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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려간 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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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8
채만식
1
팔려간 몸
 
 
2
동산 마루에서 시뻘건 해가 두렷이 솟아오른다. 들 위로 얕게 덮인 아침 안개가 소리없이 사라지고 누른 볏목들이 일제히 읍을 한다.
 
3
약오른 풀 끝에 맺은 잔이슬들이 분주히 반짝거린다. 꼴을 먹는 소 목에서는 끊이지 않고 요령이 흔들린다.
 
4
쇠고삐를 잡고 앉아 명상에 잠겼던 견우는 걷어올린 맨 다리를
 
5
“딱.”
 
6
때리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쇠파리가 침을 준 것이다.
 
7
“아니 오나?”
 
8
견우는 혼자 중얼거리면 동리 앞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한다.
 
9
××의 비단 짜는 직공으로 뽑히어 늘 새벽차에 떠난다는 직녀를 다만 먼빛으로라도 한번 바라보려고 견우는 첫새벽부터 소를 끌고 나와 꼴을 먹이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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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아니 왔으면 가지 아니하는 것이니까 도리어 좋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래도 속은 초조하였다.
 
11
견우는 허리띠와 염낭을 만지어보았다. 직녀가 밤으로 집안 사람의 눈을 피하여 가며 정성과 정을 다 들이어 만들어 준 추석선물이다. 그리고 필경 이것을 울타리 터진 구멍으로 주고받고 하다가 직녀의 집안 사람에게 들키어 이 애달픈 이별을 하게 되는 것이다.
 
12
직녀의 부모는 그까짓 남의 집에서 소 부리는 놈한테 딸을 준단 말이냐고 그들의 사이를 가르기 위하여 근읍 어느 친척의 집으로 직녀를 보내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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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침 ××에서 비단 짜는 여직공을 모집하러 온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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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찻삯을 대어주고 처음 견습할 동안은 한 달에 먹여주고 십 원, 그리고 일을 익히고 나면 역시 먹여주고 이십 원 이상.
 
15
나이 어린 딸을 둔 가난한 집안에서 너도 나도 하고 열다섯 명이나 응모하였다. 직녀도 그중에 끼게 되었다. 그것은 다 저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부모가 기왕 견우와 멀리하게 하기 위하여 타관으로 보내는 바이면 돈을 벌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억지로 시킨 것이다.
 
16
이 일이 이 허리띠와 염낭을 주고받다가 이렇게 크게 벌어졌느니라 생각하면 원망스럽기도 하거니와 그러는 한편 끔찍이 소중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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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허리띠를 들어 염낭과 한가지로 착착 접어서 손에 쥐고 길 옆에 흘린 새끼로 허리를 매었다.
 
18
“돈을 모아야지.”
 
19
견우는 어젯밤 일을 생각하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20
어젯밤에 견우와 직녀는 밤 이슥한 틈을 타서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밖으로 나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만났다.
 
21
“돈 모아 응.”
 
22
직녀는 떨리는 소리로 조그맣게 속삭였다. 견우는 울타리를 비집고 직녀의 손을 잡았다. 두 손이 바르르 떨었다.
 
23
“오냐, 이를 갈어붙이구 돈을 모아, 오 년만 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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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나두 그새 돈 모께.”
 
25
“응, 너두 모아라. 나두 모구.”
 
26
“ 그러구 일 년에 한 번씩 만나러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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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라…… 칠석날이면 가마, 견우 직녀가 칠석이면 만난다더라.”
 
28
“응, 그러면 내 칠석날이면 꼭 기다리구 있을께.”
 
 
29
해가 길이 넘도록 솟은 뒤에 비로소 동리 앞에서 빽빽하게 사람이 몰려나왔다.
 
30
맨 앞에 양복 입고 홀태바지 입은 키다리가 모집하러 온 사람.
 
31
그 옆에 납작하게 붙어서 오는 것이 면장님 - 면장님은 이번 여직공을 모집하는 데 매우 힘을 많이 썼다.
 
