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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을 찾으러 ◈
◇ 5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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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01~10
방정환
1
동생을 찾으러
2
(5)
 
 
3
밤은 새로 2시나 되었는지 3시나 되었는지 새벽이 가까울 듯한데, 지옥 속같이 캄캄한 집, 물건 두는 창고 속에 갇힌 창호는 두들겨 맞는 몸이 물에 젖은 솜같이 늘어져 쓰러져서 앓는 소리조차 낑낑 저절로 나왔습니다.
 
4
어깨는 칼에 찔린 것같이 아프고 머리는 땅속으로 자꾸자꾸 들어가는 것 같은데. 목과 가슴 앞이 근질근질하고 옷이 흔들릴 때마다 축축한 것을 느끼게 되니, 보지 않아도 목에서 피가 자꾸 흘러내리는 모양이었습니다.
 
5
그러나 두 손 두 발이 묶여 있으니 몸 하나 까딱할 수 없고, 아픈 대로 괴로운 대로 그대로 쓰러져 신음하다가, 날이 밝으면 또 어떻게 참혹한 짓을 당할지 그때를 기다릴 밖에 없었습니다. 생각만 하여도 흉악하고 징글징글한 청국 놈들이 아침만 되면 또 와서 무지하게 두들기거나 어디로 팔아넘길 것이구나! 할 때에 창호는 무서워서 몸서리쳤습니다. 그러나,
 
6
‘그놈들이 어저께 밤에 사흘만 있으면 순희를 청국으로 보낸다 하였는데……. 지금은 나까지 이렇게 잡혀 있으니, 이렇게 내가 잡혀 고생하는 동안에 순희는 필경 청국으로 팔려가겠구나…….’
 
7
생각할 때에는 다른 아무 고통도 다 잊어버리고 몸이 묶인 대로 그냥으로라도 총알같이 뛰어 나가서 순희를 구원해 내고 싶었습니다.
 
8
‘그렇다! 내가 이렇게 쓰러져 있을 때가 아니다. 순희가 팔려간다. 순희가 아주 팔려간다! 내가 이러고 있으면 불쌍한 순희는 누가 구원할터이냐?’
 
9
창호는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었습니다. 그러나 냄새나는 창고 속은 땅속같이 캄캄할 뿐이고, 눈에 아무것 하나 보이는 것도 없었습니다.
 
10
생각다 못하여 창호는 굼벵이같이 몸을 흔들어 벽 가깝게 가서 물구나무서듯 거꾸로 서서 두발로 벽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옆의 방과 붙은 벽에 조그만 유리창이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11
창호는 그것이 유리창인 것을 짐작하고 발뒤꿈치로 몹시 차서 깨뜨렸습니다.
 
12
‘제꺽!’
 
13
하고, 깨어져서 와르르 하고 요란스럽게 떨어지면 그 소리에 청국 놈이 또 깨어 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가슴을 떨게 하였으나 창호는
 
14
‘들키거나 말거나 해보아야지,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구두 뒤축으로 차니까.
 
15
‘제꺽!’
 
16
하고, 유리는 깨어졌습니다. 와르르 하고 요란한 소리가 날 줄 알고 가슴이 성큼하였는데, 웬일인지 그리 요란한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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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18
입 속으로 소리치면서 창호는 이번에는 발을 내리고 윗몸을 일으켜 벽을 붙어 안고 간신히 기어 일어서서 깨어진 유리창으로 옆의 방을 보니까, 거기는 밀가루 부대 같은 것이 잔뜩 쌓인 것이 허옇게 보였습니다.
 
19
창호는 묶인 채로 두 손을 들어 유리창의 유리 깨어진 흔적을 만져보니까, 깨어지고 남은 유리 몇 조각들은 창틀에 끼인 채로 칼날같이 남아 있었습니다.
 
20
‘옳지, 인제 되었다!’
 
