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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설 춘향전 (一說 春香傳) ◈

◇ 수절(守節) ◇

해설목차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1925년
이광수

1. 守節(수절)

 
1
구관 사또 자제 이 도령이 서울 올라간 후에 춘향이가 수절한다는 소문이 나자 남원 부원내에 있는 관속, 건달, 한량 할 것 없이 오입쯤이나 한다는 작자들은 모두 춘향에게 맘 을 두게 되었다. 그래도 사또 자제 이 도령이란 이름 때문 에 얼마 동안은 감히 건드려 볼 생각을 내이지는 못하였으 나 몽룡이가 서울로 간지가 한 달 지나 두 달 지나, 구관 사또도 무서움이 점점 스러지게 되니 이 패들도 움직이기를 시작한다.
 
2
"얘. 내 춘향이 놀려내랴?"
 
3
하고 한 작자가 장담하면,
 
4
"어림없다. 그년이 젖 먹을 적부터 맵기가 호초알이다."
 
5
하고 한 작자가 고개를 흔들고 또 한 작자가,
 
6
"네깟놈은 어림도 없다. 춘향이 놀려낼 놈은 이 세상에 나 밖에는 생겨 나지를 아니하였느니라."
 
7
하고 장담하면 다른 한 작자는,
 
8
"사나이로 생겨 나서 춘향이 한 번 못 안아 보면, 공연히 어미 배만 아프게 한 심이니."
 
9
하고 충동이를 한다.
 
10
이 모양으로 술집에서 이야깃거리가 되고 노름판에서 이야 깃거리가 되고 공사 없는 때 삼문간과 장방에서까지 이야깃 거리가 되니 심지어 어염집 더부살이 놈까지,
 
11
"나도 한 번 춘향이를 얼러 보았으면."
 
12
하는 생각을 내게 된다.
 
13
"어떤 잡놈은 팔자가 좋아서, 춘향 아씨네 안머슴 산다네 에히야."
 
14
하는 노래까지 생기게 되었다.
 
15
이리 되니 초어스름이면 춘향의 집 담 모퉁이로 대문 앞으 로 담뱃대를 버티고 공연히 왔다갔다하면서 잔기침하는 자 가 하나 둘 생기게 되어 춘향이 집 청삽사리를 부질 없이 짖게 한다. 그러다가 혹 아는 놈끼리 서로 맞다지르면,
 
16
"허, 자네 어디 가나?"
 
17
"응, 나 저기 누구 좀 보러 가네. 자네는 어디 가나?"
 
18
"나 말인가. 나도 저기 누구 좀 만나러 가네."
 
19
하고 서로 서먹하고 싱거워서 가장 바쁜 일이나 있는 듯이 빨리빨리 걸어간다.
 
20
이러기를 얼마를 하노라면 그중에 가장 용기 있는 자가 호 기스럽게,
 
21
"이리 오너라! 문 열어라!"
 
22
제 첩의 집이나 찾는 듯이 야단을 하고 만일 상단이나 월 매가 마지 못하여 문을 열어 주면,
 
23
"춘향 아씨 무사한가?"
 
24
하고 바로 친구의 집에나 온 조요, 그리고는 서슴치 않고 뚜벅뚜벅 춘향의 방 앞으로 가서 제 방문 열 듯이 문을 벌 꺽 열어 젖히고는 기생집에서 하는 조로,
 
25
"태평하오? 무사한가?"
 
26
하고 턱 들어 앉아서는 누워 있는 춘향을 일으켜 놓고, 담 배 먹고 이야기하고 맘대로 놀다가 가고, 그중에도 뱃심 좋 은 놈은,
 
27
"춘향아, 소리나 한 마디 하여라!"
 
28
하고 바로 호기를 부리고, 더 심한 놈은,
 
29
"너 이 도령 기다려야 쓸데 없다. 대갓집 자식이 기생첩 여남은 개 못하면 행세를 못하는 법이니, 그래 어느 천년에 너 찾을 줄 아느냐. 나하고 살자."
 
30
하고 직설거로 내 붙이기까지 한다.
 
31
이러한 축이 하나씩 둘씩 자꾸 늘어 가니 춘향의 집 문전 에 거의 사람 끊일 새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월매는 비록 일점 흑심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오는 장자들 중에 다행히 큰 고기나 하나 걸리면, 첫째로 춘향의 상사병도 낫겠고, 둘 째로 몽룡에게 헛미끼 때운 것도 보충할 생각을 하여 처음 에는 딱딱하게도 굴었으나, 점점 아양을 부리게 되었을지라 도, 춘향은 이 작자들 찾아오는 것이 분하기도 하고 시끄럽 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사또 자제 이도령이 없으니 어디 등 을 대일 데가 있을까. 한사코 대문을 안 열어 주면 발길로 차고 지랄을 하니 남부끄럽고, 방에 들어온 뒤에 푸대접하 면 당장에 수모도 수모려니와 원혐을 품어 무슨 짓을 할는 지 모르겠고, 마치 물귀신에게 단련을 받는 사람처럼 춘향 의 얼굴에는 날로 병꽃만 노랗게 핀다.
 
32
"이년, 양반 서방했다고 건방지게...... 주릴할 년 같으니."
 
33
춘향이가 조금만 빳빳이 굴면 다짝 고짜로 이런 욕설이 나 온다.
 
34
"이년, 양반 서방해서 양반이 되는 것 같으면 팔도 잡년 에 양반 아닌 년이 없겠고, 양반집 종년들 행랑것들 모두 다 양반 되었겠다. 아니꼬운 년 같으니."
 
35
이러한 욕설이 나오고, 또 혹 같이 살자든가 하룻밤 같이 자자는 작자더러 춘향이가 몽룡을 위하여 수절한다는 뜻을 말하면,
 
36
"건방진 년 다 보겠네! 수절, 요절이 어떠냐. 기생년 이라 는 것이 동각이 나룻배와 같아서 양반이나 상놈이나 선가만 주면 태울 것이요, 한뱃짐 실어 건느고 와서는 또 다른 사 람 태울 것이지 기생년이 수절이 다 무엇이냐."
 
37
하고 대드는 놈까지 있다.
 
38
또 그 중에는 제발 덕분에 날 사랑해 줍소사 하고 거의 날 마다 밤마다 석고 대죄정 하배로 빌붙는 놈도 있고, 나는 벼를 몇 천 석을 하고, 어디 좋은 정자가 있고, 요건 첩도 내보낼 때에 상상답으로 몇 백 석지기를 떼어 주었으니 내 게 오너라, 하고 중매를 보내는 중늙은이도 있고, 글씨도 곧 잘 쓰고 글도 곧잘 지어 문장과 풍류를 가지고 춘향의 맘을 움직여보려는 선비도 있고,
 
39
"네가 만일 내 말을 안 들으면 모월 모일 모시에는 내 칼 을 맞으리라."
 
40
하고 위협하는 놈도 있고, 또 그 중에는,
 
41
"내가 너를 생각하여 병이 골수에 들어 백약이 무효하니 이 병을 고칠 자는 오직 너뿐이라. 나를 불쌍히 여겨 한 번 만 나를 만나기를 허하라."
 
42
하고 병 핑계로 애걸복걸하는 자도 있고, 혹은 사람을 보 내어, 혹은 월매를 꾀어, 혹은 무당 사주장이 같은 것을 보 내어,
 
43
"춘향 아가씨는 인물도 잘 나고 인복도 있지마는 팔자가 세어서 꼭 두 번 팔자를 고치어야겠는 걸."
 
44
하고, 손금보기가 춘향의 손금을 보면 월매가 곁에 있다가, 솔깃하여,
 
45
"그래 팔자를 고치면 복록이 있소?"
 
46
"아이 그럼은. 어디 자세히 봅시다."
 
47
하고 곡조를 맞추어,
 
48
"곤명은 성씨요 오호...... 십 팔세는 가서 어허...... 팔자 장문 에헤 복록금과 자손금은 좋으나 아하...... 내외금이 라......"
 
49
하고는 다시 예사 말조로,
 
50
"암만해도 둘쨋 번에는 김씨 가문으로 들어가겠다. 본처 로 가면 또 이별수가 있으니 암만해도 부실로 가야 하겠 다."
 
51
하고는 또 노랫조로,
 
52
"팔자는 장문에 그렇게 에헤 삼신제석 칠성님께서 점지 하신 것을 어찌하느냐. 김씨 가문에 부실로 가면은 아들 삼 형제 딸 삼형제 에헤 가즈런히 낳고 오호 복록이 무궁하리 라......"
 
53
하고 다시 예사 말조로,
 
54
"재미가 깨보송이 같겠다."
 
55
이 모양으로까지 꾀인다.
 
56
그러나 춘향의 맘이야 움직일 리가 있으랴. 다만 날로 몸 만 축하고 맘만 상할 뿐이다.
 
57
"어려워라, 어려워라, 수절하기가 어려워라. 상년이 수절 하기 더욱 어렵다만 기생이 수절하기는 죽기보다도 어려운 지. 양반 못 되고는 수절조차 못하겠네 그려!"
 
58
하고 춘향은 혼자 한탄하였다.
 
59
그러나 그보다도 더 어려운 것은 서울 몽룡에게서 방자 편 에 편지 한 장이 오고는 일년이 넘도록 소식이 끊어진 것이 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하고 까치만 깍깍 지저귀어도 개만 콩콩 짖어도 서울 편지만 기다려도 편지는 오지 아니하고 건달만 모여 들었다.
 
60
"날 잊고 가신 님을 나는 어이 못 잊고서 주주야야로 상 사루만 흘리다가 잠이 들면 꿈이 되어 님의 곁을 따르는고?
 
61
차라리 님 그리는 상사몽이 귀뚜라미 넋이 되어 장장 추야 깊은 밤에 님의 방에 들어 있어 날 잊고 깊이든 잠을 깨워 나 볼까나. 어쩌면 야속히도 한 장 안 주시나. 죽으시었나, 잊으시었나. 죽으시었으면 혼이라도 오시려든 아마도 날 잊 었네. 어찌 그리도 야속하실까. 청춘의 고운 양자 님 생각에 피골이 상접하였으니 님이 비록 대과 급제하여 날 찾아 오 신다 한들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을까. 내 무덤이나 보러 오시려나. 언제나 오시려나. 날 이미 잊은 님을 나만 부질없 이 생각하고 알뜰살뜰이도 애를 끓는 것이 아닌가. 나도 차 라리 잊어버릴까, 잊어버릴까. 어이 잊어버리고, 못 잊으리 라! 님이야 잊으라 하라. 나는 잊지 못하리라."
 
