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옳다! 산지기 사는 동리가 아마 저곳이야!’
3
창수(昌洙)는 혼자 이렇게 중얼대며 신작로 넓은 길에 활등처럼 굽은 S 산밑 송림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T촌으로 뚫린 좁은 길로 들어섰다.
4
커다란 배암이 기어가는 것처럼 꿈틀꿈틀하게 신작로와 송림을 연락( 連絡) 한 기다란 언덕 한가운데에는 좁은 길이 실낱같이 보였다. 그리고 언덕 좌우에는 물이 가득히 괴인 논이 거울과 같이 번듯하게 놓였다.
5
이른 봄날도 거의 저물었다. 언덕 위로 힘없이 걸어가는 창수의 그림자가 홀로 그 물 위에 길게 누웠다. 그는 그림자를 바라보고 발작적으로 중얼 대었다.
6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할 것은 내 그림자 저놈이 잘 알겠지! 그리고 나의 뒤를 영원히 따라온 것은 저것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묘를 파고 묘귀( 墓鬼) 란 말을 듣는 내일부터는 저 그림자조차 없어질 터이지! 좋다! 아무 리해도 좋다! 내일에 그림자는 그만두고, 온몸이 없어져도 좋다! 그것을 누가 아니?’
7
그는 칠팔십 리 되는 길을 바쁜 걸음으로 걸어왔다. 어찌한 줄 모르고 정신없이 걸어오다가 자기가 목적한 마을을 눈앞에 바로 얼마 안 남은 것을 보매, 별안간 힘이 다 풀어졌다. 힘 풀어진 두 다리는 몸뚱이의 무게에 눌리어 삼노처럼 배배 조이는 듯하였다. 그는 최후의 힘을 다하여 조이는 다리를 겨우 폈다. 그럭저럭 T촌 들어가는 어구에 있는 솔밭까지 들어왔다.
8
천이나 만으로 헤일 만한 빡빡이 들어선 소나무는 모두 공중을 향하여 기운 차게 쭉쭉 뻗었다. 검푸른 구름과 뭉클뭉클한 솔잎 뭉치로 차일친 듯 한 그 밑으로는 석양 햇빛이 비듬히 기어들어 나무 몸통에 걸치고, 기구한 것이 피부병 환자의 몸뚱이처럼 보였다. 그리고 굳센 바람결이 숲 위로 스칠 때마다 쐐 ─ 하는 엄숙한 소리가 들리었다.
9
'묘를 파? 무덤을 헤쳐?…… 그리고……."
10
그의 신경은 저물어가는 태양광선의 끝과 같이 날카로워졌다.
11
'저놈의 바람은 왜 저렇게 부나? 저놈 소나무는 왜 저렇게 대가리를 흔드나? 내가 온 것이 좋지 못하단 말이겠지! 그리고 또 쐐 ─ 하는 저놈의 소리는 무엇이야? 내가 온다고 마땅치 않다고 입맛을 다시는 것이겠지?’
12
그의 비꼬인 신경은 이렇게까지 중얼대었다.
13
그는 힘없이 걷던 발길을 잠깐 멈추고, 어디 앉을 데나 없나 하고 사면을 둘러보다가 큰 소나무 뿌리를 찾아 걸터앉았다. 한참 동안 서늘한 바람을 쐐가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14
그는 육칠 년 전까지 이곳에 해마다 철을 찾아 성묘를 왔었다. 그 성묫길에 묘지기 찾아볼 그때의 자기와 성묘할 철도 아닌 오늘에 찾아온 자기를 비교 할 때에 주위의 모든 것이 자기를 조소하는 듯하였다. 없이 여기는 눈초리로 흘겨보는 듯하였다. 벌써 자기 자신부터 자기 보기를 그러하였다. 예전에는 올 때마다 인력거 여러 대가 큰길에 죽 늘어서 있고, 자기를 따라온 친척과 하인이 사오 명은 으레 있었다. 많을 때에는 십여 명 된 일도 있었다.
