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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簾) ◈
해설   본문  
1924
현진건
1
발[簾]
 
2
기억이 좋은 분은 작년 여름 야시에서 순사가 발 장수를 차 죽인 사단을 잊지 않았으리라. 그 때 모든 신문은 이 기사로 거의 삼면의 전부를 채웠고 또 사설에까지 격월(激越) 신랄한 논조로 무도한 경관의 폭행을 여지없이 비난하고 공격하였었다. 온 세상도 이 칼자루의 위풍을 빌려 무고한 양민을 살해한 놈을 절치부심하였었다. 더구나 그 무참하게도 목숨을 빼앗긴 이야말로 씻은 듯한 가난뱅이이며 열살 먹이가 맏이고 일곱 살, 다섯 살, 세 살먹이의 부친이며, 성한 날 별로 없는 뇌집병쟁이의 남편이며, 왼 집안 식구를 저 한 손으로 벌어 먹여 살리던 그가 비명횡사를 하고 보니 그의 가족은 무엇을 먹고 살 것이랴. 그 안해 되는 이는 어린 자식 넷을 데불고 병든 몸을 끌며 거리에 구걸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형편임을 알 때에 세상의 뜨거운 동정은 피해자에게 모이는 일변으로 이 참극을 일으킨 흉한에게 대한 미움은 한층 더 심해지고 한층 더 깊어졌다. 일 저지른 이가 법에 따라 상해치사 죄로 오 년이란 긴 세월의 징역 언도를 받았건만 그래도 공분은 풀리지 않았었다. 경관이라 해서 법률을 굽혔다고 판결에 불만을 품은 이까지 있었었다. 이대도록 가해자에 대한 민중의 감정은 사람으로 가질 수 있는 한끝 가는 미움이있었다.
 
3
그러나 그 속살을 자세히 알고 보면 이 극흉 극악한 죄인도 그리 미워하지 못하리라. 센티멘털한 이 같으면 한 방울 눈물조차 아끼지 않으리라. 그 또한 주어서 받지 못한 사랑의 가련한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4
서울이 객지인 그가 머물고 있던 여관은 금부 뒷골에 있었는데, 여관이라 해도 드러내 놓고 손을 치는 게 아니라, 아는 이만 알아서 찾는 객주라면 객주요, 염집이라면 염집이었다. 그 집엔 어쩐지 비밀이 있는 듯하고, 어쩐지 사람의 마음을 달뜨게 하고, 어쩐지 야릇한 희망을 품게 하는 일종 기괴한 분위기가 떠돌았다. 이 분위기는 그 집에 한 번 방문만 한 분이면 대개 느낄 수 있으리라. 문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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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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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부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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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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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간드러진 목소리가 받는다. 이 소리만 들어도 헙헙한 사내의 마음은 뛴다. 짝짝 하고 신 끄는 소리가 나자 늘 닫혀 있는 중문이 바시시 열리며, 평양식으로 얹은머리를 한 여편네가 찰찰 넘을 듯한 애교의 웃음을 띤 얼골만을 나타낸다 그 얼골은 . 분명히 사십을 훨씬 지낸 얼골이로되, 유달리 붉은 입술과 뺨이 화냥기를 띠고 사람을 끈다. 그는 주인 노파다. 그리고 또 중문 안까지 쑥 들어선 이면 기름으로나 닦았는지 반들반들한 마루, 뒤주, 그 위에 차곡차곡 얹혀 있는 윤나는 항아리들, 그보담도 북창이 터진 곳에 흔히 기생집에서 볼 수 있는 목제 일본 경대가 눈에 뜨이리라. 여러 가지 기름병, 여러가지 분갑을 실은 그 경대만 보고 못 견디리 만큼 그 임자에 대한 호기심을 품는 이는 매우 불행한 사람이다. 대개는 팔뚝까지 올라간 지지미 속적삼 바람으로 그 경대 앞에서 머리를 빗든지 분을 바르든지 하는 그 임자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니까. 스물이 되었을까 한 그 여자는 시집을 갔다가 못살고 왔다고도 하고, 기생 노릇을 하다가 그만두었다고도 하는 주인 노파의 딸이다.
 