62
하고 울며 탄식할 뿐이다.
 
63
이 부사가 올라간 후에 김 부사라는 이가 남원에 좌정하여 한 일년 동안 있다가 나주 목사로 이배하여 가고, 새로 난 남원 부사가 남촌 사는 변 학도라는 양반이다. 얼굴이 반반 히 난 까닭인지 소년시부터 색을 좋아하여, 종년이고 행랑 것이라도 들어오는 대로 모조리 손을 대이고, 남의 유부녀 수절 과부까지도 엿보다가, 톡톡히 망신을 당하기도 한두 번이 아니어서 친척과 동류간에, 좋게, 말하면 오입장이 좋 지 못하게 말하면 망나니라는 이름을 들어 왔다. 글이라고 는 편지 한 장 변변히 쓰지 못하되, 양반이란 지체가 좋와 서, 조상의 뼈 덕과 외가 처가 결린 덕으로 남행초사로 시 작하여, 이골 저골 조그마한 산읍으로 현령 군수를 돌아다 니며, 계집과 돈 때문에 민요도 몇 번 겪어 의례면 찬 마루 방 잡을 자야만 옳을 사람이언마는, 그 역시 양반 덕에 도 리어 승차하여 상전에 말망 낙점으로나마 천만 의외에 남원 부사 한 자리를 얻으니 변 학도의 의가 양양한 모양은 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전라도 남원이 색향이란 말과 남원에 명 기 춘향이 있단 말을 들으니, 일각이 삼추 같고 좌불 안석 하여 날로 신연 하인 오기만 기다린다.
 
64
"대체 남원이 몇 리나 되길래 사오일이 넘도록 신연 하인 기척이 없노?"
 
65
하고 자못 불편하던 차에 잔뜩 졸라 열 사흘만에 남원부신 연 관속들이 올라와 수청 불러 거래하고 현신하러 들어온 다. 신연, 유리, 이방, 후방, 예방, 병방, 형방, 공방, 아전이 며, 통인 급창 사령, 군노, 허다한 관속들이 차례로 겨하여 나와,
 
66
"신연 이방 현신 아뢰오."
 
67
"신연 통인 현신 아뢰오."
 
68
"신연 수배 현신 아뢰오."
 
69
"신연 급창 도사령 도군노 도방자 현신 아뢰오."
 
70
하고 현신하니 변 부사 눈도 안 거들떠 보고 앉았다가 소 리를 벼락같이 지르며,
 
71
"저놈들 모조리 몰아 내치라. 고이한 놈들. 남원이 몇리길 래 인제서야 대령한단 말이냐. 한서부터 주리로 죽을 놈들 바삐 내치라."
 
72
하고 호령이 추상 같다. 호령이 내리니 어느 영이라고 거 역하랴. 꼭뒤가 세 뼘씩이나 한 주먹건대들이, 벌떼같이 신 연 이방 이하로 꼭뒤질러 몰아 내칠세, 문 밖으로만 내치는 것이 아니라 호기라 뛰는 대로 나서 영에 띄애 남산골 네거 리까지 몰아나와서 그 섬에 장악원 앞까지 활활 몰아 한숨 에 구리개 병문까지 몰아내뜨리고 돌아오니 변 부사가 골김 에 다 몰아내치기는 하였으나 다시 생각하여 본즉 모양도 아니 되고 제일 그곳 소식을 물을 곳이 없어 걱정이다. 청 지기를 불러,
 
73
"여보아라, 남원 하인 하나도 없느냐. 가 보아라."
 
74
이때에 마침 방자 하나가 발병이 나서 낙후되어 몰아내치 는 통에도 참예를 못하고 저축저축 들어와서,
 
75
"신연 방자 현신 아뢰오."
 
76
하고 현신을 한다. 그 형상이 아주 허술하여 얼굴은 검하 고 한 눈은 굿고 흉악히 추하게 생겼다. 부사는 방자를 보 고,
 
77
"압다 그놈 잘났다. 외모가 심히 순박한 것이 기특한 놈 이로다. 네 고을 일을 다 자세히 아느냐?"
 
78
한즉 방자는 부사의 치살리는 말에 신이 나서,
 
79
"소인이 이십여 년 그곳에 생장하였사오니 털 끝만한 일 이라도 소인이 모를 고이한 말씀이오나 없읍니다."
 
80
부사 허허 웃으며,
 
81
"어허 시원하다. 알든지 모르든지 위선 관원의 비위를 맞 추어 대답하는 것이 기특하다. 네 구실은 일년에 얼마나 먹 고 다니느냐?"
 
82
"아뢰옵기 황송하오되 소인의 원 구실은 일년에 황촌 넉 섬뿐이온데, 그러하온데다가 이런 때에 행차를 뫼시러 오옵 거나 관가 구실로 서울 왕래를 하옵거나, 자로자하는 법이 옵기에 길에서 주막에 외상 먹고 다니옵거나, 여북하오면 굶고 다닐 적이 많사옵고, 그러옵기에 변지변리 지리하여 주는 경주인의 빚이 무수하옵고 환상도 매양 바칠 길이 없 사와 볼기 맞기를 섣달 그믐날 흰떡 맞듯하옵니다."
 
83
"불쌍하다. 네 고을 방임에 많이 먹는 방임이 얼마나 되 느냐?"
 
84
"예. 젓사오되 수삼천금 쓰는 방임이 서너 자리 되옵니 다."
 
85
"그러면 너를 다 시키리라."
 
86
"황송하오된 상덕이 하늘 같사오이다."
 
87
부사는 말을 이어 방자더러,
 
88
"그는 그러하고 여보아라. 네 고을에 무엇이 있다 하더구 나. 압다 유명한 무엇이 있다 하더구나."
 
89
"젓사오되 무엇이온지 모양만 하문하옵시면 알아 바치오 리다."
 
90
부사 풀갓끈에 뒷짐지고 대청으로 거닐면서,
 
91
"압다 이런 정신이 왜 있으리. 고약한 정신이로구나. 금시 에 생각하였더니 고사이 깜빡 잊었구나. 정신이 이러하고 도임 후 수다한 공사를 어찌하리. 성화할 일이로다. 애구, 무슨 양이 옳지 무슨 양이 있느냐. 아조 논난 없이 절묘하 다더구나."
 
92
"양이라 하옵시니 무슨 양이오니까?"
 
93
"허, 그놈 그것을 모른단 말이냐? 너 나무래 무엇하리. 그 놈 내려가 종차 알려니와 제일 급히 내려가 놓고 볼 말이니 네 고을이 서울서 몇 리나되나니?"
 
94
"예, 젓사오되 본관 읍내가 꼭 육백리로소이다."
 
95
"그러면 내일 일찍 떠났으면 저녁참에 들이 다히랴?"
 
96
방자 기가 막혀 부사를 한 번 힐끗 보고,
 
97
"젓사오되, 내일 숙배나 하옵시고, 각사 서경이나 하옵시 고, 모레 한겻쯤 떠나시면 자연 날 궂는 날 끼이읍고 가압 시다가 감영에 연명이나 하옵시고, 연로 각 읍에 혹 연일 유숙이나 되옵시고 혹 구경처에 놀이나 하옵시고, 천천히 내려 가옵시면 한 보름이나 하여 도임하옵시리다."
 
98
"어허, 이놈 고이한 놈. 보름이라니. 그놈 곧 구워다힐 놈 이로구나. 이놈, 아까 시킨 서너 자리 방임을 다 제명하라.
 
99
그놈 쫓아내고 청지기 불러 신연 하인에게 내 분부로 제잡 담하고 길 바삐 차리라 하라."
 
100
이튿날 평명에 변 부사 사은 숙배 얼른하고 장안 서경 잠 깐하고 사당에 참배하고 길을 떠나 내려간다.
 
101
전배 한쌍 앞에 서서 통량갓에 큰깃 꽂고 패영 한삼 너훌 너훌 가티창옷 펄렁펄렁 유목 곤장에 방울 달아 둘러 메고 일산 앞에 죽 갈라가서,
 
102
"예라 이놈 나지 마라."
 
103
하고 소리치고, 그 뒤에 변 부사는 구름 같은 벌련에 덩그 렇게 올라앉아 모란새김 완자창을 좌우로 반쯤 열어 놓고 일등 마부 경마 잡고 천장옷 입고 키 큰 사령 뒤채 잡아,
 
104
"마부야, 네 말 좋다 하고 일시 마음 놓지 말고 두 팔에 힘을 올려 양엽 기울지 않게 마상을 우러러 고루 저어라."
 
105
하면 앞선 마부는,
 
106
"굳은 돌이야."
 
107
"지방이야."
 
108
하고 연해 소리를 지르고, 부사의 벌련 좌우에는 육방 아 전 나졸 일산 구종, 말탈 자는 말을 타고, 걸을 자는 걸어서 따라오는데, 신연 이방의 치레를 보면 고양나이 저고리바지 반주동옷 모시직령 조촐하게 차리고 갖은 부담에 올라앉아 벌련 뒤를 따르고, 통인은 남방수수 누비바지 삼팔동옷 갑 사괘자 발향한층 학슬 안경을 알 듯 모를 듯 넌짓 차고 가 진 부담에 착전립하고 올라 앉았고, 급창은 키 크고 길 잘 걷고 영리하고, 말 잘하기로 유명한 놈이라. 외올 망건 대모 관자 진사당줄 달아 쓰고, 언월 상투 산호동굿 호박풍잠에, 이백줄 평포립을 한일자 지게 반듯이 쓰고, 백수주 누비바 지 한산모시 뱅패철익자락을 각기 접어 흑전사 수건으로 뒤 로 젖혀 잡아매고 숙수반배 고단배자에 은장도를 비슷 차 고, 청천모초 허리띠를 좌견같이 넓게 접어 무릎 아래 떨어 뜨리고, 도리불수 금낭에다 대구팔사 꿰어 차고, 협낭 쌈지 술쌍끈은 오색으로 얼른거리고, 사날 짚신 엽총따서 낙고지 로 들매어 신고, 결백한 장유지로 대님 접어 잡아매고, 청장 줄 검고 매고 활개를 활활 치며,
 
109
"대마 구종아, 너 갈데 보지 말고 말 갈데 보아라. 주먹같 이 내민 돌이 서슬이 퍼렇고나, 팔 힘을 올려 고로 걸어 라."
 
