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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家[소설가] 志願者[지원자]에게 주는 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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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가 法學[법학]을 전공하다가 중도 퇴학하였다는 것은 後進[후진]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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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을 지금 쓰고 있는 필자 역시 장래 문학자가 되려는 욕심을 품고도 畫學校[화학교]에 입학하였다가 그나마 중도에 퇴학하여 버린 사람이다. 하기야 小說家[소설가]가 되려는 데는 천분이라는 것이 으뜸이다. 다른 것은 버금가는 것이다. 小說作法[소설작법]을 전문적으로 가르칠 수 없고, 설사 가르친다 할지라도 그것을 배웠노라고 마치 木工科[목공과] 출신이 책상을 만들 듯 「규법대로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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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도대체 專門出身[전문출신]이라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무게를 주고 관록을 주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人生路[인생로]를 걸어나가는 데 대한 얼마만치의 자신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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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바꾸어 말하자면, 한 사람이 專門[전문]을 나왔다 하는 것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인생을 겁내지 않게 하는 어떤 힘을 준다. 그리고 小說家[소설가]에게는 또한 이런 종류의 어떤 힘 ─ 뱃심이라 할까 ─ 이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專門出身[전문출신]이라는 것이 직접으로 소설가를 만들어내는 데는 그다지 큰 힘을 못 가진 것이로되, 간접으로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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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부질없는 행동은 톨스토이 후 백년 간에 꽤 많은 악영향을 남겼다. 지금부터 약 二十年[이십년] 전에 春園[춘원]이 〈創造[창조]〉 잡지에 『文士[문사]와 修養[수양]』이라는 題下[제하]에 朝鮮文士[조선문사]로서 정통으로 전문학교를 나온 사람이 極少[극소]함을 말하였다가 數三人[수삼인]의 반박을 받은 일이 있지만, 그것은 결코 반박할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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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章[문장]에 유의한다는 것이 또한 중요한 일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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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章[문장] 따위는 第二義的[제이의적] 것이라 하여 조소하는 이가 많으나 이렇듯 모순된 판단은 다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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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文藝[문예]라는 것은 文章藝術[문장예술]인 이상, 文章[문장]을 무시하고 文藝[문예]가 존재할 까닭이 없다. 藝術上[예술상]에 나타난 사실 ─ 즉 素材[소재]라 하는 것은 이곳 저곳 아무데나 굴러다니는 것이다. 누구나 보고 ─ 허수로이 그저 보고 넘기는 것이다. 이것을 藝術化[예술화]하는 것은 오직 文章[문장]의 힘이다. 음악을 구성하는 자는 音響[음향]이요, 文藝[문예]를 구성하는 자는 文章[문장]이다。 어찌 문장을 조금이라도 허수로 이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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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章[문장]은 사물의 뜻을 나타낼 수만 있으면 된다는쯤으로 가벼이 생각하려는 사람도 많으나, 사물의 뜻을 나타내는 그 정도 ─ 즉 表現[표현]의 優劣[우열]이 作品[작품]의 우열이랄 수도 있다. 물론 여기 말하는 바 문장의 우열이라는 것은 美文[미문]과 美文[미문] 아닌 자를 가리킴은 아니다. 지금은 소설가 중에 그런 사람은 없는 모양이지만, 수년 전만 하여도,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내가 피곤한 까닭으로 나는 자리를 깔고 잔다.」등등의 문장을 쓰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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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신 지금 매우 거친 문장을 쓰는 사람이 매우 많다. 文章[문장]이 거칠기 때문에 문장을 了解[요해]하려는 노력으로 文[문]의 意義[의의]를 잊기 쉬운 ─ 이런 文章[문장]을 쓰는 분이 많다. 학교에서 조선어를 가르치지 않는 시대라 전혀 獨習[독습]을 하여야 할 노릇이지만, 이 努力[노력]에 힘을 아끼지 않는 것은 결코 헛수고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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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代思想[시대사상]에 너무 물든 風[풍]을 작품상에 나타내지 않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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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시대에 生活[생활]하는 것이니 시대에 물드는 것이 당연하다. 소설은 사람이 부출하는 것이니 時代風[시대풍]은 피할 수 없다. 」는 論[논]을 펴는 사람이 있으나, 이는 결과와 원인을 거꾸로 하는 말이다. 