9
전제(前提)가 좀 장황한 듯하지만 그 집의 짜임짜임도 설명 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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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앙하고 대문간이 있는 채는 따로 떨어졌는데 이 한 채를 떼어 보면 그 집은 하릴없는 고무래 정(丁)자 모양으로 생기었다. 건넌방 다음에 사간 대청이 있고, 그 다음에 안방이 있는데, 머릿방과 합해서 삼간이 되는 안방이 앞으로 쑥 내민 곳에 부엌이 딸려서 몸체는 ㄱ자로 꺾였다. 뒤꼍을 돌아보지 않은 이는 그 집이 통히 그뿐인 줄 알지마는 실상은 그렇지 않아 안방─ 안방 이라느니보담 머릿방 뒤를 옆으로 대어서 또 이간 마루가 있고, 그 마루가 끝난 곳에 나란히 방 둘이 있다. 이 뒤채와 통래를 하자면 부엌 뒷문과 머릿방 옆을 뚫은 쌍바라지가 있을 뿐이다.
 
 
11
일 일어난 임물엔 건넌방에 학생들이 기숙을 하고 안방은 물론 주인 노파가 있고 딸은 머릿방에 거처하고 뒤채의 첫째 방에는 문제의 순사가 들었고, 둘째 방에는 이십 칠팔 세 됨직한 청년 신사 ─ 그 집에선 김 주사라고 부르는 이가 들어 있었다. 이 김 주사는 귀공자답게 해사한 얼골의 임자인데 오정 때 가까이 일어나 면도질이나 하고 하이칼라 머리를 반지레하게 지코나 바르기에 해를 지우는 걸 보면 하는 노릇은 없는 듯하건만, 양복을 벌벌이 걸어두고 사흘돌이로 갈아입으며, 돈도 풍성풍성하게 쓰는 걸 보면 아마 시골부자의 자제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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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일어나기 전 날밤 새벽 두 시 뒤채의 첫째 방에선 드르렁드르렁 코고는 소리가 난다. 둘째 방 문이 소리 없이 열리자 김 주사의 셔츠만 입은 도깨비 같은 모양이 나타나더니, 옆방의 숨소리에 주의를 하며 발끝으로 가만가만히 걸어서 열려 있는 머릿방 쌍바라지 안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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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불이 환한 머릿방 분홍 모기장에 주인의 딸이 잠이 들었다. 모시 겹이불이 꾸김꾸김해져서 발치에 밀린 것은 잠결에 차 던졌음이리라. 정강이까지 올라간 지지미 속곳, 팔뚝까지 올라간 지지미 적삼, 그것도 더웠던지 하부시 단추를 빼어 보얀 젖가슴을 아른아른히 드러내었다. 모기장의 분홍색 반영(反映)으로 말미암아 봄날의 꿈빛같은 발그레한 그림자가 슬쩍 한끝 가는 이 자극을 덮어서 그 곳의 정경을 한층 더 농염(濃艶)하게 하고 고혹(蠱惑)되게 하고, 풍정 있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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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 들어서자 종용하게 또는 황급하게 쌍바라지를 닫고 난 사내는 계집의 자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제가 얼마나 복된 사람임을 새삼스럽게 느끼는 듯이 싱그레 웃다가 모기장을 들추고 들어온다. 사내의 입술이 계집의 입술에 닿았을 제 자던 이는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뜬다. 김 주사인 줄 알아보자 계집은 안심된 듯이 떴던 눈을 다시 스르르 감을락 말락 하고 방그레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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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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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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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순산 줄 알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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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난 그 원수엣 놈이 또 왔는가 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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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은 이런 말을 하고 제 어미를 닮아 유달리 붉은 입술을 동글게 벌려 하품을 한 번 하더니 포동포동하게 살찐 손으로 얼골을 몇 번 비비고 지나치게 숱 많은 눈썹을 몇 번 찡긋찡긋하자 쾌히 잠을 깬다. 쌍꺼풀 진 눈알엔 조금 붉은 기가 도는 듯하다. 년은 말끝을 이어 간드러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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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인제야 오셨슈? 밤이 꽤 늦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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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올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 빌어를 먹을 놈이 세상에 자야지. 인제나 자는가 하고 귀를 기울이면 권연 빠는 소리가 났다가 한숨 쉬는 소리가 났다가 부스럭부스럭 몸 비비대는 소리가 났다가…… 너한테 몹시도 반했나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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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속 없는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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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년은 코웃음을 웃는다. 놈도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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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녁에 놈팽이가 너더러 무에라구 그렇게 지절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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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가 별꼴을 다 보아. 어느 선술집 신세를 졌는지 술이 잔뜩 취해 가지고 남의 방에 탁 들어오더니만 누가 청이나 한 드키 제 신세 타령을 늘어 놓겠지. 나이 삼십에 아즉 장가도 못 들었다는 둥, 집에는 아버지도 안 계시고 홀어머니뿐이라는 둥…… 또 그 꼴에 제 칭찬이 장관이지. 경관 노릇 삼 년에 남 못할 일 한 번 한 법 없이도 근무라든가 뭐라든가를 착실히 했다나 그래서 웃사람에게 . 잘 보여서 내월이면 경부가 되겠고, 경부가 되면 한 달에 팔십 원 벌이는 된다든가 만다든가……, 이러고 한참을 씩둑꺽둑하더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기로 남의 손을 덥석 쥐며 같이 살자고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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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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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내가 무슨 노릇을 한들 너 하나 못 먹여 살리겠나, 경부가 되거든 고향으로 (제 고향이 인천이라나) 전근을 시켜 달라고 해서 둘이 재미있게 살자꾸나, 어머니 한 분 계신대야 육십이 넘은 노인이시고 단둘의 살림이라 편할 대로 편히 해 주마고 꿀을 담아 붓는 소리로 수단껏 꾀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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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너는 무에라고 대답을 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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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 생각해 보아야 알겠다고 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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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본다긴, 딱 거절을 해 버리지 않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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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그런 쑥떡이라도 그래도 순사 나으리의 행투가 있다오. 공연히 비위를 거슬렸다가 마음에 꼭 끼면 어쩌게. 슬슬 간장이나 녹여 주는 게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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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끼, 요악한 년 같으니,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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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놈은 불시에 년을 껴안는다. 변통 없이 제 것임을 누구에게 자랑이나 하드키 그들의 입술은 몇 번 붙었다 떨어졌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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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놈팽이가 우리 둘이 이러는 줄 알면 여북 속이 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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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천치가 한 달을 같이 있어도 눈치를 못 알아채겠지, 하하하…… 인제 고만 놓아요. 남 더워 죽겠구먼……. 이 땀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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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은 벌떡 일어앉아 활활 부채질을 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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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더워 죽겠네, 저 쌍바라지를 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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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었다가 그놈이 엿보면 어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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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데 어떨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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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깰는지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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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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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까…… 문을 열고 네 치마로 가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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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바보, 치마로 가리면 바람이 어데로 들어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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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같은 것을 쳤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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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데 발이 있어야지.”
 
