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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동래 온천에 왔나이다. 계절은 바야흐로 한껏 화장하는 때입니다. 벗꽃도 한창이요, 금정산에 진달래도 한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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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오륙도와 동래 온천의 벗꽃을 한발로 휘저으며, 해운(海雲)에 머리를 숨긴 금정산은 때마침 상현 달빛에 묻혔나이다. 그러나 금정산 허리의군데군데에는 진달래가 한창입니다. 수줍은 처녀의 홀로 타는 정열인듯 그 붉은 꽃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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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금정산의 진달래는 아름답습니다. 금정산은 아름다운 봄밤에 취하여 그 정열을 홀로 태우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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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저는 홀로 이 산밑을 거닐며 자연의 신비성에 혼의 세례를 받은 듯 합니다. 길가 반석에는 ‘Love is Best’라고 어떤 미친놈이 새겨놓은 글씨가 있고, 다시 한쪽 바위에는 분필로 ‘달은 구름을 먹고 살고, 진달래는 이슬을 먹고 살고,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산다’이렇게 쓰였읍니다. 과연 사람의 혼은 사랑을 요구하는가 봅니다. 금정산 반달아래 고독의 산보자도 사랑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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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금정산 저쪽에는 구름 뫼봉우리가 달빛을 받아 반금반옥(半金半玉)의 둘레를 치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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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고운 밤입니다. 안개는 물빛같이 흐르고 진달래는 사창(絲窓)에 숨은 님이신듯…… 형이여, 형이 그립고 친구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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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조만간 한번 오시구려. 밥값도 싸고 매우 좋습니다. 온천을 구경하고 금정산으로 산보하는 재미는 여간 아닙니다. 그도 심심하면 부산 구경도 가고요. 좌우간 아우는 일개월간 여기서 심신을 고요히 정양(静養)하며, 책이나 보고 때로는 서정소곡도 써볼까 합니다. 일간 한번 오시면 형과 유쾌한 산보를 하렵니다. 그러면 오시는 날은 편지하여 주소서. 부산까지 마중을 가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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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 서간문 「나의 화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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