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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 37 (三國史記卷第三十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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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제 6 지리 4 (雜志第六. 地理四) - (高句麗∙百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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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전」에는 "주몽이 한 나라 건소 2년에 북부여로부터 동남방으로 나와서 보술수(普述水)를 건너 흘승골성(紇升骨城)에 이르러 자리를 잡고 국호를 구려라 하고 성씨를 '고'라고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고기에는 "주몽이 부여로부터 난을 피하여 졸본(卒本)에 이르렀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홀승골성(紇升骨城)과 졸본(卒本)은 같은 지방인듯하다. 「한서지」에는 "요동군(遼東郡)은 낙양(洛陽)과의 거리가 3천 6백리이며, 이에 속한 현으로서 무려현(無慮縣)이 있었으니, 바로 「주례」에 이른바 북진(北鎭)의 의무려산(醫巫閭山)이며, 대요 때는 그 아랫 쪽에 의주(醫州)를 설치하였다. 현토군(玄菟郡)은 낙양(洛陽)과 동북으로 4천리 떨어져 있었고, 이에 속한 현은 셋이다. 고구려(高句麗)가 그 중의 하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즉 주몽이 도읍을 정한 곳이라고 하는 흘승골성(紇升骨城)과 졸본(卒本)이란 지방은 아마도 한 나라 현토군(玄菟郡)의 경내이고, 대요국(大遼國) 동경의 서쪽인 듯하며, 「한서지」에 이른바 현토군(玄菟郡)의 속현으로서의 고구려가 바로 그것이 아닌가 싶다. 옛날 대요가 멸망하기 이전에 요제가 연경에 있었으므로, 우리 사신들이 동경을 지나 요수(遼水)를 건너 하루 이틀 사이에 의주(醫州)에 당도하여, 연계로 향하였기 때문에 「한서지」의 기록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몽이 흘승골성(紇升骨城)에 도읍을 정한 때로부터 40년이 지나서 유류왕 22년에 도읍을 국내성(國內城)【혹은 위나암성(尉那巖城)이라 하고 혹은 불이성(不而城)이라고도 한다.】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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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按《通典》云: 『<朱蒙>以<漢><建昭>二年, 自<北扶餘>東南行, 渡<普述水>, 至<紇升骨城>居焉. 號曰<句麗>, 以<高>爲氏.』 古記云: 『<朱蒙>自<扶餘>逃難 至<卒本>.』 則<紇升骨城>․<卒本>. 似一處也. 《漢書‧志》云: 『<遼東郡>距<洛陽>三千六百里, 屬縣有<無慮>, 則《周禮》<北鎭><醫巫閭山>也, <大遼>於其下置<醫州>. <玄菟郡>距<洛陽>東北四千里, 所屬三縣, <高句麗>是其一焉.』 則所謂<朱蒙>所都<紇升骨城>․<卒本>者, 蓋<漢><玄菟郡>之界, <大遼國>東京 之西, 《漢志》所謂<玄菟>屬縣, <高句麗>是歟. 昔<大遼>未亡時, <遼>帝在<燕京>, 則吾人朝聘者, 過<東京>涉<遼水>, 一兩日行至<醫州>, 以向<燕>․<薊>, 故知其然也. 自<朱蒙>立都<紇升骨城>, 歷四十年, <孺留王>二十二年, 移都<國內城>(或云<尉那巖城>, 或云<不而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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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에는 "낙랑군(樂浪郡)에 속한 현으로 불이현(不而縣)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총장 2년에 영국공 이적이 칙명에 의하여 고구려의 모든 성에 도독부와 주현을 설치하였다. 「목록」에는 "압록강 이북에서 이미 항복한 성이 열 하나인데 그 중 하나가 국내성(國內城)이며, 평양(平壤)으로부터 국내성까지는 17개의 역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이 성도 역시 북조(北朝) 경내에 있었으나 다만 어느 곳인지를 알 수 없을 뿐이다. (고구려는) 국내성에 도읍한지 425년이 지난 장수왕 15년에 평양으로 서울을 옮겼으며, 평양에서 156년이 지난 평원왕 28년에 장안성으로 서울을 옮겼으며, 장안성(長安城)에서 83년이 지난 보장왕 27년에 멸망하였다.【옛 사람들의 기록에는 시조 주몽으로부터 보장왕에 이르기까지의 연대가 이와 같이 분명하고 상세하다. 그러나 혹자는 "고국원왕 33년에 평양(平壤) 동쪽 황성(黃城)으로 옮겼는데, 그 성은 지금 서경(西京)의 동쪽 목멱산(木覓山) 가운데 있었다"고 말하니, 어느 말이 옳은지를 알 수 없다.】 평양성(平壤城)은 지금의 서경(西京)인듯하고, 패수(浿水)는 바로 대동강(大同江)이다. 어떻게 이를 알 수 있는가? 「당서」에는 "평양성(平壤城)은 한 나라의 낙랑군(樂浪郡)으로서 산굽이를 따라 성을 둘러 쌓았고 남으로 패수(浿水)가 놓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한지」에는 "등주(登州)에서 동북쪽 바다길로 나서서 남쪽으로 해변을 끼고 패강(浿江) 어귀에 있는 초도(椒島)를 지나면 신라의 서북 지방에 도달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또한 수 양제의 동방 정벌 조서에는 "창해(滄海) 방면 군사는 선박이 천 리에 뻗쳤는데, 높직한 돛은 번개같이 달리고 커다란 전함들은 구름같이 날아서 패강(浿江)을 횡단하여 멀리 평양(平壤)에 다달았다"는 기록이 있으니, 이렇게 보면 지금의 대동강(大同江)이 패수(浿水)인 것이 명백하며, 서경(西京)이 평양(平壤)이라는 것도 또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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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서」에는 "평양성(平壤城)도 장안(長安)이라고도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고, 고기에는 "평양(平壤)으로부터 장안(長安)으로 옮겼다"고 되어 있으니, 두 성이 동일한 것인가, 아니면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고구려는 처음에 중국 북부 지역에 있다가 점점 동방의 패수(浿水) 옆으로 이동하였다. 발해 사람 무예는 "옛날 고구려의 전성 시대에는 군사 30만으로 당과 대적하였다"고 말하였으니, 고구려의 지세가 유리하고 군사가 강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구려 말기에 이르러 임금과 신하가 우매하고 포학하여 각자가 자신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자, 당이 다시 군사를 출동시키고, 신라가 이를 도와 그들을 쳐서 평정했던 것이다. 그 지역의 대부분이 발해(渤海)와 말갈(靺鞨)로 편입되고, 신라에서도 그 남쪽 지방을 차지하여, 한주(漢州), 삭주(朔州), 명주(溟州)의 3주와 군현을 두어 아홉 주를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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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按《漢書》: 『<樂浪郡>屬縣有<不而>.』 又<總章>二年, 英國公<李勣>奉勑, 以<高句麗>諸城, 置都督府及州縣, 『目錄』云: <鴨綠>北已降城十一, 其一<國內城>, 從<平壤>至此十七驛. 則此城亦在北朝境內, 但不知其何所耳. 都<國內>, 歷四百二十五年, <長壽王>十五年, 移都平壤. 歷一百五十六年, <平原王>二十八年, 移都<長安城>, 歷八十三年, <寶臧王>二十七年而滅(古人記錄, 自始祖<朱蒙>王{至}<寶臧王>歷年, 丁寧纖悉若此, 而或云: 『<故國原王>十三年, 移居<平壤>東<黃城>, 城在今<西京>東<木覓山>中.』 不可知然否.) <平壤城>似今<西京>, 而<浿水>則<大同江>是也. 何以知之,《唐書》云: 『<平壤城>, <漢><樂浪郡>也, 隨山屈繚爲郛, 南涯<浿水>.』 又《志》云: 『<登州>東北海行, 南傍海壖, 過<浿江>口<椒島>, 得<新羅>西北.』 又<隋><煬帝>東征詔曰: 『<滄海>道軍, 舟艫千里, 高帆電逝, 巨艦雲飛, 橫絶<浿江>, 遙造<平壤>.』 以此言之, 今<大同江>爲<浿水>明矣, 則<西京>之爲<平壤>, 亦可知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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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書》云: 『<平壤城>亦謂<長安>.』 而古記云: 『自<平壤>移<長安>.』 則二城同異遠近, 則不可知矣. <高句麗>始居<中國>北地, 則漸東遷于<浿水>之側. <渤海>人<武藝>曰: 「昔<高麗>盛時, 士三十萬, 抗<唐>爲敵.』 則可謂地勝而兵强, 至于季末, 君臣昏虐失道, <大唐>再出師, <新羅>授助, 討平之. 其地多入<渤海>․<靺鞨>, <新羅>亦得其南境, 以置<漢>․<朔>․<溟>三州及其郡縣以備九州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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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원성(國原城)【미을성(未乙省) 또는 탁장성(託長城)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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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현(南川縣)【남매(南買)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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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천군(述川郡)【성지매(省知買)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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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현(楊根縣)【거사참(去斯斬{未斯斬})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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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물내군(今勿內郡)【만노(萬弩)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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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현(道西縣)【도분(都盆{都蓋})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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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홀(買忽)【수성(水城)이라고도 한다.】
