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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文學(조선문학)의 변천 ◈

해설본문  1932.5
안확

1. 1. 서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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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학사를 수탐하여 봄에는 먼저 그의 재료를 수합함에 있을 것이다. 짐작컨대, 고래 인사의 심전(心田)에서 피어난 미적 감정이 단순치 아니할 것은 짐작하여도 알 것이요, 그를 기록하여 물려오는 문적(文籍)도 또한 형형색색으로 그 수가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허다 복잡한 재료를 모두 사득(査得)하여야 비로소 왕고문학(往古文學)의 진상을 꿰뚤어 얻을 수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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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들이 오늘날에 앉아서 고래의 문적을 구하기는 대단히 곤란한 사정이다. 고사에 대한 재료 취집이 용이치 못함은 오직 문학사(文學史)뿐 아니라 일반 사적(事蹟)이 모두 그러하다. 그러하되 그중에도 문학사 재료가 맹랑하게 사실(査實)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이는 무슨 연유냐 하면, 첫째 고래 문학상 관념의 변천에 따라 흐지부지로 산망(散亡)하여진 때문이다. 고래 학자는 각기 소견에 따라 문학을 문예품·덕화물(德化物) 또는 이화물(理化物)로 뜻을 두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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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직(金宗直)은 “이(理)와 문(文)은 우리의 가슴 가운데서 융회(融會)하는 것인데, 그것이 발하여 언어와 사부(詞賦)가 되는데 스스로 잘하기를 바란다고 잘되는 것이 아니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列東集序」[열동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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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순(馬麟淳)은 “문장과 도덕은 본래 둘이 아니다. 축적되어 있는 마음이 도가 되고, 그것이 표현되어 나온 것이 곧 문장이다.”(「樂齋集序」[악재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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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광(李睟光)은 “문사(文詞)는 한 기능에 그친다. 비록 공들인다 해도 유익함이 없으니 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芝峰集』[지봉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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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의 문학상 계설(界說)이 각색으로 갈라져 온 동시에 자기 소견에 맞지 아니한 것은 서로 구박하여 말살해버리니, 흡사 반백자(斑白者)가 처첩을 두매 노처(老妻)는 검은 머리가 미워 뽑고 소첩(少妾)은 백발을 미워 뽑아 나중에는 그 머리가 대머리가 되었다듯이 고대의 찬란히 발생한 문학은 각기 다른 주장이 서로 물리쳐져서 잠소암삭(潛銷暗削)으로 없어져버렸다. 이 형지로 되어 있는 처지에 있어 고문적을 완전히 사출(査出)한다기는 몹시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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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곤란한 점은 문학의 형체인 문자의 사용이 거북하게 되어 온 일이다. 본래 이조(李朝) 이전에는 고유문자가 없었다. 혹자는 말하되, 단군(檀君) 때 사람 신치(神誌)란 인물이 문자를 지었다고, 혹은 신라문자·백제문자 등이 있다 하나 그는 다 황당무계한 군설(窘說)이다. 설혹 그런 전설이 있더라도 지금에는 그 형적을 못 보는 이상 없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실상으로 말하면, 문자 사용은 삼국시대에 한문(漢文)을 쓴 것이 시초다. 그런데 그 용법은 둘로서 하나는 순한문(純漢文) 그대로 쓰고, 하나는 한자(漢字)의 음(音) 또는 훈(訓)을 이용하여 관명(官名)·지명(地名) 혹은 가사(歌詞) 등을 기록한 일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 확실히 보편적으로 통용은 되지 않았다. 그후 고려 말기에 이르러 법관(法官) 등이 법조문(法條文)을 적용함에 해석이 어려우므로 우리말을 써서 법률을 번역하자는 요구가 일어났다. 그 요구의 실효는 이조 초기에 이르러『대명률(大明律)』을 해역(解譯) 간행함에 미쳐서 성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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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률직해』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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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他人[타인](乙[을]) 侵害[침해](爲乎等用良[위호등용량]) 全免[전면](不冬[불동]) 贖罪[속죄](令是臥乎矣[령시와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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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十以上七歲以下[구십이상칠세이하](亦必于[역필우]) 死罪[사죄](乙)[을]獨[독](爲良置)[위량치]加刑[가형]不冬爲乎矣[불동위호의] 犯逆[범역](良中[양중])緣坐屬公合當[연좌속공합당](爲在乙良[위재을량])不用他律[불용타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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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문학상 관념이 점차 진보되어 오다가 세종조에 와서 훌륭한 언문(諺文)을 창조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학자 계급에서는 편리한 언문을 도리어 천시하고 끝내 한문을 전상(專尙)하여 온 것이다. 이상과 같이 지난날의 문자 용법이 불완전하여 온 까닭으로 이래 순정(純正)한 조선문학이라고는 그 재료를 취득하기가 정말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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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불완전한 문적(文籍)은 오히려 우리들의 연구력을 굳세게 한다. 약자의 물건은 비전력(祕傳力)이 있고 비전(祕傳)의 보존력은 강탈력과 대비된다. 옛날 각 주장(主張)의 분탕으로써 그 재료의 말살이 우심하였으되 그중에도 각파의 문집이 구메구메 전래하여 그 수가 무릇 2천 수백종에 이르니 (『文獻備考』[문헌비고] 藝文志[예문지]), 오늘날 우리들은 그 비전된 작품을 사득(査得)하여 그의 계통을 잡아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이 책임을 가지고 10여 성상을 지내온 나머지 널리 고문헌을 채방(採訪)한 중에 지금 대강 그의 맥락을 세워 말하고자 하거니와 이후라도 이 학문에 유의하는 자는 그 흥미가 이 불완전한 재료를 잘 마르잼에 있다 하겠다.
