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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부자 ◈
해설   본문  
1935.8
백신애
1
악부자
 
2
하나 남았던 그의 어머니마저 죽어버리자 그대로 먹고 살만하던 살림이 구멍 뚫린 독 속에 부은 물같이 솔솔솔 어느 구멍을 막아야 될지 분별할 틈도 없이 모조리 빠져 달아나기 시작한 때부터이다. 어찌된 심판인지 경춘(敬春)이라는 뚜렷한 본 이름이 있으면서도 ‘택부자’라는 별명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3
이왕 별명을 가지는 판이면 같은 값에 ‘꼴조동이’ , ‘생멸치’ , ‘뺑보’라는 등 그리 아름답지 못하고 빈상(貧相)인 별명보다는 귀에도 거슬리지 않게 들리고 점잖스럽고 그 위에 복스러운 부자라는 두자까지 붙어 ‘택부자’라고 별명을 가지는 편이 그리 해롭지는 않을 것이건만 웬일인지 불리우는 그 자체인 경춘이는 몹시 듣기 싫어하였다.
 
4
동리에서 그래도 학교나 꽤 다니던 젊은 아이들도 ‘택부자’라면 성을 내는 경춘의 성미를 아는 터이라 저희끼리 암호를 가지고 불렀다.
 
5
돈 많은 사람은 가내모찌(金持) 온갖 것을 다 — 많이 가진 사람은 모노모지(物持)라고 하니까 경춘이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유별나게 턱만 아주 길죽하게 가진 고로 아고모찌(顎持)라고 하자……고 의논이 된 뒤부터는 경춘이는 앞에거도 맘 놓고
 
6
“아고모찌 아고모찌.”
 
7
하고 찌끗찌끗 웃었다. 어떤 때는 턱 모르는 경춘이도 남들 웃는 꼴이 우스워 같이 웃어내기도 하였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어 죽겠다고 구르며 우스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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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모찌(떡) 장사 좀 해보지.”
 
9
“모찌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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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요 사이는 아고모찌라는 게 생겼는데 잘 팔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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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모찌가 뭔고?”
 
12
“허허허…… 아고모찌를 몰라? 맨들맨들하고 속에 하얀 뼈다귀 같은 왜떡이지.”
 
13
“이 —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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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우스워죽겠다는데 혼자 경춘이는 고개를 끄떡끄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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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벗겨진 이마 위에 파리가 앉으면
 
16
“파리 낙상하겠구나.”
 
17
하는 것은 꼿꼿치 흔히 보는 바라 그리 우스울 것이 없지마는 경춘의 턱에 파리가 딱 붙게 되는 날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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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빵에 파리 앉는다. 쉬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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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찌글거리면 경춘이 함께 영문도 모르고 웃는 꼴이야 흔한 것이 아닌 만큼 우스워 허리가 부러질 판이다.
 
20
아고모찌도 경춘이가 알아챌까봐 또 한 번 넘겨서 ‘아고’는 떼어 버리고 모찌만을 서양말로 번역하여 ‘빵’이라고도 하였다. 이 빵이 또 한 번 번역되어 떡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므로 경춘이는 자기 앞에서는 모찌라는 둥, 빵이라는 둥, 떡이라는 둥 이야기만 하는 고로
 
21
“이 사람들은 밤낮 떡 말만 하네.”
 
22
하고 도로 넌지시 핀잔도 주는 때가 있다.
 
23
그러나 경춘이 역시 바보가 아닌 사람이라 어렴풋이 제육감(第六感)이 활동하여 그것이 모두 자기의 별명인 줄 깨달았다. 경춘이는 택부자가 아고모찌가 되고, 아고모찌가 빵이 되고, 빵이 떡으로 변화해 나온 줄은 모르고
 
24
“옳지, 떡, 떡, 턱 자를 되게 붙여서 떡이라는 게로구나. 떡이 서양말로 빵, 빵은 일본말로 모찌, 음…… 죽일 놈들.”
 
25
경춘이는 다른 사람과는 반대로 번역해 들어갔다.
 
26
그는 와들와들 떨리며 분하였다. 자기 집이 잘 살 때는 아무도 이 턱을 보고도 턱부자라고는 않든 것이 살림이 다 빠져나오고 거러지같이 된 후는 경춘이라면 몰라도 택부자라면 더 잘 알게 되는 터이다. 그까짓 별명 듣는 것이 분한 것은 아니다. 이미 날 때부터 긴 턱을 가지고 나온 터이라 택이 길다고 하는 것이 분함은 없지마는 한 가지 경춘에 가삼에는 형용도 증명도 할 수 없는 비할 데 없는 분노가 타고 있었다.
 
