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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시는 되어서 일어나 사랑문을 여니 손님도 잠이 깬 지 오래던지 침대에서 일어난다. 피곤이 풀리지 못한 모양 같다. 간밤에 들어온 것이 세시를 넘은 때 ─ 이것이 이 며칠 동안의 버릇이어서 기침은 자연 열 시를 넘어 아침 시간의 표준이 대개 오정을 기점으로 하게 되었다.
4
Y는 서울서 온 손님. 며칠 동안의 그를 동무해 주기 위해 K와 C와 나 세 사람이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어제는 박물관을 찾았던 것이 월요일이어서 휴관, 그 길로 뱃놀이를 떠난 것이 밤이 되어서야 거리로 들어오게 되어 또 몇 집 돌아다니는 동안에 오전 세 시를 맞이해 집으로 오는 길에 별안간 종록 같은 소낙비를 만나 아래통을 한바탕 적시고 돌아왔다. 그 까닭인지 오늘은 한층 피곤하다. 길을 떠나면 별 하는 일 없이 피곤해지는 법, 자유로운 휴식의 시간이 거의 없다. 이날은 좀 늦게까지 손님에게 휴식의 기회를 주려고 했으나 그것도 헛일, 오정이 되자마자 아침 식사를 막 마치고 나니 K와 C가 벌써 찾아들 왔다. 박물관에 가자는 약속이었던 것이다. 차를 마시고 나기가 바쁘게 피곤한 채로 한패는 또 집을 나섰다. K와 C는 각각 집을 떠난 자유스런 사람들, 시간이 무진장인 것이요, K와 나도 여름 휴가를 잡아든 몸으로 한가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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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놀면서도 항상 마음이 편안하지 못함은 웬일인지 모르겠다. 무거운 것이 마음을 죄이면서 되려 불안스럽다. 소심익익(小心翼翼)하지 말고 참으로 유유자적할만한 넉넉한 심지의 수양이 필요하다고 알면서도 그것을 얻기가 힘들다. 사실인즉, 휴가 되는 즉시로 Y와 함께 만주와 북지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것이 Y의 사정으로 연기하게 되어 Y는 그 대신 이곳으로 며칠 놀러오게 된 것이다. 계획이 어그러져 버리니 방심이 되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한동안 무위로 지냄도 유유자적의 수양이거니만 생각하나 심중이 편편하지 못함이 슬프다.
6
평양 온 지 4년에 박물관 구경이 처음이다. 필요 없음이 사람을 게으르게 한 셈이나 부지런해야 필요가 생기는 법인 모양이다. 낙랑과 고구려 시대의 유물, 유적, 고분 등을 보아가는 동안에 찬란한 환상이 솟으면서 가지가지의 의욕을 느끼게 되었다. 낙라의 문화는 결국 한인(漢人)의 소산이었던 듯이 짐작되며, 고구려의 유물은 낙랑의 그것에 비기면 기품 성격이 훨씬 거칠고 굳건하면서 여기서부터 선조의 독창이 시작되지 않았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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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든 이 두 시대의 고인의 업적은 놀랍다. 회화 등에 나타난 품격으로 보면 애급문화보다는 훨씬 윗길이며 로마 초기 문화에 비겨 손색이 없다. 색상자의 색 모양이며 고분의 벽화는 그 색채의 전아함과 의장의 탁월함이 하나의 경이이다. 이런 유물을 볼 때면 이 땅에 태어난 자랑이 유연히 솟는다는 Y의 말이 절실히 가슴에 흘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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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을 나와 고금의 문화를 이야기하면서 거리에 내려가 별수없이 한낮부터 또 술타령이 시작되었다. 술을 구해서가 아니라 그런 수단으로 밖에는 거리에서는 시간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이집 저집으로 자리를 바꾸기가 3,4차, 어느 곳이나 그다지 신기한 곳은 없으며 자리를 옮기는 것도 일종의 버릇일 뿐이다. 이런 곳에의 출입도 점점 흥미가 없어져 가면서 여기에서도 영대(齡代)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어느새 영대의 변화를 느낀다는 것이 망발일는지는 모르나 벌써 좀체 흥미를 끄는 여자가 없는 것이며, 이 흥미의 감퇴가 곧 영대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여간한 여자가 아니고는 눈을 끌지도 않는다. 