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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조선(古朝鮮)에 있어서의 정치규범(政治規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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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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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朝鮮[고조선]에 있어서의 政治規範[정치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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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奄利[엄리]· 淹滯[엄체]· 鴨綠[압록]· 樂浪[낙랑]· 列[열]· 帶[대]· 王險[왕검]· 迦葉[가섭]· 曷思[갈사]· 蓋斯[개사]· 河西良[하서량]· 鷄林[계림]· 龜旨[구지]· 國師[국사]· 九梯[구제]· 袈裟[가사] 등 古代[고대] 地名[지명]의 原始心理的[원시심리적] 解釋[해석]을 通[통]해서 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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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목] 次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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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일], 朝鮮[조선] 古文化[고문화]의 硏究[연구]는 超文獻的[초문헌적]이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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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이], 夫餘[부여]·高句麗[고구려]의 建國說話[건국설화]에 있어서의 奄利水[엄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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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삼], 鴨綠江[압록강]의 原名[원명]은 「아리」이며 字義[자의]에는 關係[관계]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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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사], 樂浪[낙랑]은 列水[열수]와 같이 原語[원어] 「아루」의 寫音[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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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오], 漢江[한강]의 古名[고명]도 「아리」이며 帶水[대수]는 그 異譯[이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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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육], 新羅[신라]의 歷史的[역사적] 聖地[성지]인 閼川[알천]과 閼英井[알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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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칠], 「아루」에는 偉大[위대]·神聖[신성]·靈[영]의 意[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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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팔], 百濟[백제]의 於羅[어라]와 新羅[신라]의 阿老[아로]와 夫餘[부여]의 阿蘭[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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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구], 아리水[수]란 大河[대하]히며 聖水[성수]임을 表示[표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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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0[일십], 慰禮城[위례성]·尉那巖城[위나암성]·月城[월성]은 다 新都[신도]이 表示[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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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一[십일], 王險[왕검]의 語原[어원]은 易[역]의 王公設險[왕공설험]에서 온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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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二[십이], 仙人王儉[선인왕검]의 宅[댁]은 神政的[신정적] 本據[본거] 의 意 [의]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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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三[십삼], 王險城[왕검성]과 新羅[신라]기(ギ)와 百濟[백제]와의 語原的[어원적] 共通[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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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四[십사], 古代[고대] 國都名[국도명]의 語原[어원]은 大槪[대개] 神域[신역] 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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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五[십오], 日本[일본]의 古語[고어]에 있어서의 「가시」 (カシ) 「구시 」(クシ) 等[등]의 語義[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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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六[십육], 朝鮮文化[조선문화]의 東亞[동아] 及[급] 人類文化史上[인류 문화 사상] 의 地位[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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藤塚先生[등총선생]으로부터 무엇인가 朝鮮問題[조선문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없을까 하는 依賴[의뢰]가 있었으나, 나는 近者[근자] 時事問題[시사 문제]에는 그리 관심을 갖지 않고 있으므로 辭讓[사양]을 하였더니, 그러면 自由[자유]로운 話材[화재]로도 좋다는 것이어서 〈古朝鮮[고조선]에 있어서의 政治規範[정치규범]〉이라는 켸켸묵은 題目[제목]으로 여러분의 高海[고해]를 받고자 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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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히 재미있는 것도 아니며, 內容[내용]도 매우 未熟[미숙]한 데다가 一[일], 二[이]의 斷片[단편]을 겉핥기로 말씀드리게 될 것이라, 여러분에게는 괴로운 일이 되겠읍니다마는, 平素[평소]에 景仰[경앙]하고 있는 諸先生[제선생] 의 磬咳[경해]에 接[접]하는 기회를 얻게 되어, 나로서는 참으로이 以上[이상] 기쁜 일이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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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일], 朝鮮[조선] 古文化[고문화]의 硏究[연구]는 超文獻的[초 문헌적]이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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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時代[시대], 所謂[소위] 原史[원사]·先史時代[선사시대]를 調査[조사] 하는 데는 대체로 (1) 遺物[유물]·遺跡[유적], (2) 神話[신화]· 傳說[전설], (3) 風俗[풍속]·習慣[습관], (4) 言語[언어]·文字[문자] 같은 방면에서 遡究推論[소구추론]을 거듭하여, 그 綜合的[종합적] 結論[결론]을 試圖[시도] 하는 것이 오늘날 通例[통례]로 된 방법이라는 것은 새삼스러이 말씀드릴 것도 없읍니다. 그리고 한 民族[민족]의 文化[문화]를 조사 하는데는, 그 특수한 성질을 定[정]하기 위해서는 人種學的[인종학적] 方法[방법]에 의하여, 그 普遍的[보편적] 意味[의미]를 밝히는 데는 人類學的[인류학적] 方法[방법]에 의하여, 이 두 가지 方法[방법]이 서로 합쳐서 비로소 어떤 文化[문화]의 內容[내용] 乃至[내지] 價値[가치]가 闡明[천명] 되며, 더우기 原始文化[원시문화]라는 것이 대체로 特殊性[특수성]보다도 普遍性[보편성] 이 많은 關係上[관계상], 보다 많이 一般的[일반적](즉 人類學的[인류학적]) 文化規範[문화규범]에 制約[제약]될 것은 이 역시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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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조선]의 古文化[고문화]의 硏究[연구]도, 方法[방법]으로서는 별다른것이 있을 까닭이 없읍니다마는, 단지 朝鮮文化[조선문화]의 特異[특이] 한 모습으로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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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무나 外來文化[외래문화]의 皮殼[피각]이 두껍고 또 굳게 되어 있기 때문에, 固有文化[고유문화] 民族生活[민족생활]의 本然[본연]의 모습이 거의 은폐되어, 쉽사리 그 감추어진 몸을 밝혀 내기 어려운 것, 이것 때문에 자칫하면 近視眼流[근시안류]로 그 正體[정체]를 逸失[일실]하기 쉬운 點[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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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社會由來[사회유래]가 멀고 文化內容[문화내용]이 복잡한 데 비 하여, 自家文化[자가 문화] 의 價値意識[가치의식]에 있어서의 錯誤[착오], 文化發達上[문화 발달상] 畸形的[기형적] 早熟[조숙] 기타 여러 가지 원인으로 古文化[고문화] 保存[보존]에 대한 노력이 留意[유의]되지 않아서 文獻的[문헌적] 徵憑[징빙] 같은 것도 매우 缺乏[결핍]되고, 民俗的[민속적]으로 남아 있는 약간의 資料[자료]는 曖昧模糊[애매모호]하며, 또 轉變晦蔽[전변 회폐] 의 極[극]을 이루어, 陶沙索金[도사색금]에 손을 쓸 수 없는 경우가 많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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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럼에도 朝鮮文化[조선문화]는 朝鮮[조선]뿐인 것이 아니며, 긴 時代[시대] 와 넓은 範圍[범위]에 亘[긍]한 가장 廣汎[광범]한 交涉[교섭]을 周圍[주위] 의 여러 지방에 가지고 있는데, 그 本幹的[본간적] 關係[관계] 를 가졌다고 생각되는 北方民族[북방민족]은 朝鮮[조선]에 멎지않는 정도로 文化[문화] 考覈[고핵]에 端緖[단서]를 남기지 않고 있는 점, 등은 學者[학자]의 特異[특이]한 노력과 細密[세밀]한 注意[주의]를 要[요] 할 點[점]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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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間[세간]에서는 朝鮮[조선]의 硏究[연구]를 가장 後代[후대]에 속 하는 歷史期[역사기]에 限[한]해서 마땅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으며, 또 그 硏究方法[연구 방법] 같은 것도 文獻本位[문헌본위]로 해서 다 된 양으로 하는 風[풍] 도 보입니다마는, 歷史期[역사기]의 朝鮮[조선]은 그 悠久[유구] 한 過去[과거]에 비하여 비교적 짧은 一期間[일기간]이며, 따라서 朝鮮[조선] 의 民族[민족]·社會[사회]·文化[문화]와 같은 것을 그 本源[본원]을 追求[추구] 하려면 歷史[역사]만 가지고는 도저히 불가능하고, 그 以上[이상] 또는 그 以外[이외]의 방법에 의하지 아니하면 안되며, 한편 朝鮮[조선]의 文獻[문헌] 은, 甚[심]하게 말한다면 朝鮮[조선]을 支那化[지나화]하기 위한 文字上[문자상] 의 노력이라고 할 것이어서, 朝鮮[조선]의 本來相[본래상]을 연구하는 데 그리 크게 標準[표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歷史至上[역사지상]· 文獻本位[문헌본위] 의 방법이 얼마나 不充分[불충분] 한가를 알 것입니다. 