27
“이름 자에 부자가 붙으니 살림이 가난한 것이다. 어느 놈이 날 못 살라고 이름에 부자를 붙였나 그 놈은 나의 살림을 저주하는 놈일 것이다.” 라고 하는 세세한 생각임으로 ‘택부자’하고 한번씩 불리우면 그 만큼씩 자기의 부자될 복이 감해진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남들이 택부자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죄 많은 생각으로서가 아니였다.
 
28
살림이 빠지고 나면서부터 신병으로 말미암아 몸이 자꾸 수척해지니 원래 유별나게 길죽한 턱이, 두 볼이 말라붙는 까닭에 더욱더 길게 보이는 고로 택보라고 부르는 것이 어느 여가에 택부자로 변하고 만 것이였지마는 경춘이는 이렇게 바로 생각하지 않았다.
 
29
끼니를 굶고 있는 날이면 택부자라는 별명이 더욱 그의 분통을 찔러주는 것이였으므로 누구든지 택부자라고 하면 당장에 때려죽이고 싶었다.
 
30
“제기 이놈의 턱이 내 살림을 다 잡어 먹은 거야. 이 놈의 턱이 작고 길어지니까 살림은 작고 없어지지.”
 
31
없어진 살림이 모조리 그 턱 속에 들어 있는 ○것 같이 쥐여짜 도로 내놓게나 할 듯이 사정없이, 자기 턱을 주무르고 끝쥐고 쥐여박고 하는 것이었다.
 
32
“아이구 그러지 마소. 턱이 무슨 죄가 있는기요. 턱이 크면 늦복이 많다두마.”
 
33
경춘의 얌전한 마누라는 진정으로 자기 남편을 위로하였다.
 
34
“흐응 —.”
 
35
경춘이도 마누라에게는 둘도 없는 유순한 남편인 터이라 한숨인지 웃음인지 모르는 큰 숨을 내쉬며 뒤로 턱 드러누웠다.
 
36
“아내의 말과 같이 늙어서야 이 턱의 덕을 보는지 알 수 있나 세상 만물이 다 한 번 먹으면 한 번은 내 놓는 법이라 턱 속에 들어간 복도 설마 나올 때가 있겠지.”
 
37
그는 어디까지든지 그 턱과 자기 살림을 한데 붙여서 생각하였다.
 
 
38
“휴유 — 우.”
 
39
뒷산을 올라가며 경춘이는 연해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건만 오늘은 유별나게 두 팔과 다리가 휘청거렸으므로 하는 수 없이 산등성이에 가 지게를 툭탁 내려놓고 비스듬히 기게를 기대앉아 꽁무니에 찬 곰방대와 쌈지를 끌러들었다. 쌈지에는 작년 가을에 뜯어 말린 약쑥입사귀가 담배○신서는 꼭지될 만큼 들어 있었다. 그는 세 손가락으로 한 꼭지될 만치 쑥을 끌어내어 손바닥 위에 놓고 음지 손가락에 침을 놓쳐 약쑥을 뭉친 후 대꼭지에 단단히 눌러 넣었다.
 
40
오른편 산기슭에서 시작된 동리는 동글동글한 조막만큼 한 토막집들이 한대역닥 딱딱 섞여 있고, 동리에 잇대어 먼 건너편 산 밑까지 시원스럽게 펼쳐 있는 들판은 군데군데 보리모종이 푸르러 있었다.
 
41
그는 성냥 찾던 손을 멈추고 왼 가슴 속에 사무친 원한을 한꺼번에
 
42
“흐어 — 허.”
 
43
하고 내품었다.
 
44
“들판이야 넓다마는 내 땅이라고는 바늘 한 개 꽂을 곳이 없구나.”
 
45
그는 깊이 탄식하며 담배에 불을 붙여 물었다. 십스그리한 약쑥 연기가 입 안에 빨려 올라가자 그는 향긋한 담배 가뭇 쳐 생각이 났다.
 
46
그는 올해 서른두 살이요, 그의 아내는 스물여섯이나 아직껏 자식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본래 생산 못한 것이 아니라, 셋이나 낳기는 했지마는 모조리 두세 살도 채 못 되어 죽어 버렸던 것이다. 단 두 식구뿐이지마는 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터이라 농사로서만 생업을 삼는 이 농촌에서는 품팔이 할 곳도 농사철뿐이었으므로 거러지같이 된지도 오래요, 끼니를 굶기도 부자 이밥 먹듯 하였다.
 
47
오늘 이 산에 올라온 것도 그 아내가 다리와 허리가 저리고 아프다는 고로 솔잎사귀를 따다 찜질을 시켜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지기에게 들키면 한참 승강이 있어야 될 것이니 차라리 산지기 영감에게 먼저 청을 해보리라고 생각하였다.
 