15
그러나 오늘에는 자기 홀몸으로 왔다. 따라온 무엇이 있다 하면, 그것은 그림자 뿐일 것이다. 그림자도 돌아갈 때에는 없어질는지 누가 알까? 아니다! 그는 벌써 마음속에서는 그림자조차 잃어버렸다. 변명할 여지없는 외톨이이다. 또한 인력거가 다 무엇이냐? 다 해진 고무신이 그에게는 그 대신이다. 오장이 썩어버린 듯한 내쉬는 숨기운이 자동차의 가솔린처럼 그의 코를 찌를 뿐이었다.
16
그는 소나무 밑에 앉아서 자기의 차림차림과 몰골을 아무 동정 없이 냉정한 눈으로 굽어볼 때에 산지기의 놀랄 것을 상상하였다. 그는 산지기를 찾아보려면 탈을 쓰든지, 그렇지 않으면 특별한 용기를 내어야 할 것을 스스로 알았다. 십 년 묵은 운동모자, 해진 고무신, 뒤꿈치 나온 양말, 기름 때가 조르르 흐르는 두루마기, 닷 푼이나 길은 수염, 귀까지 내려 덮은 머리, 모든 것이 산지기의 없이 여김과 조소를 일으키기에는 규격이 맞게 되었다.
17
옛날의 털외투, 칠피 구두, 사철 두고 갈아입는 값비싼 양복, 위아래를 쏙빠트렸던 비단 의복, 자동차, 인력거, 보석 반지, 백금 시계들의 간 곳은 어디며, 여러 십리나 빼트리던 거드름! 어떻게 버려버렸으며, 교만과 망상은 어디로 쑥 들어갔을까? 이 모양을 본 산지기의 옛날의 굽었던 허리가 갱 소년( 更少年) 한 것처럼 빳빳하여지며, 풀솜과 같이 보드랍던 말소리가 상어 껍질처럼 쪼그라질 때에 느낄 모든 모욕이 그를 커다란 소나무 뿌리에 단단히 동여매는 것 같았다.
19
'왜? 옛날 일을 또 생각해? 옛날의 청년 신사인 창수가 오늘은 보배 보화를 땅속에 파묻어두고 산사람이 죽을 수야 있나?’
20
그리하여 그는 용기를 내어 몸을 일으켜 동리로 향하여 들어갔다.
22
창수는 산지기에게 부탁하여 산지기와는 친한 동리 사람을 삯군으로 얻어 가지고 묘 팔 준비를 바삐 하여 두었었다. 그리하여 밤이 들자 그는 묘지기와 삯군을 데리고 산소로 올라갔다.
23
창수가 그와 같이 불초한 모양으로 산지기를 찾았을 때에, 산지기는 처음에는 물론 딴사람으로 알았다. 영락한 그의 생활이 그 얼굴조차 이 세상에서 잊어버리게 한 것이다. 산지기는 묘를 파보겠다고 한때에 질겁을 하였다.
24
"묘를 파다니요? 어디로 이장을 하실 작정이신가요?"
25
창수는 물론 자기가 어떻게 할 것은 바로 알려줄 수는 없었다.
26
"여보! 그대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 집안이 전에야 어디 이 모양으로 지내었소? 그래도 여러 대를 두고 외식 걱정은 아니하고 지내다가 나는 요 모양이 되었소그려!"
27
이렇게 말할 때에 묘지기는 실지로 보는 창수의 차림차림과 미리부터 들어 두었던 소문이 빈틈없이 맞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28
"그야 당신 댁뿐이신가요? 우리 조선 사람 살기가 다 그렇게 되어가는 판이 아닙니까?" 하고, 창수를 또 한 번 위로하듯 말하였다.
29
"아니랍니다. 조선 사람이라고 다 요 모양이겠소. 우리 같은 사람이나 그렇지요! 그래도 우리가 예전에야 요 모양은 아니었었지요. 하도 갑갑하기에 산수 탓이나 아닌가 하고……."
