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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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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3월
지하련
1
산(山) 길
 
2
신발을 신고, 대문께로 나가는 발자취 소리까지 들렸으니, 뭘 더 의심할 여지도 없었으나, 순재는 일부러 미다지를 열고 남편이 잇나 없나를 한번 더 살핀 다음 그제사 자리로 와 앉었다. 앉어선 저도 모르게 호 ─ 한숨을 내쉬였다.
 
3
생각하면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이 거치장스런 문제를 안고, 비록 하로ㅅ밤 동안이라고는 하지만 남편 앞에서 내색하지 않은 것이 되려 의심쩍을 일이기도 하나 한편 순재로선 또 제대로 여기 대한 다소간이나마 마음의 준비 없이 뛰어들 수는 없었든 것이다.
 
4
아직 단출한 살림이라 아츰 볕살이 영창에서 쨍 ─ 소리가 나도록 고요한 낮이다.
 
5
이제 뭐보다도 사태와 관련식혀 자기 처신에 대한 것을 먼저 정해야 할 일이었으나, 웬일인지 그는 모든 것이 한껏 부피고 어지럽기만 해서 막상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라는 것이 기껏 어제 문주와 주고받은 이야기의 내용이었다.
 
6
바로 어제 이맘 때ㅅ 일이다.
 
7
일요일도 아닌데 문주가 오기도 뜻밖이거니와, 들어서는 참으로 그 난처해하는 표정이라니 일즉이 문주를 두고 상상할 수는 없었다.
 
8
학교는 어쩌고 왔느냐고 순재가 말을 건너도 그저
 
9
「응? 엉 ─」
 
10
하고 대답할 뿐, 통이 그 말에는 정신이 없었다. 그러더니 별안간
 
11
「너이분 그동안 늦게 들어오지 않었니?」
 
12
하고, 불숙 묻는 것이다.
 
13
순재는 잠간 어리둥절한 채
 
14
「그건 웨 묻니?」
 
15
하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16
「그래 넌 조금도 몰랐니.」
 
17
문주는 제 말을 계속한다.
 
18
「모루다니, 뭘 몰라?」
 
19
「연히 허고 만나는 걸 말이다.」
 
20
「연히 허고?」
 
21
순재는 뭔지 직각적으로 가슴이 철석했다. 그러나 너무도 꿈밖이고 창졸간이라 어찌 된 셈인지 종시 요량키가 어려웠다.
 
22
「발서 퍽 오래 전부터래 ─」
 
23
문주는 처음 말을 시작느라 긴장했던 마음이 잠간 풀려 그런지, 훨신 풀이 죽어 대답했다.
 
24
「누가 그러든?」
 
25
다시 순재가 무른 말이다.
 
26
「연히가 그랬다.」
 
27
「연히가?」
 
28
「그러믄.」
 
29
순재는 한순간 뭐라고 말을 이를 수가 없었다.
 
30
문주가 말을 꺼내기도 벼락으로 꺼냈거니와, 너무도 거창한 사실이 그야말로 벼락으로 앞에 와 나자뻐진 셈이다.
 
31
말없이 앉어 있는 순재를 보자
 
32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잘 엄두가 나지 않어서 주저했지만, 언제까지 모를 것도 아니고, 그래서 오늘은…」
 
33
하고, 이번엔 문주가 말을 시작했다.
 
34
「그래 오늘에서야 알리러 왔단 말이냐?」
 
35
순간 그는 여지껏 막연했든 남편에 대한 분함과 연히에 대한 노여움이 한꺼번에 쏟아진 것처럼 애꾸진 문주를 잡고 어성을 높였다.
 
36
「나무랜대두 헐 말은 없다만, 사실은 너 때문에 만이 아니고 연히 때문에도…저야 무슨 짓을 했건 나를 동무로 알고 이야기하는 것을 내 바람에 말할 순 없지 않니?」
 
37
문주는 처음과는 달러 훨신 말이 찬찬해졌다.
 
38
「연히만이 동무냐?」
 
39
순재는 여전 말소리가 어지러웠다.
 