 
46
불쌍한 우리 주인공은 이런 사연을 꿈에도 몰랐다. 그 이튿날, 그 날이야말로 무서운 운명의 검은 손이 저의 덜미를 짚을 줄은 모르고, ‘생각해 보마.’한 계집의 말을 반승낙으로나 생각한 그는 복된 희망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근무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날인 즉 스무 하로 월급날, 밥값을 치르고 남은 돈으로 장례 안해에게 무슨 선사를 할까 하는 것이 큰 궁리였다. 금반지를 사다 줄까, 옷감을 끊어다 줄까, 양산을 사다 줄까……, 이런 생각에 그는 때때로 정신을 잃고 멀거니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금반지와 옷감엔 돈이 조금 모자라고 양산은 있는 모양. 차라리 저녁에 데불고 나와서 야시로 산보나 하다가 탑동 공원 안에 있는 청목당 지점에 들어가서 어데 종용한 방을 지우고 권커니 잣거니 웃고 즐기다가 반승낙을 완승낙으로 바꾸는 게 나으리라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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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사복을 갈아 입은 그는 작정한 대로 실행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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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덥고 하니 야시에나 나가 바람이나 쏘이고 들어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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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얼골을 붉으락푸르락하며 무심한 듯이 말을 붙여 보았다. 의외에 저편이 선선히 승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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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볼까요? 그런데 청이 하나 있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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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청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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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청이 아니라 발 하나만 사 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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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편은 이편이 깜짝 놀랠 만치 뒷방에까지 들릴 큰 소리로 불쑥 이런 말을 하였다. 그래도 눈치 없는 이편은 그런 무간한 청을 받는 것만 어떻게 기쁜지 몰랐다. 완승낙을 받을 전조(前兆)와도 같았다. 이편의 입이 저절로 벌어지노라고 저편의 얼골을 떨며 지나가는 비소의 경련을 알아볼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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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드리구 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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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은 다정한 듯이 놈의 곁으로 바싹 다가들어 눈으로 제 방의 쌍바라지를 가리키며 귀에 대고 속살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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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으리 혼자만 계시면 뒷문을 그대로 열어 놓은들 어떠랴마는, 딴 손님이 계시니까 어데 만만해요? 닫자니 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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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그렇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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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취한 이는 지당하온 말씀이라는 드키 고개를 수없이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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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를 데불고 나선 이에겐 와락와락 찌는 듯한 공기도 시원하였다. 짝달막한 키가 급작스럽게 커지고 까무잡잡한 얼골이 희어지며 얽은 구멍조차 막히는 듯하였다. 통히 못생긴 저는 간 곳이 없고, 아름답고 훌륭하고 헌출한 사내가 그의 속에 깃들이고 말았다. 앙바틈하고 짤막한 다리를 길고 곧기나 한 듯이 흥청흥청 내어 던질 제, 종로가 비잡게 갔다 왔다 하는 어느 사람보담도 제가 복 많고 잘난 듯싶었다. 동글게 뭉친 어깨를 바짝 뒤로 젖혀서 닭의 무리에 섞인 봉이나 무엇같이 도고한 탯가락을 빼었다. 그리 크지 않은 얼골을 어마어마하게 찌푸렸는데 그 표정은 마치,
 