48
다 — 탄 담뱃대를 지게 목발에다 툭툭 털고 일어서려 했으나 좀처럼 궁둥이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산꼭대기에서 내려오는 산지기 영감이 경춘이를 내려다 보며 벙글벙글 웃으며 내려왔다.
 
49
“택부자 자네 오늘 산에 웬일인가?”
 
50
산지기는 웬일인지 다정스럽게 말을 건넸다.
 
51
‘제 — 미할 첨지 제 대가리는 왜 저렇게 벗겨졌는고. 남의 턱만 눈에 보이나?’
 
52
그는 대답도 하지 않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53
“자네는 올해 농사 좀 했나?”
 
54
산지기는 저 혼자 벙글거리며 경춘의 옆에 와 ‘어이쿠’하고 궁둥이를 내려놓았다.
 
55
“농사는 무슨 농사.”
 
56
쿨룽스럽게 대답을 하며 고개를 못 마땅하다는 듯이 외로 돌이켰다.
 
57
“이 놈의 첨지 날 보고 택부자라고 했겠다. 오늘 온 산에 솔잎사귀를 모조리 훑어갈까보다 네까짓 놈에게 청을 해? 어디 보자.”
 
58
경춘이는 몹시 속이 상해지며 산지기에게 청을 한 수 따가려는 솔잎을 가만히 얼마든지 훔쳐 가리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59
“허 — 참 이놈의 세상이란 참 기가 막혀.”
 
60
첨지는 여전히 말을 꺼냈다.
 
61
“왜요? 이놈의 세상이 어떻길래!”
 
62
경춘이는 눈을 흘기듯이 하여 산지기를 바라보았다. 첨지는 창피하다는 듯
 
63
이 하얗게 깎인 머리통을 슬슬 쓰다듬으며
 
64
“어 — 참 봉변이였어.”
 
65
산지기의 그 얼굴은 조금 흐릿하여지며 경춘이를 바라보았다.
 
66
“아, 늙어 가며 이런 꼴이 어디 있나. 그저께 장에 갔더니 상투를 널름 뺐었단 말이야. 그저 다짜고짜 없이 막 달려들어 덤비니 강약이 부동이라 하는 수가 있나. 분한 말이야 다…….”
 
67
경춘이는 본래부터 이첨지를 미워하는 터가 아니었고, 다 — 만 이제 ‘택부자’라고 불리운 것만이 분하였던 고로 첨지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에 어느 사이엔지 불쾌하던 생각은 스르르 녹아지고 없었다.
 
68
“깎으면 도로 시원하지요. 잘 됐네요.”
 
69
“허! 그럴 수가 있는가. 육십이 넘도록 지니던 것을 남의 손에 불의봉변을 했으니 목을 베인 것이나 다를 게 있나.”
 
70
“아따. 영감 그 따위 호랑이 담배 먹는 때 소리 마소. 지금이야 나라임금도 머리를 깍는데 무슨 상관인가요. 육십 년 아니라 육만 년 지니고 있던 것이라도 좋지 못한 것은 없이 해버리는 것이 옳지요.”
 
71
“어 — 그 사람 말도 아니다. 상투를 베인 후 나는 손해가 많네. 바로 상투를 베이던 날 밤에 보리 한 섬 도적맞았지. 그까짓 것 보다 머리 깍은 후로는 늘 몸이 시원치 못하고 골치가 휑하다는 거야. 아무래도 내가 죽을라는 가봐.”
 
72
“어 — 그래요?”
 
73
경춘이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흔들흔들하였다.
 
74
‘자기는 택부자라는 팔자에 과한 부자 자가 이름이 된 후부터 가난이 심해지고 산지기 철치는 상투를 베인 까닭에 도적맞고 몸이 성치 못하고…….’
 
75
하는 생각이 문득 번개같이 머리 속에 번득하자
 
76
“암만 개화한 세상이라 해도 예전부터 내려오는 귀신은 그대로 있는 거라오.”
 
77
경춘이는 한탄하듯 자기의 긴 턱을 실금실금 만졌다.
 
78
“흥. 있고말고. 나는 이마가 좀 넓은 까닭에 머리가 있으면 좋다고 상장이가 그러던 것을 — 깍고 보니 당장에 화가 미친단 말이야…….”
 
79
“그럴거요. 나도 저 —.”
 
80
경춘이도 자기가 ‘택부자’라고 불리게 되자 가난해졌다는 이야기를 하려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고 말았다. 너무 근거 없고 엉터리없는 말같이 생각된 까닭이었다.
 
81
“아이구 나는 내려가네. 자네는 어디 가는가.”
 
82
첨지는 궁둥이를 툴툴 털며 일어섰다.
 
83
“네 — 잘 내려가소. 그런데 청이 하나 있습니다.”
 
84
경춘이는 아무래도 먼저 허락을 받는 것이 옳으리라고 생각이 다시 곳 어듬으로
 
85
“솔잎사귀를 좀 따게 해주소.”
 