28
상홀(上忽)【차홀(車忽)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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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현(釜山縣)【송촌활달(松村活達{松材活達})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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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목군(栗木郡)【동사힐(冬斯肹)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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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소홀현(買召忽縣)【미추홀(彌鄒忽)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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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구현(獐項口縣)【고사야홀차(古斯也忽次{古斯也衣次})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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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홀현(童子忽縣)【구사파의(仇斯波衣)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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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회압현(平淮押縣)【펼사파의(別史波衣)라고도 하며 회(淮)를 유(唯)로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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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군(北漢山郡)【평양(坪壤)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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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봉현(王逢縣)【개백(皆伯)이라고도 한다. 한씨 미녀가 안장왕을 맞던 곳이라하여 왕봉(王逢)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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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성군(買省郡{買省縣})【마홀(馬忽)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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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중현(七重縣)【난은별(難隱別)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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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해호사현(波害乎史縣)【액봉(頟)이라고도 한다.】
46
천정구현(泉井口縣)【어을매곶(於乙買串)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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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홀현(述爾忽縣)【수니홀(首泥忽)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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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성현(達乙省縣)【한씨 미녀가 높은 산마루에서 봉화를 놓고 안장왕을 맞던 곳이라 하여 후일에 고봉(高烽)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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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성군(臂城郡)【마홀(馬忽)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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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을매(內乙買)【내이미(內爾米)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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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군(鐵圓郡)【모을동비(毛乙冬非)라고도 한다.】
53
승량현(僧梁縣)【비물(非勿)이라고도 한다.】
54
공목달(功木達)【웅섬산(熊閃山)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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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내현(於斯內縣)【부양(斧壤)이라고도 한다.】
58
아진압현(阿珍押縣)【궁악(窮嶽)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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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잠군(牛岑郡)【우령(牛嶺) 또는 수지의(首知衣)라고도 한다.】
62
장항현(獐項縣)【고사야홀차(古斯也忽次)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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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천성현(長淺城縣{郡})【야야(耶耶) 또는 야아(夜牙)라고도 한다.】
64
마전천현(麻田淺縣)【이사파홀(泥沙波忽)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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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지두치현(若只頭耻縣{若只頭恥縣})【(朔頭) 또는 의두(衣頭{夜頭})라고도 한다.】
67
굴어갑(屈於岬)【홍서(紅西{西江})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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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림성현(津臨城縣)【오아홀(烏阿忽)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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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구군(穴口郡)【갑비고차(甲比古次)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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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음나현(冬音奈縣)【휴음(休陰)이라고도 한다.】
73
고목근현(高木根縣)【달을참(達乙斬)이라고도 한다.】
74
수지현(首知縣)【신지(新知)라고도 한다.】
75
대곡군(大谷郡)【다지홀(多知忽)이라고도 한다.】
76
수곡성현(水谷城縣)【매단홀(買旦忽)이라고도 한다.】
77
십곡현(十谷縣)【덕돈홀(德頓忽)이라고도 한다.】
78
동음홀(冬音忽)【시염성(豉鹽城)이라고도 한다.】
79
도랍현(刀臘縣)【치악성(雉嶽城)이라고도 한다.】
80
오곡군(五谷郡)【궁차운홀(弓次云忽)이라고도 한다.】
81
내미홀(內米忽)【지성(池城) 또는 장지(長池{長城})라고도 한다.】
82
한성군(漢城郡)【한홀(漢忽) 또는 식성(息城) 또는 내홀(乃忽)이라고도 한다.】
83
휴류성(鵂鶹城)【조파의(租波衣) 또는 휴암군(鵂巖郡)이라고도 한다.】
84
장새현(獐塞縣)【고소어(古所於)라고도 한다.】
85
동홀(冬忽)【우동어홀(于冬於忽)이라고도 한다.】
86
금달(今達)【신달(薪達) 또는 식달(息達)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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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을현(仇乙峴)【굴천(屈遷)이라고도 한다.】은 지금의 풍주(豐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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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구(栗口)【율천(栗川)이라고도 한다.】는 지금의 은률현(殷栗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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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이(麻耕伊)는 지금의 청송현(靑松縣)이다.
92
양악(楊岳)은 지금의 안악군(安嶽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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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마곶(板麻串)은 지금의 가화현(嘉禾縣)이다.
94
웅한이(熊閑伊)는 지금의 수녕현(水寧縣)이다.
95
옹천(甕遷)은 지금의 옹진현(甕津縣)이다.
96
부진이(付珍伊)는 지금의 영강현(永康縣)이다.
