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자작안내(自作案內) ◈
카탈로그   본문  
1939.5
채만식
1
自作案內[자작안내]
 
2
지나간 병자(丙子)─소화(昭和) 11년부터의 자작(自作)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다.
 
3
병자 이전에도 하기야 10년을 문단에 적을 두고 지내왔으니 거기에 대해서도 무어라고든지, 가령 면목이 없거든 진사(陳謝)라도 한마디 말이 있어야 할 것이지만, 그걸 않는다고 누가 나를 잡아다가 제주도로 귀양은 보낼 리 없는 것, 차라리 면피 두꺼운 채 문두름히 씻어 넘기고 말겠다.
 
4
이것은 그 시기가 시방 와서 남의 앞에 점직한 것도 점직한 것이거니와 혹시 한두 편 이야기거리가 될 작품이 있다고 해도, 스크랩을 따둔 것도 없고 기억도 희미하고 해서 섣불리 차례를 잡다가는 망발까지 할 판이라, 그래저래(없는) 수염이라도 한번 쓰다듬고 마는게 옳겠다. 염량인 것이다.
 
 
5
다른 사정도 없는 게 아니었으나 무엇보다도 나의 문학 하던 태도를 돌아보아, 이것을 하느니 차라리 그만둘까 보다고 스스로 제작을 중단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갑술(甲戌).
 
6
하고서 침음(沈吟)으로 2년을 보냈고, 그랬다가 다시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아마 애착이 무던했던 모양이지) 예라 이럴 일이 아니다고, 노둔한 머리와 병약한 오척단구를 통째로 내맡겨 성패간에 한바탕 문학이란 자와 단판씨름을 하리라는 비장(?)한 결심을 한 것이 병자년 벽두, 마침 조선일보를 물러나오던 기회다.
 
7
다 늦게 철이 난 셈이라고나 할는지, 아무렇든 결심은 그러했고, 그러나 막상 나서서 보니 결심이 그리 장한 게 아니라 앞과 좌우에 가로막힌(요새 말로 하면) ‘마지노 라인’을 뚫고 나갈 일이 아뜩하다.
 
8
우선 10년을 해롱해롱한 것이 발등을 찍고 싶게 원통하다. 정성들여 작품을 쓰지 않았거든 계제에 공부라도─본시 문학을 할 기초를 학문적으로 체계있이 닦지를 못했으니 그러한 방면이라도─무얼 좀 해두었을 게 아니더냐 말이다.
 
9
그 다음 원고와 활자와의 중간조건, 그가 어림없는 준험(峻險)하여 거의 문학의 생명을 좌우할 형편이다.
 
10
자, 그러한데다가 다시 야박스럽고도 절박한 게 무엇이냐 하면 구복(口腹)의 전령의 급함이다.
 
11
금붕어라고 물로만 살 수 없고, 자행거(自行車) 바퀴라고 바람으로만 제 노릇을 할 수는 없는 것, 최대한도의 의식주를 문학에다가 탁(託)해야 하겠는데, 그 최소한도의 실비를 얻기에는 내 몸뚱이가 가진 최대 한도의 노력을 들여야만 하겠고, 그렇게나마도 실상은 불급(不及)이다.
 
12
어느 하가(何暇)에 정성있는 작품을 쓰리요. 만일 써졌다면 그것은 제 살을 깎아먹는 발악이거나 기적일 것이다.
 
13
사실 나는 겉으로 보매와는 달라 속살은 져서 16관은 되던 체중이 시방은 14관 5백돈쭝이 될까말까 한다.
 
14
어떤 실없는 친구가 그랬는고 ? 문학이 남아 일대의 쾌사(快事)라고.
 
15
제 쓰고 싶은 대로 쓰지를 못해 내종(內腫)이 들어도 ? 규방의 아녀자의 소일거리나 만들고 앉았어도 ? (『秋月色[추월색]』보다 값만 비싼 것)
 
16
소학교의 쾌도감도 못되는 인체생리도를 그림 대신 문자로 그리고 앉았어도?
 
17
그 짓을 하느라고 제 살을 깎아먹고……
 
18
그거나마 이땅의 문학이 이미 이루어진 화려한 전당이기나 하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이건 한참 땅다지기를 하고 철근을 엮고 벽돌을 쌓고 하느라고 거기에 동원된 2백자 1매에 25전의 품삯을 받는 쿠리가 소위 문학인데야 천하 없어도 문학이 남아 일대의 쾌사까지는 희떠운 소리다.
 
19
그러나저러나 간에 인제 와서는 하느님보다 ‘더 무서운 양반’이라도 금하기 전에는 나는 문학을 버릴 강단은 없고, 생각하면 고생길로 영영 발을 들여놓은 채 여생을 마칠 팔자다. 듣건대 지나(支那) 사람은 자식이 주색에 방탕하면 아편을 먹인다고 ?
 
20
조선의 부형(父兄)은 (사랑하는) 자질(子姪)이 문학을 한다거든 그야말로 아편을 먹일 일이다.
 
21
이만하면 여태 해온 소리가(혹시 거짓말이라도) 보는 사람은 나의 소설 잘못 쓰는 내력을 그럴듯하다고 속아 넘어가겠지.
 
