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슴푸레한 저녁 몇 리를 걸어도 사람의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무인지경인 산골짝 비탈길 여우의 밥이 다 되어 버린 해골덩이가 똘똘구는 무덤 옆 혹은 비가 축축이 뿌리는 버덩의 다 쓰러져 가는 물레방앗간, 또 혹은 몇 백 년이다 묵은 듯한 우중충한 늪가!
3
거기에는 흔히 도깨비나 귀신이 나타난다 한다. 그럴 것이다. 고요하고 축축하고 우중충하고. 그리고 그것이 정칙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런 곳에서 그런 것을 본 적은 없다. 따라서 그런 것에 관하여서는 아무 지식도 가지지 못하였다. 하나 나는――자랑이 아니라―― 더 놀라운 유령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적어도 문명의 도시인 서울이니 놀라웁단 말이다. 나는 그래도 문명을 자랑하는 서울에서 유령을 목격하였다. 거짓말이라구? 아니다. 거짓말도 아니고 환영도 아니었다. 세상 사람이 말하여 ‘유령’이라는 것을 나는 이 두 분을 가지고 확실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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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든 길게 말할 것 없이 다음 이야기를 읽으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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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밖에 상업학교가 가제(假製)될 무렵이었다. 나는 날마다 학교 집터에 ‘미쟁이’로 다니면서 일을 하였다. 남과 같이 버젓하게 일정한 노동을 못하고 밤낮 뜨내기 벌잇군으로밖에는 돌아다니지 못하는 나에게는 그래도 몇 달 동안은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었다. 마는 과격한 노동이었다. 그러므로 하루라도 쉬어본 일은커녕 한 번이라도 늦게 가존 적도 없었다. 원수같이 지글지글 타 내리는 여름 태양 아래에서 이른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감독의 말 한마디 거슬리는 법 없이 고분고분히 일을 하였다. 체로 모래를 쳐라, 불같은 태양 아래에 새까맣게 타는 석탄으로 ‘노리’를 끓여라, 시멘트에다 모래를 섞어라, 그것을 노리로 반죽하여라 하여 쉴 새 없는 기계같이 휘돌아쳤다. 그 열매인지 선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들이 다지는 시멘트가 몇 백 간의 벌집 같은 방으로 변하고 친구들의 쨍쨍 울리는 끌 소리가 여러 층의 웅장한 건축으로 변함을 볼 때에 미상불 우리의 위해단 힘을 또 한번 자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리석은 미련둥이들이라……(1행 약)……. 어떻든 콧구명이 다 턱턱 막히는 시멘트 가루를 전신에 보얗게 뒤집어쓰고 매캐한 노린 냄새와 더구나 전신을 한바탕 쪽 씻어 내리는 땀 냄새를 맡으면서 온종일 들볶에치고 나면 저녁물에는 정말이지 전신이 나른하였다. 그래도 집안 식구들을 생각하고 끼니거리를 생각하면 마지막 힘이 났다. 일을 마치고 정신을 가다듬어 가지고 일인 감독의 집으로 간다. 삯전을 얻어 가지고 그 길로 바로 술집에 가서 한잔 빨고 나면 그제야 겨우 제 세상인 듯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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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사실 술처럼 고마운 것은 없었다. 버쩍버쩍 상하는 속, 말할 수 없는 피로를 잠시라도 잊게 하는 것은 그래도 술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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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나는 술김에 얼근하였었다. 다른 때와 같이 역시 맨꽁무니에 떨어진 김서방과 나는 삯전을 받아들고 나서자마자 행길 옆 술집에서 만판 먹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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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을 나와 보니 벌써 밤은 꽤 저물었었다. 잠을 자도 한잠 너그러지게 잤을 판이었다. 잠이라니 말이지 종일 피곤하였던 판에 주기조차 돌아놓으니 사실이지 글자대로 눈이 스르르 내리 감겼다. 김서방과 나는 즉시 잠자리로 향하였다.