실상 民族[민족]의 本質[본질], 文化[문화]의 特徵[특징]을 밝히는 데 무엇보다 소중히 다루어야 할 古史神話[고사신화]· 國民傳說[국민전설] 등이 까닭없이 無視[무시]·閒却[한각]을 받거나, 固有信仰[고유신앙]· 民族宗敎[민족종교] 가 너무나 學者[학자]의 顧眄[고면]을 얻지 못 하는것 같은,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 朝鮮硏究[조선연구]에만 볼 수 있는 형편 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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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文化[조선문화]의 徵憑[징빙]은 이른바 遺物[유물]· 遺跡[유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것을 認知[인지]하는 바이며, 저 「돌멘」이나 「멘히르」 같은 것은 이 半島[반도]에 있어서 南北[남북]의 二型[이형]을 나타내어, 北系[북계] 의 것은 滿州[만주] 以北[이북]에 연락을 가지며, 南系[남계]의 것은 日本[일본]과 緬甸[면전]과 共通形式[공통형식]을 보이고 있는데, 가령 朝鮮半島[조선반도] 를 大陸[대륙]과 西洋[서양] 兩系民族[양계민족]의 接觸點[접촉점]· 交錯點[교착점]으로 하고, 또 저 Elliot Smith가 〈古代文化 의 移動〉(The Migration of Early Culture)에 서술한 바와 같이, 埃及[애급] 起原[기원] 의 太陽巨石複合文化[태양거석복합문화](Heliolithic Culture Complex)의 分布論[분포론]을 是認[시인]한다면, 그것이 南東向[남동향] 한 한 줄기와 北東向[북동향]한 한 줄기가 世界[세계]를 다 돈 뒤에 신기하게도 半島[반도]에서 다시 손을 잡은 것 같이도 보여, 人類文化[인류문화] 의 流動逕路[유동경로]에 대해서 매우 재미나는 示唆[시사]를 주는 것입니다. 또 慶州[경주]의 古墳[고분]에서는 가지가지의 明器類[명기류]가 나타나고있는데, 그 중에서도 生殖器[생식기] 또는 生殖作用[생식작용]을 표현한 土器類[토기류]에는 상당히 재미있는 推想[추상]을 일으키는 것이 있어서, 보기에 따라서는 이른바 一般[일반] 팰리시즘(Phallicism) 위에 새로운 견해를 促求[촉구]할 것 같은 계기도 포함되어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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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神話[신화] 傳說[전설]·風俗[풍속] 習慣[습관] 위에도 여러 가지 學的[학적] 興味[흥미]를 끄는 것이 있으며, 그대로 原始規範[원시규범]을 論[논] 하는 데 유력한 자료로도 되는 것이 있읍니다마는, 모두 煩瑣[번쇄] 한 것은 그만두고, 단지 言語[언어] 특히 地名[지명]에 비쳐진 原始規範[원시규범]에 就[취]하여 二[이], 三[삼]의 愚考[우고]를 말씀드리는 데 그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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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이], 夫餘[부여]·高句麗[고구려]의 建國說話[건국설화]에 있어서의 奄利水[엄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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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첫째로 神功皇后[신공황후]의 傳說[전설]에 의해서 日本[일본]에 상당히 포퓰러한 歷史的[역사적] 地名[지명]으로 되어 있는 例[예]의 아리나 레 河[하]인데, 그 아리나레의 所在[소재]와 그것에 관련된 그 語原[어원]에 대하여 古來[고래]로 허다한 異說[이설]이 나와 있는 것은 다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아니, 鴨綠江[압록강]이다, 그것으로서는 너무나 머니까 洛東江[낙동강] 일 것이다, 그래도 非實除的[비실제적]이니까 아마 慶州[경주] 의 閼川[알천]이야말로 그것에 틀림없겠다고 하는 것이 대체로 學界[학계]의 通說[통설] 이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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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神功皇后[신공황후]의 事實[사실]과 아리나레의 所在[소재] 如何[여하] 는 自然[자연]히 問題外[문제외]인 故[고]로, 그것에 관한 것은 勿論[물론] 그만 두겠읍니다마는, 단지 아리나레의 語原[어원]만은 이 議論[의론]에도 매우 중요하므로 거기에 대한 새로운 注意[주의]를 하여 주실 것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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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方民族[동방민족]에 의해서 남겨진 史料[사료] 중 가장 오래고 또 가장 信憑[신빙] 할 만한 例[예]의 永樂好太王[영락호태왕]의 碑[비]에 高句麗[고구려] 의 始祖[시조] 鄒牟[추모]의 建國談[건국담]을 傳[전]해서 말 하기를 天帝[천제] 의 子[자]인 鄒牟[추모]는 北夫餘[북부여]에서 南[남]쪽으로 나라를 찾아서 夫餘[부여]의 奄利大水[엄리대수]를 건너서 沸流谷[비류곡] 忽本岡[홀본강]에 都邑[도읍]을 세웠다고 하였읍니다. 이 奄利大水[엄리대수] 는 河川[하천](水[수])의 이름으로서 第一[제일] 최초에 역사에 보인 것인데, 古代[고대] 外國語[외국어] 漢譯[한역]에서 字音[자음]의 읽는 법의 通例[통례]에서, 이 「奄利[엄리]」는 우선 「아리」 또는 「우리」라고 읽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高句麗[고구려]는 鴨綠江[압록강]의 一谷地[일곡지]에 나라를 세운 者[자]이며, 夫餘[부여]는 松花江[송화강] 流域[유역]에 都邑[도읍]을 정한 나라이므로, 여기의 奄利大水[엄리대수] 는 古典[고전]을 정직하게 생각하여, 우선 松花江[송화강]의 上流[상류], 輝發河[휘발하] 근처를 指稱[지칭]한 것으로 보아야겠는데, 이 경우에 소위 沸流谷[비류곡] 의 沸流[비류], 〈後魏書[후위서]〉 등의 普述水[보술수]라고 보이는 것이 鴨綠江[압록강]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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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奄利大水[엄리대수]는 後[후]에는 支那[지나]에서는 〈梁書[양서] 〉, 半島[반도]에는 〈三國史記[삼국사기]〉의 高句麗本紀[고구려본기]와 같이 淹滯[엄체](혹은 淹())水[수]라고 쓰게 되었는데, 이것은 東方民族[동방 민족] 의 古代[고대] 字音[자음]에 있어서 入聲[입성]의 「t」音[음]과 「I 」音[음] 이 相通[상통]하는 慣例[관례]에서 어느 틈에 혼동해 온 것으로 생각 됩니다. 奄利[엄리] 즉 「아(우)리」와 淹滯[엄체] 즉 「우다이」(혹은 우지) 는 그것이 글자의 변화인지, 音[음]이 訛[와]한 것인지는 어찌 갔든지, 그 根源[근원]은 「아리」 혹은 「우리」에 歸着[귀착]할 것이라고 생각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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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우다이」의 이름은 高句麗[고구려]의 奄利[엄리]보다도 도리어 오랜 出自[출자]를 가진 것으로서, 後漢[후한]의 王充[왕충]의 〈論衡[논형] 〉(古驗篇[고험편])에 北夷橐離國[북이탁리국]에서 하늘의 아들인 東明[동명] 이 南方[남방]의 掩()水[엄체수]를 건너서 夫餘[부여]의 나라를 세웠다고 하였으며, 이것은 裴松之[배송지]의 〈三國志註[삼국지주] 〉(東夷傳 [동이전] 夫餘條[부여조])에도 〈魏略[위략]〉에 인용한 舊志[구지]의 文[문]이라는 것을 다시 인용하여 거의 같은 記事[기사]를 싣고 있는데, 다만 掩() 水[엄체수] 를 施掩水[시엄수]라고 한 것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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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掩()水[엄체수]는 文獻[문헌]에 따라서 그 字形[자형]이 여러 가지로 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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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略[위략] 〉에는 施掩水[시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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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漢書[후한서] 〉에는 〈論衡[논형]〉과 한가지로 掩() 水[엄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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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書[양서] 〉 및 〈北史[북사]〉에는 掩() 水[엄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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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書[수서] 〉에는 一字[일자]를 略[약]해서 掩水[엄수] 로 되어 있으나, 그것은 大略[대략] 字形[자형]의 訛傳[와전]에서 생긴 錯誤[착오] 인 것이 분명하며, 그 原形[원형]은 한가지 本國[본국]의 古音[고음]을 전한다고 보는 永樂好太王碑[영락호태왕비]의 文[문]에 準[준] 하여 마땅할 것이며, 곧 「아리」로 읽는 것이 옳다고 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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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略[위략]〉의 施掩水[시엄수]는 좀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마는, 생각 컨대 이것은 아리→ウテ(淹滯[엄체)→淹虒[엄사](시·데이·지 三音[삼음]) →淹滯[엄체](시) →掩施[엄시] 로 轉變[전변]하여 그것이 또 轉倒[전도] 해서 施掩[시엄]으로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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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後魏書[후위서]〉에는 「奄利[엄리]」라는 이름이 보이지 않고 단지 「一大水[일대수] 」라고 되어 있으며, 〈增補文獻備考[증보문헌비고] 〉(輿地考[여지고] 二四[이사], 臣按[신안])에는 「淹褫水[엄치수]」라고도 쓴 例[예] 가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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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上[이상]은 要[요]컨대 하나의 傳說[전설], 아니 神話[신화]이므로 그 個個[개개] 의 사실은 毋論[무론] 穿鑿[천착]을 要[요]치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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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神話[신화] 傳說[전설] 중에 나오는 것도 地名[지명]에는 대부분의 경우에 實際地理[실제지리]의 반영이 있으며, 또 그 명칭에는 그것이 만들어진 時代[시대]의 어떠한 觀念[관념]이 들어 있을 터이므로, 夫餘建國說話[부여건국설화]· 高句麗建國說話[고구려건국설화]에 다같이 一國[일국] 의대 표적 水名[수명]으로서 「아리」라는 명칭이 나타나고, 더우기 그것이 實際地理[실제지리] 로서는 松花江[송화강]의 本支流[본지류]에 해당하는 것만을 주의하면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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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삼], 鴨綠江[압록강]의 原名[원명]은 「아리」이며 字義[자의]에는 關係[관계] 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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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서 歷史期[역사기]에 들어서 보면, 〈三國志[삼국지]〉에도 記述[기술] 되어 있는 것 같이, 高句麗[고구려]라는 나라는 大水[대수]에 의하여 이루어진 나라인데, 이른바 大水[대수]가 鴨綠江[압록강]에 다름 없는 것은 설명을 要[요]치 않을 것입니다. 이제 鴨綠[압록]이라는 이름이 이미 唐[당]에서부터 나타나서, 〈新唐書[신당서]〉에는 水色[수색]이 鴨頭[압두] 같으니까 鴨綠[압록]이라고 한다고 설명까지 붙이고 있읍니다. 유명한 李白[이백]의 詩[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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遙看漢水鴨頭綠[요간한수압두록] 恰似葡萄初發醅[흡사포도초발배]라고도 있으며, 또 逵遊[규유]의 詩[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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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篙湖水鴨頭綠[일고호수압두록] 千樹桃花人面紅[천수도화인면홍]이라고도 있는 바와 같이, 要[요]컨대 옛부터 물 빛이 초록빛인 것을 잘 형용 하는 詩語[시어]로서 鴨頭[압두]와 같은 綠波[녹파]가 반드시 鴨綠江[압록강]에 限[한]한 것도 아니니까 이 語原[어원] 說明[설명]은 원래 믿을 만한 것은 아닙니다. 대체로 鴨綠[압록]의 音[음]에 가까운 어떤 原名[원명]을 아마 唐[당]의 東征軍[동정군]에 끼어 온 詩人[시인] 氣質[기질]이 있는 記述者[기술자] 쯤이 鴨綠[압록]이라는 字面[자면]을 쓰기 시작하여 거기서 例[예] 의 望文生義式[망문생의식]의 설명이 나온 것에 틀림없으리라고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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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鴨綠江[압록강]은 옛날에는 浿水[패수]라고 稱[칭]하고, 〈漢書[한서] 〉 등에는 本流[본류]는 馬貲水[마자수], 支流[지류]는 鹽難水[염난수]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데, 唐代[당대], 高句麗[고구려]가 鴨綠江[압록강]에 의지해서 大國[대국]으로 된 무렵에는 이것에 鴨綠[압록]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은 〈唐書[당서]〉에 의해서 짐작할 수 있읍니다. 