30
"그래서요? 무어? 묘를 파보신단 말씀입니까?"
32
"그래요……. 물이 들었나, 불이 들었나, 좀 알아보려고요."
33
"그러면 어느 산소를 파보신단 말씀인가요?"
34
이 산소 있는 곳은 창수에게는 가족 공동묘지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여러 대의 분묘가 그곳에 있었다. 창수의 집이 좀 넉넉하게 지낼 때에는 이 묘지를 창수의 이름으로 창수가 관리하게 되었었다. 그러나 그가 여러 가지 투기 사업에 실패를 보고 홧김에 화류계에 몸을 던져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며, 문중이 공의를 하고 이 묘지의 관리하는 권리를 창수의 오촌 되는 이에게로 빼앗아 가버렸다. 이것도 벌써 육칠 년 전의 일이다. 어쨌든 이 묘지에는 창수에게 직접으로 화복의 영향을 미치게 될 산소가 여러 개가 있으므로, 묘지기가 어느 것인지 그것을 묻는 것도 상당한 일이었다.
35
창수는 대답하기가 좀 거북하였다. 그러나 몇 시간 후이면 곧 알 일이라, 이 것이야 어찌 속일 수 있을까 하고 바로 말하였다.
37
이렇게 대답한 창수의 얼굴은 얼마만큼 붉었다.
39
산지기는 질색을 하며 이렇게 재차 물었다. 그가 괴이히 여기는 것도 무리한 일이 아니었다. 묘의 해로 창수의 집안이 망하였다면 창수에게 직계 존친( 尊親)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도 있고, 조부모도 있고, 또 그 위로도 창수에게 화복의 영향을 줄 만한 분묘가 많이 있다. 그런즉 그 여러 묘 가운데에서 파볼 묘가 따로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더니, 뜻도 아니한 자기 배우자의 묘를 파겠다고 대답한 까닭이었다.
40
"전에는 집안이 요지경이 아니다가 별안간 이렇게 망하게 되기는 여편네 묘를 쓴 뒤에 그렇게 된 일은 듯해서요……."
41
창수는 처음에는 산지기의 질문을 얼핏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 주저 하다가 겨우 이렇게 꾸미어대었다. 산지기도 그럴듯하게 여긴 것처럼 잠자코 있다가 그는 무엇을 잠깐 생각한 뒤에,
42
"산소 이치란 건 참으로 알 수 없대요. 아내의 묘 바람이 남편에게 미치는 모양이지요……."
45
창수는 무엇이라 대답하여야 좋을지는 알 수 없어서 그저 이렇게 우물쭈물 대답 하기는 하였으나, 그의 마음은 아팠었다.
46
그리하여 산지기도 오랫동안 성묘도 아니 오던 창수가 별안간 오게 된 뜻을 알게 되었었다. 또한 어느 묘를 파보겠느냐 들은 것도 만일 창수 이외에도 다른 자손이 있는 묘일 것 같으면 창수 한 사람의 말만 듣고 그 묘를 파게 하는 것은 산지기의 책임상에도 허락할 수 없는 일인 까닭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제가 제 마누라 묘를 파는 데야 무어라 말할 수 없다 생각 하고 창수의 하라는 대로 곁에서 굿만 볼 작정이었었다.
48
모든 것을 준비할 때에 산지기는 이렇게 물었다.
49
"이제야 제물이 다 무엇이요. 제물을 준비할 수 있으면 묘를 파겠소……?"
51
"제물은 없어도 괜찮아요. 어디 딴 곳으로 이장하는 것이 아니니까……!"
52
창수는 묘지기와 이와 같이 이야기가 있은 뒤에 겨우 삯군만을 얻어 가지고 밤들기를 기다려 산소로 향하여 오게 된 것이었다.