97
곡도(鵠島)는 지금의 백령진(白嶺鎭{白翎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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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파의현(夫斯波衣縣)【구사현(仇史峴)이라고도 한다.】
101
우수주(牛首州)【수(首)를 두(頭)로 쓰기도 하며 수차약(首次若) 또는 오근내(烏根乃)라고도 한다.】
103
횡천현(橫川縣)【어사매(於斯買)라고도 한다.】
106
나토군(奈吐郡)【대제(大提{大堤})라고도 한다.】
109
근평현(斤平郡)【병평(並平)이라고도 한다.】
110
심천현(深川縣)【복사매(伏斯買)라고도 한다.】
111
양구군(楊口郡)【요은홀차(要隱忽次)라고도 한다.】
112
저족현(猪足縣)【오사형(烏斯逈)이라고도 한다.】
113
옥기현(玉妓縣{壬岐縣/王岐縣/玉岐縣})【개차정(皆次丁)이라고도 한다.】
114
삼현현(三峴縣)【밀파혜(密波兮)라고도 한다.】
115
성천군(狌川郡)【야시매(也尸買)라고도 한다.】
116
대양관군(大楊管郡)【마근압(馬斤押)이라고도 한다.】
120
이벌지현(伊伐支縣)【자벌지(自伐支)라고도 한다.】
121
수성천현(藪狌川縣)【수천(藪川)이라고도 한다.】
122
문현현(文峴縣)【근시파혜(斤尸波兮)라고도 한다.】
123
모성군(母城郡)【야차홀(也次忽)이라고도 한다.】
125
수입현(水入縣)【매이현(買伊縣)이라고도 한다.】
126
객련군(客連郡)【객(客)을 각(各)으로도 쓰며 가혜아(加兮牙)라고도 한다.】
127
적목현(赤木縣)【사비근을(沙非斤乙)이라고도 한다.】
129
저란현현(猪闌峴縣)【오생파의(烏生波衣) 또는 저수(猪守)라고도 한다.】
130
천성군(淺城郡)【비열홀(比烈忽)이라고도 한다.】
131
경곡현(𢈴谷縣)【수을탄(首乙呑)이라고도 한다.】
132
청달현(菁達縣)【석달(昔達)이라고도 한다.】
135
어지탄(於支呑)【익곡(翼谷)이라고도 한다.】
137
천정군(泉井郡)【어을매(於乙買)라고도 한다.】
139
동허현(東墟縣)【가지근(加知斤)이라고도 한다.】
142
우오현(于烏縣)【욱오(郁烏)라고도 한다.】
144
하슬라주(何瑟羅州)【하서량(河西良) 또는 하서(河西)라고도 한다.】
149
수성현(䢘城郡)【가아홀(加阿忽)이라고도 한다.】
150
승산현(僧山縣)【소물달(所勿達)이라고도 한다.】
151
익현현(翼峴縣)【이문현(伊文縣)이라고도 한다.】
153
저수혈현(猪䢘穴縣)【오사합(烏斯押{鳥斯押})이라고도 한다.】
154
평진현현(平珍峴縣)【평진파의(平珍波衣)라고도 한다.】
155
도림현(道臨縣)【조을포(助乙浦)라고도 한다.】
156
휴양군(休壤郡)【금뇌(金惱)라고도 한다.】
157
습비곡(習比谷)【탄(呑)이라고도 한다.】
160
곡포현(鵠浦縣)【고의포(古衣浦)라고도 한다.】
161
죽현현(竹峴縣)【나생어(奈生於)라고도 한다.】
162
만약현(滿若縣)【면혜(沔兮)라고도 한다.】
165
파차현(波且縣)【파풍(波豐)이라고도 한다.】
167
조람군(助攬郡)【재람(才攬)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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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군(悉直郡)【사직(史直)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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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漢山州>, <國原城>(一云<未乙省>, 一云<託長城>), <南川縣>(一云<南買>), <駒城>(一云<滅烏>), <仍斤內郡>, <述川郡>(一云<省知買>), <骨乃斤縣>, <楊根縣>(一云<去斯斬{未斯斬}>), <今勿內郡>(一云<萬弩>), <道西縣>(一云<都盆{都蓋}>), <仍忽>, <皆次山郡>, <奴音竹縣>, <奈兮忽>, <沙伏忽>, <蛇山縣>, <買忽>(一云<水城>), <唐城郡>, <上忽>(一云<車忽>), <釜山縣>(一云<松村活達{松材活達}>) <栗木郡>(一云<冬斯肹>), <仍伐奴縣>, <齊次巴衣縣>, <買召忽縣>(一云<彌鄒忽>), <獐項口縣>(一云<古斯也忽次{古斯也衣次}>), <主夫吐郡>, <首爾忽>, <黔浦縣>, <童子忽縣>(一云<仇斯波衣>), <平淮押縣>(一云<別史波衣>, <淮>一作<唯>), <北漢山郡>(一云<坪壤>), <骨衣內縣>, <王逢縣>(一云<皆伯>, <漢>氏美女迎<安臧王>之地, 故名<王逢>), <買省郡{買省縣}>(一云<馬忽>), <七重縣>(一云<難隱別>), <波害乎史縣>(一云<頟>), <泉井口縣>(一云<於乙買串>), <述爾忽縣>(一云<首泥忽>), <達乙省縣>(<漢>氏美女, 於高山頭點烽火, 迎<安臧王>之處, 故後名<高烽>), <臂城郡>(一云<馬忽>), <內乙買>(一云<內爾米>), <鐵圓郡>(一云<毛乙冬非>), <梁骨縣>, <僧梁縣>(一云<非勿>), <功木達>(一云<熊閃山>), <夫如郡>, <於斯內縣>(一云<斧壤>), <烏斯含達{鳥斯含達}>, <阿珍押縣>(一云<窮嶽>), <所邑豆縣>, <伊珍買縣>, <牛岑郡>(一云<牛嶺>, 一云<首知衣>), <獐項縣>(一云<古斯也忽次>), <長淺城縣{郡}>(一云<耶耶>, 一云<夜牙>), <麻田淺縣>(一云<泥沙波忽>), <扶蘇岬>, <若只頭耻縣{若只頭恥縣}>(一云<朔頭>, 一云<衣頭{夜頭}>), <屈於岬{屈於岬}>(一云<紅西{西江}>), <冬比忽>, <德勿縣>, <津臨城縣>(一云<烏阿忽>), <穴口郡>(一云<甲比古次>), <冬音奈縣>(一云<休陰>), <高木根縣>(一云<達乙斬>), <首知縣>(一云<新知>), <大谷郡>(一云<多知忽>), <水谷城縣>(一云<買旦忽>), <十谷縣>(一云<德頓忽>), <冬音忽>(一云<豉鹽城>), <刀臘縣>(一云<雉嶽城>), <五谷郡>(一云<弓次云忽>), <內米忽>(一云<池城>, 一云<長池{長城}>), <漢城郡>(一云<漢忽>, 一云<息城>, 一云<乃忽>), <鵂鶹城>(一云<租波衣>, 一云<鵂巖郡>), <獐塞縣>(一云<古所於>), <冬忽>(一云<于冬於忽>), <今達>(一云<薪達>, 