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유모 제도(?)에 대한 아무런 비판도 없이 나는 유모를 두었다. 아내한테 쪼들리는 것도 쪼들리는 것이려니와 첫째 나 자신이 아이한테 볶여서 못살 지경이었다.
4
어떤 편이냐면 아내는 사대사상(事大思想)의 소유자였다. 아내 자신은 자기는 그렇게 크게 취급하지도 않는 것을 내가 되게 크게 벌여놔서 자기가 사대주의자가 되는 것처럼 푸우푸우 하지마는 입덧이 났을 때부터 벌써 산파 걱정을 하는 것이라든가, 아직 피가 엉기지도 않았을 때건만 아이가 논다고 수선을 피우는 것이라든가, 당신 친구 부인에 혹 산파가 있는지 알아보라고 아침마다 한마디씩 주장질을 하는 것이라든가, 그것을 나이 어린 탓으로 돌리면 못 돌릴 것도 없기는 하지마는 어쨌든 사대주의자라는 것만은 면할 도리가 없었다. 물론 나이 어린 탓도 있기는 했다. 그런데다가 어머니 아버지가 등잔덩이처럼 살아 있으면서도 군더더기 식구가 꿀벌처럼 엉겨들어서 버젓한 외딸이면서도 아기자기한 부모의 정을 모르고 자라난 아내였고, 나 자신이 또한 이렇다는 이유는 없으면서도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눈을 못 맞추고 십여 년을 제멋대로 굴러다닌 사람이라 아내라기보다는 친구의 누이에게 대하는 것 같은 애정으로 아내에게 대해온 관계로 아내는 나를 어려워하는 대신 응석을 한다.
5
그러한 아내인지라 유모 걱정을 하는 것은 예사로 들어왔다. 그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번연히 제 달이 찼고 아내의 배가 빵그랗게 일어난 것을 내 눈으로 보면서도 산파 때문에 재수를 하는 아내를 그저 픽픽 웃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온 방안을 매대기를 치면서 복통을 호소할 때서야 부랴부랴 산파 주선을 하다가 뒤늦고 말았다. 그래서 생전 해보지도 못한 해산 시중을 식모하고 치른 쓴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젖이 안 난다고 울상을 해도 나는 들을 때뿐이지, 밖에만 나가면 잊어버리곤 했다.
6
“글쎄, 어쩌자구 나만 볶이게 한대요. 당신은 아침에 휙 나가면 밤에나 들어오시니까 아주 이건…”
8
“글쎄 여보, 유모를 어디서 파는 줄 아오. 어떻게 갑작스레 입에 맞는 떡을 구하우. 박순영이가 아이 낳을 줄 알고 젖통을 메고 다닌답디까.”
9
이렇게 웃음엣소리를 하면 아내는 냄비 속의 콩알처럼 튀다가도,
10
“아이 내 참, 당신같이 맘이 편해서야…”
12
그러고 나면 그것이 또 이럭저럭 며칠이 된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 정말 아내의 젖통은 들어붙고 말았다. 젖먹이는 젖꼭지를 빨다가도 신산찮으면 바르르 떨고 재수를 한다. 더욱이 그날 밤은 양유 꼭지를 물려도 괴벽만 피운다. 아내는 어르다 젖꼭지로 달래다 추썩이다 별짓을 다해도 바늘 방석에 앉은 아이처럼 잡는 소리를 한다. 그러니까 참았던 분이 복받치는지 젖먹이를 내게다 집어던지듯 내앙긴다.
15
“그럼 뭐야요! 당신이 늘 그러잖었수. 머슴앨 낳으면 당신 거구 계집앨 낳으면 내 거라구!”
16
그 말끝에는 픽 웃으리라고 생각했던 나의 기대는 어그러졌다. 아내는 팩 돌아앉아서 홀짝홀짝 울더니 무슨 큰 불행이나 되는 것처럼 점점 울음소리가 높아진다.
17
“아무리 남자라지만 어쩌면 그렇게두 못본 체한대요!”
18
아내는 이런 넋두리까지 하며 맘놓고 운다.
19
“인저 그만큼 해두구려. 어디 좀 알아봅시다.”
20
“다 그만둬요! 그까짓 자식 죽거나 말거나!”
21
그날 밤은 둘이 다 뜬눈으로 새웠다. 추썩이면 챙알챙알하다가도 심통이 나면 자지러진다. 나는 혼곤히 잠이 들다가도 깨고 깨고 했다.
23
참다못해서 중얼거리니까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24
“유모 구하긴 싫은 사람이 애 우는 소리는 왜 싫다시우?”
25
하고 기어이 한술 뜬다. 사실 한두 번 내동댕이쳐서 죽지만 않는다면 그렇게라도 해서 화풀이를 하고 싶을 만큼 아이는 보채었다.
26
이럴 즈음이라 유모가 있다는 말을 듣자 나는 귀가 버언했다. 그날 밤부터 오기로 작정이 된 뒤에야 외손녀 보러 온다고 삼칠일이 나자마자 뛰어올라온 장모가 궁합을 봐야 하느니 손이 있는 날 여편네를 들일 수야 있겠냐느니 하고 푸념을 하는 것도 못 들은 체했다. 아내도 중학은 마친 터라 궁합을 본다고 서둘지는 않으나 유모의 젖을 분석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꽤 까다로운 주문을 한다. 그러나 이것 저것 다 따질 겨를이 없을 만큼 나는 며칠내 아이한테 달달 볶이어서 잠을 못 잤다.