 

2. 2. 文學[문학]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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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의 원주지(原住地)는 이제 명언하기 불능하나 극동의 반도(半島) 및 대륙의 일부를 일원으로 하여 거기서 전접(奠接)을 안정한 후로부터 일반 생활의 역사를 개시한 것이다. 그 역사적 서막(序幕)에 따라 문학의 기원도 발생하니, 그 기원은 아래와 같이 대략 세 방면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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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정치 생활 : 조선 민족의 최초 단체 생활은 전쟁을 일삼은 무사(武士) 사업이다. 본래 조선의 국토는 천연적 낙원으로 된 판도다. 그러므로 각 민족의 침탈이 심하던 터에 조선족은 그 각족(各族)을 탕척(蕩斥)함에 대하여 필사의 힘을 다하여 오니 『삼국지(三國志)』『후한서(後漢書)』 등에 예맥(濊貊)·옥저(沃沮)·부여(夫餘)·진한(辰韓)·마한(馬韓) 사람들은 성품이 강하고 보전(步戰)을 잘하며, 3장(三丈) 되는 장모(長矛)와 또 대궁(大弓) 등 특수 무기를 상용한다 한바, 이 기록은 고조선인(古朝鮮人)의 전쟁 생활을 증언한 것이요, 더욱 근일 곳곳 땅속에서 3천년 전에 사용하던 돌칼·돌 도끼 등 실물을 발견함에 따라서는 고대인의 생활이 무사적임을 분명히 알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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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쟁 사업이 얼마를 지났던지 거의 평정됨에 닥쳐서는 그 군영 생활을 옮겨 도처에 조그만 나라를 배포(排布)하고 정치의 설비를 차려낸 것이다. 그로부터 생활 조직이 안돈(安頓)되어 가매 서식(棲息)을 짝하여 오는 국토의 화려한 기상·풍물이 본래의 무사의 강한 성질을 감화하여 강유(强柔) 겸전의 민족성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태고 우리 조선(祖先)의 사상 활동은 그 무사적 기품과 국토상 풍취(風趣)의 합병 작용으로써 기본을 지으니, 이것이 문학 기원의 제1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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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경제 생활 : 본래 국토의 지미(地味)·기후는 매우 적당하여 자연의 산물이 생활의 흡족한 자료를 제공했기 때문에 태고의 실생활은 조그만 힘으로써 식물(食物)을 취하기 좋으므로 그 생존에 필요한 노력의 여유는 문학 발생의 능력을 주는 것이다. 물론 남북의 지질(地質)이 같지 않아 북방인은 생업의 고로(苦勞)가 있고 남방인은 산업이 유족하여 너무 태기(怠氣)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는 원동(原動) 및 반동(反動)이 생김에 미쳐서 잉여적 세력으로 나오는 문학의 발생력은 더욱 강하게 나갔을 것이다. 여하간 당시인의 경제상 여력은 문학의 발생력을 도움이 많으니, 이것이 문학 기원의 제2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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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정적(情的) 생활 : 당시인의 정(情)생활은 여러 기록을 기대어 추상(推想)할 수 있으나 그중에도 천신(天神)을 숭봉(崇奉)하였다, 또는 가요(歌謠)를 노래하였다 한 문적은 족히 그의 미감(美感) 발동을 알기에 중대한 증거다. 『후한서』에 “부여(夫餘)에서는 12월에 제천대회(祭天大會)를 열고 여러 날 동안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데 그 이름을 ‘영고(迎鼓)’라 한다. 나다니는 사람이 밤낮없고 노래하기를 좋아하여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고 하고, 『삼국지』에는 “마한(馬韓)에서는 언제나 5월에 씨뿌리기를 끝내고 귀신에게 제사지내는데 군중이 모여 노래하고 춤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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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발에 따르면 당시 사람의 영기(靈氣)는 천신을 존숭함에서 활동된 것 이다. 당시 사람은 그들의 지식이 아직 열리지 못한바 인력이 미치지 못하는 사물에 대해서는 그 감각이 그만 소박한 상징주의에 걸렸다. 다시 말하면 객관화한 실감이 내면적 발표로 인하여 탈투(脫套)의 지경을 얻고자함에 노력해서는 일종의 추리적 사색이 하느님이란 천신의 관념을 지어낸 것이니, 그러므로 그때의 이상경(理想境)은 하느님을 인식한 천상의 세계를 주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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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활동된 사상은 종교적 의식으로 기울어져 인반의 인사(人事) 및 물리(物理)를 천신에 붙일새 소설(小說)도 거기서 발생하고 시가(詩歌)도 거기서 연작(演作)한 모양이다. 그런즉 문학 기원의 제3조는 천신 신앙의 정적 활동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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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문학의 기원은 이상에 말한 대로 3조로 볼 것이다. 다시 결론으로 말하건대, 외잡(猥雜)한 기형(畸形)의 세계와 다투어 질서와 조화를 보아낸 순일하고 청랑(晴朗)한 형상의 세계를 배설함이 태고인의 노력이다. 이 정신이 실지에 발작해서는 다년의 전쟁으로 악마의 군적(群敵)을 물리치고 신성한 국가를 개창함에 이른 것이다.