40
「혹 너가 먼저 알고 무러봤다면, 연히 말을 너헌테 못하듯 나는 너를 속이지도 못했을지 모른다.」
 
41
「지금은 무러봐서 얘길 허니?」
 
42
이번엔 순재도 비교적 침착했다.
 
43
「너가 묻기 전 먼저 연히가 부탁했다.」
 
44
「나헌테 알리라구?」
 
45
두 사람은 잠간 동안 말이 없었다.
 
46
「나헌테 알리란 부탁까진 난 암만 생각해도 잘 알 수가 없다. 연히헌테 가건 장하다구 일러라 ─」
 
47
순재는 끝내 페밭듯 일어섰으나, 다음 순간 어디로 가서 뭘 잡어야 할지 얼울한 그대로 다시 자리에 앉고 말었다.
 
48
「이런 것을 혹 운명이란 것에 돌린다면 누구 한 사람만 단지 미워할 수는 없을거다.」
 
49
조금 후 문주가 건늰 말이다.
 
50
순재는 얼른 대척이 없었으나, 이 순간 그에게 이것은 분명히 역한 수작이었다. 사실 그는 몹시 역했기 때문에 훨신 침착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51
제법 한참만에서야 순재는
 
52
「누가 미워한다디?」
 
53
하고 말을 받었다.
 
54
「이따금 몹시 미우니 말이다.」
 
55
두 사람은 다시 말이 없었다.
 
56
순재는 평소에 문주를 자기네들 중 제일 원만한 성격으로 보아 왔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공평한 ─ 때로는 어느 남성에게도 지지 않을 좋을 판단과 이해력을 가젔다고 믿어 왔었다. 그러나 어쩐지 이 순간만은 이것을 그대로 받을 수가 없었다. 이제 자기를 앞에 두고 홀로 침착한 그 태도에 감출 수 없는 적의(敵意)를 느낀다기보다도 점점 안존해지고 차근차근해지는 말투까지가 더 할 수 없이 비위를 거슬렀다.
 
57
「얘기 더 없니?」
 
58
급기야 순재가 건늰 말이다.
 
59
「혼자 있고 싶으냐?」
 
60
문주가 도로 물었다.
 
61
순재는 뭔지 더 참을 수가 없었다.
 
62
「가거라!」
 
63
지극히 별미적은 말이였으나, 문주는 별루 아무렇지도 않은 양, 가만이 우섰을 뿐이었다.
 
64
그 우슴이 결코 조소가 아닌 것을 알수록 그는 웬일인지 거듭 더 참을 수가 없었다.
 
 
65
책상 우에 턱을 고인 채 순재는 여전 몽총하니 앉어 있었다.
 
66
문듯 창 넘어로 앞산이 메이기 이마에 내려질듯 가까웁다.
 
67
순재는 전일 이렇게 앉어서 보는 산이 그리 좋지가 않었다. 뭐보다 그 너무 차고, 쇄락한 것이 싫었다. 그러나 이제 이러구 앉었는 동안 웬일인지 산은 전에 달러 뭔지 은윽하고 너그러운 것 같기도 해서 다시 이것을 잡고 한번 더 바라다보려는 참인데 핏득 마음 한 귀통을 슷치는 ─ 산은 사람보다도 오랜 마음과 숫한 이야기를 진였을께다 ─ 하는 우수운 생각과 함께 별안간 덜미를 쥐고 덤비는 고독(孤獨)을 그는 한순간 어찌할 수가 없었다.
 
68
조금 후, 그는 처음으로 남편이 자기와 관련되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었으나, 역시 모를 일이다. 평소 남편을 두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일이다.
 
69
그러나 생각하면 이제 순재로서 믿기 어렵다는 뜻은 남편으로서 그런 짓을 해서는 못쓴다는 의미도 될지 모르고, 또 이것은 두 사람의 마음의 평화한 요구(要求)이고, 거래(去來)일지도 몰랐다. 허지만 가령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이 그실 믿어야만 할 사실일 때는 두 사람은 발서 그 마음의 거래를 달리 할 수밖에 없다. 이러기에 만일 이것이 정말이라면 그는 지금 스스로 감당해야 할 노여움이라든가 골란한 감정도 그 실은 군색하기 짝이 없는 것이어서 ─ 첫째 노여움의 감정이란 또 하나 구원(救援)의 표정이기도하다면! 이제 그로서 남편에게 뭘 바라고 요구할 하등의 묘책이 없는 것이다.
 