86
하며 덩달아 일어섰다. 첨지는 눈을 뚱글하게 뜨면
 
87
“솔잎사귀? 뭣 하려나?”
 
88
“아내가 다리를 앓는데 찜질해 주렵니다.”
 
89
“음, 자네 안에서 또 다리를 앓나. 어데 솔잎이 무슨 약효가 있어야지.”
 
90
“아니랍니다. 산꼭대기에선 만리풍 씌인 솔잎을 따다 찜질을 하면 좋다두마.”
 
91
경춘이는 말을 미처 마치지 못하여 몹시 기침을 하였다. 첨지는 얼굴을 찌푸리며 조금 생각하더니
 
92
“나무는 상하지 말고 조금 따가게나.”
 
93
하고는 슬금슬금 가 버렸다.
 
94
“그 놈의 첨지 과연 이마때기는 대우도 벗겨졌다. 저 놈의 첨지는 턱이 짧으니까 늦고생을 하는 게지. 내 턱이 이렇게 길지 말고 저 놈의 첨지의 이마가 저렇게 넓지 말고 했으면 피차 오죽 좋겠나.”
 
95
경춘이는 산꼭대기로 올라가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마는 넓고 턱은 짧은 첨지, 이마는 좁고 턱은 긴 경춘이, 그는 되는 수만 있다면 둘이 한데 섞어서 다시 알맞게 갈라 가지고 싶었다.
 
96
“턱은 짧더라도 나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니 관계 없단 말야. 그렇지만 이왕 이렇게 타고 나버렸으니 하는 수가 있나. 이 턱의 덕을 볼 때까지 살아야지.”
 
97
그는 혼자 혀를 쩍 차고 솔잎을 땄다.
 
98
경춘의 집은 사드락병(肺病)으로 망한 것이었다. 그의 부모, 형제, 자식 모두 기침하고 피 토하고 얼굴이 종이장같이 하얗게 되어 죽었다. 그런 까닭인지 경춘이마저 요즈음은 몹시 여위고 기침이 심했다. 비록 못 먹고 고생은 한다더라도 젊은 사람치고는 너무나 핼쑥하고 뼈만 남은 경춘이였으므로 동리 사람들은
 
99
“택부자도 얼마 남지 않았을걸.”
 
100
하고 그의 명줄의 길이를 예언하였다.
 
101
그 아내도 작년 가을부터는 마른 기침을 시작한 것이 이제는 경춘이 보다 더 자주 토해내었다. 경춘이는 어떻게 하더라도 아내의 병만은 고쳐주고 싶었다.
 
102
자기는 이미 부모에게서 타고난 병이지마는 그 아내는 시집온 후 오늘까지 천하에 둘도 없는 고생만 하고 그 위에 병까지 옮아갔으니 생각하면 할수록 뼈가 아프게 가엾었다.
 
103
산에서 따온 솔잎을 쪄가지고 방안에 거적을 편 후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그 아내를 누인 후 솔잎으로 찜질을 시켰다. 이 봄부터 걸음을 잘못하여 그 마누라는 약 한 첩 먹어보지 못하고 오늘 이 찜질이 약치료하는 처음이었다.
 
104
지난 봄에는 보리가 사두 한 말에 삼십팔 전이던 것이 지금은 칠십오전이니 햇보리 날 때까지 그들은 밥 구경은 단념하고 있었다.
 
105
몸이 점점 마르고 기침만 자꾸 하는 경춘의 근본을 잘 아는 동리에서는 공일이라도 시키려는 사람이 없어 다 지난 가을에 말려두었던 콩잎사귀 그것만으로 연명해 나가야 되는 터였다.
 
106
경춘이는 하다 못하여 그곳에서 오리 밖에서 방천공사(防川工事)하는 대로 일거리를 찾아갔다.
 
107
한 구루마 가득 흙을 파면 육 전씩을 받는 것인데 쉽사리 경춘이도 일 패를 맡아가지고 흙을 파게 되었다.
 
108
‘하루 열 구루마는 할 수 있겠지.’
 
109
그는 이렇게 속심을 대어 보았다. 그러나 한 구루마를 하고 난 후 두 구루마째 밀고 가다가 ‘컥’하고 각혈을 하였다. 누가 볼까 겁이 나서 얼른 입술을 닦고 잠깐 쉬려고 펼치고 앉았다. 하늘이 노랗게 빙빙 돌며 땅덩이가 조리질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정신을 바짝 내며 구루마를 밀어냈다. 두 팔은 녹은 엿같이 맥없이 풀어지며 두 귀를 잡고 내여 흔드는 것 같이 두 눈이 훵훵그랬다. 그는 다시 정신을 차릴 양으로 신들을 고치는 척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110
“여보! 당신 이름 뭐요. 일패 봅시다.”
 
