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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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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6
이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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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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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수明秀는 오늘 밤에도 역시 얼근하게 취한 기분으로 거의 열두 시 되었을 때에 자기 집 문을 두들겼다. 그는 문 열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밤늦게 돌아와서는 으레 하던 후회를 다시 하게 되었다. 최근 일 년을 두고 그가 저녁에 집에 붙어 앉은 일이 별로 없었다. 대개는 친구와 어울려서 밤늦도록 술잔이나 기울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비록 일찍이 돌아왔다가도 저녁 밥상이 나가기가 무섭게 그는 있지 못할 곳에 있었던 것처럼 밖으로 뛰어나가버렸다가 밤이 늦은 뒤에 돌아와서는 혀 곱은 소리로 가족을 깨워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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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가족이 곤한 잠을 못 이기어 눈을 부비면서 문을 열어줄 때마다 그는 진심으로 미안한 생각을 하고 이 다음부터는 아무쪼록 밤출입을 하지 않고, 될 수 있으면 나갔다가도 일찍이 돌아올 것을 마음으로 맹서하고 자기의 불규칙한 생활을 부끄럽게 생각하였었다. 그러나 그 이튿날이 되면 무슨 일이든지 반드시 생겨서 그로 하여금 밤늦게 돌아가는 구실을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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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에는 비교적 일찍이 집 안에서 아내의 대답이 나왔다. 그는 더욱 미안한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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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다 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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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명수는 대문 안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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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남편을 안으로 들이고 문을 잠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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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석호 조카가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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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가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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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수는 정신이 번쩍 났다. 석호가 이렇게 먼 서울까지 찾아올 줄은 뜻밖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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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는 명수의 당질이었다. 시골에서 거의 같이 살아나다시피 한 친척이요 죽마고우였다. 그때의 명수의 사촌은 그의 고향 C지방에서는 굴지하는 부호였었다. 그리하여 당질 석호는 부잣집 외아들롤 금지옥엽으로 자라났었다. 그의 부모들까지도 석호의 뜻을 받기에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으므로, 그의 왈패스러운 행동과 기탄없는 버릇이 그 집에서 신세지는 돈 없는 집 아들을 흔히 울리었지마는, 그 반면에는 인정도 있고 의리도 알아서 세상의 다른 부잣집 바보 아들과는 두뇌가 좀 달랐었다. 명수의 종형은 자기 아들의 교육에 가장 열심을 가지고 그 아들이 보통학교를 마친 뒤에는 서울로 유학을 시켰다. 그때에 명수도 경성에서 어느 중학교를 다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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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는 서울로 온 뒤에 집안 감독도 없고, 또는 부잣집 아들이란 바람에 유인하는 잡놈들이 들러붙어서 연극장 같은 곳으로 꾀이는 까닭에, 그가 겨우 중학교 이년 급부터 광무대에서 이름이 높은 어느 광대 기생을 상관하게 되어 매일 불량자와 추축이 되어 학교는 가지 않고 학비만 이 핑계 저 핑계 하고 갖다 썼다. 그때에 명수의 집은 넉넉지는 못하였으나, 자기의 종형 석호 아버지는 C주의 부호였으므로, 명수의 학비까지라도 도와주어오던 터이었다. 그만큼 명수는 자기의 종형에게 장래를 촉망받아오던 터이었다. 명수는 비록 어렸었지만, 조카의 방탕한 생활에 머리가 아니 아플 수가 없었다. 그의 방종한 생활이 자기의 학비에도 어느 때이면 영향을 미치어 학교에 월사금도 내지 못하고 하숙에서 낮잠을 자게 하였다. 이러할 때마다 명수는 진심으로 석호에게 충고를 하였다. 그러나 석호는 분粉 세수를 하고, 비단옷으로 몸을 감고, 밤이면 무대 앞 가까이 가서 광대 기생의 유혹의 추파에 녹고 돌아오는 버릇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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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은 명수도 하는 수 없이 자기 종형에게 석호의 행동을 편지로 고하였다. 그 편지가 도리어 자기 종형에게도 불유쾌한 감정을 일으키게 되었고, 석호에게는 아주 악감을 사게 되었다. 그리하여 필경은 한 하숙에 있으면서도 언어상통까지 없고야 말았다. 그때 어린 명수의 처지는 참으로 딱하였다. 종형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 아들과는 말도 하지 않게 된 것은, 허물이 누구에게 있었든지 간에 그 종형에 대하여 퍽이나 미안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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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때이면 학교도 다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가서 장사를 하든지 농사를 짓든지, 월급쟁이 노릇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어린 가슴을 매우 태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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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얼마 아니 되어 석호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명수는 그대로 서울에 처져 있었다. 