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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사로, 개성의 지리(地理)로 전해 내려오는 글과 노래로 정포은 선생하면 여러분의 귀에도 이미 익었겠지요. 조선 역사 가운데서 가장 숭배하는 여러 어른 중의 한 분이므로 여기서 다시 포은 선생의 이야기를 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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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잘 낳으려면 어머니가 잘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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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예전 예전-오래인 예전부터 내려오는 말이요 또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의 이율곡 선생이 그러하였고, 중국의 맹자가 그러하였고, 미국의 워싱턴이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이 어른들의 어머니는 다 유명한 부인들로서 그 아드님들을 기르고 가르치기에 또한 모범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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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마찬가지로 이 포은 선생에게도 극히 어지신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그 어머니 씨(氏)는 포은 선생이 장성한 뒤에도 이런 노래를 지어서 훈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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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노래 뜻을 말씀하면 까마귀는 새까만 나쁜 새요, 백로(흰갈매기)는 희기가 눈 같은 새다. 성내여 싸우는 까마귀 떼 속에 갔다가는 맑고 맑은 강물에 고이고이 씻은 백로의 흰빛조차 더럽혀서 변해질까 무섭다. 다시 말씀하면 어지러운 세상, 되지 못한 사람들 틈에 함부로 나서면 깨끗하고 착한 사람까지 나빠지기가 쉬우니 부디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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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 때는 퍽이나 세상이 뒤숭숭하고 나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나라 일을 그르치는 일도 여간 많은 것이 아니요 나라가 위태하야 거의거의 망해가던 고려 말년이었습니다. 포은 선생의 어머니는 비록 가정에 들어앉은 부인의 몸이었지만 시세를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장성한 그 아드님께도 그와 같은 노래를 지어 훈계하셨습니다. 이것 한 가지만 보아도 그 어머니가 포은 선생을 기르시던 때의 일은 자세히 말씀 하지 아니해도 얼른 알 수가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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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개성(개성이니 그 때는 송도)은 산이 곱고, 물이 맑기로도 조선에서 유명한 곳입니다. 그런 땅에서 나가지고 그런 어머니의 품안에서 커난 포은 선생의 어렸을 때부터 깨끗하고 좋은 생각이 어린 가슴에 싹터났을 것은 물론 당연한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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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커난 포은 선생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초월하야 글이란 글은 모두 읽고 외우고 그리고 또다시 자기의 의견으로 해석을 하여 놓았으나 하나도 원뜻에 틀린 것이 없다고 당시의 큰 학자들이 모두 칭찬하고 후세의 선비들까지 조선에서 처음 난 큰 학자라고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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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만 있었다면 그렇게 장할 것이 없지만 포은 선생에게는 남다른 행실이 있어서 부모에게 대한 효성이 얼마나 지극하던지 부모가 돌아가신 때에는 부모 곁에 가서 막을 치고 바람이 불던지 비가 오던지 한결 같이 지키고 있어서 3년을 하루처럼 슬퍼하셨으므로 남에게 뛰어나는 효자의 이름까지 듣게 되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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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학문으로만 효행으로만 가지고 포은 선생은 장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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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여러분! 포은 선생의 항상 부르시던 노래를 기억하십니까? 또는 개성 한편 실개천 위에 걸쳐 있는 선죽교의 내력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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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선생은 일찍이 어머니께 들은 노래가 가슴에 깊이깊이 새겨져서 끝끝내 그 뜻을 잊어버리지 아니 하였습니다. 그리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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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서서 모든 사람과 같이 일을 하여 본다. 그러나 되지 못한 놈들에게 물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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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그런 결심이 그의 머리에는 굳게 뿌리를 박았습니다. 선생의 부르시던 노래는 이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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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님’이라 함은 나라를 가리킴이요 동포를 가리킴이요 임금을 가리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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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 죽고죽고 또 다시 죽어 백번 천번 억만번 죽어 죽은 뼈가 흙이 되야 넋이야 있을지 없을지 누가 아느냐마는 나라에 대한, 동포에 대한, 임금께 대한, 참 정신만은 결코결코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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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얼마나 깨끗하고 비장한 노래입니까? 포은 선생의 온 정신은 모이고 맺혀서 이 노래 하나가 되고 말았습니다. 포은 선생의 모든 사적은 이 노래 하나가 분명히 똑똑히 설명합니다. 그리고 포은 선생의 그 정신은 어질고 밝으신 그 어머니의 피를 고대로 받아 가지고 나왔는가 합니다. 포은 선생의 어머니의 노래를 외어보고 포은 선생의 노래를 또 다시 외어보면 어머니와 아드님의 정신이 한줄기 빨간 피 고대로 흘러내려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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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포은 선생은 어머니의 정신을 그대로 받아 당신의 지은 그 노래와 같이 거친 비바람 치듯, 걷잡을 수 없이 시끄럽고 망해가는 고려 말년에 나라를 위하야 동포를 위하야 임금을 위하야 밤으로 낮으로 뼈가 부스러지도록 일을 하다가 필경은 못 마땅해 하는 대적의 쇠방망이 끝에 선죽교 다리 위에 오백년이 훨씬 넘은 오늘까지 바람에도 비에도 날리지도 씻기지도 않는 피 한줄기를 빨갛게 흘리고 그 몸은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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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선생은 죽었습니다. 남의 방망이 끝에 죽고 말았습니다. 뼈는 흙이 되었는지 넋은 있는지 없는지! 그의 일편단심은 어느 곳에 남아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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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끝에 많이 쓸 수가 없어 요것으로 끝막았습니다. 포은 선생의 일하신 사적이 여러분에게 궁금하시다면 다시 한번 더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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