9
잠자리라니 보들보들한 아름다운 계집이 기다리고 있는 분홍 모기장 속 두툼한 요 위인 줄은 알지 말아라. 그렇다고 어둠침침한 행랑방으로 알라는 것도 아니다. 비록 빈대에는 뜯길망정 어둠침침한 행랑방 하나 나에게는 없었다. 단지 내 몸뚱이 하나인 나는 서울 안을 못 돌아다닐 데 없이 돌아다니면서 노숙露宿을 하였던 것이다. (그래도 그것이 여름이었으니 말이지 겨울이었던들 꼼짝없이 얼어죽었을 것이다.) 따라서 세상에 못 볼 것을 다 보고 겪어 왔었다. 참말이지 별별 야릇하고 말 못할 일이 많았다. 여기에 쓰는 이야기 같은 것은 말하자면 그 중에서 가장 온당한 이야기의 하나에 지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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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든 김서방――도 이미 늦었으니 행랑구석에 가서 빈대에게 뜯기는 것보다는 오히려 노숙하기를 좋아하였다――과 나는 도수장(屠獸場)께를 지나서 동묘 앞까지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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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결엔지 가는 비가 보실보실 뿌리기 시작하였다. 축축한 어둠 속에 칙칙한 동묘가 그 윤곽을 감추고 있었다. 사방은 고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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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에 땅에서 솟은 듯이 이런 음성이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는 대신에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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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 보여두 한여름 동안을 이런 데루 댕기면서 잠자는 놈이다. 그렇게 쉽게 놀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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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담찬 소리를 남겨 놓고 동묘 대문께로 갔다. 예기한 바와 다름없이 거기에는 벌써 우리 따위의 친구들이 잠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꽤 넓은 대문간이지만 그 속에 그득하게 고기새끼 모양으로 오르르 차 있었다. 이리로 눕고 저리로 눕고 허리를 베이고 발치에 코를 박고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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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치락뒤치락 연해연방 잠꼬대소리가 뒤를 이었다. 그러면 이쪽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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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입맛을 쩍쩍 다시는 사람도 있었다. 그 바람에 나도 끌려서 어느결에 쩍쩍 다시려던 입을 꾹 다물어버리고 나는 어이가 없어 웃으면서 김서방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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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방 역시 웃으면서 두 손으로 졸린 눈을 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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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선 빠른게 첫째야. 이 잠자리두 이젠 세가 나네 그려.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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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발꿈치를 돌리려 할 때이다. 나는 으레히 닫혀 있어야 할 동묘 안으로 통한 문이 어쩐 일인지 반쯤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앞선 김서방의 어깨를 탁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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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방은 시원치 않은 듯이 역시 눈만 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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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안으로 말야. 지금 가면 어델 간단 말인가. 아무레대루 쓰러져 한 잠 자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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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고지기한테 들킬까봐 말인가? 상관 있나 그까짓 거 낼 식전에 일즉이 달아나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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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시원치 않은 듯이 머리를 긁는 김서방의 등을 밀치면서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중문턱까지 들어서니 더한층 고요하였다. 여러 해 동안 버려 두었던 빈 집터같이 어둠 속으로 보아도 길이 넘는 잡풀이 숲 속 같이 우거져 있고 낮에 보아도 칙칙한 단청이 어둠에 물들어 더 한층 우중충하고 게다가 비에 젖어서 말할 수없이 구중충한 느낌을 주었다. 똑바로 말이지 청 안에 안치한 그림 속에서 무서운 장사가 뛰어내닫지나 않을까 하고 생각할 때에 머리끝이 주삣하여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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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진 옷을 적실만하게 된 빗발을 피하여 앞뜰을 지나 넓은 처마밑에 이르렀다. 그 자리에 그대로 푹 주저앉아 겨우 안심한 듯이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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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방은 선뜻 나의 팔을 꽉 잡았다. 그의 가리키는 곳에 시선을 옮긴 나는 새삼스럽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별안간에 소름이 쭉 돋고 머리끝이 또다시 주삣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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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간 안되는 건너편 정전(正殿) 옆에! 두어 개의 불덩어리가 번쩍번쩍하였다. 정전의 탓이었는지 파랗게 보이는 불덩이가 땅을 휘휘 기다가는 훌쩍 날고 날다가는 꺼져 버렸다. 