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9년 조선 시대 인조 때 삼전도에 세워진 청나라 태종의 공덕비. 병자호란 때 청나라 태종 이 조선 인조의 항복을 받고 자기의 공덕을 자랑하기 위하여 짓기를 요구한 전승비.
원래의 비명은 '삼전도 청태종 공덕비'이며, 서울 특별시 송파구 석촌동에 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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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 황제 공덕비 (大淸皇帝功德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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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국의 숭덕 원년 겨울 12월, 관온인성황제께서 우리가 화친을 깨뜨렸기에, 진노하여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불꽃처럼 오시니, 누구도 두려워하여 막지 못하였다. 이때 우리 부족한 임금은 남한산성에 머무르면서 마치 봄날에 얼음을 딛고 햇빛을 기다리는 것처럼 두려워한 것이 거의 50일이었다.
동남쪽 여러 도의 군대가 연거푸 무너졌고, 서북방 장군들은 산골짜기에 숨어서 멀리 뒤로 물러나 한 걸음도 나오지 못하는데, 성 안의 식량도 떨어졌다. 이때 대군이 성에 다가서는 것이 마치 서리바람이 가을 풀을 휩쓸고, 화롯불에 깃털을 태우는 것처럼 사나웠다. 그러나 황제께서는 죽이지 않는 것을 무(武)로 삼고 덕을 펼치는 것을 우선하시어, 이에 칙유를 내리시길, "내게 온다면 너를 온전히 해주겠다, 그러지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 하시었다.
이로부터 잉울다이, 마푸타 등의 장수들이 황제의 조서를 받들고 잇달아 오가니, 이에 우리 부족한 임금이 문무백관을 모아 이르길, "내가 대국에 의탁하여 화친을 맺은 지 10여 년이 되었는데, 내가 어리석고 미혹되어, 하늘의 벌하심을 자초하여 만백성이 어육이 되었으니, 죄가 내 한 몸에 있다. 황제께서 오히려 차마 도륙하지 못하고 타이르심이 이와 같으니, 내 어찌 감히 이를 받들어 위로는 종사를 보전하고 아래로는 생령을 보호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여러 대신들이 모두 찬성하여 마침내 수십 기를 데리고 군문에 와서 죄를 청하니, 황제께서 예로써 대우하고 은혜로 어루만지며, 한 번 보고는 심복으로 삼아, 상을 내리시는 은혜가 따르는 신하들에게 두루 미쳤다. 예가 끝나자, 곧장 우리 부족한 임금을 도성으로 돌려보내고, 곧장 남쪽으로 간 군대를 거두어 서쪽으로 물러나며, 백성을 어루만져 농사에 힘쓰게 하여, 멀고 가까운 곳의 흩어진 백성들이 모두 다시 와 살게 되었으니, 어찌 큰 은혜가 아니겠는가!
소방이 상국에게 죄를 얻은 지 오래되었다. 기미년 싸움에 도원수 강홍립을 보내 명나라에 원병하였다가 군대가 패하여 사로잡히자, 태조 무황제께서는 단지 강홍립 등 몇 사람만을 잡아두고 나머지는 모두 뒤에 돌려보내셨으니, 은혜가 이보다 클 수 없었다. 그러나 소방이 미혹되어 깨닫지 못하매, 정묘년에 황제께서 장군을 보내 동쪽을 정벌하시니, 우리나라의 군신이 모두 바다 섬에 들어가 피하고는 사신을 보내 화친하자고 청하였다. 황제께서 윤허하시어, 형제와 같은 나라가 되고 강토가 다시 온전해졌다. 강홍립도 다시 돌려보냈다.
이로부터 계속해서 예우가 한결같고 사신들이 서로 오갔는데, 불행히도 공허한 의론에 선동되고 난리의 씨앗이 생겨나서, 소방이 지방 수령들에게 신칙하는 말이 몹시 불손했으니, 그 글을 사신들이 얻어서 가져갔다. 황제께서는 그럼에도 너그럽게 대하시어 곧장 군대를 보내지 않고, 먼저 명지(明旨)를 내리시어 군대를 보낼 시기를 기약하며 거듭 깨우치기를 귀를 잡고 얼굴을 맞대듯 하시었다. 그럼에도 끝내 따르지 않았으니, 소방의 군신들이 지은 죄가 벗어날 수 없이 무거워졌다.
황제의 대군이 남한산성을 포위하고는 또한 한 갈래 군대에 명하여 강화도를 먼저 함락하니, 빈궁과 왕자 및 대신의 가솔들이 모두 사로잡히자, 황제께서는 뭇 장수들을 단속하여 침해하지 못하게 하시고, 호종하던 관리와 내시들로 하여금 간호하게 하시었다. 이처럼 큰 은전을 입어, 소방의 군신과 사로잡힌 권속들이 예전처럼 돌아왔으니, 서리와 눈이 변하여 봄볕이 되고 마른 가뭄이 바뀌어 단비가 되듯, 망한 나라를 다시 세우고 끊어진 종사를 잇게 되었다. 동쪽 땅 수천 리가 모두 살게 하는 은택을 입었으니, 이는 실로 예로부터 보기 힘든 일이다. 아아 훌륭하도다!
한강 상류 삼전도의 남쪽은 곧 황제께서 다다르신 곳으로, 단을 세운 자리가 있다. 우리 부족한 임금이 수부(水部)에 명하여 단을 높고 크게 증축하고 또한 돌을 가지고 비를 세워서 영원히 남겨두어 드러내니, 황제의 공덕을 천지조화와 나란히 되도록 한 것이다. 어찌 우리 소방만 세세토록 영원히 믿고 살아갈 뿐이겠는가? 또 대국의 인자한 명성과 위엄찬 행실로 멀리서부터 복종해오지 않는 자 없음이 이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의 크기를 본뜨고 해와 달의 밝기를 그리려 해보아도 그 만분의 일에 비할 수 없으니, 삼가 그 대략을 새겨서 이른다.
하늘은 서리와 이슬을 내려 마르게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데, 황제께서 이를 본받으시어 위엄과 은덕을 함께 펴셨네. 황제께서 동방을 정벌하시니 그 군세 십만이라,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호랑이 같고 표범 같았네. 서쪽 번국 불모지와 북쪽 부락 사람들도 창을 잡고 앞서가니 그 위세 혁혁하도다. 황제께서 크나큰 인자함으로 은혜로운 말씀을 내려주시니, 열 줄로 내려주신 밝은 회답이 엄하고도 또한 따뜻하였네. 처음에는 미욱하여 알지 못하고 스스로 재앙을 불러왔으나, 황제의 밝은 명령 있고 나서는 마치 잠에서 깬 듯하였네.
우리 임금 이에 복종하면서 서로 이끌고 귀순해오니, 위세가 두려워서만이 아니라 또한 그 덕에 의지함일세. 황제께서 이에 용서하시며 넉넉히 예로써 맞아주시니, 표정을 고치고 웃는 낯으로 온갖 무기를 거두시었네. 무엇을 주셨던고? 준마와 가벼운 갖옷, 도성의 남녀가 노래하고 칭송하네. 우리 임금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황제께서 은사를 베푸심이라. 황제께서 군사를 물려주시니 우리 백성들 살게 되었네. 흩어진 우리 백성 불쌍히 여겨 농업에 힘쓰도록 하여 주시니, 금구(金甌)의 제도 옛날과 같고 비취빛 단은 나날이 새로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