一云<息達>); <仇乙峴>(一云<屈遷>), 今<豐州>; <闕口>, 今<儒州>; <栗口>(一云<栗川>), 今<殷栗縣>; <長淵>, 今因之; <麻耕伊>, 今<靑松縣>; <楊岳>, 今<安嶽郡>; <板麻串>, 今<嘉禾縣>; <熊閑伊>, 今<水寧縣>; <甕遷>, 今<甕津縣>; <付珍伊>, 今<永康縣>; <鵠島>, 今<白嶺鎭{白翎鎭}>; <升山>, 今<信州>; <加火押>, <夫斯波衣縣>(一云<仇史峴>), <牛首州>(<首>一作<頭>, 一云<首次若>, 一云<烏根乃>), <伐力川縣{伐力州縣}>, <橫川縣>(一云<於斯買>), <砥峴縣{峴縣}>, <平原郡>(<北原>), <奈吐郡>(一云<大提{大堤}>), <沙熱伊縣>, <赤山縣>, <斤平郡>(一云<並平>), <深川縣>(一云<伏斯買>), <楊口郡>(一云<要隱忽次>), <猪足縣>(一云<烏斯逈>), <玉妓縣{壬岐縣/王岐縣/玉岐縣}>(一云<皆次丁>), <三峴縣>(一云<密波兮), <狌川郡>(一云<也尸買>), <大楊管郡>(一云<馬斤押>), <買谷縣>, <古斯馬縣>, <及伐山郡>, <伊伐支縣>(一云<自伐支>), <藪狌川縣>(一云<藪川>), <文峴縣>(一云<斤尸波兮>), <母城郡>(一云<也次忽>), <冬斯忽>, <水入縣>(一云<買伊縣>), <客連郡>(<客>一作<各>, 一云<加兮牙>), <赤木縣>(一云<沙非斤乙>), <管述縣>, <猪闌峴縣>(一云<烏生波衣>, 一云<猪守>), <淺城郡>(一云<比烈忽>), <𢈴谷縣>(一云<首乙呑>), <菁達縣>(一云<昔達>), <薩寒縣>, <加支達縣>, <於支呑>(一云<翼谷>), <買尸達>, <泉井郡>(一云<於乙買>), <夫斯達縣>, <東墟縣>(一云<加知斤), <奈生郡>, <乙阿且縣>, <于烏縣>(一云<郁烏>), <酒淵縣>, <何瑟羅州>(一云<河西良>, 一云<河西>), <乃買縣>, <東吐縣>, <支山縣>, <穴山縣>, <䢘城郡>(一云<加阿忽>), <僧山縣>(一云<所勿達>), <翼峴縣>(一云<伊文縣>), <達忽>, <猪䢘穴縣>(一云<烏斯押{鳥斯押}>), <平珍峴縣>(一云<平珍波衣>), <道臨縣>(一云<助乙浦>), <休壤郡>(一云<金惱>), <習比谷>(一作<呑>), <吐上縣>, <岐淵縣>, <鵠浦縣>(一云<古衣浦>), <竹峴縣>(一云<奈生於>), <滿若縣>(一云<沔兮>), <波利縣>, <于珍也郡>, <波且縣>(一云<波豐>), <也尸忽郡>, <助攬郡>(一云<才攬>), <靑已縣>, <屈火縣{屈大縣}>, <伊火兮縣>, <于尸郡{于市郡}>, <阿兮縣>, <悉直郡>(一云<史直>), <羽谷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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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고구려의 주, 군, 현인데 모두 164개소이다. 신라에서 개칭한 것과 지금의 명칭은 「신라(지리)지」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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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右<高句麗>州郡縣, 共一百六十四, 其<新羅>改名及今名, 見《新羅志》.
179
「후한서」에는 "삼한(三韓)은 대략 78개 나라였는데, 백제가 바로 그 가운데의 하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북사」에는 "백제가 동쪽으로는 신라에 닿았고, 서쪽과 남쪽은 모두 큰 바다와 닿았으며, 북쪽은 한강에 접하였고, 수도는 거발성(居拔城) 또는 고마성(固麻城)이라 하였으며, 그 밖에 다시 오방성(五方城)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통전」에는 "백제는, 남쪽으로는 신라에 닿았고, 북쪽으로는 고구려에 이르며, 서쪽으로는 큰 바다를 경계로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구당서」에는 "백제는 부여(扶餘)의 또 다른 종족으로서 동북쪽에 신라가 있으며,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월주(越州)에 이르고, 남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왜(倭)에 이르며, 북쪽에 고구려가 있고, 그 나라 왕이 있는 곳에 동서의 두 성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당서」에는 "백제의 서쪽 경계는 월주(越州)이며, 남쪽은 왜(倭)인데, 모두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으며 북쪽은 고구려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대의 기록에는 "동명왕의 셋째 아들 온조가 전한 홍가 3년 계묘에 졸본부여(卒本扶餘)로부터 위례성(慰禮城)에 도착하여 도읍을 세우고 왕이 되었다. 이로부터 389년이 지난 13대 근초고왕에 이르러 고구려의 남평양(南平壤)을 빼앗고 한성(漢城)에 도읍을 정하여 105년을 지냈으며, 22대 문주왕에 이르러 도읍을 웅천(熊川)으로 옮겨 63년을 지냈다. 26대 성왕에 이르러 도읍을 소부리(所夫里)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南扶餘)라 하였는데, 31대 의자왕에 이르기까지 122년을 지냈다. 당 현경 5년은 바로 의자왕 20년이었는데, 이 때 신라 유신이 당의 소정방과 함께 백제를 쳐서 평정하였다. 옛날 백제에는 5부가 있어서 37개 군, 2백개 성, 76만호를 나누어 통솔했었다. 그 후 당은 그 지역에 웅진(熊津), 마한(馬韓), 동명(東明) 등 다섯 개의 도독부를 설치하고, 그 곳 추장들을 도독부자사로 삼았으나 얼마 되지 않아 신라가 그 지역을 모두 차지하여, 웅주(熊州), 전주(全州), 무주(武州)의 3주와 여러 군현을 설치하였으니, 신라는 백제의 이 땅과 고구려의 남쪽 지역, 그리고 신라의 본토를 합하여 9주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80