70
생각이 점점 이렇게 기울스록 그는 무슨 타산(打算)에서 보다도 아직 흐리지 않은 젊은 여자의 자존심으로 해서도 연히에게는 물론, 남편에게까지, 뭘 노하고 분해할 면목이 없고 염체가 없을 것만 같다.
 
71
순재는 그대로 앉인 채 여전 생각을 번거럽히고 있었다.
 
72
별루 어머니가 그리운 것도 같은 야릇한 심사를 겪으면서 우정 죽은 벗이라든가, 알른 벗들의 쓸쓸한 자취를 더듬고 있었으나, 역시 그리 간단치 않고 만만치 않은 것은 남편이었다. 설사 순재로서 ─ 그분은 「남편」인 동시 「자기」였든 것이고, 연히는 내 동무인 동시 아름다운 여자였다고 ─ 마음을 도사려 먹기쯤 그리 어려울 것도 없었으나 문제는 이게 아니라 이제 남편에게까지 이 싸늘한 이해(理解)라는 것을 하지 않고는 당장 저를 유지할 수 없는 사정이 더헐 수 없이 유감되다기보다도 야속하기 짝이 없다.
 
73
순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74
(저를 의지하려는 마음이 남을 의심할 때보다 더 괴로운 이유는 대체 어데 있는가?)
 
75
하고 가만이 일러 보는 것이었으나, 생각이 예까지 미치자 그는 웬일인지 몹시 피곤해져서 암만해도 뭘 더 생각해 나갈 수가 없었다.
 
 
76
벼개를 내려 베고 뭘 꼬집어 생각하는 것도 없이 멍충이 누어 있으려니
 
77
「아지머니 점심 채려 와요?」
 
78
하고 심부름하는 아이가, 문을 연다. 그는 관두라고 하려다가,
 
79
「그래 가저 온.」
 
80
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쪼루루 저편으로 가든 아이가 되도라 오면서, 누군지
 
81
「김순재씨가 댁예요?」
 
82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83
어데 난 용달이다.
 
84
그는 편지를 손에 든 채 잠간 주저했으나, 뜻밖에도 연히에게서 온 것을 알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85
남편이 사랑하는 여자가 연히인 것을 어제 문주에게 들어 처음 알기는 했으나, 근근 두 달 동안이나 무단이 소식을 끊고 궁금함을 끼치든 연히를 두고는 참아 믿기 어려웠든 것처럼 그는 다시금 아연해질 뿐, 미처 두서를 잡을 수가 없었다.
 
86
(무슨 까닭으로 편지는 했을가?)
 
87
그는 겉봉을 찢으면서도 종을 잡을 수가 없었다.
 
88
그러나 편지는 지극 간단해서 「街[가]」라는 차ㅅ집에서 기다릴 테니 네 시 정각에 꼭 좀 만나 달라는 ─ 이것이 그 전부요 내용이었다.
 
89
쭈볏이 서있든 심부름꾼이
 
90
「가랍니까?」
 
91
하고 회답을 재촉했을 때야 비로서 그는,
 
92
「전했다고 일르시오.」
 
93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94
마악 자리로 와 앉으려구 하는데, 이번엔 객적으리만치
 
95
「네니 내니 하고 어려서부터 자라온 동무는 아내래두 그래도 친했댔는데….」
 
96
하는, 당찮은 생각 때문에 한동안 그는 모든 것이 그저 야속하기만 했다.
 
97
「친했음 었저란 말야.」
 
98
그는 다시 중얼거려 보는 것이었으나 역시 무심해야 할 일이었다.
 
99
순재는, 좌우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것을 다행으로, 아까만양 벼개를 베고 드러누었다.
 