27
“뭘 그런 걸 다 따지오. 그 사람도 사람일 게니까 사람젖이 나겠지, 사람 젖꼭지에서 개젖이야 나겠소.”
28
“허지만 그 집 혈통도 안 보고 어떻게 젖을 얻어먹인대요. 무슨 병이 있는지 누가 안다우?”
29
“글쎄, 괜찮대두 그러거든! 소개하는 사람도 점잖은 이고 K의 어린것두 이 사람 젖으로 살아났다는데…”
30
이렇게 꾸며대기도 했다. 실상 그런 걱정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지마는 그야말로 만들어 파는 물건도 아닌 유모를 또 어디 가 얻어올 길이 망연했다. 그래서 끝끝내 뻑뻑 우겨대는 것을,
31
“젖두 없는 것이 애는 뭣하러 낳는 게야!”
32
하고 서슬이 퍼래서 윽박질러놓고, 그래도 나와서는 유모를 소개해준 같이 잡지일을 보는 S를 도렴동으로 찾아갔다.
33
우리는 문학 잡지 발간에 관한 의논을 한 후에 온 뜻을 이야기했다. S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는 “글쎄”하더니 안으로 들어간다. S도 자기 부인이 소개한 것이라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한동안 있더니 자기 아내도 유모의 근본에 대해서는 백지라고 한다.
34
“자네가 하두 앨 쓰기에 집사람더러 좀 수소문을 해보라고 했더니 저 집에 있는 식모가 소갤 해서 지금 그 사람을 말하더라네. 저 집에 갔다 오면 웬만 것이야 알겠지마는 혈통이 어떤지 병이 있는지 그것까지야 알 수 있겠는가.”
35
그도 그럴 것이었다. 그래서 모자를 들고 일어서려니까 S는 기를 쓰고 붙들었다.
36
“아니야, 어떻게 되었든 유모는 데려다놓고 봐야잖겠나.”
37
“글쎄, 앉게나. 유모 집도 화동이라니까 화동서 계동이야 못 찾아가겠는가 뭘 ⎯ 그러구 지금 저 집에 가서 식모한테 물어보고 오겠다니까 그동안에 우리 이야기나 좀 허세그려.”
39
“바루 요긴데 뭘. 볼일이 없어두 하루에 몇 번씩 가는걸.”
40
S 부인의 보고도 우리의 예측대로였다. 고향은 밀양이라는 것과 남의 소작으로 겨우 입에 풀칠을 해가다가 삼남 수재에 논이 개천이 돼버려서 서울로 올라왔다. 나이는 삼십이나 시골 사람 요량해서는 만혼인데다가 아들 하나 있던 것을 물에 띄우고 젖먹이가 하나 있었으나 그것마저 잃어버렸다. 이것이 S 부인의 보고였다.
41
S와 저녁을 같이 하고 집에 돌아온 때는 유모도 벌써 와 있었다.
42
언뜻 보고 그만하면 싶었다. 나이가 좀 앳되어 보이기는 했으나 기골이 장대한 것이 얼굴도 투덕투덕했다. 얼굴에 화기가 안 도는 것은 고생에 찌들려 그런 것이리라 했다. 깐깐스러운 장모의 눈에도 거슬려 보이지는 않았던지,
43
“사람두 걱실걱실한 게 괜찮구먼서두 아이가 죽었다니 께름칙하잖은가?”
44
“장모님 마음에 든 것을 보면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훌륭한가 봅니다. 그러구 어린 것이 죽었다는 것도 홍역을 하다가 죽었다니까 뭬 께름칙할 게 있어요. 이런 말은 못 할 소리지만 딸린 아이가 없는 편이 되려 낫지요.”
45
그래도 그악스러운 장모는 점장이를 찾아가서 궁합이며 손이며 다 물어보고야 결말을 지었다.
46
“어떡헐까요. 유모 말은 제집도 그리 멀지 않고 하니 하루에 세네 번씩 집에서 다녔으면 좋겠다구 그러는데?”
47
이튿날 아침, 자리에 누운 채 아침 담배를 피우고 있으려니까 아내가 들어와서 이런 의논을 한다.
49
“십오원을 달라는데 쥐꼬리만한 월급에서 십오원을 떼내고야 우린 뭘 먹구 살우?”
51
“봄엔 그렇게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아도 여간내기가 아닙디다. 뭐 어디선 식모 월급이 얼마구 어디선 유모 월급이 얼만데 하며 주워섬기는데 아주 문서가 환합디다요.”
52
어쨌든 월급도 작정이 되었다. 물론 제집에서 다닌다는 데도 이의가 없었다. 아니 그것은 되레 이쪽에서 청할 일이었다. 아내도 참〔間[간]〕젖은 되는 터요 집에다 둔다면 아무리 안 먹는대도 칠팔원은 먹을 거고 방 하나는 따로 치워주어야 할 거고 보태줄 것은 없더라도 주제가 사나우면 그것도 못본 체할 수 없을 것이고 보니 하루에 세네번씩 제 시간만 맞추어준다면 더 생각할 나위도 없었다. 나이 젊은 것도 꾸지지한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53
“그야 좋잖겠수. 십오원을 준대도 우리야 십오원밖에 안 되는 폭인데. 집에 둔다면 오원어치만 먹겠소.”
55
“그럼 됐지 뭘 그라우. 죽그릇에 넘어지는 셈치구 생색이나 내구려. 허구 그뿐인가 또.”
57
“젊은 유모한테 애 잃을까봐 맘 켕기지도 않을 거고.”