어디선지 또 생겨서는 또 날다가 또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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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 잘 타기로 유명한 왕눈이 김서방은 숨을 죽이고 살려달라는 듯이 나에게로 바짝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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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것을 다 이해하였다는 듯이 활연히 웃고 땀을 빠지지 흘리고 있는 김서방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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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화기가 버럭 난 김서방은 말끝도 채 못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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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았어 개똥불을 보고 속았단 말야,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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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방은 그래도 못미덥다는 듯이 그 큰 눈을 아직도 휘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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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는 손에 잡히는 작은 돌멩이를 하나 집어들었다. 그리고 두어 걸음 저벅저벅 뜰 앞까지 나가서 역시 반짝거리를 개똥불을 겨누고 돌을 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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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나는 짜장 놀랐다. 돌을 던지면 헤어져야 할 개똥불이 헤어지긴 커녕 요번에는 도리어 한군데 모여서 움직이지도 않고 그 무슨 정세를 살피는 듯이 고요히 이쪽을 노리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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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숨을 죽이고 그곳을 들여다보았다. 오―― 그때에 나는 더 놀라운 것을 발견하였다! 꺼졌다 도 생긴 불에 비쳐 헙수룩한 산발과 똑똑지못한 희끄무레한 자태가 완연히 드러났다. 그제야 “흥 흥”하는 후렴없는 신음소리조차 들려오는 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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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식간에 달팽이같이 오므러쳤다. 그리고 또 부끄러운 말이지만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에 나는 동묘 밖 버드나무 밑에 쓰려져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였다. 사실 꿈에서나 깨난 듯하였다. 곁에는 보나 안보나 파랗게 질린 김서방이 신장대 모양으로 벌벌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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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이슥하였는데 집으로 돌아가기도 무엇하니 나머지 밤을 동대문께 가서 새우자고 김서방이 제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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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여전히 뿌리고 있었다. 뒤에서 무어가 좇아오는 듯하여 연해연방 뒤를 돌려보면서 큰 행길에 나섰을 때에는 파출소 붉은 전등만 보아도 산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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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담 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킨 캄캄한 어둠 밖에는――물론 파란 도깨비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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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이리로 왔더라면 아무 일두 없었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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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비슷하게 탄식하고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할 수 없어서 “에라 아무데나” 하고 그 자리에 푹 주저앉았다.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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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놀라기 전에 간잎이 싸늘해졌다. 도톨도톨한 조약돌이나 그렇지 않으면 축축한 흙이 깔려 있어야만 할 엉덩이 밑에――하나님 맙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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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이 아니다. 버들껑 하는 동작과 함께 날카로운 소리가 독살스런 땡비같이 나의 귀를 툭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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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무공같이 벌떡 뛰었다. 그리고는 쏜살같이――그 꼴이야말로 필연코 미친놈 모양이었을 것이다――줄행랑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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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방은 거의 울음겨운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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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서울이 사람 사는 곳이 아니구 도깨비굴이었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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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나중에는 맡길 데 없는 분기가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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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한없이 어리석고 못생긴 우리의 꼴들을 비웃고도 싶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세상에 원 도깨비나 귀신치고 몸동아리가 보들보들하고 물큰물큰하고――아니 그건 그렇다고 해두더래도 “어떤 놈야 이게!” 