○ 《後漢書》云: 『<三韓>凡七十八國, <百濟>是其一國焉.』《北史》云: 『<百濟>東極<新羅>, 西南俱限大海, 北際<漢江>, 其都曰<居拔城>, 又云<固麻城>, 其外更有五方城.』《通典》云: 『<百濟>南接<新羅>, 北距<高麗{高句麗}>, 西限大海.』《舊唐書》云: 『<百濟>, <扶餘>之別種, 東北<新羅>, 西渡海至<越州>, 南渡海至<倭>, 北<高麗{高句麗}>, 其王所居, 有東西兩城.』《新唐書》云: 『<百濟>西界<越州>, 南<倭>, 皆踰海, 北<高麗>.』 按古典記: <東明王>第三子<溫祚>, 以<前漢><鴻嘉>三年癸卯, 自<卒本扶餘>至<慰禮城>, 立都稱王, 歷三百八十九年, 至十三世<近肖古王>, 取<高句麗>南<平壤>, 都<漢城>, 歷一百五年, 至二十二世<文周王>移都<熊川>, 歷六十三年, 至二十六世<聖王>移都<所夫里>, 國號<南扶餘>, 至三十一世<義慈王>, 歷年一百二十二. 至<唐><顯慶>五年, 是<義慈王>在位二十年, <新羅><庾信>與<唐><蘇定方>討平之. 舊有五部, 分統三十七郡, 二百城, 七十六萬戶. <唐>以其地, 分置<熊津>․<馬韓>․<東明>等五都督府, 仍以其酋長爲都督府刺史, 未幾, <新羅>盡幷其地, 置<熊>․<全>․<武>三州及諸郡縣, 與<高句麗>南境及<新羅>舊地爲九州.』
181
웅천주(熊川州)【웅진(熊津)이라고도 한다.】
184
서원(西原)【비성(臂城) 또는 자곡(子谷)이라고도 한다.】
186
기매현(其買縣{甘買縣})【임천(林川)이라고도 한다.】
201
소부리군(所夫里郡)【사비(泗沘)라고도 한다.】
203
열이현(悅已縣{悅己縣})【두릉윤성(豆陵尹城)이라고도 하며 두곶성(豆串城) 또는 윤성(尹城)이라고도 한다.】
208
진현현(眞峴縣)【정현(貞峴)이라고도 한다.】
224
굴지현(屈旨縣)【굴직(屈直)이라고도 한다.】
225
완산(주)(完山)【비사벌(比斯伐) 또는 비자화(比自火)라고도 한다.】
226
두이현(豆伊縣)【왕무(往武)라고도 한다.】
229
남원(南原)【고룡군(古龍郡)이라고도 한다.】
238
진내군(進乃郡)【진잉을(進仍乙)이라고도 한다.】
239
두시이현(豆尸伊縣)【부시이(富尸伊)라고도 한다.】
243
가지나현(加知奈縣)【가을내(加乙乃)라고도 한다.】
246
시산군(屎山郡)【절문(折文)이라고도 한다.】
262
백해군(伯海郡)【백이(伯伊)라고도 한다.】
266
마돌현(馬突縣)【마진(馬珍)이라고도 한다.】
268
무진주(武珍州)【노지(奴只)라고도 한다.】
272
분차군(分嵯郡)【부사(夫沙)라고도 한다.】
283
과지현(菓支縣)【과혜(菓兮)라고도 한다.】
296
삽평군(欿平郡)【무평(武平)이라고도 한다.】
304
이릉부리군(爾陵夫里郡)【죽수부리(竹樹夫里) 또는 인부리(仁夫里)라고도 한다.】
306
잉리아현(仍利阿縣)【해빈(海濱)이라고도 한다.】
310
수천현(水川縣)【수입이(水入伊)라고도 한다.】
314
새금현(塞琴縣)【착빈(捉濱{投濱})이라고도 한다.】
319
도제현(道際縣)【음해(陰海)라고도 한다.】
321
도산현(徒山縣)【바다 섬이며 원산(猿山)이라고도 한다.】
324
갈초현(葛草縣)【하로(阿老) 또는 곡야(谷野)라고도 한다.】
325
고록지현(古祿只縣)【개요(開要)라고도 한다.】
326
거지산현(居知山縣)【안릉(安陵)이라고도 한다.】
328
○ <熊川州>(一云<熊津>), <熱也山縣>, <伐音支縣>, <西原>(一云<臂城>, 一云<子谷>), <大木岳郡>, <其買縣{甘買縣}>(一云<林川>), <仇知縣>, <加林郡>, <馬山縣>, <大山縣>, <舌林郡{舌林縣}>, <寺浦縣>, <比衆縣>, <馬尸山郡>, <牛見縣>, <今勿縣>, <構郡>, <伐首只縣>, <餘村縣>, <沙平縣>, <所夫里郡>(一云<泗沘>), <珍惡山縣>, <悅已縣{悅己縣}>(一云<豆陵尹城>, 一云<豆串城>, 一云<尹城>), <任存城>, <古良夫里縣>, <烏山縣>, <黃等也山郡>, <眞峴縣>(一云<貞峴>), <珍洞縣>, <雨述郡>, <奴斯只縣>, <所比浦縣>, <結已郡>, <新村縣{新村縣}>, <沙尸良縣>, <一牟山郡>, <豆仍只縣>, <未谷縣>, <基郡>, <省大兮縣>, <知六縣>, <湯井郡>, <牙述縣>, <屈旨縣>(一云<屈直>), <完山>(一云<比斯伐>, 一云<比自火>), <豆伊縣>(一云<往武>), <仇智山縣>, <高山縣>, <南原>(一云<古龍郡>), <大尸山郡>, <井村縣>, <賓屈縣>, <也西伊縣>, <古沙夫里郡>, <皆火縣>, <欣良買縣>, <上柒縣>, <進乃郡>(一云<進仍乙>), <豆尸伊縣>(一云<富尸伊>), <勿居縣>, <赤川縣>, <德近郡>, <加知奈縣>(一云<加乙乃>), <只良肖縣>, <共伐共縣>, <屎山郡>(一云<折文>), <甘勿阿縣>, <馬西良縣>, <夫夫里縣>, <碧骨郡>, <豆乃山縣>, <首冬山縣>, <乃利阿縣>, <武斤縣>, <道實郡>, <礫坪縣>, <堗坪縣>, <金馬渚郡>, <所力只縣>, <閼也山縣>, <干召渚縣>, <伯海郡>(一云<伯伊>), <難珍阿縣>, <雨坪縣>, <任實郡>, <馬突縣>(一云<馬珍>), <居斯勿縣>, <武珍州>(一云<奴只>), <未冬夫里縣>, <伏龍縣>, <屈支縣>, <分嵯郡>(一云<夫沙>), <助助禮縣>, <冬老縣>, <豆肹縣>, <比史縣>, <伏忽郡>, <馬斯良縣>, <季川縣>, <烏次縣>, <古馬未知縣>, <秋子兮郡>, <菓支縣>(一云<菓兮>), <栗支縣>, <月奈郡>, <半奈夫里縣>, <阿老谷縣>, <古彌縣>, <古尸伊縣>, <丘斯珍兮縣>, <所非兮縣>, <武尸伊郡>, <上老縣>, <毛良夫里縣>, <松彌支縣>, <欿平郡>(一云<武平>), <猿村縣>, <馬老縣>, <突山縣>, <欲乃郡>, <遁支縣>, <仇次禮縣>, <豆夫只縣>, <爾陵夫里郡>(一云<竹樹夫里>, 一云<仁夫里>), <波夫里郡>, <仍利阿縣>(一云<海濱>), <發羅郡{廢羅州}>, <豆肹縣>, <實於山縣>, <水川縣>(一云<水入伊>), <道武郡>, <古西伊縣>, <冬音縣>, <塞琴縣>(一云<捉濱{投濱}>), <黃述縣>, <勿阿兮郡>, <屈乃縣>, <多只縣>, <道際縣>(一云<陰海>), <因珍島郡>(海島也), <徒山縣>(海島也, 或云<猿山>), <買仇里縣>(海島也), <阿次山郡>, <葛草縣>(一云<阿老>, 一云<谷野>), <古祿只縣>(一云<開要>), <居知山縣>(一云<安陵>), <奈已郡>.
