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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9
최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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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을이 왔다
2
새 世界[세계]의 展開[전개]를 보자
 
 
 

1. 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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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왔다. 시원한 가을이 왔다. 우리에게서 땀과 곰팡이와 熱惱[열뇌]와 신음을 벗겨 가려는 가을이 인제 왔다. 내 앞에 누가 있으랴 하던 폭군 赤日[적일]도 다른 이에게 아니라 구태 樹梢[수초]의 細風[세풍]과 草末[초말]의 微露[미로]에게 기운이 줄고, 풀이 죽고 안색이 없이 淸商[청상]의 철이 되었다. 무서운 것이「時[시]」의 힘임을 가장 잘 인식할 때가 가을일세라 하겠다. 어허 천지간의 어떠한 勢威[세위]와 驕矜[교긍]이 능히「時[시]」의 制裁[제재]를 벗어나서 자기의 꿋꿋하고 튼튼함을 자랑할 수 있으랴. 가끔가끔 가장 작은 이를 크게 만들고, 가장 크다는 이를 가장 작도록 하심이 神[신]의 섭리이심을 추풍에 쫓겨가는 酷炎[혹염]에게서 한 번 똑똑하게 볼 것이다.
 
 
 

2. 二[이]

 
6
어허, 가을이 왔다. 허다한 새 感省[감성]을 우리에게 재촉하려는 듯 가을이 덥석 우리에게 왔다. 더워 더워 한 끝에 서늘하여지지 아니한 적이 없으며, 추워 추워하여 따뜻하여지지 아니한 적이 없음을 해마다 사람마다 분명히 지내고 알고 또 느끼는 일이다. 서늘의 路文[노문]을 놓는 것, 서늘의 先驅[선구]로 온 것이 곧 더위라 할 만큼 더위 끝에는 반드시 서늘이 오며, 더위가 늘고 오르는 것이 변시 더위 자기의 促壽[촉수]요, 변시 자기 잡아 먹을 서늘의 그만한 急超速來[급초속래]임을 번연히 체험하여 생각하면, 천하에 이보다 더한 미쁜 일이 없을 만큼 일찍 한 번의 差錯[차착]이 있지 아니하건마는, 더위에 處[처]하여 더위도 무섭게만 보지 아니하고 무서운 듯한 더위를 도침내 우습게 쫓겨가게 되고, 더위의 덜미를 짚고 섰는 것이 곧 서늘 그것임을 생각하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되는가. 그리하여 더위에 정신을 잃고 제 死命[사명]을 억제당할 뿐이지, 졸리면서 살핌이 있고 눌린 중에 준비를 가져, 가을다운 가을을 맞이하고 이용하고 활용 선용하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되는가.
 
 
 

3. 三[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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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언제든지 동정과 선심으로써 사람에게 대한다. 그러나 그 동정 그 선심을 동정과 선심답게 받을 만한 준비와 기력이 흔히 사람에게 乏絶[핍절]하다. 더워서 못 견디리라 하고는 서늘한 가을 가져다 주는 것이 자연이다. 그러나 더워 더워하면서 온갖 부주의와 不攝生[불섭생]을 자행한 결과는 추풍의 앞에서 생리적 결함과 심리적 弛緩[이완]의 總決算[총결산]을 피할 수 없이 되어서 시원할 가을로 하여금 도리어 귀찮은 가을을 짓게 하는 것이 사람의 일이다. 덥기만 할 줄 알고 부질없이 어쩌나 소리만 하던 이의 보수는 여름 이상의 더운 가을을 맞이하여 풍성의 철을 凄凉[처량]의 때로 지냄일밖에 없다. 더운데 무엇을 한단 말이냐고 밭두둑과 논배미를 모르는 체하던 이는 豊稔[풍임]과 收穫[수확]의 남의 마당에서도 과시 눈물을 뿌리지 아니치 못할 것이다. 기꺼움의 가을은 오직 더운 여름의 속에 시원한 가을 있음을 알아본 이에게만 있는 것이다. 여름의 호랑이에게 물린 채 가을의 제 정신을 잃지 아니한 자만 살찐 곡식과 과실로써 가을의 고마우심을 소리껏 讚頌[찬송]할 수 있는 것이다. 저 여름에는 덥다고 겨울에는 춥다고, 자연의 薄情少惠[박정소혜]를 중얼거리는 사람은, 애인의 품속같이 홋홋한 봄에도 몸서리를 칠 것이요, 눈에 그득한 것이 성숙과 풍족뿐인 가을에도, 마른 창자를 부둥켜쥐지 아니치 못할 것이다.
 
 
 

4. 四[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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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왔다. 여름의 할 일을 한 이에게 가을의 받을 것을 받게 하기 위하여 미쁘고 공평한 가을이 시방 왔다. 厚[후]할 자에게 厚[후]하는 것처럼, 薄[박]할 자에게 薄[박]하는 가을이, 그 森嚴[삼엄]한 報施律[보시율]을 펼 양으로 만물의 앞에 엄연히 來臨[내림]하였다. 일한 자는 거두게 하고, 손 놓은 자는 한숨짓게 하고, 열음 연 자에게는 번식의 약속을 주고, 가라지에게는 아궁이의 재가 되라 하기 위하여, 그 秋水[추수] 같은 審判[심판]이 들과 산과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깊은 골짜기에까지 분명히 왔다. 그때 그때에 순응하는 노력과 그네 그네에게 부과된 의무를 克盡[극진]하는 與否[여부]가 어떻게 그이 그이의 운명을 相反[상반]하는 방향으로 갈라 보내는지를 누구든지 한 번 더 徵驗[징험]하라는 가을이 우리의 感念[감념]을 한껏 자아내려 한다. 가을이 반드시 屈原[굴원]의 것뿐 아니니 쓸쓸만 하지 아니하며, 가을이 반드시 宋玉[송옥]의 것뿐 아니니, 슬프기만 하지 아니하다. 그렇다고「아나크레온」처럼 노래해 기릴 것만도 아니요,「바커스」처럼 취해 즐길 것만도 아니다. 노력의 代償[대상]인 수확을 가지는 이와 가지는 일에서만 노래와 술로써 그 기쁨을 表白[표백]할 것이요, 또 그 수확이 수확다운 수확이요, 가치다운 가치인 경우에만 한번 노래도 하고 한번 춤도 출 것이다. 한가지 가을이 누구에게는 悅樂[열락]으로 느끼고, 누구에게는 悲傷[비상]으로 느끼며, 무엇에는 稔熟[임숙]으로 임하고 무엇에는 凋落[조락]으로 임하는가. 어허, 한없는 儆戒[경계]를 재촉하는 가을이 우리에게 왔구나. 아직도 老炎[노염]의 學威[학위]에서 신음하는 朝鮮人[조선인]의 앞에 秋水[추수]秋月[추월]의 새 세계가 점점 전개되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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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九二五年[일구이오년] 九月[구월]七日[칠일] 東亞日報[동아일보]>
【원문】가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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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남선(崔南善) [저자]
 
  1925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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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9월 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