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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기축년 역옥(宣祖己丑年逆獄)의 괴수 정여립(鄭汝立)은 전주남문밖(全州南門外)에서 대대(代代)로 기거하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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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친은 정희증(鄭希曾)이니 일찍부터 벼슬길에 나서서 지방의 군수로 여러번 지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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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립(汝立)을 낳을때 꿈에 정중부(鄭仲夫)를 보고 낳았으므로 일가친척들이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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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치하를 하여도 다른 사람들이 아들을 낳고 치하를 받는것과 같이 그다지 반가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기색이 좋지 못하였다. 그 까닭은 정중부(鄭仲夫)는 옛날 고려때(高麗) 유명한 역적으로 문신(文臣)을 함부로 죽이고 최후에 인군까지 폐하여 국가에 큰 화란을 일으켰다가 필경은 자기의 몸과 집까지 멸망을 당한 자이었기 때문에 혹시나 자기의 아들이 장래에 장성하여 정중부와 같이 역적도모를 하다가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지나 않을가하고 미리부터 염려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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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립은 차차 자라서 칠팔세가 됨에 범상한 동리집 아이들과 같지 않고 작난을 하는때도 몹시 잔악스럽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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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해 봄이었다. 동리 아이들이 까치새끼 한 마리를 잡아 가지고 희희(喜喜)하며 놀고 있었는데 정여립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 까치새끼를 빼앗아 주둥이로 부터 두발까지 짝짝 찢어 발려 죽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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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어린 생명을 잔혹하게 죽인것을 나중에야 그 아버지가 보고 대단히 노하여 여러 아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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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물으니 마침 그 집종(女婢)의 자식이 앞에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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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을 말하였다. 그의 부친은 더구나 자기 아들이 그리하였다는데 크게 노하여 여립을 불러 앞에 세워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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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하에 싹수없는 자식 같으니, 글쎄 그것이 무슨 짓이란 말이냐. 새 짐승이라도 다같이 생명을 애껴서 살기를 좋아하는 것인데 설사 다른 아이들이 까치 새끼를 그렇게 죽이려고 하여도 달려들어 말릴터인데 글쎄 어쩌면 그런 잔인하고 악착한 짓을 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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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립은 엄한 부친 앞이니까 아무 대답도 아니하고 가만히 꾸지람을 들었으나 속으로는 그 사실을 일러받친 종의 자식을 해치려고 앙심을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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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그날저녁에 종의 내외는 모두 이웃으로 방아를 찧으러 가서 그들이 거처하는 방에는 아무도 없고 낮에 여립의 잘못을 일르던 종의 자식만 혼자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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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립은 캄캄한 방으로 잘드는 창칼을 들고 가서 그 아이의 배를 함부로 찌르니 자는중에 불의지변을 당한 그 어린 아이는 애호하는 소리를 지르며 여러곳에 상처를 받아 피가 쏟아져 방안에 그득하고 그대로 늘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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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모는 상전의 방아질을 하여가지고 밤깊게 도라와서 그 끔찍한 광경을 보고 목을 노아 통곡하며 발을 구르니 이 소리에 놀랜 이웃 사람이 수십명이나 모여 위협을 하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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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섭고 떠드는 광경에는 어른이라도 모두 겁을 먹을 터인데 여립은 깊은 광속에 숨어 있다가 천연히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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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야단을 할것이 없소. 그애가 내 잘못을 우리 아버지에게 일렀기 때문에 내가 죽인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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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문에 온 동리에서는 말못할 자식이라고 수근거리고 어떤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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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우기 자라서 십오륙세(十五·六歲) 되었을 때에 그 부친이 어느 고을에 가서 사는데 거기 따라가서도 어떻게 행악한 짓을 하였던지 그 부친이 할일까지 맡아 질러서 마음대로 처결하고 일군의 아전관속이 모두 그의 말대로 일 분부에 시행하게 되어 그 부친은 혀를 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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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식이 장래 우리집안을 흥하게 하든지 망하게 하든지 할 자식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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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십세(二十歲)에 벌써 과거를 하여 재명(才名)이 일세를 기울이게 