329
이상 백제의 주, 군, 현은 모두 147개소이다. 신라에서 개칭한 것과 지금의 명칭들은 「신라(지리)지」에 실려 있다.
330
○ 右<百濟>州郡縣, 共一白四十七, 其<新羅>改名及今名, 見《新羅志》.
332
위치가 분명하지 않고 이름만 남아 있는 삼국시대의 지명
467
골평성(骨平城)【골쟁(骨爭)이라고도 한다.】
527
엄호수(淹淲水)【개사수(蓋斯水)라고도 한다.】
645
지라성(支羅城)【주류성(周留城)이라고도 한다.】
691
<調駿鄕>, <神鶴村>, <翔鸞村>, <對仙宮>,
692
<鳳庭村>, <飛龍村>, <飼龍鄕>, <接仙鄕>,
693
<敬仁鄕>, <好禮鄕>, <積善鄕>, <守義鄕>,
694
<斷金鄕>, <海豐鄕>, <北溟鄕>, <麗金成{麗金戍/麗金城}>,
695
<接靈鄕>, <河淸鄕>, <江寧鄕>, <咸寧鄕>,
696
<馴雉鄕>, <建節鄕>, <救民鄕>, <鐵山鄕>,
697
<金川鄕>, <睦仁鄕>, <靈池鄕>, <永安鄕>,
698
<武安鄕>, <富平鄕>, <穀成鄕>, <密雲鄕>,
699
<宜祿鄕>, <利人鄕>, <賞仁鄕>, <封德鄕>,
700
<歸德鄕>, <永豐鄕{咸平縣}>, <律功鄕>,
701
<龍橋鄕>, <臨川鄕>, <海洲成{海州成}>,
702
<江陵鄕>, <鐵求鄕>, <江南鄕>, <河東鄕>,
703
<激瀾鄕>, <露均成{露均戍/露均城}>, <永壽成{永壽戍/永壽城}>,
704
<寶劒成{寶劒戍/寶劒城}>, <岳陽成{岳陽戍/岳陽城}>,
705
<萬壽成{萬壽戍/萬壽城}>, <濯錦成{濯錦戍/濯錦城}>,
706
<河曲成{河曲戍/河曲城}>, <岳南成{岳南戍/岳南城}>,
707
<推畔成{推畔戍/推畔城}>, <進錦成{進錦戍/進錦城}>,
708
<澗水成{澗水戍/澗水城}>, <傍海成{傍海戍/傍海城}>,
709
<萬年鄕>, <飮仁鄕>, <通路鄕>, <懷信鄕>,
710
<江西鄕>, <利上鄕>, <抱忠鄕>, <連嘉鄕>,
711
<天露鄕>, <漢寧成{漢寧戍/漢寧城}>, <會昌宮>,
712
<邀仙宮>, <北海通>, <鹽池通>, <東海通>,
713
<海南通>, <北傜通>, <末康成{末康戍/永康城}>,
714
<脣氣成{脣氣戍//脣氣城}>, <奉天成{奉天戍/奉天城}>,
715
<𣁅定成{ 定戍/定城}>, <萊遠城>,
716
<萊津成{萊津戍/萊津城}>, <乾門驛>, <坤門驛>,
717
<坎門驛>, <艮門驛>, <兌門驛>, <大岵城>,
718
<岱山郡>, <枯彌縣>, <北隈郡>, <非惱城>,
719
<瓢川縣>, <皐夷島>, <泉州>, <冷井縣>,
720
<慰禮城>, <比只國>, <南新縣>, <腰車城>,
721
<沙道城>, <骨火國>, <馬頭柵>, <槐谷城>,
722
<長峰鎭>, <獨山城>, <活開城>, <芼老城>,
723
<廣石城>, <坐羅城>, <狐鳴城>, <刀耶城>,
724
<狐山城>, <臨海鎭>, <長嶺鎭>, <牛山城>,
725
<汲里彌城{波里彌城}>, <實珍城>, <德骨城>, <大林城>,
726
<伐音城>, <株山城>, <多伐國>, <近嵒城>,
727
<蔪{靳}{?}城>, <椵岑城>, <党項城>, <石吐城>,
728
<富山城>, <阿旦城>, <缶羅城>, <耳山城>,
729
<甘勿城>, <桐岑城>, <骨平城>(一云<骨爭>), <達咸城>,
730
<西谷城>, <勿伐城>, <小陁城>, <畏石城>,
731
<泉山城>, <雍岑城>, <獨母城>, <缶谷城>,
732
<西單城>, <獼懸城>, <櫻岑城>, <岐岑城>,
733
<旗懸城>, <冗柵城>, <蛙山城>, <濕水>,
734
<龍馬>, <猪岳>, <𠬌{甁}山>, <直朋>,
735
<達伐>, <𣏏山{葉山}>, <木出島>, <狗壤>,
736
<大丘>, <沙峴>, <熊谷>, <風島>,
737
<斧峴>, <狼山>, <叢山>, <安北河>,
738
<泊灼城>, <蓋馬國>, <句茶國>, <華麗城>,
740
<檀廬城>, <加尸城>, <石城>, <水口城>,
741
<卑倉城>, <蓋牟城>, <沙卑城>, <牛山城>,
742
<道薩城>, <白嵒城>, <建安城>, <蒼嵒城>,
743
<辱夷城>, <松讓國>, <荇人國>, <橫山>,
744
<白水山>, <迦葉原>, <東牟河>, <優渤水>,
745
<淹淲水>(或云<蓋斯水>), <沸流水>, <薩水>,
746
<毛屯谷>, <鶻嶺>, <龍山>, <鶻川>, <凉谷>,
747
<箕山>, <長屋澤>, <易山>, <礪津>, <尉中林>,
748
<烏骨>, <沙勿澤>, <貴湍水>, <安地>,
749
<薩賀水>, <矛川>, <馬嶺>, <鶴盤嶺>,
750
<馬邑山>, <王骨嶺>, <豆谷>, <骨句川>,
751
<理勿林>, <車廻谷>, <曷思水>, <椽耶部{椽那部}>,
752
<北溟山>, <閔中原>, <慕本>, <罽山>,
753
<倭山>, <蠶支落>, <平儒原>, <狗山瀨>,
754
<坐原>, <質山>, <故國谷>, <左勿村>,
755
<故國原>, <裴嶺>, <酒桶村>, <巨谷>,
756
<靑木谷>, <杜訥河>, <柴原>, <箕丘>,
757
<中川>, <海谷>, <西川>, <鵠林>,
