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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랍비 슈나이어 회장께서 이렇게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반기문 총장을 위시해서 많은 분이 좋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양심의 호소 재단’이 ‘세계정치지도자상’ 수상자로 저를 선정해 준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처럼 훌륭한 상을 받게 되어서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어떤 상보다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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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자리에 많은 분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조금 전 축사를 해 주신 반기문 사무총장과 슈워츠만 회장, 맥캐릭 추기경, 발사미안 대주교, 슈미트 헝가리 대통령도 참석해 주셨습니다. 또 오스트리아 전 수상께서도 함께해 주셨습니다. 자리를 함께해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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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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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내가 살아온 생애를 말씀드리는 것을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조금 전에 우리 한국과 관련된 이야기를 반기문 총장께서 해 주셨습니다만 1945년 식민 통치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대한민국이 직면한 가장 커다란 역사적 도전중 하나는 ‘물질적 빈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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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적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고, 그중에서도 우리 가족은 더욱 가난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열심히 일했지만, 밥 대신 물로 허기를 달래야 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끼리 모여 사는 곳에서는 하루 종일 싸우는 소리, 배고파 우는 소리, 병들어 신음하는 소리로 조용한 날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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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으로 고통받는 부모와 형제, 이웃들을 보면서 이때 나는 가난에 대해 처절한 경험을 했습니다. 빈곤은 인간의 삶은 물론 영혼까지 파괴하는 최악의 폭력 중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나와 모든 한국인은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그 사실을 뼛속 깊이 느끼며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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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를 겨우 마치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용노동자가 되었습니다. 그때 나의 유일한 꿈은 아무리 보수가 적어도 매일 아침 일어나면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일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꼈고, 일자리를 갖게 하는 것이 최고의 복지라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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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생존과 싸워야 했던 나에게 대학진학은 하나의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꿈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헐값으로 참고서를 준 헌책방 주인과 새벽시장 청소부 일자리를 마련해 준 시장 사람들 덕분에 4년간 대학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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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난 속에서도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교육은 가난한 사람이 가난을 벗고 가난의 대물림을 끊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교육은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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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 또한 처절한 가난 속에서도 자식 교육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6·25전쟁 후 폐허와 가난 속에서도 대한민국 부모는 대부분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런 정신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대한민국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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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매일 새벽 청소 일을 하면서 힘들게 학교에 다니면서도 나는 점차‘내 현실의 문제’를 넘어 ‘내 밖의 문제’로 관심을 넓히면서 학생운동에 참여했습니다. 1960년대 중반, 나는 독재정치에 반대하고 민주화를 부르짖는 학생시위를 주도해 투옥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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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을 통해 민주주의, 인간의 존엄성, 인권 등을 깊이 생각하고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생존에 매달려 왔던 나에게 이 경험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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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한민국은 국민소득이 1인당 100달러에 불과한 나라, 길거리에 실업자가 넘치는 곳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나는 경제적 번영 없이는 국가는 물론 나도 희망이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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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을 나온 뒤 종업원이 1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건설회사에 들어갔습니다. 그 회사가 자동차와 조선 분야에까지 진출하면서 세계적 대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또한 열사의 사막에서 동토의 시베리아까지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일하는 동안 글로벌 마인드를 키울 기회를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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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노력으로 개인적으로도 가난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국가의 경제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었음을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조국과 함께 성장해 온 나의 삶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국에 감사하고, 나와 함께 가난한 시대를 피땀으로 극복해 온 우리 국민 모두가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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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뜻에서 나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예전에 나와 같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청소년들을 위해 장학사업을 하는 ‘청계재단(Lee & Kim Foundation)’을 설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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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 함께하신 신사 숙녀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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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단 한 세대 만에 빈곤을 극복하고 선진국 문턱에 도달했습니다. 대한민국이 벌였던 ‘빈곤과의 싸움’은 단순히 물질적 풍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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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울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며 나와 우리 국민은 깊은 감회에 젖었습니다. 나는 이제 대한민국이 그간의 경험을 개발도상국과 나눔으로써 전 인류의 존엄을 위해 기여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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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가 혼란에 빠지고 대한민국 또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만, 우리는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습니다. 또한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2015년까지 세 배로 늘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전후 독립국으로는 유일하게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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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속에서 남의 도움을 받았던 나 또한 이제 가난한 나라에 원조를 주는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수만 명의 대한민국 젊은이가 아프리카에서, 아시아에서, 세계 곳곳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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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이 도움을 받는 사람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애정을 갖고 돕는 원조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에게 도움을 받는 사람들의,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종교와 관습을 존중하면서 겸손하게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도움을 받아 보았기 때문에 도움을 받는 사람의 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지난해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위기를 넘어 다 함께 성장’이라는 목표로 개발도상국 발전을 도모하는 개발의제를 제안했습니다. 우리는 재정 원조와 함께 개발도상국 스스로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자생력을 기르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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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7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갔습니다. 이틀간 도시 빈민촌과 가난한 농촌 지역에 가서 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21세기 풍요를 구가하는 이 시대에, 아직도 처절하게 가난한 곳에 가서 직접 봉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몸으로 직접 느껴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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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는 ‘새로운 빈곤’에 직면했습니다. 세계화·정보화는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다른 한편 국가 간에, 또 개인 간에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선진국들조차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많은 청년과서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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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한민국도 같은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으로 나는 올해 공생발전을 새로운 국정 비전으로 국민에게 제시했습니다. 공생발전은 사회 모든 부문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음으로써 ‘윈-윈 사회’의 미래를 열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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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게 보면 제로섬처럼 보이는 관계에서도 넓게 보면 상생 관계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에는 치열한 경쟁도 벌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커다란 생물생태계를 살려 나가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위기를 극복하자면, 사회전체가 연대하고 협력하는 진화된 시장경제, 진화된 사회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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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숙녀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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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전 세계에 마지막 남은 분단국입니다. 남북한은 역사·언어·관습이 같은 한민족입니다. 남쪽과 북쪽에는 부모, 형제가 서로 헤어진 채 반세기 이상을 살아온 사람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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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반도의 7,000만 전체가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자면 먼저 비핵화를 통해서 한반도 평화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고, 남과 북이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남북 간 경제 협력을 강화해 공동번영의 길로 나아가고, 평화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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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한국은 어느 국가에도 위협이 되지 않고 인근 국가들의 번영을 촉진할 것이며, 나아가 세계 평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대통령 재임 중에 나의 역할은 그러한 날이 오도록 기초를 닦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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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숙녀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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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한민국이 나라를 세우고 오늘이 있기까지 미국의 도움이 컸습니다. 한미동맹은 안보뿐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켜 나가는 데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은 전후 경제적 번영을 이루는 동시에 민주화를 이룬 나라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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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한민국은 미국과 상호이익을 나누는, FTA를 체결할 수 있는 나라로 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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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미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매우 공고합니다. 두 나라는 가치동맹에 기반한 글로벌 파트너로서 세계 문제에 대해서도 공동의 비전을 갖고 서로 긴밀히 협력합니다. 나는 이러한 사실에 큰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 미국 국민 또한 대한민국이 이렇게 성장한 것에 큰 긍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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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민주국가와 평화를 사랑하는 전 인류의 좋은 친구가 될 것임을 약속합니다. 오늘 이 상을 받게 됨으로써 ‘양심의 호소 재단’과 여러분이 추구하는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 등에 대한 책무를 더 많이 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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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호소 재단’의 무궁한 발전과 오늘 참석하신 모든 분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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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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