되니 당시 조야에 유명한 율곡 이이(栗谷李珥)도 그를 특별히 사랑하고 선조(宣祖)께 추천하여 벼슬이 수찬(修饌)에 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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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그는 율곡선생의 문하에 다니며 항상 다른 사람을 보고 율곡을 칭찬하되 주자(朱子)는 다 익은 감(已熟杮)과 같고 율곡은 반쯤익은 감(半熟杮)과 같다고 하더니 그뒤 율곡이 돌아가신뒤 에는 대간(臺諫)이 되어서 도리어 율곡을 극력 배척하니 선조대왕은 그것을 보고 여립의 위인을 간사한 사람이라 지목하고 항상 좋아하지 아니하여 무슨 과실이 있으면 매양 참지않고 책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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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원래 패기(覇氣)가 많은 그는 임금의 견책으로도 기운이 꺾일 위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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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그를 미워 하여 물끄러미 한참 내려다 보아도 조금도 무서워 하는 기색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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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시절이 지금과 달라서 임금이 신하나 백성을 금시에 죽이려면 죽이고 살리려면 살릴 권한이 있기 때문에 임금이 한번 웃고 한번 찡그리는 것을 엿보게 되고 만일 임금이 노하여 견책을 하게되면 누구나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고 황송하게 여기는 터인데 그는 임금이 여러번 견책을 하는데도 한번도 무서워 하는 기색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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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은 임금에게 꾸지람을 듣고 나올때에 맨마지막 섬돌(終階)을 내려서자 머리를 들고 임금을 한번 노려보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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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법으로는 이러한 일만으로도 임금에게 몰리어 중(重)한 벌(罰)을 받기에 충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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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을 이렇게 노려보고 나간 후에 그는 표연히 벼슬을 내던지고 향리(鄕里)로 내려가서 다시 대대(代代)로 살던 전주남문밖에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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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말한것과 같이 조정에 있을때에 그는 율곡이이(栗谷李珥)와 가깝게 지내고 그의 추천으로 벼슬까지 올랐으므로 그는 서인(西人)의 지목을 받았었으나 이이(李珥)가 죽은 후에 그는 태도를 변하여 동인(東人) 이발(李潑)과 서로 상종하고 이이를 공격한 일이 많았으므로 서인(西人)들은 그를 몹시 미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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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동인(東人)이 대부분 정권(政權)을 잡고있을 때이므로 임금에게 견책을 당하고 쫓겨내려간 정여립을 위하여 신변(伸辯)도 많이 하고 또 그에게 좋은 벼슬을 주어 불러 올리기를 주장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으나 임금은 그를 한번 미워한 다음에는 여간하여 윤허치 아니하고 그를 다시 등용도 안하시고 그가 저지른 일에 대하여 용서하지 아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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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널리 경사(經史)와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를 읽고 병서(兵書)와 잡술(雜術)까지 통달하여 그의 박학(博學)은 일세를 기울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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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론(言論)과 실행(實行) 두방면으로 세상에 드문 일을 많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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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언론으로는 그때 선비들이 고집 하는 충절(忠節)에 대하여 다른 해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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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김구(金溝)에 살면서 후학을 가르치니 많은 청년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그의 강학(講學)을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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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아랫목에 앉으면 청년들이 모여 그의 말을 듣는데 그는 기백(氣魄)이 성장하고 담론(談論)이 풍발(風發)하여 무슨 말을 내면 폭포수 떨어지듯 내리스치고 말은 파도를 이르켜 장강대하(長江大河)의 세(勢)와 같았다. 이러한 의논이 그때에 시세에 맞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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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하늘을 찌를듯한 기창과 도도한 웅변이 듣는 사람을 취하게하여 그의 제자 조유직(趙惟直), 신여성(辛汝成)같은 이는 참으로 선생님의 이러한 의논은 고금유현(古今儒賢)에 일찌기 말하지 않은 바이라고 감탄하였다. 또 실행편으로는 전주, 김구, 태인(泰仁)등 인근각읍(隣近各邑)의 무사를 결탁하여 검술(劒術)을 배우고 활쏘는 것을 배우게 하되 그 조직은 한 당파와 같이 만들어 그때에 몹시 차별하던 양반이니 상한이니 하는것도 상관치 아니하고 남의 집 종이나 여러 관속까지 모두 한통으로 넣어 대동계(大同契)를 만들고 그 계원은 매월 십오일 이면 모이어 활쏘고 말달리기를 배우게 하였다. 