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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원 이광수 씨를 말함 ◈

해설본문  1936년 5월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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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로 정치와 문학과의 관련에 기(基)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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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 이광수, 나는 그와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작년 늦은 가을 어느 결혼식장에서 연미복으로 입고 주례를 하면서 결혼에 대한 사적(史的) 고찰을 하고 있는 것을 특별한 주의 없이 들었고, 그 날 피로연 석상에서 우연히 그의 옆자리에 앉는 광영(光榮)을 얻어 자기 자랑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으나 그 날 그 곳에 모였던 우인들도 인사를 시켜줌에서 신통한 교우 관계를 금후에 기대할 수 없다는 듯이 소개의 노력을 아꼈으므로 이 절호의 기회도 나로 하여금 이 인기 있는 사상가, 소설가와 이야기할 계기를 만들어 주지는 못하였다. 그 때 춘원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루는 어떤 날 창의문(彰義門) 밖 씨의 집에 그 동리 어린애 하나가 숨이 하늘에 닿을 듯이 헐떡거리면서 찾아와 하는 말이 지금 저 고갯등에 있는 술집에서 라디오를 공짜로 듣다가 방송국 관리에게 취체(取締)를 당하고 있으니 선생 집 라디오도 빨리 치우라고 하더란다. 이 어린아이의 말에 춘원은 돈을 내고 버젓이 들으니까 감출 필요는 없다고 대답하였다 한다. 이 이야기를 한 뒤에 씨는 좌중을 바라보면서 이런 것을 보면 내가 창의문 밖에서 과히 인망은 잃지 않고 사는가 싶다고 만족한 웃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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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춘원의 이 좌담을 그의 옆에서 흥미 있게 듣고 있다가 그와 함께 이야기의 끝을 웃어 버렸다. 내가 춘원의 이야기를 웃은 것, 그것은 독자들이 직감적으로 판단하기 쉬운 이른바 조소라는 것은 아니었다. 조소라면 그 곳에 다분히 증오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데, 이 때의 나의 웃음은 별로 증오의 감(感)은 삽입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나는 그 곳에서 더 많이 민족을 발견하였다. 내가 늘 생각하고 그러리라고 믿고 있던 춘원의 사상과 설화술이 이 곳에 그의 전모는 아니나 적어도 그 중요한 일부분을 보이고 있는 듯 생각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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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춘원 아닌 보통 사람에게서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우리는 이야기의 종말이 ‘인망은 잃지 않고 사는가 싶다’가 아니고 ‘동리 사람이 라디오나 도적질하여 듣는 놈으로 나를 생각하는 모양이니 나의 인망이란 보잘 것 없죠’쯤 될 것이 아닐까 하고 상상해 볼 때에 춘원의 그럴 법한 생활에 대한 태도와 생각이 이 곳에 노출되어 있다고 나는 그 때에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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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보아서 춘원의 자만을 연상할는지 혹은 그의 위선적인 세계관·사상을 추단할는지 그것은 독자의 마음에 맡긴다 쳐도 춘원으로 하여금 고소없이는 듣기 곤란한 자기 자신에 대한 과대한 ‘자홀(自惚)’을 알게 한 대부분의 책임이 춘원을 모방하다가 이루지 못하고 그의 코 푼 종이나 주워 모으든가 그렇지 않다면 그의 구두에 묻은 먼지나 털어 줌에서 만족하는 수다한 에피고넨과 춘원을 ‘나의 선배’ 혹은 ‘소설 동지’라고 부름에 의하여 시골 술집에서 행세거리나 해 보려는 불쌍한 문학 청년들에게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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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지망한다는 것을 세상에 다시 없는 훌륭한 것의 전부인 줄 생각하든가 별로 신통하지도 않은 글귀를 간 새 막은 종이 위에 그려보고 ‘모든 것이 개재할 수 없는 문학의 신비경이 이 곳에 있다’를 연호하면서 자기의 병적인 감각에 스스로 만취하여 문학을 진정한 인간 생활의 속에서 정당한 자리 위에 앉히려고 하지 않는 이 불칙스런 ‘개구리’들이 던져주는 찬사를 춘원의 ‘정직’은 그대로 접수하지는 아니하였는가. 그리고 이것을 그대로 저널리즘과 나누면서 자기의 인기를 거두고 있지는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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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 춘원 이광수씨를 잡담하려는 글 제목에 ‘정치와 문학과의 관련에 기하여’라는 소제를 걸은 바 이유가 있는 것이며 뒤이어 씌어지는 이 글에는 ‘정치와 문학’과의 관계를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하여 왔으면서 표현에 내세우는 간판과 교설은 의연 ‘예술을 위한 예술’을 고집하는 춘원의 처세상 비밀이 이야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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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거나 