758
<烏川>, <水室村>, <思收村>, <烽山>,
759
<候山>, <美川>, <斷熊谷>, <馬首山>,
760
<長城>, <磨米山>, <銀山>, <後黃>,
761
<嬰留山>, <小獸林>, <禿山>, <武厲邏>,
762
<大斧峴>, <馬首城>, <甁山柵>, <普述水>,
763
<烽峴>, <禿山柵>, <狗川柵>, <走壤城>,
764
<石頭城>, <高木城>, <圓山城>, <錦峴城>,
765
<大豆山城>, <牛谷城>, <橫岳>, <犬牙城>,
766
<赤峴城>, <沙道城>, <德安城>, <寒泉>,
767
<釜山>, <石川>, <狗原>, <八押城{八坤城}>,
768
<關彌城>, <石峴城>, <雙峴城>, <沙口城>,
769
<斗谷>, <耳山城>, <牛鳴谷>, <沙井城>,
770
<馬浦村>, <長嶺城>, <加弗城>, <葦川>,
771
<狐山>, <穴城>, <獨山城>, <金峴城>,
772
<角山城>, <松山城>, <赤嵒城>, <生草原>,
773
<馬川城>, <沉峴>, <眞都城>, <高鬱府>,
774
<葛嶺>, <支羅城>(或云<周留城>), <大山柵>, <郁里阿{郁里河}>,
775
<崇山>, <張吐野>, <絶影山>, <淸津>,
776
<遺鳳島>, <大阹>, <汧隴>, <鳧栖島>,
777
<鳳澤>, <龍丘>, <連城原>, <浮雲島>,
778
<天馬山>, <海濱島>, <壑中島>, <玉塞>,
779
<連峯>, <叢林>, <升天島>, <乘黃島>,
780
<八駿山>, <絶群山>, <求麟島>, <負圖島>,
781
<吐景山>, <河精島>, <遊氣山>, <平原>,
782
<大澤>, <騏驎澤>, <躡景山>, <金穴>,
783
<蘭池>, <西極山>, <浦陽丘>, <鐵伽山>,
784
<桃林>, <石礫山>, <瑞驎苑>, <麓苑>,
786
총장 2년 2월, 전 사공겸태자태사영국공 이 적 등이 (당 고종에게) 상주하기를 "고구려의 모든 성에 도독부 및 주, 군을 설치하는 건은, 마땅히 남생과 함께 토의 작성하여 상주하라는 칙명을 받들었기에, 이상과 같은 문건을 상주합니다"라고 하니, (고종이) 칙명을 내려 "주청에 의해서 그 주군은 모름지기 (중국에) 예속시켜야 하겠으므로 요동도안무사겸우상 유 인궤에게 위임하라"고 하였다. 마침내 그 지역을 적당히 분할하여 모두 안동도호부에 예속시켰다.
787
○ <總章>二年二月, 前司空兼太子太師 <英國公> <李勣>等, 奏稱: 『奉勑<高麗>諸城, 堪置都督府及州郡者, 宜共<男生>商量准擬, 奏聞件狀如前.』 勑: 『依奏, 其州郡應須隸屬, 宜委<遼東>道安撫使兼右相<劉仁軌>.』 遂便穩分割, 仍摠隸安東都護府.
788
압록강 이북의 항복하지 않은 11개 성
789
원래 조리비서(助利非西)였던 북부여성주(北扶餘城州)
790
원래 무자홀(蕪子忽{燕子忽})이었던 절성(節城)
791
원래 초파홀(肖巴忽{肖巳忽})이었던 풍부성(豐夫城)
792
원래 구차홀(仇次忽)【돈성(敦城)이라고도 한다.】이었던 신성주(新城州)
793
원래 파시홀(波尸忽)이었던 도성(䄻{桃}城)
794
원래 비달홀(非達忽)이었던 대두산성(大豆山城)
795
원래 오열홀(烏列忽{鳥列忽})이었던 요동성주(遼東城州)
799
옛날 안시홀(安十忽{安十忽})【환도성(丸都城)이라고도 한다.】이었던 안시성(安市城)
800
○ <鴨淥水>以北, 未降十一城: <北扶餘城州>, 本<助利非西>; 節城, 本<蕪子忽{燕子忽}>; <豐夫城>, 本<肖巴忽{肖巳忽}>; <新城州>, 本<仇次忽>(或云<敦城>); <䄻{桃}城>, 本<波尸忽>; <大豆山城>, 本<非達忽>; <遼東城州>, 本<烏列忽{鳥列忽}>; <屋城州>; <白石城>; <多伐嶽州>; <安市城>, 舊<安十忽{安十忽}> (或云<丸都城>).
806
원래 감물이홀(甘勿伊忽)이었던 감물주성(甘勿主城)
808
원래 거시압(居尸押)이었던 심악성(心岳城)
809
국내주(國內州)【불내(不耐) 혹은 위나암성(尉那嵒城)이라고도 한다.】
810
원래 초리파리홀(肖利巴利忽)이었던 설부루성(屑夫婁城{屑夫萎城})
811
원래 골시압(骨尸押)이었던 후악성(朽岳城{杆岳城})
813
○ <鴨淥水>以北, 已降城十一: <椋嵓城>; <木底城>; <藪口城>; <南蘇城>; <甘勿主城>, 本<甘勿伊忽>; <凌田谷城{麥田谷城}>; <心岳城>, 本<居尸押>; <國內州>(一云<不耐>, 或云<尉那嵒城>); <屑夫婁城{屑夫萎城}>, 本<肖利巴利忽>; <朽岳城{杆岳城}>, 本<骨尸押>, <橴木城>.
815
원래 내물홀(乃勿忽)이었던 연성(鈆城)
817
원래 개시압홀(皆尸押忽)이었던 아악성(牙岳城)
818
원래 감미홀(甘彌忽)이었던 취악성(鷲岳城)
819
원래 적리홀(赤里忽)이었던 적리성(積利城)
820
원래 소시홀(召尸忽)이었던 목은성(木銀城)
821
원래 가시달홀(加尸達忽)이었던 이산성(犁山城)
822
○ 鴨淥江以北, 逃城七: <鈆城>, 本<乃勿忽>; <面岳城>; <牙岳城>, 本<皆尸押忽>; <鷲岳城>, 本<甘彌忽>; <積利城>, 本<赤里忽>; <木銀城>, 本<召尸忽>; <犁山城>, 本<加尸達忽>.