100
오두마니 천장을 향한 채 ─ 어제 문주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든가? 혹 문주는 여기서 바로 연히에겔 갔는지도 또 오늘 연히가 만나자는 것은 어제 문주를 만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이러한 생각을 한참 두서없이 느러놓고 있는 참인데 웬일로 눈앞에 연히가 별안간 뛰어드는 것이다.
 
101
허둥 허둥 연히를 좇아 다름질 할 수밖엔 없었다.
 
102
아무리 보아도 그 시원스런 눈하고 뭔지 다겁 할 것도 같은 이뿐 입모습이라성, 대체 그 어느 곳에 이처럼 비상한 용기와 놀라운 개성(?)이 드러 있었는지 암만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103
그는 여전 이 당돌하리만큼 정면으로 닥어서는 아름다운 여자를 눈앞에 노치려군 않었다.
 
104
하긴 지금 순재 앞에 있는 이 짧은 편지로도 능히 시방 연히가 무엇에도 누구에게도 조금도 구해(拘碍)받고 있지 않단 것을 알어내기엔 그리 어렵지가 않을뿐더러, 만일 연히로서 아무런 질서(秩序)에도 하등의 구속 없이 있을 때 순재로서 굳이 완고하단 건 어리석은 일이다. 설사 순재의 어떤 고집한 비위가 만나기를 꺼려하는 경우라고 한대도 연히로서 만일 ─ 저편이 노한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이건 당찮은 손이다.
 
105
순재는 발서 노하는 편이 약한 편인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06
─ 거진 한 시간이나 앞서, 순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107
화장도 하고, 일부러 장 속에 있는 치마까지 내어 입었다.
 
108
그리고 한번 더 거울을 본 다음에 집을 나섰다.
 
109
그러나 부핀 거리만은 그래도 싫었든지, 광화문통에서 내려 황금정으로 가는 전차를 바꿔 탔다.
 
110
타고 가다가 어디서고 길이 과히 어긋나지 않을 지점에서 어느 좁은 길로 해 찾아갈 요량이다.
 
 
111
봄날이라고는 해도 고대 한식이 지났을 뿐, 더욱 해질 무렵이라 그런지 아직 겨울인 듯 쌀쌀하다.
 
112
두 여자는 여전 말을 잃은 채 소화통(昭和通)으로 들어, 다시 산길을 잡었다.
 
113
순재는 조금 점 차ㅅ집에서도 그러하였거니와, 이제 거듭 보아도 연히는 그동안 놀랄만치 이뻐진 대신, 또 놀랄만치 자기와는 멀어진 것만 같으다.
 
114
단 두 달 동안인데 그처럼 가깝든 동무가 대체 무슨 조화로 이처럼 생소하냐고 스스로 물어본댔자 그저 당장 기이할 뿐이다.
 
115
첫째 만나면 손이라도 잡고 반겨해야 할 사람이 제법 정중이 일어선 채 깎듯이 위해 인사하는 품이, 비록 순재로 하여 얼굴이 붉어지는 쑥스러움을 느끼게 했다고는 할 망정 웬일로 자기 역시 전처럼 대답할 수 없었든 것도 이 기이함에 하나였거니와, 이러한 종잡을 수 없는 느낌이 한데 뭉처 점점 어두워지고 무거워지는 마음 우에 급기야 모든 것이 한껏 너절하게만 생각되는 ─ 보다 먼 곳에의 고독감도 결국 이 순간에 있어 기이한 현상의 하나였다.
 
116
한동안 그는 아무 것에도 격하고 싶지 않은 야릇한 상태를 겪으며 잠자코 걸었다.
 
117
어듸를 들어왔는지 두 여자는 수목이 짙은 좁다란 길을 잡고 개천을 낀 채 올려 걸었다. 방금 지나온 곳이 유달리 번화한 거리라서 그런지 바로 유곡인듯 호젔하다.
 
118
「나 인제 새로히 뭘 후회하고 있진 않읍니다. 단지 여태 잠자코 있어 괴로웠을 뿐예요!」
 
119
하고, 비로서 연히가 말을 건늰다.
 
120
순재는 여전 쑥스러운 채,
 
121
「잘 압니다.」
 
122
하고, 연히 말에 대답을 했으나, 뭘 잘 안다는 것인지 스스로도 모를 말이다.
 
