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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夫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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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 7
계용묵
1
부부(夫婦)
 
2
하필 들어와 앉는다는 것이 그 밑이었다. 무엇이 장하다고 한 다리를 찢어져라 공중으로 들고 선 묘령의 단발양 - 서커스단의 광고 포스터 치고는 그리 추잡한 것은 나이로되, 앉아서 올려다보니 맹랑하다.
 
3
“여보, 이거 치어 줘요.”
 
4
매담에게 시선을 보내며 한 손으로 포스터를 가리켰다. 눈치 빠른 긱다껄은 매담의 지시도 있기 전에 달려와 정호의 머리 윗벽에 붙은 포스터를 뗀다.
 
5
“고히!”
 
6
그러나, 고히보다 시보리가 먼저 온다.
 
7
“시보리 안 써.”
 
8
“안 쓰세요?”
 
9
“안 써.”
 
10
그리고, 담배를 꺼내 왼손 엄지손가락의 손톱 위에 긁을 박으며,
 
11
“성냥!”
 
12
그러나, 그적엔, 커피가 왔다.
 
13
성이 가시는 듯이,
 
14
“어이, 성냥 가져와요.”
 
15
다시 크게 소리를 질러놓고 보니. 성냥갑은 이미 탁자 위에 놓여져 있는 것이 있다. 멋쩍게 집어들어 담배를 붙이고 나니 계집은 성냥을 또 가져온다.
 
16
할 말이 없다. 말없이 정호는 찻잔을 들었다.
 
17
열한시가 넘은 다방 안은 한산하기 짝이 없다. 건넌쪽 야자수 그늘아래 마주앉았던 한 쌍의 젊은 남녀가 가즈런히 떠나 나가니 정호에게는 들리지도 않는 ‘아베 마리아’ 곡이 쓸데없이 떠들고 있다.
 
18
담배 한 개 필 동안만 기다리라던 한군은 곱잡아 붙인 담배가 반이 넘어 타서도 오지 않는다.
 
19
필시, 술이 또 과해진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쪽의 사정이요, 정호로서는 이 위약이 여간 불쾌한 것이 아니다. 시가 바쁜 취직의 결과 여부가 알고 싶은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열시에는 꼭 들어와야 된다는 아내의 다짐을 받은 그 약속한 시간이 이미 지난 지 오래였으매 들어가면 또, 귀치않게 빠악빡 바가지를 긁혀야 할 것이 적지 아니 근심인데 한군을 만나지도 못하고 들어간다면 그적엔 또 거짓말을 꾸며대어야 할 것이 허스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거짓말이야 얼마든지 하면 못 하련만 너무도 해놓아서 인제는 실상 곧이들을 말을 좀체로 생각해 내기가 어렵다.
 
20
생각하면 참 우습기도 하고 기도 막혔다. 외출에서 늦게만 돌아오면 아무리 바른 말을 해야 곧이는 듣지 않고 그저 어느 계집을 보러갔던 줄만 믿고 하루같이 앙탈이다. 그러니, 실상 계집은 보러 아니 갔던 때도 기생이라든가 하다못해 카페 여급이라도 데리고 술을 먹었대야 왜 그랬느냐고 앙탈은 부리면서도 그래도 남편의 정체를 바로 캐어낸 것이 개운한 듯이, 그리고, 속지를 않은 것 같아 좀 마음을 풀지, 이건, 사실은 친구와 술잔을 나누다 어찌어찌 늦어져서 밤늦게 들어가도 그대로 고백을 하면 자꾸 바로 대라고 오금을 못 쓰게 무릎을 꼬집고 따집고 야단이니 그의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 주자면 거짓말을 아니 하게 되는 수가 없다.
 
21
그러나, 거짓말도 한정이 있지 밤낮 계집만을 보러 다녔달 수도 없고, 또 밤낮 같은 계집만을 보았다면 곧이들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실상 거짓말의 준비에도 궁핍한 참이다.
 
22
그래도, 한군을 만나 보고나 들어가면 취직 여부는 아직 모른다 하더라도 어쨌든 거짓말을 꾸며대는 데는 다소 참고가 될 것도 같은데 한군은 이렇게도 위약을 한다.
 
