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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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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4
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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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리알
 
 

1. 1

 
3
반 삼태기가 넘게 짊어 놓은 자갈을 만금은 지고 일어섰다. 뼈마디가 졸아드는 듯이 짐은 무겁게 내려누른다. 누르는 맛이 아침결보다 차츰 더해 오는 것은 피로에 지친 까닭인가, 발자국을 떼니 걸음까지 비친다.
 
4
그러나 만금은 지게 작대기에 몸을 실어 가며 또박또박 걸음을 옮겨짚는다. 열 살 난 아이에게는 확실히 과중한 짐이다.
 
5
부르걷은 무릎마다 아래로 튀어질 듯이 불근거리는 두 개의 종아리, 자식의 그것을 뒤에서 좇아오며 내려다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꽤 애처로왔다. 자식의 짐을 좀 헐하게스리 자기가 좀더 갈라 였더라면…… 하는 생각도 순간 미쳤으나 그것은 애처로움에서의 정뿐이요, 이미 광주리 전이 넘도록 인 자기의 돌 광주리만 해도 목이 가슴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듯이 거북한 것을 뒤미처 느낄 땐 오직 그만한 억센 힘을 못 가진 것만이 안타까웠다.
 
6
아버지나 생존해 계셨으면 자식은 아직 이런 고생은 아니 하고도 지내게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 보며 고르지 못한 산등의 사탯길을 조심조심 걸어 내려와 후유 하고 한숨과 같이 걸음을 세우고 숨을 돌리며,
 
7
“얘, 만금아 좀 쉬어서 가지 않겐?”
 
8
하고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9
“그대로 가요.”
 
10
만금은 귓바퀴에 진땀을 쭉쭉 흘리면서도 힐끗 한 번 어머니를 돌아다보았을 뿐 배칠배칠 그대로 걸었다.
 
11
무엇보다도 지게 멜빵이 매달린 양쪽 어깨가 부풀어나 일어서는 듯 쓰리고 못 견디게 허리는 끊어져 왔다. 그러니 만금인들 좀 쉬어서 가고 싶은 마음이야 없었을 것이랴만, 모아 놓은 그 돌은 오늘 하루 안에 초시네 집에 까지 말짱하게 져다 놓아야 돈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미루어 보고, 아직 남은 돌이 다섯 짐도 더 될 것과, 벌써 한나절이 기운 해와를 맞비겨 볼 때 만금은 한 걸음이라도 지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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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50환, 그것은 확실히 오늘 저녁 안으로 필요했다.
 
13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니 집까지 모두 잃어버리고 노상에서 헤매는 전쟁 고아를 위하여 우리 가난한 주머니라도 다 같이 털어서 전반 생도가 50환씩 동정을 하기로 하자.’
 
14
이런 의미의 말을 담임 선생으로부터 들었을 때, 만금은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자기의 사정도 같았기 때문이다.
 
15
바로 작년 여름 그 끔찍스럽던 물난리로 말미암아 자기네 집에서도 지은 농사는 물론 숟가락 한 가락 남기지 않고 집채로 물에다, 아니 이 통에 아버지와 누이까지 잃어버리고 어찌다 어머니와 자기만이 살아나서 쌀 한 알 없이 굶던 생각, 그 여울은 지금까지도 벗을 수 없어 빚을 잔뜩 지고도 끼니에조차 헤매이게 되는 신세임을 생각할 때, 어머니조차 없는 그들의 정황이야 오죽하랴 싶어 만금은 자기도 그 돈 50환은 어떻게 해서라도 가져오리라 마음에 새겼다.
 
16
그러나 한 달에 백 환씩인 월사금도 아직 두 달 것이나 밀려오는 처지였다. 50환이란 하잘것없는 돈이었지만 그것이 그리 용이하게 마련되는 것이 아니었다.
 
17
만금은 이것이 어쩐지 월사금을 못 가져가는 것과는 달리 마음이 안타까웠다. 비록 50환이라는 돈이 그들의 배를 끝내 불러 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당장 주린 배에 한술 밥이라도, 그리고 따뜻한 자리에서 하룻밤의 잠자리라도 보태어 주고 마련해 주면, 아니 그 한술 한술 밥이 모여서 한 그릇 밥이 될 것이 아니냐 하던 선생님의 말씀 그대로 만금은 자기도 한술 밥을 그들의 곤 밥그릇 위에다 덧얹어 주고 싶었다.
 
