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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을 찾으러 ◈
◇ 8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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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01~10
방정환
1
동생을 찾으러
2
(8)
 
 
3
5시 15분!
 
4
점점 복잡해 가는 정거장 한구석에서 별안간 호각 소리가 일어나자, 모퉁이 모퉁이에 지키고 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어딘가 하고 달려들어 본즉, 곳은 3등 대합실 옆이고 호각을 본 사람은 창호였습니다.
 
5
‘순희를 데리고 도망하던 청국 놈들이 발견되었나 보구나!’
 
6
생각하고 달려든 일동은
 
7
“어디있니? 그 놈이 어디 있어.”
 
8
하고, 숨찬 소리로 급급히 물었습니다.
 
9
그러나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몸을 움츠리고 두 눈만 무섭게 동그랗게 뜨고 숨어 있는 창호는,
 
10
“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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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말리고 나서 다시 작은 소리로,
 
12
“저기 저 짐을 부치는 곳에 세 청국 놈이 있지? 저 놈들이에요. 순희를 가두고 또 나를 가두던 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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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까 과연 짐 부치는 곳에 보기도 흉악하게 생긴 청국 놈 셋이서 짐을 부치노라고 황황히 떠들고 있었습니다.
 
14
“저 무지렁이 같은 놈들이 우리 순희를 도둑질해 갔구나.”
 
15
하고 생각할 때에 학생들의 손은 주먹이 쥐어지고 가슴은 울뚝거렸습니다.
 
16
“저까짓 놈들 당장에 잡아 낚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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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우루루 달려가려 하였습니다. 창호와 최 선생님은 깜짝 놀라 그것을 말리면서,
 
18
“아직 미리 달려들어서는 안 된다. 저놈들이 순희를 왜 감춰 가지고 가는지 그걸 알아야지. 미리 지금부터 달려들기만 하면 정말 순희는 못 찾게 될 것 아니야?”
 
19
하였습니다.
 
20
그러나 웬일인지 그의 일행은 단 세 사람뿐이고, 순희나 누구나 데리고 가는 모양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21
어쩐 일일까, 어쩐 일일까 하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굴릴 때 말은 하지 아니하나 다 각기,
 
22
‘혹시 저 짐 속에 넣지 않았을까?’
 
23
하는 생각이 한결같이 생겼습니다.
 
24
그래 여러 사람의 주목은 자연 그놈들의 두 개의 짐짝으로 쏠리데 되었습니다.
 
25
그리고 그 속에 혹시라도 가여운 순희가 들어 있으면 어쩌나 싶어서 자기네가 갇혀 있는 것처럼 숨이 갑갑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26
“우리가 달려들어서 저놈들의 짐짝을 빼앗아 풀어 보면 그만이지요. 저깟 놈들 두들겨 죽이면 어때요.”
 
27
학생들의 주먹은 부르르 떨렸습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에도 이를 악물고 서 있는 창호의 눈에는 눈물이 흥건하였습니다.
 
28
“싸울 때가 되면 굳세게 싸워야지. 그러나 나는 저 짐 속에 순희를 넣었으리라는 생각지 않는다.”
 
29
최 선생님은 이렇게 급한 때에도 침착하신 어조로, 그러나 힘있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30
“손으로 들고 가는 짐이면 모르거니와 짐으로 부쳐서 곳간차에 싣고 갈 것인데, 거기다 넣었을 리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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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셨습니다.
 
32
딴은 그럴 듯하였습니다. 그래서 짐짝에는 단념하고, 다시 아까처럼 구석구석에 갈라서서 저들 세 놈의 거동과 그리고 새로 오는 놈들을 지키기로 하였습니다.
 
 
33
5시 23분!
 
34
청국 놈들은 마침 가지고 있던 짐짝을 화물에 맡기고 돌아설 때에 이편의 학생 한 사람이 무엇을 보았는지 화살같이 날쌔게 복잡한 군중의 틈을 비집고 대합실 옆 창호에게로 뛰어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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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 났네, 크 큰일 났어!”
 
36
하였습니다.
 
37
“응, 무슨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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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인지 몰라 창호도 가슴이 성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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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으로 간댔지? 봉천이 다 무언가? 우리가 속았네. 저놈들은 지금 인천으로 가는 모양 일세.”
 
40
아주 뜻밖의 말이었습니다. 그래 창호가,
 
41
“인천이 무엇인가? 내가 분명히 봉천으로 간다는 전보용지를 보았는데…….”
 
42
“아니야. 내가 지금 일부러 가까이 가서 그 짐짝을 보았더니, 인천행이라는 전표가 달려고 또 저놈들이 가지고 있는 차표도 인천표인데.”
 
43
“그럼 큰일났네, 속았네.”
 
44
하고, 창호는 얼굴이 파래져서 급급히 호각을 불어 동무들을 모았습니다.
 
45
5시 40분에 인천행 차가 떠날 시간이 가까워오므로 정거장 안은 북적북적하는데, 창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지로 참으면서 선생님과 아버지와 외삼촌과 동무들과 어찌해야 좋을지를 의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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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으로 가는 전보용지까지는 보았건마는, 어제 그놈 중의 세 놈이 이상한 짐짝을 두 개나 가지고 인천으로 떠나니, 순희를 데리고 중국으로 도망하려면 물론 봉천으로 가지마는 인천으로 가서 배를 타고 가기도 흔한 일이라 어느 쪽을 믿어야 할지 작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47
인천 차는 이제 곧 떠날 것이요, 봉천 차도 얼마 후면 떠날 것이니. 인천으로 쫓아갔다가 봉천으로 가는 것을 놓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제 인천으로 떠나는 길도 안 쫓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48
“나누지요, 두 패로 나눠서 두곳을 다 쫓아가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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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논 중에 벌써 역부는 큰 소리로.
 