이렇게 모이며는 술을 먹고 소를 잡아 큰 잔치를 베푸는데 이것은 정여립이가 모두 마련하여 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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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평시에 있어도 육례(六禮)를 폐(廢)하여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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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실상은 그 규율이 대단히 엄해서 한번 호령만하면 일령지하(下一令之下)에 쭉쭉 모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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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丁亥年)에 마침 왜구(倭寇)가 호남(湖南)을 범하였을때, 관군(官軍)의 손이 부족하여 전주 부윤남언경(全州府尹南彥經)이 그에게 사병(私兵)을 좀 빌려 달라고 하였더니 그들은 모여드는데 모두 대동계(大同契) 소속의 무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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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가 물러간 뒤 정여립은 무사들을 모아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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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他日)에 무슨 사변이 있어 너희들을 부를때에는 모두 군사를 거느리고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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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일르고 군부(軍簿)는 정여립이가 맡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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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러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동시에 널리 동지(同志)를 모았으니 안악(安岳) 사람 변숭복(邊崇福), 박연령(朴延齡), 해주(海州) 사람 지함두(池涵斗)등과 승 의연(僧義衍) 장사 길삼봉(吉三峰)과 상종하여 고요히 일을 획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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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함두는 원래 서울 사람으로 지친(至親)의 여자와 정을 통하여 그것이 발각되니까 변명(變名)을 하고 돌아다니는데 처사(處士)라 자칭하고 황관도복(黃冠道服)으로 여항에 돌아 다니며 똑같은 사람을 모으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그럴듯한 사람이면 반듯이 그 사람의 글씨로 거주지(居住地)와 성명(姓名)과 나이와 본관(本貫)을 책상에 받아서 이를 불망록(不忘錄)이라 이름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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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상에서 만일 자기를 의심하면 탄로할까 겁이나서 행색을 소방(疎放)하게 차리며 남의 눈에 띄이지 않게하며 일찌기 장흥(長興) 어느 촌에 갔을때에 주인이 박주(薄酒)몇잔을 대접하였더니 그는 그를 감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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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길삼봉(吉三峰)은 천안 살던 어느집 종으로 용맹이 사람에 뛰어나서 일찌기 큰 도적이 되어 민가를 노략질 하니 관군이 여러번 잡으려다가 잡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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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립의 여당들은 이들과 내통하여 지함두(池涵斗)가 황해도 가서 은근히 민심을 선동하기를 지금 세상이 말세(末世)가 되어 미구에 새나라가 생길터인데 길삼봉(吉三峰)과 길삼산(吉三山)의 형제는 천하의 무서운 장사로 지금 신병을 거느리고 지리산(智異山)에도 들어가 있고 혹 계룡산(鷄龍山)에도 들어가 있는데 그들이 일어나면 이씨(李氏)는 망(亡)하고 정씨(鄭氏)가 나올터이니 새나라를 세울 사람은 정팔룡(鄭八龍)이라는 사람으로 왕이 될터이라고 수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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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정여립의 어릴때 이름이 팔용(八龍)이었으므로 이만큼만 선동을 하여 놓으면 장차 정여립이가 일어날때에는 응당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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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황해도 일대에는 말을 퍼뜨리기를 호남전주(湖南全州)에 성인(聖人)이 낳아서 이 세상에 괴롭게 사는 백성을 건지고저 하니 태평하게 되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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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 의연(僧義衍)이는 원래 전라도(全羅道)운봉(雲峰)사람인데 인심을 현혹하느라고 자기는 중국요동(中國遼東)사람으로 우리나라 팔도(八道)의 강산을 편답하였다 하며 또 이상한 말을 퍼뜨리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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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동에서 동방(東方)을 바라보니 왕기(王氣)가 있기에 한양(漢陽)에 와보니 그 왕기가 또 호남으로 비치니 다시 호남으로 내려가 보니 호남의 왕기는 전주 남문밖에 와서 그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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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전주 남문밖 사는 정여립이가 무슨 일을 일으키면 인심이 향응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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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비기(秘記)비슷한 것을 지어 세상에 펴치되 정여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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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망 전읍흥 (木子亡奠邑興)〓이씨가 망하고 정씨가 흥한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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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여섯글자를 옥판(玉販)에 붉은 글씨로 색이어 지리산(智異山) 석굴(石窟) 속에 파묻고 중(僧) 의연(義衍)이가 유람하러 갔다가 파내는 모양으로 꾸미어 지리산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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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말갈기나면 옛세상은 없어지고 새 세상이 온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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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놓고 정여립은 뒷동산의 뽕나무 껍질을 찟고 말갈기를 비여다 바른후 아물게 만들고 이웃의 친한 사람을 불러 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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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만 알고 아예 ─ 입밖에 