그러면 이 鴨綠[압록] 의 原語[원어]는 무엇이었을까 하면, 다름 아닌 「아루」가 그것이라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譯字寫音[역자사음]의 例[예]로써도 용이하게 살필 수 있는 바이며, 歷史期[역사기]의 高句麗人[고구려인]도 國中[국중] 의 大水[대수] ── 代表的[대표적] 河流[하류]를 역시 「아루」라는 이름으로 부른 것이며, 한편으로 말하면 「아루」라는 이름이 이제 확연히 鴨綠江[압록강] 의 것으로 된 것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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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지금의 漢字[한자]의 읽는 법에 의하여 鴨綠[압록]의 語源[어원]을 揣摩[췌마]해서 滿洲語[만주어] yalu, 또는 anargi라는 것과 동일한 古語[고어] 를 飜譯[번역]한 것이라고 주장한 일도 있으나, 이것은 大水[대수]에 「아루」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는 傳統[전통] 事實[사실]을 모르는 억측이며, 하등의 주의할 가치가 없는 說[설]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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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文獻的[문헌적]으로는 상당히 後[후]의 일이나, 鴨綠江[압록강]에는 靉江(애강)이라는 一名[일명]이 보이고, 그 沿岸[연안]에 있는 義州[의주](慣用音[관용음] 의주 Euichu)라는 郡號[군호] 등도 이러한 데 語源[어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推察[추찰]되기도 합니다마는, 이 靉江[애강] 의 靉[애]도 實[실]은 久遠[구원]한 由來[유래]가 있는 것이며, 그것이 즉 「아루」가 訛[와]한 語形[어형]일 것이라고 나는 想像[상상]하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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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사], 樂浪[낙랑]은 列水[열수]와 같이 原語[원어] 「아루」의 寫音[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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半島[반도] 住民[주민]의 言語統覺[언어통각]에 있어서 大水[대수]와 「아루 」라는 이름이 필연적으로 어떤 契機[계기]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마땅히 옛부터 半島[반도]에 나타난 歷史的[역사적] 大水[대수]에 대하여 더 한층 吟味[음미]되어야 할 것인데, 우선 제일로 半島[반도]의 水王[수왕]이라고 할 大同江[대동강]은 어떠합니까. 浿水[패수]라는 이름이 鴨綠江[압록강] 과 같이 大同江[대동강]에 붙여지고, 더우기 浿水[패수] 라면 주로 大同江[대동강]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있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바인데, 그러면 大同江[대동강]과 「아루」에 대한 關連[관련] 은 어떠할까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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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同江[대동강] 流域[유역]이 옛부터 漢民族[한민족]에 의하여 樂浪地方[낙랑지방]이라고 불리워지고, 그 主都[주도]에 朝鮮[조선] 혹은 王險[왕검]이라는 이름이 붙고, 그 대표적 水道[수도]가 옛부터 列水[열수]라고 불리워 진 것은 近者[근자]에 漢代[한대]의 金石文[금석문]과 〈漢書[한서] 〉 의 記載[기재]를 照合[조합]하여 諸大家[제대가]가 論證[논증]한 바와 같습니다. 그리고 列水[열수]라는 것은 分黎山[분려산]에서 나와서 西[서]쪽 黏蟬[점선]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는 것이 역시 〈漢書[한서]〉에 적혀 있 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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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樂浪[낙랑]이라든가, 列水[열수]라든가 乃至[내지] 朝鮮[조선]· 王險[왕검] 등에 대하여 아직 밝혀지지 않은 중요한 問題[문제]가 얼마든지 있어서, 그 字音[자음] 乃至[내지] 語源[어원] 같은 것 또는 딴 事實[사실]에 대한 相互關係[상호관계] 같은 것도 그 일부임을 보는 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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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것을 論[논]하는 關係上[관계상] 地名[지명]으로서의 이것들의 語形[어형]을 대강 吟味[음미]하고자 하는 바인데, 우선 나는 허다한 古史上[고사상] 의 名句[명구]와 그들의 寫音上[사음상]의 通例[통례]를 조사해 본 後[후]에, 根本法則[근본법칙]으로서 支那古史[지나고사]에 나타나는 外國[외국] 의 固有名詞[고유명사]는 어떤 특수한 이유가 있는 경우 外[외]에는 대체로 土地[토지]의 舊稱原語[구칭원어]를 寫音的[사음적]으로 나타내고있다는 것, 그 寫音[사음]은 대부분의 경우, 아니 가능한 범위에서 音[음]과 아울러 義[의]를 나타낼 수 있는, 말하자면 하나의 譯語[역어]로 音義[음의] 두 가지가 다 詮表[전표]되는 글자를 붙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의 것으로는 English에 의하여 英吉利[영길리]라는 譯字[역자] 가 생기고, France에 의하여 佛蘭西[불란서]라는 譯字[역자] 가 생긴 것과 같은 것으로서 아는 것을 말하는 것 같으며, 또 뒤의 例[예]로는 Deus 를 「天主[천주]」로 譯[역]하고, Padre에는 「伴天禮[반천례] 」「伴天連[반천련] 」이라는 글자를 充用[충용]한 것과 같은 것인데, 크게 奇異[기이] 한 일도 아니지마는, 世上[세상]에는 많이 古代[고대]의 漢籍[한적] 에나 오는 外國語[외국어]의 譯[역]에 대해서는 묘하게 빗나가고, 뒤틀리고, 혹은 自己[자기]에게 좋도록 제멋대로의 해석을 하는 사람도 있으며, 이 때문에 상당히 뜻밖의 混亂紛糾[혼란분규]가 생기는 일도 있기에 한 말씀 드리는 바입니다. 그러나 寫音[사음]의 실제에는 略稱[약칭]도 있고 雅稱[아칭] 도 있을 것이며, 또 文籍[문적]에 실린 뒤에는 文字[문자]의 轉化[전화]에 의한 많은 變易[변역]이 行[행]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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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보는 바로는, 朝鮮[조선]·王儉[왕검]·樂浪[낙랑]·列水[열수] 등은 대체로 그 時代[시대] 그 住民[주민]의 原語[원어]에 의한 寫音[사음]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여기서는 번거로운 考證[고증]을 생략하고, 내가 推定[추정] 한 결과만을 말씀드린다면, 우선 列水[열수]라는 것이 곧 原語[원어] 아루의 寫音[사음]인 것입니다. 列[열]과 아루와는 얼찐 보아 風馬牛[풍마우] 의 觀[관]이 있지마는, 아시는 바와 같이 半島民族[반도민족]에는, 아니 우랄 알타이語族[어족] 중 東部[동부]의 本來語 [본래어]에는 R의 音[음] 이 낱말의 처음에 오지 않는 것이 거의 法則[법칙]으로 되어 있으므로, 列水[열수] 를 土語[토어]로 解釋[해석]하려면 우선 이 點[점]을 밝혀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語頭[어두]에 오는 「列[열]」字[자]를 이쪽 사람이 읽어서 열(yöl)로 들리게 하는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는 것이므로, 이 點[점]만으로는 列[열]을 아루로 보는 데에 아무런 不合理[불합리]를 발견 할 수 없으나, 아루라는 音[음]을 적는 데 있어서 漢字[한자]로 얼마든지 방법이 있겠는데, 굳이 不自然[부자연]한 列字[열자]를 取[취]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를 밝히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대체로 두 가지 當代[당대] 支那人[지나인]의 寫音心理[사음심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 되는데, 그 하나는 支那人[지나인] ── 특히 古代[고대]의 支那人[지나인] 은, 外國[외국]의 固有名詞[고유명사]를 번역할 경우에 아무리 긴 文句[문구]라 하더라도 되도록 簡短[간단]한 語形[어형]으로 줄여서, 될 수 있으면한 字[자]로 그쳐 버리려고 하는 習性[습성]이 있어서, 특히 水名[수명] 같은 것은 거의 절대로 一字主義[일자주의]를 取[취]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 입니다. 이것은 〈山海經[산해경]〉〈水經[수경]〉 등을 펼쳐 보면, 거의 無理[무리]에 가까운 劃一的[획일적]인 一字主義[일자주의]의 노력이 잘 나타나 보입니다. 또 하나는, 아루를 빨리 읽으면 첫소리만으로 읽는 列字[열자] 의 려(러) ryu 또는 rö 와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곧 아루를 한 字[자]로 하여, 또한 가벼운 發音[발음]의 아音[음]을 감추고 루를 강하게 나타낼 때에 列字[열자]가 채택된 것이라 짐작됩니다.  리(ari) 를 al 로 줄여서 「l」의尾聲[미성]을 넣어 한 字[자]로 나타내는 것이 支那[지나] 音韻上[음운상] 매우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면 (a)를 생략하고 리(ri) 를 取[취]하여 列字[열자]로 한 사정이 엿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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半島[반도]의 記錄[기록]에는 또 平壤[평양]을 柳京[유경]이라고도 했었다고 하여, 例[예]의 「柳[유]」字[자]에 어거지로 끌어 댄 해석을 붙여 傳[전] 하고 있으나, 이 柳[유]는 원래 列字[열자]의 別譯[별역]으로, 列[열]을 러(rö)로 읽은 데 대한 參考[참고]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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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代[주대]의 文獻[문헌]으로 짐작되는 〈逸周書[일주서]〉의 王會篇[왕회편]에, 東方民族[동방민족]으로 나오는 「良夷[양이]」와 湯四方獻令篇[탕사방헌령편]에 보이는, 역시 正東[정동]의 遠民[원민]인 「伊盧[이로] 」는다 (al)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것에 의해 「」(al)이란 명칭이 어떻게 오랜가를 아는 동시에, 그 하나는 俱稱[구칭]인 「伊盧[이로] 」, 하나는 略稱[약칭]인 「良[량]」으로 보인 것이 재미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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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이러한 까닭으로 해서, 列水[열수]는 大同江[대동강]의 경우에 있 어서의 아루의 寫音[사음]임을 잠시 認定[인정]하고, 눈을 樂浪[낙랑]으로 돌려 보기로 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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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浪[낙랑]은 日本語[일본어]로 이미 ラクロウ(라꾸로오)라 읽고, 또 西洋人[서양인] 은 後世[후세]의 漢字音[한자음]에 의해 lolang이라 읽는 바 와같이, 樂字[낙자]의 악·락·요·료오·교오(고오)·로구·로우 등 여럿 있는 音[음] 중에서 「락」이라는 音[음]이 선택되어 樂浪[낙랑]의 標準讀法[표준독법] 이 되어 있는데, 이것은 〈漢書[한서]〉 地理志[지리지]의 注[주]에 「師古曰[사고왈], 樂浪[낙랑], 音洛狼[음낙랑]」이라고 한 것이 있으니까 우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漢[한]·魏代[위대]의 古典學者[고전학자] 의 音訓[음훈]이라는 것은 역시 一應[일응] 그럴싸 한 것 이지마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우선 당시의 또는 古來[고래]의 慣用音[관용음] 이 이러했다 하는 정도로 그치는 것은 각종의 例[예]로써 推知[추지] 할수 있는 것입니다. 당장 〈詩[시]〉 陣風[진풍]의 「可以樂飢[가이낙기]」를 毛音[모음]에는 洛[락], 鄭音[정음]에는 療[료]라고 한 것 같은 것이 그런 것입니다. 〈漢書[한서]〉의 師古音[사고음]도 마찬가지로서 先儒[선유]도 이것을 의심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이, 同一[동일]한 祁連山[기련산]에 대하여 〈武帝紀[무제기]〉에는 「祁音巨夷反[기음거이반]」이라 고하고, 〈藿去病傳[곽거병전]〉에는 「祁音士夷反[기음사이반]」이라고 한 것, 同一[동일]한 荼字[도자]에 대하여 〈王子侯表[왕자후표]〉 上[상] 의 荼陵節侯訴[도릉절후소] 의 荼[도]에는 「音塗[음도]」라고 註[주] 하고, 〈地理志[지리지] 〉 下[하]의 長沙國[장사국] 荼陵[도릉]의 荼[도]에는 「音弋奢反[음익사반], 又音丈加反[우음장가반]」이라고 註[주]한 것 같은것은, 모두 그 不確實[불확실]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例[예] 는이 외에도 적지 않으므로, 나는 顏師古[안사고]의 音[음]에 절대한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또 R音[음]이 語頭[어두]에 오지 않는다는법칙으로 하여도 「락」의 音[음]은 원래 모두 顫動[전동]의 音[음]을 피하여 오히려 がク· ゲウ(吳音[오음]으로는 がウ)에 그 訓[훈]을 求[구]하고, 뿐만 아니라 그 主音[주음] 인 がク로써 그 震音[진음]이라고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樂[락] 의 朝鮮[조선] 慣用音[관용음]의 악 ak(원래는 악 gak)은 尾音[미음]을 빼고 읽는 법에 의한 아 a 로 定[정]하여 보통 樂浪[낙랑]을 락랑(ラクロウ) 이라고 읽는 그 古音[고음]은, 대체로 리냥(arinyang), 줄여서  낭(alang) 의 寫音[사음]일 것으로 推定[추정]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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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면의 專門家[전문가]는 잘 아시겠지마는, 半島[반도](北[북]에 치우친 곳)의 古語[고어]에 大河流[대하류]에 냥(nyang, 平安道[평안도] 發音[발음]으로는 「낭」nang, 京畿道[경기도] 사투리로는 「양」yang) 이라는 말이 있는 것은, 〈三國史記[삼국사기]〉 地理志[지리지] 地名[지명] 중에 많은 例[예]가 남아 있는 바입니다. 