저랬거나 춘원은 자본의 사회에서 가장 영리하게 살아 갈 줄 아는 처세술에 능한 많지 않은 시민 중의 한 사람이요, 손으로 수다한 사람의 목덜미를 누르면서 입으로는 ‘왼 편 뺨을 때리거든 오른 편 뺨까지 내어대라’고 설교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점잖고’ 또 가장 ‘인격 있는’ 드문 사람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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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일보』, 1936년 5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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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떠한 한 사람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그를 정치와 문학과의 관련이라는 각도에 비춰서 살펴 보고 싶은 욕망을 가지게 되는 것은 그가 이것을 증명하기에 가장 적당한 자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술지상주의의 기사(騎士)로 자처하는 사람이나 순수 예술의 청교도로서 명예를 삼는 사람이나 한가지로 그의 예술을 정치 세력과 분리할 수는 없었다는 것과 동시에 그의 ‘고귀’하고 ‘순결’한 문학적 생활도 우리를 싸고 도는 사회적 지배 세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서 그의 부르짖는 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예술적인 입장이 또한 엄연한 한 개의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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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문학’이 낡은 명제 - 예술을 사회적인 관점에서 살펴 보는 것에서 최대의 공포를 느끼는 순수 예술의 사도들에게서 가장 큰 증오의 눈을 가지고 보여진 ‘마(魔)의 수레바퀴’는 지금 그들의 명예로운 적으로 자임하던 프로 문학의 이론적 효장(驍將)들에 의하여 새로운 번민의 씨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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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문학인가 정치인가를 방황하는 마음은 행복된 사람의 마음은 아닐것 이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정치에서 지상을 발견하든가 문학에서 지상을 발견하든가 그 어느 것을 결단적으로 붙들고 일생을 이 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안정된 마음이야말로 행복된 사람의 것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아직 문학인가? 정치인가?를 질식할 듯한 긴장을 가지고 생각하는 데서 육체적인 것을 느끼고자 하고 이 곳에서 오히려 지식인의 정치욕의 파편이 안고 있는 양심의 잔재를 걷어 보고자 하지는 않는가! ‘정치와 무학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정치의 우위성’이라는 상식으로는 이 불행한 마음은 벌써 해결할 수 없을만치 심각한 것으로 된 것이 사실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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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건전한 상식에서 벗어나 심오한 사색의 구렁텅이를 채택한 이들 ‘비애의 성사’의 주인공들은 다시금 가장 비속한 상식의 평원을 거닐고 있음에 의하여 그들이 기도하였던 바와는 어그러진 지극히 평범한 풍경을 산책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사실 ‘청치의 우위성’이라는 상식을 뿌리치고 정치인가 문학인가를 번민하고 있는 과정은 인간적인 정열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진지한 예술가·지식인의 한 개의 기질화 한 정치적 의욕일 때에 그것은 우리들 젊은 사람의 심장을 잡아뜯는 격투적인 것을 가지고 육박할 수도 있었으나 이 과정을 안이하게 탈출하여 문학과 정치 내지는 예술과 생활의 이원적인 속학 관념론에 도달하여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라는 순수 예술의 항구에 상륙함에 이를 때엔 이는 다시 가장 더러운 다른 한 개의 상식으로 돌아가고 말은 것이다. 이 곳에는 청년적인 정열도 없고 진실한 진리의 고뇌도 없어서 공허한 인간학의 파편과 형이상학의 냄새 나는 사변, 그리고 손에 담을 수 없는 소시민의 페시미즘이 그들의 방 안을 연기와 같이 더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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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러나 결코 한 개의 레토릭의 효과를 목적한 역설의 번롱(翻弄)이 아니다. 우리들의 행복이 상식에서 초월하느라고 깊은 골짜기를 찾아갔다가 쓸데없는 속적 비애만을 안고서 다시금 저하된 상식으로 돌아가 버린 수많은 실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그들이 입으로는 예술의 옹호와 문화의 독자성을 되풀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름다운 분장을 벗겨 보면 이미 명확한 사회적 지주를 상실한 예술지상주의의 새로운 영자(影子)로서 중간적인 모든 유파와 함께 예술의 빈 고궁을 지키자는 자들임에 틀림이 없어 결국 오랜 항해 끝에 가 닿은 곳은 일찍이 그들에 의하여 조매(嘲罵)의 대상이었던 지상주의의 저하된 상식에 불과한 것이 사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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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문학! 