슬픈 일인지 반가운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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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럭저럭 객담을 건네는 동안에 밤이 깊어 늦은 거리에 나왔을 때는 두 시를 넘은 때, 강잉히 Y를 끄으나 K가 좀체 놓치 않아 결국 Y는 또 하룻밤 K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C와도 작별하고 혼자 걷는 길이 피곤하고 헙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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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 시골서 온 한 사람의 문학부인이 마침 이곳 동무를 찾아왔던 길에 Y의 소식을 듣고 Y와 나와 한 좌석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는 소식을 아내가 동무의 집에서 듣고 와서 전해준 것이다. Y를 데리고 와 집에서 만나거나 그렇지 않으면 다방에서 만나게 할 작정으로 낮쯤은 되어 K를 찾은 것이나 Y는 없다. 아침 여덟 시 차로 떠났다는 것이다. 거듭 의아한 감이 돈다. 전해 주는 명함에는 ─ 암만해도 오늘은 귀경해야겠고 이렇게 해서 밖에는 형들의 호의를 물리칠 수 없으므로 ─ 라는 해명의 구절이 읽힌다. 오늘은 저녁때 함께들 양덕온천까지 가자는 언약도 있었는데 ─ 여중(旅中)의 몸이라 집이 퍽은 궁금했던 모양이다. 나로 보면 섭섭한 일이요, Y로 보면 아깝게도 발이 빨라 모처럼의 문학부인과의 면담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득실은 . 두고 보아야 알 일이기는 하나 하루의 흥분을 물리쳐 버린 것이 Y가 후에 들으면 아마도 통분해 할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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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갔다가 다시 피서지로 떠나 소설을 쓰겠다는 것이 Y의 계획이었다. 더위를 무릅쓰고 소설을 써야 한다는 것 ─ 그 속에 버리지 못할 의미가 있는 듯하다. 연전만 해도 소설을 쓰느니 무어니 하던 유어(類語)가 아희(兒戲에 밖에는 값가지 못하는 귀에 거슬리는 것이더니 요새 와서는 뜻이 적지 아니 달라졌다. 이곳의 문학이 뭇시선의 대상이 되고 인식이 달라지자 건설의 뜻이 새로 덧붙여졌다. 결코 안이하게 문학을 생각할 수 없게 되었고 어렵고 준엄한 것으로 고쳐 생각하지 않으면 외부의 조소를 헌입게 되었다. 문학의 수양은 바야흐로 본격의 대도를 내달으게 된 것이다. 이때 소설을 쓰느니 창작을 하느니 한다는 말이 비로소 격에 맞고 품에 어울려 들리며 소홀하지 않은 뜻을 그 속에서 길러낼 수 있다. 대작을 쓴다는 말이 아니라 걸작을 쓴다는 말이요, 그 일편으로서 문학 전체를 대표할만한 역량 있는 것이라야 한다. 문학의 길이 대단히 어려운 것이 되었으며, 따라서 문학인 된 보람도 느끼게 되었다. 좁은 우물속의 문학이 넓은 외계의 조명을 받게 된 까닭이다. 여름 문학인들의 자중을 바라며 Y의 계획의 성공을 비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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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를 찾아왔던 C도 Y를 놓쳐서 헛걸음, 별수없이 세 사람이 차리고 나서 다방 행, 더울 때에는 집에 있기도 거리에 나가기도 곤란한 일이나 집에 모이면 자연 걸음이 밖으로 향한다. 간단한 점심을 마치고 다방에 앉았어도 확적한 언약을 안준 문학부인이 나타날 리도 만무해서 .가게를 나와 K는 실망해서 집일을 보러 들어가고 C와 나는 영화관을 찾다. 알리바바의 고담과 근대 면을 혼합한 에띠이 캔터의 소극이 예상외로 재미가 덜하다. 나체의 군상을 보러 간 것이 이야기의 해학미를 주안으로 한 것 이어서 실망하다. 이런 종류의 영화라는 것은 음악이 풍부하든지 나상의 난무(亂舞)가 있든지 하지 않으면 흥미가 적은 것은 관객의 감상의 안목은 이런 일면에 의외로 큰 구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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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을 나와 지하실에서 목을 적시고 K식당에서 저녁을 마치고 나니 날이 어두워지면서 금시 소낙비가 쏟아질 것 같다. 아니나다를까 전차로 두어 정류장 지나는 동안에 비가 퍼붓는다. 하는 수 없이 중도에서 내려 H백화점 식당에 올라가 비삠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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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우연한 비가 인연되어 거기에서 의외의 인물을 맞게 되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실의의 봉창을 거기에서 대라는 계시였던 듯도 하다. 