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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11.10
최서해
1
東 大 門[동대문]
 
2
─헛물켜던 이야기
 
3
헛물켜던 이야기나 하여 볼까 한다. 내가 동대문 밖 어떤 문예 잡지사에 있을 때였다. 늦은 봄 어느날 용산에 갔다가 저녁 때에 사로 돌아갔다. 사는 그때 그 잡지를 주관하던 D군의 집인데 건넌방은 사무실로 쓰고 나도 거기서 먹고 자고 하였다.
 
4
따스한 봄볕에 포근이 취한 나는 마루에 힘없이 걸터앉아서 구두끈을 끄르는데 부엌에서 무얼하던 D군의 부인이 나오면서,
 
5
“선생님, 낮에 전화가 왔어요.”
 
6
한다.
 
7
“어서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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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루로 올라가면서 D군의 부인을 보았다.
 
9
“채영숙이라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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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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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로 물었다. 이때 그것은 계집의 이름 같다 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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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채영숙이라는 이가 전화를 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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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군 부인은 그저 나를 의심스럽게 본다. 나는 암만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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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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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는 이맛살을 찌프리다가 암만해도 믿어지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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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무슨 거짓 말씀을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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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웃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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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참말이에요! 가만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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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더니 D군의 부인은 마루에 올라서서 건넌방을 들여다보면서,
 
20
“글쎄 저것 보셔요. 너무나 채영숙이 옳은데……. 하하.”
 
21
기가 막힌다는 듯이 웃었다. 나도 그이를 보았다. 마루에서 바라보이는 벽에 걸린 전화 위에 칠판을 달았는데 거기 ‘채영숙’이라고 썼다. 나는 머리를 숙이고 앉아서 내 기억에 있는 여자란 여자는 다 끄집어내었다. 친구들의 부인까지──그래야 채가도 없거니와 영숙이라는 이름도 없었다. 나는 꼭 거짓말 같았다.
 
22
“또 둘리오지 않나! 하하.”
 
23
나는 혼잣말처럼 뇌이면서 D군의 부인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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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미더우면 하는 수 없지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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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군의 부인도 웃으면서 안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건너방으로 들어가서 모아 놓은 원고를 정리했다. 그러나 마음이 싱숭거렸다. 참을 수 없었다.
 
26
“그래 전화를 뭐라구 해요!”
 
27
나는 앉은 채 소리를 크게 질렀다.
 
28
“하하, 저 선생님의 등다셨군! 마음이 조이지요? 하하.”
 
29
D군의 부인은 딴전을 친다. 나는 그 소리가 그리 싫지 않았다.
 
30
“아니 이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보시고……. 허허 그래 뭐라고 해요?”
 
31
나는 정색으로 묻기는 어째 마음이 간지러워서 아주 그렇지 않다는 어조로 물었다.
 
32
“그래 꼭 아시고 싶어요.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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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그러지 마시고 말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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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믄요……. 선생님이 원하시는데……. K선생님 계시냐고 묻더니 없다고 하니 언제나 오시느냐 하고는 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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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선생님이라는 것은 물론 나다.
 
36
“그래 여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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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게 여자냐고 물을 때 안된 생각이 떠올랐다. 마치 여자라 하면 수족을 못 쓰는 사내의 약점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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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여자가 아니고 사내겠어요? 또 모르는 척하시지!”
 
39
“참 몰라요!”
 
40
“모르면 그만두세요.”
 
41
나는 더 묻지 못했다. 미주알이 고주알이 알고 싶었고 또 여자라는데 호기심이 바싹 났지만 연애라면 겉으로 픽픽 코웃음치고 비웃던 나로서는 더 입을 열 수 없었다.
 
 
42
저녁 뒤에 나는 D군과 같이 마루에 나와 앉아서 흐릿흐릿해 가는 황혼 빛을 보고 있었다.
 
43
“저 K 선생님은 오늘 못 주무실걸. 호호…….”
 
44
D군 부인은 고요한 침묵을 깨쳤다. 나는 그것을 직각적으로 깨닫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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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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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모르는 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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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숙씨가 생각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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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숙씨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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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앉았던 D군은 빙그레 하면서 부인을 본다.
 