123
「날 비난하시려건 맘대로 하세요. 허지만 이제 내게도 말이 있다면 그분을 사랑했다는 것 ─ 사랑 앞에서 조금도 거짓말을 하지 않었다는 것입니다.」
 
124
연히는 다시 말을 이었다.
 
125
순재는 연히가 전에 달러, 몹시 건방진 것 같어서, 그것이 가볍게 비위를 거스리기도 했으나 이보다도 뭔지 그 말에서 느껴진 절박감 때문에
 
126
「네, 잘 알어요.」
 
127
하고 똑같은 말을 되푸리했다.
 
128
그러나, 이 약간 조소적인 말에도 연히는 별루 돌아 볼 배 없이
 
129
「그분을 사랑하고 싶은, 그분이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나는 아무 겨를도 없었읍니다, 허지만 역시 그분 앞에 아름다운 여자는 당신이였어요 ─」
 
130
하고, 똑바로 앞을 향한채 혼자 말하듯 가만가만 이야기를 계속했다.
 
131
순재는 힐끗 연히를 처다봤으나 그 깍가 낸 듯 선이 분명한 칙면 어느 곳에서도 전날 이쁜 눈이 그저 다정하기만 하든 연히를 찾어 낼 수는 없었다.
 
132
그가 잠간 대답을 잊은 채 걷고 있는 동안 연히는 다시 말을 이었다.
 
133
「혹 이것이 내 최후의 감상(感傷)일지도 또 나보다 아름다운 사람에 대한 노여움의 표현인지도 알 수 없으나 아무튼 꼭 한번 뵙고 싶었읍니다.」
 
134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려구요?」
 
135
비로서 순재가 물어본 말이다.
 
136
두 사람은 처음으로 눈이 서로 마조첬으나 웬일인지 피차 강잉하게 무심한 표정이려구 했다.
 
137
「글쎄요. ─ 결국 당신이 이겼다는 ─ 내가 졌다는 이야기를 하려구 했는지요.」
 
138
하면서, 연히는 뭔지 가벼이 우섰다.
 
139
순재는 별안간 얼굴이 확근 다라왔다.
 
140
「그럴 리가 있나요?」
 
141
하고 우정 눙치면서도 애꾸지 빨칵하는 감정을 어찌는 수가 없었다.
 
142
「이제 우리 두 사람을 나란이 세워 놓고 누구의 형상이 숭 없는가 한번 바라다보십시오. 내 모양이 사뭇 고약할 테니.」
 
143
연히는 여전 같은 태도로 말한다.
 
144
「안해란 훨신 늙고 파렴치한 겁니다.」
 
145
순재는 결국 그 노염을 이렇게 표현할 수밖엔 없었으나, 말이 맞자 연히의 표정 없는 얼굴이 무엇엔지 격노하고 있는 것을 놓질 수는 없었다. 과연 모를 일이다. 이제 막 순재가 한 말은 순재로서 대단 하기 어려웠든 말일뿐 아니라 또 어느 의미로 보아선 정말이기 때문이다.
 
146
「두 사람의 관계가 이미 삼자로선 상상 못할 정도로 깊어젔다면 어쩌겠어요?」
 
147
잠자코 있든 연히가 별안간 건늰 말이다.
 
148
아무리 호의로 해석한대도 이 말까지는 않어도 좋을 말이다. 순간, 그의 머리를 슷치는 ─ 연히는 내가 얼마나 비겁한가를 자기류로 시험해 보구 싶은 게다 ─ 하는, 맹낭한 생각 때문에 그는 끗내
 
149
「깊고 옅고간 결국 같을 겁니다.」
 
150
하고, 자기도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151
그러나, 이 애매한 말을 연히가 어떻게 들었는지
 
152
「그야 그렇겠지만, 난 그것보다도 그분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무른 겁니다.」
 
153
하고 다시 건너다봤다.
 
154
순재는 마치 덜미를 잽히고 휘둘리는 사람처럼 당황한 얼굴이기도 했으나 역시,
 
155
「당신헌테 지지 않을 겁니다.」
 
156
하고 대답할 수밖엔 없었다.
 