「피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되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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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永遠性[영원성]을 띤 者[자]라 時代風[시대풍]이 과히 들면 그 시대만 지난 뒤에는 時代遲[시대지]의 작품이 되어 버린다. 역연한 사실로 수년 전까지 조선에는 「한 思想的[사상적] 靑年[청년]이 활약을 하는 모양」을 그린 소설이 全盛[전성]하여, 그렇지 않은 것은 小說[소설]로 보지도 않은 시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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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앉아서 그때의 그 소설들을 죄 再檢討[재검토]하면 과연 永久性[영구성]을 가진 者[자] 몇이나 되는가? 시대성을 벗을 수는 없으되, 벗을 수 있는 것은 벗어 보려고는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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藝術家[예술가]는 예술가이지 결코 지도자거나 사상가이어서는 안된다. 톨스토이는 轉向[전향]을 한 이후에는 喜劇俳優[희극배우]로 변한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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發表慾[발표욕]보다 創作慾[창작욕]이 앞서야 할 것이고 할 수 있는껏 발표욕을 억제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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筆者[필자]에게도 가끔 未知[미지]의 人[인]에게서 「어느 신문이고 잡지이고 간에 소개」하여 달라는 편지와 함께 원고가 오는데, 그 대개가 아직 習作期[습작기]를 면치 못한 것이다. 충분히 습작을 하여, 그 기간을 넘어선 뒤에 비로소 정식으로 발표를 하는 것이 正道[정도]이겠는데, 웬일인지 初期[초기]에는 발표력이 과히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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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를 해야 세상에 인정되고 그렇게 되어야 작가 중에 들게 되겠다는 마음에서 난 것이겠지만, 완전치 못한 작품을 발표하는 것은 역시 작가라 칭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자신으로도 영구히 스스로 부끄러운 증거물을 세상에 남기는 일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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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習作時期[습작시기]를 지나서 스스로도 이제는 넉넉한 작가로라는 자신이 생긴 뒤에 비로소 발표하여야 할 것이지, 그 전에 함부로 발표욕을 발동시키는 것은 自己侮辱[자기모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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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 문제로 「生活[생활]」이라 하는 것도 몰각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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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조선에서는 創作[창작]으로 생활을 경영할 수 없다. 반드시 재산이 있든가, 다른 안정한 직업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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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라 하되 두뇌를 너무 많이 사용하는 직업은 창작에 방해가 될 것이다. 이 방면으로도 충분한 고려가 절대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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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讀[다독]이 필요한 것은 너무 상식적 일이라 거듭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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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사물에 대하든 간에 관찰을 하여야 한다 하는 점도 거듭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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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小說家[소설가]를 지망하려는 사람은 먼저 天分[천분]이 있어야 할 것이고, 그 다음에는 사람으로서의 많은 경력이 필요하고 그것을 관찰하여 머리에 적어 넣는다는 일이 필요하고, 머리에 적어 넣은 知識箱[지식상]을 표현할 만한 수완과 역량이 필요하고, 그 表現[표현]을 文章化[문장화]할 재능이 필요하고 ─ 등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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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만 것만 가지고야 어찌 소설가가 될 수가 있으련만 이상의 것만은 불가결이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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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조선에서는 너무도 쉽사리 出世[출세]하였다가 너무도 급속히 退沒[퇴몰]하는 이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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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들은 요만 것에도 유의치 않았던 분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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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九三九年[일구삼구년] 五月[오월] 〈朝光[조광]〉 所載[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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