23
좀더 기다리면 오려나? 담배를 다시 한 개 들어내어 태우자니 종내 열두시를 치고 만다. 다방은 그만 철폐다.
 
24
정호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거짓말의 준비에 머리를 써야 할 경우에 다 다른다. 오늘 저녁은 어떤 계집과 또 무엇을 어떻게 놀았다고 꾸며대야 되노? 옹색한 생각에 머리를 쥐어짜며 다방을 나왔다.
 
 
25
기어코 아내는 뾰로퉁 얼굴을 찌푸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도 눈 한번 거들떠보는 법 없이 옷가지 위에 떨어친 눈을 그대로 숨쳐가는 바늘 끝에만 주고 앉았는 품은 묻지 않아도 알 일이었다.
 
26
지극히 섭섭한 일이다. 오늘 밤의 외출은 취직 건으로서의 그것이었으니 여보 어떻게 되었소 하고, 혹은, 반가이 맞아 줄지도 모르리라던 생각은 쓸데도 없는 자위에 틀림없었다.
 
27
이러한 아내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자존심이 허치 않는다. 언제나 이러한 경우이면 취하는 버릇 그대로 암말도 없이 넥타이를 끄르고 아랫목에 털썩 주저앉아 벽을 졌다.
 
28
“몇 시나 됐수?”
 
29
말잰 말이다.
 
30
손목에 얹히운 시계가 죽었을 이치 없건만 구태여 자기에게 묻는 말은 지금이 몇 시인데 인제야 들어오느냐는 투정이 아닐 수 없다.
 
31
“눈으로 못 보우?”
 
32
오는 말이 곱지 않으니 가는 말이 고울 리 없다.
 
33
“오늘은 술도 안 잡수셨구려.”
 
34
“찻집에서두 술 먹나?”
 
35
“여들시에 들어간 손님을 열두시가 넘도록 앉혀두는 찻집은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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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바늘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긴 하였으나. 으드등 찌푸린 낯은 여전히 화기를 주려잡고 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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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당신은 왜, 말을 늘, 글 비꼬아만 하군 하우?”
 
38
“제가 비꼬아서 하구 싶어 하우? 당신이 하게 만드니까 하는 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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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참!”
 
40
“허 참이 아니라 그렇지 머에요?”
 
41
“허!”
 
42
“글쎄 암만 허, 하구 얼굴을 나려쓸어두 전 못 속여요.”
 
43
“속이긴 또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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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래 여들시에 들어가 여지껏 찻집에만 앉았다 오셨수?”
 
45
길끗 눈을 남편의 얼굴에다 쏜다.
 
46
“뉘가 여지껏 찻집에 있다 왔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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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당신이 찻집에서 한선생과 만나자고 했다고 그리고 나가시지 않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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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찻집에서 만나자고 해서 나갔는데 무엇이 어쨌단 말요?”
 
49
“아니 그럼 여지껏 찻집에만 있다 왔단 말에요? 그래?”
 
50
“제발 좀 그러지 마러요. 왜 그리 사람을 믿지를 못하우? 내 속 시원히 다녀들어온 경과를 곧이곧대루 보고 하리다. 여들시에 ‘전원’으로 가서 한군을 만나기는 했으나 아직 사장을 못 만나 보았다고 하기에 그러면 이제라두 알아보라고 ××회사로 보내고 ‘샹크레르’에서 열 한시에 또 만나자구 약속을 하구는 본정으루 가서 책전엘 좀 돌아다니다가 다시 약속한 대루 ‘샹크레르’ 루 와서 기다렸으나 한군이 오지를 않어서 여지껏 기다리다 돌아오는 길인데 무엇이 그리 의심스럽소?”
 
51
“귀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는데요?”
 
52
기어이 또 오늘도 거짓말을 듣고야 말려는 심사인가 보다.
 
53
정호는 금시 걸어지는 침이 입안에 쓰디씀을 느끼고 입맛을 다시었다.
 