111
경춘의 혼혼한 정신은 무슨 뜨거운 불덩어리로 얻어맞기나 한 것 같이 깜
 
112
짝 놀라며 가슴이 선뜻하였다.
 
113
“여보 일패 내놓소.”
 
114
아물아물 까물어질듯 한 경춘의 눈동자에 일꾼패장이 버티고 선 것이 비쳤다.
 
115
“네!”
 
116
그는 오무니에 찼던 일패를 내보였다.
 
117
“당신 어데 사요.”
 
118
“네 — 저기 윤농이라는 데 삽니다.”
 
119
“당신 그래서 일 하겠소. 보아하니 몸이 많이 편찮은 것 같은데.”
 
120
패장의 말소리는 부드럽지 못했다.
 
121
‘아아 일자리를 빼앗으려는구나. 이것도 못해 먹으면 어찌 될꼬.’
 
122
하는 생각이 번쩍하자 경춘의 정신은 찬물같이 행하게 몰아왔다.
 
123
“아니올시다. 어젯밤에 좀 늦게 잤더니 어떻게 괴로운지. 내일은 좀 기운있게 하지요. 일찍 좀 자고나면야.”
 
124
경춘이는 이렇게 변명같이 말을 하나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자기도 인식할 여유없이 입술을 떨렸다.
 
125
“성명이 누구시라하오.”
 
126
“네 — 김경춘이라 합니다.”
 
127
“김경춘이라는 가요. 네 — 이 사람은 이명수요, 인사 잇고 지냅시다.”
 
128
의외에 패장의 말소리가 점점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경춘이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세상이란 겉(表)과 처음 시작과 같이 간단하고 쉽고 좋은 것만이 아닌 것을 벌써 얼마만치 알고 있는 터이라 한결같이 가슴은 두근거렸다.
 
129
‘나를 내어쫓으려고 일부러 친절하게 하는 거지.’
 
130
그는 이렇게 겁도 났다. 어떻게든지 닷새 동안만 일을 하면 품이 삼 원이니까 그것으로 아내에게 밥구경도 시키고 북촌동에 있는 의원에게 가서 약이라도 한 첩 사 먹이고 하리라고 예산하던 것이 그만 허물어지고 마는가 생각함에 두 눈은 다시 캄캄해지고 체면 없는 기침은 자꾸 나왔다.
 
131
“보소. 당신 내 말을 듣겠소? 내가 한 번 입을 띠면 당신을 여기서 일을 못할 것이지만.”
 
132
패장의 말소리는 위엄과 친절이 반반이었다.
 
133
“네?”
 
134
“좌우간 당신 내 말 들으면 돈벌이가 될 텐데 어떤가요.”
 
135
경춘의 두 귀는 번쩍 띠이며 가슴이 요란하게 쿵닥거렸다.
 
136
“그러면 말하겠소. 이 일터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이 하루 열 구루마씩 하는데 당신은 몸이 약하니 다섯 구루마도 어려울 것이요. 그러니까 내일부터는 당신이 단 두 구루마만 하더라도 열 구루마 했다고 내가 도장을 찍어줄터이니 어떻소.”
 
137
“온 종일 두 구루마만 파도 열 구루마다는 햇 도장을 찍어주신단 말이지요.”
 
138
“옳지 그렇지요.”
 
139
경춘이는 고맙다는 생각보다 겁이 와락 났다.
 
140
‘세상이란 이렇게 공 떨어지는 횡재가 있는 법이 없는데 내가 꿈꾸고 있나, 그렇지 않고야 내 사정을 이렇게 보아주는 사람이 요즈음도 남아 있을 리가 있나.’
 
141
그는 이렇게 생각되었다.
 
142
“염려 말고 남에게 입을 띄지 마오. 내일은 일패를 두 개 맡아 가지고 한 구루마에 한 것씩만 담아 오면 도장은 스무 개 찍어 줄 터이니 나중에 품삯을 탈 때는 아무의 도장이나 관계 없으니 두 개만 가지고 와서 친구의 것을 대신 받는다고만 하오. 그리고 그 품삯은 반 치는 당신이 먹고 반은 나를 주오. 알겠소?”
 
143
패장은 경춘의 귀에 대이고 이렇게 속삭였다.
 
144
“네 — 나는 못 알아들었습니다. 시키시는 대로 하기는 하지마는 무슨 영문인지를…….”
 
145
경춘이는 겨우 이렇게 입이 떨어졌다.
 
146
“이 친구 정신 없구나. 내가 보아하니 당신은 종일 해도 두세 구루마도 겨우 할 것 같으니까 하루 두 구루마만 하고 열 구루마삯을 받도록 해 준단 말이요.”
 
147
“왜 일패는 두 개를 맡나요.”
 