하고 땡비 소리를 치다니 그게 원…… 하고 의심하여 볼 때에는 더구나 단단치 못하게 겁을 집어먹은 것이 짝없이 어리석게 생각되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또 발을 돌려 그 정체를 탐지하러 갈 용기가 있었느냐 하면 그렇지도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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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수 없이 보슬비를 맞으면서 수구문 밖 김서방네 행랑방까지 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가제나 덕실덕실 끓는 식구 틈에 끼어서 하룻밤의 폐를 끼쳤다. ――고 하여도 불과 두어 시간의 폐일 것이다. ――막 한잠 자려고 드러누웠을 때에는 벌써 날이 훤히 새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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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여 나는 원 무엇이 씌었던지 하룻밤에 두 번씩이나 도깨비인지 귀신한테 혼이 났었다. 사실 몇 해수는 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 누구를 원망하면 좋았으리요? 술 먹고 늦장을 댄 내 자신일까, 노숙하지 않으면 아니 된 나의 운명일까, 혹은 도깨비나 귀신 그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그 외의 무엇일까…… 나는 이제야 겨우 이 중의 어느것을 원망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똑똑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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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든 유령 이야기는 이만이다. 하나 참 이야기는 이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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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자 곤한 것도 무릅쓰고 나는 열심히 일을 하였다. 비는 어느결에 개어버렸던지 또 푹푹 내려찌는 태양 아래에서 시멘트 가루를 보얗게 뒤집어쓰고 줄줄 흐르는 땀에 젖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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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전날 밤에 당한 무서운 경험을 머리 속으로 되풀이하여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도깨비면 도깨빈가 보다 하고만 생각하여 두면 그만이었지마는 그래도 그것을 그렇게 단순하게 식 닦아 버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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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요리조리로 무한히 생각하였다. 하나 아무리 생각한다 하더라도 결국 나에게는 풀지 못할 수수께끼에 지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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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수 없이 나는 점심 시간을 타서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다. 모두들 적지 않은 흥미를 가지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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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 꼭대기에 시멘트를 갖다 주고 내려온 맹꽁이 유서방은 등에 메었던 통을 내려놓기도 전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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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또를 박박 긁던 달냉이 최서방은 이렇게 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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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장 침착하게 담배를 푹푹 피우던 대머리 박서방만은 그다지 신통치 않은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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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것한테 그렇게 혼이 났단 말인가…… 딴은 왕눈이 따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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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밉지 않게 싱글싱글 웃으면서 김서방과 나를 등분으로 건너보았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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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도깨비해두 나같이 밤마다야 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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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빨던 담배를 툭툭 털더니 이야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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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우리 집 옆에 빈집이 하나 있네. 지금 있는 행랑에 든 지가 몇 달 안되어 모르긴 모르겠으나 어떻게 된 놈의 집이 원 사람이 들었던 집인지 안 들었던 집인지 벽은 다 떨어지구 문짝 하나 없단 말야. 그런데 그 빈집에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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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구 인제 골목쟁이를 거닐지 않겠나. 그러면 그때일세. 별안간 고요하던 빈집에 불이 하나씩 둘씩 꺼졌다 켜졌다 하겠지. 그것이 진서방(나를 가리켜 하는 말이다) 말마따나 무엇을 찾는 듯이 슬슬 기다는 꺼지고 꺼졌단 또 생긴단 말야. 그런데 그런 불이 차차 늘어가겠지. 그리곤 무언지 지껄지껄하는 소리가 나자 한쪽에서는 돈을 세는지 은방망이로 장난을 하는지 질걱질걱하다간 또 무엇을 먹는지 쭉쭉 하는 소리까지 들리데. 그나 그뿐인가. 어떤 날은 저희끼리 싸움을 하는지 씨름을 하는지 후당탕하면서 욕지거리, 웃음소리 참 야단이지. 그러다가두 밤중만 되면 고요해지지만 그때면 또 별 괴괴망칙한 소리가 다 들려오데.”
96
하고 좌중을 둘러보면서 싱글싱글 웃었다.
98
옴크리고 앉았던 달냉이 최서방은 겨우 숨을 크게 쉬면서 눈을 까불까불하였다.