53
묘지 가는 산길에 발이 익은 산지기가 유리등을 들고 앞을 섰다. 그 뒤에는 그 동리에서 장사 지내는 데에 가장 경험이 많다는 늙은 농부와 총각 한 사람이 따랐다. 그리고 창수는 맨 뒤에서 희미한 등불을 의지하여 길을 찾아 걸어갔다. 사면은 고요하였다. 이따금 불어가는 바람결에 소나무는 흘러가는 물소리처럼 쇄 ─ 쇄 ─ 울리어 온다. 소나무 사이로는 신작로 주막거리의 등불이 꺼질 듯 말 듯 껌벅거리어 보였다. 솔밭에 잠들은 밤새들은 여러 사람의 발자취 소리와 등불 빛에 잠을 깨인 것처럼 가끔가다가 푸덕 거리 었 다. 바람이 움직일 때마다 흙냄새와 송진의 쌉쌀한 냄새가 창수의 날카로운 후각을 찌른다. 그는 힘없는 다리로 앞서 걸어가는 사람들을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걸어갔다. 돌멩이와 나무뿌리에 그의 발은 몇 번이나 걷어차였다. 그럴 때마다 그는 거꾸러질 듯하였다. 소나무잎보다도 더 검고 캄캄한 하늘이 약간 깜박거리는 별빛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였다.
54
그들은 얼마 아니 되어 묘 있는 넓은 곳으로 나왔다. 앞이 환하게 트이고, 뒤에 약간 송추가 늘어선 두리뻥뻥하게 뚫린 벌 한가운데는 여러 해 손을 대 이지 아니한 납작한 봉분이 우뚝하게 보였다.
55
여러 사람은 메고 온 괭이와 가래 같은 땅 파는 기구를 묘 앞 잔디밭 위에 부려놓고 후 ─ 하고 차오르는 가쁜 숨을 내쉰 뒤에 등불을 에워싸고 앉아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다. 창수는 뒷짐을 끼고 이리로저리로 머리를 수 그리고 걸어 다녔다. 그의 다리에는 힘이 더욱 풀어졌다. 그는 묫동 뒤에 가서 혼자 쪼그리고 앉았다. 그는 다시 생각하였다.
56
'아! 나는 나의 일시의 곤란을 면하기 위하여, 얼마 동안의 생명을 부지 하기 위하여, 아니다, 죽을 때에 넣어준 약간의 금이나 은을 도로 빼앗아서 가기 위하여 풍수의 화복설을 진실로 믿는 것처럼 꾸미어 가지고 애처의 유해를 가장 위하는 것같이 아닌 밤중에 여러 사람을 속이어 데리고 와서 그의 시체 위에 괭이와 가래질을 하게 되었다. 아! 나로 하여금, 수천 금의 많은 돈도 사랑하던 처를 위하여서는 아끼지 않은 나로 하여금, 고양이 새끼라도 그것이 죽은 송장이라면 얼굴을 다른 편으로 두르고 보기를 두려워하던 나로 하여금, 이렇게까지 용기를 내게 한 것은 그 무엇이랴? 양 심을이만큼 마비하게 한 것은 무엇이냐?’
57
그는 이러한 일을 엄두에 내어 가지고 여기까지 오게 된 자기란 것이 스스로 무서웠다. 이러한 일도 꺼리지 않고 넉넉히 하게 된 자기로써 이보다도 더 무서운 일을 다시 아니하리라고 누가 보증할까? 아, 무서운 일이다.