그들도 역시 무죽거리는 모양, C와 함께 그곳을 나와 결국 하루 저녁 무료한 그들의 동무를 해준 셈, 맥주를 한 타(打)나 마시는 동안에 세 시 가까워서야 집을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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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타령에 몸이 말할 수 없이 피곤하다. 피곤한 것은 나뿐이 아니련만 K와 C의 멀끔한 기력에는 한 수 접힐 수밖에는 없다. 오정 넘어 두 사람 내방, 그들을 대하면 피곤도 간곳없고 나도 세력이 소생된다. K는 간밤의 탐정담을 듣고 수연삼천장(垂涎三千丈) ─ 그러나 중도에서 떨어진 것이 불찰이었으니 한할 곳도 없어 기회의 재래를 원할 뿐, 강으로 나가자는 것이었다. 두 사람에게는 벌써부터 강의 일과가 시작되었던 것이 Y가 왔던 까닭에 잠시 끊겼다. 이제 다시 일과가 계속되매 나도 한몫 끼이게 된 셈이다. 거리에서는 소하법으로는 이 수밖에 없는 것이요, 하루 동안에 나도 완전히 그 진미를 득하게 되었다. 단골집에서 찬 맥주 반타와 통조림 등을 사가지고는 이것도 단골 뱃집에서 3인승 보트를 세내어 타니 ‘보트 속의 세 사람’이 되었다. 앞강을 건너 반월도 옆 여울로 배를 끌어 올려 뒷강에 이르니 반날 동안의 납량터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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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강과는 달라 물이 맑고 얕은데다가 바닥에는 전면 흰 모래가 깔려 호젓한 수영터이다. 보트를 강심에 띄우고 물의 뜻대로 맡겨 두고 방향도 목적도 없이 뱃전을 붙들고 이리저리로 유과(遊戈)하노라면 그것으로 흐붓하고 족하다. 물은 왜 그리 흔하고 즐거운 것인지 여름철의 장련의 혜택으로는 물이 아무래도 으뜸일 듯하다. 이 풍부한 쾌미가 왜 누구나의 자유가 되는고 생각하면 신기하기도 하다. 사람이 한평생에 이렇게 흡족한 다른 무엇을 차지해 볼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과분의 혜택인 것 같다. 머리만을 물 위에 내놓고 수평선을 바라보면 수목의 일선과 구름과 그리고 물과 ─ 이것뿐이다. 지저분한 협잡물 속에서 선택된 이 깨끗한 재료만이 한계에 꽉 차면서 선열한 감이 전신에 흐른다. 구름과 수목과 물은 좋은 것, 지성을 동심으로 환원시키는 것, 이런 자연을 대할 때 영탄 밖에는 더 응대의 길이 없다. 부질없이 영탄만 하는 것이 감상주의일 듯하나, 그러나 이 영탄의 동심을 잃어버렸을 때의 비참을 생각해 보라. 평생을 영탄으로 지낼 수 있는 인생은 두말없이 행복된 것이며 야박스런 마음속에 지혜만을 감추고 한줌의 영탄조차 잃어버린다는 것은 위험하고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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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탄조를 한층 발휘해 세 사람의 나상이 강을 헤엄쳐 건너 언덕 위 마을에 이르러 풋옥수수통과 감자를 바구니에 그득히 사 담아 가지고 배에 이르렀으나 그 전원의 향기를 만끽했을 뿐 배 속에서는 익힐 수단 없음이 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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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그늘 있을 때 병 속의 여향(餘香)을 정복하고 배를 끌고 강을 올라가다. 올에 들어 겨우 수영을 터득해 실력이 10미터 거리에 이르게 된 것도 유쾌한 일의 하나 ─ 강물이 범연히 보이지 않는 것도 실상은 이 까닭인지도 모른다. 능라도 기슭에 배를 세우고 아래편에 무수히 떠 있는 유선들의 유흥의 광경을 바라보고 포류(蒲柳)의 채색의 군상을 관상함도 일흥이다. 한가할 때의 화제는 으레히 「데카메론」이나「캔터베리 테일」이어서 이 두 편의 고대의 문학은 그 동기에 있어서 인간의 성미를 갈파해서 또 남음이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반 사람들은 줄레줄레 모여만 들면 그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 귀로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른 귀로 흘리지 않으면 안된 것이 조그만 일감을 가지고 나갔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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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校正)의 일같이 급하면서도 흥없는 일이 드물다. 몇 백 페이지 되는 교정고를 며칠 동안 틈틈이 보아 와도 쉽사리 끝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배에까지 가지고 나간 것이다. 