내지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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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는데 그 말이 민간에 많이 전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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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립, 지함두, 중 의연, 도잠(道潛) 설청(雪淸)등은 국내 산천을 살피느라고 구월산(海西九月山)에 가서 산천형편을 샅샅히 보고 다시 호서(湖西)로 와서 충청도 계룡산(鷄龍山)을 보고 시(詩)를 지어 황폐한 옛절에다 써붙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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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하여 은근히 세상이 변할 것을 암시(暗示)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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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립은 이와같이 자기 손으로 세상을 한번 뒤집어 보겠다는 큰 희망을 가지는 동시에 인간(人間)으로는 역시 하나의 사람으로 가질바 성능(性能)에 불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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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성질이 이렇게 남달리 뛰어난 동시에 형제와 친척간에도 서로 좋아하는 사람이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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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여색(女色)에 이르러는 연연한 정을 놓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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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사는 김구(金溝)촌 이웃에는 청춘과부로 얼굴도 예쁘고 행동도 얌전하며 재산이 많아서 개가할 뜻이 없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오랫동안 그 여자에게 마음을 두어 백방으로 꼬여 보았으나 종시(終始) 듣지 않으므로 필경 그 골의 관속을 끼고 그 과부가 사는 집이 강도(强盜)의 집과 이웃이란 것을 빙자하여 그 노비(奴婢)가 강도들과 관련되었다고 얽어서 모두 잡아 가두고 밤중에 뛰어 들어가서 강간을 하여 필경은 제손에 넣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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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자기 아들 옥남(玉南)에게 대하여서는 몹시 총애하였는데 더욱 그 아이가 나면서 부터 얼굴이 준수하고 눈동자가 중동(重瞳)으로 생겼으니 두 어깨에 검은 사마귀가 하나씩 있어 마치 일월(日月)의 형상과 같이 생기었으므로 그는 그를 퍽 신기하게 여기고 이 아이는 장차 되며 크게 귀(貴)하게 되리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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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립이 이렇게 세상에 뛰어나는 재주를 가졌을때 조정에 용납되지 못하고 임금의 총애를 받지 못한 것을 분하게 여겨 마침내는 이러한 음모를 하였으나 그런일은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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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이나 일을 일으키려고 하였으나 일이 이롭지 못하여 중지하는 동안에 세월은 한없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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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가까이 상종하는 사람 사이에도 그를 심복하여 따라 다니는 사람도 많으려니와 그의 무시 무시한 대야망(大野望)에 놀래어 뒤로 물러서는 이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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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제자 한경(韓璟) 같은 이도 그에게 글을 배우러 갔다가 고요히 움직이는 무서운 음모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문을 걸어닫고 신음하여 그 아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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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립은 우선 반란을 일으키면 먼저 하늘께 제사를 지내려고 제천문(祭天文)일곱장을 써서 두었는데 그것은 모두 당시 군왕을 내몰고 백성을 구한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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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립의 생각에는 이와같이 민심을 선동하여 두었다가 국가에 무슨 변이 일어나면 그때를 타서 일을 일으키면 사반공배(事半功倍)가 되리라 하여 시기를 엿보고 있는 것었다이. 또 그는 술수를 알아 몇해후에는 병란이 있으리라 하여 임진왜란을 어렴풋이나마 예측하여 왔으므로 그 때를 타서 일을 한번 일으켜 볼려고 하였으나, 그것이 다 여의치 못할듯하고 세상의 소문은 점점 높아서 도무지 그대로 천연 할수 없으므로 기축년(己丑年) 겨울에 먼저 황해도(黃海道)에서 향응하는 사람들을 시켜서 군사를 일으키어 곧 서울을 범하려는데 구월산 여러 절에 헤어져 있는 여러 중(僧)들이 서로 수응하여 수근 거리는 것을 중 의엄(僧義嚴)이가 재령군수(載寧郡守)박충간(朴忠侃)에게 밀고(密告)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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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간은 이러한 사연을 어설하게 고발하였다가는 장차 어떤 화변을 당할는지 몰라서 주저하고 있었는데 마침 안악(安岳)의 교생 조구(校生趙球)라는 자가 정여립의 제자라고 무뢰한 들을 모아가지고 취하도록 먹고 노는것이 수상하여 군수 이축(李軸)이가 잡아다 문초를 하였더니 조구는 숨기지 못할줄 알고 전부 말하여, 신천군수 한응인(信川郡守韓應寅) 과 세골 군수가 한자리에 모여 상의 하고 감사 한준(監司韓準)에게 장보하여 시월 초이튿날(十月二日) 밤중에 비밀리에 장계가 서울로 들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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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립이 모반한다는 장계가 들어오자 곧 금부도사(禁府都事)가 말을 달려 전주로 내려가니 정여립은 벌써 어디로인지 도망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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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안악(安岳)에서 조구(趙球)가 역적 모의를 발설한줄 알자 변숭복(邊崇福)이가 주야(晝夜)로 걸어 김구(金溝)로 가서 여립에게 말하여 곧 함께 진안죽도(鎭安竹島)로 도망하였다. 