일찌기 高句麗[고구려] 版圖[판도] 이었던 곳의,(驪[려])(羅[라])(麗[려])(鮮[선]) 骨衣奴[골의노] 荒壤[황양] 豊壤[풍양](入[입] 楊州[양주]) 仍伐奴[잉벌노] 穀壤[곡양] 衿州[금주] 衿州[금주](後入[후입] 果川[과천]) 仍斤內[잉근내] 槐壤[괴양] 槐州[괴주] 槐山[괴산] 今勿奴[금물노] 黑壤[흑양] 鎭州[진주] 鎭川[진천] 休壤一作金惱金壤[금양] 金壤後通州通川[통천][휴양일작금뇌] 斧壤一云於斯乃[금양후통주] 廣平[광평] 平康[평강] 平康[평강][부양일운어사내] 등이 그것이었으며, 또 지금 京城[경성]에 漢陽[한양](Han - yang)의 이름이 있는 것은 漢[한](Han)의 냥(nyang)에 沿[연]한 곳이라는 뜻이며, 春川[춘천]에 走壤[주양]이라는 이름이 있는 것은 走[주]의 壤[양] 곧 後[후] 의 昭陽江[소양강]에 沿[연]하고 있으므로 얻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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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浪[낙랑]의 랑(ロウ)의 浪[랑](lang, 平安道[평안도] 發音[발음]으로 「낭」nang)은 곧 豊壤[풍양]·黑壤[흑양]·昭陽[소양]·漢陽[한양] 등의 壤[양]· 陽[양](朝鮮[조선] 의 慣用音[관용음]이며 音[음]이 相通[상통] 함)에 해당하는 말이니, 내(nai)의 類語[유어]로서 큰 河流[하류]를 意味[의미]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列水[열수]의 「시노늄」, 또는 그것에서 變化[변화] 된 一譯形[일역형]에 不過[불과]한 것이라고 인정되는 것입니다. 지금 大同江[대동강]의 下流[하류], 鎭南浦港[진남포항]이 있는 곳은 옛날에는 億兩機[억량기](억냥틀 Ökryang - teul)라고 하던 곳인데, 나는 億兩[억량]에 옛 樂浪[낙랑](낭 àlang)의 片鱗[편린]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京城[경성]에서는 漢陽[한양]이라는 古名[고명]이 漢陽洞[한양동]에 남아 있으며, 三角山[삼각산]의 古名[고명]인 負兒岳[부아악](Pu a ak) 이 北岳[북악] 혹은 白岳[백악](둘 다 Pu - ak 이라고 읽는다)이라는 形[형]으로 景福宮[경복궁]의 뒷山[산]에는 남아 있으며, 漢江[한강]에 있어서 關彌[관미](カミ, 閣彌[각미])라는 古名[고명]의 殘影[잔영]이 衿川[금천]· 金浦[김포]에 남아 있는 바와 같이, 一都會[일도회]의 古名[고명]이 한 洞里[동리] 이름에, 一河流[일하류]의 古名[고명]이 一津渡[일진도] 이름에 殘骸[잔해] 를 남기고 있는 것은 內外[내외]를 통해서 흔히 볼 수 있는 現象[현상] 이니, 마치 古歌謠[고가요]가 俗謠[속요] 중에, 古語[고어]가 方言[방언] 중에 生殘物[생잔물](survivals)로 되어 있는 것과 같은 것인데, 鎭南浦[진남포] 의 億兩[억량]은 곧 樂浪[낙랑](악랑, ラクロウ)의 古音[고음] 바로 그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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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水[열수] 및 樂浪[낙랑]에 대한 이 見解[견해]는 너무나 종래의 說[설] 과 거리가 있으며, 또 新說[신설]은 자칫하면 귀에 서투르게 들리는 법이어서, 實[실]은 더 상세한 途程[도정]을 말씀드릴 필요가 있읍니다마는, 이 것만 가지고 길게 이야기할 수도 없으니까, 列水[열수]와 樂浪[낙랑]의 古音[고음] 이 리양·낭(ariyang·àlang)이라고, 읽어서 不可[불가]함이 없는 것을 우선 기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하나 지금의 平壤[평양], 옛날의 樂浪[낙랑]을 秦漢代[진한대]의 古書[고서]로 생각 되는 〈山海經[산해경]〉에 列陽[열양](Pyöryang·Yöryang)이라고도 하여 온 것은 나의 이 견해에 매우 유력한 一證左[일증좌]를 제공하고 있음을 덧붙여서 말씀드려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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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오], 漢江[한강]의 古名[고명]도 「아리」이며 帶水[대수]는 그 異譯 [이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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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同江[대동강] 다음으로 半島[반도]에서 歷史的[역사적] 大河川[대하천] 은 무어라 하여도 半島[반도]를 南北[남북] 二部[이부]로 나누어 놓고 있는 境界[경계] 인 漢江[한강]입니다. 漢江[한강]에 漢[한]이라는 명칭이 어느 때쯤에서부터 무슨 까닭으로 붙여진 것인가는 且置[차치]하고, 이 漢江[한강] 이 古代[고대]에는 역시 아리의 河[하]라고 불리워진 것은 무엇보다 먼저 例[예]의 好太王碑[호태왕비]에 의해서 確認[확인]되고 있읍니다. 그 好太王[호태왕] 六[육]년 丙申[병신]의 百殘[백잔](濟[제])征伐[정벌]을 기록한 대목에, 王[왕]이 百濟[백제]의 國城[국성]까지 이르렀는데, 敢[감] 히 抵抗[저항] 하여서 王[왕]은 赫怒[혁노]하여 「阿利水[아리수]」를 건너서 그 城[성]에 肉迫[육박]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때 百濟[백제]의 國都[국도] 는 漢城[한성] 곧 지금의 廣州[광주]이었으니까, 好太王[호태왕]이 건넌 阿利水[아리수] 가 漢水[한수]일 것은 贅言[췌언]을 要[요]치 않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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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本紀[백제본기]〉 蓋鹵王[개로왕] 二一年條[이일년조]에, 國人[국인]을 發[발]하여 國都[국도]와 그 부근에 크게 土木工事[토목공사]를 일으킨것을 기술한 중에, 大石[대석]을 郁里河[욱리하]에서 取[취]하였다고 있는데, 이 郁里[욱리] ── 우리도 아마 阿利[아리]의 別譯[벌역]일 것은 先輩[선배] 가 이미 推論[추론]한 바와 같습니다. 이 阿利[아리](郁里[욱리]) 가 漢江[한강] 全流[전류]의 명칭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마는, 적어도 百濟[백제] 의 國都[국도] 앞에서는 阿利[아리]라고 부른 것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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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하여 百濟[백제]의 國都[국도]와 阿利水[아리수]를 結付[결부] 시켜 보면, 百濟[백제]의 國都[국도]를 옛날에는 慰禮城[위례성]이라고 했다는 古傳[고전]이 생각나는데, 이것은 後[후]에 釋明[석명]될 것입니다. 다만 漢江[한강]을 支那[지나]의 古文獻[고문헌]에서는 帶水[대수]라고 했는데, 이 孤立[고립]된 語形[어형] 같은 帶[대]라고 하는 말도, 나의 견해로는 實[실]은 아리 혹은 우리의 音韻變化[음운변화]에 의한 「우대 」(夫餘[부여]에 있어서의 奄利[엄리] 對[대] 淹滯[엄체]와 같은)의 「대 」이며, 帶水[대수] 도 결국은 우리水[수]의 支那流[지나류]의 一字表現[일자표현]에 不外[불외] 한 것입니다. 「아리」를 列[열]이라고 한 것이나 帶[대]라고 한 것이나 音韻[음운]의 法則[법칙]에서는 잘 首肯[수긍]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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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漢江[한강]의 一源[일원]이 五台山[오태산], 朝鮮[조선] 發音[발음]으로 오대(Otai)山[산]에서 나와서, 그 源頭[원두]를 지금도 于筒水[우통수]라고 하는 것을 아울러 생각할 필요가 있읍니다. 要[요]컨대 漢江[한강] 도 普通[보통] 아닌 履歷[이력]이 붙어 있어, 아리라는 名稱[명칭]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의심할 바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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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육], 新羅[신라]의 歷史的[역사적] 聖地[성지]인 閼川[알천]과 閼英井[알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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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江[한강]에서 南[남]으로 가면 錦江[금강]이나 洛東江[낙동강]도 상당히 큰 河川[하천]입니다마는, 그 歷史的[역사적] 地位[지위]는 비교적 화려하지 못하고, 또 文獻的[문헌적] 生命[생명]이 비교적 짧아서, 여기 관한 論證[논증] 은 지금 잠시 그만두기로 하고, 南韓文化[남한문화]의 一淵源地[일연원지] 인 新羅[신라]의 서울에 대하여 一考[일고]를 하여 본다면, 우선 新羅[신라] 의 國都[국도]를 襟帶[금대]하여 흐르는 大動脈[대동맥]에 閼川[알천], 朝鮮發音[조선발음]으로 내(àlnai)가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이 閼川[알천] 은 〈三國史記[삼국사기]〉나 〈三國遺事[삼국유사]〉에 보이 는바와 같이, 六部[육부]의 筆頭地[필두지]이며 國家[국가]의 發祥地[발상지]이기도 하여, 新羅[신라] 一代[일대]의 國家的[국가적] 聖地[성지]로서 民族信仰上[민족신앙상] 의 갖가지 일이 있었던 곳입니다. 또 新羅[신라]의 古傳[고전]에 의하면, 그 始祖[시조] 赫居世[혁거세]가 迎立[영립]되어 居西干[거서간](スメラギ ── 갸륵한 이)으로 된 聖地[성지]가 이 「 내 」(アルナイ) 인 것처럼 赫居世[혁거세]의 妃[비]가 태어난 곳은 娥利英[아리영](閼英[알영] Aryöng)의 井[정]이며, 이것으로 인하여 그 이름도  령(Ary ö ng) 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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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칠], 「아루」에는 偉大[위대]·神聖[신성]·靈[영]의 意[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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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上[이상] 歷史[역사]에 徵考[징고]되는 바에 의하더라도, 半島[반도] 의 古代[고대]에는 一地域[일지역] 一地域[일지역]에 있어서의 대표적 河川[하천]에 모두 「아리」 乃至[내지] 그것에 類似[유사]한 이름이 붙여져 있는것을 알 수 있읍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국가의 動脈[동맥]이고, 國都[국도] 의 守護者[수호자]인 큰 河川[하천]에 限[한]해서 「아리」라는 이름이 꼭 붙어 다니는 것은 어떠한 이유인지, 偶然[우연]이라고 해서는 너무나 奇異[기이] 한 一致[일치]이므로, 여기에는 어떤 必然的[필연적]인 이유가 伏在[복재] 함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語源[어원]에 端緖[단서] 를 求[구]해 보면 朝鮮[조선]을 中心[중심]으로 東方[동방]의 古代語[고대어]에  (ar)이라는 音[음]이 偉大[위대]· 尊勝[존승]· 神聖[신성]· 靈[영]을 뜻함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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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語[조선어]로 굵은 체를 어레미(얼레미·얼멍이 öre - mi·ölmeng -i)라고 하고, 굵은 빗을 어레빗(얼레빗 ölepit)이라고 하는 것은 「얼 」(ö l· ö r)에 「麁大[추대]하다」「크다」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며, 種子[종자] 가 커서 스스로 껍질을 뚫고 땅에 떨어지는 殼斗科植物[각두과식물] 의 果實[과실]을 아람(aram)이라고 하는 것도 알(ar)에 肥大[비대]의 뜻이 있기 때문이며, 물건이 充實[충실]한 모습을 올지· 올 차(olchi· olcha)라고 하며, 올(ol)도 種粒[종립]을 비롯하여 모든 物體[물체]의 主[주]가 되는 部分[부분]· 核心[핵심] 같은 곳을 알(al, 알이·알이·알짬)이라고 하며, 사람의 精神氣魄[정신기백]을 다 얼(öl)이라고 하며, 특히 膽[담]을 열(y ö l)이라고도 하는 것은, 생각컨대 같은 語源[어원]에서 나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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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올라가는 것을 「오르」(or)라고 하며, 위에 얹는 것을 언(ö n) 이라 고하는 것은, 이 語源[어원]에 尊勝[존승]의 뜻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 됩니다. 또 物體[물체]가 극도로 큰 것, 또 훌륭한 것을 「으리 으리 」(euri)라고 形容[형용]하며, 物體[물체]가 高大[고대]한 것을 「우 람 스럽 」(uram)이라고 形容[형용]하며, 音[음]이 洪大[홍대]한 것을 「우렁차」(uröng cha)라고 形容[형용]하는 것 등, 또 사람이나 일이 粗大於慢[조대어만] 한 것을 「얼렁얼렁」「얼쭘얼쭘」(ölöng·ö - lchum)이라고 하며, 大略[대략]· 대충을 뜻하는 副詞[부사]에 얼주(öl - chu)라는 말이 있는 것은 모두  (àl·öl)에 麁大[추대]의 뜻이 있는 것을 받은 것입니다. 또 큰· 아름다운· 훌륭한 狀態[상태]의 모든 意表[의표]에 나가는 最高級[최고급]의 形容[형용]을 「엉, 엄청나」(öngdung, öm - chöng)라고 하는 것도 같은 語 하 源[어원] 의 流[류]를 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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偉大[위대]한 것은 尊貴[존귀]한 것입니다. 