148
“하! 아직 모르겠소? 한 사람이 하루 열 구루마 이상은 못 하니까 두 개를 가져야 스무 구루마 삯을 탈 수 있지 않소. 그러면 열 구루마는 당신이 먹고 열 구루마는 내가 먹자는 심판이지…….”
 
149
경춘의 가슴은 어벙벙해지며 입이 비틀거렸다.
 
150
‘그러면 그렇지. 이놈의 세상에 웬 것 남의 사정을 보아 선심 써주는 사람이 있을 리가 있다. 이 놈이 고무까시를 해 먹자는 게로구나.’
 
151
그는 이렇게 짐작이 들며 쫓겨나지 않는 것은 고마우나 괜히 대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만일 반대를 한다면 당장에 쫓겨날 것이고 원주인에게 이 말을 고자질 한다면 패장이 쫓겨날 것이고 패장도 돈에 쪄들이니까 이런 생각을 한 것이리니 쫓겨난다면 불쌍하고 하니 좌우간 입에 올린 바라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152
“그만하면 알겠지?”
 
153
“옳아 그렇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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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경춘이는 고개를 끄덕끄덕 해 보였다.
 
155
그 이튿 날부터 경춘이는 패장이 시키는 대로 일은 하는 체만 하고 겨우 두 구루마만 퍼다 놓고 도장은 스무 개 맡았다. 삼백여 명 일꾼이 한 대 뒤 끌으며 제각금 많이 하려고 애쓰는 판이라 아 — 무도 알아채는 사람이 없었다.
 
156
그러나 경춘이는 가슴이 늘 움질움질하며 공연히 미안하고 주저가 되었다. 그래서 죽을 힘을 다 — 하여 하로 네 구루마씩 흙을 팠다. 단지 네 구루마를 파도 두 귀에서 엥엥 소리가 나며 잔등에 진땀에 나며 코에서 단내가 무럭무럭 났다. 저녁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왔어도 그 아내에게 참말을 바른대로 하지 못하고 하루 열 구루마를 한 까닭에 몸이 괴롭다고만 할 뿐이었다.
 
157
‘이 놈의 세상이 모조리 야바우판인데 요만한 것 쯤이야 무슨 큰 죄가 되겠나. 아니 아니다. 내 몸이 성하면야 이런 고무까시를 할 리가 있나. 좌우간 몸만 성해지면 이 충수로 무쳐 일을 많이 해주면 그만이다.’
 
158
그는 늘 이런 생각을 하며 제 혼자 주고받고 하였다.
 
 
159
지난 밤부터 갑자기 피를 토하며 다리가 졸리다고 고함을 치기 시작한 아내에게 시달려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종일 피곤하던 몸이라 곤한 잠이 올 것이것만 웬일인지 뒤꼭지가 서늘한 것이 머리통 속이 새파랗게 날카로워지며 잠이 오지 않았다.
 
160
마른 기침만 자꾸 연달아 나오며 가끔 두 눈이 횡 내몰리기만 하였다.
 
161
그러나 오늘은 기어이 일터로 나가야 하는 날이었다. 오늘은 간죠 — 하는 날이라 그 동안 일품을 받는 날이다. 오래간만에 삼 원이란 많은 돈이 손에 들어오는 날이다. 경춘의 가슴은 까닭 없이 울렁거렸다.
 
162
마누라는 백지같이 희고 여윈 얼굴을 돌이키며 움쩍 들어간 두 눈을 크게 떴다.
 
163
“오늘은 돈을 타오는 날이다. 먹고 싶은 것이 뭐요. 저녁때쯤 복촌동 의원에게도 가 볼터야.”
 
164
경춘이는 벌써 히분 — 하게 새어오는 지게문을 열고 한 번 가래를 내뱉고 아내의 손을 쓰다듬었다.
 
165
“아무것도 먹고 싶은게 없어요. 암해도 죽을라는 가바.”
 
166
어덥스럼하다. 새벽별 속에서 아내의 커다란 두 눈이 힘없이 내려 감기여 굵다란 눈물방울을 떨어드렸다.
 
167
“어 — 별 소리 다 — 하네. 죽기는 왜 죽어 쌀밥 먹고 약 먹고 하면 곧 낫지.”
 
168
경춘이는 가슴이 서늘해졌으나 스스로 힘을 내며 꾸짖듯 위로하였다.
 
169
“그렇지만 당신이 그처럼 물모양 없이 된 당신이 어떻게 일을 해내오. 하루 열 구루마를 하려면 오죽 힘이 들겠는가 —.”
 
