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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말 없는 조선문단에 일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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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4.14
김우진
1922년 발표한 김우진의 평론. 이 비평에서 김우진은 순수한 조선어의 부흥과 개량을 역설했고, 새문전의 제정과 사전의 필요성, 구비전설과 민요·동요 수집을 촉구한데 이어 우리의 독특한 시가율을 가질 것과 외국문학의 우리말 번역, 신문잡지의 대중화 등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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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조선] 말 업는 朝鮮文壇[조선문단]’에 一言[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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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焦星[김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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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형(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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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前日) 소용(所用)으로 내동(來東)한 선배의 일(一) 실업가(實業家)로 붓허 근래의 신문 잡지에 쓰이는 숙어 중에 간결, 요약한 문자가 만케 됨을 지적하여 탄상(歎賞)함을 들은 일이 잇슴니다. 그이는 ‘건설’ , ‘개조’, ‘노자협조(勞資協助)’ 등의 예를 들어 말하되 “이 갓흔 글자는 사 오년전에는 보지도 듯지도 못하엿고 오늘이라도 소위 녯 글자 햇다니로서 해석하지 못할 글자가 만타.”고 하야 ‘상대성 원리’, ‘소극적’, ‘빙점’ 등을 열거했슴니다. 그러나 보통학교(普通學校) 교원의 경험을 가즌 그이도 ‘민본주의’라는 어구(語句)가 democracy의 불합리하고 오류되기 쉬운 구어(歐語)의 번역(飜譯)인 쥴을 알지 못하엿슬 것이외다. 또 ‘섬세(纖細)’ 라는 어구가 delicacy의 전의(全意)를 방불(髣髴)함에는 가망도 업는 글자의 조합(組合)에 지나지 못함을 몰낫슬 것이외다. 그와가티 Kultur라는 독일인의 어구가 Civilization으로 영역(英譯)되어 ‘문화’로 일역(日譯)된 것이 피할 수 업는 자국어(自國語)의 속박을 밧는 것임을 영어나 독일어에 불통(不通)한 그이의 몽상(夢想)도 못하얏슬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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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일본에 잇는 우리로서 상하귀천의 구별 업시 현대 생활의 축도를 발견할 수 잇는 신문, 잡지 가운대에 우리가 항용 읽는 어구가 모도 외국어의 번역이나 차용이 아님닛가. ‘기우(杞憂)’ , ‘효시(嚆矢)’ , ‘대동(大同)’ , ‘해방(解放)’ , ‘개조(改造)’ , ‘공산주의(共産主義)’ , ‘집단주의(集團主義)’ , ‘고전주의(古典主義)’ , ‘협음(協音)’ , ‘화음(和音)’ , ‘상징(象徵)’ , ‘환멸(幻滅)’ , ‘자연주의(自然主義)’ 등의 끝업시 헤아릴 수 업는 관용어구는 모두 지나(支那) 경전(經典)이나 구주어(歐州語)로붓허 차용하거나 번역한 것이 아님닛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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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일본 조고계(操觚界)의 어구상(語句上)의 현상이나 어느 한도까지 그 영향을 밧고 잇는 우리 잡지 신문계에도 이 갓흔 운명 외에 일본어의 차용을 감수하는 지경이 안입니. 나는 세계 문화가 국제화(지나체(支那體)로 하면 대동(大同))하여 가는 오늘에 안저서, 외국어의 차용이나 번역을 주저(呪咀)하는 것이 안이외다. 이론적으로 이상적으로 말하면, 도로혀 그것이 세계 문화의 발달상 피할 수 업는 당연한 경로로 밋슴니다. 물론 어구상(語句上)의 문제뿐 안이라 문맥상(文脈上)에 잇서서도 이 갓흔 현상을 부인할 하등의 근거가 업사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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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개성의 표현인 사상이 언어라는 매개를 취하며, 언어가 문자의 형식을 취할 때, 그 문자가 일정한 심리적 계합(契合)으로 당자(當者)의 사상을 구체화하여야 할 것이외다. 그런즉 그 당자의 하는 말에는 그이의게 특독(特獨)한 의사(意思)의 표현이라야만 할 것이며, 그 당자의 문(文)에는 그이의게 독특(獨特)한 사상의 표현이라야만 할 것이외다. 언어나 문자는 사람의 사상을 은폐한다는 불란서 시인의 말이 잇스나, 발서 사람이 언어와 문자로 사상이나 의지를 표현할 운명을 가즌 이상에는, 그 운명의 힘을 효용하는 외에는 달은 수단이 업슬 것이외다.