18
만금은 그날 밤 선생님의 이런 말씀을 듣고 야학에서 돌아오는손, 어머니를 붙들고 50환만 해 달라고 졸랐다.
 
19
어머니도 만금의 그 말을 듣고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돈 50환만은 마련해 주리라 무척 애를 써 보았건만 하는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토요일 날 밤에 선생님은 오는 화요일 날 저녁까지에는 전반 생도가 죄다 가져오도록 하라고 또다시 재촉하는 말을 듣고 만금은 또 눈물을 흘렸다. 지금 형편으로서는 아무리 애를 써봤댔자 그때까지에 그 돈이 마련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것이 뜻밖에도 그 이튿날 아침 나무하러 산으로 가다가 윤초시네가 집을 지으면서 자갈을 산다고 동네 아이들이 분주히 돌주이를 하는 것을 보고 만금이도 그 자리에서 지게를 벗어던지고 그 아이들과 같이 돌주이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20
그리하여 어제는 진종일 돌을 주워모으고 오늘은 아침부터 그것을 져 나르던 것이었으나 짐을 져 보니 생각과는 달라 혼자로서는 도저히 오늘 하루에 그 돌을 다 져나를 수가 없어 점심참부터는 어머니까지 졸라서 끌고 나왔던 것이다.
 
 
 

2. 2

 
22
윤초시네 집 밭 도랑에는 올송졸송 돌더미가 수십 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돌더미 곁에는 돌 임자 아이들이 제각기 지켜 서서 어서 검사를 마쳐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금의 돌더미도 그 많은 가운데서 빠지지 않게 큰 더미에 꼽힐 하나이었다.
 
23
윤초시네 머슴은 석유통을 들고 다니며 일변 돌 되기에 바쁘고 초시 아들은 수첩을 꺼내들고 연필 끝을 혓바닥에다 찍어 가며 머슴이 부르는 대로 치부를 한다. 만금의 돌은 열 상자였다.
 
24
“너는 4백 환이다.”
 
25
하고 초시 아들은 조그만 것이 돌은 많이도 졌다는 듯이 만금을 한참 노려보더니 혀끝에 굴리던 연필을 또 수첩 위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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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백 환, 만금은 야학에서 갓 배운 구구법을 외어 보았다. 한 상자에 40환씩이면 열 상자이니 일 사는 사, 4백 환, 그리고 그것이 틀림없음을 알고 순간 형용할 수 없이 기뻤다. 그것을 가졌으면 그렇게도 애타던 그 50환은 우선 오늘 저녁으로 학교에 갖다 낼 수 있을 것이다. 자기의 힘으로 벌어서 헐벗고 굶주려 우는 전재 고아들의 한술 밥에 자기의 힘도 이처럼 미치는 것이 더할 수 없이 기꺼웠다. 그리고 남은 3백 50환으로는 밀린 월사금 낼 수 있으므로 부끄럽지 않게 뻐젓이 학교에 다닐 수 있을 것이고 또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닳아빠진 연필꽁다리도 인제 집어던지고 새것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공책도…… 하고 생각하니 만금은 기꺼움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밭도랑위에 두 다리를 쭉 펴고 주저앉아서 어서 돈을 받았으면하고 딴 아이들의 검사도 빨리 끝이 나 주기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게 되었다.
 
27
해가 이미 저물어서야 돌 검사는 끝이 났다. 아이들은 이제야 돈을 받게 되었구나 하고 마지막 검사가 끝나기 바쁘게 초시의 아들 앞으로 모두들 우루루 몰려들었다. 그러나 초시 아들은 돈을 계산해 줄 염은 커녕 수첩을 그대로 접어서 호주머니 속에 쓸어넣었다. 해가 이미 졌으니 돈은 낼 수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것은 해만 지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돈은 일체 대문 밖으로 내어보내지 않는 옛날부터 지켜온 윤초시네의 엄중한 가풍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내일 오정때쯤 모두 사랑으로 와서 돈을 받아가라는 명령뿐이었다.
 