 
22
병자년부터 아무려나 그렇듯 명색 재출발을 하여, 맨 처음 2백 매 가량의 단편을 쓴 것이 「보리방아」, 그걸 그런데 조선일보의 학예면에 발표를 하다가 불과 12회에 어떤 사정으로 그만 중단이 되었다.
 
23
일껏 새출발을 했다는 것이 대문간에서 이마를 부딪친 꼴이다.
 
24
이「보리방아」를 그 뒤에 착각 깎고 잘라내고 문장으로 농(濃)한 단장을 시켜본 것이 「동화(童話)」(女性[여성]지 무인 3월)라는 단편이다. 뼈를 뽑고 문장만 닦달한 문학, 그것은 마치 속에 든 것 없는 사람이 몸치장으로 행세하는 거나 다름없음을 살이 아프게 느꼈다.
 
25
일변 그해 병자년이 250매 가량의 단편「명일(明日)」을 상ㆍ중ㆍ하 세번으로 조광지(朝光誌)에 발표했고, 하는 도중 벗 안회남(安懷南) 군이 예의 ‘밥 먹는 식’ 월평을 하던 끝에 단지 일언, 채만식 씨의 권토중래가 반갑고라고 콧등을 꼬집어 주어서 가슴이 서늘했었다.
 
26
그러나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지 이 「명일」은 내가 위에서 말한 갑술년부터 의식적으로 문학을 중단하고서 침음하던 최종의 작품 「레디 메이드 인생」(新東亞誌[신동아지])의 발전이요, 이내 나의 문학의 방향의 한 가닥이 거기에 근원을 둔 것인만큼 나에게 중난(重難)스런 작품이 아닐 수 없다.
 
27
부득이하여 역설적인 따름이지 「명일」의 흐름이 오히려 더 건전하게 발전이 된 것이 단편 「치숙(痴叔)」(동아일보 무인 4,5월중)이요「이런 처자」(四海公論[사해공론] 무인 6월)가 장편『탁류(濁流)』의 물이 밴대로 또한 그러하달 수가 있고 「소망(小妄)」(朝光誌[조광지] 무인 10월)은 ‘오늘’의 슬픈 상모(相貌)를 띤 역시 「명일」의 방향이다.
 
28
그러나 내가 시방 통곡하고 싶은 심정은 「명일」이 「치숙」의 방향으로 나마도 발전이 안되고서 「소망」의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가령 내 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책임은 내가 져야만 할 것인데 「소망」에서 은근히 싹이 트더니 앞으로 금년 일년 중에 쓰려는 단편「선인(仙人)의 집」(가칭)이나 「흥보의 집」(가칭)이나 「소망이후(少妄以後」(가칭)나「금의환향(錦衣還鄕)」(가칭)이나 그리고 장편 『원장(怨章)』(가칭)까지도 뚜렷이 자리를 잡고 앉는 리힐리즘의 독한 호흡이다.
 
29
나는 그 요기(妖氣)에 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면서도 (마치 魔物[마물]에 홀린 듯, 정신은 말짱해 가지고도 부지불식간) 그리고 끌려만 들어가는 내 자신을 바라다보면서 몸을 떨고 있다.
 
30
(니힐리즘을 이겨내려고 애를 쓴 결과는 「정자나무 있는 삽화」(농업조선지 금년 1월 급 2월)에서와 같이 작품에 파탄만 주고 말았다)
 
 
31
「명일」의 방향을 좀더 넓고 세속적인 세계에서 발전시켜 보자던 것이 장편 『탁류』다.
 
32
그랬더니 어찌하다가 알짜는 남의 눈에 안 띄고 일컬어 ‘세태소설’이 되어버렸으니, 작품이 자식이라면 자식 치고는 불효자식이다.
 
33
임화(林和) 씨는『탁류』를, 세태를 꼼꼼스럽게 그린 것을 상주고, 그러나 세태를 꼼꼼스럽게 그리는 데 그쳤다고 나무랐다. 그리고 김남천(金南天) 씨는 세태를 오로지 세태대로 그린 전반(前半)이 값이 있다 하고 세태소설의 테를 벗어난 후반을 부질없은 사족이라 해서 그것을 작품 전체의 상처라고까지 단평(斷評)을 했었다.
 
34
두 분의 설을 나는 일변 사실로 수긍하지 않진 않는다.
 
35
그러나 『탁류』가 임화 씨의 소설(所說)대로 종시 세태를 세태대로 그려놓기만 했지 의미하고 미흡하나마 거기에 어떠한 적극적인 작자의 의욕이 과연 보인 게 없었는가? 또 김남천 씨에 의하면 미상불 그 적극적인 작자의 의욕이 보인 게 사실인 듯한데 그것을 갖다가 작품을 잡아놓은 사족으로 괄시를 해야 할 것인가?
 
36
양설(兩設)이 다 나에게는 조금 섭섭했다. 그런 중에도『탁류』를 박태원(朴泰遠)씨의 『천변풍경(川邊風景)』과 꼭같은 유형의 ‘세태소설’이라는 레테르를 붙이는 데는(박태원 씨는 박태원 씨대로 불평이겠지만) 나는 나대로 또한 불평이다.
 