 
157
머리를 숙인 채 잠자코 거르면서도 그는 일이 맹낭하기 짝이 없다. 조금 전까지도 오히려 쑥스러움을 느낄 정도였으니 무엇에 요동할 리 없었고 또 연히를 만나기까지도, 물론 저편이 연히라 다소간의 봉변은 예측한 바로 친대도 기실 은연중 곤경에 빠질 사람은 연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보다도 불쾌한 것은 점점 평온하지 못한 자기 마음의 상태다.
 
158
순재가 마음속으로 다시 조금 전 연히가 한 말을 들치고 있으려니,
 
159
「다른 건 다 이겨도 그분을 사랑하는 것만은 나헌테 이기지 마세요, 여기까지 지게 되면 나는 스스로 타락할 길밖에 도리가 없읍니다.」
 
160
하고, 뭔지 훨신 서글푼 어조로 연히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는 인차 순재가 뭐라고 대답 할 나위도 없이
 
161
「그분은 누구보다도 자기 생활의 질서를 소중이 아는 사람입니다. 설사 당신에 비해 나를 더 훨신 사랑하는 경우라도 결코 현실에서 이것을 포현하지는 않을 겁니다.」
 
162
하고, 제 말을 계속했다. 이제야 이야기는 바른길로 드러섰다. 결국 이 한 말을 하기 위해, 연히는 순재를 불러낸 것인지도 몰랐다.
 
163
이리되면 세상 못할 말이 없다. 순재는 이젠 당황하기보다도 대체 무슨 까닭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가 알 수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이 욕된 경우에 있을 말의 준비가 없었다. 평소 남편의 사람됨을 보아 방금 연히가 한 말이 정말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였다.
 
164
순재가 의연 잠자코 있는 것을 보자 이번엔,
 
165
「안해인 것을 다행으로 아세요?」
 
166
하고 연히가 다시 채첬다.
 
167
순재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168
「꿈에두요!」
 
169
「정말요?」
 
170
「네 ─」
 
171
「웨요?」
 
172
「당신과 같은 위치에 나란이 서 보구 싶어서요.」
 
173
「자유로운 선택이 있으라구요?」
 
174
「네 ─」
 
175
별루 천천히 말을 주고받는 두 여자의 얼굴은 꼭같이 핼숙했다. 연히는 한동안 가만이 순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표정도 없었으나 결코 무표정한 얼굴은 아니었다.
 
176
순재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떠러트렸으나 순간 굴욕이 이 우에 더 할 수가 없었다.
 
177
조금 후
 
178
「무서운 사람이에요, 가장 자신 있는 사람만이 능히 욕을 참을 수 있는 겁니다.」
 
179
하고 연히가 혼자ㅅ말처럼 중얼거렸다.
 
180
순재는 거반 지처 그대로 입을 담을고 말었으나 연히야말로 무서운 여자였다. 단지 간이 큰 여자가 아니라, 어데까지 자기를 신뢰하는 대담한 여자다, 인생에 있어 이처럼 과감할 수가 없다. 도저히 그 체력을 당할 수 없어 순재로선 감히 어깨를 견울 수가 없었다.
 
181
─ 어디를 지나왔는지, 문듯 넓다란 산길이 가로 놓였다.
 
182
차차 어둠이 몰려와, 근역이 자옥했다.
 
 
183
신부름 하는 아이가 우정 크다란 목소리로,
 
184
「아지머니 이제 오세요?」
 
185
하고 마조 나오는 품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186
이제 막 문 밖에서 다짐받든 마음과는 달러, 별안간 두군거리는 가슴을, 그는 먼저 부엌으로 들어가,
 
187
「발서 오셨구나! 진지는 어쨋니?」
 
188
하는, 허튼 수작으로 겨우 진정한 후 그제사 방으로 들어왔다.
 
189
남편은 두 팔을 벤 채, 맨 방바닥에 그냥 번듯이 드러누어 있었으나 웬일인지 안해가 들어와도 모른 척 그냥 누어 있었다.
 