60
고심하던 유모 사건의 단락을 짓자 우리 부부는 이런 웃음엣소리까지 했다.
62
유모는 아내의 눈에 아주 쏙 든 모양이었다. 아내뿐만 아니라 그 꽤 까탈스럽고 그악스러운 장모가 이러니저러니 말이 없다.
63
“생김생김두 그렇지마는 아주 사람이 털스러운 게 웃음엣소리도 곧잘 하데나그려.”하고 장모가 회사에서 돌아온 나를 붙들고 유모를 추켜세울라치면 아내는 제가 칭찬이나 받는 듯이 맞장구를 친다.
64
“참 그래요. 아까두 와서 시골서 살던 이야기를 하는데 이야기두 구수하게 잘합디다.”
67
모녀가 주거니받거니 유모 칭찬 하는 소리를 듣고 나는 마음이 놓였다. 그러면서도 어떤 편이냐면 변덕스러운 장모요 사대주의자인 아내의 일이라 언제 또 무슨 트집을 잡을지 모른다고 그런 걱정까지 했다.
68
젖도 유아에게 맞는 모양이었다. 먹지를 못해서 비영비영하던 것이 며칠 새로 두 뺨에 살이 토실토실하게 올랐다. 울음소리도 훨씬 영악스러워졌다. 달소수나 되더니 인제는 정말 사람 같았다. 윤기도 없이 원숭이 볼기짝처럼 새빨갛던 얼굴도 점점 붉은 빛이 가시고 제 살빛이 돌아온다. 모자라서 찢어논 것처럼 빡빡해뵈던 눈꺼풀도 여유가 생기고 눈알에도 제법 광채가 났다.
69
“억꿍 억꿍, 아빠가 왔네. 얘 성순아, 아빠보구 과자 좀 주우 그래!”
70
나는 장모가 어르는 것만 우두커니 굽어보고 섰었다. 성순이는 영글지 못한 동자건만 잽싸게 굴리고 있다. 이것이 내 자식이다, 이런 생각이 생전 처음 나의 머리에 떠올랐다. 저것이 나의 피를 받은 것이다, 그것은 결코 기쁘지 않은 감정은 아니었다. 적어도 불쾌한 일은 아니었다.
71
그 감정은 내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기쁜 것도 같았다. 형언은 할 수 없으나 푸근한 것도 같았다. 아내가 있으면서도 어딘지 한 귀퉁이가 빈 것 같더니 손발을 바둥거리고 있는 어린것을 내려다보고 있는 동안에 그 비었던 구석이 채워진 것처럼 든직도 했다.
72
하여튼 그것은 야릇한 감정이었다. 묵처럼 는실는실하던 살이 굳어지고 윤이 나고 붉은 기가 걷히어 제법 사람 형태를 쓰자 그 야릇한 감정은 차츰차츰 구체화해가고 여물어갔다. 암만해도 그 감정은 자식에 대한 애정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 아니 그것은 확실히 어버이의 애정이었다.
73
이때부터 나는 나의 자식 ― 딸년에 관심하게 되었다. 따라서 유모에게도 머리를 쓰게 된 것이었다.
74
나는 뒤늦게 유모의 피검사도 했다. 젖을 분석도 해보았다. 아무런 이상이 없는 건강체라는 말을 의사에게서 들을 때 한숨이 휘 내쉬어졌다.
76
딸년에게 대한 관심이 지나쳐서 이런 주책없는 인사를 했다가 아내한테 핀잔을 맞기도 했다.
78
어떤 날 나는 본정에 갔다가 장난감 가게 앞에 섰었다. 비행기니 기차니 목마니 하는 것을 이것저것 구경하다 말고,
79
‘그것이 언제나 저런 목마를 타게 되나.’
80
이런 생각을 하며 셀룰로이드로 만든 손잡이를 한 개 사들고 돌아왔다.
82
마침 방안에 아무도 없어서 이렇게 딸년을 어르고 있으려니까 앞치마 폭에다 손의 물기를 닦으며 아내가 들어왔다.
83
“여보우, 그것두 인간이라구 이렇게 암팡지게 쥐구 있구려.”
84
아내는 갑자기 내가 어린것한테 긴케 구는 것이 우스웠던지,
87
그러나 딸년에게 대한 나의 관심은 이 정도에서 멈추지 않았다. 관심은 나도 모르게 도를 넘어서 잔소리로 변했다.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았느니 베개를 삐뚜르게 받쳐 주어서 머리가 한쪽으로 일그러지겠다느니, 어른들이 아이 머리맡에 앉아서 아이가 눈을 치뜨게 되느니, 나의 참견할 영역이 아닌 데까지 아는 체를 하자 아내는 말끝마다 톡톡 쏘아붙였다. 물론 수다한 경우도 있었지마는 번연히 내 말이 옳건만도 되레 나를 윽박지르는 때도 있는 것 같았다.
88
“글쎄, 당신더러 그런 일 참견하시랬어요! 어련히 알아서 할까봐. 이건 오줌똥 받는 데까지 참견이구려!”
89
“아따, 이건 소리만 삑삑 지를 줄 알았지 자기 잘못한 생각은 도무지 않나.”
90
“글쎄, 제발 그러지 좀 말아요. 우리끼리야 괜찮지만 유모가 듣는다면 고깝게 생각하잖겠수. 자긴 올 때마다 기저귀까지 빨아주고 온 정성을 걔한테 다 바치는데 그런 소리 듣는다면 오죽 섭섭다구 하겠수.”