 

3. 3. 三國時代[삼국시대]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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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로부터 일반 생활의 발전을 짝하여 오는 사상의 변화력은 지리적 감명과 외족으로 더불어 접촉되는 사정과의 2대 원인에 기본하여 강조될 새, 그렇게 굳어져 온 심상(心像)의 표현 작용은 삼국 건설로부터 스스로 각기 습성에 따라 남북방의 형이(逈異)한 성적을 나타내지니, 다시 말하면 삼국시대의 문학은 남북 두 방면의 이색(異色)을 지어 온 것이다.
 

3.1. (1) 북방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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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의 고구려(高句麗)는 양양(洋洋)한 해파(海波)가 없고 거대한 산맥이 깔렸고 기후가 한음(寒陰)하며 맹수가 서식 횡행하니, 이땅의 사람은 황원적(荒原的)이요 남성적이다. 그 습관 그 성격이 고구려를 건설해서는 본래의 무사적 정신이 반이 넘게 유전(遺傳)한 동시에 한족(漢族)과 전쟁함이 끊이지 아니하여 7백년간 생활이 오로지 경쟁적·호승적(好勝的)으로 지내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상은 인습과 규범을 타파하고 개성의 권위를 주장하여 무구속의 자유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상에 있어서는 정객의 가혹한 수단을 휘두르며 국왕을 잔살(殘殺)한 자취가 있다. 그 심상(心像)으로 나온 문학은 모두가 낭만적 주의라 불사의(不思議)하고 괴이한 재료를 취하여 그 각색이 기발한 열정적 풍도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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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나타난 인물의 전기는 10명 내외의 소수로서 매우 빈약하여 그로서는 전체의 성질을 말하기가 부족하나 그 대체의 각색을 보아 능히 그 주관적 사상의 전함을 알 것이니, 곧 그 인물들의 자취는 전실(典實)한 인격보다 기괴 천만으로서 강대한 상상력에 의하여 불가사의의 지정(志情)을 표현하여 독자로 하여금 기신(奇新)의 취미를 용동(聳動)케 하는 것이 태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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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최초로 나온 건국왕인 동명(東明)의 전설을 보면, 그 탄생 설화는 기괴 천만이다. 그 부친은 천제자(天帝子)로서 천상으로부터 세상에 강림하여 용왕(龍王)의 딸과 연애를 맺을새, 용왕과 서로 경기 운동했다는 것은 기괴 신이(神異)하고 그 용왕의 딸이 수궁(水宮)으로부터 쫓겨나서 해그림자에 비치어 동명을 낳았으며, 또한 동명이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우발수(優勃水)를 건너올새 어족(魚族)들이 다리를 놓았다 하니, 이게 어떠한 낭만적인 설화(說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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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벽지(僻地)인 수실촌(水室村)에서 고용살이하던 을불(乙弗)이란 자가 있어 갖은 천대를 받고 나중에 소금장수로 다닐새 관가에 잡혀가서 억울한 볼기를 맞고 나와 어떤 강변에서 울부짖다가 국상(國相) 창조리(倉助利)가 맞아들여 하루 아침에 국왕의 옥좌에 앉았다. 또한 나무꾼 총각인 온달(溫達)은 산간에서 땔나무를 지고 오다가 불사의(不思議)로 국왕의 사위가 되었다. 을지문덕(乙支文德)이 복병(伏兵)을 베풀고 시 1수로써 수장(隋將)을 유인하여 기습으로써 100만병을 깨뜨렸다 함도 진기 신이(珍奇神異)한 설화로서 평범한 사기(史記)가 아니요, 신비적인 상상과 감정을 움직이게 하는 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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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같이 기발한 사상은 평범한 사물이라도 이상한 광경을 드러내고자 하는 경향이매, 가요에 있어서도 열정적인 불사의의 율미(律美)가 있다. 유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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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조가(黃鳥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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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펄 나는 꾀꼬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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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수 서로 의지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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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울사 이내 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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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와 더불어 돌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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翩翩黃鳥[편편황조], 雌雄相依[자웅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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念我之獨[염아지독], 誰之與歸[수지여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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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세 유리왕(類利王)의 첩이 시앗싸움에 성이 나서 자기 고향으로 도망할 새 왕이 그를 쫓아가다가 미치지 못하여 황조(黃鳥)를 보고 자탄한 것인데, 이는 한 나라의 군왕으로서는 불가위의 행색이나 형식을 돌아보지 않고 열정 분방으로 자기 감정을 구속 없이 발로(發露)한 것으로 보면 당연한 것이라 할 것이다. 