大[대]를 意味[의미]하는 (ö l· al 은 一轉[일전]해서 어(öràn)으로 되어 尊長[존장]을 의미합니다. 이 어(öràn)이 지금에야 말로 단순한 尊長[존장]의 意[의]에 그치고 있으나, 그 類語[유어]가 옛날에는 王[왕] 또는 王族[왕족]의 稱號[칭호]로 使用[사용] 된 것은 〈周書[주서]〉의 百濟傳[백제전]에 王[왕]을 「於羅瑕[어라하] 」라고 하며, 妃[비]를 「於陸[어륙]」이라고 하였다 함과, 〈日本書紀[일본서기] 〉에도 大后[대후]·王后[왕후]에 コムヲル·コニオル라고 訓[훈] 하고, 夫人[부인]에 オリケ·オリク 등으로 訓[훈]한 것으로써 알 수 있 읍니다. 〈書紀[서기]〉에 보이는 意富加羅[의부가라] 王子[왕자]의 美稱[미칭] 인 阿羅斯等[아라사등](또는 阿利叱智[아리질지])의 アラ·アリ도 百濟[백제] 의 オリ의 類語[유어]일 것입니다. 語尾[어미]는 어떻든간에, (à r)이라는 語幹[어간]에 王[왕]의 表象[표상]으로 될 意味[의미]가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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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팔], 百濟[백제]의 於羅[어라]와 新羅[신라]의 阿老[아로]와 夫餘[부여] 의 阿蘭[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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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王[왕]을 옛날에는 於羅[어라]( àr·ör)이라고 부른 것은, 또 하나 우리에게 재미있는 聯想[연상]을 줍니다. 그것은 古代[고대]의 君主[군주] 는 많은 경우 聖者[성자]로 되어 神人[신인]이라고 하였으므로, 王[왕]에 대한 (àr)의 稱呼[칭호]는 바로 神聖[신성]의 뜻을 兼[겸] 하는것, 또는 처음부터 神聖[신성]의 뜻을 가진 것으로 되어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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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三國史記[삼국사기]〉의 祭祀志[제사지]에 의하며, 第二代[제이대] 南解王[남해왕] 때에 비로소 始祖[시조]의 神宮[신궁]을 柰乙[내을](ナル)이라는 곳에 세워서, 王[왕]의 누님이 되는 阿老[아로]로 하영금 祭祀[제사] 지내게 하였다고 했는데, 이 시대의 〈三國史記[삼국사기]〉는 元來[원래] 實錄[실록]에 의한 信文[신문]은 아니고, 막연히 國初[국초]부터 柰乙[내을]에 神宮[신궁]이 있어서 王妹[왕매]인 阿老[아로]가 그 祭祀[제사] 를 主宰[주재]한 것을 전하는 것이 이 古傳[고전]의 眞意[진의]일 것이므로, 이 阿老[아로]라는 것은 많은 딴 類例[유례]에 의하여 알려지는 바 와같이, 역시 個人[개인]의 專名[전명]이 아니고 實[실]은 王妹[왕매]로서 神宮[신궁]에 奉祀[봉사]하는 神職[신직]의 役名[역명]이었다는 것을 잘 알수 있읍니다(앞서 말씀드린 國初[국초]의 王妃[왕비]가 閼英[알영] ary ö ng이라고 한 것을 여기에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은 무론입니다). 日本[일본]으로 말한다면 伊勢[이세]의 大神宮[대신궁]에 있어서의 イツキノミヤ라고 한 것과 같을 것이니, 神社[신사]의 聖職者[성직자]를 「아루」라고 부른 것으로서 「아루」에 神聖[신성]·靈[령]의 뜻이 포함되어 있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東方民族[동방민족]의 宗敎[종교]에서 거울이 어떻게 神聖[신성] 한 것인가 는 日本[일본]에서 이것이 자주 神體[신체]로 되고, 지금의 朝鮮[조선]에서도 巫[무]의 神聖[신성] 表象[표상]으로서 무엇보다도 거울이 소중히 여겨지고 있는 것으로서도 이것을 알 수 있는데, 朝鮮[조선]에서 銅鏡[동경]을 어루쇠(öru - soi) 곧 オル의 쇠(金)라고 하는 것은, 日本語[일본어] 의 カガミ가 역시 神物[신물]의 뜻을 가지고 있음과 비교해 보아, 역시 神聖[신성] 한 靈的[영적]인 金屬物[금속물]의 뜻을 나타낸 것으로 생각 됩니다. 또 巫覡[무격] 등이 神事時[신사시]에 神[신]을 맞으며 혹은 반기는 歌頌[가송]에 神[신]을 부르는 말로서 노래마다 처음에 「엘하 만소, 엘하 大神[대신]이야 」라고 하는데, 大神[대신]의 德[덕]을 讃美[찬미]하는 말인 「엘하」도 우선 神聖[신성]·靈異[영이]라는 뜻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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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한 이 語原觀[어원관]은 또 하나의 증거로써 확인할 수가 있 읍니다. 그것은 夫餘[부여]의 古傳說[고전설]에 北夫餘王[북부여왕] 解夫婁[해부루] 가 天帝[천제]의 子[자]인 解慕漱[해모수]에게 나라를 물려주는 事情[사정]을 말한 대목에, 國相[국상]인 阿蘭弗[아란불]에게 天[천]으로부터 神[신] 이 下降[하강]하여 天[천]의 아드님에게 나라를 물려줄 뜻을 받았다고 했는데, 나는 이 阿蘭弗[아란불]이 역시 個人[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實[실] 은 神[신]의 降臨[강림]에 特異[특이]한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써, 政事[정사] 를 主宰[주재]하는, 다시 말해서 神政社會[신정사회]에 있어서 의한 職責名[직책명]으로 推定[추정]하는 것입니다. 곧 神[신]을 降臨[강림] 시키는 聖職[성직]에 「아란」이라는 이름이 있었던 것입니다(弗[불]은 勃[발]이라고도 써서, 日本[일본] 古語[고어]의 彥[언](ヒコ)· 麿[마](マロ) 쯤 되는 夫餘系[부여계] 民族[민족]의 男子[남자]의 美稱[미칭]이었던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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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北[북]으로는 夫餘[부여]에서, 南[남]은 韓地[한지]에 걸쳐 神職[신직] 중에서도 가장 尊貴[존귀]한 지위에 ·이라는 공통의 명칭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夫餘[부여]·新羅[신라]·百濟[백제]를 합쳐서 거기에 民俗學的[민속학적]으로 古代[고대]에 있어서의 政治規範[정치규범] 의 通例[통례]에 비추어 생각하건대, 대체로 이라는 말에 原始宗敎上[원시종교상] 의 最高級[최고급]의 觀念[관념]이 포함되어, 그것이 이른바 政敎一致時代[정교일치시대] 의 君主[군주], 막 말해서 魔術的[마술적] 尊長者[존장자] 의 意味[의미]로 사용된 것을 推察[추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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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羅[신라]의 古記錄[고기록]에는 여러 가지 古代君主[고대군주]의 稱謂[칭위] 를 傳[전]하며, 또 記錄作成[기록작성]의 痛念[통념] 또는 記錄作者[기록작자] 의 見解[견해] 같은 語原說明[어원설명]이 붙어 있는데, 그 중의 어떤 것은 巫[무]의 뜻이 있음을 明記[명기]한 것이 있읍니다. 巫[무]가 곧 王者[왕자] 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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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삼국사기]〉 卷一[권일] 新羅本紀[신라본기] 南解次次雄[남해차차웅] 의 記註[기주]에, 「次次雄或云慈充[차차웅혹운자충], 金大問云[김대문운], 方言謂巫也[방언위무야], 世人以巫事鬼神[세인이무사귀신], 尙祭祀[상제사], 故畏敬之[고외경지], 遂稱尊長者[수칭존장자], 爲慈充[위자충] 」이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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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구], 아리水[수]란 大河[대하]히며 聖水[성수]임을 表示[표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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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쯤 하여 두고, 大水[대수]와 「아루」라는 명칭과의 관계를 다시한 번 吟味[음미]하여 보건대, 「아리」의 河[하]란 大河[대하]이며, 神聖[신성]한 河水[하수]를 의미함을 大略[대략] 推定[추정]할 수가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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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自然崇拜[자연숭배]의 信仰段階[신앙단계]에 있어서 國土[국토]와 그 안의 훌륭한, 또는 主[주]가 되는 山河[산하]에 대하여 매우 敬虔[경건]한 信仰[신앙] 의 마음을 가진 當時[당시]의 사람들이, 各其[각기] 그 國土[국토]에 대해 守護者[수호자]요 潤澤者[윤택자]라고 생각한 河川[하천]에 대해 信仰的[신앙적]으로 붙인 이름이 「」이었다고 봅니다. 당시의 觀念[관념]으로는 크게는 國家[국가]도, 작게는 都邑[도읍]도 다 같이 山河[산하] 의 支持[지지]에 의하여 成立[성립]된다고 하였으며, 이 뿌리 깊은 信仰[신앙] 은 時間[시간]과 地域[지역]을 초월한 것이어서, 그들이 가는 곳, 사는 곳에 大水[대수]가 없으면 그만이지마는, 있다면 그것이 「」로서 崇尙[숭상] 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리라고 봅니다. 印度人[인도인]의 갠 지즈· 인더스에 대한 것 같은 것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半島民族[반도민족] 의 國家[국가] 와 聖河[성하]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은 나라마다 「아리 」河[하] 가 있는 것으로 推察[추찰]할 수 있으며, 이것을 뒤집어 본다면, 그들의 나라마다 아리河[하]가 붙어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읍니다. 現在[현재] 文獻[문헌]에 전하는 外[외]에 더 많은 아리河[하]가 半島[반도]와 文化的[문화적] 東源關係[동원관계]에서 있는 곳에 있었을 것도 생각할 수 있 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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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리河[하]가 半島[반도]의 國家[국가]에 있어서 一國[일국]의 聖地[성지] 이었을 것은 저 新羅[신라]의 古傳說[고전설]에 있어서 閼川[알천] 이 宗敎的[종교적] 靈地[영지]이며, 겸해서 國家的[국가적] 大事[대사] 의 會議地[회의지] 이었다는 것(三國遺事[삼국유사] 卷一[권일] 新羅始祖[신라시조]· 卷二[권이] 元聖大王[원성대왕] 其他[기타] 參照[참조]), 高句麗[고구려] 가 每年[매년] 初[초]에 浿水[패수] 곧 아리水[수]에 모여서 遊戱[유희] 를 하고 王[왕]이 羽衛[우위]를 벌여 놓아 이것을 보며(隋書[수서] 高句麗傳[고구려전]), 三月[삼월]의 令辰[영신]에 樂浪丘[낙랑구]에 會獵[회렵]을 하고. 사냥한 猪鹿[저록]으로써 天地[천지] 및 山川[산천]을 祭祀[제사] 지내어, 다같이 盛大[성대]를 다하였다고 하는 內外[내외]의 載傳[재전]에의 하여 그 一斑[일반]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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會議[회의]나 遊戱[유희]나 會獵[회렵]이라는 것은 대저 당시의 祭禮[제례] 를 平易[평이]하게 전한 것인데, 말하자면 국가의 가장 중요한 祭禮[제례] 를 이 아리河邊[하변]에서 거행하였다는 것이 이 古傳[고전]의 眞意[진의]라고 할 것이며, 閼川[알천]·樂浪[낙랑](랑)은 각각 新羅[신라]· 高句麗[고구려] 의 國家的[국가적] 聖地[성지]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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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아 오면 아리河[하]의 語義[어의]도, 그 原始規範上[원시규범상] 의 位置[위치]도 알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그 建國傳說[건국전설]에 있어서 建國者[건국자]가 一應[일응] 이 江[강]에 신세를 지지 않으면 안되는 約束[약속] 이나, 歷史期[역사기]에 있어서도 나라가 있으면 여기에 아리 河[하] 가 있는 이유도 推知[추지]할 수가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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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0[일십], 慰禮城[위례성]·尉那巖城[위나암성]·月城[월성]은 다 新都[신도] 이 表示[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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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의 河[하]의 뜻을 밝히는 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요, 實[실] 은 이것을 통해서 당시의 社會[사회] 原理[원리]·政治[정치] 規範[규범]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考究[고구]를 거듭하여 본 즉, 이라는 말은 古朝鮮[고조선] 社會[사회]에 있어서 神聖觀念[신성관념]을 표현하는 主要[주요]한 一語[일어]인만큼, 그것이 河名[하명]으로 사용 되었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로 딴 방면에도 그림자를 던지고 있음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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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잠깐 머리를 내민 阿利水[아리수](郁里河[욱리하])畔[반]에 있는 國都[국도] 가 역시 의 이름으로 불리워진 것 같은 것도 그 하나로서, 百濟[백제] 의 都邑[도읍]이 慰禮[위례]라고 하는 古傳[고전]은 이와 같은 근거가 있었던 것입니다. 