91
생각하면 그도 그럴듯한 일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유아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으면서 웬일인지 여자들 손에만 아이가 맡겨지는 데 불안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아내에게서 아이에 관해서는 비용을 지불하는 이외에 절대 간섭을 허락지 않는다는 명령을 받고 말았다.
92
“집에서 요샌 일거리가 없어서 야단예요. 어떻게 수소문해보셔서 일자리 한 군데 마련해주십시오.”
93
자기 집 이야기는 털끝만큼도 하지 않는다고 아내가 늘 이상하게 생각해오는 눈치더니 하루는 유모가 풀쑥 이런 말을 꺼냈다. 아내는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더니,
96
원래 사람을 어디 천할 만한 주제도 못 되지마는 지게꾼을 소개할 만한 자리가 없으리라는 것을 아내 자신 잘 알고 있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아 필시 면치레로 한 말이겠거니 싶어 나는 잠자코만 있었다. 그런 터라 나는 그날로 잊어버리고 말았다. 유모도 그후에는 다시 말이 없었다.
97
그런 지 며칠 지난 어떤 날 나는 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까지는 순 학술 잡지를 편집해오던 「논단」을 갑자기 대중 잡지로 고쳐보자는 의견이 돈 것이다. 나는 물론 반대였다. 그러나 「논단」의 경영자인 K가 그것을 고집하는 이상 중뿔나게 나만이 나설 것도 없고, 또 그런대야 별 효과도 없을 것 같아서 굿 보고 떡이나 얻어먹는다고 반대당인 S와 함께 애꿎은 선술집만 뒤진 것이었다.
98
“그 노릇이야 어떻게 하겠나. 월급 사십원두 좋지마는…”
100
물론 「논단」역시 합법 출판물인 터고 보니 그것을 간행함으로 해서 그의 양심이 자위(自慰)를 받아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급한 독자의 취미에 영합시키기 위해서만 만들어지는 잡지를 편집한다는 것은 그의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것은 계급적 양심이라고 할 것까지도 못 되는 아주 평범한 도의심(道義心)의 발작이었다.
101
S의 심경에 나도 물론 동감이었다. 그리고 응당 그의 태도를 같이한다는 약속을 해야만 옳을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말을 못했다.
102
동의를 표하고 태도를 작정하려고 한 그 순간 나의 머리에는 어린것의 토실토실한 뺨이 떠올랐다. 술 덤벙 물 덤벙 살아오던 나에게 ‘처자’라는 두 글자가 뚜렷이 재인식되었던 것이었다.
103
그것은 어떤 편으로 해석하거나 내게는 괴로운 일이었다. 두드러지게 내세울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는 하면서도 계급적으로 보아 추호만큼도 대중에게 기여함이 없는, 아니 되레 악영향을 주는 대중 취미 잡지에 이름을 내걸기가 괴롭다고 처자를 거리에 내동댕이치는 것도 괴로웠지마는 그렇다고 처자에 얽매여서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꾸벅꾸벅 돈 사십원에 얽매인다는 것도 괴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아내에게 할 도리도 없었다. 입으로는 어쩌니어쩌니 야불야불 지껄이면서도 몇 해 배운 아라비아 숫자의 덕택으로 타산에는 빠른 아내다. 양심과 기근과를 바꿀 아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105
내가 늦게 들어올 때는 으레껏 그랬지마는 아내의 심기는 또 좋지 못했다. 그래도 전에는 일찍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 무언중에 그러면서도 범할 수 없는 법률처럼 되어 있는 ‘가정생활’인지라 피치 못할 일이 있어서 늦었다더라도 떳떳하게 뱃심을 부리지 못하고 눈치를 보았지마는
107
하고 툭 쏘아붙이는데도 귀 거슬리게 들을 여유도 없었을 만큼 나는 내 생각에만 골몰했었다.
109
아주 안 볼 사람처럼 쌀쌀하게 굴더니 아내는 이렇게 말을 붙인다.
110
‘기계가 아닌 이상 그럴 수도 있지 뭘!’
111
하고 생각은 하면서도 나는 잠자코 있었다.
112
“그러구 젖 나는 품도 전만 못하던데, 어디 다른 데 또 젖을 빨리러 다니는 게나 아닐까.”
113
아마 모녀가 앉아서 이때껏 주고받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나는 탄하지 않았다. 얼굴 생김으로만 한대도 그네들이 말하듯이 그렇게 야마리까진 짓은 할 것 같지도 않았지마는 머리가 어수선하여 이러구저러구 참견하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쓰다 달다 말도 없이 그대로 건넌방으로 건너가서 쓰러졌다.
114
취미 잡지 문제는 며칠을 두고 계속이 됐다. 사장 되는 사람은 실상 문화사업을 위한다느니보다도 그렇게 상서롭지 못한 방법으로 모은 돈이라 사람들의 입을 막기 위해서 시작한 터고 보니 잡지를 발간하고 수지도 맞고 한다면 더 볼 나위 없을 것이었다. 같이 일보는 사람들의 공기도 반수 이상이 그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았다. 다만 S만이 사의를 표하고 있을 뿐이다.
116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생각에 몰두했다.
117
이렇게 머릿속이 어수선한 동안에도 아내는 몇 번이나 나의 귓전을 울렸다. 갑자기 전보를 받고 내려가면서 장모 되는 이도 유모를 갈아내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마는, 이것도 역시 아내의 사대주의에서 나온 의논일 게라쯤 생각하고 한 귀로 듣고는 한 귀로 흘려버리고 했다.