58
묘 파는 일만은 그만두자. 사랑하던 아내의 유해 위에 괭이질하는 일만은 그만두자! 그는 여러 사람에게 묘 파는 일은 그만두고 돌아가자고 입을 떼 어볼까 하였다. 그는 그러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59
'아니다. 나는 사랑하던 아내이니까 죽은 아내의 사랑을 믿고 이러한 짓을 감히 하러 온 것이다. 만일 아내가 살아 있고, 그가 그러한 보물을 지니고 있다고 하자. 그렇다 하면 내가 요전 사흘 굶을 때에 벌써 내주었을 것이다. 아니다. 몇 해 전 내가 병들어서 친구의 집에 누웠다가 나가라는 구박을 받을 때에 내주었을 것이다. 아니다. 그보다도 더 일찍이 떨어진 의복을 몸에 처음으로 걸쳐볼 때에 내어놓았을 것이다. 설령 그가 죽었다 할지라도 그 영혼에게 산 사람과 같은 활동이고 의식이 있다 하자. 그는 지금이라도 곧 그 관 속 머리맡에 다복이 놓은 돈과 평시에 지니던 금은지환과 노리개 같은 것을 서슴지 않고 아까운 법 없이 내주었을 것이다.
60
그러나 이러한 것을 생각하는 자기는 어떻게 못난 사람이랴. 자기를 사랑 하리라는 것만을 믿고, 또는 자기가 어떠한 일을 하였든지 용서하리라는 것을 상상하고 유해와 망령에게 욕을 끼치려는 자기의 천박하고 비열한 생각을 아니 미워할 수 없다. 아! 어찌하여 나는 이러한 의기 없는 남자가 되었는가? 낯가죽이 두툼한 비렁뱅이가 되었는가? 아! 알 수 없는 일이다. 알수 없는 일이다.’
61
이러한 모든 복잡한 감정과 뉘우침이 그의 가슴에 차올라올 때에, 그는 그 사랑하는 아내의 무덤 곁에 새로운 구멍을 파고 들어가고 싶었다. 아니다. 이렇게 조그마한 의기니 염치니 하는 것을 차릴 때가 아니다! 차릴 내가 아니다! 죽으려느냐? 살려느냐? 살기를 원한다. 살려고 지금껏 못 받을 모욕과 천대를 받아왔다. 그러한 천대와 모욕을 받기 전에 나는 마땅히 나의 사랑 하던 처의 무덤을 찾아야 하였을 것일까? 아주 할 수 없이 끝난 판에 찾아온 것이 오를 것인가? 모른다! 살려 하니 할 수 없다.
62
창수는 거의 마음의 평온을 잃었다. 주위의 엄장한 기분과 신비의 밤하늘이 몇 십만 근 되는 힘으로 그의 파리한 몸을 누르고 좁히는 듯하였다. 그는 한참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아 생각하다가 크게 결심한 것처럼 등불을 앞에 두고 담배를 피우는 여러 사람을 불렀다.
64
이 분부하는 말 한마디는 이성과 감정, 또는 반역과 굴종, 저주와 예찬, 모든 것이 한 교향악처럼 울리어 들리었다. 그는 얼음같이 찬 이성에 물어보았다. 몇 개 불쌍한 생명이 구원을 받을 것을 그대로 땅속에 파묻어 두는 비실 리적인 것을 부인하였다. 그의 감정은 사랑하던 처의 유체 위에 괭이를 대고, 이로부터 영원히 가질 아내의 귀히 여기던 물건을 꺼내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였다. 그는 모든 인습이나 법률상으로 보아 허락지 않는 무덤 파 는 반역적 행동을 하였다. 그는 그러한 것이 도덕이나 법률에 허락지 아니 함을 저어하여 사람을 속이고 밤을 타서 무덤을 파게 된 동기를 풍수 화복 설에 부치고 말았다. 이것은 변명할 수 없는 현대 모든 제도에 대한 굴 종이다. 그는 이와 같이 양심을 속이고 감정과 이성을 서로 싸우게 함은 현 실생활의 결함이다. 그는 이 현실 생활의 결함을 저주치 아니할 수 없었다.
65
죽은 아내의 살가운 감정의 품에 한 평상이 영원히 행복하리라 생각하던 그립던 옛날을 이와 같이 막다른 행동을 하는 이 자리에서 아니 예찬할 수 없었다.