54
“왜, 대답을 못 하우? 인제는 거짓말을 못 꾸며대겠수? 아마 취직이라는 건 외출을 하기 위한 구실인가 봐? 언제부터 한군 한군 하고 된다는 취직이 이게 벌써 한 달이 넘었음 넘었지 한 달에 하루래두 모자라지는 않었을 걸요? 그래 바루 못 대요? 갔던 곳을…….”
 
55
휙 돌아앉으며 일감을 뒤로 던진다. 바로 대지 않으면 어디까지든지 해 보겠다는 어투요, 태도다.
 
56
그러나, 이미 말한 것이 거짓 없는 고백이다. 물끄러미 정호는 아내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며 대답할 말에 지극히 빈곤함을 느낀다.
 
57
“왜, 거짓말을 또 못 꾸며대구 앉었수? 그래 대답하기두 거북한 걸 계집질은 왜 해요? 허길! 내 속 태워주구, 가정을 불화케 만들구…….”
 
58
“뭐이?”
 
59
정호의 감정은 순간 아무것도 모를 만치 흥분에 젖어든다.
 
60
“그럼 계집질을 당신이 안 하구 왔단 말요? 그러면 자정이 넘두룩 글쎄 찻집에만 그냥 있었다는 거야 말이 되야죠.”
 
61
“아, 뭣이?”
 
62
정호는 저도 모르게 물팍을 한 걸음 아내의 곁으로 미끄러쳐 놓는다.
 
63
“제가 그렇게 싫수? 네? 이건 묻는 내가 잘못이지. 싫기에 계집을 볼 게 아닌가? 저는 그렇게두 당신 곁을 떨어지고 싶지가 않은데, 당신을 참 제 속을 이렇게두 몰라준단 말이우. 정이란 하나만인 것두 당신은 아지요? 둘은 아니구. 그런데두 저를 몰라주는 걸 보면 당신의 정이 가정에서 멀어져 가는 것은 뭐 빤한 일이죠, 빤한 일이에요.”
 
64
기가 막히는 소리였다. 이렇게도 아내는 자기의 속을 몰라준다! 어떻게도 자기는 아내를 사랑하는 것인고? 그 기막힌 사정의 마음을 순간 정호는 아내에게 말끔히 털어 보일 수 없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안타까웠다. 이러한 자기의 속을 아내는 왜 이리도 모르고 의심만 하는 것일까. 그 의심만 푼다면 원만한 사랑 속에 아주 행복한 가정이 이루어질 것 같은데……? 하니 그 순간 정호는 아내의 그 의심을 어서 바삐 풀어 사랑하고 싶은 마음의 정이 마음껏 자기에기로 건너오므로 또한 그것을 마음껏 받아들여서 정이 서로 얼크러져 보고 싶은 충동이 불일 듯하였다. 그래서 아내의 마음도 시바삐 풀어 주므로 살뜰히 오는 정을 사고 싶었다. 그러니, 아내는 얼마나 자기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까지 자기를 의심하는 걸고 하는 생각이 도리어 들여 무릎팍을 내어밀 때 쥐어졌던 주먹과 성은 슬프디 슬픈 정으로 돌려 풀리고 만다.
 
65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당신은 저를 사랑하지는 못하죠? 사내로 생겨서 전년 외입을 안 하리라구는 저도 믿지는 않어요. 그러나, 그것을 속이는 건 아내에게 사랑이 없다는 증거거든요. 아내에게 남편으로서야 못 할 말이 세상에 무에 있겠어요? 글쎄 -.”
 
66
“참 할 수 없군. 당신은 한 번 두 속일 수가 없으니 원 참!”
 
67
아내의 그 자기를 살뜰히 사랑하는 것 같은 정에 사로잡힌 정호는 시바삐 거짓말이라도 해서 그 아파하는 마음을 어서 풀어 주고 싶은 충동에 못 이긴다.
 
68
“글쎄 난 못 속여요. 남편한테 속구 살게스리 그렇게 천치는 아니거든요.”
 
69
비로소 남편의 입에서 바른 말이(실상은 거짓말) 나오게 만들었다는 장함과 또 남편의 속을 알게 되는 것들의 반가움이 이야기도 듣기 전에 벌써 그의 낯갗에 찡그렸던 주름살을 어느 정도까지 펴 놓기에 족하였다.
 
