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평안감사(平安監司) 박엽(朴曄) ◈
카탈로그   본문  
최남선
1
平安監司[평안감사] 朴曄[박엽]
 
2
그래도 이때나 저때나 하고 골라 보는 눈에 光海主[광해주]의 신임을 받아서 북방을 鎭定[진정]하고 앉아 있는 平安監司[평안감사] 朴曄[박엽]이라는 이가 꽤 잘나게 보였읍니다.
 
3
그런데 光海主[광해주] 시절에 北人[북인]이라는 정당이 권세를 잡았다가, 자기 분열 작용으로 大北[대북] ․ 小北[소북]의 둘로 나뉘매, 한참 동안 납작하였던 西人[서인]이라는 정당이 이 틈을 타서, 大北[대북] 小北[소북]할 것없이 北人[북인]들을 죄다 내몰고, 仁祖[인조]라는 어른을 내어 모시고 새 정권을 세우는 통에, 光海主[광해주]란 양반이 불쌍한 희생이 되어 쫓겨나시고, 그 신임을 받아서 신정권의 異分子[이분자]로 인정되는 모든 사람을 집어치울새, 맨 먼저 칼을 받은 이가 大兵[대병]을 가지고 위력이 일방에 떨치는 平安監司[평안감사] 朴曄[박엽]일밖에 없었읍니다. 그리하여, 서울서 光海主[광해주]가 江華[강화]로 쫓겨나가실 때에는, 朴曄[박엽]의 머리가 이미 大同江[대동강] 모래밭에 뒹굴게 되었읍니다.
 
4
이 朴曄[박엽]이란 이의 실제 인격은 얼마나 하였든지 모르지마는, 원채 잘나기도 하였고, 불쌍하게 죽은 것이 일반의 동정을 사기도 하여, 민중의 그를 추모하는 마음이 날로 깊은 동시에, 마침내 丁卯虜亂[정묘노란]이니 丙子胡亂[병자호란]이니 하는 기막히는 일을 당할수록, 朴曄[박엽]이가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민중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의 그림자를 갈수록 커다랗게 확대해 간 양하여, 朴曄[박엽]은 어느 틈에인지 이인이 되고 신명이 되고 또 그의 없어진 것이 淸太祖[청태조]의 제국 건설을 가능케 한 것쯤으로 생각하게까지 되었읍니다. 미상불 이야기에 있는 朴曄[박엽]은 조선사상에 드물게 보는 일대 영웅이었읍니다. 이를테면,
 
 
5
朴曄[박엽]은 본래 將略[장약]이 있고, 천문·지리로부터 陰陽術數之學[음양술수지학]에까지 통달하지 아니한 것이 없으며, 光海主[광해주]의 동서로서 平安監司[평안감사]를 해 가지고 一○[일○]년 동안 갈리지를 아니하여 위엄이 관서에 행하니, 북방의 되놈이 두려워하여 감히 변방 가까이 들어오지를 못하였다.
 
6
하루는 部下人[부하인]을 불러서 주효를 장만하여 내어 주어 가로되,
 
7
「이것을 가지고 中和[중화]의 駒峴[구현] 밑에 가서 기다리고 있을 것 같으면, 필시 건장한 마부 두 사람이 지나갈 것이니, 네가 나의 말로써 전갈하기를, 너희들이 우리 나라로 내왕한 지 시방 몇 달에 다른 사람이 다 모르지마는 나는 다 알고 있느니라, 돌아다니다가 수고스러울 듯하기에 이렇게 주효를 보내는 것이니, 한번 잔뜩 먹어 취하여 속히 돌아감이 가하니라고 하여라」
 
8
하거늘, 부하인이 駒峴下[구현하]에 가서 기다리고 있은즉, 과연 그런 사람 둘이 지나므로 하라는 대로 말을 전하니, 二[이]인이 서로 보고 안색이 핼쓱하여 가로되
 
9
「저희들이 이렇게 내왕하온들 어찌 감히 장군을 만홀히 여기오리까. 장군은 과연 신인이시니, 장군이 세상에 계실 동안에는 다시 들어올 마음을 먹지 않으오리다」
 
10
하고 그 주식을 받아 먹고 가니, 이 두 사람은 龍骨大[용골대]와 馬夫人[마부인]로서, 가만히 우리 나라에 와서 허실을 탐지하고 다닌 것이며, 혹은 말하기를 조선인의 모양으로 承政院[승정원]에 使令[사령]을 다녔건마는, 사람들이 다 모르고 朴曄[박엽]이만 알았다더라.
 