110
하면 내마 구종은,
 
111
"예, 숨은 돌이야."
 
112
하고 돌 있는 것을 알린다.
 
113
전후 좌우로 옹위한 신연 군노들은, 산수털 벙거지에 남일 광단 안을 받치어 날랠 용자 떡 붙이고, 궁초 전복에 시뻘 건 흥광대에 배자 토수 은장도 오색 수건이며 남북견대에, 금낭을 여럿 달아 뒤로 숙여 비스듬히 둘러매고 불량한 눈 방울을 이리 저리 궁글리며,
 
114
"예라 예라 이놈 나지마라."
 
115
하고 소리소리 외치니 십리나 늘어선 듯한 남원 부사 행차 의 위엄이 무시무시하다.
 
116
이 모양으로 위의를 갖추고 남대문 내닫아 돌모루 동적강 얼른 건너 남태령 넘어 과천군에 숙소하고, 사천평에 중화 하고, 늑미당이 지나 수원군 월참하여 소사 술막 중화하고, 성환지나 덕평을 월참하여 원터에 중화하고, 공주 감영 숙 소하고, 경천 지나 노섬관에 중화하고, 사다리 지나 은진관 에 숙소하고, 여산부 중화하고, 능기울지나 삼례 긴둥 넘어 가서 전주 감영 연명하고, 노고바위 숙소하고, 굴바위 더위 잡아 새술막에 중화하고, 임실관 숙소하고, 운수바위 중화하 고, 남원부 오류정에 개복청 헐숙하고, 삼반 관속육방 아전 이 지경등후하니 연봉육각 소리가 울려난다. 대장청도 드라 청도 한쌍 홍문 한쌍, 곰고 한쌍, 호통 한쌍, 나발 한쌍, 바 라세악수 두 쌍, 고두쌍 저 한쌍, 순시 한쌍, 영기 두쌍, 중 사령 좌관이 우령전 집사 한쌍, 기패관 두쌍, 군노 직영 두 쌍, 주라 나발 호적 행고 대평소 천아성이 힐니나누나네 너 나니 괭 뚜처르르뚜 빠 삘릴리 허하고 천지가 진동하듯이 운다. 기치검극은 일광에 번쩍거리고 일산의 긴 노마며 권 마성이 더욱 좋다.
 
117
집사 장교 행렬 뒤에 별대마병 오십쌍, 인신통인 관노, 급 창, 다모, 방자가 늘어서고 그 뒤에는 아이 기생은 녹의 홍 상으로 어른 기생은 착전립하고, 육각으로 취타고삼현으로 전배하여 성문에 입성포요. 관문에 하마포로 동헌으로 들어 가니 위의도 장하다.
 
118
도임 후 삼일만에 좌기할세 좌수 별감 현알하고, 모든 장 교 군례 받고 육방 아전 현신하고 기생 통인 문안 받은 후 에 부사 신연 유리를 불러,
 
119
"네 고을에 대소사는 네 응당 알 것이니 바른 대로 아뢰 어라."
 
120
하고 분부하니 신연 유리 분부 듣고 환상 민폐 진걸 복수 피수도안 대무읍사를 대강 대강 아뢰이니 부사 골을 내어,
 
121
"네 고을에 유명한 것 있다더구나. 그것부터 아뢰지 아니 하고 웬 같잖은 딴소리만 하느냐. 무슨 양이라고 있다더구 나."
 
122
유리 무슨 뜻인지 몰라 겁결에,
 
123
"양이라 하옵시니 창고에 군량이요, 육고에 우양이요, 공 고에 잘량이요, 마구에 외양이요, 쥐잡는 고양이요, 불가서 공양이요, 수줍은 사양이요, 시냇가에 수양이요, 해다지어 석양이요, 남녀간에 음양이요, 엄동설안 휘양, 허다한 양이 무수하온데 대강 이러 하외다."
 
124
부사 고개를 홰홰 내 저으며,
 
125
"압다 압다 다 아니로다."
 
126
갓사오대 사람 못된 것은 서울서는 무엇이라고 하옵시는지 모르거니와 소인의 고을에서는 잘양이라 하옵니다.
 
127
"그도 아니다."
 
128
자수 곁에서 듣다가 민망하여 꿇어 앉으며,
 
129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만의 고을에 소산으로 물 맑은 새 양이 많사외다."
 
130
부사 증을 내어,
 
131
"유리라 하는 것은 관장의 이목이니 변동 부부지간이라.
 
132
그런고로 유리라 하거늘 다 삭은 바자틈에 노랑개 주둥이처 럼 말 짓이 고이하고."
 
133
하고 통인 불러 좌수를 몰아내친 후에,
 
134
"여보아라, 삼반 관속들이 나를 지영하느라고 모두 가쁜 모양이니, 다른 점고는 다 제폐하고, 점고를 넘어 아니하는 것도 무미하니 그편에 있는 기생 점고로 하게 하라. 네 고 을이 대무관 색향이라 하니 기생이 모두 몇 마리나 되냐 니?"
 
135
"형방이 아뢰옵. 원기, 수비, 대비, 정속비, 모두 합하오면 한 오십수 되옵니다."
 
136
"매우 마뜩하구나. 기생 유명한 것은 하나도 유루 말고 톡톡 떨어서 점고에 현신하게 하라."
 
137
부사의 분부 듣고 이방이 나와 모든 기생 지휘하며 혼잣말 로,
 
138
"이 사또 알아 보겠다. 사뭇 똥항아리요. 잘양의 아들이 내려왔구나."
 
139
형리 수노 불러 기생 도안을 들여놓고 오십여 명 남원 기 생 죽 늘어선 앞에서 높여 진양조로 호명한다.
 
140
"연면무산 십이봉에 조운모우 양 대선이."
 
141
하고 형리가 부르는 소리에 행수 기생 양 대선이 치마를 거듬거듬 한편으로는 걷어 안고 요만하고 앉아,
 
142
"예, 등대 나오."
 
143
"만경창파 깊은물에 늠실늠실 능파야."
 
144
"예, 등대 나오."
 
145
"연지분이 향기롭다 마음조차 향심이."
 
146
"예, 등대 나오."
 
147
"오공복판 칠현금을 타고 나니 탄금이."
 
148
"예, 등대 나오."
 
149
"저님아 잊지마소 길게 사랑 영애야."
 
150
"예, 등대 나오."
 
151
"옥사창이 밝았으니 중추팔월 월색이."
 
152
"예, 등대 나오."
 
153
"칼날같이 날카롭다 버석버석 죽엽이."
 
154
"예, 등대 나오."
 
155
"녹파에도 향기로다 아침에 핀 연화야."
 
156
"예, 등대 나오."
 
157
"주황당사 벌매듭에 차고 나니 금낭이."
 
158
"예, 등대 나오."
 
159
"여무지게도 생겼다 이름조차 똑똑이."
 
160
"예, 등대 나오."
 
161
"아들 낳기 바랐더니 딸이 났다 섭섭이."
 
162
"다시는 딸 낳지마소. 인제 그만 먹석이."
 
163
한참 이렇게 점고 하는 것을 보고 듣다가 부사 참지 못하 여,
 
164
"아서라. 점고 그만 하여라. 조기 저 대강이로 일곱쨋년 조년 나이 몇 살이니?"
 
165
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그 기생이 황공하여 허리를 굽 히며,
 
166
"서른 한 살이 올씨다."
 
167
"아서라. 계집이 삼십이 넘었으니 시절이 다 지났다. 너는 저만큼 밧줄로 가 서라."
 
168
하고 다시 또 한 기생을 가리키며,
 
169
"저 얼굴 허연년 이름이 무엇이니?"
 
170
"영애 올씨다."
 
171
"흥, 이름은 좋구나. 나이는 몇살이니?"
 
172
영애는 부사가 나어린 것을 좋아하는 낌을 알고 부썩 줄 여,
 
173
"열 여섯 살이요."
 
174
부사 호령하되,
 
175
"조년 뺨 치라! 고이한 년 같으니. 이팔 청춘이라니까 열 여섯 살이면 좋을 줄 알느냐. 네 딸이 열 여섯 살은 되었겠 다. 고이한년 같으니."
 
176
하고 부사 노발 대발하여,
 
177
"한서부터 주리를 할 년들. 더벙머리 댕기 치레하듯 파리 한 강아지 꽁지 치레하듯 꼴 어지러운 것들이 이름은 무엇 이 무엇이 나오 나오 하고, 거 원 무엇들이니? 하나도 쓸 것이 없고 분만 바르면 되는 줄 알고, 회벽칠하듯 하고 연 지를 찍는다는 것이 쥐잡아 먹고 입 안 씻은 고양이 주둥이 모양으로 주둥이와 볼따구니가 왼통 빨갛고, 눈썹을 짓는다 는 것이 조우에 꼭 석대 씩만 남겨 놓고...... 어허 주리할, 머리를 뽑을 년들 같으니. 이년들 다 묶어 몰아내치라. 기생 이란 이런 것들 밖에 없단 말이냐?"
 
178
하고 형리를 노려본다.
 
179
"옳다. 이때야말로 춘향이 년에게 무안 당한 분풀이를 하 리라."
 
180
생각하고 형리 엎디어,
 
181
"전비에 춘향이 쉬오."
 
182
부사 입이 벌어지며,
 
183
"춘향이가 먹석이 아례란 말이냐?"
 
184
"예 아직 나이 어린고로 그러하외다."
 