119
늦더위도 가시고 바람도 제법 산들산들해졌다. 마침 그날은 아침결에 소나기가 한줄기 지나가고는 여우볕처럼 햇살이 퍼졌다. 나는 며칠내로 무겁던 몸이 가뿐해져서 사로 나가서 급한 시간을 다투는 것만 대강대강 정리를 해 놓고 S, K, M,이렇게 작당을 해서 몰려나오다가 아내와 딱 마주쳤다.
121
한 손 접는대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23
“유모두 사람이니 혹 그럴 때도 있잖겠소. 난 또 무슨 큰일이나 났다구.”
124
“글쎄, 그러시지 말구 좀 가보셔요. 암만해두 딴 데 또 가는 데가 있는 것 같아요.”
125
길게 이야기해야 아내의 고집을 꺾자면 왁자지껄해야만 되겠기에 그러마고 아내를 돌려보내고 절에 가서 놀다가 다 저녁때에야 들어갔다.
126
아내가 아는 체를 하리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129
나는 젖먹이 머리맡에 놓인 양유통을 보았다.
134
“남편이 앓아서 몸을 못 빼쳤다고 그러더군요.”
135
아무리 남편이 앓기로서니 엎드러지면 코 닿을 데니 잠깐 다녀감직한 노릇이라고는 생각했지마는 그렇잖아도 성이 머리끝까지 난 아내를 북돋아줄 때도 아니다. 나는 또 한번 참았다.
137
“그래, 바깥어른이 편찮다더니 좀 어떠시오.”
138
하고 물으려니까 유모는 잠깐 머뭇거리는 눈치더니,
144
몸살이라면 남의 아이를 맡은 사람이니 잠깐 다녀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145
“어려워 말구 바른대로 얘길 하구려. 우리 친구에 영한 의사도 있고 하니 좀 가서 보이기라도 하게.”
147
유모는 몸살만 자꾸 내세우더니만 자기도 난처하던지,
148
“홧병이야요, 홧병! 벌이는 없죠. 양식은 떨어지죠. 성미는 급하죠 ―”
149
“단 두 식구라면야 그것 가지면 그럭저럭 조석은 끓여먹잖겠수? 그야 십오원 가지구 뭣 떼구 뭣 떼구 하면 어렵기야 하겠지만 살림이란 한도가 있는 게요.”
150
아내는 무슨 단서나 얻은 듯이 이렇게 꼬집어 말을 한다.
151
“아이 참, 생각해보셔요. 말이 십오원이라지, 거기서 삽원씩 집세 떼지요. 쌀값이죠. 나무값이죠. 약값이죠… 옷 해입어야 살죠!”
153
아내는 얀정없이 말문을 콕 막는다. 유모는 펄쩍뛰듯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변명하고는 젖을 먹이고 일어섰다.
157
그후로도 아내는 날마다 앉으면 유모 말을 했다. 처음에는 귀담아듣지도 않았지마는 하도 여러 번 듣고 나니 사실 요새는 유모가 몸을 좀 사리는 것 같이도 보였다. 어린것도 전에는 제 어미 젖꼭지를 물고는 챙알대다가도 유모가 젖통을 들이대면 끽소리 없이 벌컥벌컥 들이켜던 것이 며칠내로는 몹시 시답잖아하는 모양이었다. 어떤 때는 신푸녕스러우면 젖꼭질 문 채 잡는 소리를 하고 앙탈을 하는 때도 있었다.
158
“아무래도 딴 데 젖을 대이는 게야요! 그렇게 흔턴 젖이 요새 갑자기 그렇게 말라 붙을 리가 있어요.”
160
그제야 나도 생각키었다. 혹 끼니때에 와서 밥먹는 것을 보면 거량이라기보다도 허겁지겁 퍼넣는다. 그것은 맛나게 먹는 것이 아니라 시장해서 먹는 것 같았다. 먹던 밥을 주어도 김치 국물을 들이부어 무말랭이를 넣고 썩썩 비벼서는 아귀같이 퍼넣는다. 그것으로 보아 식량을 못 채운다는 것은 짐작되었다. 물론 십오원에서 삼원 집세를 떼고, 장정 두 식구가 먹는데 여유가 있을 턱이야 없다지마는 그렇게까지 식량이 못 된다는 것은 그의 자취 시대를 요량해본대도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약질이라 약첩이나 달이게 된다면 돈십원 가지고 풍성할 게 어디 있으랴, 이렇게 돌려 생각도 해보았다. 그리고 또 모체가 그렇게 부실하게 먹는다면 젖이 안 나는 것도 의당하리라 생각하자 그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다 싶었다.
161
그러나 내게는 더 여유가 없었다. 아니 여유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현재도 십오원씩을 떼내고는 담배 한 갑 맘놓고 사 피우지를 못하는 터다. 여기저기 일이원씩 어떤 때는 삼사십전씩 거미줄 얽히듯 빚을 져오는 터였다. 그렇다고 아내의 말대로 유모를 갈아들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고만 것이라도 수입이 있는데 그럴 제야 그나마 똑 끊어진다면 그도 딱하리라 싶었다. 유모를 도와준다는 동기에서 유모를 둔 것도 아니요, 악의라는 의식까지는 없다 하더라도 자기 자식 먹이자고 남의 귀한 젖 ― 아니 그것은 피였다 ―을 돈 주고 산다는 것이 그렇게 떳떳스러운 일은 못 될 것이었다. 더욱이 병든 남편을 안고 양식거리가 없어서 우리의 눈을 속이어 다른 아이에게 젖을 빨리러 다닌다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만을 나무랄 용기는 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이 되레 악착한 것만 같이 생각되었다. 어떤 날 동료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그 사람은 “이크, 또 인도주의자가 하나 더 생겼군.”하는 조롱을 받은 일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쩐지 내 자식만을 위해서 지금의 그들 부부에게는 유일한 생명선인 젖꼭지를 봉쇄할 용기는 안 났다. 그것은 동료들의 말마따나 인도주의도 아니었다. 로맨티즘도 아니었다. 「논단」사의 동요는 달포가 되도록 잦을 줄을 몰랐다. 따라서 나의 우울도 개이지를 못했다.
