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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5 전후(前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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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12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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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前後[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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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의 군산(群山) 비행장에로의 상륙작전이 내일이냐 모레냐 하는 기대와 낭설이 한창이던 7월 그믐. 면에서는 드디어 부락 담당 직원이 나와 남자 12세 이상 60세까지라는 소위 국민의용대라는 것의 명부를 꾸며갔다. 나도 물론 그중에 들지 아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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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는 꼼짝없이 죽창 들고 상륙군의 기관총 앞에 나서서 일병(日兵)의 육방패(肉防牌)가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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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리를 혼자 중얼거렸다. 도리어 안전하였을 서울서 일로, 소개(疎開) 핑계를 하고 피해온 것이 짜장 호혈(虎穴)을 찾아든 형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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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마니나 드는 궤짝으로 가득찬 낡은 작품과 원고와 서신들을 골라서 없앨 것 없애고 하려고 몇번 궤짝을 열곤 하였으나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아니하였다. 그보다는 역시 채전(菜田)의 벌레잡기가 마음을 갈앉히고 만사를 잊고서 잠심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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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로 들어서더니 마침내 국민의용대원만 남고 노약(老弱)은 전부 소개 지정지인 금산(錦山) 남면(南面)으로 피해 가라는 영이 내렸다. 그러면서 군산으로부터 쏟아져나오는 피난민의 대가 군강(群江) 도로를 덮기 시작하였다. 바리바리 우마차에 세간짐을 싣고 사람들은 노약을 붙들면서 끝없이 풀려나왔다. 암담한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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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은 저마다 얼굴에 수심과 불안을 띠고 둘만 모이면 수군거리느니 피난 못할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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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것들과 늙은이들만 피난을 보내기로서니 쌀 한 말에 3,4백 원 하는 판에 가서 무얼 먹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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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같이 있다 같이 죽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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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모두 다 농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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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이른 새벽부터 날 저물기까지 하루 종일씩을 채전에 나가서 지우곤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다시 4,5일이 지나고 소련의 대일참전(對日參戰)의 소식이 왔다. 나는 나의 예측이 틀어지지 아니하였음을 희한히 여겨 마지 아니하였다. 가슴이 쑤욱 내려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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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으로부터 몰려나오는 피난민은 조금도 끊이지 않았다. 도리어 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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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피난민의 대를 멀리 바라보면서 나는 둘째 중형을 이렇게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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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더 형세를 두고 봅시다. 이 지구에 대한 소개계획이란 건 소련이 참전하기 전에 세운 것이니깐 엊그제 새로이 소련이 참전을 한 이상 기어이 무슨 큰 변동이 있고야 말리다. 잘하면 저 피난민들도 이내 그대로 돌아서서 군산으로 가게 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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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승도(冲繩島)의 패전 이전부터 나는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도 일본은 전체로 패색(敗色)이 농후하였었다. 히틀러의 백림방어전(伯林防禦戰) 이상으로 무모한 속전(續戰)인 것이 번연하였다. 팔씨름에다 비하면 거진 다 넘어갔으면서도 그러고 힘을 더 써보았자 나중에 팔이나 더 아팠지 승패에는 아무런 효험도 없는 것을 그래도 버팅기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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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소련에다 일루의 여유를 두는 모양 같았다. 소련이 전후의 구라파에 대한 발언권 문제를 가지고 미·영(米英)과 갈등이 생기고 나아가서 맞붙어 싸우기라도 하면…… 이것을 침을 꼴깍꼴깍 삼키면서 기다리고 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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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사실이었다면 소련의 참전은 일본에게 정히 죽음의 선언이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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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8월14일에 무조건 항복을 하고 말았는데, 나는 16일에야 소식을 비로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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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인데 이 날도 채전에서 벌레를 잡고 있느라니까 읍에 들어갔던 중형이 가쁜 걸음으로 달려오면서 “소화(昭和)가 항복했다더라!”하는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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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가 항복이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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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반문하였다. 일본의 제위(帝位)란 유명무실이 아니었던가. 칼찬 군벌이 친천자이영국민(親天子以令國民)하고 있지 않았던가. 항복을 하면 그냥 항복이지 뒷방 영감을 내세울 멋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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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중 알고 보니 그 입술 두텁고 오랜 혈족결혼으로 인하여 치상(痴相)이 완구한 그 샌님이 직접 마이크 앞에 서서 항복을 선언하였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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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졌으니깐 우리 조선은 독립될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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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형이 묻는 말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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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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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카이로회담이나 포츠담선언을 나는 알 길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있는 대답은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연합국이 일본으로 하여금 영구히 전쟁이라는 것을 생의치 못하게 하기 위하여서는 대륙에로의 발전을 끊어버려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하여서는 대륙에로 놓여진 다리를 끊어버리지 않아서는 아니 될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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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일본의 식민지는 면하게 될 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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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다시 사흘이 지나서야 나는 조선이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독립까지 약속이 된 소식을 들었다. 여승 꿈에서 깨난 것 같았다. 그러고 그 날 밤에야 우리는 동네 사람이 모여 막걸리를 마시며 해방을 축하하는 조촐한 잔치를 배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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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建設[건설] 5호, 1945.12>
【원문】8·15 전후(前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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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5 전후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1945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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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7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