(음악, 조각, 회화에도 음(音), 형(形), 색(色)의 표현상의 매개수단을 갖는 것은 물론이나 문학을 중심으로 말슴하고저 하는 여기서는 논외로 두겟슴니다.) 칼아일이 “사상은 역사에 선재(先在)하엿다.” 함과 갓히, 사람이 각기 개성의 표현을 욕망할 때, 또 기왕 문자로 표현이 될 때 그 개인의 사상은 이미 선재되엇슬 것이외다. 그러면 선재 되엇던 이 사상이 재현될 때 원형 그대로 완전 시실(始實)히 될 수가 잇슬가. 재현이라는 것은 이 우주에서 전연 불가능하다 할 수가 잇슴니다. 그럼으로 위대한 천재들도 모도 완전의 경(境)에는 이르지 못하엿슴니다. 이에 이르러 언어나 문자는 사상(의사, 감정도 함께)의 재현이 안이라, 그 상징에 지나지 못함을 긍정할 수가 잇지요. 즉 문자와 언어는 그 주격(主格) 되는 자(者)의 사상이나 의사를 잇는 대로 재현 할 수 업슴으로, 우리는 이에 문자와 언어의 암시력, 즉 상징력을 이용하게 되엿슴니다. 자연주의의 유일한 사실적(寫實的) 문학이 쇠퇴하여 지고 상징주의, 신고전 주의가 일어나게 된 것도 필경은 이 문자의 암시력으로 하야금 사실(寫實)하기에 어려운 개성의 감정과 사상을 방불하게 하고져 함에 원인된 것이외다. 다시 거듭 말하면 이 우주에는 다만 개성의 실재(實在)와 그 상징이 잇슬 뿐이요, 재현은 전무(全無)하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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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개성은 천태만상(千態萬象)이지요. 테 ― ㄴ은 환경의 지배와 영향을 피할 수 업는 것으로서 개성을 정의하엿스나 그것은 사실(寫實)이외다. 이것은 동일한 환경 밋헤서는 동일한 개성이 잇다는 것으로 의미하기 쉽지요. 그러나 인류 생성 이후 기천만년(幾千萬年)의 발달을 가즌 인류의 이지력(理智力)으로도 해석하기도 어려운 자연의 법칙 안에는 양자(兩者) 동일한 개성의 유사성이 잇다면, 그는 개념상의 유사에 지나지 못합니다. (자특(自特), 고만(高慢), 은퇴적(隱退的), 경악(鏡愕), 동정(同情)과 가티). 시계사(時計師)가 동일한 경로로 동일한 시간을 정밀하게 보(報)하는 다수(多數)한 시계를 동일하게 제조하는 것 가티, 만일 각 개성의 동류(同類)만 실현되면 모든 인류의 비참한 쟁투, 살육, 혐오, 기만, 주저(呪咀)는 소멸될 것이외다. 그러나 헵벨의 극적(劇的) 주인공의 말과 가티, “우리는 자연에 귀종(歸種)되며, 자연에 반항(反抗)하는 것은 즉 신(神)의게 반항하는 것이 됨니다. 신에게 반항한다는 것은 즉 자기부인(自己否認)을 의미합니다. 더 넓게 말하면 이가티 각이(各異)한 개성의 집단인 민족에 들어가서는 변화할 수 업는 민족성이 엄연히 존재하여 잇슴을 알겟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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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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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박한 소론(所論)을 이까지 끌어 온 것은 이유가 잇습니다. 오늘날 조선문단(朝鮮文壇)에는 조선 말이 업다는 것을 열거하여 순정(純正)한 조선어의 부흥과 개량을 역설할 때, 엇던 우인(友人)은 ‘국수주의자(國粹主義者)’로써 나를 명명(命名)하며, 소위 신진사상가로 자처하는 그이는 일본어, 한문, 조선 속담, 구문어맥(歐文語脈)의 메죽말을 변호하는 것을 들엇습니다. 그이는 사상은 언어와 국어를 초월한 것으로 생각하겟지요. 그러면 동일한 비평의 상징을 대하여서도, A의 말과 B의 말이 그 어구와 용어와 어색(語色)(nuance)에 관하야 상이(相異)한 것은 엇더한 연유인가요. 개성의 근본적 관찰이 부합(符合)한 것이라도 그 표현된 언어와 문자는 반다시 상동(相同)한 개인적 분위기를 갓는 일은 업슴니다. 물론 전(前)에 말한 것 갓히 문화대동(文化大同)의 오늘날에 안저서는, 사상뿐 안이라 표현방식도 구문맥(歐文脈)이나 일문맥(日文脈)의 혼화(混和)를 피할 수 업는 처지나, 지금까지 한문맥(漢文脈)의 다분히 석긴 조선어와 외래어가 유기적으로 세련된 혼화를 엇지 안으면 안되겟다는 것을 합니다. 이것은 언어 안이라, 문맥에서도 이리하여야 할 것이외다. 형은 일대(一代)의 귀재(鬼才) 오스카 와일드의 암시 깁흔 말을 기억하시겟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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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평생의 문학 예배(文學禮拜)에 잇서서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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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er of sound and syllable, no 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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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 Midas of his coin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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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다스가 돈의 인색한(吝嗇漢)이 