162
그날도 나는 S의 집에서 두 친구와 따로이 재단을 세워서 좀더 떳떳이 낯을 들고 해나갈 수 있을 만한 잡지를 발간키로 의논을 하고 S가 다소 희망도 없지 않은 외삼촌인 P씨에게 교섭을 하기로 하고 아홉시에 헤어졌다.
163
나는 거기서 다시 팔판동 M에게 간단한 보고와 부탁을 겸해서 하고 M도 출동을 시키었다. M의 집을 나온 때는 열시가 훨씬 지났었다.
164
팔판동에서 내려오자면 화동으로 빠지는 좁다란 골목 모퉁이에 담배 꼬바리 속같이 꾸민 구멍가게가 있다. 그 구멍가게에서 지게꾼 하나가 어린것에게 무엇인지 사주고 있다.
165
물론 이 평범한 장면이 나의 눈을 끈 것은 아니었다. 무심코 내려오는데 나의 눈에 비쳤을 따름이다.
166
그러나 나는 내려오다 말고 발이 딱 붙어버렸다. 바로 지게꾼 옆에는 아이를 해서 들쳐업은 젊은 부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67
그 부인은 희미한 불빛에서나마 유모인 것이 분명했다. 그가 유모라는 것이 분명하다면 그 옆에 선 지게꾼이 그의 남편일 것도 분명할 것이고, 또 그 지게꾼의 팔에 매달린 아이와 등에 업힌 어린 젖먹이가 지게꾼과 유모와의 사이에서 난 어린것들이라고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설사 유모 자신의 어린것은 아니라 친다더라도 유모가 등에다 걸머지고 다닐 제야 유모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아이라고는 생각키 어려운 일이었다.
168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한참이나 동정을 살피었다.
169
지게꾼은 손을 잡은 어린것에게 무엇인지를 사주는 모양이다. 어린것은 이것저것 사달라고 조르는지 신이 나서 손가락질을 한다. 지게꾼은 한참이나 서서 아이에게 시달리더니 지게를 벗어젖히고 구멍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유모가 넌지시 넘겨다보고 무엇이라는지 말을 하는 모양이다. 내게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170
“아무것이나 하나 사 들리잖구 뭘 이것저것 만지구 있수.”
171
― 상상컨대 이런 종류의 말을 하는 것도 같았다.
172
그들은 얼마동안 주거니받거니 하더니 도로 지게를 지고 개천을 건너선다. 유모의 손에는 배추 한 단과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큼지막한 신문 봉지가 들려 있었다. 콩나물인가도 싶다.
173
나는 생각없이 그들의 뒤를 밟아 한참이나 따라갔다. 따라가다가 정신이 돈 때는 어디로 가는 건지 그것이 궁금해졌다.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사는가도 알고 싶었다.
174
그들은 천변을 끼고 자꾸 올라갔다. 저희들끼리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나 “그래서”니 “아주”니 하는 말 대문이 가끔 흐를 뿐 무슨 이야기인지는 짐작할 도리가 없었다.
175
삼청동 막바지에서 그들은 비탈을 타고 산기슭으로 올라간다. 나는 허리끈을 잡힌 사람처럼 무한정 따라갔다.
176
산등성이에 올라서니 거기는 난가게처럼 거적과 양철 조각으로만 지은 집이 사오십 채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말로만 듣던 빈민굴이 여기던가 했다. 그것은 하릴없이 석유궤를 세워논 것 같은, 심하게 말한다면 돼지울 그대로였다. 이십 세기 문명의 자랑이라는 전기가 여기까지 올 리도 만무했지마는 석유불이나마 안 켠 집이 많았다. 불은 켰대도 불빛이 새어나올 창도 없는 집도 그중에는 있는 것 같았다. 유모의 일행이 들어간 곳도 이 집 중의 하나였다.
177
나쁜 짓이라고는 생각하면서도 그대로 내려오기는 싫었다. 그래서 나는 발이 가는대로 따라갔다. 그것은 이 부락의 맨 끝이었다. 희미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마는 이 부락에서도 제일 날림으로 꾸민 헛간이었다. 벽은 모두가 가마니짝이었다.
178
한동안 불을 켜고 뭣을 치우고 하느라고 법석을 피우더니 어린애 우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나는 또 한번 놀랐다. 그것은 아까 등에 매달렸던 어린것 요량해서는 갓난애 울음소리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확실히 나의 딸년 또래의 젖먹이 울음소리였다.
179
‘하나도 없다는 것이 자그만치 셋씩!’