21
고, 창호는 두 손목을 꼭 묶인 것을 그 칼날 같은 유리날 위에 내밀어 대고 슬근슬근 톱질하듯이 문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22
기뻐하십시오! 창호의 두 손목을 묶은 굵은 끈을 유리날에 썰려서 한오라기 두 오라기 차츰차츰 차츰차츰 끊어져서 나중에 창호의 두 팔이 활짝 펴졌습니다.
 
23
온몸에 넘치는 기쁨과 새로운 원기에 북받쳐 창호는 급히 발을 묶은 끈을 자기 손으로 슬슬 풀어 끌러 내버리고, 아주 자유로운 몸이 되었습니다. 그래 한 걸음에 뛰어나가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이 밖으로 걸려서 열리지 않았습니다.
 
24
‘오냐, 몸이 풀렸으니까 걱정 없다. 여기서 새벽이 되기까지 기다리자.’
 
25
하고, 창호는 바로 문 뒤에 물건 궤짝 위에 걸터앉았습니다.
 
26
‘어떻게 하면 묘하게 도망을 할까? 새벽이 되어 놈들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다시 잡혀서, 더 무서운 꼴을 당하겠구나…….’
 
27
가지가지의 생각이 창호의 가슴에 휘돌았습니다.
 
28
그러나 그때 벌써 알아챘었는지 문 박의 마루에 사람 소리가 나면서 발소리는 점점 가깝게 이리로 향해 왔습니다. 창호는 몸이 움찔해지면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29
‘들켰으니, 큰일 났구나!’
 
30
하고 생각이 그를 겁나게 한 것이었습니다.
 
31
아니나 다를까 발소리는 창고 문 앞에 뚝 그치더니, 덜컥덜컥 창고문을 열어서 안으로 쑥 밀고 무서운 청국 놈이 쑥 들어왔습니다. 창호는 안으로 열린 문 뒤에 찰싹 붙어 서서 숨도 못 쉬고 있습니다. 청국넘이 얼굴만 조금 돌이켜도 창호는 금시에 잡힐 것입니다. 창호의 가슴은 두근거리는 대로 벌럭벌럭하였습니다.
 
32
그러나 들어온 청국 놈은 손에 큰 양철통을 들고 들어와서 거기 창호가 있는지 무어가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양으로, 저편 구석에 있는 술통 같은 그릇 앞에 가서 허리를 구부리고 물건을 꺼내는 모양이었습니다. 실상은 샐녘이 되어 날이 밝아오므로, 아무보다도 먼저 음식 맡은 늙은 마누라와 젊은 사내놈이 일어나서 음식 마련하느라고 들어온 것이고, 어저께 밤일은 조금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33
창호는 그렇게 짐작하고는 살그머니 나서서 청국 놈이 돌아서서 물건 꺼내 담는 사이에 발소리 없이, 그러나 제비같이 빠르게 창고 문 밖으로 나섰습니다.
 
34
나서서는 겁이 나지마는 급한 걸음으로 복도 뒷문으로 가깝게 걸어가서 왈칵 열고 나갔습니다. 뒷문이 열리는 소리를 부엌에 있는 노파도 듣고 위층에서 자는 놈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부엌에서는 위층에 자는 주인이 변소에 가는 줄 알았고, 위층 방 속 이부자리 속에서는 하인들이 부엌에서 일은 하느라고 바쁜 줄만 알았습니다.
 
35
창호는 뒤도 돌아볼 사이 없이 뒷마당에서 변소 지붕으로 기어 올라가서, 거기서 다시 담으로 기어 올라 담에서 바깥 한길로 내려 뛰었습니다. 지옥에서 살아 나온 창호는 그제야 가슴을 버쩍 펴고 기운껏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는 곧 조용한 새벽길로 경찰서로 달음질해 갔습니다.
 
 
36
-《어린이》 3권5호 (1925년5월호).
【원문】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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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정환(方定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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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1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