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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년의 문단 전망 - 프로문학에 직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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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1
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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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의 문단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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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문학에 직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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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족주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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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민족주의를 신봉하는 작가들이 급속히 유물론의 세례를 받기 전에는 앞으로 상당한 시일을 두고 제파(諸派)의 문학은 오히려 진전의 과정을 밟을 것입니다. 또한 조선의 지식분자가 아직까지도 대부분 민족주의의 경향을 가지고 있는 터이라 그네들 지식층이 깡그리 몰락을 당할 날이 올 것을 가상하더라도 일조일석에 앞을 다투어 방향을 전환하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당분간 주의에 관한 이론은 고사하고 같은 민족주의적 색채가 농후한 작품이라도 역사를 들추어 새삼스러이 위인걸사를 재현시키고 또는 창작하는 것으로 능사를 삼지 말고, 우리가 눈 앞에 당하고 있는 좀 더 생생한 사실과 인물을 그려서 대중의 가슴에 실감과 감격을 아울러 못 박아줄 만한 제재를 골라가지고 기교껏 표현할 것입니다. 엄연한 현실을 그대로 방불케 할 자유가 없는 고애(苦哀)야 동정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눈뜨고는 차마 볼 수 없는 모든 현상은 전연 돌보지 않고 몇 세기씩 기어올라가서 진부한 ‘테마’에 매달리는 구차한 수단을 상습적으로 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비겁한 현실도피인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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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서 과거의 어느 인물에 대하여 흥미를 느끼기 때문에 붓을 댄다는 것은 이미 동기에 있어서 작품행동과는 배치되는 것이오, 공리적 효과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무저항주의의 오인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나약하고 무기력하게 할 기우가 없지 않습니다. 은둔적 비투쟁적인 민족주의문학이란 우리 젊은 사람에게는 독감에 사물탕만한 효능도 얻지 못할 것이외다. 그러므로 앞으로 이른 바 민족주의문학은 그 주의를 고수하는 작가들 자체가 좀 더 엄숙한 리얼리즘에 입각하여 방향을 전환하기에 혼신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민족주의문학이란 간판은 가난한 집 사당의 말라빠진 위패만도 못할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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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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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형식이 옛것이라고 해서 구태여 버릴 필요는 없을 줄 압니다. 작자에 따라 취편해서 시조의 형식으로 쓰는 것이 행습(行習)이 된 사람은 시조를 쓰고 신체시로 쓰고 싶은 사람은 자유로이 신체시를 지을 것이지요. 다만 그 형식에다가 새로운 혼을 주입하고 못하는 데 달릴 것이외다. 그 내용이 여전히 음풍영월식이요, 사군자 되풀이요, 그렇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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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불리 먹고 누어 아래 윗배 문지르니 선하품 계계터럼 제절로 나노매라 두어라 온돌 아랫목에 딩구른들 어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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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위와 방사(倣似)한 내용이라면 물론 배격하고 아니할 여부가 없습니다. 시조는 단편적으로 우리의 실생활을 노래하고 기록해 두기에는 그 ‘품’이 산만한 신시보다는 조촐하고 어여쁘다고 생각합니다. 