32
그 뒤로 울긋불긋하게 차린 열다섯 명의 처녀와 정거장까지 배웅을 하러 나선 부모네가 따라섰다.
 
33
행렬은 차차 가까워온다. 견우가 기다리고 있는 좁은 길과 정자(丁字)로 정거장 가는 큰 행길이 뻗치어 있다.
 
34
여러 처녀 가운데서 견우는 대번에 직녀를 발견하였다.
 
35
직녀의 얼굴은 자주 사방으로 내둘린다. 견우를 찾으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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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는 노래를 불렀다. -직녀의 어머니도 같이 가는데 좀 뭣하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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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 가네 하더니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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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나를 버리고 정말로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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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무심히 불렀던 육자배기가 정말 자기 신세를 말하게 되니 한층 구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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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소리에 견우를 발견한 직녀는 연해 이편만 바라본다. 만일 가까이서 본다면 그 눈에 눈물이 어리었으리라고 견우는 생각하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직녀의 어머니 눈에는 쌍심지가 돋았을 것이다.
 
41
갈림길까지 와서 행렬은 멈췄다.
 
42
면장님이 일행을 앞에 둘러세우고 무어라고 연설을 한다. 손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이 보인다. 다시 돌아서서 여직공 모집하러 온 키다리와 작별을 한다. 납작 허리를 굽히니까 키다리의 정강이밖에 아니 닿는다.
 
43
다시 행렬은 걷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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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녀는 동구 밖 모롱이를 돌아갈 때까지 한 걸음에 한 번 두 걸음에 한 번 뒤를 돌아본다. 필경 치마꼬리를 잡아올려 눈을 씻는다. 그것을 보니 견우도 갑자기 눈물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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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달픈 이별이라고는 하지만 견우는 처음은 섧지는 아니하였다. 돈을 모아서 같이 살게 될 것이고 또 그동안 일 년에 한 번씩은 만나게 될 터이니까.-
 
46
그러나 직녀가 우는 것을 보니 갑자기 한심하고 처량한 생각이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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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녀의 그림자는 동구 밖으로 사라지고 지난 자취만 비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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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리에서는 아침 연기가 조금만 솟아오른다. 해는 세차게 살을 뻗친다. 소는 아무것도 모르고 여전히 식식거리며 꼴만 먹는다. 딸랑 딸랑 딸랑.
 
 
49
일 년이 지나갔다.
 
50
그동안 견우는 고지식하게 머슴을 살았다. 섣달 그믐날 받은 새경(年給)은 벼를 사서 장리를 내어주었다. 전 같으면 그놈으로 정초의 노름 밑천도 하고 술도 먹고 하였겠지만 온고지 벼 여섯 섬을 사서 장리를 주었다. 그것이 금년 가을에는 아홉 섬이 된다. 그놈에다 금년 새경으로 다시 여섯 섬을 보태어 장리를 주면 명년 가을에 가서는 스물두 섬 반이 된다.
 
51
내후년에 가서는 마흔 섬, 또 내내후년에는 예순 섬은 된다.
 
52
이만하여도 직녀와 혼인할 밑천은 넉넉하다.
 
53
그리고 칠월 칠석이 돌아왔다. 까맣게 기다렸지만 기쁜 기다림이다.
 
54
미리 헐한 삯으로 ××에 가는 짐을 맡아다가 칠석날 새벽 일찍이 쇠구루마에 싣고 길을 떠나 해가 지기 전에 ××에 당도하였다. 직녀가 비단을 짜고 있는 곳-아니 견우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55
짐을 풀고 그곳에서 비단 짜는 공장─방직회사를 물어 겨우겨우 그 문앞에 당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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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공구리(콘크리트)로 어마어마하게 둘러싼 담 안으로 역시 어마어마한 벽돌집들이 높은 연돌 밑으로 그득히 들어섰다.
 