되엿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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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는 음(音)과 철자(綴字)의 인색한)이 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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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무목적한 처사가 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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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 안에 언어를 최중(最重)한 요소로 가즌 시가(詩歌)에 잇서서는 더욱 그러하외다. 우리가 읽은 후 가장 감동을 어든 일본어나 구어(歐語)로 쓴 시가를 우리말로 번역하고저 할 때, 과연 독시(讀時)의 감동을 완전히 번역문(飜譯文)으로써 어들 수가 잇슬까. 시(詩)의 번역이 불가능이라는 낙담은 누구나 다 경험할듯 하외다. 예를 들겟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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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즉 불충분한 불어의 소양을 가진 나라도 벨레 ― ㄴ의 〈Chanson d’ Automn〉을 읽을  산간(山間)의 외러운 고목(枯木) 밋헤 서서 일광(日光)이 천지에 미만(瀰滿)한 애음(哀音)의 음률을 늣기는 듯한 정조(情調)를 어드나, 이것을 우리의 말노 옴기고저 공허한 노심(勞心)을 몃 번이나 썻는지 몰으겟슴니다. 도기등촌(島崎藤村)의 시도 일본어로 읽을 때 비로소 시의 어엽븐 로맨틱한 음률에 감동을 엇지마는, 만약 그것을 우리말노 번역하여 노흔 에는, 살 업는 뼈와 가튼 어구의 배열 밧게는 아모 것도 엇지 못합니다. 사상적 내용이 빈약하다는 비난을 엇기 쉬운 등촌(藤村)의 시는 다만 일본어 독특한 음률이 안이면 취할 것 업습니다. 시가는 예술권(藝術圈)에서 제일 음악에 갓가운 것이요. 그럼으로 시가는 긴장한 상상력과 함 음악적 요소 즉 자국어에 독특한 음률이 반다시 잇서야 할 것입니다. 셸이의 유창한 〈구름〉의 제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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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anguine sunrise, with his meteor e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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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d his burning plumes outsp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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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ps on the back of my sailing 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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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en the morning star shines de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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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on the jag of a mountain cr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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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ich an earthquake rocks and sw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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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eagle alit one moment may s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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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e light of its golden w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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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when sunset may breath, from the lit ― sea