또한 「명주가(溟洲歌)」는 어떤 서생이 자기 애인의 서간(書簡)을 고기 뱃속에서 얻어 결혼을 성취한 것이니, 곧 애인의 부친이 그 정랑(情郞)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 보내고자 할새 그 딸이 편지를 써서 물속 잉어에게 던졌던바 그 정남(情男)이 저자에서 한 고기를 매입하여 반찬을 만들다가 그 편지를 얻어가지고 놀라 여자 집으로 다다르니, 마침 신랑과 결혼식을 행하던 터라 그의 원정(原情)을 부친에게 직고하고 드디어 신랑을 축출하였다는 내용이니, 이 연애의 성취가 얼마나 신비적이며 어떤 상상이 미치지 못하는 광경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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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 진술한 대로 북방 문학은 낭만적인 것으로서 열렬한 감정과 정서를 중히 하는 주관문예(主觀文藝)이다. 말하자면, 북방 문학은 도회주의(都會主義)의 문학이 아닌바 화려를 귀히하고 기지(機智)를 자랑하는 바의 형식적이 아니요, 용감하고 호승적(好勝的)이어서 일상의 평범한 제재로는 만족함이 없이 가급적 초월한 진기 괴이한 재료를 좋아하여 참신 기발의 취미로써 인심을 용동코자 한 문학이다. 혹 열광을 귀히하고 요염(妖艶)을 사랑하며 유원(幽遠)을 사모하고 신비를 기뻐한 경향에 나가고 혹시 평속(平俗)을 피하여 괴기에 달려가는 명석을 꺼려서 몽롱에 기울어진바 드디어 소략한 사적(史蹟)을 나타내게 되니, 이것이 실로 북방 문학의 큰 결점이라 할 것 이다. 그러나 이 결점은 어디를 물론하고 낭만적 사상의 자연스런 결과라 하겠다.
 

3.2. (2) 남방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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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의 지세는 북방과 달라 삼면이 바다로 된 반도라 산수가 화려하고 기후가 따뜻하여 일반 풍경이 전원적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닦여난 인민은 우미 섬세한 여성적이니, 신(神)을 위함에는 특히 일월(日月)로써 국조(國祖)를 삼아 신관(神官)을 ‘奈乙[내을](날·日[일])’이라 하고 국가도 ‘나라’라 하여 최고위는 다 태양을 표상(表象)할새 이 광명한 태양을 숭상한 것은 곧 양성적(陽性的)·기교적(技巧的)인 예술을 발휘하는 정신이다. 그러므로 북방의 대혈(大穴)로써 정신 표상을 삼은바 음성적과는 상반되는 성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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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 지방의 문학은 기교적·형식적인 사상으로서 의고주의(擬古主義)로 되어 나오니, 말하자면 기정한 표준 법칙을 정당한 것으로 하여 개인은 그 권위에 복종하는 일을 근본으로 한다. 그러므로 일반 전기(傳記)에 나타난 인물의 성격은 다른 생기가 없으나 충의(忠義)·절개(節槪)에 열렬하여 공덕(公德)을 존중하는 풍도가 있다. 신라(新羅)의 소위 화랑도(花郞徒)란 것은 수백명 또는 수천명의 단체로서 항상 도의(道義)를 강마(講磨)하여 임협고풍(任俠高風)의 국민성을 진작하니, 이런 풍도는 실로 북방 풍속에서 보지 못하는 일이다. 그 우미(優美)의 정도의(情道義)의 풍도는 만사에 확대하여 그로써 일반 문화를 개진(開進)하니, 외국 문명을 수입함에도 반드시 자국 정신에 동화(同化)하여 채장보단(採長補短)의 방침을 가지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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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사상에 있어서는 고대의 소박한 상징주의에서 일보를 다시 나아가 주아적(主我的) 동기를 더한 바의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관념으로 탈화(脫化)하였다. 이 사상은 일반 전설에 있어서 표현되니, 그 호수설(虎藪說)은 그의 대표적 전설이다. 원성왕(元聖王) 때에 김현(金現)이란 자가 위복회(爲福會)에 갔다가 한 처녀를 만나 정을 통하고 그 집에 가서 보니 이에 호랑이(虎[호])다. 그 오라비 세 마리의 호랑이가 김현을 잡아 먹고자 하였다. 천신이 호령하여 세 호랑이를 징계하려 한대 여자 호랑이가 말하되 “화를 어찌 한집에 미치리요”하고 스스로 대신 죽어버렸다. 이 전설은 유명한 이야기로서 여기 나타난 사상은 곧 자연과 인생의 융화를 보이니, 호랑이가 사람 형상으로 변작하고 또 그의 도의적 대신 죽음은 동물이 인간화한바 물아일체의 주의 됨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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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詩歌)는 그 착상이 아무 생기가 없이 모두 도의적인 묘사다. 그러나 그 형식으로 말하면, 율조(律調)는 8자박으로 구성되니, 이 8자박은 사람의 호흡상 자연스런 가락이다. 곧 강약을 1단으로 한 바의 2박자의 선율이다. 이는 곧 자연율(自然律)로 된 것인바 음조가 규칙적으로 반복하여 균제(均齊)의 미가 있는 동시에 평정(平靜)의 느낌을 일으키는 것이다. 특히 백제(百濟)의 「정읍가(井邑歌)」에서는 수식법이 미묘하니 그 사자(詞姿)가 감동사를 반복적으로 써서 고취(高趣)를 더한 동시에 표정이 심원하고 상상의 여운을 함축하니 이의 율조와 수사법은 후세 문장의 기본이 되었다. 신라의 중기 곧 반도를 통일한 때로부터는 심미적 활동이 진보하여 문예는 일층 화상적(華想的)으로 발달하였다. 그 진보의 원인은 반도 통일사업에서 일어난 것이니, 이래 삼국 전쟁이 부절하다가 신라가 당(唐)과의 공수정책(共手政策)을 써서 통일의 사업을 성공하였다. 그로부터 전투가 끝나서는 민지(民志)가 스스로 전공을 축하 위로하고 한가 편안함을 구하는 정서가 발동할새 향락을 요구함에는 외화(外華)의 발달을 진작하고 일방 성공의 조력자인 당을 잊지 못하는 동시에 당의 문물 수입을 하는 시도가 일어났다. 그로 인하여 불도(佛道)·선도(仙道)가 유행하여 일반 예술사상이 갑자기 변하기에 이르러 화려 풍부를 극치(極致)하고 문인·재사 들이 많이 당에 유학하매 한문학(漢文學)이 매우 빨리 유입(流入)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라 중엽 이래로는 한문학이 크게 일어나니, 그의 대가는 김이어(金夷魚)·김가기(金可紀)·박인범(朴仁範)·제문(帝文)·수진(守眞) 등 십수명이 배출하였다. 그중에도 강수(强首)·설총(薛聰)·최치원(崔致遠)의 3인은 일대의 거장(巨匠)이니, 강수는 태종무열왕 때 사람으로서 응수문자(應酬文字)에 유명하고, 설총은 한문(漢文)을 우리 나라화한 공이 있으며, 그의 작품인 「화왕계(花王戒)」 1편은 풍자문학의 처음이 되고, 최치원은 말엽의 시인으로서 그 시는 신묘미(神妙味)가 있는 걸작이 많았다.
 