50
“몰라요. 저 선생님더러 물어 보세요…….호호.”
 
51
D군의 부인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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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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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군은 나를 돌아보았다.
 
54
“글쎄 누군지 내 아오? 부인께 하문하시우 하하.”
 
55
나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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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찐 수작인지 굉장하구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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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군은 빙긋 웃더니 부인을 돌아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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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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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60
“호호 이 양반은 왜 이리 애를 쓰시우 호호……. 그런 게 아니라 저 선생님께 애인의 전화가 왔단 말이오. 호호호…….”
 
61
“흐흐 좋겠구려!”
 
62
D군도 웃으면서 나를 돌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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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알고야 좋아도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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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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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은 나와 함께 웃었다. 나는 그것이 거짓말이거니 믿으면서도 공연히 좋았다. 그리 싫지 않았다.
 
66
그럭저럭 밤은 깊었다. 열시를 땅땅 울렸다. 달 없는 하늘 아래 모든것들은 어둠에 싸여서 고요히 잠들었다. 이따금 집 앞을 지나는 전차 소리가 요란히 들리고 어둠을 스쳐서 먼 산 날이 하늘 아래 레이스 끝처럼 보였다.
 
67
“따르르! 따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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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건넌방에서 전화가 요란히 울렸다. D군 부인은,
 
69
“에쿠 K 선생을 부르는 게로군! 어디 내가 받아 봐야.”
 
70
하면서 뛰어간다. 나는 그것이 물론 다른 전화거니 생각하면서도 또 채영숙이는 거짓말이다 믿으면서도 행여나 하는 희망도 없지 않는 동시에 그런 전화가 왔으면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71
“네! 네. 그렇습니다. 네, 계세요…….”
 
72
이때 옆에 앉았던 D군은 전등을 켰다. 어득하던 마루는 갑자기 환하여 졌다.
 
73
“네…… 잠깐 기다리세요……. 아……저 당신은 누구시예요……. 네, 채영숙씨…… 네 잠깐 기다리세요.”
 
74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에 공연히 가슴이 두근두근하면서 나도 모르게 빙긋 웃었다. 건넌방 전등을 켜놓고 빙글빙글 웃으면서 나오는 D군 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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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보세요……. 제가 거짓말이지요. 하하, 어서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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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놀리는 듯이 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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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르겠는데…….”
 
78
어쩐지 그저 일어서기가 싱겁게 생각난 나는 군소리를 하면서 마지못하는 태도로 전화 앞에 가서 수화기를 귀에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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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보세요.”
 
80
나는 부르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D군 내외는 나를 보면서 벙긋 웃었다.
 
81
“여보세요……. 누구세요……. K 선생님이세요?”
 
82
아니나다를까 수화기 청을 울리고 내 귀로 들어오는 소리는 비단을 찢는 듯이 쟁쟁하고도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 내 가슴을 울렁거렸다. 여자를 별로 접하여 보지 못하고 또 만날 기회가 있더라도 공연히 수줍고 가슴이 떨려서 낯도 바로 못 쳐드는 나는 전화로 울려 오는 소리에까지 온몸이 피가 찌르르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부드럽고 놓기가 어려웠다.
 
83
“네, 제가 K예요!”
 
84
나는 대답하였다.
 
85
“네, 헤헤헤 제─가…….”
 
86
D군이 내 대답을 흉내내고 웃더니,
 
87
“떨기는 왜 춘향 본 이 도령처럼 하하하!”
 
88
웃으면서 나를 본다. 내 소리는 과연 떨렸는가? 나는 그쪽에는 눈도 안 주는 체하면서 아주 점잖게 말을 하였다.
 
89
“저는요, 채영숙이에요…….”
 
90
저쪽 소리는 한층 안존하게 들렸다.
 
91
“채영숙이?”
 
92
“네……. 왜 모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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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얼른 기억이 안 나는데요.”
 
94
나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이 나지 않을수록 내 마음은 초조하였다.
 
95
“저─지금 틈이 있어요?”
 
96
여자의 소리는 퍽 침착하게 다정하게 울렸다.
 
97
“왜요?”
 