185
"그러면 무엇 무엇 여럿을 부르지 말고 거꾸로 그 하나만 부르면 그만이지. 그러나 그는 왜 나오, 말은 없고 쉬오, 하 니. 웬 일인고?"
 
186
"예, 아뢰옵기 황송하오되 기생 중 대비 마치옵고 면천하 여 기안에 이름 없는 춘향이올씨다."
 
187
부사 정신이 쇄락하여,
 
188
"내가 서울서부터 들으니 향명이 유명하시다더구나."
 
189
"그 사이 평안하시냐?"
 
190
"예, 아직 무사하외다."
 
191
"또 그 대부인도 계시다지? 안녕하시냐?"
 
192
"예 아직 무고한 줄로 아뢰오."
 
193
부사 바싹 다가 앉으며,
 
194
"춘향을 일시라도 지체 말고 속히 불러 대령하라."
 
195
곁에서 호장이 듣고 앉았다가 속으로 형리를 원망하며,
 
196
"호장이 아뢰오. 춘향이 본시 면천하와 기안에 이름이 없 사올 뿐더러 구관 사또 좌정시에 책방 도련님이 머리얹어 백년 해로 언약하옵고 지금 두문하고 수절하옵니다."
 
197
부사 호장이 아뢰는 말을 듣고,
 
198
"허허, 세상에 번괴로다. 구상유취 아이들이 첩이라니. 또 본래 기생년이 수절이란 말이 가소롭다. 기생년이 수절을 하면 우리네 양반댁 부녀들은 기절을 한단 말이냐. 까마귀 학이 되며 각관 기생 열녀되랴. 이제로 바삐 불러 현신시켜 라."
 
199
형리 영을 듣고 방울을 덜렁 채니 사령들이 우루루 나오 며,
 
200
"여이."
 
201
"춘향 바삐 대령하라."
 
202
"여이."
 
203
하고 덜렁쇠라는 김 번수가 뛰어 나가며,
 
204
"이 번수야."
 
205
하고 물렁쇠라는 이 번수가,
 
206
"왜야?"
 
207
"걸리었다 걸리었다."
 
208
"그 누구가 걸리어?"
 
209
"춘향이가 걸리었다."
 
210
"옳다. 그 난장맞고 담양 갈 년. 양반 서방하였다고 태가 락이 많더니라. 그물 코가 삼천이면 걸릴 날이 있다더니, 압 다 그년 잘 걸렸다."
 
211
덜렁쇠 물렁쇠의 어깨를 툭 치며,
 
212
"춘향이 사정 두는 놈은 너도 네밀 붙고 나도 네밀 붙으 리라."
 
213
하며 김 번수 이 번수 두 사령이, 산수털 벙거지에 남일 광단 안을 받치어 날랠 용자 떡 붙이고 총증지굴 돌상모에 눈 고운 공작미를 당사실로 꿰어 달고, 야청 쾌수 단목 쾌 자 남수화주 전대 띠고 환도 사슬 길이 차고, 편숙마 메투 리를 낙고지를 곱걸어 둘러메이고 대로상으로 발이 땅에 안 붙게 달아난다.
 
214
춘향의 집에 다다라,
 
215
"춘향아!"
 
216
하고 소리를 지르며, 대문 중문 박차고 우루루 뛰어 들어 가니, 이때에 춘향은 몽룡만 생각하고 머리 싸매고 자리에 누워 울고 있다가, 사령들의 야단하는 바람에 깜짝 놀라 문 틈으로 엿보니 둘이 다 평소부터 춘향에게 원혐 있는 놈들 이라, 춘향은 분명 새로 도임한 신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을 짐작하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뛰어나가 두 사령의 손을 잡고,
 
217
"에그 김 패두 오라버니, 에그 이 패두 오라버니. 오늘 무 슨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오시었소? 이번 신연길에 노독이 나 과히 나시었소? 형님들 다 편안하시고 어린 조카들도 다 잘 있소? 이게 얼마만이요. 자 들어 오시오."
 
218
하고 일변 두 사령의 손목을 끌며 일변,
 
219
"상단아! 마님께 가서 향나뭇골 김 패두 오라버니 오시고, 배나뭇골 이 패두 오라버니 오시었다고 여쭈어라."
 
220
하고 다시 두 사령을 보고,
 
221
"자 들어오시오."
 
222
하고 누워 있던 자리를 주섬주섬 한편 구석으로 치어 놓으 니, 두 사령은 춘향이가 손목을 잡고 반기는 통에 마음들이 모두 스르르 풀어지어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서로 힐끗힐 끗 다른 놈의 눈치만 보다가 김 번수가 먼저 비단 보료 위 에 들어 앉으며,
 
223
"여보소 동생, 내가 무안하이. 자네가 오래 앓는단 말을 듣고 한 번 문병도 못하였으니 내가 무안하이."
 
224
이 번수도 김 번수를 따라 들어 앉으며,
 
225
"동생 면목 없네. 그래 서울 기별이나 종종 듣나?"
 
226
춘향이 한숨 지며,
 
227
"가신 후로 기별 없어 걱정이요."
 
228
하니 김 번수가 혀를 차며,
 
229
"아이, 저를 어찌하리."
 
230
하고 이 번수도,
 
231
"참 가엾시그려."
 
232
하고 혀를 찬다.
 
233
이때에 상단이가 월매더러 무슨 귓속을 하였던지 월매 신 을 거꾸로 끌고 나오며,
 
234
"이녀석들아, 내 집에 오기에 발탈이나 안 났느냐. 어쩌면 그렇게 한 번도 안 와 본단 말이냐. 그래 다들 원로에 무사 히 다녀오고 어린것들도 잘 자라며 구실이 과히 고되지나 아니하냐?"
 
235
두 사령이 일어나 허리를 굽히며 차례로,
 
236
"아주머니 그사이 평안하시오?"
 
237
하고 공손히 인사를 한다.
 
238
이윽고 상단이가 술상을 들고 나오니 춘향이 술을 붓고 월 매는 권하여 두 사령은 굶주렸던 판에 두어 순배를 말도 없 이 마시더니 김 번수 문어 발을 씹어 가며,
 
239
"말이야 바로 하지. 사관 사또라는 것이 사뭇 똥항아린데 오늘 첫 좌기에 다른 점고는 다 제폐하고 기생 점고만 하더 니 아마 자네를 수청을 들이려는 모양인지 바삐 대령하라고 발광을 하기에 우리 둘이 나오기는 나왔네마는, 우리 둘이 들어서면 설마 자네 하나 못 빼어 내겠나."
 
240
춘향이 술을 부으며,
 
241
"글쎄 철 중에도 정생이라고 오빠 두 분만 믿소."
 
242
이 번수 술을 마시고 웃수염에 묻은 술을 혀를 내밀어 빨 아 들이며,
 
243
"그 말이야 두 번 이를 말인가."
 
244
이 모양으로 취하도록 술을 먹고 나서,
 
245
"그러면 동생 조리나 잘 하소."
 
246
하고 두 사령이 일어나려 할 때에 춘향이 장문을 열고 돈 닷냥 꾸러미를 내어 놓으며,
 
247
"이것이 약소하나 두 분이 돌아 가시다가 약주나 사잡수 오."
 
248
덜렁쇠 그 돈을 물리치는 듯 손으로 움켜 쥐이며,
 
249
"말게. 그게 말이 되나?"
 
250
하고 절반을 뚝 끊어 이 번수를 주고 일어나며,
 
251
"아주머니, 염려 마시오. 동생 조리나 잘하게."
 
252
이 번수도,
 
253
"아주머니, 염려 마시오. 우리 둘이 나서면 일 없소. 동생 조리나 잘하게."
 
254
하고 춘향의 집을 나선다.
 
255
"얘, 물렁쇠야! 사람의 마음이란 물로 되었단 말이 옳 다!"
 
256
하고 김 번수가 한탄을 하니 이 번수 고개를 두르며,
 
257
"야, 네 맘은 모지더라. 나는 춘향의 집 문전에 가니 벌써 맘이 다 녹아 버리고 말더라."
 
258
두 사령이 들어가,
 
259
"춘향이 잡으러 갔던 패두 현신 아뢰오."
 
260
이 소리에 부사 고개를 쑥 내밀어 눈을 두리번 두리번 하 더니,
 
261
"춘향 어이하고 너희놈들만 왔단 말이냐?"
 
262
김 패두 썩 나서서 고박고박하며 혀가 안 돌아가는 소리 로,
 
263
"춘향이 구관 사또 자제 이 도령 가신 후로 상사병이 나 서 그만 죽었사옵고, 예 아직 죽지는 아니하옵고 살아서 목 숨은 붙어 있사와도, 피골이 상접하와 촌보도 불능하옵기로 인정에 차마 못하와 못 대령하였사오되, 만일 다시 분부 내 리시오면 춘향은 못하와도 소인의 어미라도 잡아 대령하오 리다."
 
264
부사 골을 내어,
 
265
"이놈들, 어찌고 어찌어? 웬 횡설수설이니? 이놈들, 술 얻 어 먹고 뇌물 받고 관장 분부 거역하니 저런 죽일 놈들이 있나."
 
266
하고 호령이 추상 같은 것을 보고 물렁쇠 황겁하여,
 
267
"예, 춘향이가 아직 죽지는 아니하였삽고, 또 중문까지 마 중 나온 것을 보니, 촌보 불능 지경은 아니오나, 여쭙기 황 송하오나 사람의 맘이 물이 일럿사와, 술도 얻어 먹고 돈도 닷 냥을 얻어 가지고 긍측한 정상 듣사오니, 과연 잡아오기 어렵사오며, 또 피골이 상접까지는 아니하옵더라도 오래 상 사병에 기름이 빠진 것은 분명하오니, 기름 빠진 것을 억지 로 수청 들이시기보다 남원 명기로 오십명 중에서 피둥피둥 한 년 하나 고르시와 이 돈 닷냥 행하시고, 수청 들이시면 사무송하올 줄로 아뢰오."
 
268
하고 중얼거리니 부사 대노하며,
 
269
"여보아라. 저놈들 몰아내치고 다른 놈 보내되 술 먹을 줄 모르고 인정 한푼어치 없는 놈 보내어 시각 지체 말고 춘향이 잡아 대령하라."
 