고려자기엔들 퐁퐁 솟아오르는 산간수가 담아지지 않을 리야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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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프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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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신변에 재액만 닥치지 않으면 금년에는 질로나 양으로나 훨씬 진전되리라고 봅니다. 프로문학도 바야흐로 이론투쟁기를 지나서 작품행동을 개시할 만한 나이를 먹었고 또는 대중적으로 영합될 소질을 처음부터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수많은 프로 작가 중에 조예와 표현력을 가진 즉 일가를 이룬 작가가 다섯 손가락도 꼽아지지 않는 것은 크게 유감입니다. 장작개비를 집는 듯한 이론 조각과 난삽한 감상문이나 그렇지 않으면 시줄을 발표한다고 프로 시인, 프로 작가가 된다는 것은 조선에서만 볼 수 있는 기현상(奇現像)인가 합니다. 이것은 일개 문예독자로서 솔직한 감상입니다. 우선 작가로서 그 역양이 인정받을 만한 정도에 도달한 연후에야 비로소 문제가 되는 것이외다. 맑스주의자, 계급의식인, 또는 좌익동정자는 될 수 있을지언정 하룻밤 사이에 프로 예술가는 될 수 없을 것이외다. 거듭 말씀하거나와 나는 문예독자로서 조선의 프로 예술파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분들에게 대해서 평소에 몇 가지 병통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중요한 것만 몇 가지 조항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 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성의에서 나온 직언이므로 물론 오해가 없을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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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직도 ‘카푸’만 하더라도 같은 진영 내에 이론이 통일되었다고 볼 수 없는 것, 즉 통제가 일사불란하게 된 것 같지 않습니다. 그 반증으로는 자체 내의 암투로 분열이 잦은 것, 즉 각자위(爲) ‘리더’가 되려는 것은 병통 중에도 가장 큰 것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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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외적으로 새로운 동지를 포섭해 들일 양이 적습니다. 부락적 성벽 쌓아 놓고 그 속에 들어 앉아서 독선적 태도를 취할 뿐이요 적극적으로 권외인의 의식을 전환시키기에 노력하여 동지를 삼아 잠재세력을 부식(扶植)할 줄 모릅니다. 모모위원 수삼 명의 의견으로, 고집으로 툭하면 손쉽게 제명, 성토, 매장 등 가혹(?)한 처분을 내리니 그것은 확실히 살이 살을 먹는 것 이외다. 그렇게 편협한 거조를 반성치 않는다면 이 좁은 조선 바닥에 과연 몇 사람이나 진정한 동지가 될 것입니까? 과도기일수록 ‘양’을 풍부히 걷어모은 뒤에 ‘질’을 체질하는 것이 정책으로도 유리하지 않을까 합니다. 요컨데 기관을 조종하는 인물 문제외다. 자체 내의 반동분자는 규약대로 처치하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그러나 은밀을 요할 것이요 어제까지 동지라고 부르던 사람을 대죄나 지은 것처럼 공공연하게 발표하여 자기의 결백만을 보이기에 급급한 것은 너무나 도량이 적은 행동이외다. 무수한 공적(公敵) 과사적(私的)으로 두루마리를 하고하는 것은 운동진전상으로도 큰 장애가될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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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제까지는 투쟁의 대상이 몇 개인이나 선인견으로 본 인물에 국한되어 있는 혐(嫌)이 없지 않습니다. 이론보다는 감정이 앞을 서며 심지어 인신공격을 다반사로 여기던 버릇을 맹성(猛省)할 때가 오지 않았나 합니다. ‘쁘로’고 ‘프로’를 막론하고 예술가는 마땅히 이론으로써 또한 작품으로써 버젓하게 투쟁할 것이니 작품의 우열을 분간치 못할만큼 대중은 우매치 않을 것이외다. 그러므로 작품의 성(成) 불성(不成)과 최후의 승패는 대중(大衆)이 판단할 것이요, 자화자찬으로 일삼는 것은 도리어 식자간의 조소거리가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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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제까지의 프로작가는 그 대부분이 작가로서 귀중한 체험이 적다고 봅니다, 들떼어 놓고 농민, 노동자의 옹호자 같은 구물(口吻)로 일을 삼으나 그 자신이 결코 ‘프로레타리아’는 아니외다. 몸소 윗통을 벗고 호미를 잡으며 팔을 걷어붙이고 곡괭이를 들어본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즉 그 밭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드물다는 말씀이외다. 그네들의 생활을 생활하고 같은 감정으로 움직이고 같은 분위기를 호흡한 연후에야 비로소 흙냄새, 땀냄새가 코를 찌르는 진정한 ‘프로’ 작품을 생산할 수 있을 것 이외다. 그런 작품이어야만 무산대중에게 감격을 주고 ‘아지·프로’ 위대한 효력을 발휘할 것이외다. 허덕이는 무산대중과는 그네들의 실제생활과 감정이 너무나 상거(相距)가 먼 것 같습니다. 더구나 소 ‘프로’에 속하는 사람이 거지반이라고 단정합니다. 초록은 동색이어야만 합니다. 