70
“아까 그적에 말이야 ‘샹크레르’를 갔더니 기다리는 한군은 오지 않구 왜 지금 내가 말 있는 ××회사에 타이피스트가 있지? 그 여자가 엉뚱강산에 들어오거든. 그래, 심심두 하던 차에 둘이 앉어서 이야기를 하다가 실인 즉 그 여자와 같이 진고개루 갔던 게야, 자, 이제 실토를 했으니 심사가 편안하우?”
 
71
하기 싫은 거짓말이었으나 이 순간 빙그레 웃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을 때 그것은 결코 슬픈 일만이 아님을 그 순간 인식했다.
 
72
“그것 보아요 글쎄 저는 못 속인다니께. 인제 그 여급은 어떻게 또 돌려 따구 타이피스트에게로 돌라붙었수? 취직을 한다구 거기 다니드니 계집을 끌러 다녔구려, 참, 그런 수는 용하시지. 내, 또, 고년이 심상 치두 않다구 늘 생각은 해 왔지. 그래 취직은 거짓말이지요? 내 그 취직 인제 곧이는 안들을 걸. 여보! 취직보다 계집에 더 마음이 있으니 어떡헐 테요? 글쎄. 집안은 오가리처럼 자꾸 오그라만 들구, 아이 참 지긋지긋한 취직이야. 그래 본정 가선 뭣을 했에요? 당신 성질에 그저 돌아다니기만은 안 했겠죠?”
 
73
“그저 찻집 순례지 하긴 뭘 해 -.”
 
74
“건 또 거짓말이에요. 왜, 찻집에만 들어가 있었을라구요? 계집을 다리구 간 차비에…….”
 
75
그러나, 아무리 거짓말을 꾸며댄다 하더라도, 또, 아내의 마음을 풀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아내가 시원하게 듣고자 하기까지의 그 관계라는 것이 있었다고는 아무리 거짓말이라도 차마 하는 수가 없었다.
 
76
“인제 더 그런 말을 물으면 나는 불쾌해하겠소. 그만 잡시다. 자리깔우?”
 
77
그러나, 아내는 그것까지 들어야 개운하겠다는 그러한 표정이 아직 완전히 풀리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어느 정도까지 휘여드는 마음은 그런 이야기만으로서도 커다란 효과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78
“오늘 밤은 사랑하는 계집과 같이 산보를 했으니께 아주 단잠을 주무시겠지.”
 
79
빈정을 거리면서도 깔라는 대로 자리는 깐다.
 
80
비로소 정호는 한숨을 쉬었다.
 
81
이튿날도 저녁때에야 한군은 소식을 전한다.
 
82
그러나 보람 있는 소식이다. 늦었어도 반갑다.
 
 
83
어제 저녁은 실례했네. 술이 그랬네그려. 전화로래도 못 간다는 말을 알리고 싶었으나, 원, 선술집에 전화가 있어야 말이지. 그러나, 반가운 소식을 이제 전하니 엊저녁의 노염은 풀리고도 남음이 있을 줄 아네. 되었네 되었어, 취직이 되었단 말일세. 내 어제 저녁 바루 그 길로 사장을 만나보고 따졌던 것일세. 이제 회사에 일이 정리되는대로 정식 통첩이 군께로 날아들겔세. 멀어도 아마 사흘 후이면 될 것이라 아네. 일 없이 바뻐 용달을 시키고 못 가네. 나 지금 또 술 먹으러 가는 길이야.
 
 
84
아니 반가울 수 없었다. 실직한 지가 일 년, 실로 군색함이 이를 데 없었다. 빚을 내라 빚쟁이한테 모욕을 당하고 반찬값을 내라 아내한테 쪼들림을 받고 -.
 
85
“여보! 이것 좀 와 보우.”
 
86
메신저가 문 밖에 나서기가 바쁘게 정호는 아내를 불렀다.
 
87
아내로 더불어 아니 같이 반가워할 수 없는 성질의 편지인 것이다.
 
88
그러나, 아내는 그것이 벌써 무엇인지를 아 아는 듯이,
 
89
“뉘게서 온 거에요?”
 
90
할 뿐, 그 편지를 보기에 흥미조차 느끼지 않는다.
 
