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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용장군 김경손 - 12장사로 몽군을 대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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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1
차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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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용장군 김경손 - 12장사로 몽군을 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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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약 700여 년 전- 고려의 고종왕 때입니다. 그때 고려에는 유명한 장수 한 분이 있었으니 그는 김경손이라 하는 분입니다. 그는 평장사 벼슬로 있던 김대서의 아들이니 그의 어머니가 일찍이 꿈을 꾼즉 오색이 영롱한 구름 속에서 여러 사람들이 청의동자(靑衣童子) 하나를 옹호하고 나오더니 그 동자가 공중에서 떨어져서 품속으로 들어오고 그날부터 태기가 있어서 그를 낳았음으로 아명을 운래(雲來)라고 지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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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얼굴이 아주 미남자로 잘 생겼을 뿐 아니라 머리 위에 이상한 뼈가 혹과 같이 불숙하게 나오고 손톱이 용의 발톱모양으로 기이하게 꼬부라졌으며 성질이 엄중한 외에 지혜와 용맹이 출중하고 담력이 커서 노할 때면 수염과 머리털이 모두 거슬러 올라가니 어려서부터 누구나 비범한 사람으로 알고 경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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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18년입니다. 그는 무관으로 정주분도 장군(정주는 지금 양주에 속한 땅입니다)이 되어 임지에 갔었습니다. 도임한 지 얼마 아니 하야 마침 몽고의 난리가 일어나서 적군이 압록강을 건너 철주(지금 철산입니다)를 함락 시키고 무인지경과 같이 그와 접근한 여러 고을을 도륙 시키며 그가 있는 정주에까지 침입하니 경손이 부하에 있는 12장사를 거느리고 성 밖에 나와 맞아 싸웠습니다. 적군이 처음에는 수효가 적었기 때문에 얼마 싸우지 아니 하야 패해 달아났으나 추후에 대병을 거느리고 물밀듯이 쳐들어오니 전군의 사람이 감히 싸울 생각도 못하고 모두 도망을 하였습니다. 경손은 황급히 성중으로 들어오니 성중에는 한사람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무리 명장이나 수하에 군사가 없으매 어찌하지 못하고 다만 12 장사만 데리고 밤중에 산으로 올라서 일주일 동안을 밥도 먹지 못하고 구주 병영(지금 귀성)에까지 도달하니 삭주를 수비하고 있던 김중온도 역시 그 지키고 있던 땅을 버리고 그곳에 와 있었습니다. 그 때에 병마사로 있는 박서는 김중온으로 성의 동문과 서문을 지키게 하고 경손은 남문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얼마 아니 하야 몽고병이 만산편야하게 크게 달려와서 구주의 남성을 들이치니 경손이 자기 부하에 있는 12장사 외에 각처에서 온 별초장을 데리고 장차 성밖으로 나아가서 싸우려고 할세 멀리 여러 군사에게 령을 내리되 누구든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죽기를 결심하고 싸울 사람이면 다 나서라 하니 각처에서 온 군사들이 모두 머리를 땅에 숙이고 나서는 자가 없었습니다. 경손은 크게 분개하야 소리를 질러 말하되 전장에 나아갈 때에 죽기를 두려워하는 군사는 비록 몇 만 명이라도 소용이 없는 것이라 하고 다 성중으로 쫓아 들여보내고 홀로 자기 부하 12장사만 데리고 앞장을 서서 나아가니 누구나 장쾌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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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진두에 나서며 먼저 철궁을 들어 적군의 선봉장을 향하야 맹렬하게 쏘니 선봉장이 맞아서 거꾸러지고 12장사는 뒤를 이어 고함을 치며 용맹스럽게 싸우니 적군의 죽는 자가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때에 경손은 적의 화살을 맞아서 두 팔에 유혈이 낭자하되 안색도 변하지 않고 손으로 북을 치며 싸움을 돋아주었습니다. 