4. 4. 麗朝時代[여조시대]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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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 일대의 표면에 나타난 현상은 충동 불안정의 형색으로 되었다. 왕건태조(王建太祖)가 신조정을 배설한 후 얼마 아니 되어서부터 외구(外寇)·내란(內亂)이 층생 첩출로 일어나니, 이런 환경에 부대껴 오는 국민적 감정은 뻑뻑이 부동적(浮動的)으로 흘러가 비가 감가(悲歌轗軻)의 부르짖는 소리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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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李奎報)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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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 미쳐 날뛰니 한 나라의 근심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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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어쩐 놈들이기에 사사로운 소란 일으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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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심장에 충성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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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벼슬을 그만두더라도 어찌 즐겨 쉬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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胡虜猖狂一國愁[호로창광일국수], 汝何爲者作私憂[여하위자작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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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餘方寸丹心在[상여방촌단심재], 縱日懸車豈肯休[종일현차기긍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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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부(金永夫)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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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듣되 이웃 나라 형세 바야흐로 위태로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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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개척하고 강토 넓힐 좋은 때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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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 더펄더펄 나부끼니 눈서리 내리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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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런 이 마음 깜빡깜빡 귀신도 알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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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파(廉頗)가 밥 먹는 것 다른 뜻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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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거병(郭去病)의 집 떠남이 또한 의미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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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이 회포를 이야기할 곳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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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술병을 끌어다가 흠뻑 취하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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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聞鄰國勢將危[근문린국세장위], 