慰禮城[위례성]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語原[어원]을 揣摩[췌마] 한 先輩[선배]도 있으나, 대개는 正鵠[정곡]을 얻지 못하고 있는것 같으며, 나의 생각으로는 慰禮城[위례성]은 역시 「우리」城[성] ──神聖[신성] 한 都邑[도읍]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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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代[고대]의 民族[민족]이 그 나라(대부분의 경우 나라 곧 都邑[도읍] 또는 首都[수도]입니다마는)를 神聖[신성]한 것인가는 지금 사람들이 보통 생각 하는 것같이 나라 자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實[실]은 「매직」의 場所[장소] 로서 信仰的[신앙적] 理由[이유]에 基因[기인]하는 것이지마는, 東方民族[동방민족]에 있어서도 이 心理[심리]는 꽤 강하게 작용하여 그것이 地名[지명] 위에 잘 나타나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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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百濟[백제]의 與國[여국]인 新羅[신라]에서는 옛부터 그 都邑[도읍]을 金城[금성]이라고도 하며 月城[월성]이라고도 했는데, 金城[금성]도 그러려니와 月城[월성] ── 朝鮮音[조선음]으로 「월」(wöl)의 城[성] 이라 고하는 「월」은 역시 違禮[위례]의 類語[유어]로서 같은 心理[심리]에서 나온 명칭인 것이 분명합니다(百濟[백제]의 後[후]의 都邑[도읍], 扶餘[부여]에도 月城[월성]이 있는데 그 뜻은 무론 同一[동일]하게 解釋[해석]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與國[여국]인 高句麗[고구려]에서는 옛적에 그 都邑[도읍]을 尉那巖[위나암]이라고 하였다는 것을 半島[반도]의 記錄[기록] 이 전하고 있읍니다마는, 이 尉那巖[위나암]은 저 加良[가량](伽羅[가라])을 加耶[가야](伽倻[가야])라 쓰고, 다시 訛[와]하여 加那[가나]라 고도한 것같이, 또 徐羅伐[서라벌]을 〈三國史記[삼국사기]〉 卷二[권이]에서는 徐那伐[서나벌], 同[동] 卷三四[권삼사]에서는 徐耶伐[서야벌]이라고 지은 것같이 半島[반도]의 古記錄[고기록]에서는 곧잘 「라」의 寫音[사음]으로도 되니까, 尉那巖[위나암]의 尉那[위나]는 實[실]은 「위라」의 寫音[사음]이며, 그 古意[고의]는 역시 「아리」의 都邑[도읍]을 나타내는 말이 거의 分明[분명]합니다(巖[암]은 城[성]을 뜻하는 古意[고의]인데, 後[후] 에이 點[점]에 論及[논급]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三國[삼국] 의 首都[수도]가 하나도 빠짐없이 「」의 語[어]로써 표현된 것은 注意[주의] 를 끌지 않을 수 없는 바이며, 그 根底[근저]에 어떠한 共通[공통] 한 心理[심리] 가 作用[작용]되고 있음을 看取[간취]할 필요를 인정하는 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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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國都[국도], 主權者[주권자]가 있는 곳, 國家社會[국가사회] 의 根本地[근본지]는 의 고장, 아리의 곳, 곧 쉽게 말해서 祭政[제정]을 摠攬[총람]하는 神聖[신성]한 土地[토지], 더 좁혀 말하면 神事[신사] 를 行[행]하는 곳이라는 原始心理[원시심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아리(우리) 의 城[성]이라는 것은, 要[요]컨대 神事[신사]의 都邑[도읍] 이라는 정도의 뜻이며, 漢文[한문]에서 잘 쓰는 神主[신주]·神京[신경]이라는 말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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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代[근대]의 人文科學[인문과학]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바에 의하면, 君主[군주] 혹은 權力[권력]의 起原[기원]은 「매직」 ── 이른바 魔術[마술]에 있다고 합니다. 특히 「후레사」같은 사람은 여기에 관하연 놀라울만 한 많은 材料[재료]를 모아서 專門書[전문서]를 저술하여, 소위 君主[군주] 의 魔術的[마술적] 起源說[기원설]에 强固[강고]한 礎石[초석]을 이룩 한 것은 여러분이 다 아시는 바입니다. 支那[지나] 古典[고전]에 나타나는 「옛 聖人[성인]」이라는 생각도, 朝鮮[조선]의 古典[고전]에 보이는 「神人[신인] 」「仙人[선인] 」이라고 하는 것도, 日本[일본]에서 말하는 「アラヒトカミ」라는 것도, 現代流 [현대류]로 말하면 魔術的[마술적] 權力者[권력자]에 不過[불과]하는 것이니, 곧 魔術[마술]을 行[행]하는 呪術者[주술자](Magician)· 巫醫[무의](Medicine - Man)· 魔女[마녀](Hexen)· 預言者[예언자](Prophet) 등 뛰어난 者[자]로서 大衆[대중]의 崇敬[숭경]을 받아 權力[권력] 의 지위에 앉은 사람들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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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政事[정사]는 祭事[제사](マツリゴト)이며 祭政一致[제정일치]· 禮政一致[예정일치]라는 것이 어디나 같은 人間社會[인간사회]의 原始規範[원시규범] 의 通例[통례]이니, 理論上[이론상]으로 朝鮮[조선]의 古代社會[고대사회] 도 이러한 約束下[약속하]에 두어질 것은 論[론]을 기다리지 않는 바입니다. 前來[전래]에 말씀드린 半島[반도]의 國家[국가]가 그 首都[수도] 를 「(ar)의 곳」이라고 한 것은 뜻하지 않고 그 證迹[증적]을 言語[언어] ── 地名[지명] 위에 남긴 것으로서 興味[흥미]를 끄는 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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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一[십일], 王險[왕검]의 語原[어원]은 易[역]의 王公設險[왕공설험]에서 온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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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기회에 附言[부언]해 두고자 하는 것은 지금의 平壤[평양]의 古名[고명] 인 「朝鮮[조선]」, 그리고 또 그 古名[고명]인 「王險[왕검]」의 語意[어의] 입니다. 이 王險[왕검]이라는 이름은 이미 〈史記[사기]〉의 朝鮮傳[조선전]에 나타나는 오랜 이름으로서, 地名[지명]에 反映[반영]된 原始思想[원시사상]을 생각하는 데도 아주 좋은 資料[자료]입니다. 이 王險[왕검] 의 語意[어의]를 해석한 言說[언설]로서 알려진 것은, 우선 〈三國史記[삼국사기] 〉 의 撰者[찬자]에 의하여 제출된 〈易[역] 〉(上經[상경]) 坎卦[감괘] 의 彖傳[단전]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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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險不可升也[천험불가승야] 地險山川丘陵也[지험산천구릉야] 王公設險[왕공설험] 以守其國[이수기국] 險之時用[험지시용] 大矣哉[대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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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句[구]에서 取[취]한 것이라는 것인데 (高句麗本紀[고구려본기] 東川王[동천왕] 二一年條[이일년조]), 白鳥博士[백조박사]는 그의 〈漢代[한대] 의 朝鮮[조선]〉이라는 論文[논문]에서 이것을 素材[소재]로 博士[박사] 一流[일류] 의 縱橫無礙[종횡무애]의 大論說[대논설]을 펴기까지 했는데, 却說[각설], 支那人[지나인]에 대하여 또는 支那[지나]에 대하여 心醉[심취] 한 半島人[반도인]에 의하여 王險[왕검]이라는 글자를 채용한 것은 易[역]에 因[인] 한 것이라고 是認[시인]하더라도, 이것은 요컨대 譯字[역자]나 寫音[사음]으로의 典據[전거]에 대한 해석은 되겠지마는, 그것이 王險[왕검]이라는 譯字[역자]를 끌어들인 原語[원어], 그 自體[자체]의 설명은 되지 않 음은 勿論[물론]입니다. 王險[왕검]이라는 명칭 ── 寫音[사음]으로서가 아니고 그 명칭 자체가 漢代[한대]에 시작되고 支那人[지나인]에 의하여 사용 되기 시작한 증거가 있다면 모르되, 우리의 견해로써는 王險[왕검]은 오래 된 土語[토어]에 대한 단순한 寫音[사음]에 그치는 것이 거의 확실하니, 王險[왕검] 의 진짜 語原[어원]은 依然[의연]히 설명을 要[요]하는 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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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아울러 말씀드립니다마는, 日本學者[일본학자]의 朝鮮古史[조선고사]에 대한 論說中[논설중]에는 間間[간간] 이러한 弊[폐]가 있어서, 오래된 傳說[전설] 또는 文獻[문헌]에 나오는 語句[어구] 같은 것은 그 字形[자형] 이 支那[지나]의 古典[고전] 혹은 佛敎[불교]의 經論[경론]에 나오는 것을 보면, 字形[자형]을 넘은 事實[사실] 그 자체까지도 支那[지나] 혹은 天竺[천축]에서 빌어 온 것으로 하고, 또는 그것에 의하여 後代人[후대인] 이만든 것으로 하여 버리는 風[풍]이 보이나, 이러한 것은 무엇보다 우선 學的[학적]으로 忠實[충실]하고 敬虔[경건]하지 못한 嫌[혐]이 있지 않나 생각 되는 것입니다. 漢字[한자]의 文獻[문헌]에 의한 ── 의할 수 있는 時期[시기]만을 調査[조사]한다면 모르되, 그 이외에, 또 그 以上[이상]의 民俗的[민속적] 硏究[연구]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여기서 당장 앞이 막혀 버릴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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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二[십이], 仙人王儉[선인왕검]의 宅[댁]은 神政的[신정적] 本據[본거] 의 意 [의]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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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王險[왕검]의 語意[어의]인데, 이것은 역시 半島[반도]의 古紀錄[고기록]에서 그 端緖[단서]를 잡아야 하겠는데, 이에 대하여서는 마침 〈三國史記[삼국사기] 〉 의 高句麗本紀[고구려본기]에 平壤[평양]은 仙人王儉[선인왕검] 의 宅[택]이었다는 것이 보입니다. 이 一節[일절]은 王儉[왕검] 이 壇君[단군]의 이름이라는 데서, 壇君否認論[단군부인론]을 가진 사람에게는 가장 거북한 句[구]이기 때문에 덮어놓고 虛妄[허망]의 言[언]이라고 하여 버리나, 壇君[단군]의 古傳[고전]을 民俗學的[민속학적]으로 調査[조사] 해서 그 神話性[신화성]과, 그리고 多分[다분]히 原始文化[원시문화] 를 反映[반영]하고 있음과, 信仰傳說的[신앙전설적] 實在性[실재성]을 是認[시인] 하는 吾輩[오배]는, 이 一句[일구]도 壇君[단군]을 論[논]하는 데 매우 중요한 寶玉[보옥]으로 여기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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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니까 一切[일체]의 過程[과정]을 생략하고 결론만을 뽑아서 이 一句[일구]를 해석하면, 여기에 이른바 仙人[선인]이라는 것은 支那[지나] 의 列仙傳[열선전] 중의 그것과 別途[별도]의 것으로, 여기에서는 宗敎的[종교적] 首長[수장] ── 우선 僧正[승정] 乃至法王[내 지법왕] 같은 것의 옛부터의 명칭이니, 新羅[신라]·高麗代[고려대]에 있어서 「國仙[국선] 」「仙花[선화] 」「仙郞[선랑] 」「仙風[선풍] 」「仙家[선가]」등이라고 한 사실에 비추어 보아도 알다시피, 仙人王儉[선인왕검]의 宅[택]이라고 하는 것은 요컨대 宗敎的[종교적] 首長[수장]인 王儉[왕검]이 都邑[도읍] 하였다는 정도의 뜻으로서, 저 〈三國遺事[삼국유사]〉 등에 보이는 壇君[단군] 의 古傳[고전]을 딴말로 가장 要約[요약]해서 표현한 것으로 인정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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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半島[반도]의 古宗敎[고종교]에서는 天[천]과 先祖[선조]를 山岳[산악]에 配定[배정]하여 崇拜[숭배]하며, 그것을 人格的[인격적]으로 보는 이름을 「山神[산신]」이라고도 하고 「仙人[선인]」이라고도 했는데, 壇君 [단군] 은 나중에 阿斯達山[아사달산]에 들어가서 山神[산신]이 되었다고 믿어졌으니, 이 뜻으로서도 仙人[선인]이라고 일컬을 이유가 있었던 것 입니다. 이 경우의 仙[선]은 漢文流[한문류]로 말하면 神[신]이라고 하는 데 恰當[흡당] 하며, 또한 自然神[자연신], 主宰神[주재신] 같은 超現實的[초현실적] 인 그것이 아니고, 實在人格[실재인격]을 神[신]이라고 한 것은 그 神人[신인]· 仙人[선인] 의 「人[인]」이라는 接尾語[접미어]로 추측되는 바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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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半島[반도]의 文獻[문헌]이라는 것은 입에서 입으로, 말로 옮겨진 오랜 전설을 훨씬 후에 外國[외국]의 文字[문자]를 빌어서 記錄化[기록화] 한 것인데, 그 寫音[사음]과 譯語[역어]에는 漢文[한문] 固有[고유]의 古義[고의] 와 混亂[혼란]·雜糅[잡유]한 것이 많으며, 文字[문자]의 外殼[외각]을 뚫고 그 참된 核心[핵심]을 뚜렷이 보는 데는 往往[왕왕]히 소위 審思[심사]· 明辨[명변]을 要[요]하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곧 漢文[한문]의 의미를 초월하여 이쪽의 文獻[문헌]에서의 用例[용례]를 밝힌 후가 아니면, 뜻밖의 錯誤[착오]와 생각지 않은 失手[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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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의 「仙人[선인]」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하나의 適例[적례] 이니, 「仙[선]」의 漢意[한의]에 眩惑[현혹]해서, 字義[자의]에 拘泥[구니] 되어서 이러니저러니 議論[의론]을 세운 것 때문에, 대개는 넌센스로 그친것은 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아니할 수 없읍니다. 