동색이 되려면 같은 종자로 배태되어 같은 흙 속에서 움이 돋아서 같은 우로(雨露)를 받고 자라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예민하고 명석한 관찰력을 가졌기로서니 몸소 경험한 기초 위에서지 않으면 그네들의 손에서 만들어진 작품은 사주전(私鑄錢) 같고 붕어사탕 같은 것입니다. 염천에 용광로 앞에서 부삽을 쥔 노동자의 땀에 젖은 수기가 보고 싶습니다. 젊은 소작인이 흙벽에다가 연필 찍찍 갈겨 쓴 단 몇 줄의 생활기록이 읽고 싶습니다. 이상과 실제의 현격신념(懸隔信念)과 생활의 모순은 ‘인텔리’로는 누구나 통감하는 묵직한 양심의 가주(苛誅)나 더우기 프로 작가로서는 너무나 뚜렷한 이중생활을 자괴 자책치 않으면 모든 것이 허위요 위선일 것입니다 프로 예술운동이 일어난 지 여러 해 동안에 괄목할 만한 작품이 나오지 못하고, 나왔다 하더라도 대개는 개념적 팜플렛 직역식이 되고 마는 원인이 이 점에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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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극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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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근(輓近) 각 사립 남녀전문학교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신극운동은 실로 당목(瞠目)할 만한 현상입니다. 흥행을 목적 삼지 않은 학생들의 진지한 극운동인 점에 더우기 장래성이 있고 믿음직합니다. 검열문제도 있고 극장(劇場) 하나 없는 터에 그네들의 노력은 과연 큰 것입니다. 현재의 흥행단체에 실망한지 이미 오래이므로 학생층에서 새로운 극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나기를 간망합니다. 그러기에는 우선 극본 기근에 대해 구제책을 강구하여야겠고 또는 성의와 식견을 갖춘 지도자가 먼저 필요할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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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일 년 간에 발표된 희곡이 적지 않은 듯 합니다만 그 대개는 작가가 무대에 관한 경험과 토대가 되는 지식이 적기 때문에 상식적인 무대약속을 범한 것이 많고 어떤 분의 작품은 순전히 극적의 연속일 뿐이었읍니다. 그것은 대화를 필기한 것일지언정 상연대본은 아니외다. 연출자보다는 극의 밑바탕이 되는 곡의 창작이 왕성해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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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소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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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유의해 본 적은 없읍니다만 근래에 유행하는 동요나 동화는 달콤한 애상적인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역시 환경관계이겠지요만 씩씩하게 자라야 할 우리 어린이게게는 의식적으로라도 이 조선을 인식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소년문예 작가가 거의 어른들인 까닭에 그네들에게 대하여 주문한 동심을 잃지 않을 정도 한도 내에 진취적이요 활발한 내용으로 동요, 동화, 동극을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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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신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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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금년 봄에 〈불사조〉가 끝이 나면 몇 달 쉬어서 다른 장편을 써볼까 하고 구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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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소설은 더구나 본도가 아닙니다만 인제야 간신히 습작시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매일 잡무에 얽매어 채무독촉이나 당하듯이 시간도적질을 해서 게발개발 긁적여 던지니 독자에게 몹시 미안하고 조그만 예술양심에도 가책을 받습니다. 그러나 금년 내로는 다년간 숙망이던 《춘향전》을 영화대본으로 각색해보려고 합니다. 몇 번이나 착수했다가 촬영할 가망이 없음을 비관하고 붓을 던졌으나 작품화 되고 못 되는 것은 별문제로 치고 저의 반생의 사업으로 완성해보려고 합니다. 영화로써 표현하기에 모든 조건이 춘향전만큼 빈틈 없이 완비(完備)된 원작은 수많은 영화를 보아온 중에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그 내용은 현재적으로 새로운 해석을 붙여야 할 것입니다.
【원문】1932년의 문단 전망 - 프로문학에 직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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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7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