91
“한군, 한군이 했어.”
 
92
같이 반가워할 것을 믿고 알리나,
 
93
“네에.”
 
94
마지못해 편지를 당기어 보는 체, 보고 나서도 반가워하는 빛은 없다. 흡사 무슨 일을 저지른 때의 그것과 같은 태도다.
 
95
“한군 참, 이번에 수구해서.”
 
96
“그래두 취직이 될 때가 있긴 있군요.”
 
97
하는, 소리도 힘이 없다.
 
98
까닭 모를 일이었다. 아내도 어떻게나 기다리던 그런 취직이었다. 결코 반갑지 않을 이치 없는데 아내의 태도는 그렇지 않다. 낮에 옷감을 끊으러 화신엔가를 다녀온다고 할 때부터 어째 낯갗에 화기가 없어 보이는 것 같더니 필시 무슨 불쾌한 일이 그 사이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것이 아직 풀리지 않은 탓인가.
 
99
“아까 사온 저구리감 거 얼마라죠?”
 
100
게서 무슨 단서를 잡아볼까 물었다.
 
101
“삼 원 오십 전에요. 그래두 썩 좋지는 못한가 봐요.”
 
102
“요즘 화신엔 사람 많죠?”
 
103
“많다니! 웬 옷감들을 그리 끊어 내겠어요.”
 
104
“거리는 인제 덥죠?”
 
105
“아니 참 아까운 봄이 인젠 다 가세요.”
 
106
그러니, 원인을 알 수가 있나.
 
107
“인젠 아침밥 때문에 당신 새벽잠 다 잤소.”
 
108
말을 돌려 물었다.
 
109
“새벽밥 짓게 된 걸 잠에다 비하겠어요?”
 
110
어딘지 그 말 속에는 어감에 부자연한 맛이 깃들인 듯하다.
 
111
“그래두 그 고소한 아침잠 못 자게 될 게 난 근심인데.”
 
112
“늦잠 못 자기야 저나 당신이나 매일반 아니겠어요.”
 
113
가까스로 물어보나 경위를 알 수 없다.
 
114
그러나 그 부자연한 맛은 여전히 어딘지 모르게 감출 수 없이 드러나 진심으로의 반가워하는 기색이 없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115
알 수 없는 채 그것은 며칠이 지난다.
 
 
116
사흘이 지나도 회사에선 기별이 없다. 오늘이나 있으려나 해도 내일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러면 내일이나? 그래도 아닌 것을 한 주일을 기다려서도 소식은 있는 것이 아니다.
 
117
오늘도 아침 체부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려 보았으나 문앞을 그저 지나가고 만다. 필경 까닭이 있는 일이다.
 
118
정호는 더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한군을 찾아 집을 나섰다.
 
119
그러나 급기야 한군을 만났을 때의 정호는 뜻도 않았던 사실에 놀라고 도리어 한군을 만나지 않았던 것만 못한 무안에 머리를 못 들었다.
 
120
“아, 자네 사람을 망신을 시켜도 분수가 있지 그게 대체 뭐란 말야?”
 
121
만나기가 바쁘게 눈이 둥글해서 마주 서는 한군의 태도에는 적이 심상치 않은 데가 있었다. 그러나 까닭을 모르는 정호라 멍하니 마주 바라보고 서 있을 밖에.
 
122
“응? 아니 그게 대체 어찌된 일야? 글쎄 일이……?”
 
123
다시 재처 묻는 것이었으나 정호로선 그것이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지 해득할 수가 없었다.
 
124
“무엇이 어쨌다고 야단이야? 좌우간 껀을 말하고 봐야지 무두무미로 원 알 수가 있나?”
 
125
“말 다 해야 알겠나? 자네 취직 껀 말이네 취직 껀.”
 
126
“아니 참, 그게 어찌된 일인구? 곧 기별이 있으리라더니…….”
 
127
“기별! 하하 이 사람 참, 일이 어떻게 되었다구 기별이 가겠나? 다 된 죽에다가 코를 떨러놨으니…….”
 
128
“뭐!”
 
