색채가 장면 장면 또한 전편을 통하여 상징, 혹은 암시로 표현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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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거라」로 말하면「아리랑」에 비하여 얼마나 떨어지는 작품인지 모르겠다. 오히려「풍설아」만도 못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억지로 비극을 만들려고 애쓴 것이 불쾌하다. 우리는 값싼 눈물로써 만족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먼저 두 작품도 실패한 작이지만「잘 있거라」도 완전히 실패한 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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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현상은 무엇을 반증하는 것인가? 어째서 우리가 요구하는 작품을 제작하지 못하였는가? 그 이유로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영리적 흥행정책에 있고 또 하나는 검열관계에 있는 것이다. 나는 흥행가치에 원인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검열문제에 대한 것만을 한 말로써 운위하고 그만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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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운동에 있어서도 검열이 중대한 문제이지만 영화에 있어서는 한층 더 할 것이다. 이 까닭에 우리는 조선 영화의 내용이 반동화하지 않을까 우려하기를 마지않는다. 원작은 영화의 중요한 가치를 결정하게 됨으로써 원작자는 유의의 유의를 거듭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일본에 있어서도 점차로 계급적 색채가 농후한 영화 등이 제작 상영된다고 하며 러시아영화도 세계적으로 진출한다고 한다. 계급영화 - 조선에 있어서도 ×××××××가 ×××야만 하겠다. 이것이 곧 ××××하기를 마지않는 것이다.
 
 
 

생활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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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지는 작가의 태도, 평론가의 태도를 결정하게 된다. 이 까닭에 무산계급 문예운동에 있어서 일반 운동자의 행동은 그들이 파악하고 있는 바의 계급적 생활의지의 표현이다 . 그리고 생활의지란 가장 중대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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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생활의지는 작자와 평론가의 태도를 결정하게 되는가? 부르주아 사회에 처하여서는 이중의 생활의지가 어느 시기까지 교호작용을 하고 있다. 확연하게 무산계급적 의지가 결정되기까지는 너무나 종래의 부르주아 의식과 부르주아 관념이 괴롭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과정하여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생활의지를 파악하게 된 때에야 비로소 프로작가로서의 임무를 다할 수 있고 문예운동자로서의 인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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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는 대중의 생활의지와 합류되어 나아가지 않으면 아무리 무산계급 문예운동자라고 임무를 다하였다고 인증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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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927년인 과거 일 년을 과연 대중의 생활의지와 합류되어 발전과정을 과정하여 왔는가? 어느 과정까지는 합류되어 진전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나 부족하고 미진한 점이 헤일 수 없을 만큼 허다하다. 1927년은 가고 1928년인 신년은 우리들이 새로운 행동을 기대하고 있다. 무산계급 문예운동은 전 무산계급운동과 함께 방향전환을 하게 되었고 목적의식적 지도하에 움직이는 것은 과거 일 년 동안에 운동과정이 증명한다. 그러나 실질에 있어서 운동 자체의 기능이 미미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이론으로는 전체운동과 함께 방향전환을 했으니 ×××진출을 했느니 하고 떠들기만 하였지 실천에 있어서는 이렇다 할 행동을 발견할 수 없었다. 신년! 우리는 신년부터 진정한 생활의지, ×××××××××와 합류되어 ×××××××××× 않으면 아니 되겠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그러면 조선 사람의 생활 의지는 어느 곳으로 움직여 나갈 것인가? 또한 ××××××××××××여 나갈 것인가? 우리는 이것을 주목하여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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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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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지광』, 192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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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7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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