명수는 그 뒤에 학비의 곤란으로 퍽이나 많은 고생을 하였으나, 석호가 있을 때에 창피하고 미안한 생각을 하던 그때보다는 마음은 편하였다. 명수가 조카 석호가 있을 때같이 형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자기 아들과 같이 있지 않다는 그러한 정소情疏한 종형의 생각도 생각이려니와, 그 종형의 아편 중독으로 세상일을 제쳐놓고 거기에 향락하는 까닭에, 종래의 학비 곤란 같은 것은 전혀 안중에 넣을 틈조차 없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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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수가 여름 내 하숙의 눈칫밥을 먹어가면서 남산공원의 벤치에서 이슬을 후줄근하게 맞아가며 밤을 새는 것을 아편에 도취하여 공중에 환상을 그리고 무아지경에서 방황하는 그 종형이 알 리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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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수가 이십 전후에 성격상으로 파산한 사람같이 남의 얼굴빛을 살피고, 할 말을 못하고, 기가 죽어 지낸 것은 전혀 학비 곤란으로 극도의 신경쇠약에 걸렸던 것이다. 명수가 중학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갔을 때에는 종형의 사기는 벌써 기울어져서 날마다 가산이 차압 경매를 당하고, 아편 빠는 것이 세상에 알리어 C고을의 큰 소문거리가 되었다. 종형은 필경 아편을 떼려던 약의 중독으로 그는 영영 세상을 떠나게 되었었다. 그때의 젊은 명수의 생각에는 자기 종형의 죽음이 매우 깨끗한 죽음이라고까지 생각하였었다. 종형은 허물을 고치려다가 죽었다. 그만큼 그의 최후를 동정하고 존경하였었다. 타락한 상황에서 뛰어나오려고 죽음과 다툰 그의 용기를 마음으로 칭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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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종형의 집안 상태는 난마亂麻와 같았다. 일본에서 돌아온 석호는 집안 형편이 어떻게 된 것은 조금도 몰랐다. 그는 부잣집 도련님 그대로 있었다. 이름 높았던 부호이었던 만큼 아직도 먹을 것이 남아 있지나 아니한가 하고, 협잡꾼들은 여름 석양에 모기떼같이 모여들었다. 망한 부홋집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로 갈등이 생겨서 서로 공을 다투고, 서로 보호자가 되려다가 집안 대세는 이미 망하는 편으로 기울어지게 되어 재산 전부를 C고을에서도 남의 재산을 횡령하기로 제일 경험도 많고 이름도 높은 실업가에게 보호하고 정리해준다는 아름다운 말 아래서 보기좋게 송두리째 횡령을 당하고, 당질 되는 석호는 술값, 밥값을 그에게 얻어 쓰게 되었다. 횡령한 부호는 도리어 생색을 내었다. 이야말로 제 것 주고 빌어먹는 셈이었다. 명수는 종형 죽은 뒤에 C고을을 떠나 어느 시골 소학교 교원 노릇을 갔었다. 그 뒤로 석호의 집 형편이 어떻게 되었단 말을 풍편에 더러 듣기는 하였지만, 자세한 것은 모르고 지내다가 사오 년 뒤 여름에 명수는 참으로 놀랍고 기막힌 사실을 하나 발견하였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요, 아편과는 원수가 되어야 할 석호가 모루히네 중독자가 된 것이었다. 아비를 죽이고 가족을 곤궁에 빠지게 한 아편과 석호가 떠날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는 것은 암만해도 곧이들리지 않아서, 처음에는 그러할 이치가 없다 하여 석호의 아편 중독설을 부인하였었다. 그러나 사실은 어찌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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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수는 그때에 석호에게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약한 마음에 일종의 환멸 비슷한 비애까지 느끼었었다. 아편으로 죽은 사람의 아들이 그 아비 죽은 지 몇 해가 되지 못하여 잇따라 아편 중독이 되고 만 야속한 사실은 세상 사람의 침 뱉고 나무라는 목표가 아니 될 수 없었다. 석호야말로 아편과 인연을 떼지 않고 그대로 지낸단 것은 북망산의 초빈 밑에 숨어 지내는 묘귀墓鬼나 다름없는 처지에 있었던 것이다. 명수는 얼마 동안 자기의 볼일을 제쳐놓고 석호의 아편 인을 떼려고 혹은 병원에서, 혹은 절에서 그의 병마와 석호 자신 이상으로 다투어보았으나 모두 실패를 하였다. 그는 절에서 치료하다가 도망질을 쳤다. 병원에서도 의사와 싸우고 도망질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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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명수는 ‘이것은 사람 못되고 말 것이라.’고 단념한 뒤에, 그의 행동에 대하여 아무러한 간섭이나 충고도 없이 사오륙 년을 지났었다. 이것은 명수가 교원도 그만두고 일본에 가서 여러 해를 방랑하다가 그대로 서울에 눌러서 생활을 하게 되어 서로 거리가 떨어져 있는 것도 원인이었지만, 그것보다 전인격적으로 당질에 대해서 멸시하는 감정을 참을 수 없는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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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해에 C고을에 볼일이 있어 들렸더니 석호가 찾아왔었다. 그때의 석호는 신수 좋은 거지였었다. 마침 아편 중독자로 그가 검거가 되어 감옥에서 아편을 떼고 나온 지가 얼마 아니 되는 까닭에, 얼굴만은 거의 완전한 사람으로 보였다. 명수도 마음으로 기뻐하였다. 그러나 마음으로 괴상하게 생각한 것은 그의 행동에는 어딘지 아직도 양심에 가책을 받는 듯한 곳이 남아 있는 것 같은 것이었다. 그의 약간 금전을 청하는 태도가 매우 비열해 보일뿐이었고, 사람이 궁하다고 저렇게까지 품성이 썩었을까 생각할 때에, 옛날에 지내던 정분으로 보든지 혈육의 관계로 보든지 눈물이 없을 수 없었다. 저러는 석호는 아니었었다. 그는 부잣집 아들인 만큼 사람에게 굴치 않는 기개도 있었다. 아무리 아쉬운 일이 있어도 남에게 혀 짧은 소리를 하지 않던 그이였었다. 그러한 기개는 간 곳 없고, 비열과 허위만 남겨지고 있는 석호를 아무리 생각해도 완전한 사람으로는 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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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튿날 바로 석호의 흘린 눈물과 고백의 한숨이 허위였던 것을 들었다. 그는 그날 바로 아편쟁이 소굴로 가서 아편을 찔렀다는 것을 보고 하는 일 좋아하는 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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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일이 있은 뒤로는 석호에게 찾아올 운명은 종로 네거리에서 가마니대기 케이프를 입고 정류장 근처에서 구걸하는 그들과 조금도 다름없으리라고 명수는 아주 절망하였었다. 그 뒤에 들어도 석호가 아편 떼었단 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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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사람같이 생각지도 않던 못된 석호가 별안간에 서울로 자기를 찾아와서 넓지 못한 집에 자리를 보전하였단 것은 뜻도 하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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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수는 석호 왔단 말에 술이 번쩍 깨는 것 같았다. 