60
“너희는 몰라도 나는 경관님이시다. 내게 손가락 하나라도 대었단 봐라. 내 사랑의 보는 앞에서 내 위엄을 알려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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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듯하였다.
 
62
야시에 벌여 있던 모든 것이 그의 흥미를 끌었다. 철물전 앞에도 걸음을 멈추었다. 허접쓰레기 파는 데에서 책을 뒤적뒤적하기도 하고, 과일전에서 과일을 들었다 놓기도 하였다. 경매하는 데서 어름어름도 하고 구경꾼을 둘러 세우고 약을 파는 광고장의 연설에도 귀를 기울였다.…… 장래 안해와 어깨를 겨누고 거니는 시간을 한시라도 오래 끌고 싶었음이다. 예정한 계획대로 한시바삐 아늑한 요릿집에 들어갈 생각이야 간절하였으되 그것은 너무도 행복된 일이어서 얼른 실행하기가 아까운 듯하였다. 마음이 조마조마도 하였다. 확실무의하게 제 앞에 놓인 행복이니 꼭 부여잡을 시간을 잠깐 늘인들 어떠하리. 그래 가지고 얼마 아니 되어 끔찍한 행복이 닥쳐온다는 짜릿짜릿한 예감을 맛본들 어떠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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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즈음에 년의 목적한 바 발전[簾廛]이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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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발전이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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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년은 아까 띤 비소를 또 한 번 띠우며 전 앞으로 들어선다. 놈은 지금 발 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홀린 이의 청이니 사 주기는 사 줄지라도 요릿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살 작정이었다. 그러나 년이 들어서는 받자에야 저도 들어서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것, 저런 것 허청으로 고르는 체하다 그 중의 하나를 집어 들고 값을 물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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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원만 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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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전만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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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놈은 년을 향해 웃어 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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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말이 됩니까? 아닙시오.”
 
70
하고 발 장수는 기막힌 듯이 한 번 웃고는 먼 산을 본다. 그 태도가 조금 비위에 거슬렀으되, 어처구니없이 금을 깎은 것을 생각하고 웃고 일어설 수 있었다. 그 전을 한 두어 걸음 떠나가자 그 장수를 한 번 보기 좋게 닦아세우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됐다. 계집 앞에서 제 위엄과 세력을 보일 꼭 좋은 기회를 잃은 것이 원통하였다.
 
71
남과 시비 한 마디도 똑똑히 못하는 반편으로나 알지 않을까 하매 몹시도 높던 제가 문득 납작해진 듯해서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어찌하든지 이 분풀이를 하리란 생각이 그의 마음속 어데인지 움직이고 있었다.
 
72
얼마 가지 않아서 둘쨋번 발전이 거기 있었다. 한 사십이 됨직한 성미 괄괄하게 생긴 그 주인은 무슨 화증 나는 일이 있는지 (모르면 모르되 흥정없는 까닭이리라) 잔뜩 얼골을 찌푸리고 속상 하는 듯이 곰방대에 담배를 떨고 넣고 한다. 년놈은 또 발을 이것저것 고르다가 아까 모양으로 값을 물었다.
 
73
“이원 팔십 전이오.”
 
74
“오십 전에 파우.”
 