ben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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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s ardors of rest and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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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the crimson pall of eve may 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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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om the depth of heaven ab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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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wings folded I rest, on mine air n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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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 still as a brooding d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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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는 그 번역의 불가능이 다만 피아(彼我) 국어상(國語上)의 비유의 곤란이 안이라, 원어(原語)를 읽을 의 장미(壯美)하고 신선(新鮮)한 조광(朝光) 밋헤 뜨는 구름과 가튼 동적(動的) 음률을 결코 옴기지 못할 것 이외다. 이러한 경우에는 고식(姑息)한 번역보다 시적 교양이 적은 것이라도 자작(自作)이 도로혀 효과를 어들 것입니다. 정통의 시(poetry proper) 만 안이라, 동요, 민요, 속요에 일르러서는 순전한 시적 내용보다도 전통 언어상(全統言語上)의 운율이 중요한 요소로 되어 잇슴으로 이 곤란이 배가(倍加)하겟지요. 좀더 넓은 범위 안에서 무대상의 대화 즉 희곡에 잇서서는 언어는 내용과 함끼 동량(同量)의 중요성을 가졋슴니다. 사상을 당대의 사상 범위 밧게 나아가거나 또는 전구(全驅)가 될 수 잇스나, 장소와 시간의 일정한 제한을 가즌 무대상에서는 언어는 반다시 그 당시의 관중의게 직접(直接)하고 친자(親炙)한 예술적 전달을 하여야 할 것이외다. 극작가의 직접하고 친자한 의사 감정의 전달에는 그 주의의 일상 사용하는 언어의 순화 외에 달은 방책이 업습니다. 반드시 극적 대화에는 이만한 구속을 감수하는 것보다도 그 구속의 철쇄(鐵鎖)를 능히 예술적 천분(天分)으로 조종하여야 할 것입니다. 보통 호프만스타 ― ㄹ은 독일언어에 시적 신경역(神境域)을 부여한 극시인(劇詩人)으로 생각되기 쉬우나, 그는 시극(詩劇), 레 ― 제드라마의 극단한 작가에 지나지 못함니다. 여하(如何)한 변명이 잇슬지라도 무대상에서 표현하는 시인의 인생관은 현실적 요소가 잇서야 할 것이외다. 만일 그러지 아니하면 구차히 구속만은 무대를 빌리지 안이하여도 순수한 시의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낫지 안켓슴니까. 우리가 사옹(沙翁)의게 극시인(劇詩人)의 칭호를 주는 것은, 아름다운 현실적 무대 안에 시적 통찰과 상상을 건설함에 잇고, 결코 시적 대사 안에 현실을 은닉한 연유는 안이외다. 전세기말(前世紀末)의 유명한 시인 쉼버 ― ㄴ이 쓴 수편의 시극 ― 자기가 자신잇게 쓴 극이 잇스나, 지금까지 극작가로는 알어주지 안이하고 역시 우수한 유미시인(唯美詩人)의 한 사람으로 기억됨도 그 원인이 여기에 잇지 안이합니까. 애란(愛蘭) 문예부흥의 최대(最大)한 극적 천재 쬰 밀잉톤씽이 〈곡영(谷影)〉을 쓰기 위하야 당시 숙박하고 잇든 집 이층에서 달아진 마루바닥 틈에 귀를 대이고, 밋층 부엌에서 이약이하는 하녀들의 대화를 유심히 들어 두엇다 합니다. 혹은 떠블인 근방의 걸인들의 회화와 속요, 서해안의 어부(漁夫)나 목축자들의 언어를 항상 그이의 쓰는 극에 불가결(不可缺)할 것으로 들어 두엇다 합니다. 풍만한 예술적 양심이 잇는 존재가 그 극의 대화를 쓸 , 적어도 이만한 유의(留意)를 가즌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 안임니까. “그이들이 서재 안의 테 ― 블 압헤 안저서 붓을 들 때, 방금 조반  들어 둔 가족의 말을 다시 회상하며 쓰지 안이하지 못하얏슬 것이외다.” 허식 만은 음악적 과장으로 쓴 세기말의 극이 원인 업시 쇠퇴한 것이 안이올시다. 우리가 큰 천재의 개성과 사상을 전달할  그 매개물인 언어가 엇지 어부(漁夫)의 낙싯대와 갓치 안이하오리까. 숙련(熟練)하고 교묘한 수단으로 고기를 잡는 노어부(老漁夫)는 고기에 아 각기 달은 낙시 바늘을 필요로 할 것이며, 그 낙시 바늘 잇는 대로 자기의 노련한 기술을 사용하여야 할 것이외다. 언어에는 국민에 공통한 국어가 잇고 지방에 공통한 방언이 잇습니다. 언어를 무시하고, 개성을 표현코저 시, 가(歌), 극을 쓴다 하면 그는 눈 업시 길을 걸고저 하는 것보다 무리(無理)한 일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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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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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갓히 국어, 속어, 방언을 역설하는 나도 자기를 돌아볼 때에 실상은 참괴(慙愧)함을 억제치 못함니다. 