늦게 돌아올 때마다 느끼던 가족에게 미안한 생각도 오늘 저녁만은 나올 여유가 없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든, 그가 악인이든 선인이든 어떻게 되었나 하는 보고 싶은 생각도 번쩍 나서, 그는 바쁜 걸음으로 방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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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목에 커다란 남자가 술이 취한 얼굴로 코를 쿨쿨 골고 드러누웠다. 얼굴이 알아보지 못할 만큼 유들해 보였다. 그러나 저가 아편을 아주 떼었나 하는 생각은 한 의문으로만 나왔고, 아주 떼었구나 하는 기쁜 생각은 없었다. 이 의문도 술 취한 얼굴을 보고 일어난 것이었다. 아편쟁이로 술도 잘 먹는 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렇게나 취하도록 먹은 것을 보지 못한 까닭에 기연가미연가 하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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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수의 수선거리는 바람에 석호는 눈을 뜬 모양이다. 그는 부스스 일어나며 “이제 오시오?”하고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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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수는 어째든 오래간만에 본 것만은 반가웠다. 그 집 안부와 C고향의 소식을 몇 마디 물은 뒤에, 명수는 몸이 피곤하여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실상인즉 무엇보다도 먼저 석호더러 아편 떼고 안 뗀 것을 대문에서 그의 와 있단 말을 아내에게 들을 때부터 물어보리라 하였지만, 딱 당하고 보니까 어쩐지 그 말이 너무나 괴롭게 하는 것 같아서 그대로 참고 딴말을 꺼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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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튿날 아침이었다. 명수는 일찍 일어나서 석호의 동정을 살폈다. 그러나 석호는 아편 인이 몰리어 고통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얼마쯤 안심이 되었다. 명수의 말에는 자연히 반갑다는 빛이 어울려 나오게 되었다. 아편으로 계집까지 잃고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어린 자식을 데리고, 조반석죽도 넉넉히 못 먹고 지내는 석호가 서울까지 노비를 만들어 가지고 머나먼 서울까지 온 이면에는 적지 않은 소망과 계획이 있을 것은 물론이겠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아침 밥상을 대할 때에 술을 청하였다. 아침 밥상에 반주까지 먹는다는 것은 아편과는 그만큼 인연이 멀어졌단 것을 말함이라 생각하매 술은 얼마든지 먹이고 싶었다. 그는 밥을 먹어가면서 자기의 지낸 형편도 대강 요령 있게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금후의 생활해갈 방침과 현재의 궁상을 대강 말한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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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생각은 어떠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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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의견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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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라면 즉 경제 문제이니까, 좌우간 어디서 먹을 것을 구하느냐가 문제이니까, 첫째는 자기의 일신의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고 세상의 신용을 얻어야 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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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명수는 비로소 은연한 가운데에 아편 떼고 안 뗀 것을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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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 떼었다 해도 곧이들을 사람은 적을 것이니까,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고백한 일도 없습니다만, 두고 보시면 짐작하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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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석호는 자세한 대답은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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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수도 특별히 따져서 무얼 하리 하고 꼬치꼬치 묻지 않았다. 좌우간 그를 완전히 구하려면 상당한 물질의 여유가 있다든지, 어떠한 직업을 준다든지 하지 않고는 마음으로만은 아무러한 효용이 없을 것을 잘 아는 명수는 그의 장래를 어떻게 하려느냐고 묻기도 어려워서 자기의 입에서 말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하루를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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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는 필경 입을 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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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암만 생각해도 도리가 없어서 갑갑하기도 하고, 또 아저씨 말씀도 들어볼까 하고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생각되시는 대로 지도를 좀 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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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쟁이로 극도의 미움을 세상 사람에게 받았던 석호를 위하여 별안간 생활 문제를 좋은 방침이 있을 리가 없었고, 비록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실행하기는 그렇게 용이한 일이 아닌 것을 명수는 짐작하는 까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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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어떻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일이 있겠지……. 