도사(都事)로 내려갔던 유담(柳湛)은 정여립이가 벌써 기미를 알고 도망하여 붙잡지 못하였다는 장계를 올리니 조정에서는 크게 놀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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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조정에 현관으로 있던 사람들은 모두 동인(東人)이라 동인이었던 정여립이 이렇게 모반하였으로 임금은 특히 서인(西人)으로서 강직(剛直)하다는 정철(鄭澈)을 시켜서 옥사를 다스리는 법관(法官)을 삼고 한편으로는 황해도에서 관련된 자를 잡아 올리어 취조하는데 그중에서 상당한 인물도 있었으나 무식한 백성들도 많이 잡아 올리었다. 그들은 큰 칼에 씨워서 잡아 올려 보낸것을 임금이 친히 국문(鞠問)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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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물으시니 백성들은 생전에 듣고 보도 못하던 곳에 와서 그런 무서운 문초를 당하는지라 벌벌 떨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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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녜 ─ 소인들은 반역은 아니 하였어도 반국(叛國)은 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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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국은 밥하고 국 끓여 먹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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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립이가 아무리 모반하였기로 어찌 이런 무리들과 상의 하였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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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전주로 내려보낸 선전관 이용준(宣傳官李用濬)과 내관김양보(內官金良輔)는 주야로 말을 달려 전주(全州)로 내려가서 죄인의 종적을 수탐하여 보니 여립과 그 아들 옥남과 변사(邊汜)와 박연령(朴延齡)과 박의 아들 춘용(春龍)과 함께 모두 진안죽도(鎭安竹島)에 가서 숨어 있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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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감민인백(縣監閔仁伯)이 관군을 풀어 가지고 죽도를 에워싸고 치니 정여립 이하 여러 사람이 모두 바위사이에 쭉 ─ 늘어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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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인백(閔仁伯)이 될 수있으면 산채로 잡아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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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이 지엄하시니 너희들은 속히 나와서 잡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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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효유하는 동시에 관군을 신칙하여 함부로 칼질이나 활로 쏘지 말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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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본 정여립은 벌써 일이 다 ─ 틀린줄 알고 얼굴에 비장한 빛을 띄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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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가 큰일을 꾸미다가 성공치 못하였으면 선선하게 죽을 것이지 우리 어찌 잡혀 올라가서 그 쥐같은 무리앞에 무릎을 꿇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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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도 물론 이자리에서 조촐하게 죽으려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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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모두 그자리에서 죽지 잡혀가지 않겠다고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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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기의 사랑하던 변사(邊汜)를 향하여 내려치니 변사의 머리가 잘라지며 즉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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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군들이 빨라 와서 잡으랴는 아우성 소리는 천지를 뒤집는듯 쉴새 없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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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립은 칼을 들어 자기아들 옥남이를 치려하는데 그의 눈에는 두줄기 뜨거운 눈물이 현연(泫然)히 흐르고 가슴이 아프며 팔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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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참 눈을 감고 무엇을 생각하더니 옥남과 춘용 두 아이를 돌아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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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아직 십오육세 소년으로 나이가 너무 아깝다. 그러나 내가 너희들을 찍어 죽이랴 할때 어쩐지 팔이 떨리고 가슴이 아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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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 지경에 이르러 불초한 소자로써 어찌 구구한 정을 말하십니까 천연하다가? 