270
형리 영을 듣고 방울을 덜렁하여 김 패두 이 패두 두 사령 을 몰아 내치라 하니 사령들이 벌떼같이 내달아 두 사령을 꼭두집어 끌어 삼문 밖에 내치니 두 사령 삼문 밖에 누워 노래를 부른다.
 
271
"백구야 껑충 뛰지 마라. 너를 잡을 내 아니다. 성상이 버 리시매 너를 따라 예 왔노라. 공명과 부귀와란 세상 사람 맡겨 두고, 이후란 술이나 대취하여 너와 나와 강호에 주인 되어 한가로이 놀아 보자."
 
272
하다가 그 자리에 뒹굴며 코를 골고 잔다.
 
273
박 패두 최 패두 두 사람이 춘향의 집에 가서 대문을 박차 고 들이달아,
 
274
"춘향아 나오너라!"
 
275
하고 소리를 지르니 김 패두 이 패두들을 돌려 보내고 겨 우 안심하고 있던 춘향과 월매는 또 한 번 깜짝 놀라 뛰어 나와 박 패두 최 패두들을 붙들고,
 
276
"조카네 무사한가."
 
277
"오라버니들 평안하시오?"
 
278
하고 정답게 인사를 하나 두 사령은 들은 체 아니하고,
 
279
"잔말 말고 어서 나오라."
 
280
하고 재촉만 한다.
 
281
춘향이 면치 못할 줄을 아나 그래도 인정을 써 애걸이나 하여 보리라 하고,
 
282
"갈 때에는 가더라도 약주나 한잔 잡수시지요!"
 
283
하고 방에 들어 앉기를 권하니 박 패두 불량한 눈을 궁글 리며,
 
284
"오 이년, 술잔이나 먹이고 우리를 달래어 볼 양으로? 어 림없다. 어서 나오라!"
 
285
하되 최 패두는,
 
286
"야 박 패두야, 권하는 술 안 먹으랴. 네 싫거든 나나 먹 자."
 
287
하고 먼저 잔을 들어 마시니 박 패두는 비위가 동하여,
 
288
"그래라 나도 한 잔 먹자."
 
289
하고 춘향이 권하는 대로 들이마신다. 내온 술을 다 먹고 안주까지 다 먹고 입을 씻으며 박 패두가,
 
290
"자—나서라!"
 
291
하고 또 춘향을 재촉한다.
 
292
춘향이 그제는 장문을 열고 돈 두 냥을 내어 주며,
 
293
"이것이 약소하나 두 분이 약주나 한잔 사 잡수오."
 
294
최 패두 박 패두 눈치를 보더니,
 
295
"주는 돈 안 받으랴."
 
296
하고 돈꾸러미 절반을 뚝 꺽어 한끝 매어 박 패두를 주며,
 
297
"어따. 싫거든 내 가지마."
 
298
하니 박 패두 얼른 받아 꽁무니에 단단히 차며,
 
299
"술 먹고 돈까지 받으니 무안하고 미안하다. 사또 분부 지엄하니 어서 나와 바삐 가라."
 
300
춘향이 하릴없이 머리도 안 빗은 대로 옷도 입었던 대로 신을 신고 나서며,
 
301
"가자면 가지요."
 
302
하고 월매를 돌아보며,
 
303
"어미니 갔다 오리다. 내 지은 죄 없으려든 설마 누가 어 찌하오? 염려 마오."
 
304
하고 두 사령을 따라나서니 월매 참지 못하여 두 사령의 팔에 매어달리며,
 
305
"네 이녀석들! 그여코 내 딸을 잡아가고야 마느냐. 내 딸 이 무슨 죄가 있길래 잡아간단 말이냐."
 
306
하고 몸부림하고 우니 사령들은,
 
307
"죄가 있길래 잡아가지. 늙은것이 웬 발광이야?"
 
308
하고 월매를 뿌리치니 월매 땅바닥에 굴며,
 
309
"아이고 이게 웬 일이야. 하느님 맙소사. 아이고 이게 웬 일이야."
 
310
하고 울다가 상단에게 끌려 들어가며,
 
311
"내 딸 잡아오라는 놈이나 내 딸 잡아가는 놈은 씨도 없 이 멸망을 하리라. 아이고 아이고."
 
312
하고 운다.
 
313
박 패두 최 패두 춘향을 꼭뒤집어 계하에 꿇여 놓고,
 
314
"춘향 대령하시였소."
 
315
하고 복명하니 부사 문앞으로 다가앉으며,
 
316
"춘향 이리 오르라 하라."
 
317
춘향이 두어 번 사양하다가 상방으로 불려 올라가 부사 앞 에 고개를 숙이고 앉으니 그 시름하는 듯 원망하는 듯 의지 할 곳 없는 듯 태도가 더욱 부사의 마음을 끌었다. 비록 아 무 단장도 없다 하더라도 천성의 아름다움은 감출 수가 없 었다.
 
318
부사가 춘향을 앞에 놓고 한참이나 고개를 기웃거리며 이 리저리 뜯어 보더니, 매우 볼만한 듯이 '응'하고 고개를 돌려 저편 구석에 글 읽는 사람 모양으로 공연히 몸을 흔들 흔들하고 앉았는 정 낭청을 보며,
 
319
"이사람! 춘향의 소문이 매우 고명하더니만 지금 보니 유 명무실이로세."
 
320
정 낭청은 변 부사가 운산 현감으로 나갈 때부터, 책방으 로 따라다니는 사람이라, 매사에 부사의 비위를 거스리는 일이 없어 부사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하여도'그러한가 보 오', 보리로 메주를 쑨다 하여도'그렇다고도 하지요'하 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정 낭청이 숙맥이 되어 그러한 것이 아니다. 경계는 멀끔하건마는, 자기가 애써 바른 소리를 한 다고, 다 자란 변 부사가 자기 말 들어 착한 사람 될 리도 만무한즉 공연히 변 부사의 비위만 거스려 변변치 못하나 책방 밥술 자리라도, 떨어지면 앵한 것은 자기뿐이라, 차라 리'그러한가 보오','그러하다고도 하지요'하고 어름어 름해 넘기는 것이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사무송이라고 생각 한 까닭이다.
 
321
그러나 정 낭청은 판은 대바른 사람이라, 이따금 곧잘 바 른 소리를 하다가는 부사에게 핀잔을 먹고,
 
322
"어—고이한 손이로군. 어서 올라가게!"
 
323
하고 올려 쫓길 뻔도 한두 번이 아니다.
 
324
이번에도 낭청은 마음에는 못마땅하게 생각하지마는 구태 비위를 거슬릴 생각도 없어 춘향이는 돌아보지도 아니하고 눈만 스르르 내려감고 여전히 몸을 흔들면서,
 
325
"글쎄요. 바히 유명무실이라 할 길도 없고 또 이제 유명 무실 아니라고 할 길도 없나보오."
 
326
부사 또 한 번 이윽히 춘향을 모모이 뜯어 보더니 또 정 낭청을 바라보며,
 
327
"아니로세 이 사람! 전혀 유명무실은 아니로세. 모모이 뜯 어 보이 한 곳도 허수한 곳은 없네 그려."
 
328
하고 빙그레 웃으며 연해 춘향을 바라본다.
 
329
이 기회를 타서 통인에 윤득이 나서며,
 
330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의복이 남루하고 단장을 아니하여 그러하옵지 의복 단장을 선명히 꾸미면 세상에 짝없는 일색 이오니 용서치 마옵소서."
 
331
하고 일러바친다.
 
332
부사 윤득의 말을 듣고 또 한 번 춘향을 모모이 뜯어 보더 니,
 
333
"과연 듣고 보니 그럴 듯도 하이. 요사이 행창하는 것들 같이 때묻고 바라지지 아니하고 수수하고 어수룩하고 수줍 어한게 조희."
 
334
낭청은 여전히 눈을 내려깔고 몸을 흔들면서,
 
335
"글쎄 수수하고 어수룩하지 않다고 할 수도 없고 또 그렇 다고 할 길만도 없는 듯하오."
 
336
부사 비위가 당기는 듯이 바싹 춘향의 앞으로 다가 앉으 며, 한 번 더 자세히 보더니마는 부사 눈이 가느스름 하여 지고 입이 헤벌어지며,
 
337
"여보게 아닌게 아니라 미인이로세—국색이로세—절대 가 인이로세. 옥에도 티가 있다고 내가 팔도 미인을 본 것이 여간 백이요 일백만 아니로되, 어떤 년은 눈이 샐쭉하여 독 살스럽고, 눈 각각 코 각각 뜯어 보면 모두 한두 가지 흠은 있건마는 요것은 모모이 뜯어 보고 샅샅이 우비어 보아도 하나 흠할 곳이 없으니, 짐짓 천향국색이로세. 허—영웅이 나 면 미인이 없을 수가 있나—내가 있으니 춘향이 없으랴—하 상견지만야로세."
 
338
하고 낭청이 무어라고 대답을 할 양으로 입을 우물거리는 것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춘향의 곁으로 조금 더 다가앉으 며, 춘향더러,
 
339
"네 듣거라. 네가 집짓 허술한 옷을 입고 단장도 아니하 고, 네 본색을 감추려 하는 모양이다마는 형산백옥이 티끌 에 묻혔기로 아는 이야 모르며, 중추 명월이 잠깐 구름에 가리우기로 제 빛을 잃을소냐. 네 아무리 허술히 차렸기로 내가 너를 몰라 볼 리가 없으니 네 나가서 소세하고 일각 지체 말고 수청 들라!"
 
340
하고 명령을 내린다.
 
341
춘향이 눈썹이 두어 번 짱깃짱깃하더니 쇳소리 같은 목소 리로,
 
342
"무슨 말씀이시온지?"
 
343
하고 고개를 반짝 드니 그 태도와 말소리에서는 얼음 가루 가 팔팔 날리는 듯하다. 부사 소름이 쪽 끼치는 듯하였으나 껄껄 능글 웃음을 치며,
 
344
"어허 정 낭청, 요—산드러진 말이 더욱 조희!"
 