11
하는 이야기가 있읍니다. 또,
 
 
12
朴曄[박엽]이 하루는 수청든 嬖妓(폐기)더러 일러 가로되,
 
13
「네 오늘 저녁에 나를 따라서 어디 가서 壯觀[장관]의 구경을 한 번 하려느냐?」
 
14
기생이 가로되,
 
15
「그리합지요」
 
16
하였다. 밤이 되매, 曄[엽]이 스스로 靑騾(청라)를 끌어내서 鞍裝[안장]을 지우고, 그 기생을 앞에 놓고 綿紬(면주) 온 疋(필)로 그 허리를 묶어서 자기 신상에 단단히 잡아 매고, 눈을 꼭 감고 있으라 하고서, 그만 채찍을 쳐 가매, 귓가에 다만 바람 소리가 있을 뿐이었다.
 
17
한 곳에 이르러서는 기생으로 하여금 눈을 뜨라 하므로, 기생이 눈을 뜨고 정신을 수습하여 보니, 허허벌판에 장막이 하늘에 닿아 있고, 燈燭[등촉]이 휘황하거늘, 曄[엽]이 기생더러 겁내지 말고 보고 있으라 하는지라, 기생이 벌벌 떨면서 장막중 좌판 밑에 엎드려 있은즉, 曄[엽]이 우뚝하게 혼자 앉아 있는데, 조금 있다가 꽹과리를 꽹꽹 두드리고 오랑캐의 인마가 천 명인지 만 명인지 모르게 풍우 지쳐 들어오더니, 그 중의 대장이 말을 내려 칼을 짚고, 장막으로 들어와서 가로되,
 
18
「네가 과연 왔구나」
 
19
曄[엽]이 웃어 가로되
 
20
「오냐」
 
21
그 장수가 가로되
 
22
「오늘은 가히 검술을 시험하여 승부를 결단하리라」
 
23
曄[엽]이
 
24
「오냐」
 
25
하고 칼을 짚고 마루에서 내려와서 오랑캐의 장수로 더불어 벌판 가운데 마주앉아서 검으로 서로 치고 찌르고 하는 듯하더니, 금세 양인이 화해서 白虹[백홍]이 되어서 공중으로 솟아 올라가더니만, 공중에서 후다닥 제꺽 하는 소리가 한참 나다가, 이윽고 胡將[호장]이 땅에 떨어져 넘어지고, 曄[엽]이 공중으로 내려와서 胡將[호장]의 가슴을 가로타고 물어 가로되
 
26
「그래 어떠하니?」
 
27
胡將[호장]이 사례하여 가로되,
 
28
「이제부터는 다시는 감히 맞서지를 못하리이다」
 
29
曄[엽]이 웃고 일어나서, 같이 장막 안으로 들어가서 술을 가져오라 하여 서로 마시고, 胡將[호장]이 먼저 일어나 하직을 고하매, 胡騎[호기]들이 아까처럼 저희 장수를 휩싸고 풍우같이 몰아 가더니, 두어 마장을 채 가지 못하여 一聲砲響[일성포향]에 허다한 오랑캐 군사가 사람· 말 할 것없이 다 하늘로 쏠려 올라가서, 烟燄(연염)이 하늘을 덮고 다만 胡將[호장] 한 사람이 남아서 다시 와서
 
30
「살려 줍시사」
 
31
한대, 曄[엽]이 고개를 끄덕여 가로되,
 
32
「응, 가거라」
 
33
하고, 인하여 기생을 불러내어 靑騾[청라]를 타고 올 때처럼 해서 돌아왔다.
 