28
이 소리에 아이들은 그만 맥이 탁 풀렸다. 더욱이 오늘 저녁 안으로 돈이 필요한 만금이는 눈앞이 다 아찔하였다. 돈을 벌어 놓고도 그 돈을 못 가져다 내다니, 내일은 그것을 전부 신문 지국에 가져다 맡긴다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안타까운 일이었다.
 
29
“주사님, 전 돌값 이제 주문 좋겠어요.”
 
30
만금은 생각다 못하여 입을 열었다.
 
31
“오늘 저녁은 못 준다니까 그래.”
 
32
하고 초시 아들은 만금을 한참이나 쳐다보더니,
 
33
“으응, 네가 최만금이지. 넌 이제 너의 어머니를 좀 보내라.”
 
34
하고 수첩을 다시 꺼내어 만금의 이름 꼭대기에다 무어라고 표시를 하였다.
 
35
이것을 본 만금은 자기는 따로 특별히 고려를 하여 주는가보다고 기꺼움에 두말없이,
 
36
“네에.”
 
37
하고 대답을 흘리면서 집으로 내달렸다. 그리고는 저녁이나 먹고 가 보자는 어머니를 재족재족 졸라 초시네 사랑으로 보냈다.
 
38
만금 자신도 진종일을 시달린 몸이라 어지간히 시장한 것이 아니었으나 저녁을 먹을 생각도 아니 하고 야학이 늦어지는 것 같아 책보까지 미리 싸서 대문 밖으로 나와 어머니를 기다렸다.
 
39
그러나 어머니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날은 어두웠다. 벌써 마을에서는 한 집 두 집 불을 켜기 시작했다. 야학에서도 머지 않아 종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만금의 마음은 초조하였다. 어둠 속에다 고개를 내빼고 기웃거리며 기다리다 못하여 이어 초시네 사랑으로 가서 어머니를 만나고 야학으로 직접 가리라 생각하는데 그제서야 어머니는 어슬어슬 돌아오고 있었다.
 
40
만금은 반가움에 저도 모르게 달려가 치맛자락을 붙들고,
 
41
“4백 환이지!”
 
42
하고는 어머니의 손아귀부터 더듬었다.
 
43
그러나 어머니의 그 손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44
“응, 4백 환이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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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만금은 어머니의 다른 한 손에다 또 손을 가져갔다.
 
46
그러나 어머니의 그 손 안에도 아무것도 쥐인 것이 없었다.
 
47
순간, 만금은 어쩐지 마음이 섬드레해짐을 느끼며 어머니의 치마끈으로 손을 옮겨 붙들었다. 그리고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어서 하여 달라는 조급한 대답의 재촉이었다. 어머니는 아무 대답도 없이 한참이나 만금을 내려다 보다가,
 
48
“넌 뭘 잘 듣지두 못하고 와서 그러니, 우리는 돈을 주지 않겠다는데-.”
 
49
하고 한숨을 꺼지게 쉬었다.
 
50
이 소리를 듣는 만금이는 그 이유를 물을 여유도 없이 갑자기 정신이 팽 돌며 눈앞이 아물거렸다.
 
51
“그러니 할 수 있니. 네 아버지가 작년 여름에 보리쌀 두 말을 갔다 먹은 게 있는데 그걸 갚지 못했다구 그 값으로 그 돌 값을 탕감한대더라. 그래서 날 오라구 그랬구나.”
 
52
하고 어머니는 쓴입을 다시었다.
 
53
그러나 만금이는 아무리 아버지가 진 빚이 있다고 해도 이제 그 돈 50환을 필요로 해서 그렇게 힘들게 일한 그 돌 값을 그 빚으로 때어 버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설혹 그런 생각을 초시네가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그 돌을 지게 된 그 연유를 말하면, 그리하여 오늘 저녁으로 절박하게 된 사정을 알게 된다면 딴 애들은 안 주더라도 자기의 돈만은 곧 내어줄 것 같았다. 분명히 어머니가 자기 사정을 전하지 못한 탓이리라 여기고 만금이는 선 자리에서 초시 댁으로 내달았다.
 
 
 

3. 3

 
55
“너 왜 또 오니? 어머니 보지 못핸?”
 
