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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일당기 (愛日堂記) ◈

해설본문  蛟山 許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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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부(江陵府)에서 30리 되는 곳에 사촌(沙村)이 있는데, 동쪽으로는 대해(大海)에 임했으며 북쪽으로는 오대(五臺)ㆍ청학(靑鶴)ㆍ보현(菩賢) 등 여러 산이 바라보인다. 큰 내 한 줄기가 백병산(百屛山)에서 나와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데, 이내를 빙 둘러 거주하는 이가 상하 수십 리에 거의 수백 가(家)나 되며, 모두 양쪽 언덕에 의지하여 내에 면해서 문을 내었다.내의 동쪽 산은 북대(北臺)로부터 내려와 꾸불꾸불 연속된 것이 용처럼 생겼는데, 바닷가에서 홀연히 솟구쳐 사화산(沙火山)의 수자리가 되었다. 수자리 아래에는 옛날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내가 무너질 때 늙은 교룡(蛟龍)이 그 밑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그 교룡이 가정(嘉靖) 신유년(1501, 연산군7) 가을에 그 바위를 깨뜨리고 떠나는 바람에 두 동강이 나서 구멍 뚫린 것이 문과 같이 되었으므로, 후세 사람들이 교문암(蛟門巖)이라 호칭하였다.조금 남쪽으로 언덕 하나가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름을 쌍한정(雙閑亭)이라 한다. 그 고을 사람인 박공달(朴公達)과 박수량(朴遂良)이 노닐던 곳이라 그렇게 이름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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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수의 형세가 울창하고 깊숙하며, 기운이 힘차게 일어나 용솟음치는 까닭에, 그 중에서 특이한 인물이 많이 났다.나의 외조부 참판공(參判公)께서는 바다에 가장 가까운 땅을 택해 당(堂)을 지었다. 새벽에 일어나 창을 젖히면 해돋이를 볼 수 있는데, 공은 마침 모친을 모시고서 희구(喜懼)하는 처지에 있었으므로 애일(愛日)로써 이름을 삼았으며, 황문(黃門) 오희맹(吳希孟)이 큰 액자를 썼고 태사(太史) 공용경(龔用卿)이 시를 지어 읊었더니, 일시에 여러 명인들이 잇달아 화답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당(堂)은 이로 말미암아 강릉에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임진년 가을에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왜적을 피해 북쪽으로부터 배를 타고 교산(蛟山)에 닿아, 당(堂)을 청소한 뒤 거기에 거주하였다. 대개 외조부께서 세상을 떠나신 해로부터 지금 33년이 된 것이다. 뜰에는 풀도 베지 않아 덩굴이 묵어 엉키고 잡목들이 무성하며, 담은 무너지고 집은 장차 내려앉으려 했으며, 지붕은 금이 가고 벽은 벗겨져 있었다. 시를 쓴 현판은 반도 남지 않았으며, 비가 새어 들보와 서까래를 더럽혔으므로 혹은 썩은 것이 있었고, 창문과 지게문도 썩어 문드러진 것이 있었다. 어머님께서는 이것 때문에 통곡하고 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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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빨리 종들을 독촉하여 더러워진 것은 쓸어 내고 덩굴은 걷어 내어 깨끗이 청소하고 거처하였다. 아아, 선조께서 힘써 터를 닦고 노부모를 모시는 곳을 마련하기에 이처럼 부지런히 하셨는데, 후손들이 쇠약하여 이 몇 칸의 집도 보호하지 못하고 무너지게 하였으니 그 죄가 실로 크다. 나는 비록 불민하나 마침 노모를 모시고 이 당(堂)을 이어 지키게 되었으니, 그 애일(愛日)의 생각이 어찌 선조에서 끊어지게 하겠는가. 오로지 마음을 다하고 힘을 쏟아, 노력하며 정성스레 보전함으로써 어머님의 뜻을 편안케 하고 선조의 터전을 개수(改修)하여 한가히 노닐고 편안히 처하여 일생을 마친다면, 그래도 외조부를 구원(九原)에서 모시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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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록하여 뒷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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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許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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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04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