99
“그럼 정말 아니구 내가 그래 자네들을 데리구 실없는 소리를 하겠나.”
101
“하나 너무 속지들은 말게. 그런 도깨비는 비단 그 빈집에나 진서방들 혼난 데만 있는 것이 아닐세. 위선 밤에 동관이나 혹은 종묘께만 가보게. 시글시글할테니.”
102
나의 도깨비 이야기를 하여 의심을 풀려든 나는 박서방의 도깨비 이야기로 하여 그 의심을 더한층 높였을 따름이었다. 더구나 뼈 있는 그의 말과 뜻있는 듯한 그의 웃음은 더한층 알지 못할 수수께끼였다.
103
“그럼 대체 그 도깨비가 무엇이란 말유.”
104
“내가 이 자리에서 길다케 말할 것 없이 자네가 오늘 저녁에 또 한번 가서 찬찬히 살펴보게. 그러면 모든 것이 얼음장같이……”
105
할 때에 박서방의 곁에 시커먼 것이 나타났다.
107
일인 감독의 일할 시간이 왔다는 것을 고하는 듯한 소리였다.
110
나도 하는 수 없이 박서방에게 더 캐묻지도 못하고 자리를 일어나서 나 맡은 일터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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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또 한번 거기를 가보기로 작정하였다. 물론 김서방은 뺑소니를 치고 나 혼자다. 뻔히 도깨비가 있는 줄 알면서 또 가기는 사실 속이 켕겼다. 하나 또 모든 의심을 풀어 버리고 그 진상을 알려하는 나의 욕망은 그보다 크면 컸지 결코 적지는 않았다. 나는 장차 닥쳐올 모험에 가슴을 벌떡이면서 발에다 용기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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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손에 든 몽둥이――나는 만일의 경우를 염려하여 몽둥이 하나를 준비하였던 것이다――를 번쩍 들 때에 나는 저절로 흘러나오는 미소를 금할 수 없었다. 도깨비를 정복하러 가는 유령장군 같이도 생각되어서. 사실 한다하는 ×자 놈들이면 몰라도 무엇을 못 먹겠다고 하필 가난뱅이 노숙자들을 못살게 굴고 위협과 불안을 주는 유령을 정복하여 버리는 것은 사실 뜻 있고도 용맹스런 사업일 것이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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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든 장차 닥쳐올 모험에 가슴을 벌떡이면서 발에다 용기를 주었다.
116
어두워 가는 황혼 속에 음침한 동묘는 여전히 우중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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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이르다고 생각하였으나 나오기를 기다리면 되지 하고 제멋대로 후둑후둑 뛰는 가슴을 가라앉히고 아직도 열려 있는 대문을 서슴지 않고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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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을 들어서 정전 앞으로 몇 발짝 걸어갔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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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에 나타났던 정전 옆 바로 그 자리에 헙수룩하게 산발한 두 개의 그림자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벌써 어리석은 전날 밤의 나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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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둥이를 번쩍 들고 사실 장군다운 담을 가지고 나는 그 자리까지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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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손에서는 만신의 힘이 맺혔던 몽둥이가 힘없이 굴러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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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장군이 금시에 미치광이 광대새끼로 변하여 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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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림없이 도깨비가 순식간에 두 모자의 거지로 변하다니!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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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순간 그 무엇을 번쩍 돌려 생각한 나는 또다시 몽둥이를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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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도깨비란 소리에 영문을 모르는 두 모자는 손을 모고 썩썩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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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라면 그저 나가라든지 그래 이 병신을 죽이시렵니까. 감히 못 들어올 덴 줄은 알면서도 헐 수 할 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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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겨운 목소리로 이렇게 사죄를 하면서 여인네는 일어나려고 무한히 애를 썼다. 어린애는 울면서 그를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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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광대에 지나지 못한 나는 너무도 경솔한 나의 행동을 꾸짖고 겨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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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우 앉아 계시우. 