이 명제의 재인식은 글므로 다시금 새로운 과제로서 현실성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결코 곤란한 무서운 제목은 아니다. 자기 자신을 보고 그의 주위를 두루 살펴 보든가 또는 어떤 한 개의 사람 그와 그의 걸어온 길을 한번 돌이켜 보는 데 의하여서도 만일 건전한 상식만을 소지(所持)하기에 충분한 준비를 가졌다면 그것은 용이하게 알려질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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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일보』, 1936년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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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나는 순수 예술의 빛나는 장성들이나 또한 그들의 새로운 혁○(爀○)한 대변자 - 프로 문학으로부터 개종한 이원론의 이론적인 가수들의 최대의 모멸을 각오하고 유일의 나의 건전한 상식 ‘문학과 정치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정치의 우위성’의 관점을 고집하면서 구원한 역사를 가진한 사람의 예술지상주의자 춘원 이광수 씨를 머리속에서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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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곳에서는 20여 년에 긍(亘)하는 이광수 씨의 경력에서 정치적 생활이 문학적 생활보다 우위하였다든가 또는 이 두 개의 중의 어느 것이 더 본격적인 것이었던가를 말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는 않다. 왜이냐 하면 정치 문학 - 이렇게 개념상으로 양자를 분리해 볼 수는 있다 하여도 한 사람의 생활을 두 개의 각도로 따로 따로 관찰하면서 그것을 분리 내지는 대립된 형태로서 고찰하려는 생각은 최대한의 경계를 이원론으로의 함락의 위험에 배치한다 쳐도 결국 그것과의 차이는 오십보 백보이어서 본질적으로는 이원론의 아류임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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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정치의 우위성’의 상식은 항상 정치와 문학과의 통일된 관점을 사수하면서 이광수 씨의 20년 간 생활을 정치적 생활과 문학적 생활의 분리나 비교의 사상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것은 서로 여하히 교호(交互) 침투하면서 그리고 서로 서로를 여하히 제약하면서 통일된 형태로 진행되어 왔는가를 성찰하는 곳에서 보다 큰 흥미의 중심을 발견코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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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문제는 이광수씨가 상해 등지를 무대로 하여 화려한 활동을 전개하였던 최고봉을 이룬 정치적 생활과 「무정」을 생산하던 앙양된 작가의 생활과 그 어느 것이 더 인류를 위하여 가치 있는 것이며 또한 한 개의 공적사회적 인간으로서의 그에게 부과된 바 임무를 어느 것이 더 효과적으로 수행하였을까의 해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광수 씨의 정치적 내지는 사상적 변천은 그의 예술적 작품에는 전연 무관하였던가 혹은 정치적 활동의 기복과 궤를 같이하여 그의 예술 작품은 그것을 여실히 반여하면서 또는 제약되면서 우금(于今)에 이르지는 아니하였던가의 해명에 재(在)한 것이다. 진실로 예술지상주의자의 예기(囈器)나 혹은 예술과 생활의 이원론의 사상에 의하여는 조선의 신문학 운동을 사회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해명할 수 없을뿐 아니라 일개의 작가 일개의 작품의 가치도 또한 그것을 그가 처하여 있던 바 당해 시대의 객관적 반영으로서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천 가닥 만 가닥의 문장을 소비하여서 겨우 달성하는 것은 20년 전날과 우금과의 차이는 사회 의식의 발전뿐이요 예술적으로는 하등의 진전도 없다는 해괴한 분리의 이론인 것이다. 결국 이광수씨가 야담으로 타락하고 통속 소설로 미끄러지는 것을 조소할 줄도 알고 욕설할 줄도 아나 그것을 사회적 혹은 문학사적으로 평가하는 데는 모든 이광수씨의 개인적인 사상과 정치 생활과는 분리하여 민족 문학의 퇴영적 경향이라는 애매한 ○설이나 그렇지 않으면 민족 파시즘의 대두라는 등의 일반적인 사회 정세의 분석으로 대치하고 마는 것이다. 인간성의 탐구니 개인적 창조력의 중시니 등등의 고갈(高喝)은 외인의 문장의 카피에서만 가능하고 사실상에 있어서는 그들은 한 개의 작가가 쓰고 있는 작품을 그 작가의 정치 사상의 개인적 특징에서 추출하여 보는 데까지도 인색하기 짝이 없다. 더구나 한 개의 작가의 창조적인 기술이 저하되고 혹은 고양되는 것을 그의 정치 사상 내지는 생활과의 관련 밑에서 해명하고자 하는 진지한 태도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마치 열대 지방에서 백설을 구하기보다도 희기(稀奇)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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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일보』, 1936년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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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일보』, 1936년 5월 6~8일, ‘인물춘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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