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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깃골 쥐 박서방은 동리로 마을을 가려고 저녁을 먹고 싸리문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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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편으로 약간 남았던 저녁노을도 인제는 아주 없어지고 사방이 어둠침침 하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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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문까지 따라나온 마누라쥐가 당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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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쥐 박서방은 문득 저물도록 아니 돌아오는 아들쥐 삼동이와 사동이가 또 걱정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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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델 나갔다가두 날이 저물기 전에 돌아와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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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들어오기야 오겠지만…… 제 동무 집에 가서 놀기에 골몰헌 게지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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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 그놈들 그렇게 일러두 아니 듣는단 말이야…… 밤에 저물게 다니지 말라구 내가 번번히 나무라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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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두 나가길레 저물기 전에 돌아오라구 신신당부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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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 양주는 이렇게 그저 심상히 걱정은 하나 피차에 마음 한구석에는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불길스런 예감이 자꾸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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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설마 그럴 리야…… 하는 안심하고 싶은 생각에 서로 그런 말은 입밖에 내지도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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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들어올 테지요…… 어서 당신 다녀오실 데나 다녀오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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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방은 입맛을 쯥쯥 다시면서 아니 내키는 발길을 옮겨놓고 마누라는 그대로 싸리문에 기대어 서서 있는데 그때 갑자기 사동이가 급한 소리로 어머니를 불러 외치며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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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방과 마누라는 가슴이 더럭 내려앉았다. 그저 순순히 돌아왔으면 걱정 하며 기다리던 끝이라 되레 반가왔으련만 두 아이가 나가서 저물도록 아니 돌아오다가 그중 하나만이 황급히 외치며 돌아오는 것이 필경은 무슨 일을 저질렀구나 하고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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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방 양주는 그처럼 놀라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급히 뛰어오도 못하여 대굴대굴 굴러오던 사동이는 허둥거리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앞에 퍽 쓰러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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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말도 변변히 하지 못하고 헐떡헐떡 씨근거리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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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웬일이냐 ? 삼동이는 아니 오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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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동이는 겨우 숨을 돌려가지고 비죽비죽 울면서 어머니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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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방이 그런 중에도 위엄을 갖추어 묻는다. 그러나 사동이는 대답이 없다. 양주의 가슴 속에는 그 불길한 예감이 더욱 뚜렷이 눈앞에 보여 가볍게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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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방은 재차 묻는다. 그래도 대답은 없고 흑흑 우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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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아 병신스럽게 울지만 말구 대답을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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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는 영감을 무마하여 놓고 다시 사동이를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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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사동아, 울지 말구 이야기를 해라 응 ? 삼동이하구 싸웠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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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동이는 한동안 주저하다가 겨우 다시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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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에 그러리라는 예감이 들지 아니한 것은 아니나 정작 그 소식이 귀에 들리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같이 놀라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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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한동안 넋이 나간 듯이 우두커니 넋을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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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이나 지나서 마누라가 다시 묻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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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쇠네 집 앞에서 어쩌다가 그랬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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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 그래서 삼동이는 물려가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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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은 점쇠네 집으로 도망했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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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날은 자꾸만 어둡구 그래서 삼동이가 앞서구 내가 뒤서 나오는데 그놈에 자식이 싸리문 뒤에 가 숨었다가 뛰어나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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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동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서방이 야단야단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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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내가 일상 무어라드냐. 함부루 놀러나가지 말구…… 또 놀러나가더라도 멀리 가지 말구…… 그러구 그놈한테 쫓겨들어가거든 그 속에서 굶어죽드래두 여남은 시간은 나오지 말라구……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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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 가득 모여 앉은 마을꾼들은 모두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이 휘둥그 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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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삼동이놈이 도 누렝이란 놈한테 물려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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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채 묵묵히 있는 좌중을 둘러보면서 박서방은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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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좌중에서 이렇게들 놀라 묻는다. 박서방은 사동이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대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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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듣고 나서 입입이 또 한마디씩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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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애들을 저물게 내보내면 못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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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게뿐인가 ? 멀건 대낮에 어룬두 물려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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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리가 무슨 도리를 차려야지 이러다가는 그저 멸종을 당허잖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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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박서방이 이렇게 공론을 내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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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옳은 말일세…… 자네 아들놈이 물려갔다지만 그것이 자네만의 일이 아니니까…… 우리 자식이 ─ 자식뿐 아니라 우리 중에 누가 내일 그놈의 밥이 될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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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늙수구름한 최서방이 박서방의 말에 동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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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수 없습디다…… 전에 그놈의 목에다 방울을 달자구 실컷 공론만 해놓구는 자, 가서 달어야 할 텐데 누가 가느냐 ? 하니까 모다들 꽁무니를 빼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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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에는 박서방도 최서방도 대답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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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묵묵히 있던 최서방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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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잖으이…… 좋은 수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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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모가지에다 방울을 달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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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중에는 천하에 없는 장수라도 혼자 갔다가는 백번 가면 백번에 백명이 다 죽고 말테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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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러지를 말구 우리가 한 오십 명이 한꺼번에 가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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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중은 이 말에 이상히 흥분이 되어 박서방을 바라본다. 박서방은 다시 말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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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알겠나 ? 제아무리 누렝이라두 우리 오십 명이나 육십 명을 한꺼번에 잡어먹지는 못할테니까…… 허기야 그중에 몇은 죽기두 하구 다치기두 하겠지…… 그렇지만 우리가 오십 명이 일심동력을 해서 대어들면 그래 그까짓 놈의 목에다 방울 하나를 못 단단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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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방의 말이 떨어지자 와 하고 좌중이 흥분되어 입입이 소리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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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박서방은 좌중을 제어하고 다시 말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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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집집마다 장정을 하나나 둘씩 뽑아서 그 수가 백 명이 되건 이백명이 되건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리구 한번 갔다가 못허면 두번 세번이라두 기어이 그놈의 목에 방울을 달어놀 때까지 응,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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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들은 이렇게 용감하게 외치며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러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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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家庭[신가정] 193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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