관군에게 붙잡히어 욕을 당할터이니 속히 저희들 둘의 목숨을 칼로 내리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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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옥남과 춘용 둘이 목을 나란히 하여 칼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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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립은 머리속에 오색번개가 지나가듯 휘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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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을 꾸지 않았나 하는 의심도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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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관군의 호령소리가 나기를 기다릴대 꿈이 아니고 생시인것이 분명하고 더욱 힐끗 처다보니 머리위에 평화로이 빛나는 백일(白日)이 더욱 꿈이 아닌 것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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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눈을 감고 짧지않은 자기 일생을 한번 희생하는 듯이 무슨 생각을 하더니 단연한 결심으로 칼을 들어 두 소년의 목을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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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부자의 애정에 끌리는 그의 팔은 종래 바로 치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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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이 빗맞으며 두 소년은 머리가 터지어 피를 대줄기같이 뻗히며 혼도한다. 정여립은 하늘에 최후의 고백이나 하는지 광명한 창공을 향하여 두어번 입을 벌리다가 칼날을 세워놓고 그대로 엎드러져서 목을 베어 죽는데 원래 장사라는 칭호를 듣던 사람이라 마치 소나 호랑이가 죽을때에 소리치듯이 어흥 ─ 소리를 길게 지르며 절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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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드문 바위사이에 여러 사람의 시체와 칼을 잘못 맞아 허덕이는 두 소년이 질번히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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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은 한가로히 그들의 처참한 광경을 비치고 겨울 바람이 불어와서 낙엽진 나무를 흔들고 그들의 시체를 스치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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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군이 곧 들이 밀려서 피를 흘리고 허덕이는 옥남, 춘용과 여러 시체를 실어 서울로 올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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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인 정여립이가 이미 죽었으므로 불가불 중죄인 옥남, 춘용을 국문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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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년은 아무 꺼리낌없이 전후 사연을 공술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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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의 모주(謀主)는 길삼봉(吉三峰)이요. 고부(古阜)의 한경(韓璟) 태인(泰仁)의 송간(宋侃), 남원(南原)의 조유식(趙惟植), 신여성(辛汝成)과 해서(海西)의 김세겸(金世謙)박연령(朴年齡), 변숭복(邊崇福)등 십여인과 지함두(池涵斗) 중(僧) 의연(義衍)이가 자조 왕래 하였으니 그외에는 모두 어디서 온 사람인지 모르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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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삼봉은 힘이 많아서 소반만한 돌을 손으로 쳐서 깨뜨린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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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하니 문랑(問郞) 이항복(李恒福)이 얼른 받아쓰지 못하였더니 옥남은 민망한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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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반대석(如盤大石)을 권구즉파(拳叩即破)라고 쓰지 못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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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어디까지든지 유유한 여유를 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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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문초를 받은후 그달 이십칠일에야 정여립과 변사의 시체를 찢어서 주리돌리고 두 소년이외에 여러사람도 목을 베어 죽이고 또 몇사람은 형장을 받는 중에 죽었으며 그 조정에 있던 사람으로는 검열(檢闕) 벼슬한 이진길(李震吉)이 정여립에게 보내는 편지에 임금이 어두운 것이 날로 심하다는 말이 있어 몹시 매를 맞다가 형틀에 달린채로 죽고 정승 정언신(鄭彥信)이는 귀양을 갔으며 당로하던 동인들이 모두 물러 나오고 또 그전에 재야(在野)하던 서인(西人)이 연하여 동인을 공박하는 상소문이 올라와 심지어 재상의 지위에 있던 유성룡(柳成龍), 이산해(李山海)까지 탄핵을 받았으나 그들은 상감의 신임이 두터우므로 아무 일도 없었다. 이 역옥(逆獄) 끝에 길삼봉은 영영 잡히지 아니하여 당시 명망이 세상에 높아 칠십세 노령으로 진주(晋州)에 있던 처사 최영경(崔永慶)을 잡아 올리었으니 대개 최영경의 별호가 삼봉(三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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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시 한구가 나왔는데 최영경은 이 시는(詩) 자기가 모르는 시(詩)라 하였으나 자꾸 올켜들어 필경 배소(配所)로 귀양을 가게되었다.
153
그는 몹시 절개를 지키고 행검이 엄한지라 옥중에서도 항상 정히 앉고 기우리거나 기대 앉는법이 없었는데 어느날 누가 무슨 음식을 먹이었던지 신기가 몹시 거북하듯이 같이 갇혀있는 사람의 무릎을 베이고 누으니 여러 사람이 모두 대경실색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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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안사람이 놀라서 종이와 필목을 들여보내 글씨를 써보아라 하니 커다랗게 바를정(正)자 하나를 쓰는데 벌써 자획이 평일에 쓰던 엄격한 맛이 없고 삐뚤 빼뚤하여 그의 정신이 심상치 않음을 나타내더니 얼마 아니하여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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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모다 그의 죽엄을 원통히 알고 동인의 이발(李潑)도 정여립과 친했다하여 그의 팔십노모(八十老母)와 어린아들과 함께 형장에 맞아죽게 되어 길이 세상의 애화(哀話)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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