57
멍에에서 소를 풀어놓으니 여전히 헐헐 더운 숨을 내쉰다. 견우의 가슴은 두근거린다.
 
58
문이 확 열려는 있으나 섬뻑 들어서기가 뭣하다.
 
59
문앞에서 어릿어릿하느라니까 바로 문 안에 있는 조그마한 집에서 순사 같은 양복을 입은 사람이
 
60
“웬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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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위아래를 마슬러보며 나선다. 견우는 뜨끔 놀라 머뭇머뭇하다가 겨우 말대답을 한다.
 
62
“저 만나볼 사람이 있어서유.”
 
63
“안돼…… 저 문간에 써붙인 것 못 봤어? 작업중에는 면회사절이야.”
 
64
안된다는 말 밖에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 그대로 뻔히 섰느라니까 그 양복 입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조금 상냥하게 다시 묻는다.
 
65
“누구를 찾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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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서 온 직녀라는 색시를 좀 만나러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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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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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녀란 말에 그 사람-수위-은 무엇을 까막까막 생각하더니 다시 나오던 데로 들어가서 책장을 떠들어보다가 도로 나온다.
 
69
“그런 색시는 없는데……”
 
70
그러고는 혼잣말같이 중얼거리다가 묻는다.
 
71
“칠석날 직녀를 찾아온다……. 댁은 누구요?”
 
72
“한 고향에서 찾어왔어요…… 견우라구 해요.”
 
73
“허허허허”
 
74
수위는 한바탕 너털웃음을 친다.
 
75
“미친 사람이로군…… 이 친구야, 견우가 직녀를 만나려거든 오작교로 가야지 방직회사로 와? 허허허허.”
 
76
견우는 기가 막 혀 말이 나오지 아니한다. 미친 놈 소리를 듣고 놀림감이 된 것이 무렴도 하고 분하기도 하거니와 없단 말을 들으니 눈앞이 아득한 것이다.
 
77
“정말 없어요?”
 
78
“없어…… 없으니까 없다지……”
 
79
“그러면 어데 다른 데 비단 짜는 공장이 또 있나요?”
 
80
“없어. 여기 한 군데뿐이야.”
 
81
견우는 종잡을 수 없이 혼란한 머리로 발길을 돌렸다.
 
82
그는 그동안의 직녀의 소식을 동리에서도 듣지 못하였다. 그러자 지난 유월까지도 ××에서 집으로 편지가 왔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었다.
 
83
그런데 웬일일까? 그 사람이 거짓말을 했을까? 정말 자기를 미친 사람으로 알고……
 
84
구루마를 끌고 나오다가 다시 돌쳐 가서 사정 이야기를 다 하고 물어 보았으나 그 사람의 대답은 여전하다. 그리고 꼬치꼬치 물어보니까 작년 팔월에 ×××에서는 여직공이 열셋밖에 아니 왔다고 한다. 직녀의 모습을 말하면서 물으니까 그런 여직공은 오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다.
 
 
85
밤이 깊었다.
 
86
객주집에 들었던 견우는 화가 나는 김에 술을 실컷 먹고 그의 발걸음은 비틀거리며 유곽으로 향하였다.
 
87
우연히, 아니다. 견우는 시골서 비단 짜는 직공으로 뽑혀갔던 색시가 흔히 속아서 유곽으로 팔려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행여(?) 그렇게나 되지 아니하였으나 싶어 발길을 들여놓아 본 것이다.
 
88
촌에서 듣기에는 유곽이라면 집집마다 문앞에 색시들이 사서서 손님을 끌어들인다는데 그런 것이 하나도 없다.
 
89
또 질탕하게 노느라고 장고소리에 노랫소리가 요란히 들린다는데 그런 것도 없다. 혹시 잘못 왔나 하고 지나가는 사람더러 물으니까 확실히 유곽이라고 한다.
 
90
어느 집을 보나 나무창살과 문에 내린 발을 건너 색시들이 있기는 하나
 
91
하나도 나오지 아니하고 손님도 있어 보이지 아니한다.
 