拓地開疆在此時[척지개강재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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素髮飄飄霜雪落[소발표표상설락], 丹心耿耿鬼神知[단심경경귀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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廉頗能飯非無意[렴파능반비무의], 去病辭家亦有爲[거병사가역유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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默默此懷無處說[묵묵차회무처설], 每逢樽酒醉如泥[매봉준주취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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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더욱 정치는 무사의 귀족정치로 되어 정사의 작용이 그 황혼(荒魂)의 활동에 의하여 변화 다단한 것이다. 그러나 문학 창조의 충동은 그런 위기의 유무를 불구하고 정서 불안의 세월을 경과하여 발달하여 나간 것이다. 그 문학상의 정신은 무엇이 지배했느냐 하면, 이는 정서 불안의 위치를 통과하여 오는 민족혼의 활용인 의고사상(擬古思想)을 주로 함에 있을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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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스스로 비관 타락에 기울어진 것이다. 그로부터 소위 이인로(李仁老)·오세재(吳世才)·임춘(林椿)·조통(趙通)·황보항(皇甫抗)·함순(咸淳)·이담(李湛) 등 7현파(七賢派)의 신시인이 일어나니, 저들은 진(晉)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을 본받아 7인회를 조직하고 음주와 영시(詠詩)로 종사할새, 그들의 주의는 『이상국집(李相國集)』에 「문조물설(問造物說)」의 의미와 같이 천신도 자연, 인생도 자연, 도덕도 자연이라 인간적인 교정(交情)은 취잡(脆雜)하니 영원의 무정(無情)의 정을 사귐이 옳다 하여 이상경을 청허무위(淸虛無爲)에 두고 자생자화(自生自化)를 희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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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파의 시격은 일종 신체(新體)를 창작하니 「한림별곡(翰林別曲)」이 그것이다. 이 시체는 3자 4자의 수운(數韻)을 반복하여 미묘한 율조로 되니, 그 미감(美感)의 율동 세력은 경쾌미가 있어 음악적 흥기(興氣)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유파는 술을 좋아하는바 그 애주(愛酒)의 풍도는 정신을 무한의 언덕에 유락(遊樂)케 한 것인바 문예사상과 표리의 정신을 지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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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제3기 정조주의(情操主義) : 말엽에 이르러서는 불교의 중독으로 인하여 국민적 사상은 크게 악화되었다. 이 위험에 빠진 국민 정신을 구제치 아니하면 안되겠다는 책임을 지고 대성질호(大聲疾呼)하여 나오는 자는 유도(儒道)의 일파로서 그 대표자는 안향(安珦[안향] : 安裕[안유])이다. 안향이 불교를 배척하고 유도를 진흥할새 스스로 거액의 재산을 내어 학교를 설치하고 생도를 모집하여 충군애국(忠君愛國)의 정조(情操)를 가르치니, 이로부터 현인 달사(賢人達士)가 일조에 배출하여 국민의 원기(元氣)를 크게 진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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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파의 사상은 곧 현세주의(現世主義)로서 인도와 정의를 주장하니, 그들의 시는 웅혼 격월(雄渾激越)의 가락이 구절에 넘쳐나고 시형에 있어서는 함축 간명을 위주하여 단형(短形)의 운각(韻脚)을 사랑함에 있으니, 근일 시조(時調)의 발원은 이때 이 파의 문단에서 시작된 것이다. 산문으로는 그 수가 적지 않으나 다 산망(散亡)하고 지금 전한 것은 『보한집(補閒集)』 『파한집(破閒集)』『역옹패설』등으로서 어떤 것이든지 고문(古文)·고사(故事)를 수집하여 존고수절(尊古守節)의 풍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 논술한 대로 고려조 일대의 문학은 과거 신라의 정신에서 대부분의 감화를 받은 것이다. 곧 전대에 행하던 외래사상인 불(佛)·선(仙)을 경체적(更替的)으로써 하여 그 내용을 확대하고 충실함에 불과하다. 그중에 특색으로 말할 것은 말기에 이르러 유학(儒學)의 정조주의가 발생한 것이니, 그 유도(儒徒)의 발동(發動)된 대의명분의 사상은 신사회 동력에 방향과 지도를 주어서 필경 이조 혁명을 이룸에 미쳤던 것이다.
 

5. 5. 李朝時代[이조시대]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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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 일대는 문학 황금시대다. 이성계(李成桂) 대왕이 혁명을 이룬 후 전대의 적폐를 개선할새, 첫째 언무수문(偃武修文)의 정책으로 정권을 학자와 문사에 일임하며, 둘째 유도(儒道)를 근본하여 윤리 도덕으로써 국가 민족의 흥륭 발전을 이루었다. 이 2대 정책이 일대의 국민의 정신 생활을 지배하게 되니, 일반 예술은 모두 그를 배경으로 하여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문학이 발흥한 직접 원인에는 전대 미증유의 2대 발명이 있다. 첫째, 혁명초로부터 인쇄술을 발명하여 다수한 서적을 간행하니, 학계는 여기에 의하여 비상한 편리를 얻은 동시에 전대로부터 종교적 감정의 시험을 경과한 지식은 이에 이르러 크게 발달하여 일반 과학이 진작하였다. 둘째, 세종대왕의 언문(諺文)을 제정하여 국어를 사출(寫出)함에 적절한 새 도구를 장만해 준 것이다. 그런 원인으로 발달하여 나간 문학의 경로는 자상달하(自上達下)의 순서로 될새 궁정문학(宮廷文學)을 선두로 하여 산림문학(山林文學)을 계기(繼起)하고 최후에 평민문학(平民文學)을 발흥함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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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궁정문학 : 정치제도가 군주의 전제에 있다. 