잇는 로 개성의 가지를 벌리며, 듯는 대로 기억하며 사용할 언어를 수련함에 가장 민감한 십칠, 팔세시(歲時)부터, 외국에 유거(留居)하야 듯는 것, 읽는 것이 모도 외국어 이엿습니다. 사정(事情)이 주는 비참한 환경 안에서 성육(成育)한 이로, 이가튼 부당(不當)과 원한을 통감(痛感)하는 이는 나 외에도 우리 청년 가온대에 허다할 쥴 암니다. 그러나 그이들의 대개는 사상에는, 개성에는, 천재에는 언어의 구속이 업다는 반진리(半眞理)의 이불 속에서 국척(跼蹐)하고 잇습니다. 우리는 전통(불인(佛人)이 일으는 바의 문명사적 전통)에서 버서나지는 못합니다. 개성의 천부(天賦)와 민족적 경향으로부터 도피할 수는 업습니다. 아무리 강렬한 아 ― ㅋ등(燈)으로만 모워 놋는다 하여도 그는 전자(電子)의 연소(燃燒)에 지나지 못하고 태양의 광(光)을 모방할 수 업습니다. 세계의 문화적 이상은 각 민족이 실현할 수 잇스나, 그이들의게 특자(特自)한 경향, 성행(性行), 천재는 세계 재성(再成) 그때까지 변치 안이하리다. 동양 문화는 어듸까지든지 동양문화의 정수(精髓)를 벌이지 못할 것이며, 우리 민족은 어듸지든지 우리 민족의 발달한 경로를 걸어야 할 것입니다. 사기횡탈(詐欺橫奪)한 저네들의 지도를 배척하는 이들도, 다만 감정적 반항에 끗티지 말고, 우리의 천재는 우리의 판단 외에 발휘할 길이 업슴을 확실히 알어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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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지 생각하여 올 , 우리 문단(?)에는 과연 ‘우리의 말’ 이 잇는가 하는 기괴한 의문이 올너옴을 속이지 못하겟슴니다. 나는 당장에 우리의 말이 업다고 판단하겟슴니다. 실로 기(氣)가 막히고 불행도 한 판단이지오마는, 사실로 인정함은 나 안이라, 오늘날 우리 글로 된 잡지나 신문을 떠든 이로서 유의한 이는 모도 이가튼 낙담을 가젓슬 것이외다. 자자이근면(孜孜而勤勉)하야 모든 외국적(外國的) 제도설비와 학술의 성공을 엇는다 하여도, 오늘날 이가티 일개(一個)의 완전한 문전사전(文典辭典)이 업고, 어맥문맥(語脈文脈)이 업고, 우리의 시가음률(詩歌韻律)이 업스면, 그야말로 거택(居宅) 업는 부랑자가 화의호식(華衣好食)으로만 지내랴 함과 갓지요. 소위 글 쓴다는 이들의 문장을 보면 자기 특허의 혼란어(渾亂語)(jargon)는 고사하고 적어도 기천년(幾千年)의 문화를 가젓다는 청년들의 문장이 지리멸렬(支離滅裂)의 기괴한 독각(獨脚)이 춤을 추고 잇스니 그도 그이들의 눈에는 문화라는 경억(境億)의 비탑(碑塔)이 보히는지 의문이외다. 우리 가튼이도 우리말에 대한 존경과 사랑으로 무엇을 하랴 할 , 사지결박(四肢結縛)한 엽견(獵犬)과 가티 무가내하(無可奈何)올시다. 쓰는 글, 나는 잡지 손에 들고 그 무엇을 엇고저 하나. 동시에 낙담과 실망으로 고만두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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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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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완전한 논리로라도 현금(現今) 우리 문단에는 몬저 잇서야 할 우리 말이 업다는 것을 지적하여 왓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문단 문제(文壇問題) 안이라 넓게는 우리 신문화의 큰 문제가 되겟슴니다. 물질적 문화보다 정신적 문화로 우리 조선을 생각할 , 우리는 과거 전통의 신선한 선택 위에 선 문화의 비상(碑像) 외에는 달은 이상(理想)을 나는 아니 가젓습니다. 나는 다시 이러한 근거에 안져서, 우리 청년들의게 희망하는 바를 간단히 열거하겟습니다.  늙은이들의게 대하야는 지금지 가지고 잇든 것이나 잘 간수하고 게시도록 청(請)하는 외에 달은 희망이 업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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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전(文典)의 재정과 사전(辭典)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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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할 우리 선배 중에는 남 몰으는 고통과 희생으로 아직 불완전하나마 귀중한 조선어문법을 남기어 주신 이가 잇지 안이함은 안이외다. 내 견문한 것만 들어도 위선 주시경(周時經) 씨의 『 』, 이규영(李奎榮) 씨의 『조선문전(朝鮮文典)』, 강매씨(姜邁) 씨의 『조선문법제요(朝鮮文法提要)』, 안확(安廓) 씨의 『조선문법(朝鮮文法)』, 전희(全熙) 씨의 『조선어전(朝鮮語典)』, 전두봉(全枓奉) 씨의 『조선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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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세줄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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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문전이나 사전은 상식 이상의 곤란과 희생과 시일(時日)로야만 되는 것이외다. 