나는 고지기두 아무것두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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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는 안심한 듯한 동시에 감사에 넘치는 눈으로 나를 치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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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여기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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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가 무언지 분간할 수 없는 나는 이렇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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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나오다니요? 아무것도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구 단지 우리 모자밖에는 여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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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네는 어마무사하여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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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래도 속으로 의심하면서 주위로 눈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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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나 생겼습니ᄁᆞ. 정말 저희들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구 저희는 저질른 것두 없습니다. 밤중은 돼서 다리가 하두 아프길래 약을 발르려고 찾으니 생전 있어야지유. 그래 그것을 찾느라구 성냥 한 갑을 다 거 내버린 일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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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여인네는 한쪽 다리를 훌떡 걷었다. 그리고 눈물이 그 다리 위에 뚝 뚝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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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것을 얼음장 풀리듯이 해득하기는 하였으나 여기서 또한 참혹학 그림을 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의 훌떡 걷은 한편 다리! 그야말로 눈으로는 차마 보지 못할 것이었다. 발목은 끊어져 달아나고 장딴지는 나뭇개비같이 마르고 채 아물지 않은 자리가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147
“그놈의 원수의 자동차…… 그나마 얻어먹지도 못하게 이렇게 병신을 맨들어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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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공원 앞에서 그놈의 자동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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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득 어슴푸레한 나의 기억의 한 귀퉁이를 번개같이 되풀이하였다.
154
그날도 나는 이유 없이――가 아니라 바로 말하면 바람 쏘이러――밤 장안을 헤매고 있었다. 장안의 여름밤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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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동안에 이글이글 타는 해에 익은 몸동아리에 여름밤은 둘없이 고마운 선물이었다. 여름의 장안 백성들에게는 욱신욱신한 거리를 고무풍선 같이 떠다니는 파라솔이 있고, 땀을 들여주는 선풍기가 있고, 타는 목을 식혀주는 맥주 거품이 있고, 은접시에 담긴 아이스크림이 있다. 그리고 또 산 차고 물 맑은 피서지 삼방이 있고, 석왕서가 있고, 인천이 있고, 원산이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꿈에도 못 보는 나에게는 머루알빛 같은 밤하늘만 치어다보아도 차디찬 얼음 냄새가 흘러오는 듯하였다. 이것만 하더라도 밤 장안을 헤매이는 것은 무의미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거리 위에 낮 거미새끼같이 흪어진 계집의 얼굴――은 사려분 냄새만 맡을 수 있는 것만 하여도 사실 밤 장안을 헤매이는 값은 훌륭히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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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장안의 여름밤을 아름다운 꿈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큰 실수이다. 거기에는 생활의 무거운 짐이 있다. 잔칫집 마당같이 들볶아치는 야시에는 하루면 스물네 시간의 끊임없는 생활의 지긋지긋한 그림이 벌려져 있었다. 거기에는 낮과 다름없이 역시 부르짖음이 있고, 싸움이 있고, 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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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튼지 간에 가슴을 씻겨주는 시원한 맛은 싫은 것은 아니었다. 여름밤은 아름다웠다. 그런고로 나는 공원 앞 큰 행길 옆에 사람이 파도를 일으키면서 요란히 수물거리는 것은 구태여 볼 것 없이 술김에 얼근한 주객이나 그렇지 않으면 야시의 음악가 깽깽이 타는 친구들 둘러싸고 있는 것이려니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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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중얼거리면서 무심코 그곳을 지나려 하였다.
160
그러나 사람들이 스물거리는 품이 주정꾼이나 혹은 깽깽이군의 경우와는 달랐다.
166
하는 주객의 노래는 안 들렸다. 그렇다고 밤 사람을 취하게 하는 ‘아름다운’ 깽깽이 노래도 들려오지는 않았다.
168
나의 발길은 부지중에 그리고 향하였다.