98
나는 어디까지든지 자존을 잃지 않으리라는 어조였다. 이러는 나의 소리와 태도가 D군이나 그 부인께는 퍽 부자연하게 보였을 것이다. 나는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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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왜 저를 모르세요!”
 
100
여자는 퍽 답답해 하는 어조였다.
 
101
“글쎄 누구신지?”
 
102
나는 말끝을 흐리마리해 버렸다. 이제는 울렁거리던 가슴이 좀 가라앉았다.
 
103
“보시면 아시겠어요! 지금 새이 계시면 동대문까지 나와 주시겠지요?
 
104
네! 꼭 뵈여야 할 텐데요!”
 
105
한 마디 두 마디 이어 가는 그의 소리는 나와 퍽 친분 있는 소리였다.
 
106
“글쎄……. 여까지 오실 수 없어요?”
 
107
나는 빨리 뛰어가고도 싶었으나 그래도 배짱을 튕겼다.
 
108
“거기까지는 갈 수 없고……. 좀 비밀히 뵙고 여쭐 말씀이 있는데 지금 좀 나오세요……. 여기는 동대문이니 바로 전차에서 내리는 데서 만납시다.”
 
109
“글쎄요…….”
 
110
“그러지 마시고 꼭 오세요. 네 기다리겠읍니다.”
 
111
“네 가지요.”
 
112
하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나는 얼른 가고 싶지 않았다. 끌리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의심도 났던 까닭이었다.
 
113
“선생님! 뭐래요?”
 
114
D군 부인은 호기심이 바싹 나서 묻는다.
 
115
“글쎄 동대문에서 지금 만나자고 하는데.”
 
116
나는 트릿한 수작으로 대답하였다.
 
117
“그러면 어서 가 보세요.”
 
118
웃던 D군의 부인은 정색으로 권한다.
 
119
“아니, 글쎄 가 본다는 것도 무턱대고 가겠어요? 알지 못하고…….”
 
120
나는 가고도 싶었으나 그저 속이는 것도 같고 또 D군 내외가 무슨 짓을 해 놓고 놀리는 것도 같았다. 후에 알고 보니 D군 내외는 히야까시일 따름이었고 나를 권한 것은 참말이었는데 그 당시의 나에게는 모두 의심스러웠고 나의 약점이나 드러나는 듯하였다.
 
121
“그래서는 어떤 아씨가 가다고이(짝사랑)를 하는 게지. 야 좋아라! 흐흐.”
 
122
하고 D군은 웃는다.
 
123
“가다고인? 발간 놈에게 누가……. 하하하.”
 
124
나는 그럴 듯이도 생각하였으나 역시 배짱을 튕기면서 마루에 앉았다. 그러나 눈앞에 동대문이 떠오르고 어스름한 속에 낯모를 계집의 방긋하는 낯이 떠올라서 마음이 들먹거렸다.
 
125
“왜 그러고 앉았어요? 가 보세요!”
 
126
D군 부인은 독촉이 성화 같다.
 
127
“무얼 그런 데까지 가요.”
 
128
나는 짜증 비슷하게 말했다.
 
129
“아주 또 마음은 좋아 가지고도……. 우리가 있으니…….흐흐.”
 
130
D군은 웃었다. 나는 가고 싶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 점점 났다. 그러나 금방 안 간다고 하고 간다 하기는 뭐하였다. 어서 가 보라는 재촉이 더욱 더 해 줬으면 하고 나는 바랬었다.
 
131
“그래도 가 봐.”
 
132
“안 가 보세요?”
 
133
D군 내외는 재미있는지 그저 웃었다.
 
134
“가 볼까?”
 
135
나는 일어서서 두루막과 모자를 쓰고 구두를 신었다. D군의 내외가 나의 뱃속이나 들여다보는 듯해서 퍽 불쾌하기도 하고 채영숙이가 이리로 찾아왔으면 영광스러울 것 같기도 하였다.
 
 
136
대문을 나서니 함정에서나 빠져나온 듯이 내 마음은 활로였다. 나는 아무도 안 보는 것이 퍽 마음에 들었다. 허둥허둥 달아나와서 동대문 가는 전차를 탔다.
 