물이 튀어 군데군데 붉은 상처를 남긴 재교 고(稿)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니 일곱 시를 넘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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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K들에게로 가고 K들이 내게로 오고 해서 3,4일 동안 강의 일과를 계속했더니 얼굴과 몸이 어느결엔지 새까맣게 그을었다. 피곤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물속에서 엄벙하게 지내는 동안에 피곤인지 무엇인지를 모르며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 때 끝내자고 약속한 일과도 아니어서 한정이 없는 것으로 오늘도 또 두 사람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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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전이라고 먼저들 나간 뒤 반시간 가량이나 있다가 나가서 늘 탄 차는 보트 집에 이르러 한참이나 기다려도 두 사람의 나타나는 기색이 없다. 웬일인가 하고 의아해 하는 동안 거의 한 시간이 넘어서야 나타났는데 이건 보트 놀음이 아니라 웬 것의 매생이 하나를 타고 물 위로 나타난 것이다. 노상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나 그의 매생이를 빌렸다는 것이다. 날마다의 보트 사냥에도 조금 싫증이 난 판에 우리들은 한번쯤 매생이 놀음을 원해 왔던 터이었다. 두 사람은 벼락으로 그것을 구해냈다. 배위에는 나뭇단과 솥과 쌀과 기타 제반 조미료가 준비되어서 어죽놀이의 장만이 제물에 되어 있다. 한 가지의 부족은 닭이다. 어죽은 물고기로 쑤는 것이 아니라 닭고기로 쑤는 것, 절대로 필요한 닭이 없는 것이요, 물 위에서는 그것을 구함이 고생 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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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저어 올라가다 우연히 보트를 탄 B를 만나 네 사람이 한패가 되어 닭 사냥을 나선 것이 어죽의 본제부선(本第浮船) 장경관에서 실패, 강을 건너 그 본관에 이르르나 그곳도 야박스럽기 짝없다. 한 사람의 선부(船夫)가 민망히 여겨 자청해서 저자에 들어가 닭과 술과 조미료를 구해 왔기에 망정이지 이 의부(義夫)의 출현이 없었더라면 이날 천렵은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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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탄(白銀灘)옆 반월도 기슭에 터를 잡았을 때는 벌써 다 저문 저녁때였다. 강의 습속은 그렇게 유유하고 무신경하고 활량한 것이다. 낮 천렵이 밤에 이르러도 좋은 것이며, 닭 한 마리 구하기에 여러 시간이 걸려도 무관해서 시간의 관념이 거리와는 온전히 착도 되어도 조바심을 일으키지를 않는다. 거기에 강의 수양이 있는 것이요. 그 맛에들 강을 찾는지도 모른다. 천렵은 일종의 분업이어서 쌀을 이는 사람 불을 때는 사람 다 각각이나 닭의 살생이 극난사여서 그것을 맡은 K는 죽을 지경이다. 결국 S의 조력을 받아서 간신히 토벌해 솥에 앉힌다. C와 S의 솜씨가 놀라워서 죽은 진미이다. 아전인수가 아니요, 분풀이가 아니다. 사실 장경관의 어죽보다도 곱절 훌륭하다. 소주와 풋고추 ─ 어죽에는 이것이라야 격에 맞는다는 것이다 ─ 가 속에 들어가니 얼근해지면서 강상(江上)의 쾌미는 어죽놀이인 듯싶다. 보름의 만월이 누르스름하게 솟기 시작한다. 적벽부의 구절들을 외이면서 강면을 바라보니 파도 일지 않는 물 위에 맑은 바람이며 건너편 청류벽의 창흘(蒼吃)한 것이며가 그대로 적벽강의 운치인 듯싶다. 모란봉의 독고(獨高)한 자태며, 강기슭으로 길게 뻗쳐 내려간 등불들이며, 강 위에 뜬 무수한 흥겨운 배들의 풍경은 적벽 이상의 것이요, 못 본 서구의 수도 베니스의 풍치인들 이에 더할 것 같지 않다. 조수가 들어와 호수같이 고요한 강심을 저어 내려갈 때 참으로 수향(水鄕)이라는 느낌이 든다. 달 그림자는 길게 강기슭에서 뱃전까지 연했다. 놀던 중 이 밤의 운치가 가장 아름다웠다. 너무도 아름다운 품이 강놀이의 마지막일 듯한 ─ 아닌게아니라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것은 K는 내일 십여 일 작정으로 양덕(陽德)으로 떠나겠다는 것이다. 가서 좋은 일이 있으면 편지로 우리를 부르겠다는 것이나 어떻든 그가 빠지면 강놀이도 잠깐 중단되지 않을 수 없다. 하기는 지친 판에 얼마 동안의 휴식도 필요 하기는 하고 몸도 너무 탔다. 멀끔하게 벗어지려면 또 이해가 다 가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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