170
아내는 여읜 왼손을 경춘의 무릎 위에 얹어 놓았다. 경춘의 가슴은 쾅 막히는 것 같이 아팠다. 그러나 하루 두 구루마만 해도 열 구루마 품을 받는다고 하여 아내의 염려를 덜어주고는 싶었으나 차마 부끄러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171
“별 소리는 다 — 하는구나. 그 까짓 일도 못 해내어. 인제는 걱정 없다. 닷새만큼 삼 원씩 꼭꼭 타 올 것이니 쌀밥을 먹어도 관계 없지.”
 
172
경춘이는 일부러 불퉁하여 이렇게 말하며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아내의 눈물을 이불자락으로 이리저리 훔쳐 주었다.
 
173
“흐을 — 죽어서 다시 태어나거든 우리도 잘 한번 살아봅시다.”
 
174
묵묵히 눈물만 흘리던 아내가 목이 메이며 이렇게 슬픈 말을 하였다.
 
175
“재수없게 새벽부터 울기는 제 — 기 왜 그래여. 죽어 다시 태어나서 잘 살어. 나는 이대로 이 생에서 한번 잘 살어볼 터인데. 이 턱을 좀 보아. 오래지 않아서 이 턱의 덕을 볼거야…….”
 
176
경춘이는 일부러 버럭 소리를 지르기는 하였으나 말소리는 부드럽게 아내를 위로하는 것이었다.
 
177
“턱이? 아이고 내가 그 턱의 덕을 볼 때까지 살겠는가요.”
 
178
일부러 기다란 아래턱을 아내에게 쑥 들이밀고 있는 경춘의 움쓱 들어간 뺨을 아내는 가만히 어루만졌다.
 
179
“왜 그래. 턱이 길면 늦복이 많다고 그러지 않았나. 인제 곧 늦복이 올거야.”
 
180
경춘이는 아내의 목을 끌어안으며 팔을 동게 놓았다.
 
181
“오늘은 그만 일터로 가지 말았으면.”
 
182
하는 경춘의 턱을 쓰다듬으며 약간 어리광 비슷이 미소하였다.
 
183
“어 — 오늘은 간죠하는 날인데 그 대신 내일은 안 갈 터야.”
 
184
“아이고 —.”
 
185
아내는 경춘의 팔이 무거운지 한숨을 하며 움직거렸다.
 
186
경춘이도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 아침죽을 끓였다. 솥에다 물 한 바가지를 붙고 콩나물 한 죽이를 썩둑썩둑 성글러 소금 한줌과 같이 솥에 넣어 불을 때었다. 이것이 경춘의 그 날 종일 연명할 양식이었다.
 
187
북덕북덕 끓어나자 곧 양푼에다 퍼담아 방 안에 들어가 대접에다 국물을 조금 떠서 윗목에 밀어놓고 자기 혼자 홀짝홀짝 먹기 시작했다. 둘려 누웠던 아내가 경춘을 향하여 입맛을 섰다.
 
188
저것은 병이 들어 누웠다는 이보다 먹지 못하네. 이 너머나 굶어서 저렇게 된 것이다. 이까짓 죽 남의 집 개도 먹지 않는 이 나물죽. 이나마 저것은 한껏 먹어보지 못했으리…… 경춘이는 오늘이 처음이 아니련만 유별나게 온갖 생각이 다 — 났다. 그러나 그것도 오늘 돈을 타게 될 터이니까 공연히 좋아서 온갖 생각이 다 — 나는 거지…… 하고 생각하며 참아 걸음이 내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일터로 나가고 말았다.
 
 
189
패장이 경춘이에게서 그의 아내가 앓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삼 원씩 꼭 같이 가르는 돈을 일 원 더 보태어 서 원을 경춘에게 주었다.
 
190
“구차할 때는 서로 도와야지 후에 갚으면 되지 않소.”
 
191
패장의 말소리가 떠 터지자 웬일인지 경춘의 가슴이 덜컥하였다. 그는 깜짝 놀라며
 
192
“고맙습니다. 후일에…….”
 
193
총망히 인사를 하고 불길한 느낌이 무럭 치받치며 갑자기 마치로 생철을 두들기는 것 같이 머리 속이 요란해졌다.
 
194
‘아이구 저것이 죽지나 않았나.’
 
195
그는 급히 집을 향하여 달렸다. 한참 쫓다가 그는 가슴이 깨어질 것 같아 멈추고 섰다.
 
196
‘아니다. 죽을리야 있겠나.’
 
197
그는 한숨을 후 — 쉬고 그 돈을 아내에게 모일 것을 생각하였다.
 
198
‘그것이 눈치채고 있지나 않은가…….’
 
199
그는 또 가슴이 불안하여졌다. 다른 때보다 태도가 이상하던 자기 아내의 얼굴이 생각나며 내 손에 쥐었던 돈을 펴보고 일 원짜리 한 장을 꼭꼭 접어 쌈지에다 넣었다. 하루 열 구루마씩을 했으니까 그 동안 다시 일을 했겠다.
 