137
전차에 앉은 내 머리에는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누군가? 채영숙! 채영숙! 채영숙이가 누군가? 어째서 조용히 만나려고 하는가? 나를 은근히 사모하고 사랑하는가? 그러나 내게 무엇을 볼 것이 있나? 내가 인물이 잘났나 돈이 있나? 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전차 거울 위에다 나를 슬쩍 비춰 보았다. 면도를 하지 않아서 수염이 더부룩한 게 마음에 꺼림하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턱을 만지다가 누가 보지나 않나 하고 돌아보았다. 찻속에 앉은 사람은 모두 나를 주의하고 뱃속을 들여다보는 듯해서 부끄러웠다. 그러나 또 내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떠돌았다.
 
138
무엇을 보았나? 오오 내가 글줄이나 쓰니 거기에 반했나? 그럴 리가 없다. 아마 다른 일로 보자는 게지……. 이렇게 생각은 하나 연애란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치밀어오르고 또 그렇기를 은근히 바랐다.
 
139
‘선생님, 나는 선생님을 사랑.’
 
140
하면서 그가 내 손을 쥔다면 나는 무어라 할까?
 
141
이렇게 생각하는 내 눈앞에는 동대문이 보였다. 오락가락하는 전차가 보였다. 파출소가 보였다. 전등이 보였다. 전차에서 내리고 오르는 사람이 보였다. 그 사람들 가운데 싸여 있는 어떤 여자의 그림자 ──흰 저고리 검정 치마에 크도 작도 않은 키! 쑥 부푼 이마! 큼직한 눈! 전등불 아래 교소를 머금어서 불그레한 두 뺨! 흰 이빨 쌔근거리는 숨! 나는 불식간에 그의 손을 잡았다.
 
142
“아아 사랑하는 그대여!”
 
143
내 소리는 입 밖에 나왔다. 나는 깜작 놀라서 눈을 뜨면서 차 안을 돌아보았다. 눈앞에 보이는 그림자는 다 스러지고 붉은 불빛과 너덧이나 되는 사람 내── 건너편에 앉은 사람은 혼자 빙그레 웃는다. 그 웃음은 나의 태도를 알아차린 듯하다. 나는 얼굴에 모닥불을 끼얹는 듯하였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기쁘고 그 모든 사람들보다 행복스럽게 생각났다.
 
144
전차에서 내린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가 어디 와서 기다리는가! 아직 오지 않았나? 하고 컴컴한 문간도 들여다보고 파출소 그늘도 엿보고 저쪽 동대문 부인병원 아래로도 가 보았다. 그리고 다시 전차 정류장에도 가 보았다. 하여튼 여자라는 여자는 다 빼지 않고 보았다. 그 가운데에서도 이쁜이면 더 유심히 보았다. 그것이 채영숙이나 아닌가 하는 의심이 나는 까닭이었다. 암만 찾아도 알 수 없었다. 어디 숨었나? 수줍고 부끄러운 생각에 못 나서는가? 거절을 당할까 보아서 주저거리나? 거절? 내야 거절을 한들 몹시 할 거 없는데……. 와서 기다리다가 갔나? 가만 있자 내가 전화받고…… 주저거리고…… 또 전차를 한참이나 기다렸고…… 그래서는 그새에 기다리다가 간 게로구나! 아니 그렇게 갔을려고……. 집에 또 전화가 가지 않았는지? 어디 전화를 하여 볼까? 이렇게 생각한 나는 자동 전화실로 향하였다. 파출소 옆에서 발을 떼려는데 저쪽 광화문으로 오는 차가 전차 회사 문 앞에 서더니 그리로써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 입은 여자가 내린다. 나는 그만 옮기던 발길을 멈추었다.
 