190
순재가 바꿔 입을 옷을 꺼내들고 나올 때쯤 해서, 그제사 남편은 ─
 
191
「어딀 갔었오?」
 
192
하고 돌아다봤다.
 
193
순재가 다시 들어오려니, 이번엔 철석 엎어저 누은 채 뭔지 눈이 퀑 ─ 해서 있다가.
 
194
「어딀 갔었오?」
 
195
하고, 한번 더 묻는 것이다.
 
196
「연히가 만나재서 갔댔어요.」
 
197
하고 안해가 대답을 했으나, 남편은 여기 대답 대신 이번엔 훅닥 일어앉어 담배를 붙였다. 그러더니
 
198
「연히가 당신을 뭣 허러…」
 
199
하고 혼자말처럼 중얼거리면서,
 
200
「그래 만나서 뭘 했오?」
 
201
하고 물었다.
 
202
순재는 뭐든 잠자코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뭔지 지금껏 욱박질렸든 감정이 스스로 위태로워 얼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203
안해가 잠자코 있는 것을 보자,
 
204
「괘니 당신헌태꺼정 이런저런 생각을 끼치기도 싫었고 또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해결지울 자신도 있고 해서 잠자코 있었으나 결국 사람의 의지란 한도가 있었나 보. 생각하면 대단 유감스런 일이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니 이해하시요 ─」
 
205
하고, 남편은 별루 천천이 말을 시작했다.
 
206
순재는 말을 할라면 한이 없었으나, 결국 할말이 없어, 역시 덤덤이 앉어 있으면서도, 이제 남편의 말과 연히의 말을 빛어 두 사람의 관계의 끝 간 데를 알기는 그리 어렵지가 않었다.
 
207
「사실은 당신으로서 이해하기가 어려운 게 아니라 이해를 암만해도 무사해지지 않는 「마음」이 어려운 거지만 사람은 많은 경우 힘으로 불행을 막을 수 없는 대신 닥처온 불행을 겪는데 지헤가 있어야 할거요.」
 
208
하고 남편은 다시 말을 계속했다.
 
209
조금도 옳지 않은 말이나, 역시 옳은 말이기도 한 것이 딱했다. 그는 끝내 참기 어려운 역정으로 해서, 자기도 모를 당찮은 말을
 
210
「많이 괴로워요?」
 
211
하고, 배상바르게 내던지고 말었다.
 
212
남편은 제법 한참만에서야
 
213
「괴롭다면 어찌겠오?」
 
214
하고 되물었다.
 
215
「괴롭지 않을 방도를 생각하셔야지.」
 
216
「괴롭지 않을 방도란?」
 
217
「그걸 내가 알께 뭐예요 ─」
 
218
여전 배상바른 말씨다.
 
219
조금 후 남편은
 
220
「당신 실수라는 것, 생각해 본 일 있오?」
 
221
하고 다시 물었다.
 
222
「없어요 ─」
 
223
「연애란 건?」
 
224
「…….」
 
225
「있을 수 있읍디까?」
 
226
남편은 채처 물었으나, 그는 잠자코 있었다. 어쩌면 둘 다 있을지도 모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끝내,
 
227
「그래 실수를 했단 말예요?」
 
228
하고 물어볼 수밖엔 없었다.
 
229
이 훨신 조소적인 말을 남편이 어떻게 받는 것인지
 
230
「그럼 연애라야만 쓰오?」
 
231
하고 마조 보면서, 이번엔 훨신 혼자ㅅ말처럼
 
232
「아무 것이고 해서는 못쓰는 겁니다.」
 
233
했다.
 
234
「못쓰는 일을 왜 했어요?」
 
235
「그렇게 사과하지 않소 ─」
 
236
「사과를 해요?」
 
237
「마젔오 ─」
 
238
순재는 뭔지 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무슨 까닭으로 이 순간 연히를 생각해 냈는지
 
239
「연히가 걔가 무슨 봉변이겠어요…당신 걔헌태도 나헌테도 나뿐 사람이에요.」
 
240
하고는 허둥 허둥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241
남편은 뭔지 한동안 물끄럼이 안해를 보구 있더니,
 
242
「그래 마젔오. 당신 말이 ─」
 
243
하고 대답하는 것이다.
 