그러므로 예술도 군주의 전제에 있어 정부를 표준하고 또한 전국의 문사를 뽑아서 궁정에 집합하니, 그로 인하여 문학은 제일 먼저 궁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 궁정을 둘러싼 문학은 엄숙하고 우온(優溫)의 미가 있으나 일체 도의로써 수식하고 장식한 것이다. 시가(詩歌)는 군왕의 공덕을 찬송한 것인데, 세종 때에 나온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가장 걸작이다. 문체는 새 문자인 언문과 한자를 합용(合用)하여 4자 음조로 만든바 강건(剛健)과 우려(優麗)한 성질로 전표(全豹)의 미를 이루었다. 문장은 대우법(對偶法)을 숭상하고 고전(故典) 사물을 인용하여 독자로 하여금 고금 동서의 사례를 굽어보고 감개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 내용률은 창업주의 건국 과정을 묘사한 사시(史詩)이다. 그 밖에 칙찬(勅撰)으로 편집한 산문(散文)도 자못 많으니, 정령 사실로부터 역사일기에 이르기까지 무릇 2천 5, 6백 권인데 모두 훈계적 의미를 함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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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산림문학 : 문사들은 이중의 이상(理想)이 있다. 곧 전반생은 관계(官界)에 나아가고 후반생은 산수간에 한거(閑居)하여 안락한 생활을 구한 것 이다. 그러므로 퇴로 관리(退老官吏)는 산림(山林)에 서식하는 자가 많고 또한 정계 세력에 쫓긴 자가 몸을 자연의 품에 던진 자도 많다. 이런 원인에 의하여 산림에서 음풍농월(吟風弄月)하는 소리는 점점 궁정문단을 이기는 편이 되었다. 그런데 이들의 이상은 한정(閑靜)과 자유를 꿈꾸는 선도(仙道)에 있을새, 그 시가의 내용은 전혀 낙천쇄락(樂天灑樂)으로 장식하였다. 그 시체(詩體)는 경기(景幾 : 고려 한림별곡체)·장가(長歌)·시조(時調)등 3체로서 전대의 문학을 답습하고 하등 신체를 창작함은 없다. 그리고 산문은 소수의 일기·수필 혹은 배해문자(俳諧文字)요 문집은 1천 수백 종에 이르니, 그는 다 천편일률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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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들의 사상은 물론 유학인데 유학 중에는 주자학설(朱子學說)을 종주로 하고 다른 학설은 모두 배척하며, 중국을 성인의 나라라 하여 모화주의(慕華主義)·한문전공주의(漢文專攻主義)로 가며 역사는 필수과학으로 하고 문장은 허화(虛華)의 색채를 띠며, 문구의 조탁(彫琢)을 능사로 하여 1구를 만들자면 신기 신창(神奇神唱)의 예술을 취하니, 따라서 외형은 번쇄하나 내용은 하등의 창작적 가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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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평민문학 : 산림문학이 널리 퍼지면서 그 문예사상은 민간에 보급되어 모름지기 평민문학이 발생된 것이니, 그 종류는 이언(俚諺)과 민요(民謠)를 제외한 시(詩)·소설(小說)·극시(劇詩)의 3종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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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시조(時調)를 위주로 하였는데 그는 창가(唱歌)의 풍으로 기인하여 가인자류(歌人者流)의 작품이 많았다. 이래 시조를 수집한 것은 『해동가요(海東歌謠)』·가집(歌集)·금보(琴譜)·해동악장(海東樂章) 4편이 저명하니, 내용은 부귀·영리를 초연하여 낙천쇄락(樂天灑樂)의 기풍이 많고 연애를 읊음도 있으며, 기경(奇警)한 단어로써 재담 대구를 늘어놓아 이상(理想)없이 희학적(戱謔的)으로 이루어진 것도 있다. 문장은 모두 자연과 인생의 융화(融和)를 의미하여 인사(人事)의 묘사에는 반드시 자연의 배경을 덧붙이니, 대개는 산림파 시와 동궤(同軌)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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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윤리 도덕의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이 많은데 그 각색은 다 소사적(疎寫的)으로 이상(理想)의 전부를 묘사하였다. 특히 『홍길동전(洪吉童傳)』은 사회소설로서 계급을 타파하고 관리의 불의를 경계한 것이다. 극시는 장편의 시적 소설이니, 『춘향전(春香傳)』『심청전(沈淸傳)』『흥부전(興夫傳)』의 3편이 가장 걸작이다. 그러나 어느 것이든지 모두 도덕미(道德味)를 머금어 연문학(軟文學)으로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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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 일대의 문학을 총평하건대, 종교적 관념은 전대보다 일변하여 현세주의를 가졌다. 그러므로 충의·예절의 정조(情操)는 그 사이에 많은 함양(涵養)을 지은 것이다. 비록 그러나 이상은 별로 확대의 모습이 없고 문학은 모두 한학사상(漢學思想)을 인식함에 불과하다. 근일에 와서 세계의 신풍조가 유입되매 신이상(新理想)으로 나오는 소설·시 등이 자별(自別)한듯하나 사상은 일체 회의적(懷疑的)으로 쏠리고 신구 분리계에 섰느니만큼 문예는 모두 논쟁적으로 풀려 하나도 취할 만한 작품이 없다.
 

6. 6. 마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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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로부터 근세까지 4천년 동안을 스쳐오매 저간 시세(時勢)의 성쇠도 겪고 물태(物態)의 흥폐도 지나왔다. 그 여러 번 바뀐 역사적 환경에 따라 분수(分數)를 붙여 묘사한 문학은 얼마만큼 파란이 있어 번박(繁博)한 바탕을 누빈 것은 이상에 말해 온 바이거니와 그 다양다색으로 꾸며진 수다한 작품은 그 형태가 비록 일매지지 못하나 그를 종합하여 추상적으로 관찰할 때 일관으로 통해진 통유성(通有性)이 없지 않다. 본론을 종결한 최후에 있어 그 통유(通有)의 특징을 알고 싶으며, 또한 문학은 민족의 성격으로서의 심상(心像)을 그려낸 것인바 문학 전체의 내면에서는 민족성의 어떤 것을 살펴볼 생각이 날 것이다. 그러므로 결론에 이르러 이 두 가지를 말해 볼까한다.