우리는 이것을 생각할 때 또 오늘날의 이러한 곤경에 잇서서, 남보다 몬저 생각하야 독자의 힘으로 수개(數個)의 문전을 편찬하야 주신 그이들의게 한업는 존경의 마음을 금치 못함니다. 그러나 그 수개의 문전 안에는 문법상 모순과 불완전이 아직도 잇는 것을 누구나 다 인지하는 바이지마는 우리는 이것을 기초로 하야 완전무하(完全無瑕)한 신문전(新文典)을 확립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전도 총독부 편찬의 몰상식한 『조선어사전(朝鮮語辭典)』이 잇스나, 이것에 대하야는 사전이라는 이름을 쥬기에는 너무나 애석을 엿쥬기 외에 다시 할 말은 업습니다. 이 외에 께 ― ㄹ 박사의 『한영자전(韓英字典)』, 스콜 씨의 『한영자전(韓英字典)』, (일명(逸名))씨의 『한불사전(韓佛辭典)』이 잇습니다. 기백년간 소위 ‘언문(諺文)’이라 하야 경모(輕侮)를 바더오든 우리 말이, 시(時)의 큰 힘으로 이제야 소위 문전, 사전이 생기게 되엿습니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대부분은 외국인이 몬저 착수한 바 되엿습니다. 과연 우리는 지금까지 엇더한 문화를 가젓다 과시할 엇더한 용기를 가졋습니까. 일개 사전이 업서 우리글이 세계에 관절(冠絶)하다든 것을 무슨 염치로 말할 수가 잇스며, 일개 완전한 문전이 업시 무슨 눈으로 소위 신문화의 봉화(烽火)를 들 수가 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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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긔 부수(附隨)하야 희망하는 것은 신(新) 문전, 사전의 출현이 조선어의 표준을 맨들 일이외다. 우리말은 지방에 아 문전상(文典上)의 상이가 비교상 적음으로 표준어의 일정(一定)에는 과(過)한 곤란은 업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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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은 말하시겟지요. 우리의 잠이 늦게 깨이자 지금 와서는 자전(字典), 사전에 희생을 바칠 시간과 능력이 업다고. 그러면 그 시간과 능력이 우리의게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문화의 생활과 이상의 생활을 하지 말아야 하겟습니까. 착오, 착오, 또 착오이외다. 우리는 적어도 충일하는 생명력으로 필요 잇스면, 당장에 파괴할 것은 파괴하고 창조할 것은 창조해야 합니다. 그러한 희생(犧牲)과 용기를 앗기지 안이하는 이야말로 우리의 영웅이 되며 우리의 구주(救主)가 되겟슴니다. 일일(一日)이라도 속히 우리 문단의 쬰손이 출현하여야 하겟습니다. 참고로 부기(附記)하겟습니다마는 샤무엘 쬰손은 십팔세기의 영국 문인이외다. 소위 영문학상 쬰슨시대라 하면 십팔세기 후반을 일음인대, 이때까지 영국에는 사전이 업섯습니다. 십사세기 후반에 ‘영시(英詩)의 부(父)’ 라 일으는 쵸 ― 서가 영어를 건설한 후 엘이사벳 조(朝)에 이르러서 쉑스피어, 스펜서가 찬란한 근대까지 쓰는 영어의 범위를 넓게 하엿습니다. 그 후 이세기간 사전의 필요는 직접 업섯드니 십팔세기에 일을어 필경은 루소 ― 의 혁명사상의 파도가 북방의 변벽(邊僻)한 영도(英島)에까지 침입하엿습니다. 그 영향으로 상업적 사회가 공업시대로 변하자 지방과 중류사회에까지 일반 교육이 보급되며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넓어지게 되엿습니다. 문단으로는 이태리, 불란서의 영향 바든 고전주의가 쇠퇴되며 로만티시즘의 기운이 왕성하고저 할 때 쬰손은 풍만한 정력으로 당대의 문인을 지도하고 잇섯슴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안에 잇는 쬰손이 비로소 영어사전의 편찬을 생각하게 된 것도 오늘날의 우리 사회의 요구와 방불한 곳이 업지 아니하고, 그 성공의 곤란과 노력이 상상 이상임도 서로 달은 곳이 업습니다. 영어사전의 출판은 천칠백오십오년의 일이외다. 그 수년 전에 도슬에라는 출판업자로부터 사전편찬의 종용을 바든 쬰손은 당시 유명한 내각(內閣) 비서관 체스터피 ― ㄹ드 경(卿)으로부터 일천오백육십오 방(磅)의 자금을 바다 삼년간에 필료(畢了)하기로 작정되엿습니다. 그러나 예상(豫想) 이상의 저어(齟齬)와 곤란이 잇는 외에 조수(助手)지 수인(數人)을 차용하지 안이하지 못하게 되엿슬 뿐 안이라, 중도에 자금의 거절을 당하게 되엿습니다. 기간(其間)의 병약한 몸을 구사하며 계속하여 가는 고통과 경제상의 곤란, 동정과 원조 업는 고심, 그 모든 불행과 성공한 후의 큰 사업은 사전 자신과 서문(序文) 안에서 자세히 볼 수 잇습니다. 그러나 유명한 것은 이 서문 외에 또 잇는, 이것이 유명한 「체스터피 ― ㄹ드 경(卿)에게 기(寄)함」이라는 불후의 공개장(公開狀)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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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卿)이여, 필경은 육년을 경과하엿습니다. 이 육년간 생(生)은 경의 현관(玄關)에서 방축(放逐)을 당하기도 하고 응접실에서 헛되이 기달이다가 돌아온 일도 비일비재이엿습니다.  이 수년간 생(生)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업는 곤궁 안에 안져서, 토개(土芥)만한 조력이나 격려도 업시 추호만한 호의의 미소도 바듬 업시 생의 사업은 착착 진행하야 이제 출판에지 일을엇나이다. …… 생(生)은 이후에 명가(名家)의 간호(看護)를 바든 일이 업다고 말하겟슴니다.”