180
나는 속에서 푹 치밀어올라 오는 것을 꿀꺽 참았다. 그 푼더분하고 순박해 보이는 얼굴 ― 어디에 이렇게 앙큼스러운 일면이 있었던가 싶어 나는 어둠속에서 유모의 얼굴을 그려보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온후한 맛이 도는 그 눈언저리, 더없이 후해 보이는 코, 덤덤하게 다문 입, 오줌동이나 이였으면 격에 맞음직한 그 얼굴 어느 구석에 그렇게 앙큼스러운 일면이 있을까. 유모는 말소리까지 그랬다. 덤덤한 게 어딘지 어리석어 보였다. 웃음소리만 해도 그랬다. 앙칼진 데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듯 얼굴로나 체격으로나 음성으로나 여유가 있는 유모였다.
182
사실을 눈앞에 놓고는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183
나는 그제서야 유모를 다시 한번 뜯어보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눈갓이 알로 축 처진 것이 얼굴답지 않게 요염한 인상을 주는 것같이도 생각키었다.
185
엉겁결에 갓난것이 잡는 소리를 한다. 뭬라고 어르는 소리가 나더니,
186
“이런 놈의 팔자가 있담! 제 자식은 젖이 적어 안달을 하는데 남의 자식한테 젖을 먹이러 다닌담. 세상두 고르지도 못하지!”
188
“이 사람아, 빈말이라두 그런 소릴랑 말게!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 아이 아니면 다섯 식구가 고태꼴 갈 판여!”
190
“암만해두 얘가 죽을라나 보우, 어째서 못 돌리구 이렇게 감기가 심할까!”
191
“뭣보다두 기침을 놔야 해! 갓난애 기침 소리라구 양철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걸 그랴!”
192
말거취가 젖먹이가 몹시 앓는 모양이다. 과연 조금 있더니 깔딱 넘어가게 기침을 한다. 요새 며칠 제때를 못 맞춘 것도 그 까닭이었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아내의 불평에도 일리는 있었구나 했다.
194
“그 망할 놈에 계집앤 처먹기두 해! 띵띵 불구어가지고 가두 그저 홀쪽하게 빨아대니!”
195
나는 질겁을 하듯 그 자리를 떠났다. 쫓기는 사람처럼 부리나케 비탈을 내려와서 그 부락이 보이지 않는 데까지 와서야 숨을 내쉬었다. 까닭없이 괴로웠다. 거기 있기만 하면 점점 무서운 말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197
드윽 성냥을 그어서 담배를 붙여물고 나는 한참이나 산등성이를 올려다보았다. 괘씸한 요량해서는 연놈을 한번 휘둘러봤으면 싶었다. 속이는 것보다도 속은 것이 분했다. 첨부터 그런 사정을 이야기했다더라도 자식 없는 젖이 날 데가 없을 게고, 나 또한 그렇게 수숫대 속처럼 차지를 않은 터고 보니 그만 것쯤이야 양해할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한 자기를 감쪽같이 곯려먹은 유모가 밉다 못해 분했다.
198
“에이, 깜찍한 것들! 어디들 좀 보자. 십오원이나마 없으면 너들두 어려울걸!”
200
“내가 자식을 굶겨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네 젖은 안 먹일 테다!”
201
“정말 젖 때문에 큰일 났어요! 내 젖은 그나마두 안 나구 유모 젖은 자꾸만 줄어가구…”
202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오만상을 찌푸리었을 말소리다.
203
“아따, 짜증을 내더라두 방에 들어가서나 냅시다그려.”
204
“애는 배를 못 채워 잡는 소릴 하구 온종일 나 혼자서만 매대기를 치니 살겠어요! 아이 볼 계집앨 하나 얻어주든지 식모를 하나 구해보든지.”
206
하고 나는 방으로 들어와서 아내가 앉기를 기다리어,
209
아내는 무슨 얘긴가 싶어 나를 빠안히 쳐다보고 앉았다.
210
그러나 막상 이야기를 하자고 드니 차마 용기가 안 난다. 아무리 유모의 한 짓은 괘씸하다 친다더라도 자식을 가진 어미로서의 그를 나무랄 도리는 없다 싶었다. 그 말을 듣는다면 그 성미에 녹두방정이 나올 것도 겁 안 나는 바도 아니기는 했지마는 그보다도 내 자식 주린다고 남의 자식 굶겨죽이라고 강요할 도리는 없지 않을까 했다. 제 자식을 살리자고 유모를 구하는 아내의 모성애나 이 세상에 나올 때 어엿한 제 젖을 가지고 와서 부모의 가난 때문에 남에게 빼앗기고 골골하는 자식을 불쌍히 생각하는 유모의 심정이나 자식에 대한 애정임에는 다름이 없지 않을까?
211
여기에서 젖을 뺏긴 쪽을 따진다면 그것은 유모의 젖먹이가 아니라 나의 딸년이었다. 유모의 어린것이 제 젖통을 빨려고 하는 것은 부여된 권리였다. 십오원, 그러나 이것은 한 호의에 대한 사례였다. 호의란 것은 베풀 수는 있는 일일지라도 결코 그것을 강요할 성질은 아닐 것이었다.
212
그러나 지금의 경우는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당당한 주권을 가진 유모의 어린것은 강요할 성질이 못 되는 호의를 받고 그 대가로 권리를 빼앗긴 것 이었다. 유모의 어린애로서 볼 때에 그것은 심히 모순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큰 모순이요, 더 억울한 것은 자기의 자유 의사에서 생긴 교환이 아니요, 부모의 자유 의사, 아니 돈이라는 야릇한 물건에 정복된 부모의 무능이 그것을 강요한 것이다.