34
이것은 대개 金[금]나라 汗[한]이의 아비, 곧 淸太祖[청태조] 노라치(魯花赤)의 군사를 調練[조련]하는 곳이요, 胡將[호장]이 곧 노라치인데, 이 때에 다년 훈련한 數萬騎[수만기]가 일시에 죄다 타 죽으니라.
 
35
하는 이야기도 있읍니다. 과연 이럴 수가 있다 하면 나폴레옹의 슈르메스터와 歐洲[구주] 대전의 마타하리도 朴曄[박엽]의 앞에서는 수족을 놀리지 못할 것이며, 아메리카의 블랙체임버와 소비에트 연방의 G·P·U 도 朴曄[박엽]이 세상에 있으면 얼른 폐업을 해야 할밖에 없다 할 것입니다. 朴曄[박엽]은 높은 벼슬과 樞要[추요]한 지위에 있던 이이니까 물론 숨은 사람이 아니지요마는, 그 그런 줄을 그의 생전에는 잘 모른 점에서 또 그 신통한 재주가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 점에서는, 또한 한 隠君子[은군자]라고 볼 만도 한 일입니다.
 
 
36
癸亥[계해] 三[삼]월에 仁祖大王[인조대왕]이 들어서시니, 朴曄[박엽]이 혼자 燭下[촉하]에서 칼을 만지면서 한숨을 쉬더니, 창외에 기침 소리가 있거늘,
 
37
「거 누구니?」
 
38
한즉, 대답하기를
 
39
「막객의 아무올시다」
 
40
「그래 어째 왔느냐?」
 
41
가로되,
 
42
「使道[사도]께서는 어쩌시렵니까?」
 
43
「오냐, 네 생각에는 어찌해야 하겠느냐?」
 
44
가로되,
 
45
「소인에게 상중하 三策[삼책]이 있사오니, 그 중에서 골라 쓰옵소서」
 
46
「그래, 무엇무엇이야?」
 
47
가로되,
 
48
「使道[사도]께서 군사를 일으켜 반하여서 북으로 金人[금인]을 결탁하시면 臨津江[임진강] 이북이 조정의 것이 아닐 것이니 이것이 상책입니다」
 
49
「또 中策[중책]은?」,
 
50
「예, 급히 三[삼]만병을 내어서 소인이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오면 승패의 수를 알 수 없으리니 이것이 中策[중책]입니다.」
 
51
「또 下策[하책]은?」,
 
52
「使道[사도]께서 대대로 국록을 잡수신 신하시라, 순히 나라의 명을 받으심이니 이것이 하책입니다」
 
53
曄[엽]이 잠자코 한참 있다가 한숨지어 가로되,
 
54
「내 하책을 좇으리라」
 
55
가로되
 
56
「그러시면 소인은 이로 부터 하직을 여쭙습니다」
 
57
하고 그 사람이 그만 부지거처가 되어 버렸다.
 
58
하는 이야기가 있읍니다.
 
59
조선 민중의 의사로 말하면, 한 번 朴曄[박엽]으로 하여금 북방 오랑캐를 저항하게 하여 보았더면 하는 嗟嘆(차탄)이 그이를 이러한 모양들로 이야기의 세계에 모셔 두게 되는 중에 丁卯年[정묘년]·丙子年[병자년]의 두 번 난리가 거푸거푸 일어나서, 그대로 현실상의 적막을 느끼는 민중이 더욱 이야기의 영웅을 만들어 내기에 솜씨를 보였읍니다.
【원문】평안감사(平安監司) 박엽(朴曄)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수필〕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3
- 전체 순위 : 4229 위 (4 등급)
- 분류 순위 : 782 위 / 1655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평안감사 박엽 [제목]
 
  최남선(崔南善) [저자]
 
  # 인물평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평안감사(平安監司) 박엽(朴曄)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8월 0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