(대의역(大意譯)) 이 일문(一文)이  십팔세기의 소위 문인들의 간호 관습(看護慣習)(페트론)을 타파하는 일인(一因)이 되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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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비전설과 민요·동요의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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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의 예를 들겟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애란 민족(愛蘭民族)의 문화적 각성은 애란 문예부흥을 중축으로 하야 일어나게 된 것이외다. 수백년간 영국의 압박 밋헤 잇서 역병(疫病)·기근의 재액(災厄)과 고유문화의 파괴를 당하든 그이들이 이 갓흔 사회적 대운동(大運動)을 성공하게 된 원인은 극히 간단하엿슴니다. 전세기(前世紀) 중엽에 더글아스 하읻 박사는 겔 ― ㄹ인(애란인(愛蘭人))의 민요 · 속요를 영역(英譯)하는 데 그 운율과 시적 형식을 채용하엿슴니다. 이것이 유명한 『콘나흐트의 연애가(戀愛歌)』와 『콘나흐트의 종교가(宗敎家)』인, 현대 애란 문인으로셔의 양권(兩卷)의 영향을 안 바든 이는 없읍니다. 즉 하읻 박사의 영어에 채용한 서부(西部) 애란의 운율적 방언과 소박순진한 시형(詩形)은 그레고리 부인의 고(古) 로맨스의 번역, 씽의 극에도 낫하났읍니다. 그 영향을 패트릭 콜엄이라는 현존 애란 시인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엿습니다. “그러붓허 겔인(人) 문화의 보존과 부활의 단체(겔동맹(同盟), 애란원본협회(愛蘭原本協會), 애란문예협회(愛蘭文藝協會), 애란극협회(愛蘭劇協會) 등은 하읻 박사의 자극에 간접 원인 되엿습니다.)가 출생하게 되고, 애란의 젊은 시인들은 시적 운율과 신기한 시형을 발견하엿스며, 다시 영식(英式) 훈육(薰育)에 순치(馴致)된 그이들은 거기로붓허 민족적 본질과 특질을 보앗고, 조국의 진상(眞象)을 보앗스며 긴장한 동적(動的) 순진을 소생식엿다. 이 두 권의 가집(歌集)은 젊은 애란인의게 일송서(日誦書)(브리비아리)가 되엿다.” 애란의 부흥은 그 문자의 뜻로 소생이엿고, 그 소생은 본래의 속요, 민요와 전설의 감천(甘泉)으로붓허 일어나게 된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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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엇더한 국민의 참 민족성을 보랴거든 그 국민이 산출한 문학을 읽으라 함은, 대개 모든 사람이 단언하는 바이나, 나는 엇더한 민족성을 아랴거든 그 민족의 가슴 깁픈 속으로붓허 직접 용출(湧出)된 민요와 전설을 들으라 하겟습니다. 우리의 민요 · 속요나 동요 · 전설에는 찬양할 바나 낙담할 바나 모도 포함되어 우리의 순직(順直)한 본상(本相)을 인정할 수 잇습니다. 운율적 형식과 국어의 우수한 특색을 가즌 그것들은 져와 갓치 쇠천(衰賤)하는 로 방치하여 둔 것은 넘어나 애석함니다. 그 안이라 이갓튼 직접한 민요 · 동화의 특색을 우리 시가단(詩歌壇)에 채용할 때 천만(千萬) 장(章)의 외국 시가(詩歌)를 수입할지라도 엇지 못할 우리 민족의 운율과 시형의 새 예술을 건설하게 되오리다. 혹 말하는 이는, 우리 가요에는 과거 기백년간 정치상이나 도덕상으로 바더오던 압박의 망족적(亡族的) 소리에 지나지 못하니, 그것을 부활하는 것은 즉 또 한번 과거의 비참한 생활을 하라는 것과 다름업다고 합니다. 지리상으로 역사상으로 또는 환경의 압박상으로 우리의 가요에 그 갓튼 색채가 잇는 것은 사실이외다. 유종열(柳宗悅) 씨의 지적과 갓치 우리의 예술은 다만 춘풍에 날리는 서류(絮柳)의 슬픔을 과거의 특색으로 갖엇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환경적 특색에 지나지 안하는 것이 안인가요. 또 그러한 특색이라 하야도, 그것이 만일 오늘날 우리 가슴 속에 포장(抱藏)된 애감(哀感)의 사실이라 하면 이것을 기만하야 표현하는 것은 과연 허상(虛像)의 예술이 안일가요. 그러나 우리의 민요 ·속요나 동화 · 전설을 수집, 부활하라 원(願)하는 나의 조건은, 그 운율과 시형의 우수점(優秀點)을 쇠천(衰賤)하게 말고, 그것을 이용하야 우리의 신시가(新詩歌)에 넓은 범위를 부여하라 함에 불과하외다. 우리들은 비참한 애란 사람과 가티 과거의 아름다운 그러한 시가, 전설은 점점 산간벽촌에서는 소멸하야가는 형세이외다. 또 도회나 새 교육이 보급되는 지방에서는 무지식(無知識)하고 타락한 잡류배의 구문(句吻)에서 겨우 명(命)을 잇고 잇는 지경(地境)이오니, 우리 자신을 귀중히 여기는 이들은 그 수집과 부활에 힘쓰는 것이 잇더할가요. 또 요새 유행하는 듯한 소위 오해된 상징파의 괴시(怪詩)에 수희(隨喜)하는 이들도 다시 좀 냉정히 자기 안에 포장된 보옥(寶玉)을 들여다봄이 엇더하겟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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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외국문학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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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계의 문학상이나 정치상으로 그 역사적 사건의 경과를 토구(討究)하면, 그 대부분은 반드시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사상에 원인됨을 알 수가 잇습니다. 