345
하고 다시 춘향을 바라보며 몸을 뒤로 젖히고 관장의 위엄 을 갖추어,
 
346
"네 본대 본부 기생으로 내 도임시에 현신도 아니하고 방 자히 집에 있어 언연히 불러야 들어온단 말이냐. 내가 이곳 목민지장으로 내려왔으니 너를 보니 쓸 만하다. 오늘부터 수청으로 작정하는 것이니 네 바삐 나가 소세하고 방수차로 대령하라!"
 
347
하고 호령이 추상 같다.
 
348
춘향이 일어나며,
 
349
"못합니다!"
 
350
하고 외마디로 똑 잡아뗀다.
 
351
부사 얼굴이 푸르락 누르락하며,
 
352
"못하여? 어찐 말인고?"
 
353
하고 숨소리가 커진다.
 
354
"못합니다. 못합니다. 소녀 비록 창기 소생이오나, 이미 대비정속 면천하였사오니, 기생도 아니옵고 또 삼년전 이등 사또 좌정시에 사또 자제와 백년을 언약하와, 금석같이 서 로 맹세하옵고 몸을 허하였사오니, 소녀는 유부녀라. 죽사와 도 송죽 같은 마음을 변할 리는 없사오니 사또께서도 소녀 의 정유를 통촉하시와, 다시 그런 분부 내리시지 마옵소 서."
 
355
하고 돌아선다.
 
356
춘향의 말에 부사 웃으며, 정 낭청을 돌아보고,
 
357
"계집이 한두 번 태하는 것은 전례판인 줄 아나 아주 태 가 없어도 무맛이니."
 
358
"글쎄 그러하외다. 전례판이란 길도 없고 정녕 전례관이 아니랄 길도 없나 보오."
 
359
하는 정 낭청의 말은 들은 체도 아니하고 춘향을 향하여,
 
360
"네가 기시에 아이들끼리 만나서, 살고 딸기같이 얕은 맛 에 그러하나 보다마는, 하릅 비둘기가 재를 넘느냐. 그러하 기로 저런 설움을 보는구나. 네 이 어른의 우거지국에 쇠 옹도리 뼈 넣은 듯한 궁심한 맛을 보면 무궁한 자미에 깜짝 반하리라. 또 네가 수청 들면 내일부터 관청은 네 집 찬장 이요. 운향고 묵전고는 네 곳간이요. 일읍주장이 다 네 주장 이라. 이런 깨판이 또 어디 있느냐."
 
361
하고 정 낭청을 돌아보며,
 
362
"이 사람 정 낭청 내가 평양 서윤 갔을 적에, 금절이년 수청들여 삼천 냥 행하하고 영변 부사 갔을 적에, 관옥이년 수청들여 백미 천 석 행하하고, 기외에 전후 기생 준을 불 가수중인 줄 자네가 잘 알지 않는가. 어찌한 성품인지 기생 들을 그리 주고 싶으데."
 
363
하고 대답을 기다리는 모양으로 정 낭청을 물끄러미 본다.
 
364
정 낭청 한참이나 말없이 몸을 흔들다가 마지못하여 하는 듯이,
 
365
"글쎄 그러한지요. 아니 그러한지요."
 
366
이 말에 부사 화를 내며,
 
367
"이 사람아 듣고 본 대로 바로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어리 뻥뻥하게 그게 무슨 대답이란 말인고?"
 
368
"듣고 본 대로 바로 말을 하라면 하지요."
 
369
"압다. 하소!"
 
370
"내가 본 대로 하면 사또께서 대동 찰방 갔을 제 관비 한 년 데리고 자고, 그년의 비녀까지 빼앗고 돈 한 푼 안 줄었 단 말 들었고, 운산 현감 갔을 때 수급비 한 년 석 달 취색 하여 주마고 서울로 가지고 와서, 며느리께 예물 준 것은 보았소마는, 언제 평양서 윤녕 변 부사로 가시어서 기생 행 하를 그리 후히 하였소?"
 
371
하고 뽀롱뽀롱 바른소리하는 버릇을 내인다.
 
372
정 낭청의 말에 부사 기가 막히나 섣불리하다가는 바른 소 리가 더 쏟아져 나올 것을 두려워하여 껄껄 웃고,
 
373
"이 사람 기롱 마소. 저런 아이 곧이 듣네."
 
374
하고 춘향을 향하여,
 
375
"여보아라! 이리 돌아 서거라. 네 저 말 곧이 듣지 말렷 다. 어찌 그럴 리가 있느냐. 나를 사귀어만 보면 자연 알 것 이다. 여보아라, 알아 듣느냐. 과히 사양 말고 바삐 나가 소 세하고 수청 거행하여라."
 
376
춘향이 돌아서서 읍하고 부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언성을 약간 높이어,
 
377
"사또께옵서는 목민지관이사라, 미지부모 되시오니 백성 이 잘하는 것을 상 주시고 잘못하는 것을 벌 주시어, 삼강 을 바로잡고 오륜을 밝히시는 것이 직책이시니, 어찌 옛 성 인의 가르치심을 따라 열녀의 행실을 본받아, 지아비를 위 하여 수절하는 아녀자의 뜻을 앗으려 하나이까. 아무리 분 부 지엄하시와도 송죽같이 굳은 소녀의 절개는 변할 줄이 없사오니 돌이켜 생각하시와 밝히 처분하시옵소서."
 
378
부사 눈방울이 오르락내리락 하더니 다시 능청하게,
 
379
"오 옛글에 그런 말도 있나니라. 그러나 수절이란 것은 사대붓집 부녀들이나 할 일이지, 너 같은 아이는 노류장화 랑 안개가절이니 수절이란 말이 천만 의외요 해괴망측한 말 이다. 기생이 수절을 하면 사대붓집 부녀는 무슨 절을 한단 말이냐. 기절을 하겠고나."
 
380
하고 크게 우스운 일이나 보는 듯이 '허허허'하고 소리 를 내어 웃더니 다시 웃음을 거두고 위엄을 갖추어,
 
381
"여보아라 계집이 아조 태가락이 없어도 무맛이지마는 그 것도 한두 번이지, 여러 번 되면 관장 앞에 버릇없는 일이 어. 그러하니까 당치 아니한 요망한 소리 말고 수청 들어 라."
 
382
부사의 말에 춘향은 오장이 뒤집히고 분기가 났다. 그러나 한 번 더 이치로써 부사의 뜻을 돌려 볼 양으로 공손하게,
 
383
"충신은 불사이군이요 열녀는 불경이부라. 사또께옵서는 국록지신 되시오니 설사 부월이 단전하더라도 훼절하실 리 만무하옵고, 소녀는 백년 해로 언약한 지아비 있사오니, 이 몸이 죽고 죽고 일백 번 고쳐 죽사와도 일편단심에 비췬 달 은 잡아 내어도 보려니와, 소녀의 정한 뜻은 차생에 얻지 못하리이다. 가련한 일단혈심을 통촉긍애하옵소서."
 
384
하고 애절하는 듯이 한 번 읍하고 부사의 앞에 꿇어 엎디 인다.
 
385
부사 춘향이가 꿇어 업디어 애걸하는 양을 보고 빙그레 웃 며 정 낭청더러,
 
386
"여보게 이 사람 요렇게 간드러지게 애걸하는 양이 더욱 아리따외 그려. 요사 행창하는 계집들이 오르라 하기가 무 섭게 어여쁘지도 아닌 것이 어여쁜 체하고 연지 찍고 궁둥 이를 뒤흔들고, 장마 개구리 호박 잎에 뛰어 오르듯이, 신발 신은 채로 마련없이 더벅더벅 오르건마는 이것은 제법 반반 한 경계로세."
 
387
하니 정 낭청 심히 못마땅하여 고개를 저만치 돌리며, 혼 잣말 모양으로,
 
388
"응—되기는 되겠소. 그 무얼 수절한다는 손녀뻘이나 되는 어린 계집애를 데리고......응!"
 
389
부사 눈살을 찌푸리며,
 
390
"자네는 왜 이리 씨이질만 하노? 고이한 손이로군."
 
391
하고 춘향을 보며,
 
392
"요년! 수청을 들라면 썩 들 것이지 거 무슨 잔말을 고다 지 자리감스러이 하느냐! 어서 썩 수청 들고지고!"
 
393
춘향이 생각하니 아무리하여도 자기를 방송하여 줄것 같지 아니하다. 그러나 제 아무리 저러한들 빙옥 같은 내 마음에 백골이 진토되기로 수청을 듬며, 금석같이 굳은 뜻이 혼백 이기로 훼절하겠느냐 하고 맘을 단단히 먹고 수 그렸던 고 개를 번쩍 들어 부사를 노려보며, 악을 써서 꾸짖는다— 춘향이 부사를 노려보며,
 
394
"영천수 맑은 물에 내 두 귀를 씻고지고—에그 더러운 말 다 들었네. 사또께서는 국록지신 되시어 출장입상 하신다가, 탈유지변 당하시면 한 목숨이 아까워서 도적에게 항복하고 두 임군을 섬기랴? 충신 불사이군이요 열녀 불경이부라 하 였거늘 위력으로 겁탈하시려 하니 사또의 충절유무는 이로 써 아나이다. 나라에 충절 모르는 사또 앞에 무슨 말을 하 오리까. 말하는 것도 부질없으니 소녀를 때리려거든 때리시 고 죽이려거든 죽이시되 다시는 그런 더러운 말씀은 마옵소 서."
 
395
부사 관자놀이에 핏대가 불룩불룩하더니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며,
 
396
"정 낭청, 조년의 말을 보소. 날더러 역적놈이라네 그려.
 
397
이런 죽일 년이 있단 말인가."
 
398
정 낭청이 입맛을 다시며,
 
399
"글쎄 그러하오. 사또가 역적놈이라 할 길이야 생심인들 하겠소마는, 또 제 소견딴은 금부 죄인이 되리란 말인듯하 오. 그러하나 그년이 바히 죽일 년이 아니라 할 길도 없나 보오마는 또 말이야 바로 죽일 년이라고 할 길도 없는가 싶 으니, 그년의 소원대로 하여 주시는 것도 상책이지요마는 또 사또께서 그년의 소원대로 아니하여 주신다고 부쩍부쩍 우기시면 그도 하릴없는가 보오."
 