75
주인은 시커먼 눈알맹이를 한번 희번덕하더니 순사의 손에 든 발을 나꿔채며,
 
76
“이런 제길 도적놈, 뒷전에만 물건을 사 보았단 말인가? 이원 팔십 전 내라는 걸 단 오십 전 받으란다.”
 
77
귀부인을 모신 기사(騎士)에게는 더할 수 없는 모욕이었다. 순사는 바르르 몸을 떨다가 빽 소리를 질렀다.
 
78
“이놈, 무엇이 어쩌고 어째! 장수가 에누리하는 것도 예사고, 손님이 깎는 것도 예사지.”
 
79
앉았던 장수는 벌떡 일어선다.
 
80
“이놈이라니? 남의 물건을 사면 사고 말면 말았지 누구더러 이놈 저놈, 다리 뼉다구를 분질러 놓을 놈 같으니.”
 
81
경관의 얼골엔 벌컥 피가 올랐다.
 
82
“왜 이러셔요? 고만두어요.”
 
83
하며, 팔목을 잡아당기는 년의 손을 뿌리칠 겨를도 없이 이편의 손은 저편의 뺨을 갈겼다.
 
84
“이놈, 날 누군 줄 알구.”
 
85
“에쿠, 이놈이 사람 친다.”
 
86
는 고함과 함께 저편의 반항하는 손길도 이편의 뺨에 올라붙었다. 계집 데린 이는 눈에서 불이 번쩍 났다. 그의 분노는 머리끝까지 사무쳤다. 생채기를 입은 경관의 자존심, 더구나 똥칠한 계집에 대한 체면이 그로 하여금 물인지 불인지 모르게 하고 말았다. 입안에 버글하고 거품이 돌자 퉁겨 나온 눈방울에 쌍심지를 켜며 두 주먹과 두 다리가 허산바산 장수의 몸에 붙었다 떨어졌다 하였다. 장수도 턱없이 맞고만 있을 이 없었다.
 
87
“이놈, 내 명색이 뭐냐?”
 
88
는 푸념을 섞어가며 그편의 팔과 다리도 놀지 않았다. 한동안 ‘에쿠’, ‘에쿠’하는 소리가 그 곳의 공기를 무섭게 뒤흔들고 있었다. 이윽고 발 장수가 악하고 외마디 소리를 치자마자 팍 그 자리에 거꾸러진다. 순사의 곧은 발길이 그의 ○○을 들어가 질렀음이다. 그 때에 위지삼잡 에워싼 구경꾼을 헤치고 정복 순사가 들어왔다. 그는 걷고 발 장수는 엇들리어 경찰서로 갔다. 그 날밤이 채 새지 않아 발 장수는 구류간에서 죽고 말았다.
 
89
그가 수감(收監)되던 날 저녁, 김 주사와 주인의 딸은 애저녁부터 한시름 잊은 듯이 부채를 맞부치며 머릿방에 누워 있다…….
 
90
“내 말이 어때요? 그런 쑥떡이라도 다 제 행투가 있지 않아요?”
 
91
“제 행투가 있으면 쓸데 있나? 때여 가는데…….”
 
92
“어쩌면 사람을 차 죽일꼬? 아이 무서워.”
 
93
“아주 표독한 놈이야, 사람을 어데 칠 데가 없어서 하필 ○○을 찬담?”
 
94
“때여 가기 전 연이틀은 꼭 제 방에 쳐박혀서 끙끙 앓기만 하더니 오늘 아츰 결엔 샛노란 얼골로 또 내 방에 스르르 들어오겠지, 들어와서 하는 말이 또 장관이야. 이번 일은 꼭 내 잘못이니 같이 나갔다고 행여 미안하게 생각지 말라나 어쩌라나.”
 
95
“그럼 제 잘못이지 뉘 잘못인고? 미안하긴 왜? 실업의 아들놈.”
 
96
“그리고 또 이것 좀 봐요. 제 지은 죄는 모르는지 잘하면 한 육 개월 살 터이고, 오래 살았자 일 년만 살면 나올 테니 그 때까지 기다리겠느냐 하겠지. 하하하, 사람이 우스워 죽지.”
 
97
“쓸개 빠진 놈, 허허허, 그래”
 
98
“기다려 보지요, 하였지.”
 
99
“기다려 보지요가 묘한걸.”
 
100
이런 수작을 주고받는데 그 방의 쌍바라지는 발 없어도 인제 무방하다는 드키 열려 제켜 있었다…….
 
101
(『시대일보』, 1924. 4. 2~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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