자고(自古)로 상당한 문명을 가즌 나라로서 외국문화의 영향을 바든 일이 적거나 혹은 전무(全無)한 곳은 지나(支那)와 희랍(希臘)이외다. 그러나 지나는 아모 외국의 자극이 업서 마비하여 잠이 들고 상금(尙今) 그 장구한 안면(安眠)의 탄성(彈性)으로 당목대개(瞠目大開)를 못하는 지경(地境)이며, 희랍의 쇠망(衰亡)도 찬란한 문화를 맨들든 독창력이 그 절정 일을어 길이 막힌 곳으로써 시작되지 안헛스니까 사람은 아모리 큰 천재라도 주위의 자극과 고무 업시는 용이(容易)히 발현되지 안흡니다. 오늘날 노대국(老大國)으로 아즉도 젊은 전도(前途)를 가즌 영국은, 그 인종적 혼합과 환경적 자극으로 그 문명과 발달을 지속하여 감니다. 영국의 민권사상의 발달은 불란서 혁명에 인(因)하엿스나, 그 혁명의 원류(原流)인 루소 ― 의 사상은 영국으로부터 들어왓습니다. 국가 생활 안이라 일개인(一個人)이나 일문단(一文壇)의 발전도 동일하외다. 독일 국민문학 왕흥시대(國民文學旺興時代)의 스트름 운드 드랑크의 청년문학자 ― 꾀테, 실렐, 크라이스트, 헬델, 하이네 ― 모든 천재들은 당시 발흥하야 전(全) 문단의 요화(燎火)가 되는 불란서의 로만티시즘의 수입에 자극되엿습니다. 외국문학의 수입은 다만 그 사상의 자극을 어들 뿐 안이라 그 번역에 딸아 언어의 확장에도 큰 관계가 잇습니다. 창작과 함 번역이 일국(一國)의 문단에 주는 효과는 모든 고색(固塞)하여가든 정신을 흥분시키며, 언어의 사용법을 넓히고 어풍(語風)과 문맥(文脈)의 청신한 국면을 암시하야 쥼니다. 외국의 시가, 소설, 극의 번역이 우리의 빈약하고도 근본 업는 문단에 대하야 가즌 사명도 결코 적지 안이하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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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문·잡지의 민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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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最前)에 말한 고향의 선배로부터 들은 말이외다마는 예하면 ‘효시(嚆矢)’ , ‘기우(杞憂)’라는 문자지요. 이러한 어구(語句)는 우리가 매일신문, 잡지(일본 것을 의미하야)에서 보는 바이나, 놀랠 것은 중학교 졸업 정도의 일본인으로서 이 가튼 심오한 유래를 가진 숙어를 이이(易易)히 쓰는 것이라 함니다. 즉 이갓히 중학생 안이라, 일반 민중, 거부(車夫)나 음식점 사환이나 소바집 하녀나 공장 노동자나 관청 고원(雇員)에 일으기까지 모두 문화의 사명에 참가되는 것은 신문, 잡지의 은덕이외다. 우리들의 선인(先人)들, 소위 유자(儒者)라는 그이들은 한문 숭배의 인습(因習)으로 ‘진서(眞書)’의 방자한 학대로 하야금 ‘언문(諺文)’ 의 사지를 결박하엿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 말의 퇴보와 어맥(語脈)의 불규율(不規律), 소수의 유자(儒者) 계급의 경서(經書) 남용과 타락, 일반 민중의 무지맹매(無知盲昧)를 인치(因致)하얏습니다. 한문상(漢文上)의 간요귀중(簡要貴重)한 용어는 다만 그네들의 풍일유희(風日遊戱)의 기구(器具)가 되엿슬 뿐이외다. 그러나 근세에 와서는, 그러한 용어는 신문 잡지의 매개로 하야 직접 일반 민중의게 접촉이 되며 전파가 되게 되엿습니다. 외국어의 수입과 심오한 경전이 일상의 사용에 공(供)하기에는 학교 교육보다 신문, 잡지의 노력을 빌리지 안흐면 못합니다. 문화의 민중화라는 이상을 생각할 때 신문, 잡지 외에 일(一) 사회(社會)를 지도할 것이 또 잇습닛가. 오늘날의 우리 신문, 잡지에 대하야 기탄업시 비평하고져 하면 즉 악언(惡言)이 되겟습니다. 나는 여기서 비평의 목적이 안이오 다만 문제 제공에 지나지 못함으로 현금 우리 잡지, 신문의 기자의게 원(願)하는 바는, 제공(諸公)의 책임은 월급 생활의 사무나 명리(名利) 획득에 잇지 안이함을 고(告)할 뿐이외다. 쳣재로는 신문, 잡지의 민중화, 둘재로는 기자의 정도(程度)를 놉힐 일과, 셋재로는 신어(新語) 조출(造出)에는 상당한 용의주도가 잇슨 후에 할 것이 크게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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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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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와 희망을 가장 두는 형의게 올리는 이 글이 가령 모순과 불철저가 만흘지라도, 나의 문제 제공에 진리 잇는 것만 취하야 쥬시면 아모 주저 업시 속죄(贖罪)를 능히 하고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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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외일보』, 1922. 4. 14., 『Société Mai』 1, 1925. 6.
【원문】조선말 없는 조선문단에 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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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진(金祐鎭) [저자]
 
  1922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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