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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치진론(柳致眞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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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3월
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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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致眞論[유치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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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實[현실] 가운데 나서 現實[현실] 가운데 죽는다는 것은 사람에 따라 여러가지 의미를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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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즐거울 수도 있고, 혹은 괴로울 수도 있고, 때로는 별로 아무렇지도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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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個體[개체]로서 이 지상에 生[생]을 향수하는 순간부터 최후까지 항상 현실의 한조각이었으며, 또한 그 자체가 벌써 하나의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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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리얼리티’란 실로 전율할 음향을 전하는 말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 단순히 生[생]의 의미였을 뿐만 아니라 존재 그것의 숙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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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문학이 어떤 의미에서이고 현실적이었다는 말은 그것이 個體[개체]와 外界[외계]가 접촉한 여러가지 표현이었다는데 근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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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으면 문학이 인간의 不絶[부절]한 생명을 기록한 표현이 될리는 만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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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결코 내가 한 사람의 同時代[동시대] 작가를 논함에 있어 일부러 독자의 주의를 넓은데로 이끌어 한장의 조그만 肖像[초상]을 그려내려 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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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같은 하늘아래 호흡하고 있는, 한 극작가의 ‘시루엣’속에 내 자신의 확대된 그림자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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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간(1937년 12월) 東亞日報[동아일보] 신년좌담회는 실로 그와 나와의 기이한 정신적 해후의 한 장면이었다. 나는 당시의 速記[속기]가 이 한개의 뜻깊은 정신적 ‘시튜에슌’을 기록치 못함을 嗟嘆[차탄]하고 싶다. 그의 그리 능숙치 못하고 약간 떨리는 듯한 辯說[변설]에서 나는 가장 眞摯[진지]한 현대 작가의 고백을 들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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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 그것은 현대문학 위에 무엇을 기여하느냐? 나는 諸作品[제작품] 속에 점점 깊어가는 암흑과 절망을 찾아낸 데 지나지 않었다. 그것은 아마 나의 罪過[죄과]라기보다도 현실의 罪過[죄과]일 것이다. 현실 속엔 암만 찾아도 광명과 희망은 없었다. 그러면 광명과 희망이 없는 현실 속 주민들에게 문학은 역시 암흑과 절망을 도루 선사해야 하느냐? 나는 그런 때문에 문학을 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문학은 암흑에 싸인 대지 위에 한점의 광명을 던질 수 있는데 존재 이유가 있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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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前言[전언]과 같이 리얼리즘은 현재 우리에게 있어 절망을 찾아내게 하는 방법은 될지언정, 희망을 찾아내는 길은 아니된다. 오늘날에 있어 현실이란 절망의 원천에 지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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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나는 어떤 낭만정신이란 것을 생각하고 싶다. ……云云[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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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三文[삼문]의 총명이 연상할 수 있듯 나는 낭만정신 운운의 一句[일구]에서 그와의 공감을 발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그와 더불어 이곳 현실 위에서 아름다운 과실을 한알도 주어보지 못한 불행한 예술가란 한점에서 血緑[혈록]을 의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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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고백 가운데엔 리얼리즘에 대한 불신이라기보다도 현실의 가치에 대한 절망이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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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일찌기 우리가 토지를 사랑하는 농민처럼 현실에 집착한 것은 무슨 때문인가. 그것은 아직 우리가 현실의 가치를 몰랐던 때문인가 하면 결코 그렇지는 않었다. 