400
부사 더욱 골을 내어 낭청더러,
 
401
"이 사람 썩 들어가소. 꼴 보기싫어. 공연히 객없는 소리 를 기다랗게 늘어놓으니 웬 지각인고. 어허 고이한 손이로 군!"
 
402
하고 춘향을 노려보며 망근 편자가 톡 터질 듯이 관자놀이 가 들먹들먹하고 숨결이 씨근씨근하더니 춘향을 대하여서는 아무 말이 없고,
 
403
"여보아라!"
 
404
하고 호령을 내리니 통인이 뛰어 나서며,
 
405
"여이."
 
406
"이년 바삐 잡아 나리어라!"
 
407
"여이 급창."
 
408
하는 통인의 소리에 급창 계상에 나서며,
 
409
"여이. "
 
410
하고 길게 소리를 뽑는다.
 
411
"춘향 잡아 나리라."
 
412
급창이 더욱 소리를 높여,
 
413
"여이 사령!"
 
414
하는 소리에 사령들이 우루루 달려 나오며,
 
415
"여이. "
 
416
"춘향 잡아 나리랍신다!"
 
417
"여이!"
 
418
하고 나졸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춘향의 머리채를 휘휘칭 칭 감아 쥐고 길이나 넘는 층계 아래로 동댕이쳐 끌어내려 형틀 위에 덩그렇게 울려 매고 나졸들이 뒷걸음치어 좌우로 쭉 갈라서며,
 
419
"춘향이 대령하였소."
 
420
부사 형틀에 올려 매인 춘향의 모양이 보이리만치 문밑으 로 바싹 다가 앉으며,
 
421
"형리 부르라!"
 
422
하니 형리 나와 읍하고,
 
423
"어이 형리 대령하였소."
 
424
부사 형리를 보고,
 
425
"저년을 따려 죽일 터이니 다짐 쓰고 갖은 매 대령하 라!"
 
426
형리,
 
427
"여이."
 
428
하고 필연 당기어 다짐을 써 들고,
 
429
"살등 너의 신이 본시 창녀 지배로 불고사체하고 수절지 절이 시하곡절이며 우중신정지초에 관령 거역뿐더러 관정발 악에 능욕관장하니 사극해연인 죄단마사라. 즉의 타살하여 이일징백하는 다짐이니 백자 아래 수결두라."
 
430
하고 읽고 나서 그 다짐장을 춘향의 앞에 놓으니 좌우 나 졸들이,
 
431
"어서 바삐 수결두라."
 
432
하고 우렁차게 엄포한다.
 
433
춘향이 조금도 굴하는 빛 없이 두 눈추리가 짱긋 올라가며 형리가 주는 붓을 받아 한일자 드르륵 그은 후에 그 아래 마음심자 초서로 쓰고 붓대를 내던지고 태연히 있다.
 
434
춘향이 다짐장에 다짐 두고 붓대를 내던지니 키 큰 집장 사령 곤장, 형장, 태장, 오갈나무 주장 갖은 매를 한 아름 안았다가 좌르르 설설 버려놓고, 이놈도 골라 때려 죽일 듯 이 엄포를 하거니와, 형틀에 올려 매인 춘향을 내려다보니 연약약질 백설 같은 흰 다리에 어디 차마 매를 치랴. 자연 히 팔이 무거워진다. 그러나 거행을 아니하면 응당 구실은 태거할 것이요, 구실 퇴거하면 내일 아침부터는 입에 낮거 미줄 늘일 지경이니 어찌하랴. 차마 못할 거행이로다 하고 그중에 좀먹고 등심 없는 태장 하나를 골라 쥐고 이만하고 섰을 제 부사는 소리를 높여,
 
435
"네 이년 첫매에 두 다리 장치를 끊어 뼈골이 드러나게 각별히 매오 치되 만일 저년을 사정 두는 패 있으면 곤장 모흐로 앞 정강이를 팰 것이니 그리 알라!"
 
436
"매오 치라!"
 
437
하고 엄포한다.
 
438
집장 사령이 영을 듣고 형틀 앞에 썩 나서며,
 
439
"일호 사정 두오리까. 단개에 물고를 내오리다."
 
440
하고 두 눈을 부릅뜨고 한 걸음 물러 섰다가 달려들며 한 개를 딱 붙이니 부러진 태장 가지 공중에 푸르르 날며
 
441
'짝'하는 소리 동헌을 울린다. 춘향이 사지를 바르르 떨 며 이를 빠드득 갈고,
 
442
"죽이랴건 죽이시오! 일편 단심 붉은 맘이 일만 번 죽사 온들 일시 반시 변하리까."
 
443
부사 냉소하며,
 
444
"어디 이년 얼마나 안 변하나 보자. 매오 치라!"
 
445
둘을 딱 붙이니,
 
446
"이런 경상 또 있는가. 이부 불경한다 하여 이 형벌이 어 인 일고. 이 몸이 비록 죽사온들 이심 둘 리 없사오니 이글 이글 타는 불에 태워라도 죽이시오!"
 
447
셋을 딱 붙이니,
 
448
"아이고고! 삼흔 칠백이 다 흩어진들 삼생에 뻗은 정절 변할 리 만무하오."
 
449
넷을 딱 붙이니,
 
450
"사또도 사람이시면 사정도 있으련만 죄 없는 사람을 사 정없이도 치네 그려. 사대부의 행세는 이러한 법이요?"
 
451
이 말에 부사 더욱 노기 등등하여,
 
452
"요년! 어찌고 어찌어? 고년 다시는 조동이를 못 놀리도 록 매오 치라!"
 
453
집장 사령,
 
454
"여이 죽도록 치오리다."
 
455
하고 다섯째를 딱 붙이니,
 
456
"아이고고!"
 
457
하고 춘향이 잠깐 까무러치었다가 깨어나며,
 
458
"오형지속이 삼천이랑 하건마는 수절한다고 죄 주는 법 어디 있소? 오장에 사모친 한이 오월 남풍에 눈서리 되어 삼강도 오륜도 모르는 사또집 후원에 펄펄 날려보랴오. 이 렇게 힘들게 따릴 것 없이 드는 칼로 이 몸을 오리오리 오 리시오! 오리오리 오려내어 옹진 소금에 짜게짜게 항아리나 목함 속에 넣어 두고 계집 좋와하는 사또 밥 반찬 술 안주 나 하시다가 일생에 다 못 자시거든 두고두고 사또 대소상 기일제에까지 놓으라고 유언이라도 하시오!"
 
459
하고 이빨을 아드득아드득 간다.
 
460
부사 일어났다 앉았다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입으로 게거품 을 푹푹 토하며,
 
461
"조년을! 조년을! 밟아 죽이랴, 찢어 죽이랴? 아—네 저 집 장 사령놈 몰아내치고 다른 놈 대어라!"
 
462
하고 콩튀듯 팥튀듯 펄펄 뛴다.
 
463
집장 사령 물러나고 다른 놈 들어서니 키는 적을 망정 눈 방울하고 다부지게 독하게 생긴 놈이다. 태장을 어깨위에 번쩍 둘러 메고 두어 걸음 물러 섰다가 통통통통 달려나오 며 여섯째를 딱 붙이니 춘향의 하얀 살이 갈라지며 빨간 피 가 주루루 흘러 내린다.
 
464
춘향이 또 한 번 아뜩하여 까무러치었다가 이를 빠드득 갈 며,
 
465
"육시를 하시오! 육시를 하시오!"
 
466
일곱째를 딱 붙이니,
 
467
"아이고 이몸이 죽네 그려. 칠십 당년 노모님이 누구를 의지하리."
 
468
여덟째를 딱 붙이니,
 
469
"아이고 내 팔자야. 전생에 무슨 죄로 기생으로 태어나서 수절조차 맘대로 못하는고. 아고 이내 팔자야!"
 
470
아홉째를 딱 붙이니,
 
471
"구곡간장 맺힌 한이 구만 장천 높이 날아 구중 궁궐 깊 은 곳에 하소연이나 하고지고. 구차한 이 목숨이 구태 살려 아니하오. 죽이시오 죽이시오! 굳고 굳은 이내 정절 굽힐 줄 은 생념도 마오!"
 
472
열째를 딱 붙이니 춘향이 고개를 번쩍 들어 부살르 노려보 며,
 
473
"죽여 주오! 죽여 주오! 어서 바삐 죽여 주오! 죽어서 혼 이라도 남편 따라가려 하오. 당신네 법에 수절도 죄라 하면 식칼 형문이라도 쳐서 죽여 주오!"
 
474
하고 그만 고개를 숙여 버리니 살점은 늘어지고 뼈가 보이 고 얼굴이 해쓱하여지고 입술이 푸르게 되니 보던 관속들도 모두 코가 시고 눈물이 흘러 고개를 돌린다.
 
475
부사도 춘향의 형상을 보니 속이 부쩍부쩍 죄기는 하나 둘 더 치는 것을 스물을 넘어 서른이 되어도 춘향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말도 없고 몸도 움직이지 아니하여 부사 정 낭청 을 바라보고,
 
476
"이 사람! 과연 시골 상것이라 모질기도 하이 그려. 아무 리 모질기로 그대도록 모질단 말인가. 신정지초에 살인하기 도 어떠하니 그만 칠까."
 
477
"글쎄 그러하외다."
 
478
"아니 이 사람, 저런 년을 삼천을 죽이기로 관계할까."
 
479
그래도 정 낭청은 몸을 흔들며,
 
480
"글쎄 그러한가 보오."
 
481
부사 못마땅하여 얼굴을 찡기더니,
 
482
"여보아라! 그년 독하기로 이를 진댄 독사 이상이로구나.
 
483
장래 크게 일 저지를 년이로다. 후일에 다시 칠 양으로 저 년을 큰칼 씌우고 항쇄족쇄하여 하옥하라."
 