200
‘오륙 삼십이라 삼 원이다 쌀 두 되, 보리 반 말. 명태 세 마리 명태는 국을 끓이고 오늘 저녁은 쌀로만 밥을 짓고…… 내일은 쌀치의 돈을 쓸 셈치고 북촌동 의원에게 가고.’
 
201
그는 짓다를 걸으며 이런 궁리를 하였다.
 
202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기어서 어느 사이에 자기 집에 들어섰다.
 
203
‘몹시 배가 고플걸…….’
 
204
그는 방 안에 들어서며 혼잣말같이 중얼거리며 윗목을 보았다. 아침에 떠두었던 죽국물은 손도 대이지 않고 그대로 있고 아내는 눈을 멀건이 뜬 채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있다. 그는 아내의 곁에 가 털벅 주저앉으며 손에 든 돈을 방바닥에 늘여 놓았다. 그러나 웬일인지 입술이 딱 붙고 떨어지지 않고 눈물이 뚝뚝 서너 방울 떨어졌다. 중도에서 쌀을 팔아가지고 오려다가 돈을 아내에게 먼저 보이려고 그대로 온 것이 도로 후회도 나며 도 쌈지 속에 일 원을 감추고 삼 원만 내놓는 것이 부끄럽고 죄송한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설레어서
 
205
‘이까짓 돈에…….’
 
206
‘양심과 아내를 속이고 부끄러운 생각만 하게 되고…….’
 
207
그는 이점저점 슬픈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먼저 무어라고 입을 띠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아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누운대로 가만히 그대로 천정만 바라보며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려 있을 뿐이었다.
 
208
“왜 오늘은 울기만 해 — 재수없이.”
 
209
경춘이는 획 돌아앉으며 슬쩍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210
“아이구.”
 
211
그는 가슴이 뭉클하며 아내에게 바싹 다가앉았다. 아내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던 것이었으나 경춘이는 오래도록 깨닫지 못하였다.
 
 
212
경춘의 머리 속에선 끊임없이 생철 부수는 요란스런 소리만 나며 자칫하면 숨이 꼴딱 넘어갈 것 같았다. 숨구멍에는 바늘을 꽂은 것 같이 꼬게 꼬게 아프기만 하여 훨훨 숨이 쉬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꾸 걸었다.
 
213
“북촌동 박의원집이 어대요?”
 
214
그는 길가 사람을 보고 대는 대로 물었다. 일에 캄캄 어두워진 골목을 겨우겨우 찾아 박의원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의원은 다른 데 병 보러 가고 없었다.
 
215
“어디 사시는 누구신가요? 돌아오시면 곧 보내드리겠소.”
 
216
의원의 아들인 듯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였다. 경춘이는 또 한 번 가슴이 콱 찔리우는 것 같았다.
 
217
“네 — 을동 저 — 융동에 있어요. 김경춘이 을동에 와서 택부자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다 — 알지요. 어서 보내주소. 꼭 부탁이요. 꼭 보내주시요.”
 
218
경춘이는 신신 부탁을 하였다. 의원의 아들을 힐끔 경춘의 얼굴을 쳐다보며 슬그머니 입을 비슷 열며 웃음을 참았다.
 
219
“택부자 댁이라고요.”
 
220
다시 한 번 다짐을 하였다.
 
221
“네 — 택부자 꼭 집이요…… 꼭…….”
 
222
그는 또다시 걸었다. 자기 집을 향하여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아내가 죽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남의 눈을 속이고 고마까시 해온 돈이라고 그 아내가 성이 나서 잠잠하고 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였다.
 
223
“이 까짓 것 내어버리지.”
 
224
그는 집에 돌아오자 또 아내를 흔들며 자꾸 말을 건넸다. 그러나 아내는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그는 참다 못하여 밖으로 뛰어나왔다. 한바퀴 뜰을 돌고 다시 방 안에 들어가 앉으니 내어버리려고 가지고 나갔던 돈은 그대로 손에 쥐인 채였다.
 
225
“택부자 집이 여기요?”
 
226
의원이 찾아온 것이었다.
 
227
경춘이는 멀건이 앉아 지게문을 열었다. 웬일인지 오늘은 그의 귀에 송충이같이 찡글치는 택부자라는 별명이 하나도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228
“택부자…… 내 내가 택부자요.”
 
229
그는 크게 대답을 하였다.
 
230
점잔을 빼고 방 안에 들어온 의원은 단번에 엉거주춤 하였다.
 
231
“어 — 벌써 글렀구려.”
 
232
“엉?”
 
233
경춘이는 깜짝 놀란 듯이 목을 놓고 울기 시작하였다. 손에 쥐였던 돈을 그제야 문을 열고 힐끗 내어 던졌다.
 
 
234
《신조선》(19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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