170
나는 거의 실망에 가까운 어조로 이렇게 중얼거리고 대수롭지 않은 듯이 발길을 돌이키려 할 때이다. 사람들의 수물거리는 틈으로 나는 무서운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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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의 숲에 싸여서 안보이던 한 채의 자동차와 그 밑에 깔린 여인네 하나를 보았다. 바퀴 밑에는 선혈이 임리하고 그 옆에는 거지아이 하나가 목을 놓고 울면서 쓰러져 있었다. “자동차 안에는” 하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불량배와 기생년들이 그득하였다.
173
“자동찰 타니 신이 나서 사람까지 치니.”
175
이런 말마디를 주우면서 나는 어느결에 그 자리를 밀려져 나왔었다.
177
나는 되풀이하던 기억의 끝을 문뜩 돌려 이렇게 물었다.
178
“네 그렇답니다. 달포 전에 그 원수의 자동차에 치어가지구 병원엔지 무엔지를 끌구 가니 생전 저 어린 것이 보구 싶어 견딜 수 있어야지유. 그래 한달두 채 못돼 되루 나오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이 놈의 다리가 또 아프기 시작해서 배길 수 있어야지유. 다리만 성하문야 그래두 돌아댕기면서 얻어먹을 수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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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네는 차마 더 볼 수 없는 다리를 두 손으로 만지면서 울음에 느꼈다.
180
나는 그의 과거를 더 캐물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니 묻지 않아도 그의 대답은 뻔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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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원래 가난했습니다. 그런데다가 남편이 죽구 나니……”
182
비록 이런 대답은 안 할지라도 그 운명이 그 운명이지 무슨 더 행복스런 과거를 찾아낼 수 있었으리요.
183
나의 눈에는 어느결엔지 눈물이 그득히 고였었다. ‘동정은 우월감의 반쪽’ 일는지 아닐는지는 모른다. 하나 나는 나도 모르는 동안에 주너미 속에 든 대로 돈을 모두 움켜서 뚝 덜어지는 눈물과 같이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없이 부리나케 그 자리를 뛰어나왔었다.
185
독자여, 이만하면 유령의 정체를 똑똑히 알았겠지. 사실 나도 이제는 동대문이나 동관이나 종묘나 또 박서방 말한 빈 집터에 더 가볼 것 없이 박서방의 뼈 있는 말과 뜻있던 웃음을 명백히 이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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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모두 나와 같은 운명을 가진 애매한 친구들을 유령으로 생각하고 어리석게 군 나를 실컷 웃어도 보고 뉘우쳐 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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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여, 뭐? 그래도 유령이라고? 그래 그럼 유령이라고 해두자. 그렇게 말하면 사실 유령일 것이다. ――살기는 살았어도 기실 죽어 있는 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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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든 유령이라고 해두고 독자여 생각하여 보아라. 이 서울 안에 그런 유령이 얼마나 많이 늘어가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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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간다고 하면 말이다. 또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첫 페이지로 돌아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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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슴푸레한 저녁 몇 리를 걸어도 사람의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무인지경인 산골짝 비탈길 여우의 밥이 다 되어 버린 해골덩이가 똘똘구는 무덤 옆, 혹은 비가 축축히 뿌리는 버덩의 다 쓰러져 가는 물레방앗간, 또 혹은 몇 백 년이나 묵은 듯한 우중충한 늪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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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흔히 나타나는 유령이 적어도 문명의 도시인 서울에 오히려 꺼림없이 나타나고 또 서울이 나날이 커가고 번창하여 가면 갈수록 유령도 거기에 정비례하여 점점 늘어가니 이게 무슨 뼈저린 현상이냐! 그리고 그 얼마나 비논리적 마술적 아지 못한 사실이냐! 맹랑하고도 기막힌 일이다. 두말할 것 없이 이런 비논리적 유령은 결코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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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유령을 늘어가지 못하게 하고, 아니 근본적으로 생기지 못하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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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독자여! 무엇을 주저하는가. 이 중하고도 큰 문제는 독자의 자각과 지혜와 힘을 기다리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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