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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許生傳 (채만식) ◈

◇ 1 ◇

해설목차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8권  9권  1946.11.15
채만식
1
허생(許生)은 오늘도 아침부터 그 초라한 의관을 단정히 갖추고 단정히 서안 앞에 앉아 일심으로 글을 읽고 있다.
 
2
어제 아침을 멀건 죽 한 보시기로 때우고, 점심은 늘 없어왔거니와 저녁과 오늘 아침을 끓이지 못하였으니, 하루낫 하룻밤이요 꼬바기 세 끼를 굶은 참이었다. 그러니, 시장하긴들 조옴 시장하련마는, 굶기에 단련이 되어 그런지 글에 정신이 쏠리어 그런지, 혹은 참으며 내색을 아니하여
 
3
그러는지, 아뭏든 허생은 별로 시장하여 하는 빛이 없고, 글 읽는 소리도 한결같이 낭랑하다.
 
4
서울 남산 밑 묵적골이라고 하면, 가난하고 명색 없는 양반 나부랑이와 궁하고 불우한 선비와 이런 사람들만 모여 살기로 예로부터 이름난 동네였다.
 
5
집이라는 것은 열이면 열 다 쓰러져가는 오막살이 초가 집이 몇해씩을 이엉을 덮지 못하여 지붕은 움푹움푹 골이 패이고, 비가 오면 철철 들이 새고 하였다. 서까래는 볼썽없이 드러나고, 벽은 무너지고 중방은 헐어지고 하였다.
 
6
사는 집이 그렇게 볼썽없는 것처럼, 사람들의 의표도 또한 궁기가 꾀죄죄 흘렀다. 갓은 파립이요, 옷은 웃옷 속옷 할것없이 조각보를 새기듯 기움질을 하였다. 여름에 가을살이를 입고, 겨울에 베옷을 입기가 예시였다. 신발은 진날이나 마른날이나 나막신이었다. 남산골 샌님에 나막신은 붙은 문자였다.
 
7
어느 집 할것없이 굶기를 먹듯 하였다. 하루 세 때는 고사하고, 하루 한때씩이라도 거르지 아니하고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는 집은, 일부러 찾고자 하여도 없었다.
 
8
그렇게 궁하게들 살면서 하는 일이 무엇이냐 하면, 명색 없는 양바 나부랑이는 헤엠 긴 기침이나 하고, 세도재상 찾아다니면서 벼슬날이나 시켜 달라고 조르기가 일이요, 선비들은 밤이나 낮이나 글을 읽으면서 과거나 보아 장원을 하여서 발신할 세월을 기다리는 것이 일이요 하였다.
 
9
허생도 이 묵적골의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 초가 집에서 끼니가 간데없고 주린 배를 허리띠 졸라매어 가며, 밤이나 낮이나 글을 읽기로 일을 삼고 사는 궁한 선비의 한 사람이었다. 궁한 것으로는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더할지언정 나을 것은 없는 처지였다.
 
10
부엌 한 간, 방 한 간의 오막살이하고도 지지리 근천스런 오막살이이고 보매, 방은 안방이자 겸하여 허 생이 글도 읽고, 십년일득으로 찾아오는 손님을 맞아들이는 사랑방이기도 하여야 하였다.
 
11
허생이 글을 읽고 있는 옆으로 넌지시 비켜앉아, 부인 고씨는 헌누더기옷을 깁고 있다.
 
12
남편 허생과 달라, 부인 고씨는 얼굴에 시장함을 못 견디어하는 빛이 완구히 드러나고, 자주 바느질손을 멈추고는 한숨을 내어쉬곤 한다. 그럴적마다 남편 허생의 옆얼굴을, 심정 편안치 못한 눈으로 건너다보고 건너다보고 한다.
 
13
얼마를 그러다가 고씨부인은 마침내
 
14
“여보?”
 
15
하고 남편을 부른다.
 
16
허생은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대로 글만 읽는다. 글을 읽고 있는데, 옆에서 부인이든 누구든 불러서, 첫마디에 대답을 하는 법이 허생은 없었다.
 
17
“여보?”
 
18
두번째 부르는 부인의 음성은 약간 높기도 하였거니와 저으기성화스럽기까지 하였다.
 
19
그래도 허생은 못 들은 성
 
20
“글쎄, 여보?”
 
21
더 높고 더 성화스런 음성으로 세번째 부르면서, 그럴 뿐만 아니라 바느질꾸리를 거칠게 밀어젖히면서, 한무릎 남편에게로 다가앉아서야 허생은 비로소 글읽기를 그치고 천천히 부인에게로 얼굴울 돌린다.
 