244
「뭐가 마젔어요. 그런 법이 어데 있어요?」
 
245
하고, 거반 대바질을 해도, 남편은 역시 같은 태도다. 그러드니, 별안간
 
246
「사과 할 길밖에 도리 없다는 사람 가지고 웨 작구 야단이요? 웨 따지려구만 드오, 따저선 뭘 하자는 거요? 당신 날 사랑한다는 것 거짓말 아니요? 웨 무조건하고 용서할 수 없오?」
 
247
하고는 벌컥 하는 것이다.
 
248
이리 되면 이건 언어도단이다. 너무도 이기적이라니 그 정도를 넘는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은 지금까지의 어느 말보다도 오히려 마음을 시원하게, 후련하게 해주는 것이 스스로도 섬찍하고 남을 일이었다.
 
 
249
밤이 이식해서 두 부부는 벗처럼 벼개를 나란이하고 여전 이야기를 주고받었다.
 
250
차차 남편은 웃음의ㅅ말까지 하는 것이었으나, 순재는 여전 뭔지 맘이 편칠 못했다. 이것은 밤이 점점 기울스록 더 날카로워만 갔다.
 
251
생각하면 남편은 역시 훌륭하다. 가만이 곁눈질을 해 보아도 그 누어 있는 자세로부터 말하는 표정까지 그저 늠늠하기 짝이 없다. 만사에 있어 능히 나무랠 건 나무래고 옹호할 건 옹호하고 살필 건 살피고 뉘우칠 건 뉘우처서, 세상에 꺼리낄게 없다. 어느 한곳에도 애여 남을 괴롭필 군색한 인격이 들었든 것 같지 않고, 팔모로 뜯어봐야 상책이 한 곳 나있을 것 같지 않다. 단지 전보다 또 하나의 「경험」이 더했을 뿐 이제 그 겪은 바를 자기로서 처리하면 그뿐이다.
 
252
「연히 보구 싶지 않우?」
 
253
별루 쑥스럽고 돌연한 무름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이미 객쩍은 수작이라는 것처럼 시무룩이 웃어 보일 뿐, 궂이 대답하려구도 않는다.
 
254
「어째서 그렇게 무사하냐 말에요.」
 
255
하고, 한번 더 채치려니, 이번엔 뭐가 몹시 피곤한 것처럼 얼굴을 찡긴 채,
 
256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또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건 한갓 실수로 돌릴 수 밖에. 당신네들 신성한 연애파들이 보면, 변색을 하고 돌아설찐 모루나, 연애란 결코 그리 많이 있는 게 아니고, 또 있대도 그것에 분별 있는 사람들이 오래 머물 순 없는 일이거든. 본시 어른들이란 훨신 다른 것에 많은 시간이 분주해야 허니까.」
 
257
하고, 제법 농쪼로 우스면서,
 
258
「내가 만일 무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당신 덕택일거요. 하지만 이것보다도 다른 사람들 같으면 몇 달을 두고 법석을 할텐데, 우리는 단 몇 시간에 능히 화해할 수 있지 않소.」
 
259
하고, 행복해 하는 것이었다.
 
260
순재는 뭔지 기가 맥혔다. 세상에 편리롭게 되었다니, 천길 벼랑에 차 내트려도 무슨 수로든 다시 기어 나올 사람들이다. 그는 그저 잠자코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으나, 다음 순간
 
261
(평화란 이런 데로부터 오는 것인가? 평화해야만 하는 부부생활이란 이런 데로부터 시작되는 것인가?)
 
262
하는, 야릇한 생각에 썸둑 걸린다. 문듯 좌우로 무성한 수목을 헷치고 베폭처럼 히게 버텨나간 산길을 성큼 성큼 채처올라가든 연히의 뒤ㅅ모양이 눈 앞에 떠오른다.
 
263
역시 총명하고, 아름다웠다.
 
264
누구보다 성실하고 정직했다.
 
 
265
(《春秋[춘추]》, 1942. 3)
【원문】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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