그것이 없대야 다른 사람의 말이 자네에게 참고될 것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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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반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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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는 한참 무엇인지 생각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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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허고 어린 자식 걱정만 없으면, 저는 어디로든지 방랑 생활이라도 해서 이 세상의 보기 싫은 꼴을 안 보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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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눈을 다른 데로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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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지금까지 부자로 호화롭게 지내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자기의 처지가 아편쟁이를 벗지 못한 것은 자기의 잘못이 아니요, 사회가 자기를 그곳으로 몰아넣은 것이라 하여 세도인심世道人心을 저주하여온 것이 온 세상을 등지고 표랑해보겠다는 말에서 충분히 찾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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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수는 얄미운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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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그렇게 유랑 생활 할 생각을 진즉에 하였다면 자네 어머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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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고생이나 덜할 것인데 좀 늦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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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종형이 죽은 뒤의 종형의 유족 형편으로 보아 석호란 아편쟁이가 대를 이어 생기지 않았다면 부자의 살림 끝이니 지금에 와서도 밥걱정은 없었을 것이오. 또는 C고을에서는 누대의 고가이니 그래도 친척이나 고구古舊가 의리상으로 보아도 어떻게 돌보든지 밥을 굶게야 할 리는 없었다. 그러나 자식이 아편쟁이란 바람에 중이 미움을 받으면 가사까지 벌을 입게 된다는 세음으로, 그런 것은 도와줄 필요가 없고 도와주는 것이 도리어 그를 타락케 하는 것이라 이름 좋은 구실을 박정한 세상 사람들에게 주고 만 것이었다. 그러므로 석호의 존재는 그 가족에게는 큰 불행이 불러온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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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인심! 다 소용없어요. 제 것 있을 때 말이지요. 지금은 떠나려도 차마 벌일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집칸이라도 의지하고 농토 마지기라도 부쳐놓아야만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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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만일 그렇게 가족을 위해서 걱정이 된다면, 자네 처지로는 취할 길이 두 가지밖에 없는 줄 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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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는 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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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가두로 나서는 것이요. 한 가지는 수도입산해서 참회 생활을 하는 것인 줄 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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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두로 나서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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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든지 과거의 꿈을 잊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아무도 없이 알몸뚱이로 나온 자네가 벌써 자네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이 떳떳한 일이니까, 자네가 노동이라도 해야 된단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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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는 하도 어이가 없는 것같이 명수의 얼굴을 바라본다. 차마 노동이야 할 수가 있느냐는 표정이었다.
 
57
‘이 어리석은 자야! 네가 아직도 옛날 부르주아의 근성을 버리지 못하였구나. 아편을 먹을 돈이 없으니까 인제 와서 밥이나 좀 얻어먹자는 수작이로구나. 어서 죽어라. 너의 밥을 너의 어머니나 자식이 한 숟가락이나 더 먹게.’ 하고 명수는 나무랄까 하다가, 노동은 차마 못하겠다는 그 표정에 좀 동정할 점도 없지 아니하여 그대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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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자네 고생 좀 더해야 하겠네.”
 
59
하고, 석호의 얼굴을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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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보아도 아직 아편이 그리운 모양이다.
 
 
61
《문예운동》, 1929년 6월
【원문】버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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