22
“어째 별안간 그러시요?”
 
23
태연한 얼굴과 부드러운 음성으로 허생이 그렇게 묻는 말에, 고씨부인은 씨근씨근하면서
 
24
“당신은 시장하지두 않으시우.”
 
25
“세 끼를 굶은 창자가 아니 시장할 리야 있겠소.”
 
26
“당신은 글읽기에 세상 재미가 쏟아져 시장해두 시장한 줄 모르구 그러시나 보우마는, 나는 곧 현기증이 나구, 쓰러질 것 같아요.”
 
27
“거 안됐소이다그려. 그렇지만 당장 무슨 도리가 없지 않소.”
 
28
“그럼 우두커니 앉아 굶어죽기를 바라야 옳아요.”
 
29
“설마한들 사람이 굶어죽기야 할랍디까.”
 
30
“굶어죽으면 죽는 것이지 설마가 무슨 설마예요.”
 
31
“참는 게 제일입넨다. 참으시요.”
 
32
허생은 조금도 언성과 내색을 변하지 않고 조용히 부인을 타이른다.
 
33
얼굴은 가무잡잡하고, 이목구비가 다 선뜻하지 못하고, 그런 상모에 노랑수염이 시늉만 나서 있고, 앉은키는 한 뼘만 하고, 일어선다 하여도 오척이 차지 못할 듯싶은 작은 체구요, 어디로 보나 잔망스럽고 궁졸한 풍채였다. 그런 상모와 풍채를 하고도, 어디서 그런 침착하고 대범스러움이 우러나는지가 이상하였다. 아마도 그의 눈에 가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성부르다. 맑고도 정채가 뻗치는 그의 두 눈에 온갖 것이 다 있음일시 분명하였다.
 
34
허생의 참으란 소리에, 고씨부인은 도리어 더 보풀증이 나서, 포악을 하고 대든다.
 
35
“십 년 …… 십 년을 하루같이 바누질품, 빨래품 팔아서 그 뒷시중해드렸으면 무던하지, 게서 더 참아요. 그것도 바누질품 빨래품이나마 전처럼 여일히 일거리가 있어, 하루 한 끼 입에 풀칠이라두 하게 마련이라면 몰라두, 당신 보시는 배, 나날이 일거리가 귀해 오다, 오늘두 벌써 나흘째 보선 한짝 꼬매 달라는 이 없잔아요. 무얼 바라구 참아요, 참기를. 굶어죽기 기대리면서 참아요.”
 
36
“글쎄, 아니 참으니 어떡하겠소.”
 
37
“어째 과거는 아니 보려 드세요, 드시기를. 남은 다 당신만 못한 글가지구두 과거 보아 장원급제해서, 벼슬허구, 이름내구, 호강으루 잘들삽디다.”
 
38
“그런 사람들이야 시운을 잘 만났든지, 타고난 천품이 좋아 일찌감치 그렇게 발산이 된 게지요. 나 같은 시운도 타고 나지 못하고, 재조도 없는 사람이야 졸연히 어데……”
 
39
“핑계를 마세요. 누가 당신 속 모르는 줄 아시우?”
 
40
허생은 일찍이, 철이 들던 스무 살 적부터 이래 십년 독실히 글을 읽었다. 글만 독실히 읽었지, 한번도 과거는 볼 생각을 아니하였다.
 
41
철 들기 전, 부모의 슬하에서 글공부를 하기 십오 년, 철이 들고 나서 십년, 도합 이십오 년을 글을 읽었다. 노상 적은 글이 아니었다. 남 같았으면 그동안 벌써 여러 차례를 과거를 보았을 것이었었다. 그렇것만 허생은 이십오 년 글을 읽고, 나이 삼십이요, 찌부러진 일간 두옥에서 젊은 아낙의 그 체모 아닌 바느질 품팔이 빨래 품팔이로, 하루 한끼가 어려운 연명을 겨우 하여 가는 군색한 살림이요, 하면서도 도시에 과거라는 것을 보아볼 염의를 하지 아니하였다.
 
42
자고로 선비가 세태에 어둡고, 집안 살림에 등한하기는 일반이었다. 또, 선비가 점잖으면 점잖을수록 벼슬이니 일신의 영달이니 하는 것에는 좀처럼 뜻을 두지 아니하고, 오직 때를 기다리며 글읽기로 유유히 세월을 보내기를 떳떳한 도리를 삼았다.
 
43
그럴 뿐만 아니라, 과거하는 것이 속에 글과 포부가 많이 들고, 사람이 영특하고 한 것보다는 소위 가문이 좋고 뒷줄이 든든하고 하여야 손쉽게 장원급제를 하기로 마련인 것이었다.
 