우리는 본디 이 현실을 쾌적한 장소라고는 믿지 않었음에 불구하고 미래의 萠芽[맹아]를 胚胎[배태]한 大地[대지]라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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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버드나무 선 洞里風景[동리풍경]」이후의 「소」「姉妹[자매]」등 諸作[제작]은 실로 근면한 耕作[경작]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작자 자신이나 일반이 조선 현실의 충실한 묘사라고 생각하는 이 작품들이 과연 현실의 가치를 摘出[적출]할 만큼 날카로운 연장이었는가를 반성하지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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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꾸어 말하면 현실의 가치를 의심하기 전에 또는 그것을 표현하는 문학의 방법을 懐疑[회의]하기 전에, 제 자신이 얼마만한 정도의 ‘리얼리스트’이었는가를 음미의 제일 대상으로 삼지 않으면 아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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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이 함부로 모든 가치를 믿지 않는 부질없는 懐疑[회의]에 떨어짐을 우리는 극도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왜 그러냐 하면 반성이란 名目[명목]으로 흔히 사람들은 자기 이외의 모든 것을 믿지 않는 대신 제 자신을 盲信[맹신]하는 어리석은 상태에 빠짐으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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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自身[자신]을 알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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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먼저 나는 이 명제를 현재 우리들에게 절박한 제일 命題[명제]로 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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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작가들에게‘제 자신을 알라?’는 명제의 의미는 무엇보다 제 업적의 재 검토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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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省[반성]은 언제나 구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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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거니와 그 작품들이 희곡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일 소설로 씌어젔다면 조선문학의 최고 도달점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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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題上[주제상]으로 본다 하더라도 출세작「버드나무 선 洞里風景[동리풍경]」을 위시하여 「소」「姉妹[자매]」「祭祀[제사]」등 諸作[제작]은 家長的[가장적] 농촌의 劇的[극적] 붕괴라든가, 무고한 자녀들의 비극이라든가, 私有慾[사유욕]이 빚어내는 여러가지 희비극이라든가, 화폐의 위대한 힘이라든가, 새 세계가 일어서면서 헛치는 심각한 파문이라든가를 독창적 각도에서 그린 작품들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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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약점은 그의 희곡이 새로운 의미를 갖는 예술적 인물을 한사람도 창조해 내지 못한 데 가장 뚜렷한 예술적 흔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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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의 一家[일가], 팔려 가는 딸, 악덕舎音[사음], 망한 양반, 돈 모은 常人[상인], 불행한 舊[구]여성, 고뇌하는 신여성 등등 과거 십여년 간 조선소설 위에 허다했던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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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이러한 인물들의 예술적 가치가 이미 과거의 것이라든가, 그런 平俗化[평속화]된 인물을 재 사용한 것만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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要点[요점]은 그전 작가들이 여러 모에서 주물러 벌써 유형이 될려는 인물들을 새로운 조명하에 비처 類型[유형]으로서의 外皮[외피]를 깨뜨리고 그 진정한 새 생명을 재 발견하지 못한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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例[예]하면 소설 「故鄕[고향]」의 가치가 ‘막동이’,‘방개’등 일련의 새 인물을 창조한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로 그전 농촌소설에 허다히 등장했던 金喜俊[김희준], 安承學[안승학] 등을 새 시각에서 再琢磨[재탁마]한데 오히려 작자의 공적이 빛남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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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致眞[치진]의 극작가로서의 독자성은 그가 드라마티칼한 시튜에슌 가운데 이런 인물들을 再行動[재행동]시킨 데 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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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문학에 있어 장르의 차이로 생기는 독자성이지, 창조적 의미의 독창성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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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장르적 의미의 독자성이 실상은 致眞[치진]으로 하여금 朝鮮劇文學[조선극문학]의 새 시대를 개척케 한 것이며, 조선서 가장 유닉크한 극작가로서의 명예를 장만해 준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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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또한 朝鮮劇文學[조선극문학] 발달의 특이성, 바꾸어 말하면 수준이 幼稚[유치]했던 사실의 결과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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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희곡의 진정한 독창성은 ‘고고리’, ‘체흡’과 같은 독창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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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察官[검찰관]」은 ‘푸쉬킨’의 시에도 소설에도 없는 새 세계이며, 「봐니아」는 ‘뚜르게네프’나 ‘톨스토이’의 소설에도 없는 새로운 경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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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문학적 의미의 독창성이란 시인이고, 소설가이고, 극작가이고 간에 여태까지의 문학세계가 몰랐던 세계를 발견함에 있다. 그러나 致眞[치진]은 결코 朝鮮作家[조선작가] 중 새 세계를 발견한 작가는 아니었다. 바꾸어 말하면 致眞[치진]은 다른 작가에 비하여 현실을 보다 더 깊게 인식한 작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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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을 다른 측면에서 보면 작가로서의 致眞[치진]이 우리 현실 가운데서 獨自[독자]의 生[생]의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사실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독창적인 인간은 항상 환경 가운데서 현실과 접촉하는 고유한 방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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致眞[치진]의 희곡 가운덴 분명히 이것을 反証[반증]할 詩的[시적] 정열의 뜨거운 입김이 부족하다. 