50
“인천 가실 이 진셍 호멘…….”
 
51
하고, 외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동은,
 
52
“어서 어서 차표를 먼저 사지요. 까딱하다가는 놓칩니다.”
 
53
허둥허둥하면서, 인천으로 쫓아갈 사람을 정하는 동안에 차표 다섯 장을 사오게 하였습니다.
 
54
인천 가는 세 놈은 이미 얼굴을 알아 놓았으니 아무나 쫓아가도 관계치 않고, 창호는 경성에 있어야 봉천으로 가는 차를 조사하겠으므로, 인천에는 최 선생님과 외삼촌 학생 세 명, 도합 다섯이 가기로 하고 급급히 쫓아 들어가서 놈들이 탄 차에 모르는 체하고 올라탔습니다.
 
55
그 동안에라도 여기서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인천 ○○일보 자국 내 최진환 선생께로 전보를 치고, 인천에서 급할 때는 경성역 정거장 삼등 대합실 안, 김창호에게로 전보를 칠 것까지 주도히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56
다섯 사람의 불같은 눈이 저희들의 일거 일동을 지키고 있건마는 놈들이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망하는 패 쫓기는 패를 한 차 싣고 기차는 무사히 인천 정거장에 닿았습니다.
 
57
저녁 바닷바람은 두루마기를 벗겨 갈 것 같이 들이불어오는데, 청놈 네 놈(마중 나온 놈)은 정거장에서 찾아내 온 짐짝 두 개를 어깨에 메고 느리디 느린 걸음으로 거리를 걸어가고, 그 뒤 또 그 뒤에는 다섯 사람이 띄엄띄엄 떨어져 말없이 뒤를 밟아갔습니다.
 
58
쓸쓸하게 넓기만 하고 신작로같이 훤출한 바닷가의 거리를 지나 우중충하고 냄새나는 언덕길로 휘어드니 묻지 않아도 인천서 유명한 청국 놈 거리였습니다.
 
59
대낮에도 문과 들창을 걸어 잠그는 괴상한 거리가 저녁때 불 켤 때가 되니까, 더한층 우중충하고 음침하여 마귀의 나라에라도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60
눈치를 챈 것 같이 놈들이 흘금흘금 뒤를 돌아다볼 때마다 가슴이 선뜻선뜻하건마는, 그래도 꾸준히 뒤를 따라 끝까지 가노라니, 놈들은 그 거리도 다 지나서 맨 끝 산모퉁이가 맞닿은 곳에 조그마한 창고 같은 단층 벽돌집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 집은 아주 아편쟁이나 노름꾼이나 도둑놈 같은 떼들이 옹기종기 모여 엎드려 있는 듯싶어 보이는 집이었습니다.
 
61
이제 소굴을 알아 놓았으나, 학생 한 사람은 곧 신문지국으로 전보가 오거든 받아 달라는 부탁을 하러 보내고, 네 사람은 슬금슬금 그 집 뒤로 돌아 나무숲에 몸을 가리고서서 집 속의 동정을 살피느라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62
차차 어두워 가는 밤, 캄캄한 집 속에서 가끔 사람의 소리가 들리기는 하나, 도무지 알아듣지 못한 청국말 소리뿐이었습니다.
 
63
‘암만해도 북쪽으로 도망하는 것을 공연히 여기고 쫓아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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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후회하는 생각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65
그러나 그때 별안간에 참말 별안간에 네 사람의 귀를 찢는 듯이 들려온 어린이의 외마디 울음소리! 네 사람은 저기에 찔린 사람같이 한동안 멀건하였습니다.
 
66
“분명히 울음 소리였지?”
 
67
“우리나라말 소리였나, 청국말 소리였나?”
 
68
“글쎄요. 별안간에들어서 몰랐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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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수군할 때에 또 다시,
 
70
“아야야!”
 
71
하고 악착스럽게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뒤이어 엉엉 소리가 나며 흑흑 느껴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네 사람의 가슴은 뛰놀았습니다. 그리고 온몸이 부르르 떨리었습니다. 분명히 ‘아야야!’ 한 것은 우리나라 소녀였습니다.
 
72
“순희다! 분명히 순희다!”
 
73
“어서 빨리 가서 서울 정거장에 창호에게 순희가 여기 있다고 전보를 쳐라.”
 
74
학생 한 사람은 가만가만 소리없이 기어서 급히 우편국을 향햐여 달려가고, 나머지 세 사람이 여차하면 달려 들아갈 차비를 차리고 있었습니다.
 
75
이제라도 곧 뛰어 들어갈 형세로 몸을 가뜬히 하고 있으나, 가슴은 세 사람이 똑같이 두방망이질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76
“아야야, 아야야!”
 
77
소리가 연거푸 나면서 불쌍한 순희가 당장에 맞아죽는 것 같은 울음소리가 들릴 때, 최 선생님과 삼촌과 학생 한 사람은 참지 못하고 와락 뛰어나가려 하였습니다.
 
78
그러나 그때 그보다 먼저 세 사람의 뒤에서 무서운 소리를 지르면서 와락와락 달려드는 것이 있었습니다.
 
 
79
-《어린이》 3권9호 (1925년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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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1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