56
사랑문 안으로 들어서는 만금을 보자, 초시 아들은 귀찮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57
“어머닌 봤어요.”
 
58
“봤는데 왜 또 와?”
 
59
“보리쌀 값은 요 다음에 벌어 갚아두 오늘 돌 진 값은 이제 주믄 좋겠어요.”
 
60
그리고 만금은 이 밤 안으로 돈 50환은 학교에 가져다 내지 않아서는 안 될 절박한 사정이라는 것을 낱낱이 말하였다.
 
61
그러나 초시 아들의 귀에는 그런 말이 들어가지 않았다.
 
62
“글쎄 너의 어머니에게 말을 다 했대두 그러누나.”
 
63
하고 초시 아들은 그러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휙 안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64
그래도? 하고 한 줄기 희망을 품고 왔던 만금의 눈앞은 다시 아찔하였다. 참기 어려운 눈물이 순간 쭈루루 쏟아졌다. 만금은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길이 보이지 않았다. 야학으로 가야 하나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몰라 망설이며 초시네 사랑 뜰을 나와, 담 모퉁이를 꺾어돌던 순간 휭 하고 여무지게 땅바닥에 나가 엎드러졌다. 그러지 않아도 어두운 길에다 마음의 갈피를 못 잡아 돌부리에 걸렸던 것이다.
 
65
그러나 놀란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넘어지는 바람에 손에 들었던 책보가 두 발 가웃이나 앞으로 달아난 대뜸 기슭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여 그 책보를 찾으러 어릅쓸며 돌아가다가 하마터면 뒤로 또 곤두박질을 할 뻔하였던 것이다. 어릅쓸던 손이 담 밑으로 들어갔을 때, 그 안에서 오리 한 마리가 기겁을 하여 날개를 치며 면판을 밧쫓고 마주 달려 나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66
그러나 그 다음 순간 그것이 어떻게 된 연고이었던 것임을 알았을 때 만금은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끼었다. 책보를 더듬으려 다시 어릅쓸던 만금의 손에 잡히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담뜸 밑으로 오목하게 닦인 집검부지 속에 낳아 놓은 오리알이 그것이었다. 쓸어 보니 오리알은 한 알이 아니요, 세 알이나 대글거렸다. 만금은 그것이 오리알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되는 순간 그것을 학교 앞거리 상점에 가져다 팔았으면 50환은 넉넉히 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안타깝게도 만금의 마음을 찰지게 붙들고 놓지 않았다.
 
67
‘죄다, 남의 물건을 훔친다는 것은 죄다.’
 
68
만금은 몇 번이나 이런 생각을 하고는 그 자리를 떠나려 하였으나, 뒤미처 그의 눈앞에는 헐벗고 굶주려 우는 전재 고아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살려 달라는 듯이 자기의 어깨에도 그들이 무수히 달려와서 매어달리는 것 같은 환상이 눈앞에 어릴 때, 그의 손은 어느새 벌써 오리알에 가 닿아서 떨리고 있었다. 그는 더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한 알, 두 알, 세 알 연거푸 들어내어서 책보에 쌌다. 그는 죄를 범하였다는 두려운 생각보다 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 앞서서 그의 마을을 즐겁게 하였다. 만금은 가게에 달려가 한 알에 20환씩 세 알에 60환을 받아들고 그 길로 사무실로 들어가 그 60환을 모두 내놓았다.
 
69
“넌 이거 10환이 더 왔구나.”
 
70
하고 돈을 세어 보던 선생은 만금의 앞으로 10환 한 장을 도로 밀어 놓았다.
 
71
“선생님, 전 그 60환 다 내겠어요.”
 
72
만금은 그것이 잘못이 아니고 10환을 더 낸다는 뜻을 밝히었다.
 
73
선생은 만금의 뜻밖의 대답에 눈이 둥글하여,
 
74
“아니, 그럼 너는 10환을 더 낸단 말이냐?”
 
75
하고 만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76
“네에, 저는 10환을 더 내겠어요.”
 