비록 그것이 架空[가공]의 理想[이상]을 품었다 하더라도 독창적 인물을 창조하여 그 인물이 환경의 리얼리티 속에서 능히 부지할 수 있느냐, 敗散[패산]하느냐 하는 갈등의 정열만이 비로소 작자가 현실과 부딪치는 血戰[혈전]의 熱度[열도]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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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현실을 안다는 유일의 길이 바로 ‘나’와 환경과의 熱火[열화]가 피는 갈등 속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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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작자의 뜨거운 혈압을 느낄 수 없는 작품 속엔 작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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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易[안이]하고 냉철한 관찰 의식만이 빛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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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여태까지 致眞[치진]이 쓴 대부분의 사실적 작품은 거개가 현실과의 갈등의 소산이라기보다는, 식은 관찰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관찰자에겐 현실은 자기의 심오한 비밀을 開示[개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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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작가의 앞에 새로운 창조적 세계가 전개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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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致眞[치진]의 예술적 도달점과 현실意識[의식]의 수준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단언할 수가 있다. 이것은 우리 현대 작가들의 共同[공동]한 성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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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먼저 리얼이티란 두려운 음향을 전하는 말이라 하였다. 현실이란 작가에게 있어 하나의 말 이상의 육체적인 의미를 갖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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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제 방법으로 현실을 超剋[초극]하고 그것에 승리하였다고 생각할제, 실상 우리는 등 뒤로부터 현실의 역습을 받는 것이다. 현실은 우리들이 베푸는 희망의 教說[교설]의 공허함을 아프게도 적발하는 것이다. 우리는 작품 가운데 쌓아 올린 희망의 탑이 헛됨을 느낄 때 우리는 처음보다도 훨씬 깊은 轉落[전락]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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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香傳[춘향전]」의 각색이라든가, 최근의 역작 「皆骨山[개골산]」은 옹색한 금일의 현실 대신에 역사의 현실 속에서 자기의 꿈을 살릴 境域[경역]을 모색하는 커다란 노력이다. 현실은 결코 致眞[치진]을 놓아 주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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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皆骨山[개골산]」가운데에는 결코 금일의 현실에서 致眞[치진]이 발견치 못한 것이 새로 발견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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致眞[치진]의 노력은 겨우 한사람의 朝鮮型[조선형] ‘햄릿’마의태자를 만들어냄에 불과하였고, 그가 금일의 세계에서 구성치 못한 역사적 성격의 壯大[장대]한 갈등이라든가, 우리들에게 폭풍과 같은 압력을 갖는 개인의 운명을 그리어 내지도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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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긴 희곡을 읽고 우리의 머리속에 남는 한줌의 헛헛한 感[감]은 그가 현대를 떠났다는 섭섭함에 비하여 결코 덜하지 못했음은 어쩐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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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금일의 현실을 떠나 다른 세계를 遍歷[편력]할 때라도 현대는 靈[령]이 되어 그 작가의 뒤를 따르는 법이다. 致眞[치진]은 과연 「皆骨山[개골산]」속에서 자기가 뿌리쳤다고 생각하는 현대의 亡靈[망령]과 해후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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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 亡靈[망령]을 쫓았다고 생각할제, 亡靈[망령]은 그림자가 되어 우리의 발 뒤굼치에 붙는 것이며, 그림자를 잘라 버렸다고 생각할제, 그림자는 어둠이 되어 우리의 온 주위를 둘러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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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란 실로 작가에게 있어 악마와 같이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오늘날의 현실 가운데서 문학한다는 것은 현실의 貧困[빈곤]이 낳는 하나의 인간적 비극에 불과하다. 그러나 비극을 피한다는 것은 더욱 더 큰 문학적 비극을 낳는다. 그러므로 차라리 이 비극을 문학의 원천으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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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능력을 盲言[맹언]함에서가 아니라, 다시 한번 현실 앞에 직면하여 현실이란 亡靈[망령]의 비밀을 종국적으로 붙잡을 때까지 현실과 死[사]를 賭[도]하여 맞붙는 데서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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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우리들 各個[각개]가 개척하는 生[생]의 길인 동시에 예술의 독창적인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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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현대에 있어 드라마는 이런 갈등의 정열없이 우세한 소설과 어깨를 겨눌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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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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