484
사령이 영을 듣고 춘향을 끌러 형틀에서 내려 놓으니 춘향 이 아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몸까지 싸늘하다. 감히 입 밖에 내어 말은 못하나, 혀도 채고 눈도 흘기고 한숨도 쉬 고 모든 관속이 다 부사를 원망하면서도 법이라, 하릴없이 큰 전목 칼을 춘향의 목에 씌우고 칼머리에 인봉하고 거멀 못으로 꼭 수쇄하고 옥사장에게 끌려 한 걸음에 엎더지고 두 걸음에 쓰러지며 옥으로 내려가니 보는 사람은 누구나 고개를 돌리고 차마 바로 보지 못한다.
 
485
월매 춘향을 관가로 붙들려 보내고 이제나 저제나 나오기 를 기다린다가, 낮이 기울어도 안 나오고 볕이 마당 한복판 까지 가도 안 나오니, 외딸 둔 어머니의 마음이라 안절부절 할 수가 없어,
 
486
"이 애가 아마 사또 말을 거역하다가 무슨 일을 당하나 보다."
 
487
하고 상단을 데리고 관가로 들어가던 길에 삼문 밖에서 칼 쓰고 끌려 나오는 춘향의 모양을 보고 와락 달려들어 칼머 리에 매어달리며 목을 놓아 운다.
 
488
"아이고 이게 웬 일인고? 신관 사또 내려와서 치민선정 아니하고 생사람을 죽이러 왔네. 생금 같은 내 딸을 무슨 죄로 저리 치었노? 하나님 맙소사. 내 딸이 죽으니 살려 주 오! 내 딸 죽으면 나는 살아 무엇하리."
 
489
하고 겨우 정신을 차려 눈을 빤히 뜨는 춘향의 목을 안고,
 
490
"아가 이것이 웬 일이냐. 어린것을 얼마나 따렸으면 이렇 게 될까. 남을 어찌 원망하리, 모두 다 네 탓이다! 네 탓이 야 네 탓이다! 아모리 그리한들 닭의 새끼 봉이 되며 각관 기생 열녀되랴. 사또 분부 들었더면 이런 매도 아니 맞고 작히 좋은 깨판이랴. 돈 쓸 데 돈 쓰고 쌀 쓸 데 쌀 쓰고 남원 사십 팔면이 우리 집 찬광일 것을, 이년아 무엇한다고 수절수절하다가 이꼴이 되었단 말이냐. 나도 젊었을 때 친 구 상종할 제 치치면 감사 병사 수사요, 나리치면 각읍 수 령 무수히 겪을 적에 쇠곳 많이 줄 양이면 일생 잊지 못할 러라. 너 이년아 누구는 너 만 못하다드냐. 후일 사또 다시 묻거들랑 잔말말고 수청 들어 실싸뀌나 하려무나!"
 
491
춘향이 수청 분부 거행 아니한 죄로 엄형 받고 옥으로 내 려간다는 소문 듣고 춘향이 지나가는 길에 사람이 백차일을 치고,
 
492
"끌끌!"
 
493
"압다 맞았거든!"
 
494
"어쩌면!"
 
495
"아무려나 춘향이도 독하다!"
 
496
"어린것이 기특도 해라."
 
497
이 모양으로 수군수군하며 혹은 고개를 돌리고 혹은 눈물 을 씻는다. 그러나 조용히 소리는 없고 오직 칼머리에 달려 가며 하늘하늘 뛰고 우는 월매의 곡성뿐이다.
 
498
이윽고 옥에 다다라 시커먼 옥문을 열고 춘향을 몰아 넣고 덜컥 닫고 잠가 버리니 월매는 땅바닥에 엎더지어 기색한다.
 
499
상단이 옥문을 두드리며,
 
500
"아이고 아씨 어이하리, 아씨 어이하리."
 
501
하고 목을 놓아 우는 것을 보고 옥사장도 소매로 눈물을 씻으며,
 
502
"차고찬 저 옥중에 저것 죽지 살 수 있나.
 
503
하고 들어가 버린다. 옥사장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지금까 지 먼 발치 보고만 섰던 아는 마누라 모르는 마누라들이 하 나씩 둘씩 모여들어,
 
504
"그만두오 울지 마오! 효자 열녀는 하늘이 안다오! 그만 우오, 일어나오!"
 
505
하고 월매를 붙들고 위로하나 월매는 꺽꺽 숨이 막히어 울 음소리도 잘 내이지 못한다.
 
506
이때에 옥중으로 춘향의 소리가 나온다—
 
507
"어머니 울지 말고 그만 집으로 돌아가오! 죄없는 춘향이 설마한들 죽으리까. 수화검창 중이라도 아니 죽고 살 터이 니 걱정 마시고 집으로 가시오. 만일에 안 가시고 저리 울 고 계시오면 불효한 말씀이나 지금으로 죽을 테이니 나가시 오! 나가시오! 어머니 울음소리 매맞기보다 더 앞으오."
 
508
월매 벌떡 일어나 옥문에 몸을 부딪치며,
 
509
"누가 내 딸을 이 속에 가두었느냐. 내 딸이 무슨 죄를 지었더냐. 국고 투식하였더나. 부모 불효 하였더냐. 무슨 죄 로 내 딸을 죽도록 따려 이 옥 속에 가두었느냐. 내 딸 내 놓아라! 내 딸 내놓아라. 너를 두고 나 혼자 어디를 가리."
 
510
하고 손톱으로 옥문을 박박 긁고 뜯으나 무거운 옥문에 서 는 삐걱 소리도 아니 난다. 한참이나 말이 없더니 춘향이 우는 소리로,
 
511
"어머니 나가시오! 하늘이 무너져도 이 설원하기 전에 죽 을 내가 아니오니 나가시오 나가시오!"
 
512
하고 목이 메어 잠깐 말이 끊였다가,
 
513
"상단아! 어머니 모시고 나가거라. 네가 내 대신 마님 위 로해 드려다오. 어머니 우시거든 동네 어른들 청하여 심심 치 않게 하여 드리고 때때로 어머니 좋아하시는 원미 쑤어 드리고 조석으로 다리 밟아 드리고 하여라. 아니 죽고 살아 나면 네 은혜 갚을 것이니 부대 어머니 봉양 잘 하여다오.
 
514
내 마음 네가 알고 네 마음을 내가 아니 별당부가 있겠느 냐. 울음소리 듣기 싫다! 어서 어머니 모시고 나가거라."
 
515
그제야 월매도 하릴없이 상단에게 끌리어 여러 마누라 들 에게 부축을 받아 다시금 옥문을 돌아보며 미친 사람 모양 으로 헛소리도 하며 비씰비씰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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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아저* (49.166.***.**)
2021-04-07 17:03:22
『일설 춘향전』은 『춘향전』의 여러 계보 중의 하나가 아니라 여러 『춘향전』의 계보들을 하나로 종합하는 가장 최종의 『춘향전』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한다. 그리고 이는 식민사회에서 조선적 전통을 기획하겠다는 포부에 맞닿은 것이며, 그러한 전통을 기획하는 절대적인 지위에 작가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 교보문고(해설)
필아저* (49.166.***.**)
2021-04-07 17:02:30
『일설 춘향전(一說春香傳)』은 ‘춘향’이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1925년 9월 30일부터 1926년 1월 3일까지 총 96회 분량으로 연재되었다. 1925년 『동아일보』는 『춘향전』을 “조선 사람의 전통적 정신”을 계승하는 작품으로 설정하고 이를 다시 씀으로써 “참된 국민문학”을 만들어낼 것을 이광수에게 요청하고, 이러한 개작의 방향은 계몽주의적 태도를 전제로 하는 이광수의 창작의 방식과 교호하면서 근대적인 문학의 체제를 갖춘 새로운 『춘향전』을 탄생시킨다. 『일설 춘향전』은 이몽룡과 성춘향의 기본적인 서사를 바탕으로 하되, 식민사회에서 요청되었던 조선적 전통을 기획하는 과정의 일환으로서 『일설 춘향전』의 창작은 적층적이고 서민적인 형태로 유통되었던 『춘향전』에 작가적 주체의 자리를 만들어내고, 이를 근대적인 소설의 형태로 확정하였다는 의미를 지닌다. - 교보문고(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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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의견 3
필아저* (49.166.***.**)   
2021-04-07 17:03:22
『일설 춘향전』은 『춘향전』의 여러 계보 중의 하나가 아니라 여러 『춘향전』의 계보들을 하나로 종합하는 가장 최종의 『춘향전』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한다. 그리고 이는 식민사회에서 조선적 전통을 기획하겠다는 포부에 맞닿은 것이며, 그러한 전통을 기획하는 절대적인 지위에 작가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 교보문고(해설)
필아저* (49.166.***.**)   
2021-04-07 17:02:30
『일설 춘향전(一說春香傳)』은 ‘춘향’이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1925년 9월 30일부터 1926년 1월 3일까지 총 96회 분량으로 연재되었다. 1925년 『동아일보』는 『춘향전』을 “조선 사람의 전통적 정신”을 계승하는 작품으로 설정하고 이를 다시 씀으로써 “참된 국민문학”을 만들어낼 것을 이광수에게 요청하고, 이러한 개작의 방향은 계몽주의적 태도를 전제로 하는 이광수의 창작의 방식과 교호하면서 근대적인 문학의 체제를 갖춘 새로운 『춘향전』을 탄생시킨다. 『일설 춘향전』은 이몽룡과 성춘향의 기본적인 서사를 바탕으로 하되, 식민사회에서 요청되었던 조선적 전통을 기획하는 과정의 일환으로서 『일설 춘향전』의 창작은 적층적이고 서민적인 형태로 유통되었던 『춘향전』에 작가적 주체의 자리를 만들어내고, 이를 근대적인 소설의 형태로 확정하였다는 의미를 지닌다. - 교보문고(해설)
필아저* (106.240.***.***)   
2021-03-11 12:23:29
춘향전 중에 최고의 작품인 것 같습니다. 고전 소설을 현대 소설로 재탄생한 작품 중에는 이광수의 '허생전 (이광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광수 허생전 강추...
“게시작품”
▪ 분류 : 근/현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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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설춘향전 [제목]
 
이광수(李光洙) [저자]
 
1925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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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 참조
이광수의 장편소설 (1925)
 
춘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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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설 춘향전 (一說 春香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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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04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