半島[반도]의 古記錄[고기록]에 나오는 仙人[선인]이라는 것은 實[실]은 宗敎[종교]의 行者[행자] 乃至[내지] 神道[신도]의 體現者[체현자]에 대한 칭호이며, 古代[고대]에서는 그대로 敎權的[교권적] 君主[군주]의 이름으로도 된 것을 알 수 있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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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社會的[사회적] 地位[지위]는 어떻든지, 옛적 「仙郞[선랑]」의 무리라고 불리던 「광대·화랑이」에 지금도 「이」라는 稱[칭]이 있으며, 傳統[전통] 이 없는 무당(巫)을 「선무당」이라고 하며, 開城[개성]에서는 옛 부터 身分[신분]이 있는 사람으로 巫[무]가 된 것을 「仙官[선관] 」이라고 하며, 平安[평안]·咸鏡道[함경도] 지방에서 巫[무]가 아닌 接神者[접신자] 를 「세인」 혹은 「셩인」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仙人[선인]의 古義[고의] 를 徵[징]할 수 있는 좋은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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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각으로는 朝鮮古傳[조선고전]의 壇君[단군]이라는 것은, 요컨대 原始朝鮮[원시조선] ── 神政期[신정기]의 朝鮮[조선] ──「마지코 레 리지 아스」한 古朝鮮[고조선]에 있어서의 매직 君主[군주]의 명칭이니, 〈三國志[삼국지] 〉 의 東夷列傳[동이열전]의 韓地方[한지방]에 전해진 尊嚴[존엄] 한 神職者[신직자]라는 「天君[천군]」도, 그 餘流[여류]로 보는 것 입니다. 하여튼 朝鮮[조선]의 古代[고대]도 긴 神政期[신정기] ── theocracy 의 社會段階[사회단계]를 거쳐 오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壇君[단군] 이라는 것은 이 社會[사회]의 매직 首長[수장]을 일컬는 말에 불과합니다. 壇君[단군]을 半島[반도]의 古記錄[고기록]에서는 혹은 神人[신인]이라 하며, 혹은 仙人[선인]이라고 하며, 혹은 天子[천자]라고도 했는데, 이 神[신]이나 仙[선] 이나 天[천]의 아드님이라는 것은, 요컨대 天[천]을 背景[배경]으로 해서 神事[신사]를 行[행]하는 者[자]를 의미하는 것이니, 壇君[단군] 곧 仙人[선인], 仙人[선인] 곧 呪術師[주술사]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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壇君[단군]은 이와 같이 확실한 근거를 가진 歷史的[역사적] 實在[실재] 이므로, 그 片鱗隻光[편린척광]은 스스로 民俗方面[민속방면]에서 是認[시인]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朝鮮[조선]의 大部[대부]에서 巫[무] 를 단굴(tangul)이라고 하며, 특수한 방면에서는 사공이 배의 守護神[수호신]을 단굴(tangeul)이라고 하며((慶尙道[경상도]), 배 안에서의 神事[신사] 를 「단거리」(tangöri)이라고 하는 것 같은(京畿道[경기도]를 中心[중심]으로) 것은, 다 壇君[단군]의 古義[고의]를 전하는 民俗的[민속적] 殘物[잔물] 로 보는 바입니다. 또 半島[반도]와 文化的[문화적] 同源關係[동원관계]에 있는 저 蒙古[몽고]에서 「텅걸」(騰格里[등격리] tenger)이라는 말에 天[천]·神[신] 내지 佛[불] 또는 巫[무]의 意[의]가 있음은, 例[예] 의 匃奴語[개노어] 의 「撑犁[탱리]」(tangri)와 더불어 壇君[단군]의 古義[고의]에 대한 比較言語學的[비교언어학적]으로 좋은 支持[지지]가 되는 바 입니다. 朝鮮[조선] 現代語[현대어]로 頭部[두부]를 의미하는  리(taigari) 와 家庭[가정]의 守護神[수호신]으로 되어 있는 (taigam) 은 다 거기에 淵源[연원]을 가진 말임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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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단굴(tangul)의 「굴」(gul·kul)의 顫動的[전동적] 尾聲[미성] 이 鼻音化[비음화]하여 「君[군]」으로 된 것은 새삼스러이 설명이 필요 치 않습니다마는, 단지 壇君[단군]이라는 字形[자형]은 〈三國志[삼국지] 〉 의 天君[천군] 과 합쳐서, 앞서 말한 소위 音[음]과 義[의]를 같이 나타내 고자한 意識的[의식적] 作爲[작위]이기도 한 것을 注意[주의]하고, 그 外[외] 의 細細[세세] 한 것은 생략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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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三[십삼], 王險城[왕검성]과 新羅[신라]기(ギ)와 百濟[백제]와의 語原的[어원적] 共通[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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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壇君[단군]의 이름인 王險[왕검]과 語義[어의]인데, 이것도 내 생각으로서는 역시 어떤 一個[일개]의 人格[인격]에 관한 명칭은 아니고, 實[실] 은 古朝鮮[고조선]에 있어서의 主權關係[주권관계]의 原始心理的[원시심리적] 一表現[일표현]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壇君[단군]의 古傳[고전]에도 최초에 朝鮮[조선]의 나라를 세운 者[자]가 號[호]를 「壇君王險[단군왕검] 이라 하였다고 있는데, 원래는 「壇君王儉[단군왕검]」이라고 連稱[연칭] 하고, 壇君[단군]이라는 것은 實[실]은 그 略語[약어]같습니다. 이 王儉[왕검] 의 朝鮮音[조선음] 왕검(Wangöm) 왕(Wang)도 實[실]은 朝鮮音韻[조선음운]에 흔히 볼 수 있는 ㄹ·ㅁ·ㆁ(l·m·ng) 共通[공통]에 의하여 (á r) 이 약간 변한 寫音[사음] 아니면 의 類語[유어]인 엄· (ö m· á m) 의 對字[대자] 요, 儉[검](göm·köm) 은 東方民族[동방민족]에 흔히 볼 수 있는 尊者[존자] 의 美稱[미칭]인 加[가]· 干[간]· 干岐[간기]· 今[금]· 錦[금]· 監[감](kan· keam· kam), 日本[일본]에서는 カミ·キミ의 轉寫[전사]에 불과한 것입니다. (ár)을 잘못해서 王[왕](wang)으로 轉寫[전사] 하였다고 해도 無妨[무방]하지마는, 朝鮮語[조선어]에서 母[모]를 「엄」(öm)이라 하고, 굵은 손가락(親指[친지])을 「엄(öm)지」라고 하며, 큰 이(牙)를 「엄(ö m) 니 」라 하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굉장하다는 (スバラシイ· ステキナ) 것을 「엄청(ömchöng)」이라고하며, 果毅[과의]·勇敢[용감]을 「암팡(amp á ng) 스럽」다 라고 形容[형용]하고, 意表[의표]에 나온 言動[언동]을 「엉 큼(ö ngk'eum)」이이라 하며, 神[신]의 靈驗[영험]이 나타나는 것을 「영검 」(y ö ng ö m) 이라 하고, 그 지혜가 神[신]과 같음을 「영 절 」(y ö ngch ö l) 로 形容[형용]하는 것처럼, 역시 最高[최고]· 最大級[최대급] 의사 물을 엄·엉·암(öm·öng·am)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 (àr)의 同義語[동의어] 인 이들의 譯[역]이 王[왕] (wang·ang)이 되었다고 해도 좋고, 어떻게 하든지 같은 결론을 얻게 되어, 「王儉[왕검]」이라는 것은 요컨대 神聖[신성] 한 尊者[존자]라고 하는 정도의 뜻입니다. 壇君王儉[단군왕검] 이란 天[천]에 의한 神的[신적]인 大人[대인]이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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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같이 본다면, 平壤[평양]을 仙人王儉[선인왕검]의 宅[택]이라고 한 〈三國史記[삼국사기] 〉 의 文[문]은 平壤地方[평양지방]과 그것을 통 해서 본 古朝鮮[고조선]의 政治規範[정치규범]이라는 것이 역시 神政的[신정적] 雰圍氣[분위기]에 싸여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읍니다. 仙人王儉[선인왕검] 의 宅[택]이란 요컨대 王儉[왕검] ── 「」() á r(á m) 인 神人[신인] 감(köm)에 의해 神政[신정]을 行[행]한 곳을 표현한 것으로 되는 것으로서, 古記[고기]에 보이는 王儉城[왕검성]이란 그것의 支那流[지나류] 의 音義兩彰的[음의양창적]인 한 譯語[역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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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王險城[왕검성]이라고 하였을 때의 王險[왕검]은 地名[지명]으로서의 獨立[독립]된 해석을 줄 수 있는 이유도 있으며, 이렇게 함으로써 더한층 그 眞義[진의]가 밝혀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王[왕]이라는 글자가 大[대]· 神聖[신성]을 듯하는 土語[토어]의 寫音[사음]임은 앞서 해석한 바와 같거니와, 驗字[험자]에 별도의 해석이 가능하며, 또 必要[필요] 하다고도 생각 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王險[왕검]의 險[험]은 人格的[인격적] 尊稱[존칭]으로 볼 것이 아니라, 實[실]은 場所[장소]를 표시하는 語[어], 곧 都邑[도읍]의 듯을 나타내고 있는 듯한 點[점]입니다. 저 高句麗[고구려]에 있어서의 尉那巖[위나암]의 巖[암](암 gam), 百濟[백제]의 都邑[도읍]을 단지 固麻[고마]라고 稱[칭]하였을 때의 「고마」, 시라기(シラギ) 의기(ギ) 를 비롯하여, 韓地方[한지방]의 郡邑[군읍]에 많이 보이는 接尾語[접미어] 의 「기」내지 現代語[현대어]에 있어서의 「여기 」「저기」하는 「기 」(keui) 와 같이, 王險[왕검]의 險[험]도 역시 하나의 地域的[지역적] 表示[표시] 인 것을 추측하게 되는 것으로서, 王險[왕검]이란 王[왕](· à r) 인 「險[험]」(·kàm) 곧 聖地神域[성지신역]을 나타내는 말로 생각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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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삼국사기]〉에 의하며, 新羅[신라]나 百濟[백제]도 古代[고대]에는 國王[국왕]의 政務處[정무처]를 「南堂[남당]」이라고 하였다는데(沾解王[첨해왕] 三年[삼년] 및 古爾王[고이왕] 二八年條[이팔년조]), 南堂[남당] 은 一[일]에 「都堂[도당]」이라고도 하였다는 데서, 그것이 支那[지나] 의 明堂[명당] 같은 것이 아니고 民俗的[민속적] 根據[근거]를 가진 것임을 알 수 있으며, 그리고 그것이 다시 吏道式[이도식]으로 읽어야 할 것 이 라면, 堂은 何如間[하여간]에 南[남]은 알(ar)의 對字[대자]일 것을 생각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日本[일본]의 古語[고어]에 「スナラギ 」의 居處[거처] 를 「アラカ」(ミアラカ·ミヅノミアラカ)라고 한 것과 비교해서 생각 하면, 統治權[통치권]에 의한 尊貴[존귀]한 곳에 널리 「」(à rg à· à lk à) 또는 그 類語[유어]가 있었던 것이 想察[상찰]되는 것입니다. 대체로 朝鮮[조선] 開闢[개벽]의 神話[신화]에도 天帝[천제]의 아들에 의하여 創業[창업]된 최초의 나라가 「神市[신시]」라는 이름이었다고 하고, 또 新羅[신라](シラギ) 의 語原[어원]은 (park) 〓 神[신], 자(cha) 〓 城[성] 인것과 같이 (別途[별도]로 考說[고설]이 있음), 半島[반도]에 있 어서의 古代[고대]의 國名[국명] 내지 首都[수도]의 명칭이 모두 神聖[신성] 한 城[성]을 의미하는 것도 그 原始心理的[원시심리적] 一般傾向[일반경향]을 卜定[복정] 하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地名[지명]으로서 해석하여도 王險[왕검](「」 àmgàm, 轉[전]해서 「」 arga) 은 神宮[신궁]·神域[신역] 내지 神都[신도]의 뜻에 不外[불외] 함을 推定[추정] 할 수 있음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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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아리의 河[하]」든지, 「王險[왕검]의 城[성]」에도 古朝鮮[고조선]에 있어서의 政治規範[정치규범]의 一面[일면]이 잘 반영되어 있 음을 보는데, 그 時代[시대]에 있어서 國土[국토]에 대한 딴 두서너 通稱[통칭]을 아울러 생각하면 더욱 이 意義[의의]가 鮮明[선명]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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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四[십사], 古代[고대] 國都名[국도명]의 語原[어원]은 大槪[대개] 神域[신역] 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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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間[시간] 이 꽤 많이 지났으니 이제 하나만 더 大略[대략] 紹介[소개] 드리기로 하겠는데, 半島[반도]의 古傳[고전]에 의하면, 夫餘[부여]의 國土[국토] 는 迦葉[가섭](カシ)原[원]이라고도 하고 曷思水濱[갈사수빈]이라고도 하여, 高句麗[고구려]의 國本[국본]인 淹滯水[엄체수]에는 蓋斯水[개사수] 의 一名[일명]이 있고, 江原道[강원도] 방면의 濊民族[예민족]의 國土[국토]에는 河西良[하서량]의 이름이 있으며, 新羅[신라]의 國都[국도]에는 鷄林[계림]· 始林[시림](원래는 鷄始林[계시림]이었을 것이니, 鷄[계]는 一[일]에 鳩[구]로도 지음)이라는 號[호]가 있고, 伽羅[가라]의 나라는 龜旨[구지](シ) 의 山峰[산봉]에서 일어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도대체 「」(à r) 과 같이 半島[반도]의 나라마다 붙어 다니는 이 「가시 」(カシ· クシ) 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朝鮮[조선]의 現代語[현대어]에서도 鄕村[향촌] 의 鎭守祭[진수제](대 동국· 당산 굿 등)나 巫[무]의 加持祈禱[가지기도] 를 「굿 」(kus) 이라 하고, 家庭[가정]에서 神[신]에 祭物[제물]을 바치는 것을 「고사 」(kosa)라고 하는 데 徵憑[징빙]되는 바와 같이, 가시(カシ· クシ) 는 神事[신사] 곧 「매직」(magic)이며, 國土[국토]의 表象[표상], 國都[국도] 의 칭호를 「가시」(カシ)라고 함은 當時[당시]의 政治規範[정치규범] 이 「매직」임을 표시하는 것으로 인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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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句麗[고구려]에서는 大人[대인], 곧 部落[부락]의 長[장]을 「古雛加[고추가] 」라고 하며(三國志[삼국지]), 新羅[신라]에서는 初代[초대]의 王號[왕호] 를 「居西干[거서간]」이라고 하였다는데(三國遺事[삼국유사]), 이 것이 「굿」(Kus)을 하는 尊者[존자], 곧 「매직」 君主[군주]의 뜻임은 容易[용이] 하게 推察[추찰]됩니다. 