129
“아, 그 회사에 타이피스트를 보구 남의 서방을 빼앗느니 어째느니 하고 자네 부인이 찾아와서 욕을 하고 일대 전쟁이 벌어지는 판에 사장 나리까지 그 광경을 목도했다는데?”
 
130
“응?”
 
131
놀라운 소리였다. 듣고 보니 마취는 데가 있다. 아내가 한군의 편지를 보고도 반가워하는 표정이 없이 꼭 무슨 일을 저지른 사람 같더니 하는 생각이 선뜻 가슴에 집히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하니 옷감을 끊으러 나갔던 것은 결국 핑계였고 목적은 타이피스를 만나러 그 회사를 찾아갔던 것이었음을 이제 짐작할 수 있었다. 정호는 입맛이 썼다. 그날 저녁 창졸간 거짓말을 꾸며대일 것이 없어 생각나는 대로 그만 그 타이피스트를 끄집어다 거들었더니 이것을 아내는 곧이듣고 이렇게도 일을 저질러 놓았음에 틀림없었다.
 
132
“사실인가 그게?”
 
133
창피한 물음인 줄은 모름이 아니었으나, 너무도 의외라 한번 따지어 아니 물어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134
“사실이라니! 이 사람! 말을 좀 듣게나 글쎄. 그러니 사장이야 자네와 타이피스트와 그 어떤 관계가 있는 줄로 알지 않을 겐가? 그러니 지금 사장과 그 타이피스트와 어떠한 새라구 그 취직이 되겠나. 아, 어제 그 회사 앞을 지나다가 자네도 이즘은 출근을 할 것 같고 해서 들렸더니 제에길할 사장한테 욕만 실컷 얻어먹었네. 그게 무슨 짓이겠나 글쎄!”
 
135
이까지 이야기하는데 정호는 뭐라고 입을 벌릴 말이 없었다.
 
136
“어쨌든 자네 연애 사냥은 참 용하데. 몇 번 만나지도 않은 그 계집을 또 언제 그렇게 후렸던 겐가? 관계가 아주 단단했기에 자네 부인두 그렇게 분을 참지 못했겠지.”
 
137
오직 부끄러울 따름이다. 아무리 허물없는 벗의 앞이라 하여도 그 수치스러운 마음은 정면으로 얼굴을 들고 마주 대할 수가 없었다.
 
138
“아내가 본래 몸이 허약한 데다 그동안 앓고 나서 정신이 좀 이상한 듯 하더니…… 그러나 마뜩해 그런 짓이야…….”
 
139
그렇다고, 그러니, 아내에게 그런 책임을 돌리긴 창피한 일이요, 모른다니 말이 안 되어 이렇게 꾸며는 대었으나, 이러한 말이 그의 귀에 곧이 들어가 맞길 바랄 수는 없다. 그러니 그러한 아내로서의 남편인 자기의 꼴이 그의 인상에서 좀체 사라지진 않을 게라고 보여 속으론 자기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입을 비쭉 하고 비웃는 것도 같다.
 
140
하지만 이미 일은 저질러져서 그러한 치소를 아니 받게는 되지 못하였다. 말없는 한숨을 정호는 속으로 삼키고 수치감의 흥분에 저도 모르게 옆에 찔렀던 손이 부르르 하고 호주머니 속에서 그대로 떨림을 깨달았다.
 
141
그러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정호의 손은 아무 작용도 하기를 잊은 힘없는 손이었다.
 
142
“아이 지금 돌아오세요? 오늘은 날이 짐작 더운데! 아이 저 이마에 땀 보셔!”
 
143
마주 달려나와 모자를 받고 웃옷을 받을 때 일찍이 돌아오면 이렇게도 반가이 맞는 아내가? 하는 생각이 몰리었던 그의 손에 힘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온통 빼앗았던 것이다.
 
144
“으흐응!”
 
145
다만 괴로운 마음으로 이렇게 한숨과 같이 갚았을 뿐, 등덜미의 땀을 씻어 주는 대로 아내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146
(己卯[기묘] 5월)
 
147
〔발표지〕《문장》(1939. 7.)
148
〔수록단행본〕*『백치 아다다』(대조사, 1946)
【원문】부부(夫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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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4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