 

6.1. (1) 고문학의 특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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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문학(舊文學)을 근대문학의 경향에 비하여 그 일통(一通)된 투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2조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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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연역적(演繹的) : 고문학의 속살은 제목을 위주하여 해석적으로 줄기를 세웠다. 사단(事端)의 한 갈래를 집어내어 그를 투철히 쓰지 않고 사위(事爲)의 전부를 한데 묶어 그를 통괄하여 얽은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소설이든지 잡문학(雜文學)이든지 다 역사적 색채를 띠었다. 소설은 거의 전기(傳記)의 제목으로서 그 내용은 주인공의 생장 시초부터 각 방면의 이력을 모조리 적으며, 그 필치는 그만 소사적(疎寫的)으로 되었다. 그 연역적 기술로 나온 이상(理想)의 표준은 현재 및 미래에 나가지 않고 스스로 고석(古昔)에 돌이킴을 위주한 것이다. 그러므로 문장 같은 것도 고사(古事)·구례(舊例)를 들이대며 어투도 고어·아언(雅言)을 따내 쓰는 일을 큰일로 친것이다. 이는 김정국(金正國)의 문범설(文範說), 성현(成俔)의 문변론(文變論)에 보아도 고인들의 주지(主旨)를 알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자들의 심정은 의고적 사상뿐이요 개신공풍(改新工風)의 빛깔이 없으며, 태도는 희작자(戱作者)라 자칭하고 우유자적(優遊自適)으로써 자유생활을 짓기 잘하니 시가는 거의 낙천적 사상으로 된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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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기교적(奇巧的) : 문장의 형미(形美)는 매우 기교적(奇巧的)으로 되었다. 그 수식법은 비유·대구·억양·조응(照應) 등 격식으로서 그 문채(文彩)는 어디든지 횡치(橫致)하였다. 그 기교(奇巧)하고 재미있게 꾸미는 수단은 흔히 안 쓰는 문자를 따내 쓰며, 궁벽한 장구(章句)를 빼다 쓰는 일이 많으니, 이같이 기교를 위주함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사세(詞勢)를 더하고 미의 본태를 표창(表彰)하여 독자의 취미를 끌자는 목적에서 나오니, 그러므로 문학은 한편으로 소한(消閑)의 도구로 되었다. 둘째는 사상이 일방에 치우쳐 수구적(守舊的)으로 한정된 이상 다른 이상(理想)을 낼 수 없고 오직 외형의 문장을 치장함에 기울밖에 없다. 그러므로 고대문학의 무리는 자기의 특별한 이상의 생명을 끼치지 않고 문장의 양만 자랑함에 급급할새 그 내용은 천편일률이 되는 것이다.
 

6.2. (2) 민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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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학 위에 나타난 민족의 근본적 성격은 화순성(和順性)·조직성의 두가지 특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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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화순성 : 최초 신화라 하는 내용에 곰이 천신의 명에 순종함으로써 사람으로 화하여 단군민조(檀君民祖)를 낳았다 하니, 이는 민족 발생의 근본설인바 천명 순종은 인간의 본성으로 친 것이다. 그러므로 사상 활동의 지휘는 곧 순종·온화의 특성이 주재(主裁)하니, 문학 작품도 논설 변어(辨馭)의 산문이 적고 음풍농월의 시가가 많다. 봄날을 당하면 집집에 국태민안(國泰民安) 4자를 써붙이며,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 한 이언(俚言)은 인구에 상송(常誦)하는 성훈(聖訓)이다. 이 순종성은 혹시 고식적·간헐적인 감정의 단처(短處)가 있으나 일방 염색 아닌 백색옷을 입는 것처럼 단순 무잡(無雜)하고 한편으로 충실 용진(勇進)으로 직선적 행동이 있으니, 수천년 문화의 많은 변화가 없고 또 수구심 있는 것이 다 이 성미의 부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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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조직성 : 최초 신화에 환웅(桓雄)이 인간 360여사를 주(主)하였다 하니, 이것은 화순·원만을 취하는 심성 한편에 통계 정돈(統計整頓)을 좋아하는 지력적(智力的)인 특성이다. 그러므로 자래(自來) 대걸작의 서적은 수집 분류한 것이 많고 유학에는 도설(圖說)이 많다. 현실 생활에도 지방자치제·계(契) 같은 것은 동양의 선진이요, 정치제도의 주밀한 것도 다 조직적 특성의 발작(發作)이다. 이 조직성은 혹시 편소(偏小)한 기상의 단처가 있으나 정돈적 개념으로부터 능률 증진의 사상이 있어 조그만 힘으로써 큰 효력을 얻고자 하니, 예컨대 언문(諺文)은 20 몇자의 소수로되 음을 쓸 수 있는 능력이 풍부하여 만가지 발음을 기술하기 좋은 것인바 이것이 조직성이 없고는 발명키 힘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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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두 특성을 가짐은 그 근원이 또한 둘이다. 첫째는 자래로 천신을 신앙해 오매 그 천신을 사상(寫像)함에는 천체(天體)의 평평 공정한 상태를 연상한바 화순성은 곧 이 천체의 인상으로 감득(感得)한 것이다. 둘째는 상주(常住)한 지리(地理)의 감명(感銘)이다. 조선 지리는 산맥과 수근(水根)이 사방에 종횡하여 비단을 짜놓은 듯하니, 이 풍경이 영속한 인상을 일으켜 굳혀진 뇌력(腦力)이 스스로 조직성을 습성(習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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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조선) 제175호, 193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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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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