百濟[백제]의 都邑[도읍]을 「居拔[거발] 」(コバル)이라고 하는 「居[거]」도(北史[북사]), 東明王[동명왕]의 舊居[구거]라고 하는 「九梯[구제](クチ)宮[궁]」의 「九梯[구제]」도(輿地勝覽[여지승람] 平壤府古跡條[평양부고적조]), 高麗[고려] 國都[국도] 開城[개성] 의 松岳山[송악산], 朝鮮[조선]의 都[도] 京城[경성]의 木覔[목멱](南山[남산])에 있었던 國家的[국가적] 神堂[신당]인 「國師堂[국사당]」의 國師[국사](ククス· ククシ) 도, 地方[지방] 村落[촌락]의 到處[도처]에는 「국수당 」(kuksutang) 이나, 各處[각처]의 高山[고산]에 그 이름을 남기고 있는 무수한 國師峰[국사봉](kuksapong)내지 金剛山[금강산]을 비롯한 諸處[제처] 의 迦葉窟[가섭굴], 祥原[상원] 觀音山[관음산]의 佳殊窟[가수굴], 端川[단천] 의 家舍山[가사산], 忠州[충주]의 迦葉山[가섭산], 連川[연천]의 袈裟坪[가사평] 등의 「가시」(kasi)는 다 神道[신도]에 淵源[연원]하는 명칭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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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百濟[백제]의 首都[수도]를 「居拔[거발]」(コバル)이라고 하는 語原[어원]에 대해서 大邑[대읍]의 義[의]일 것으로 推論[추론]한 사람도 있으나, 나는 神政時代[신정시대]의 通念[통념]에서 역시 「가시하라 」(カシハラ) 의 異形語 [이형어]로 보고 싶습니다. 또 高句麗[고구려]의 「高[고]」도 同斷[동단]이니, 高[고]는 「가시」(カシ)의 略[략], 句麗[구려]는 〈三國志[삼국지] 〉에 보이는, 城[성]을 溝婁[구루]라고 하는 古語[고어], 지금의 滿洲語[만주어]로 나라를 의미하는 「구룬」으로서, 「高[고]」의 句麗[구려] 는 곧 「가시하라」(カシハラ) 등의 一類語[일유어]로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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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조선]의 古代信仰[고대신앙]에서는 神[신]으로 숭상하는 山岳[산악]을 「」(park)이라고 稱[칭]하였는데, 이것은 굉장히 高大[고대]한 것으로서, 오히려 國家的[국가적] 意味[의미]를 가진 것 같아, 단순히 一山一村[일산일촌] 중에서 神事[신사]를 行[행]하는 聖地[성지]로서의 그것에는 「굿(kus) 의 峰[봉]」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음을 봅니다. 그리고 이 굿(kus)을 吏道的[이도적]으로 나타내는 각종의 字形[자형] 중 國仙[국선] 과같이 「國師[국사]」도 그 하나로서, 혹은 一國[일국]의 師[사]로 하는 곳이라는 뜻을 寓[우]한 音義[음의] 兩表的[양표적] 譯語[역어]이었는지도 모르겠는데, 후에 굿峰[봉]·굿堂[당]이라고 할 것을 딴 吏道字[이도자]에 있어서도 많은 例[예]가 있는 바와 같이, 이것을 全音的[전음적]으로 읽어서 國師[국사](kuksa) 峰[봉]· 國師堂[국사당]으로 된 것입니다. 京城[경성] 의 國師堂[국사당] 도 본래는 이것이었을 것인데 故意[고의]인지 偶然[우연] 인지 無學國師[무학국사]에 관한 附會說[부회설]이 생겨서, 드디어 이 國師[국사] 를 僧位[승위]의 그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읍니다. 그러나 地方[지방]에 있는 村社[촌사] 叢祠[총사]를 다 國師[국사]라고 하고, 訛[와] 해서 「국수·국시」(kuksu·kuksi」라 하며, 祈雨[기우] 또는 望祭[망제] 등을 行[행]하는 山峰[산봉]을 역시 國師[국사]로 부르는 것을 보면, 京城[경성] 의 國師堂[국사당]에 있어서 無學國師[무학국사] 云云說[운운설] 은근 거가 없음도 알 수 있고, 동시에 國[국](「구」ku) 師[사](「ㅅ」s)로 國師[국사] 가 굿의 吏道[이도]에 지나지 않음을 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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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半島[반도]의 古代[고대] 諸國[제국]이 다 같이 그 主權[주권] 의 所在地[소재지]를 「가시하라」(カシハラ)라고 말한 것은, 요컨대 「가시 」(カシ) 를 하는 곳, 가시의 場所[장소], 가시에 의해 聖[성]스러운 地域 [지역], 곧 매직政治[정치]의 本據[본거]임을 率直[솔직]하게 표현한 것이며, 古朝鮮[고조선]의 政治規範[정치규범]을 가장 簡明直截[간명직절] 하게 우리에게 보여 주는 재미있는 명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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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五[십오], 日本[일본]의 古語[고어]에 있어서의 「가시」 (カシ) 「구시 」(クシ) 等[등]의 語義[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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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日本[일본]의 古傳[고전]에 있어서 天孫[천손]의 降臨地[강림지] 를 구 시 부루(クシブル) 의 峰[봉], 그 最初[최초]에 覔國[멱국](クニマギ)한 곳을 가사사(カササ)의 岬[갑](串)이라 하고, 乃至[내지]는 神武天皇[신무천왕] 의 建國地[건국지]를 「가시하라」(カシハラ)라고 하고, 崇神天皇時 [숭신천황시]에 神器[신기] 鏡劒[경검]의 崇祀地[숭사지]로 卜定[복정]된 곳이 「가사 누 히 」(カサヌヒ) 의 邑[읍]이라고 하였으며, 飛鳥時代[비조시대]에 여러 가지 중대한 神事[신사]를 行[행]한 곳으로서 유명한 곳에 「아마 가시노(アマカシノ) 岡[강]」의 이름이 있는 것이 어떠한 古義[고의]이었든지 이 것과 아울러 推想[추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皇大神宮[황대신궁] 이 지금의 五十鈴川[오십령전](이스즈가와)上[상]에 鎭座[진좌]하게 될 때까지 처음에는 崇神天皇[숭신천황]의 皇女[황녀], 豊鋤入姫命[풍서입희명]과 후에는 倭比賣命[왜비매경]이 神鏡[신경]을 奉戴[봉대]하고 諸國[제국]에 覔國[멱국] 하여 轉轉遷幸[전전천행]한 여러 나라 중 최초의 것에 屬[속]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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但波國[단파국] 吉佐[길좌] ノ宮[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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倭國[왜국] 伊豆加志本[이두가지본] ノ宮[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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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乃國[목내국] 奈久佐濱[내구좌빈] ノ宮[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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吉備國[길비국] 名方濱[명방빈] ノ宮[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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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의 기사(キサ)·가시(カシ)·구사(クサ)·가다(カタ) 등은 역시 가시(カシ) 의 古義[고의]를 지닌 것 같은 이름으로서 注意[주의]할 만하다고 생각 합니다. 賢所[현소](カシコドコロ)의 「가시고」(カシコ)도 이와 같은 古義[고의]에 비추어 생각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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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日本[일본]의 神名[신명]에 많이 보이는 구시(クシ)· 구 시 이 하마도(クシイハマド)· 구시 나다히 메(クシナダヒメ)· 구 시마지(クシマチ)· 구 시야 마구(クシヤマク) 등의 구시(クシ)와, 巫醫[무의]의 古意[고의]를 지닌 구스(クス)· 구 스시(クスシ)· 구스다마(クスダマ)· 구스루(クスル) 의 「구스 」(クス) 와, 妙[묘]한 靈異[영이]한 것을 말하는 구시(クシ)· 구 시비(クシビ) 와, 神事[신사]에 관한 말로 가시와 데(カシハデ)· 가시와도 노(カシハドノ)· 가시 고시(カシコシ)· 가시 즈 구(カシジク) 등에 붙어 있는 「가시 」(カシ) 와, 呪物[주물]로 使用[사용]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으로 구시(クシ)· 구시로(クシロ) 등의 구시(クシ)는 다 神事[신사]를 意味[의미]하는 가시(カシ)에 淵源[연원]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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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六[십육], 朝鮮文化[조선문화]의 東亞[동아] 及[급] 人類文化史上[인류문화사상] 의 地位[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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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上[이상]으로 매우 疎笨[소분]하나마 朝鮮[조선]에 있어서의 古代政治[고대정치] 의 性質[성질]을 당시의 精神的[정신적] 遺物[유물]로서의 地名[지명] 위에 徵考[징고]하여, 그것이 人類[인류] 原始文化[원시문화]의 通態[통태] 인 純然[순연]한 「마지코 레리지어스」인 것을 多少[다소] 論證[논증] 한 셈입니다. 원래는 좀더 많은 재료와 문화적으로 東源關係[동원관계]에 있는 東方[동방] 諸民族[제민족]과의 넓은 比較[비교]와를 가지고, 例[예] 를 들면 「」(àr)의 一語[일어]에 대해서도 가까이는 日本語[일본어] 의 아 라미 가미(アラミカミ)· 아라라 기(アララギ)· 아 라다 까(アラタカ) ˙ ˙˙ ˙˙ 등의 아라(アラ), 아리마사(アリマサ)의 아리(アリ), 아루지(アルジ)의 아 ˙˙ ˙ 루(アル), 미아레(ミアレ)·아레노하다(アレノハタ) 등의 아레(アレ), 天孫˙ ˙ ˙˙ ˙降臨[천손강림] 의 遺跡地[유적지]로 되어 있는 아히라(アヒラ), 혹은 이라 ˙ ˙(イラ姶良[압량])· 이라 쓰고(イラツコ)· 이라 쓰 메(イラツメ) 의 이라(イラ), ˙ ˙ 우 라나 히(ウラナヒ)· 우 라나와(ウラナハ)· 우 라베(ウラベ) 의 우라(ウラ) 등을 비롯하여, 우랄 알타이 諸語[제어]에 있어서 많이 例[예]를 보는 主君[주군]· 家長[가장]· 貴人[귀인] 등을 의미하는 아루(ar)·우루(ur) 根幹[근간] 의 諸語[제어]에 辨證[변증]을 試驗[시험]하는 방법을 가지고, 古朝鮮[고조선] 의 原始規範[원시규범]을 통해서 朝鮮[조선] 固有文化[고유문화] 의 東亞文化[동아문화]에 대한 地位[지위]를 論[논]하고, 더 나아가서는 西[서] 로 遡及[소급]하여 역시 (àr)의 語[어] 같으면 그것이 바빌로니아· 아오에 니 끼아 의 至高神[지고신]을 표현하는 엘(El), 헤부라이語[어]의 强者˙˙ ˙[강자]· 有力者[유력자] 의 義[의]를 가지고 神[신]의 稱[칭]이 된 엘·에로 ˙˙ ˙ ˙ 후와 그 複數[복수]인 에로힘 (El·Eloh·Elohim), 아라비아人[인]의 至高神[지고신]에 대한 명칭 알라(Allah·ilah 强者[강자]의 뜻에서 왔다고 함) 乃至[내지] 인드 게르만語系[어계]의 神聖[신성]·高貴[고귀]를 뜻하는 아 ˙˙ 리야(arya) 나, 이집트의 레·라(Re·Ra) 까지의 連絡關係[연락관계]를 討覈[토핵] 하여, 人類文化[인류문화]의 一元的[일원적] 觀察[관찰]에 의한 朝鮮[조선] 對[대] 世界[세계]의 文化的[문화적] 交涉[교섭]의 一端[일단]을 揣摩[췌마] 하고 싶습니다마는, 여기에는 자연 長時間[장시간]과 煩瑣[번쇄] 한 考證[고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아직 나의 뜻하는 바를 다하지 못 하였 읍니 다마는, 우선 이것으로써 이 이야기를 끝마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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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동안 靜聽[정청]을 하여 주셔서 매우 恐縮[공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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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九三0年[일구삼십년] 六[유]월 四[사]일 京城帝國大學[경성제국대학]에서의 講演[강연] 草稿[초고]에 若干[약간]의 補筆[보필]을 加[가] 함) (原文[원문] 日文[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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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九三0年[일구삼십년] 朝鮮學報[조선학보] 第一卷[제일권] 第一號[제일호] 〉── (李[이] 弘[홍] 稙[직] 譯[역])
【원문】고조선(古朝鮮)에 있어서의 정치규범(政治規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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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남선(崔南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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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조선(古朝鮮)에 있어서의 정치규범(政治規範)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7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