그렇게 4-5 차례를 무섭게 싸우니 아무리 수많은 적군이라도 감히 대항치 못하야 퇴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경손은 적군의 퇴각하는 것을 보고 쌍제금을 쳐서 군사를 거두어 성중으로 돌아오니 박 병사(박서)가 경손의 충용에 감격하야 눈물을 흘리며 영접하고 경손도 또한 절하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병사는 그제야 경손의 명장인 것을 알고 그 성의 방비하는 일을 일체 경손에게 맡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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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지 며칠 후에 적군은 또 대병을 끌고 와서 성을 여러 겹으로 에워싸고 밤낮으로 공격하되 수레로 풀과 나무를 실어다 펴고 성을 넘어서 쳐들어오랴 하니 경손은 대포 속에다 끓는 쇳물을 퍼붓고 적군의 쌓아놓은 나무와 풀을 향하야 물같이 뿌려 부니 그것에 모두 불이 붙어서 적군이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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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은 적군과 대전을 하는데 경손이 걸상에 앉아서 싸움을 지휘하는 중에 적의 대포알이 경손의 머리 위를 지나서 뒤에 있는 호위병을 맞추매 온 전신이 분쇄가 되었으되 경손이 꼼짝도 아니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북을 치고 있으니 여러 사람들이 좌석을 옮기라고 권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손은 굳이 사양하며 말하되 이런 때에 내가 만일 자리를 옮긴다면 군심이 동하기 쉬우니까 될 수 없다하고 신색이 자약하야 그대로 싸워 마침내 그들을 물리치고 그 공으로 대장군이란 영광스러운 벼슬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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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고종 24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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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전라도에는 토적으로 유명한 이연년의 형제가 수천의 불량한 무리를 모아 가지고 각 군으로 돌아다니며 백주에 관리와 인민을 함부로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니 경내가 소연하야 백성이 안도하고 살지를 못하며 누구나 그곳으로 관리되어 가기를 싫어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담하고 용감스러운 김경손은 자청하야 전라도 지휘사가 되야 나주에 도임하였습니다. 이연년의 도당은 그의 도임하였다는 말을 듣고 수천의 적군을 모아 가지고 성을 에워싸고 쳐들어오니 그 형세가 자못 위험하였습니다. 여러 관리와 백성들은 모도 피난을 가려고 야단이었으나 대담한 그는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홀로 성 위에 올라가서 적의 형세를 살펴보고 말하되 도적의 무리가 비록 강성하나 모두가 짚신을 신은 촌백성의 오합지졸이니 족히 두려울 것이 없다 하고 즉시 용감한 별초군 30여인을 뽑은 다음에 또 성중의 부로들을 모아놓고 울며 효유하야 말하기를 이 지방은 남방의 중지로서 나라의 은혜를 특별히 입은 지방인즉 다른 고을과 같이 적군에게 소홀히 항복할 지방이 아니라 하니 부로들이 모두 감격하야 울고 맹서하였습니다. 경손은 그러매 인심을 안정한 뒤에 즉시 나아가 싸우랴 하니 부하들이 말리며 말하되 이제 관군은 적고 적병은 많으니 각 군의 응원병이 오기를 기다려서 싸우자고 하였습니다. 경손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야 꾸짖어 물리치고 친히 거리에 나아가서 금성산 신에게 산제를 지낸 후에 일산을 믿고 성문을 향하야 나아가니 부하가 또 말하되 일산을 믿고 가면 적병이 지후사인 것을 알기 쉬어 대단히 위험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손은 또 듣지 않고 당당하게 일산을 받고 문을 열고 나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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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적장 이연년은 역시 호걸의 인물임으로 성을 함부로 치지 않고 자기 부하에게 경계하야 말하기를 지휘사는 보통의 인물이 아니요 귀주에서 성공한 대장으로 일국에 신망이 많은 분인즉 우리가 그를 죽이게 말고 산채로 잡아다가 우리의 도독을 삼는다면 장래에 대사를 성공하리라 하고 활로도 쏘지 않게 하고 단병접전을 하야 경손을 그대로 잡으랴고 하였습니다. 양군이 서로 대전을 하매 이연년은 자기의 용력만 믿고 앞장을 서서 경손을 잡으랴고 그의 말고삐를 잡으니 경손이 크게 호령을 한번 치고 번개같이 칼을 들어 단번에 연년의 목을 자르고 별초군이 또 뒤를 따라서 용맹스럽게 싸우니 도적의 무리가 바람 앞에 낙엽과 같이 다 흩어져서 여러 해 동안을 두고 소란하던 그 토적이 일시에 힘 아니 들이고 토멸되었습니다. 그는 그때 그 공으로 다시 조정에 들어가서 추밀원 지주사라는 높은 벼슬을 하였으나 불행이 간신 최항에게 모해를 입어 원통하게 죽으니 세상 사람들이 모도 통분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원문】고려 용장군 김경손 - 12장사로 몽군을 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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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상찬(車相瓚) [저자]
 
  1934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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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6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