145
전차에서 내린 여자는 급히 동대문 쪽으로 오면서 사면을 살핀다. 누구를 찾는가? 나는 그의 일동일정을 빼지 않고 주의하였다. 그 여자는 동대문 앞에 와 서더니 사방을 휘휘 들러보다가 나를 유심히 보고는 어둑한 동대문 통을 들여다보면서 주저거린다. 그러더니 동대문 통으로 들어갈까 말까 하다가 다시 나를 본다. 그 태도가 나를 그리로 오라는 것 같았다. 나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나는 그이를 향하고 두어 걸음이나 발을 떼어 놓았다. 그 여자는 한참 주저거리고 나더니 문간 안으로 쑥 들어갔다. 내가 그리로 향하는 것을 보고 안심하고 누가 볼까 꺼리는 듯이 들어가는 태도이다. 나도 사면을 돌아보았다. 저쪽에 서 있는 순사가 수상히 보는 듯해서 얼른 그 여자를 따라가지 못하고 주저거리다가 그 순사가 달려오는 전차를 볼 때 쓸쩍 동대문 문각에 들어섰다. 컴컴한 문간으로 쏠려드는 바람은 찼다. 나는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면서 슬금슬금 걸음을 옮겨서 문간을 다 지나 저쪽에 나서다가 딱 섰다.
 
146
컴컴한 문 그림자 속에 쪼그리고 앉았는 여자는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서 일어서면서 치마를 내리면서 뛰어나간다. 그는 오줌을 누다가 놀라서 뛴다. 그는 채영숙이가 아니요. 오줌이 바빠서 들어왔던가 생각할 때 나는 그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허리가 부러지게 뱃살을 잡고 웃는 나는 그만 단념하고 도로 나와서 집으로 나가려고 전차를 기다렸다. 나는 서운하였다. 닭 쫓는 개가 지붕 쳐다보던 격으로 무엇을 잃은 듯도 하고 아까 전차에서 혼자 그리던 공상이 생각나서 불쾌하기도 하며 D군 내외를 볼 일이 부끄럽기도 하였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그저 무엇을 바라지 아니치 못하였다.
 
 
147
일주일 뒤에 나는 영도사로 놀러 갔다. 그것은 영도사에서 전춘회(餞春會)라는 놀음이 벌어진 까닭이었다. 거기는 D군도 갔고 B군 E군 T군도 갔으며 기생도 셋이나 있었다. 그 중에서도 금선이라는 기생은 나와 친면이 있는 사이였다.
 
148
술이 한 순배 돌아서 이야기가 벌어진 판이었다. 장난 좋아하는 B군은 나를 보면서,
 
149
“자네 접때 동대문 속에는 왜 들어갔다 나왔다 했나?”
 
150
하고 묻는다.
 
151
“언제?”
 
152
나는 채영숙이를 쫓아갔던 일이 번개같이 머리를 치는 동시에 의심이 왈칵 났다.
 
153
“언제라니? 에…… 한 육칠 일 되겠네!”
 
154
“어떻게 보았나?”
 
155
“응 그날 밤이 그게 퍽 늦어서 나는 어떤 친구의 부인이 부인병원에 입원하게 되여 인력거를 타고 광화문 쪽으로 오다 봤지! 왜 거긴 있었나?”
 
156
“채영숙이를 따라갔지!”
 
157
D군은 맞장구를 치면서 웃었다. 옆에 앉았던 금선이는 나오는 웃음을 못 참는다는 듯이 수건으로 입을 막는다. 나는 부끄러웠다.
 
158
“실없는 소리!”
 
159
나는 제발 그 말을 말아 달라는 듯이 D군을 보았다.
 
160
“그래 만나 봤나?”
 
161
B군은 그리 웃지도 않았다. 그 바람에 금선이는 데굴데굴 굴 듯이 웃는다.
 
162
저쪽에 앉은 T군도 죽자고 웃는다.
 
163
“자 ── 채영숙이 내 보여 줌세……. 금선이 자네 이리 나앉게……. 하하.”
 
164
B군도 못참는 듯이 웃었다. 방안은 웃음판이 되었다.
 
165
“오오 자네들이 K군을 헛물키웠네……. 하하”
 
166
하고 D군은 금선이와 E군이며 T군을 본다. 그제야 해혹이 풀린 나는 그만 얼굴에 모닥불을 끼얹는 듯하고 한편으로 인격의 유린을 받는 듯도 하며, 한편으로는 나의 못난이가 눈앞에 뵈는 듯이 불쾌하였다.
 
167
지금도 동대문을 볼 때면 그것이 생각나서 나는 혼자 웃고 이마를 찡그린다. 사내의 얼 없는 생각이 떠오르고 내 자신도 그러한 생각의 소유자인 사내인 것을 속일 수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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