77
선생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눈물의 성금! 월사금도 못 가져 오는 만금의 처지를 모르지 않았다. 그 실은 50환도 만금에게서는 믿지 않고 있던 선생이었다. 그렇던 만금이가 이제 50환에다 10환을 더 얹어 가져왔다! 이 10환 한 장은 실로 몇 만 환 금을 누르는 참된 성의 그대로의 큰 돈이라고 선생은 생각하였다.
 
78
“너 아무쪼록 공부 잘해라. 너는 반드시 장래에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다.”
 
79
하고 선생은 참으로 감격하여 만금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그리고 첫 시간인 산수 시간은 만금의 칭찬으로 탁상을 울려 가며, 가난뱅이로 세상에 이름을 떨친‘링컨’이니‘후버’니 하는 위인들을 끌어다 그 내력을 말하며 수양 강화를 한 바탕 베풀었다.
 
 
 

4. 4

 
81
이튿날 만금의 전재 고아 동정금에 대한 사실은 온 동네에 쫙 퍼졌다. 동네에서도 동정금을 모집하게 된 야학 선생은 동네 사람들로부터는 동정금을 내게 할 그 성의를 고취하기 위하여 가는 곳마다 만금을 내세우고 칭찬을 하였던 것이다.
 
82
그리하여 만금의 동정금에 대한 사실은 이 집 건너 저 집 건너 온 동네에 쫙 퍼져 이야기거리가 되고 보니 그 돈은 오리알을 판 돈이라는 사실이 자연히 상점 주인의 입으로 흘러나와 오리알을 잃은 초시네 귀에까지 흘러들어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돈은 초시네 오리알을 밤에 훔쳐다 판 돈이라는 것이 필경 밝혀지고 말았다. 그러니 만금을 두고 동네방네 칭찬을 돌아다니던 선생은 멋쩍은 입을 다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83
“너 어제 그 돈 60환을 어디서 마련했니?”
 
84
그날 밤 선생은 야학으로 올라가자 만금을 사무실로 불러들이고 질문이었다.
 
85
“…….”
 
86
“요눔아, 왜, 대답을 못 해?”
 
87
선생은 분함을 참을 수 없는 듯이 다짜고짜 만금의 뺨을 한 대 후렸다.
 
88
“요눔, 뉘가 도둑질 해다가 그 돈을 가져오라구 이르던? 그리구는 빤빤스럽게 선생을 속이구. 응 요눔.”
 
89
다시 건너가는 선생의 손은 만금의 귀곁으로 가서 또 찰싹 소리를 내었다.
 
90
할 말이 없는 만금은 그저 바들바들 떨며 눈물을 흘릴 뿐, 부끄러움에 못 참는 머리만이 점점 수그러질 뿐이었다.
 
91
“거짓말을 다시 또 할 테냐? 요눔.”
 
92
“안 하겠습니다.”
 
93
“도둑질을 또 할 테냐? 요눔.”
 
94
“안 하겠습니다.”
 
95
“다시 그런 못된 짓을 어디 또 해 봐라. 이 자리로 당장 그 오리알을 물러다가 초시댁에 가져다 드려.”
 
96
하고 선생은 돈 60환을 테이블 서랍에서 꺼내어 책상 위에 다 휙 밀어던졌다.
 
97
선생의 손끝에서 힘있게 밀리는 돈이 눈앞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순간, 만금은 갑자기 설움이 북받쳐 울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들먹이는 어깨 따라 가다듬었던 눈물이 또다시 주르르 흘러내리며 지전 위게 뚝뚝 떨어졌다.
 
98
“냉큼 집어들고 나가지 못해!”
 
99
깩 소리와 같이 텅 하고 선생은 주먹으로 테이블을 울렸다.
 
100
만금은 말없이 떨리는 손으로 돈을 움켜들었다.
 
101
어제 저녁 상점에서 오리알과 바꿔들었을 때의 그 돈과의 감정의 교차를 손안에 느낄 때 만금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였다. 힘없이 발길을 돌리는 걸음 좇아 마룻바닥 위에 점점이 떨어지는 말간 눈물 방울을 만금은 밟고는 또 떨어뜨리고 떨어뜨리고는 또 밟으며 무거운 걸음을 옮겨놓고 있었다.
 
 
102
〔발표지〕《조선농민》(1936. 4.)
103
〔수록단행본〕*『신한국문학전집』제6권(어문각,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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