213
그리고 이보다도 더 큰 모순은 그네들만 한대도 이렇게 모순된 교환 조건을 달게 받기는 하나마 결코 바라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저쪽에서 줄 권리는 있을지 몰라도 이쪽에서 달랄 권리는 없는 유모의 젖꼭지였다. 나는 나 자신을 비웃었다. 확실히 우리 것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제 것을 제가 먹자고 애를 쓰는 아이를 나무란 나 자신을 조롱했다. 그리고 유아에게 맡은 젖통을 맡긴 당자에게 반환했다고 유모를 욕한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쳤다. 자식에게 대한 애정으로 아니 남의 것을 일시적으로 맡은 사람으로서의 임무를 다하기 위하여 그 먼 곳을 무릅쓰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왕복한 유모가 아니었던가? 삼청동 막바지를 화동이라고 속여가며까지 눈이 말똥말똥하니 산 자식들을 죽었노라고 꾸며가면서까지 자기의 맡은 임무를 다하기에 노력한 유모가 아니었던가.
214
이렇게 생각하자 나는 유모를 나무랄 용기가 다시는 안 났다. 그때 유모에게 대한 나의 감정이라면 동정이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정의감이었다.
215
나는 제가 맡긴 젖을 달라고 그악을 떠는 어린것을 떼치고 띵띵 불은 젖통을 움켜쥐고 삼청동 막바지에서 계동 꼭대기를 달려올 때의 유모의 심정을 이리저리 상상해 보았다 . 더욱이 병까지 난 어린것을 떼놓고 투실투실하게 살쪄가는 남의 자식을 찾아 나올 때의 유모의 표정을 상상해보고 있었다!
216
“나 참, 싱거운 양반두 봤수, 남을 불러놓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구 앉으셨수, 그래?”
217
나는 그대로 잠자코만 있었다. 지금의 나의 심경을 그에게 이야기한댔자 아내는 비웃기만 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218
이튿날은 일요일도 아니었지마는 나는 사에도 안 나갔다. 아내는 아침부터 머리를 빗는다 치마 주름을 잡는다 법석이다.
220
“좀 나갔다 오겠어요. 집에 계시다지요?”
222
“유모 한 군데 말해볼까 해서 그래요. 내 곧 다녀 들어올께니 아이 좀 보셔요.”
223
“유몰 두구서 무슨 유몰 또 구하러 간다구 야단요.”
225
“유모라구 쓰겠어요? 그 흔케 나는 젖을 어떻게 하는 겐지 글쎄 요샌 빈꼭지만 빨리구 간다우! 필시 어떤 놈의 집 자식한테 젖을 대이는 게야, 그러게 그렇지 뭐요!”
227
유모의 젖이 시원치 않은 것은 요새 자기 남편의 병으로 돈이 몰리니까 배를 주려 그런 것이다. 그렇게 가난한 사람을 지금 당장 뗀다는 것도 사람으로서는 차마 못할 노릇이요 그럴 리야 없겠지만 설사 다른 데 젖먹이는 곳이 있다손 치더라도 굶어죽잖을라고 하는 노릇이고 아이 없는 어머니에게 젖이 날 턱이 없고 보니 제 자식 있는 사람의 젖을 얻어먹이는 것보다도 갈라 먹이더라도 제 소생 없는 편이 유리하지 않느냐는 것을 여러 가지로 역설해 들리었다.
228
“생각해보구려. 당신이 남의 집 유모로 들어갔다더라도 아무러면 남의 자식이 내 자식만큼이야 소중하겠소? 그건 사람의 본능인데 뭘. 그러니 두 집 유모 노릇을 한다 가정한대도 제 자식 없는 편이 되려 낫습넨다.”
229
그 말을 듣더니 아내도 그럴 성한지 주저앉고 말았다.
230
유모는 열시나 돼서 왔다. 나는 아내한테 눈짓을 해서 밥을 차려주었다.
232
나는 이런 인사를 하면서도 낯이 간지럽기는 했다.
235
유모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보자, 나는 더 말이 안 나갔다. 유모는 몹시 거북하던지,
238
“우리 성순이한테 젖꼭지를 물릴 때마다 유모두 잃은 것 생각이 나겠구려, 까딱하면 큰일나지. 아이 하나 기르기가 우리같이 힘들어서야!”
239
무심코 한 말이건만 유모의 귓바퀴는 빨개졌다. 아내는 아무것도 모르고 한 말이나 유모에게는 콕 찔렸을 것이다. 유모는 아무 대꾸도 없이 어쩔 줄을 모르더니,
240
“아유, 몹시 시장했던가베, 가엾어라.”
242
“유모 어린것 잃은 대신 자식이 하나 생겼으니 부디 좀 잘 키워주슈. 저것이야 바가지나 긁을 줄 알지 뭘 안다우.”
243
나는 이렇게 웃음엣소리를 하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유모는 그 말에도 대답이 없이 얼굴만 붉어졌다. 그것이 더 안타까웠다.
244
푸우, 나는 연기를 내뿜었다. 문구멍으로 새어든 햇살은 마치 빨랫줄처럼 방을 가로질러 맞은편 벽에 못박히었다. 자줏빛 담배 연기는 물살을 이루듯 햇살을 칭칭 감고 돌아간다.
249
혼잣말로 이렇게 말을 하고 나는 내 방으로 건너왔다. 어쩐지 지금의 내 자신의 생활이 유모의 그 생활과 똑같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내 자신에 대한 증오가 무럭 치밀어올라 왔기 때문이었다.
250
벌써 써야 할 사직원이 여태 백지대로 있는 것은 내게는 괴로운 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