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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1
壬辰之亂。吾家奔竄谷山間。至九月間。欲投我所在湖西之新平。路出坡州地。夜失德立。其後百般聞見。終不能得。乙未間。沈遊擊惟敬出入倭營。黃愼依天朝所命。稱爲的堂陪臣。留在釜山。天使入海時。黃仍差跟隨陪臣而行。吾使奴賫物貨。入送倭營。隨黃行入倭國。雖極加聞見。畢竟未得存亡消息。丁酉戊戌間。余於平壤遇沈惟敬問失兒之事。則答曰。送奴探問。亦知之。但被擄人中。雖常人亦有聞見之路。而此則昧昧。意必死亡云。至於丁未回答使之還。刷還我民甚多。亦邈然不得知。今則吾夫妻已七十將死。已矣無可言。罔極。
 

 
2
임진년 난리에 우리집은 곡산(谷山) 지방으로 피난을 갔는데, 9월이 되어 내가 있는 충청도 신평(新平)으로 오려고 파주(坡州)에 왔을 때에 밤에 덕립(德立 윤국형의 아들)을 잃어버렸다. 그 후에 백방으로 알아보았으나 끝내 찾지를 못했다. 을미년(선조 28, 1595)에 유격(遊擊) 심유경(沈惟敬)이 왜국 진영에 출입하였는데, 황신(黃愼)이 중국 조정의 명으로 “적당배신(的堂陪臣)’이라는 이름으로 부산(釜山)에 머물렀다. 중국 사신이 일본으로 들어갈 때에 황신은 그대로 근수배신(跟隨陪臣)으로 차임되어 수행하였다. 내가 종을 시켜 물화를 싸서 왜국 진영으로 들여보내고, 황신의 행차를 따라 왜국에 들어가도록 하여 힘 닿는 대로 널리 알아보게 했지만, 끝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
 
3
정유ㆍ무술년 경에 내가 평양(平壤)에서 심유경을 만나 잃은 아이의 일을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4
“종을 보내 탐문해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다만 잡혀 있는 사람 중에 비록 상인(常人)이라도 소식을 알 수 있는데, 이 아이는 소식이 감감하니, 필시 사망하였을 것입니다.”
 
5
하였다.
 
6
정미년 회답사(回答使)가 돌아올 때, 돌려보낸 우리 백성이 매우 많았는데 우리 아이의 소식은 까마득히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은 우리 부부의 나이 이미 70으로 죽을 날이 가까워 그만 말할 것도 없으니, 망극하기만 하도다.
【원문】갑진만필(甲辰漫筆) 3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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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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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4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