92
이 집 저 집 창살을 끼웃거리고 지나는데 한 집 앞에 당도하니 창살 안에 색시들이 사오 인이나 모여 앉았다.
 
93
그 속을 굽어보다가 견우는 억 소리를 무심중에 지르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94
“견우!”
 
95
“직녀!”
 
96
둘이서 이렇게 한마디씩 외치고는 말이 없이 서로 바라본다.
 
97
한참만에 직녀는 문을 박차고 뛰어나와 견우의 목에 매어달린다. 눈물이 소낙비같이 쏟아진다.
 
98
“웬일이야?”
 
99
“어찌 알구 찾어왔어?”
 
100
견우는 대강 이야기를 하였다. 직녀는 견우를 끌고 자기가 거처하는 방으로 들어가서 막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까 색시들이 사오 인이나 우하고 몰려왔다.
 
101
“이년아! 너 이럴 테냐?”
 
102
그중에 한 색시가 입술을 바르르 떨며 직녀를 얼러댄다.
 
103
직녀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다. 견우는 무슨 영문인지를 몰랐다.
 
104
“정 이럴 테냐?”
 
105
아까 그 색시는 다시 따진다.
 
106
“그년을 끌어내서 뜯어죽여라.”
 
107
이렇게 앞뒤에서 딴 색시가 응원을 한다.
 
108
“그러지 말구 돌려보내라. 누군지 아마 전에 정든 사람인가 분데 그렇다구 우리 일을 그것 때문에 깨트려서 쓰니?”
 
109
나이 좀 들어보이는 색시가 이렇게 어루만지듯이 타이른다.
 
110
“그래라. 이 담에 만나기로 허구 돌려보내라…… 우리가 이번에 포주놈들 헌테 지는 날이면 아주 영영 피어나지 못한다.”
 
111
역시 또 한 색시가 타이른다.
 
112
직녀는 눈물 어린 눈을 들어 동무들을 번갈아 바라본다.
 
113
“그럼 보내리다. 그렇지만 한 시간만 이야기허구 보낼 테니 그것이나 허락해 주시오.”
 
114
“한 시간?”
 
115
맨처음 설레던 색시가 고개를 내두른다.
 
116
“염려 말어요. 못 미덥거든 여기 다같이 앉어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시오.”
 
117
색시들은 서로 돌아보다가 척척 들어앉는다.
 
118
직녀는 간단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119
처음 그 모집하러 왔던 키다리에게 강제로 몸을 뺏기던 것. 그 뒤에 구경도 못한 몸값 오백 원에 이곳으로 팔려온 것. 그리고 포주가 너무 야속히 굴어서 이 유곽 전체가 일심이 되어 밥도 아니 먹고 손님도 맞지 아니하고 겨룬다는 것. 맨 끝 이야기는 무슨 뜻인지 모르나 만났다가 이렇게 헤어지는 것만이 견우에게는 섭섭하였다.
 
120
유곽 문앞에서-
 
121
직녀는 울며 견우의 목에 다시 매어달렸다.
 
122
“내년 이때 또 와요.”
 
123
“오냐, 오마.”
 
124
견우도 굵다란 눈물이 쏟아진다.
 
125
“우리 동리 가서 이런 이야기 말어요.”
 
126
“응, 아니 허께…… 내년에는 돈 가지구 와서 네 몸값 치뤄 주마.”
 
127
“돈이 어데 그렇게 있수…… 나는 여기서 한평생 살 테야.”
 
128
“웨? 걱정 마라…… 내년에 못 되면 내후년, 내후년에 못되면 내내후년에라두 꼭 해가지구 꼭 오마.”
 
129
“어쨌든지 내년 오늘 잊지 말구 와요.”
 
130
“오냐, 꼭 오마.”
 
131
“꼭.”
 
132
“응, 꼭.”
【원문】팔려간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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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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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4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