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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황제 즉위 이듬해 가을 윤팔월 초순에 날을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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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두보는 북으로 길을 떠나 멀고 아득한 집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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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근심스런 때를 만나 조정과 재야가 한가한 날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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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게도 이 몸 성은을 입어 집에 돌아가도록 허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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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직 인사 드리고 궐문에 이르렀으나 근심스레 주저하며 문을 나서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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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모자라 간언할 자질 없으나 임금께 허물이 있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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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께서는 진실로 중흥의 군주시니 정사(政事)에 매우 힘쓰시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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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적군의 반란이 끝나지 않아 이 신하 두보는 울분을 억누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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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뿌리고 임금 계신 곳을 생각하니 길을 가도 정신이 아득하기만 하다.
21
온 천지가 전쟁의 상처 뿐이니 이 근심걱정은 언제나 끝나리요.
24
안 내키는 걸음 들길을 간다. 연기도 안 오르는 마을을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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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해 신음하며 피 흘리는 사람들만 이따금 마주치는 그러한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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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상(鳳翔) 쪽으로 머리 돌리면 저녁 빛 받아 행궁의 깃발 아스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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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아가 중첩한 한산 오르자 옛 사람 말 먹이던 샘이 있는 굴들이 눈에 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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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푹 파인 빈주(邠州)의 들과 그 속을 솟구쳐 흐르는 경수(涇水)가 띠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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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호랑이 내 앞 나타나 벼랑도 갈라질 듯 울부짖어 기겁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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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는 올가을의 꽃임이 분명한데 돌길에는 옛 수레바퀴 자국 완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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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구름도 흥을 돋우고 그윽한 멋도 즐김직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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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질 구레한 산열매들 도토리와 섞이어 무더기 이루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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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는 붉기 단사(丹沙) 같고 더러는 옻방울처럼 검디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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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이슬에 젖어 열매란 열매 단 것이건 쓴 것이건 이미 영근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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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멀리 도원(桃園)으로 이어져 더욱 처세의 졸렬함에 한숨짓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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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눈앞에는 톱날 같은 부치(鄜畤) 바위로 된 그 골짜기 들쑥날쑥도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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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벌써 물가에 왔건만 내 종은 아직 저기 저 나무 끝 산길을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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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렇게 잎사귀 물든 뽕나무에서 솔개미 울고 구멍에선 들쥐가 앞발을 비벼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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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으슥해서야 싸움터를 지났다. 싸늘한 달빛 속에 뒹구는 백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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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관(潼關)을 지키던 백만 대군은 왜 그리도 빠르게 무너졌던가.
57
중원의 백성 절반 이상을 이 세상사람 아니게 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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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나는 오랑캐에 잡혔던 몸 돌아왔을 젠 호호백발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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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만에야 집에 와 만난 것은 누덕누덕 기워 입은 처자의 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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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하니 솔바람도 따라 맴돌고 샘물도 덩달아서 목메어 우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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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석받이 우리 아들 눈보다도 얼굴빛 더 핼쑥해진 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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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보자 등 돌려 울어댄다. 더덕더덕 때 낀 모습, 버선도 못 신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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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가 침상 앞 어린 두 딸은 입성이란 게 깁고 이어서 겨우 무릎 가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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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그림에서 파도 둘로 찢기고 낡은 수(繡)는 자리 옮겨 굽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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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오(天吳)와 자봉(紫鳳)마저 거꾸로 저고리에 걸려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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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했으면 마음 상한 나머지 토사(吐瀉)로 며칠을 내가 누워서 지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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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장은 걸머지고 온 옷감 있으니 너희의 떠는 몸쯤은 가려 주리라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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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풀어 분대(粉黛) 꺼내며 금주(衾裯)도 차츰 늘어놓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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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한 아내 얼굴 생기 돌고 딸년은 머리 빗어 희희덕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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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나 어미 흉내 아침 화장 한답시고 마구 손을 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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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연지와 분 찍어 바르더니 엄청나게 넓은 눈썹 우스운 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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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살아와서 애들을 마주하니 굶주림도 잠시는 잊혀지는 듯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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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물으며 다투어 수염을 꺼든대도 어찌 그들을 나무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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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에 잡혀 애태운 일 생각하면 이 시끄러움 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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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돌아와 이런 일로 우선은 흐뭇해하며, 살림 걱정은 굳이 입 밖에 안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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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감도 피난살이 하시는 세상, 언제면 군졸 훈련 안 해도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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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러르니 하늘빛 달라지고 어쩐지 요기(妖氣)도 걷히는 기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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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산한 바람 서북에서 일어나 참담히 회흘(回紇) 따라 불어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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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임금 천자를 돕기 원하고 그 풍속 말달리길 좋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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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보내 온 것 병졸 5천에 말 1만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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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젊은이를 귀히 여기고 그 용맹에 사방이 무릎 꿇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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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는 건 다 매 같은 용사여서 적을 깸이 화살보다 빠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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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께선 곧이들어 기다리셔도 여론은 딴 뜻이 있을까 여기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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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라면 이수(伊水), 낙수(洛水)도 쉽게 거두고 서경 또한 힘쓸 것도 되지는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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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관군도 깊이 쳐들어가기 바라는 바엔 예기(銳氣) 쌓아 동행함이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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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거사로 청주, 서주 해방하고 금시에 항산(恒山), 갈석(碣石) 회복함도 보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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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서리와 이슬 기운 가득하여 정기가 숙살(肅殺)을 감행하는 이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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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 무찌름이 바로 올해요 그를 사로잡음도 이 달의 일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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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가 가면은 얼마나 가랴? 천자의 기강이야 끊어질 리가 없다.
124
전번에 변고가 일어날 때도 처리하심 옛날과는 판이했으니,
125
간신은 마침내 처형되었고 그 무리 또한 제거되었다
128
하(夏), 은(殷)의 사직이 기울어질 때 포사(褒姒), 달기(妲己) 죽였단 말 못 들었지만,
129
주(周)와 한(漢)을 다시 일으켜 세운 선왕(宣王), 광무(光武)의 영명(英明)은 어떠신가.
132
더없이 씩씩한 건 우리 진장군(陣將軍) 부월(斧鉞) 짚고 일어나 충렬(忠烈)의 뜻 떨친 일.
133
그대 없었던들 사람 모두 엉망이 됐으리니, 이제껏 나라의 살아남은 뉘 덕이라 해야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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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의 대동전(大同殿)은 처량도 하고 백수달(白獸闥)도 적막에 휩싸여 있으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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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람들 황제 환궁하시기만 목뽑아 기다리며 상서러운 기운 금문을 향해 몰려들고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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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침(陵寢)에는 조종(祖宗)의 신령 계시니 향화 받듦이야 그 어이 끊어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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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처럼 빛나시는 태종의 기업(基業) 넓고 깊이 세우심 기리옵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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