66
그는 미친 듯이 다시 여러 사람 앞으로 달려들었다.
69
하고, 그들은 무엇이라 속살거리다가 어디서부터 일을 시작할 것을 결정 한 뒤에, 한 사람이 괭이를 높이 들어 한쪽 뗏장을 뒤집었다 괭이를 공중으로 높이 들 때에 괭잇날은 별빛에 번적하였다. 번쩍 하며 동시에 뗏장의 풀 뿌리를 끊고 들어가는 소리가 "콱, 삐걱."하고 들리었다. 번적하는 괭잇날은 흙을 뚫고 풀뿌리를 끓는 동시에 창수의 파리한 가슴의 여윈 늑골을 자르고, 염통을 쿡 찌르는 듯하였다. 심장의 풍선구(風船球)처럼 터지는 소리는 "콱 ─ 삐걱."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조화가 되어 인생의 최후의 숨 끊는 소리와 같이 들리었다.
70
창수는 거의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머리가 휑하였다. 몸이 비척비척 흔들리었다. 그는 겨우 두 팔을 뒤로 내어 땅을 짚고 비스듬히 드러누워 공중을 치어다보았다. 하늘에는 캄캄한 가운데에 별들만이 의연히 깜박 거리고 있을 뿐이다.
71
괭이 소리는 번갈아 자주 들리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어느 먼 나라에서가 늘게 울리어 오는 듯하였다. 괭이 소리가 그치고 가래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서푼서푼 흙 밀어내는 소리와 헐떡이는 일꾼의 숨소리만 이 솔밭을 울리며 불어가는 바람소리와 함께 창수의 뼛속까지 사무쳐 들리었다.
72
밤이 거의 자정이 되었을 때에 무덤의 한편은 평지가 되고, 다시 괭이 소리가 울리었다. 칠 년 전의 장사 지낼 때에 덮어둔 석회는 어느덧 성 석( 成石) 이 되어 괭이와 흙의 부딪치는 소리는 쇠와 돌의 맞부딪치는 소리였다. 이 쇠와 돌이 맞부딪치는 한 소리가 점점 땅 밑으로 깊이 들어가는 듯 하였다. 시간이 지나갔다. 시간이 갈수록 찬바람은 사면에서 불어왔다. 창수의 몸은 싸늘하게 식었다.
73
사면에 흩어져 있는 무덤 위에서 수를 헤일 수 없는 많은 망령들이 활개를 버리고 춤을 추는 듯하였다. 그리고 눈을 부라리며 "망령을 모욕하는 자여!"하며 "무슨 얼굴로 너의 아내를 대할 터인가? 어서 무덤을 덮고 빨리 돌아가라!"하며 나무라는 듯도 하였다. "아! 이 못난 아들이니 무엇을 할 짓이 없어 묘를 파는가! 이 묘적(墓賊)이여! 어서 이리 오라. 너의 못 생긴 마음보를 이 자리에서 빼어줄 터이니 어서 오라!"위협하는 듯도 하였다.
74
그리고 그와 같이 많은 망령 가운데에는 갑주(甲冑)를 입고 칼을 든 이도 있는 듯하였다. 관복을 입고 홀을 든 이도 있는 듯하였다. 원삼 쪽 두리에 곱게 연지 찍은 여자도 있는 듯하였다. 커다란 갓에 도포를 입고, 검은 띠 띈 선비도 있는 듯하였다. 푸른 장옷에 곱게 단장한 여인도 있었다. 그러다가 그들은 모두 관을 둘러쓰고 춤을 추는 듯하였다. 그리고 거기에 나타난 망령의 무리는 모두 창수의 이름을 부르는 듯하였다.
