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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랑다방기(樂浪茶房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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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12
이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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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다방기(樂浪茶房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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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부족이 될까를 경계해서 학교에서 나가는 시간을 이용해 다방까지 걸어가고 다방에서 다시 집까지 걸어가는 이 코스를 작정하고도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여행(勵行)의 날이 차차 줄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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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학교까지 10분, 학교에서 다방까지 20분, 다방에서 집까지 30분 가량의 거리─이만큼만 걸으면 하루의 운동으로 족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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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서 온 소설 쓰는 이에게서 1일 2시간 산보설을 듣고 착상한 계획이었으나 그의 반인 한 시간 산보도 여의치 못한 것이다. 다방에를 간다고 해도 오후 네 시 전후 시각에는 먹을 것도 만만치 않다. 반지빠른 때라서 이 시각에 배를 채우면 저녁이 맛없어진다. 커피에다 핫케이크나 먹고 나면 저녁 구미는 아주 똑 떨어져 버린다. 공복에 커피는 위험한 것이나 홍차를 마시자니 향기 없는 뜨물이 속에 차지고 레몬스카치를 마시자면 날마다의 음료로는 지나쳐 사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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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요새의 다방이라는 것이 커피의 미각에는 섬세한 주의를 베풀면서도 홍차는 아주 등한시해 버린다. 홍차의 진의라는 것은 립톤의 새 통을 사다가 집에서 우려내는 근근 수삼일 동안에 있는 것이지 아무리 저장에 주의해도 그 시기를 지나면 풍미는 완전히 달아나 버린다. 호텔에서 먹는 것이나 다방에서 청한 것이나 집에서 우린 것이나 다 같이 들큼한 뜨물이 되어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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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다방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요 수년간의 일이다. <히노도리>와 <마즈르카>만 있을 때에는 적막의 감이 없지 않더니 별안간 올해를 잡아들면서 <야마도> <세르팡> <브라질>의 세 집이 우후의 죽순같이 솟아나 다객의 목을 적시어 주게 되었으나 아직도 그 어느 곳이나 설비 의장 등 부족한 점이 많다. 들으니 연내로 또 두 집이 생긴다는 소식이다. 그렇게 되면 합 일곱 곳의 다방이 앉는 셈으로 일년 동안에 이렇게 수다스럽게 늘어가는 장사는 외에 볼 수 없는 것이나 당업자끼리는 피차에 눈의 적일는지 몰라도 다객의 편으로 볼 때에는 다방의 격식도 점점 나아질 터이니 이런 반가울 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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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곳 아니라 7의 7배가 는다 하더라도 좋은 것이 각각 특색을 나타내고 풍격을 갖추어 간다면 다객의 유별도 저절로 나누어지고 각각 갈 곳이 스스로 작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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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 같아서는 꼭 가고 싶은 한 곳이라는 곳이 아직 없다. 그만큼 모든 범절이 설피다. 음악에 자신 있는 다방은 방안이 횅뎅그레해서 기분이침착해지지 못하고 안온한 집이라도 찾아가면 음악이 설피고 레지(茶娘) 있는 곳을 들어가면 언제나 속배(俗輩)가 운집해 있고 ─도무지 마땅한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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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시 음악을 안목에 두고 <세르팡>을 찾는 것이 가장 유익한 듯하다. 네 시 전후면 다객의 그림자가 삐일 뿐 아니라 때로는 혼자 앉게 되는 적도 있다. 차 한잔을 분부하고 3,40분 동안 앉아 있노라면 웬만한 교향악 한 편쯤은 완전히 들을 수 있다. 차이코프스키의「파세틱」도 좋고 베토벤의 트리오「대공(大公)」같은 것도 알맞은 시간에 끝난다. 대곡(大曲)이 너무 세찰 때에는 하와이안 멜로디도 좋은 것이며 재즈 음악도 반드시 경멸할 것은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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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든 이 산보의 시각 전후가 다방을 찾기에는 가장 고요하고 적당한 때이지 밤에는 아예 갈 곳이 못되는 것이 사람들이 웅성거리는데다 까닥하다가는 문하(門下)의 학생들을 만나기가 일쑤다. 개중에는 한 탁자에 청해 와도 좋은 사람도 있기는 하나 거기는 저쪽도 거북스럽고 이쪽도 편편치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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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는 학생들의 다방 출입을 금한다는 소문이나 평양에는 아직 그런 엄격한 율도는 서지 않았고, 사각모 패라야 단 두 교뿐이니 관대하게 취급은 하나 그만큼 그들의 자태는 더 눈에 띠이게 되고 한 다방에서 마주칠 때에는 피차에 편안치 못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차라리 밤에는 다방 출입을 삼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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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 행에도 이 정도의 조그만 수난은 있는 것이다. 세상에 편편한 일 한 가지나 있으리, 속히 이곳에도 서울만치 다방이 자꾸자꾸 늘어서 좋은 음악 많이 들리고 좋은 차 많이 먹이게 하고 웬만한 구석목 다방에 들어가서쯤은 학생의 그림자 눈에 안 띠이게 될 날을 기다린다.
【원문】낙랑다방기(樂浪茶房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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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李孝石) [저자]
 
  1938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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