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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화산령(金華山嶺)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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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9
계용묵
1
금화산령(金華山領)에서
 
 
2
초가집 처마 끝에 고추다래가 붉게 늘어지면 산기슭은 귀뚜라미 소리에 눌은다.
 
3
이 시절이면 율정(栗亭)의 자연석 위에 고요히 걸어앉아 자연의 주악(奏樂)에 귀를 기울이고 어지러운 마음을 잊어 보는 때처럼 마음의 위안은 없 었다.
 
4
장미꽃이 빨갛게 피는 봄 아침이거나 방초가 하얗게 머리를 푸는 가을 저녁이면 나는 이 율정을 잊지 못한다. 창작에 매듭진 생각도 봄 아침, 가을 저녁의 이 율정에서 풀렸고, 파리한 마음에 너그러운 살도 봄 아침, 가을 저녁의 이 율정에서 쪘다. 장미꽃을 빨갛게 물드는 봄 아침의 율정, 방초 머리가 하얗게 헛나는 가을 저녁의 율정―그 어느 해나 봄과, 가을의 이 두 철을 맞으며 내 고향 집 율정을 잊어 본 때가 있었을까.
 
5
달빛에 젖은 금화산탁을 끼고 저녁도 늦어 집으로 돌아오다가 나는 문득율정이 그리워지는 서정을 참을 길이 없었다. 귀뚜라미 소리가 여물수록 풀 리는 방초 머리였다. 추석도 이미 지났으니 율정에는 한참 성(盛)히 풀리어 흐드러졌을 방초 머리다. 이 머리 푼 방초 속에서 울어내는 귀뚜라미 소리 는 유달리도 정서를 자아내게 하는 것이었다.
 
6
그러지 않아도 8· 15이후 나는 고향 집 소식을 모른다. 38선은 나를 본 고향으로 보내 주지 아니하고 또 고향은 소식을 전해 주기엔 아주 신용이 없었다. 가뜩이나 그리운 율정이다. 어지러운 마음에 억하게 느껴지는 심서 (心緖)를 붙안고 고개탁에 힘 없는 걸음을 세웠다.
 
7
주위의 숲 속은 귀뚜라미 소리에 온통 찼다. 방초가 없고, 나를 맞아 주 는 자연의 돌의자가 없다뿐이지, 율정의 방초 밭에서 듣던 그 귀뚜라미 소 리 그대로 귓가에 익다. 담배를 피워 물고 언덕에 앉았다. 소음이 시끄럽 다. 노변에다 일렬로 건너 지은 피난민의 거적막 속에서 들려 나오는 신음 소리, 좁은 길을 유형선 자동차가 달리는 폭음 소리만 듣기도 역한데 먼지 까지 주위의 일대를 뒤덮는다. 가던 사람마다 입을 막고 손길을 내젓는다. 앉았던 보람도 없다. 나도 입을 막고 일어섰다. 그래도 귀뚜라미 소리는 끊 일 줄을 모른다. 귀뚜라미 소리는 같은 귀뚜라미 소리건만 왜 율정에서 듣 던 귀뚜라미 소리처럼 그렇게 내 마음에 위안을 주지 못할까. 여전히 가라 앉을 길이 없는 마음이다. 천리 길의 가깝잖은 율정이라고는 해도 열 시간 동안의 기차 신세만 졌으면 어지러운 심서(心緖)를 마음대로 풀 수 있었던 율정이었다. 그러나 해방과 같이 그어진 38의 경계선은 서로 제 땅이 아닌 듯이 율정에의 길을 구속하고 있다. 다시금 암담해지는 마음을 안고 나는 또 걸음을 내켰다.
 
8
새빨간 불을 가슴에 단 미국 비행기는 무슨 일로 또 푸르릉 푸르릉 머리 위에서 돌기 시작하는 것일까.
 
 
9
〔발표지〕《경향신문》(1947. 9.)
【원문】금화산령(金華山嶺)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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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용묵(桂鎔默) [저자]
 
  1947년 [발표]
 
  시(詩)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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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9월 11일