75
창수는 떴던 눈을 다시 감고 머리를 수그렸다. 그러나 감은 눈과 수 그린 머리 위에 모든 망령은 떠나지 않았다. 창수는 만일 그 자리에 일하는 여러 사람이 있는 것을 의식치 못할 만큼 그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면, 그는 조 금도 서슴지 않고 가슴을 헤치고 머리를 두드리며,
76
'아! 할아버지! 증조할머니여! 아버지여! 어머니여! 형님이여! 어린이여! 늙은이여! 너희들은 나를 나의 하는 대로 가만히 두고 보라! 나는 원통이 거리에서 망령이 되고 싶지 않다. 아귀가 되고 싶지 않다. 젊은 피가 마르기 전에 너의 나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는 물론 너희들 중에서 애써 모아 준 모든 것을 헛되이 없앴는지도 알 수 없다. 아니다. 헛되이 없앴다. 그 위에 무엇을 더 탐하여 투기사업에 모든 것을 내버렸었다. 술을 먹었다. 여자를 간음하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였다. 그러나 나는 아직껏 남의 것을 빼앗지는 아니하였다. 남에게 몹쓸 짓을 아니 하였다. 내가 내버린 그것만치 다른 사람이 얻었을 뿐이다. 나는 적선을 하였다. 어, 보기 싫다. 이 망령들이여! 물러가라! 사라지라! 나를 괴롭게 마라.’ 하고 부르짖었을 것이다.
77
또한 땅속에 묻혀 있는 사랑하던 아내에게 '사랑하던 아내여! 나의 오늘날 행위를 용서하라! 그대에게 거짓 행동을 많이 한 것을 용서하라! 그리고 그 대의 지니고 있는 모든 보물을 이리고 내노라. 그리하여 나의 남은 생을 즐겁게 하라. 나는 아직도 젊은 피를 가졌노라! 나는 그대가 죽을 때 모든 것을 그대의 관 속에 깊이깊이 넣은 것도 말하면 모두가 허위였노라! 그대의 혼을 위로하려는 양심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체면을 보았고, 이름을 얻으려 하였고, 또는 그 밖에 여러 불순한 감정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대여! 아내여! 나의 불순한 동기로 준 모든 선물을 나에게로 돌려보내라! 그 쓸데없는 물건을. 그 물건이 내 손에 들어온 뒤에 나는 다시 그것으로 이 젊은 몸의 불순한 피에 다시 불을 붙이려 하노라. 나는 다만 이것을 어떻게 쓰겠다는 것을 그대에게 맹서할 수가 없다! 그대여! 원망치 마라! 저주 하지는 더욱 말라! 내가 그대의 나라로 돌아갈 때에 모든 것을 그대에게 사과 하리라!’ 하고, 엎드려 부르짖었을 것이다.
78
그러나 창수는 아직 거기까지에는 정신을 잃지 않았다.
79
괭이 소리는 도끼 소리로 변하였다. 커다란 쇠망치로 두꺼운 철판을 두들 기는 소리가 땅 밑 여러 자 아래에서 울리어 왔다.
80
창수는 그 도끼가 석회덩이를 두드리고 석회덩이가 다시 썩어진 관판에 부딪치고, 그 관판이 또다시 관에 든 촉루(觸髏)에 툭툭 떨어지는 것을 상상 하였다. 그는 다시 떨리었다. 그 뼈만 남은 송장이 움푹 들어간 눈과 앙당한 이빨로 두 활개를 벌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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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불쌍한 남편이여! 그래도 이런 몸을 당신에게만 온전히 바치었던 몸 이 랍니 다. 당신을 위해서만 나는 이 세상에 나온 줄 알았었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습니까? 어서 당신의 참맘 참뜻으로 이 몸을 한 번 안아주십시오. 그리고 저승의 고요한 나라 찾아서 피 도는 꽃과 살 붙는 꽃, 숨 쉬는 꽃을 따다가 이 몸을 어서어서 문질러주십시오. 그래서 다시 한 번 이 사바( 裟婆) 구멍을 식혀주십시오. 어서 어서 이 무상한 남편이여! 이 야속한 이여!’ 하고, 덤비는 듯하였다.
