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장안의 인적이 끊어지고 보름달만 휘영청 밝게 비치는 야밤중에. 골목길 후미진 담그늘 아래에서. 남녀가 어우러져 깊은 정을 나누고 있다. 남자의 차림새가 전립(氈笠)을 쓰고, 전복(戰服)에 남전대(藍纏帶)을 매었으며. 지휘봉 비슷한 방망이를 들었으니, 어느 영문(營門)의 장교일시 분명한데. 이렇듯 노상에서 체면없이 여인에게 허겁지겁하는 것은, 필시 잠깐밖에는 만나볼수 없는 사이인 때문일 것이다.
3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버린 옛 정인(情人)을 연연히 못 잊어, 줄이 닿을 만한 여인에게 구구히 사정하여 겨우 불러내는 데 성공한 모양이지만. 여기서 이렇게 다시 헤어져야만 하는 듯하다. 이쪽 담모퉁이를 도는 곳에 비켜서서, 동정어린 눈길로 이들을 지켜보는 여인은, 밀회를 성사시킨 장본인인 것 같다. 차림새가 여염의 여인은 아닌듯 하여, 장교를 만나고 있는 여자의 전력(前歷)도 대강 짐작이 간다.
4
조선시대의 화류계를 주름답던 사람들이, 대개 각영문의 군교(軍校)나 무예청(武藝廳)의 별감(別監)같은 하급 무관들로서, 이들이 기생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을 상기할 때. 군교 차림의 이런 애틋한 밀회는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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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혜원 신윤복]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 '연애와 기방'|작성자 허접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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