824
원래 갑홀(甲忽)이었던 혈성(穴城), 本; , 本; , 本
826
원래 소시홀(召尸忽)이었던 사성(似城)
827
○ 鴨淥以北, 打得城三: <穴城>, 本<甲忽>; <銀城>, 本<折忽>; <似城>, 本<召尸忽>.
832
원래 고량부리(古良夫里)였던 인덕현(麟德縣)
833
원래 신촌(新村)이었던 산곤현(散昆縣)
834
원래 구시파지(仇尸波知)였던 안원현(安遠縣)
835
원래 비물(比勿)이었던 빈문현(賓汶縣)
836
원래 마사량(麻斯良)이었던 귀화현(歸化縣)
838
원래 고막부리(古莫夫里)였던 감개현(甘蓋縣)
839
원래 나서혜(奈西兮)였던 나서현(奈西縣)
840
원래 덕근지(德近支)였던 득안현(得安縣)
841
원래 고마산(古麻山{古麻古})이었던 용산현(龍山縣)
842
○ 都督府一十三縣: <嵎夷縣>; <神丘縣>; <尹城縣>, 本<悅已>; <麟德縣>, 本<古良夫里>; <散昆縣>, 本<新村>; <安遠縣>, 本<仇尸波知>; <賓汶縣>, 本<比勿>; <歸化縣>, 本<麻斯良>; <邁羅縣>; <甘蓋縣>, 本<古莫夫里>; <奈西縣>, 本<奈西兮>; <得安縣>, 本<德近支>; <龍山縣>, 本<古麻山{古麻古}>.
844
원래 웅진촌(熊津村{熊津材})이었던 웅진현(熊津縣)
845
원래 아로곡(阿老谷)이었던 노신현(鹵辛縣)
847
원래 벌음촌(伐音村)이었던 부림현(富林縣)
848
○ <東明州>四縣: <熊津縣>, 本<熊津村{熊津材}>; <鹵辛縣>, 本<阿老谷>; <久遲縣>, 本<仇知>; <富林縣>, 本<伐音村>.
850
원래 금물(今勿)이었던 이문현(已汶縣)
851
원래 지삼촌(只彡村)이었던 지심현(支潯縣)
852
원래 고산(孤山)이었던 마진현(馬津縣)
853
원래 부수지(夫首只)였던 자래현(子來縣)
854
원래 개리이(皆利伊)였던 해례현(解禮縣)
855
원래 고마지(古麻只)였던 고로현(古魯縣)
857
원래 사호살(沙好薩)이었던 산호현(珊瑚縣)
858
원래 거사물(居斯勿)이었던 융화현(隆化縣)
859
○ <支潯州>九縣: <已汶縣>, 本<今勿>; <支潯縣>, 本<只彡村>; <馬津縣>, 本<孤山>; <子來縣>, 本<夫首只>; <解禮縣>, 本<皆利伊>; <古魯縣>, 本<古麻只>; <平夷縣>, 本<知留>; <珊瑚縣>, 本<沙好薩>; <隆化縣>, 本<居斯勿>.
861
원래 감물아(甘勿阿)였던 노산현(魯山縣)
862
원래 구지지산(仇知只山)이었던 당산현(唐山縣)
864
원래 지마마지(只馬馬知)였던 지모현(支牟縣)
865
원래 마지사(馬知沙)였던 오잠현(烏蠶縣)
866
원래 원촌(源村{原村})이었던 아착현(阿錯縣)
867
○ <魯山州>六縣: <魯山縣>, 本<甘勿阿>; <唐山縣>, 本<仇知只山>; <淳遲縣>, 本<豆尸>; <支牟縣>, 本<只馬馬知>; <烏蠶縣>, 本<馬知沙>; <阿錯縣>, 本<源村{原村}>.
868
원래 고사부리(古沙夫里)였던 고사주(古四州)의 5개 현
869
원래 고사부촌(古沙夫村)이었던 평왜현(平倭縣)
870
원래 대시산(大尸山)이었던 대산현(帶山縣)
871
원래 벽골(辟骨)이었던 벽성현(辟城縣)
873
원래 두나지(豆奈只)였던 순모현(淳牟縣)
874
○ <古四州>, 本<古沙夫里>, 五縣: <平倭縣>, 本<古沙夫村>; <帶山縣>, 本<大尸山>; <辟城縣>, 本<辟骨>; <佐贊縣>, 本<上杜>; <淳牟縣>, 本<豆奈只>.
875
원래 호시이성(號尸伊城)이었던 사반주(沙泮州)의 4개 현
876
원래 호시이촌(號尸伊村)이었던 모지현(牟支縣)
877
원래 모량부리(毛良夫里)였던 무할현(無割縣)
880
○ <沙泮州>, 本<號尸伊城>, 四縣: <牟支縣>, 本<號尸伊村>; <無割縣>, 本<毛良夫里>; <佐魯縣>, 本<上老>; <多支縣>, 本<夫只>.
881
원래 죽군성(竹軍城)이었던 대방주(帶方州)의 6개 현
884
원래 추산(押山)이었던 도산현(徒山縣)
885
원래 반나부리(半奈夫里)였던 반나현(半那縣)
886
원래 두힐(豆肹)이었던 죽군현(竹軍縣)
887
원래 파로미(巴老彌)였던 포현현(布賢縣)
888
○ <帶方州>, 本<竹軍城>, 六縣: <至留縣>, 本<知留>; <軍那縣>, 本<屈奈>; <徒山縣>, 本<押山>; <半那縣>, 本<半奈夫里>; <竹軍縣>, 本<豆肹>; <布賢縣> 本<巴老彌>.
889
원래 파지성(波知城)이었던 분차주(分嵯州)의 4개 현
890
원래 구사진혜(仇斯珍兮)였던 귀단현(貴旦縣)
891
원래 매성평(買省坪)이었던 수원현(首原縣)
892
원래 추자혜(秋子兮)였던 고서현(皐西縣{阜西縣})
894
○ <分嵯州>, 本<波知城>, 四縣: <貴旦縣>, 本<仇斯珍兮>; <首原縣>, 本<買省坪>; <皐西縣{阜西縣}>, 本<秋子兮>; <軍支縣>.
895
가탐의 「고금군국지」에는 "발해국의 남해(南海).압록(鴨淥).부여(扶餘).책성(柵城) 등 4개 부(府)는 모두 고구려의 옛 땅이었으며, 신라의 천정군(泉井郡)으로부터 책성부(柵城府)에 이르기까지 모두 39개의 역이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896
○ <賈耽>《古今郡國志》云: 『<渤海國><南海>․<鴨淥>․<扶餘>․<柵城>四府, 並是<高句麗>舊地也, 自<新羅><泉井郡>至<柵城府>, 凡三十九驛.』
897
삼국사기 제 권 37 (三國史記卷第三十七)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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