82
창수는 두 팔을 앞으로 내밀며 그 환영을 붙들려 하였다. 그는 눈을 번듯 뜰 때에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앞에는 거의 한 길이나 깊은 땅 밑에서 담아 올리는 횟덩이를 받는 묘지기의 땀 흘린 얼굴이 희미한 등불에 비추어 보일 뿐이다.
83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컹컹 울리는 소리는 분명히 들리었다. 창수는 정신을 가다듬어 관머리 위로 조그만치 구멍을 뚫으라 하였다. 그리고 관 판이 보이거든 다른 사람은 하던 일을 멈추고 위로 올라오라 하였다.
84
도끼 소리가 의연히 울린다. 창수는 눈을 감은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도끼 소리가 잦아갈수록 그는 어떠한 무서운 시험을 받을 시간이 닥쳐오는 듯 하였다.
85
"다 되었습니다……." 하는 소리가 땅 밑에서 악마의 조소처럼 들리었다.
86
창수는 두 주먹을 쥐고 벌떡 일어났다. 그의 입은 어느덧 꽉 물리었다. 사지가 먼저보다 더욱 떨리었다. 이마와 등에는 땀이 척척히 젖었다.
88
이렇게 말하였으나, 이 소리는 다른 사람이 겨우 알아들을 듯 말 듯한 가는 소리였다. 그는 혀가 거의 마비된 것이었다. 그는 등을 한편 손에 들고 그 안으로 뛰어내렸다. 천 길이나 만 길 되는 깊은 나락으로 무거운 몸이 한없이 떨어져 들어가는 듯하였다. 그는 정신이 아찔하였다. 눈앞에 보이는것이 모두 두셋으로 어른어른하게 보였다.
89
그는 겨우 정신을 진정하려 하였다. 그러나 다리에 힘이 탁 풀어지며, 다시 머리가 휘휘 내둘리었다. 천 길이나 만 길이나 깊은 골짝으로 떨어지는듯 한 몸이 어느덧 다시 천 리나 만 리 먼 창공으로 훨훨 가벼이 날아올라가는 듯하였다. 그 밑에서는 수의 입은 수많은 망령이 부축을 하는 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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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자여! 망령을 불에 집어넣을 악마의 힘을 가지라!’ 하고, 왈칵 관 머리 위에 뚫린 구멍에 손을 넣으려 하였다. 그는 정신이 다시 아찔하였다. 등불이 홱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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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이나 높은 위에서 등불과 창수를 지키던 여러 사람은 "앗 ─."하고 소리 지르며 그 안으로 뛰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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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끄집어 올린 창수의 손에는 몇 개의 금은지환과 노리개가 단단히 쥐어졌고, 바삭바삭 삭은 기름기 없는 머리털이 손가락을 잔득 감기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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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식이 왜 밤중에 와서 야단을 치노 하였더니, 다 내력이 있어서 그랬던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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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사람이야. 제 여편네 묘를 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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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했어. 그 자식을 어젯밤에 그 구멍에다 그대로 파묻어버릴걸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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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북 생각다 못해 그런 짓까지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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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말이 그 동리 묘 파러 갔던 사람들 사이에 돌아다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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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참으로 아까운 일이야. 물이 물었느니 불이 들었느니 야단을 꾸미더니, 그런 명당이 없던걸그래! 그렇게 여러 해 된 묘이지. 관 안이 조촐하기가 방 안 같아……. 그리고 밤이라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무슨 김이 묽게 나오던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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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명당 기운이라네! 조금 참았다면 셈평이 펼 것을 그새를 못 참아서……. 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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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다년 장례 지내는 데에 다니던 경험 많은 늙은이의 탄식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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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호의 그림자는 며칠 뒤에 파는 묘 있는 편으로 향하여 길게 누운 채, T 촌을 떠나가버렸다. 그 후에 그 묘를 찾아오는 사람은 영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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