44
허생은 그런데, 가문이며 포부며 사람은 어떠한지 모르되, 가장 요긴한 뒷줄이라는 것이 없었다. 허생은 당대의 세도 있다는 재상들이 어느 동네에 살고 있는 것조차도 통히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 고로 허생 같은 사람이 막상 과거를 보았다고 하였더라도 꼭이 장원급제를 하였으리 라고는 장담키 어려운 노릇이었다.
 
45
그러나 일변, 과거가 백이면 백이 다 반드시 사와 인정으로만 장원급제가 되고 말고 하기로 정해져 있는 것은 또한 아니었다. 가문이 좀 섭섭하더라도, 뒷줄이 없더라도, 글이 좋고 사람이 잘나고 하였더라면 버젓이 자원급제를 하는 수가 노상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가령 허생으로 말을 하더라도, 되고 아니 되고는 우선 차치하고서, 마음만 있을 양이면, 과거를 보아보기는 하였어야 할 일이었다. 그렇것만 허생은 도무지 그 과거 이자와는 담을 쌓고, 말도 내려고 아니하는 사람이었다.
 
46
이십오 년 독실히 글한 보람도 없이, 남보다 동이 떨어지게 글든 것이 없는 천하 미련동이가 아니면, 남이 따르지 못할 큰 뜻과 포부를 지닌 한 특출한 사람일시가 분명하였다.
 
 
47
고씨부인은 오늘이야말로 기어코 무슨 요정을 내고라야 말려는지, 바싹바싹 남편의 서안마리로 다가앉으면서, 일면 푸념을 쏟아 놓는다.
 
48
“당신네 가문으루 출가를 해온 지가 열여섯 해 아니요. 그 열여섯 해동안 날 그만침 고생시켰으면 무던하지, 어떡허자구 이러시는 거예요, 이러시기를. 나두 서른 고생 하다, 한때라두 즐거운 세상 보고 죽어예지요. 원퉁히 이대루 굶어죽구 말란 말씀예요.”
 
49
“………”
 
50
허생은 묵묵히 앞 벽만 바라다보고 앉았고, 고씨부인은 가슴을 쥐어뜯으면서
 
51
“과거를 보아 벼슬을 허구, 하시기가 싫거든 다 작파허구 집안 살림이라두 하실 염량을 차리세예지요. 하다못해 장사라두.”
 
52
“장사는 하자니 밑천은 있으며, 해보지 못하든 노릇을 어떻게 하오.”
 
53
“아니 해본 노릇이라두 남들은 잘만들 해먹읍디다. 맨주먹 쥐구나서서두, 남들은 잘만들 해먹읍디다.”
 
54
“그런 사람이야 다 재주가 좋아 그런 게지요.”
 
55
“그럼 어떡허잔 말씀이예요. 과거두 아니본다, 장사주 못한다, 어떡허잔 말씀예요.”
 
56
“………”
 
57
“하루 한 끼가 어렵구, 그거나마 이틀 사흘 빳빳이 굶구, 그러면서두 과거는 아니 보신다, 장사는 못하신다, 그러면서 태평세월루 글만 읽구 앉아 기시려 드니 어떡허잔 말씀예요, 말씀이.”
 
58
“인전 그만해 두시오. 여러 끼 굶운 사람이 소리를 지르구 그래싸면, 도 허기만지지 아니허우.”
 
59
허생은 여전히 조용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타이르고는, 도로 다시 그을 읽으려고 한다.
 
60
그러는 것을 고씨부인은 와락 달려들어, 서안의 책을 집어 방바닥에다 태질을 치면서
 
61
“글은 읽어 무얼 하시자구 읽으세요. 삼십 년 글을 읽구두, 과거 한 장하실 생각 아니하는 글, 무엇하자구 읽으세요, 읽기를.”
 
62
“허어, 이 책 소중한 줄을 모르고.”
 
63
허생은 그제서야 한마디 점잖이 나무라면서, 일변 책을 집어다 서안 위에 도로 잘 놓는다. 그러고는 입만을 거듭 다시면서, 잠깐 동안 무엇을 생각하더니
 
64
“오 년만 글을 더 읽었어야 할 텐데…… 쯧, 딱한 노릇이로곤.”
 
65
하고 푸스스 일어나 나막신을 딸깍거리고 싸리문 밖으로 나가버린다.
 
66
시방으로부터 대범 삼백 년 전, 효종대왕(孝宗大王)이 위에 계실 시절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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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04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