37
세상이 다 용인하는 대로 『천변풍경』이 좋은 예술품인데야 틀림없겠지만 가령『탁류』가 그보다 못한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양자를 같이 값치는 데는 단연 불복이다.
 
38
그것은 결코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곱다고 하는 그런 심사가 아니요, 문학정신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탁류』가 저기 누구 딴 사람의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역시 같은 불복을 말할 것이다.
 
39
탈선이 되지만, 하필 박태원 씨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누구든지 문학을 고려자기나 사군자(四君子)와 같이 치는 사람이면 몰라도(미상불 그러한 문학이 없는 게 아니요, 따라서 그네는 그걸로 자족할 것이지만) 문학이 적으나마 인류 역사를 밀고 나가는 한개의 힘일진대 한인(閑人)의 소장(消長)거리나 아녀자의 완롱물(玩弄物)에 그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나는 목이 부러져도 주장을 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40
장편『천하태평춘(天下太平春)』은「명일」의 발전인「치숙」의 방향이기는 하나 「명일」과는 전연 다른 세계다.
 
41
이 작(作)은 실상 정축년간(丁丑年間)에 5백 매 가량으로 잡지 6회분에 전작(全作)을 하여 『조광』지에 보냈던 것인데, 발표가 더딘 계제에 또 작품적으로 내 자신의 불만이 있고 해서 다시 개작(改作)을 한 것이요, 무인(戊寅) 신년호부터 동 9월호까지 동지에 연재를 했다. 그랬기 때문에 거기에는「치숙」과 교류되는 점도 있고 지나사변이 에피소드로 채록도 되었다.
 
42
김남천 씨는 『천하태평춘』을 조선의 신문학이 있은 지 30년에 일찌기 예가 없게시리 이 작품에는 부정적 인물만이 등장되었다고, 그렇듯 부정적 인물만의 등장이 아무래도 문학의 본도가 아니라는 눈치로서 말을 했다.
 
43
사실 나도 그 길을 평생 두고 가려고는 않고, 그 길─부정면(否定面)만 골라내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또한 우리네 스승이 경계한 바이라 잊어버린 것이 아니다.
 
44
그러나 부정면을 통하여 기실 긍정면을 주장하기 위해서의 부정면은 결단코 유독하지는 않은 것이다.
 
45
더구나 그렇게밖에는 붓(筆)을 댈 수 없는 사정이나 부정면을 통해서야만 그 긍정면이 도리어 박력있이 보여질 수법상의 경우가 또한 없는 게 아니다.
 
46
아뭏든지 나는 눈치는 먹더라도 한동안 『천하태평춘』의 방향도 버릴 수는 없다. 그러한 부정면의 대(對)긍정면의 관계를 알아볼 줄 모르고 문학적으로 표현된 현실의 ‘추(醜)’를 문학적 ‘미(美)’로 보지를 못하고서 ‘문학적 추’로 여기는 ‘성자(聖者)’들이 있으나, 그런 분들이 독자의 한 사람인 것을 나는 대단히 폐로와하는 동시에, 그들에게는 손쉽게 ‘기꾸찌깡’이나 한평생 읽고 있으라고 권면을 해둔다.
 
 
47
세태적인 것도 아니요, 부정에 의한 역설적인 것도 아니요, 내딴에는 가장 건실하게 나가보았다는 것이 희곡 「제향(祭饗)날」(조광지 丁丑[정축] 11월)이다.
 
48
이것은 오래 전부터 3부작으로 장편을 쓰려고 뱃속에서 두루 길러오던 것인데, 차차로 세정(世情)은 불여의하고 손은 미처 돌아가지를 않아 초조하던 끝에 우선 시험삼아 그러한 형식과 분량으로다가 모형을 만들어보았던 것이다.
 
49
물론 세평(世評)마따나 뼉다구만 골라 세운 실패작이나(그렇다고 柳致眞[유치진] 씨가 말한 대로 少成[소성]이라고 자인함은 아니요) 장차 심신을 가다듬어 이 「제향날」을 가지고서 동학 혹은 갑신정변 제1부로, 기미(己未) 전후를 제 2부로, 그 뒤에 온 시대를 제 3부로, 이렇게 3부작을 쓰고 다시 유보(遺補)로 정축ㆍ무인으로 한편을 더 쓰고 해서 그걸로 필생의 사업을 삼아 엉뚱한 대망의 재료다. 만약 그것을 못하고서 죽는다면 임종에 눈이 감기지 않을 성부르다.
 
50
이상의 것 말고서 남이야 칭찬을 하더라도 나는 망신거리로 여기고 일괄하여 ‘불여의(不如意)’ 라는 봉투 속에 넣어두는 작품이 수는 수두룩하여 14,5 있다.
【원문】자작안내(自作案內)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평론〕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16
- 전체 순위 : 2905 위 (3 등급)
- 분류 순위 : 434 위 / 1835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1)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자작안내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1939년 [발표]
 
  평론(評論) [분류]
 
◈ 참조
  # 창작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자작안내(自作案內)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6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